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금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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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희궁의 금천교이다.
금천교는 이름대로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돌 다리이다. 금천은 풍수지리적인 이유[1] 와 외부와의 경계[2] 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그래서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터인 구세군 회관 건물과 중문 건명문 터인 서울역사박물관 앞 마당 사이에 있다.
2. 역사[편집]
1618년(광해군 10년)에 지어졌으며 경희궁에 몇 번의 화재가 일어났을 때도 돌로 지었기에 큰 피해 없이 처음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1860년대 고종 시기 경복궁을 재건할 때 대부분의 경희궁 건물들의 90%를 헐어다 경복궁 중건의 자재로 쓸 때에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경희궁 터에 경성중학교[3] 가 들어서면서 파묻혔다가 2001년 발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3. 금천[편집]
금천교 밑을 흐르는 경희궁의 금천은 경희궁 안에서 발원해 흐르는 물이다. 그래서 하천 이름이 따로 없고 통칭 ‘경희궁내수(慶熙宮內水)’로 부른다. 이는 외부 하천을 끌어다 금천으로 이용하는 다른 궁궐과 다른 점이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다 경희궁을 빠져나오고 새문안로를 가로지르자마자 동쪽 정방향으로 틀어 지금의 광화문 사거리 앞에서 청계천과 합류했다.[4]
현재는 금천교 양 옆에다 아주 좁은 구간을 재현한 걸 빼고는 전부 복개되었다.
4. 구조[편집]
- 복원할 때 옛 돌과 새 돌을 섞어서 사용했다. 그래서 돌 색깔이 어떤 것은 말끔하고 어떤 것은 지저분하다. 요즘 복원 추세는 과거에 사용된 자재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숭례문과 경복궁 광화문의 석축처럼. 비록 겉으로는 지저분하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이 조금은 줄어드는 셈.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 새 돌도 때가 타 옛 돌과 어우러질 것이다.
- 전반적으로 창덕궁 금천교와 매우 비슷하다. 다리 위엔 귀틀석과 청판석을 교대로 배열하면서 3개의 돌길을 놓았다. 왕이 다니는 어도(御道)는 가운데에 있는데 높이가 가장자리 신하들이 다니는 길보다 조금 높아 서열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어도의 넓이는, 물론 양 옆 신하들이 다니는 길보다는 넓으나 창덕궁 금천교와 다르게 큰 차이는 없고 엇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