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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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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에 있는
어진 봉안소
[1], 즉 진전(眞殿)이다.
자정전의 서쪽에 있다.
정조는 《경희궁지》에서 태령전을 “자정전 서쪽에 있으며 임금님의
어진을 봉안하는 곳이다.”라고 소개했다.
'태령(泰寧)' 뜻은 '넉넉하고(泰) 편안하다(寧)'이다. 현재의
현판은 2001년
복원할 때
석봉 한호의
글씨를 모아 만들었다.
[2]'태
녕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
寧'의 원래 발음이 '녕'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태
녕전'이 맞다. 하지만 예전부터 '寧'의 앞 글자가 받침이 없는 경우
활음조 현상으로 인해 '령'으로 읽고 썼기 때문에
[3] 대표적인 예로, 인명으로는 무령왕(武寧王), 효령대군(孝寧大君), 이어령(李御寧) 등을, 이외에는 보령군(保寧郡), 고령가야(古寧伽倻)를 들 수 있다. 자세한 것은 '寧' 항목 참조.
이를 반영한 태
령전으로 부르는 게 적절하다. 이 문서명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표기인 경희궁 태령전이지만,
태녕전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원래 이 일대에는 상례 공간이었던 읍화당(挹和堂)이란 건물이 있었다. 읍화당은 1731년(영조 7년)까지 기록에서 존재가 확인되나
# 그 이후 역사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태령전이 기록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1744년(영조 20년) 8월 20일 자 《영조실록》 기사이다. 저 때 중수했다는 내용인데, 이로 미루었을 때 읍화당을 고쳐짓고 태령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크다.
영조는 평생에 걸쳐 총 13점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 중 7점을 태령전에 봉안했다.
#1776년(
영조 52년) 영조가
승하하자
정조는 태령전과 그 일대를 영조의
장례공간으로 활용했다. 우선 혼전을 이곳에 두었고
#[4] 이 때 태령전에 보관 중이던 어진을 임시로 태령전 서쪽에 있는 위선당이란 곳에 옮겨 모셨다. 이후 어진은 경현당을 거쳐#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갔다.#
태령전 근처에 재실 도수연을 세웠다.
#, 또한 정조 자신이 머물 여막을 태령전 남쪽 행각에 두었고
# 인산 날 여기서 망곡례를 행했다.
#1786년(
정조 10년)에는 사망한
문효세자의 혼궁
[5] 왕이 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혼'전(殿)'으로 부르지 못하고 혼궁이라 했다.
을 이 곳에 두고 일종의
위령제인 재우제(再虞祭)
[6] 시신을 무덤에 안장한 후 신주를 만들어 혼령을 안정시키는 제사를 우제(虞祭)라고 한다. 제우제는 하관(下棺) 후 두 번째로 지내는 우제이다.
를 지냈다.
# 1836년(
헌종 2년)에는
종묘의 영녕전을 증축공사하면서, 잠시 제1실 ~ 제8실에 있던
신주의 일부를 모시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고종 시기
경복궁을 중건할 때
경희궁의
건물들을 헐어다 자재로 쓰면서 사라졌다. 근거는 다음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서궐(경희궁) 내에는 숭정전, 회상전, 정심합(正心閤), 사현합(思賢閤), 흥정당만 남기고 그 나머지는 모두 헐었다. 목재를 가져오니 다수가 썩었다. 이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서 (경복궁의) 나인간(內人間)과 각사의 건조에 사용했다.
《경복궁 중건일기》
일제강점기 이후 태령전 자리에 경성중학교
[7] 현재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중학교와는 전혀 다르다. 그 곳은 1967년 개교했으며 한자가 '景'城으로 다르다.
가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서울고등학교로 바뀌었다. 1980년대에 서울고등학교가 지금의
서초구 효령로로 이사간 후
서울특별시와
문화재청에서 2001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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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락에 자리잡은 지형의 특성 상,
기단을 두 단으로 쌓았다. 아랫 단은 장대석을 세 벌 쌓았고 윗 단은 두 벌을 쌓았다.
계단은 정면에 윗 단 3벌, 아랫 단 3벌을 합쳐 총 6벌이 놓여있고, 측면에는 윗 단 1벌, 아랫 단 1벌을 합쳐 총 2벌이 놓여있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이다. 공포는 이익공 양식으로 되어있으며 공포 사이마다 화반을 두고 틈새를 벽으로 막았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상바름을 하고 그 위에 취두와 용두, 잡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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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이 전부 띠살 창호로 된
문으로 되어 있다. 문 위엔 교창을 두었다. 뒷면의 경우만 다른데 양 끝 가장자리 칸은 문을 달았으나 가운데 3칸에는 중인방을 두고 그 위, 아래를
벽으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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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5칸, 측면 2칸의 총 10칸으로 실내는 전부 뚫려 한 공간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영조의 진전이었던 점을 반영하여 2001년
복원한 후 이 곳에 영조
어진의 모사본
[8]을 전시 중이다. 훼손을 막기 위해 사방을
유리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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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령전 뒤에 큰
바위가 있다.
정조가 지은 《경희궁지》에는 “태령전 뒤에는 암천(巖泉,
바위 샘)의 좋은 경치가 있다.” 고 적혀있는데 바로 그 바위이다.
경희궁이 창건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름은
서암(瑞巖)이다. 원래 이름은
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뜻의 왕암(王巖)이었다.
광해군이
경희궁을 짓게 한 새문동
[9] 경희궁 일대가 돈의문(서대문) 바로 안쪽에 위치한다. 돈의문의 별칭이 새문이었기에 그 부근을 새문동이라 불렀다. 자세한 것은 돈의문 항목 참조.
왕기설의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10] 그래서 새 궁궐 짓는다며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정원군(광해군의 이복 동생)의 집을 빼앗았고, 정원군은 화병으로 사망했다. 나중에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로 즉위하면서 뺏긴 집을 도로 다시 찾은 모양새가 되었다.
지금 이름인 서암은
숙종이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것이다. 자세한 것은
서암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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