회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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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군 (강원도)




淮陽郡 / Hoiyang County

회양군
淮陽郡 / Hoiyang County
국가
북한
광복 당시 면적
1,899㎢
광역시도
강원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7면
인구
42,485명
시간대
UTC+9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1]

- 정철, 《관동별곡


1. 개요
2. 역사
3. 교통
4. 관광
5.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1. 개요[편집]


북한 강원도의 군 중 하나이다. 중국의 화이양(淮陽)과 한자가 같다.[2] 양구군제주도를 포함한 한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곳이라면,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본토의 정중앙은 회양군 난곡면 현리이다.

이 곳의 출신 유명인으로는 송인상 전 재무부 장관이 있다.

이곳은 소설 '나는 홍범도'(송은일)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2. 역사[편집]


삼국시대고구려의 각련성군(各連城郡)이었다.

이후 신라가 차지한 후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에 따라 연성군(連城郡)으로 고쳤다. 사실 고구려 때 이름에서 한 글자를 줄인 것이다. 신라 9주 5소경삭주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교주(交州)로 불렸다. 이는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영서 지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행정구역5도 양계교주도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교주도는 회양도, 춘주도 등으로도 불렸는데, 회양도의 회양은 이후 교주에서 바뀐 지명이고 춘주도의 춘주춘천의 옛 지명이다.

정철관동별곡에서도 언급되듯이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존재한 군이다. 조선시대 도호부가 놓였다가 1895년 군이 되었다. 1906년 수입면이 양구군에 편입되었다. 회양군의 철령31번 국도가 통과하고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중부지방과 함경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포함 된다.

원래는 면적 1,899.8km²로, 홍천군보다도 넓어 미수복 강원도를 포함한 전 강원도에서 가장 넓은 군이다.[3] 다만 북한 치하에서 1952년 내금강면이 금강군으로, 난곡면 일부가 평강군에 이관되며 면적이 크게 줄었다.


3. 교통[편집]


한때 금강산선이 내금강면을 통과했지만 일제 말기 전시물자 확보를 위해 선로를 뜯어감으로서 사라졌다. 31번 국도가 지난다. 이밖에 도로로 다른 지역과 연결된다.


4. 관광[편집]


내금강면 지역에 금강산이 위치한다.


5.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편집]


파일:강원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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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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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미수복지역*
파일:미수복 강원도 김화군 휘장.svg
김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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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통천군 휘장.svg
통천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평강군 휘장.svg
평강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회양군 휘장.svg
회양군

*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파일:미수복 강원도 회양군기.svg
군기
파일:강원특별자치도 휘장.svg 강원특별자치도미수복지역(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회양군 휘장.svg

회양군
淮陽郡
Hoeyang County


군청 소재지
회양면 읍내리
광역자치단체
강원특별자치도
하위 행정구역
7 146
면적
1899.81㎢
인구
92,122명[4]
인구밀도
48.49명/㎢
명예읍·면장

7석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회양군 소개
  • 회양면(淮陽面)
    • 관할 리 : 읍내(邑內), 간동(間洞), 갈화(葛花), 강돈(江敦), 고대(高垈), 고재(高才), 곡돌(曲乭), 관(館), 광석(廣石), 금태일(金台日), 노동(盧洞), 대유(大有), 두전동(豆田洞), 마룡(馬龍), 봉현(蓬峴), 부로지(扶老只), 상교동(上橋洞), 상만(上萬), 소풍(素豊), 송치(松峙), 신안상(新安上), 신안중(新安中), 심포(深浦), 아현(峨峴), 연포송(延浦送), 오동(梧洞), 외강돈(外江敦), 이동(二洞), 장벽동(長碧洞), 전항(箭項), 지석(支石), 추방(秋芳), 포촌(浦村), 하교동(下橋洞), 하토기점(下土器店)
    • 1938년에 부내면(府內面)에서 개칭되었다.
    • 북한 행정구역상 회양읍은 서쪽 끝의 읍내리와 이웃한 하북면 초일리에 걸쳐 있으며, 하북면 초일리 쪽 시가지가 더 크다.
    • 신안상리, 신안중리(통칭 '신안') 일대는 북한 행정구역상 창도군의 현 소재지다. 원래 창도군 소재지는 김화군 창도면→통구면이었으나,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된 것. 신안 지역은 2차대전 종전후 신안면으로 분리되었으나 이북 5도 행정체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 부로지리(2차대전 종전후 신안면에 이관)는 통칭 '교주'라고 하였으며 2차대전 종전후 교주출장소를 거쳐 현제 창도군 교주리이다

  • 난곡면(蘭谷面)
    • 관할 리 : 현(縣), 공동(公洞), 귀락(貴洛), 낭하(浪下), 동사동(東沙洞), 봉일(鳳逸), 봉통포(蜂桶浦), 상송관(上松館), 수천동(水泉洞), 신평(新坪), 오동(梧洞), 유읍(楡邑), 이포(泥浦), 조동(槽洞), 직포(直浦), 천읍(泉邑), 추전(楸田), 토동(土洞), 하송관(下松館)
    • 면소재지인 현리는 한반도(제주도, 울릉도 등 부속도서를 제외한 본토)의 정중앙으로 알려져 있다.
    • 평강군 평강읍 쪽으로 뻗은 땅거스러미인 공동리, 상송관리, 하송관리, 낭하리는 한탄강 유역이다.
    • 현리에는 1915년 설립된 이왕직의 난곡목장(蘭谷牧場)이 있었다.

  • 내금강면(內金剛面)
    • 관할 리 : 말휘(末輝), 금강원(金剛院), 동사동(東沙洞), 병이무지(竝伊武只), 봉현(蓬峴), 삼덕동(三德洞), 상북점(上北占), 상소곤(上小坤), 상신원(上新院), 상현(上縣), 상회이(上檜耳), 순갑(順甲), 신풍(新豊), 온정동(溫井洞), 유동(柳洞), 장연(長淵), 정양동(正陽洞), 추동(楸洞), 하북점(下北占), 하소곤(下小坤), 하신원(下新院), 하현(下縣), 하회이(下檜耳)
    • 일제 말기에 장양면(長楊面)에서 개칭되었다. 미수복지역을 포함한 강원도의 읍면 중 가장 면적이 넓다(501.42㎢).
    • 북한 행정구역상 금강군 소재지.
    • 단발령이 있다.

  • 사동면(泗東面)
    • 관할 리 : 하사동(下泗洞), 간점방(間占方), 광동(廣洞), 금곡(金谷), 능동(菱洞), 동사동(東寺洞), 마전동(麻田洞), 만도(晩到), 사기점(沙器店), 사동(沙洞), 산월(山月), 상구만(上九萬), 상사동(上泗洞), 상점방(上占方), 상지석(上支石), 신읍(新邑), 신흥(新興), 쌍계평(雙鷄坪), 양수암(兩水庵), 이교(泥橋), 하구만(下九萬), 하양(下陽), 하지석(下支石), 회동(淮洞)
    • 신흥리는 북한강의 발원지다.

  • 상북면(上北面)
    • 관할 리 : 목곡(木谷), 도납(道納), 두허동(斗虛洞), 모덕(慕德), 상신정(上新正), 상전탄(上田灘), 송포(松浦), 신명(新明), 오랑(五郞), 용연(龍淵), 중신정(中新正), 판기(板機), 하전탄(下田灘), 하진평(下津坪)
    • 부군면 통폐합 당시 상초북면(上初北面)이었으나 1938년에 개칭되었다.

  • 안풍면(安豊面)
    • 관할 리 : 신창(新昌), 가동(佳洞), 명우(鳴牛), 방목(方目), 백후(栢后), 본(本), 상세동(上細洞), 성동(城洞), 안미(安美), 용암(龍巖), 장치동(長峙洞), 중세동(中細洞), 추동(楸洞), 판맥(板陌), 판유(板踰), 풍미(豊美), 화산(花山), 화천(化川), 흥인동(興仁洞)

  • 하북면(下北面)
    • 관할 리 : 지탄(只呑), 금곡(金谷), 마산(麻山), 문내동(文內洞), 상평(上坪), 선암(仙巖), 은계(銀溪), 철령(鐵嶺), 초남(初南), 초일(初一), 태일(台日), 하정신(下正新)
    • 부군면 통폐합 당시 하초북면(下初北面)이었으나 1938년에 개칭되었다.
    • '철령리'란 이름대로, 한국사에서 유명한 고개인 철령이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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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곳의 지명이 옛날 중국 한 나라의 회양 땅과 마침 같으니,[2] 관동별곡에서 주인공이 이에 대해 말하며 선정을 베풀겠다고 한 장면에서 나온다.[3] 다만 8.15 광복 전 원래의 홍천군은 현재의 홍천군보다 면적이 작았음에 유의. 대신 내면을 홍천군에 넘기기 전의 인제군(약 2,000km²)이 회양군보다 더 넓었고 강원도 관내에서도 면적이 제일 컸다.[4] 1944년 호구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