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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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군
金化郡 / Kimhwa County

국가
북한
면적
770.5㎢[1]
광역시도
강원도
행정구역
1읍 1구 18리[2]
인구
56,541명
시간대
UTC+9




1. 개요
3. 대한민국과 북한 김화군
4. 행정구역
5.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5.1. 구 김화군 지역
5.2. 구 금성군 지역
6. 여담


1. 개요[편집]


6.25 전쟁 이전 강원도(現 강원특별자치도)와 북한 강원도의 행정구역이자 남한 강원도에도 1962년까지 존재했던 행정구역. 8.15 광복 당시에는 군(郡)으로 존재했으며 동쪽에는 화천군·양구군·회양군, 서쪽에는 철원군·평강군, 남쪽에는 화천군·경기도 포천군, 북쪽에는 회양군이 위치했다.

그러나 삼팔선이 그어지면서 전지역이 북한으로 들어갔고[3], 포천/동두천-의정부 축선으로 통로가 잘 발달한 평야지대라는 특성상 철원군, 평강군과 함께 북한 최대의 남침 전쟁 준비용 병력 및 물자집적 기지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이 세 군이 얻은 별명이 철의 삼각지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6.25 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였으며 결국 김화권은 남한, 금성권은 북한에 편입되어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쪽에서는 김화읍을 수복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히 수복한 읍면이 김화읍, 서면, 근남면의 3개면밖에 없었고 근북면,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의 5개면은 명목상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 존재하나 대부분이 군사분계선에 걸쳐 있는 남방한계선 이북 지역이다.[4] 1963년 1월 1일자로 서쪽에 위치한 철원군에 병합되어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는 김화군은 (사실상) 폐지되었다.[5] 철원군 병합 이후의 역사는 철원군 문서 참조.

한편 북한의 김화군은 몇몇 행정구역 조정을 거친 후 김화군과 창도군으로 되었다. 창도라는 지명은 김화군 창도면에서 따온 것이나 몇 번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래의 창도면과는 관계없는 지역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창도군 항목 참조.

원래 철원과 다른 지역이었다는 역사적 특징 때문에 같은 철원이라도 김화권 사람들은 철원·동송·갈말권 사람들과 정서가 확연히 다르며, 철원의 경기도 편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가끔씩 김화군 복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2011년 현재는 정부에서 인구가 적은 시·군을 통합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김화군 복원은 어려워 보인다. 다만 김화군이 단번에 복원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된다.

간혹 '금화'라고 읽는 경우가 보이는데, 현재 통용되는 명칭은 김화이다. 그러나 정전협정문 지도상에도 금화로 적혀있으며, 과거의 공식 명칭은 '금화'였다. 과거 1950년대까지는 금화라고 읽는 경우가 훨씬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6] 현재도 김화 지역 내에서도 '금화프라자'같이 금화라고 읽는 상호명이 있으며, 금화라고 읽는 사람들도 많다.


2.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화군/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대한민국과 북한 김화군[편집]





파일:강원도 옛 휘장(~1962년).webp 강원도폐지된 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김화군 휘장.svg

김화군(금화군)
金化郡
Gimhwa County


파일:김화군.jpg

군청 소재지
김화읍 읍내리
광역자치단체
강원도
하위 행정구역
1 7
면적
490.71㎢
인구
15,660명[7]
인구밀도
31.91명/㎢
군수

심호은[철원군수]
국회의원
[[민주당(1955년)|

민주당
]]
신기복[민의원]

파일:남북한 김화군 지도.png
  • 남한지역 면적: 490.71㎢

  • 남한지역 인구: 11,042명 (2022년 6월 기준)[8]

  • 북한지역 면적: 1068.05㎢

대한민국의 이북5도위원회 기준에 의하면 모두 김화군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 남한에는 김화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가 수복되어 철원군으로 편입된 면의 휴전선 이북 지역을 어느 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릴지 지도마다 다르다. 아예 철원군과 김화군의 휴전선 이북까지 전부 포괄해서 '철원군' 으로 표시한 지도도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남한의 김화 지역은 생활권이 경기 북부에 가깝고 북한의 김화권은 평강군과 교류가 많아져 북한에서는 2001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1914년 이전의 북측 김화군을 평강군에 합쳐버렸다.[9] 그랬다가 2008~2010년 사이에 원래 권역이 복구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된다면 경기도의 장단군처럼 남한의 철원군 중 구 김화군 영역과 북한의 김화군 영역을 합쳐 김화군이 복원될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1963년 제정된 김화군 폐지의 근거 법명이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이기 때문. 그러나 생활권이 변했기 때문에 북한의 행정구역을 광복 전으로 전부 롤백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지금 남북에서 각자 사용하는 행정구역이 그냥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에는 남한의 김화읍과 북한의 김화군 간 정통성이 심히 애매해질 공산이 크다.[10] 역사성에 따라 북측 김화군이 이름을 '금성군'으로 바꾸며 김화군이라는 이름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으며, 아니면 김화읍과 김화군 모두 현 상태로 두어 칠곡군대구 칠곡의 관계 같은 어정쩡한 상태[11]가 유지될 수도 있다.

다만 남한의 구 김화군 지역 주민들이 통일이 되면 김화군으로 돌아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어찌 될 지 모른다. 이 경우 남측 김화군을 복군시키고, 북측 김화군 지역에 김화군 금성출장소를 만들 수도 있다. 한편 이렇게 되면 김화군청 본청은 김화읍소재지인 학사리나 사실상의 중심가인 와수리에 입지할 가능성이 크다.

혹 김화군이 사라지고 금성군이 부활된다면, 구 김화군 시절의 지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철원군 서면, 근북면, 근남면이 이름과 달리 철원군의 동쪽 끝이 되므로 개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주시가 시역의 북쪽 끝에 있는 남면(옛 적성군의 잔재다.)을 원래 이름으로 그대로 둔 것처럼 그냥 놔둔 사례도 많다.


4. 행정구역[편집]


김화군은 원래 1963년 이후 1읍, 1구, 18리를 관할하고 있다가 2001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5개 리[12]평강군에 넘김으로써 총 1읍, 1구, 13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2008~2010년 사이 다시 5개 리를 평강군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2020년 현재 북한 김화군은 김정은 시찰 보도에서 확인된 지도에 따르면 위의 김화군을 다룬 지도와 같은 경계를 관할한다. #
  • 읍: 김화읍(구 금성면)
  • 로동자구: 학방로동자구
  • 리: 창도리, 신창리, 원북리, 당현리, 법수리, 신풍리, 탑거리, 성산리, 건천리, 초서리, 구봉리, 수태리, 근동리, 원남리, 원동리, 룡현리, 상판리, 어호리


5.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편집]


파일:강원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 펼치기 · 접기 ]

파일:원주시 CI.svg
원주시

파일:춘천시 CI.svg
[[강원특별자치도청|

도청
]] 춘천시
파일:태백시 CI.svg
태백시




미수복지역*
파일:미수복 강원도 김화군 휘장.svg
김화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이천군 휘장.svg
이천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통천군 휘장.svg
통천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평강군 휘장.svg
평강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회양군 휘장.svg
회양군

*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강원특별자치도미수복지역(군)


파일:미수복 강원도 김화군 휘장.svg

김화군
金化郡
Gimhwa County


파일:김화군.jpg

군청 소재지
김화읍 읍내리
광역자치단체
강원도
하위 행정구역
1 11 96
면적
1,558.7㎢
인구
108,133명[13]
인구밀도
69.37명/㎢
명예읍·면장

9석[14]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김화군 소개
파일:미수복 강원도 김화군기.svg
군기

범례
전 지역 수복(★)
일부 지역 수복(☆)

김화권은 한탄강(임진강), 금성권은 북한강 유역으로 수계가 다르다. 다만 한탄강의 지류인 화강은 청양리에서 90도 우회전, 도창리-정연리에서 90도 좌회전을 해서 동송에서 다시 90도 좌회전을 통해 남쪽으로 흘러가는 반면, 한탄강과 북한강(금성천)의 분수령의 높이는 320미터 정도인데다 43번 국도의 신철원-김화 구간처럼 산 사이의 좁은 계곡 형태가 아닌 구릉지 형태이다.[15]

5.1. 구 김화군 지역[편집]


  • 김화읍(金化邑)☆
    • 관할 리: 학사(鶴沙), 감봉(甘鳳), 도창(道昌), 생창(生昌), 암정(巖井), 용양(龍楊), 운장(雲長), 읍내(邑內), 청양(淸陽)
    • 원래 읍사무소와 군청이 읍내리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시가지가 파괴돼 사라지는 바람에 전후 읍사무소를 학사리로 이전했다.[16] 감봉리·암정리·용양리·운장리·읍내리는 민통선 내에 있는 관계로 1973년 7월 1일 서면 도창리·청양리를 편입[편입]했다. 1941년 10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일부만 수복된 근동면·근북면의 행정업무를 대행한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수복되었고 감봉리 일부가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이다.

  • 근남면(近南面)★
    • 관할 리: 육단(六丹), 마현(馬峴), 사곡(沙谷), 양지(陽地), 잠곡(蠶谷), 풍암(豊巖)
    • 원래 면사무소는 사곡리에 있었으나 전후 육단리로 이전했다. 일부만 수복된 원남면·원동면·임남면의 행정업무를 대행한다.

  • 근동면(近東面)☆
    • 관할 리: 교전(橋田), 광삼(光三), 방통(芳通), 수태(水泰), 아침(牙沈), 하소(下所)
    • 광삼리와 방통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광삼리에 승리전망대가 있다. 옛 금강산선 광삼역과 하소역 사이로 현재 휴전선이 지난다.

  • 근북면(近北面)☆
    • 관할 리: 두촌(斗村), 건천(乾川), 금곡(金谷), 백덕(柏德), 산현(山峴), 성암(城巖), 유곡(楡谷), 율목(栗木)
    • 금곡리·백덕리·유곡리·율목리가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이 중 유곡리에 주민이 거주하지만 민통선 내에 있는지라 통행이 자유롭지 않다. 남북분단 이전에는 김화와 평강을 잇는 길목이었다.

  • 서면(西面)★
    • 관할 리: 자등(自等), 와수(瓦水)
    • 과거 면소재지는 현재 김화읍인 청양리였다. 현재 면소재지인 자등리는 통칭 '신술리' 혹은 '신수리'라고 불린다.[17] 와수리는 자등리보다 더 큰 마을이며 면사무소 출장소가 있으며, 수복된 김화군 지역의 실질적 중심지로 여러 상점과 도서관, 고등학교 등이 있다. 1973년 7월 1일 도창리·청양리가 김화읍으로 편입[*편입 ]되어 면적이 줄었다.


5.2. 구 금성군 지역[편집]


  • 금성면(金城面)
    • 관할 리: 방충(芳忠), 경파(慶坡), 매회(梅檜), 별양(別陽), 상(上), 어천(漁川), 초서(初西), 탑거(塔距), 후천(後天)
    • 1917년에 군내면(郡內面)에서 개칭되었다. 현재 북한의 김화읍이다.

  • 원남면(遠南面)☆
    • 관할 리: 개야(開野), 경상(慶祥), 구룡(九龍), 남둔(南屯), 노동(蘆洞), 백양(白楊), 월봉(月峰), 주파(注波), 죽대(竹垈), 진현(榛峴), 풍동(楓洞)
    • 노동리·주파리·죽대리·진현리·남둔리가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 원동면(遠東面)☆
    • 관할 리: 장연(長淵), 등대(登大), 방평(芳坪), 세현(細峴), 송실(松室), 용연(龍淵), 율사(栗沙)
    • 등대리와 세현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 원북면(遠北面)
    • 관할 리: 추의(鄒儀), 감천(甘泉), 고대(高垈), 고직(古直), 당현(堂峴), 법수원(法首院), 탄감(炭甘)

  • 임남면(任南面)☆
    • 관할 리: 사천(泗川), 과호(科湖), 노남(魯南), 달전(達田), 두목(杜木), 면천(綿川), 봉잔(烽棧), 상판(上板), 수동(水洞), 어운(漁雲), 좌패(佐佩)
    • 유일하게 수동리의 남쪽 절반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금강산댐(북한명 임남댐)이 바로 이 곳(달전리)에 있으며, 이에 면소재지를 비롯한 주요지역이 수몰되었다.

  • 창도면(昌道面)
    • 관할 리: 창도(昌道), 기성(岐城), 도성(桃城), 득사(得寺), 방성(芳城), 성현(城峴), 유창(楡昌), 태백(太白), 학방(鶴芳), 회현(灰峴)
    • 1914년에 기성면(岐城面)과 오산면(梧山面)이 합병되어 기오면(岐梧面)이 되었고, 1939년에 개칭되었다. 면소재지를 비롯해서 주요지역이 금강산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이름대로 북한 창도군의 첫 소재지였다.

  • 통구면(通口面)
    • 관할 리: 현(縣), 당평(堂平), 도파(桃坡), 보막(寶幕), 북둔(北屯), 삼대(三臺), 장안(長安), 통현(通縣), 화사(化泗), 화평(花坪)
    • 면소재지를 비롯해서 면의 대부분이 금강산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북한 창도군의 두번째 소재지였다. 회양군 내금강면과의 경계에 단발령이 있다.


6. 여담[편집]


김정은이 태풍 마이삭 피해복구현장을 직접적으로 현지지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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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복 당시 1,558.7㎢[2] 광복 당시 1읍 11면 96리[3] 이때 삼팔선 이북으로 넘어간 춘천군 사내면(현 화천군 사내면)과 가평군 북면 일부를 편입해 관할했다.[4] 단, 근북면 유곡리에는 민간인이 거주한다. 김화읍은 영역 자체는 온전히 수복하긴 했으나, 군청이 있던 옛 읍내리 시가지는 전쟁의 참화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5] 같은 케이스로 경기도 장단군이 있다. 단, 사실상 폐지(행정기능 정지)일 뿐 명목상으로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다. 김화군과 장단군 모두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명목상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명예군수 및 미수복 면들에 대한 명예면장이 임명되고 있다.[6] 공산치하였을 때 세워진 김화 도로원표에는 금화군이라고 써 있다. 현재는 북한에서도 김화라고 읽는다. 북한에서 발행된 지도 가운데 남한의 김화읍을 금화읍으로 표기한 지도가 존재하나 북한의 김화군은 그대로 김화군으로 표기하였다.[7] 1960년 인구총조사[철원군수] [민의원] [8]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김화권을 제외한 철원군보다 면적은 크나 인구는 적다.[9] 조선시대에 김화군 초동면 방통리였던 김화군 근동면 방통리만이 북한의 김화군에 남아있어 구봉리로 통합되었기는 한데, 애초에 근동면 방통리 대부분이 휴전선 이남지역이 되어 대한민국 철원군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좁쌀만큼일 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좁쌀만한 오리지널 시흥군 땅도 없는 시흥시보단 낫지 [10] 비슷하게 분단된 행정구역 중 철원군고성군의 경우 전자는 남한이, 후자는 북한이 명확하게 옛 중심지를 가져갔기 때문에 반대쪽이 이름을 바꾸면 되는데, 이쪽은 옛 중심지를 남한이 가져가긴 했지만 정작 남한에서는 김화군을 없애버렸고, '김화군'이란 이름은 북한 김화군이 계속 이어왔기 때문.[11] 현 대구 칠곡지구 지역이 원래는 옛 칠곡도호부의 중심지였으나 칠곡군의 중심지가 왜관읍으로 옮겨갔고, 이후 칠곡읍이 대구로 편입되었으나 '칠곡군'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때문에 역사적/관습적 지명으로서의 '칠곡'과 행정구역명으로서의 '칠곡'이 불일치하게 되었다. 다만 칠곡군에는 칠곡읍이 없는데 북한 김화군에는 김화읍이라는 지명이 존재하기에, 현상유지를 하더라도 북측 김화읍은 이름을 바꿔야 할 수 있다.[12] 건천, 성산, 탑거, 수태, 근동리[13] 1944년 호구조사[14] 읍면 소재지가 수복된 김화읍, 서면, 근남면 제외[15] 두 강줄기는 경기도 파주에 이르러서야 합쳐진다. 한탄강은 김화에서부터 철원, 연천 등을 통해 파주까지 비교적 곧게 뻗는 반면에 북한강은 춘천, 가평을 거쳐 남한강과 합류되어 한강이 된 이후에 서울, 고양을 거치는 엄청나게 돌아가는 길을 통해서야 파주에 당도한다.[16] 군청은 복구되지 않고 철원군청에서 업무를 대행했고, 군수도 철원군수가 겸임했다. 물론 이 시기 군은 지금과 달리 행정기구일 뿐 지자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군수가 다른 군의 군수를 겸임해도 문제가 거의 없었다. 최종적으로 1963년에 철원군에 완전히 편입되었다.[편입] 사실 편입된 지역들이 산줄기만 이어졌을 뿐 두 지역을 이동하려면 김화읍 학사리를 거쳐가야 한다.[17] 자등리는 현재 자등6리 마을의 옛 명칭으로, 이 마을은 현재는 '병참부'로 불린다. 옆에 있는 고개의 이름이 자등현이며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