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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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진작가인 유진 스미스의 1951년 작품
<후안 라라의 장례식 전야>

1. 개요
2. 기준과 판단
3. 죽는 시기
3.1. 연령대
3.2. 시간대
3.3. 죽음 예측(임종 전 증상)
4. 공포
4.1. 원인
4.2. 종교로의 발달
4.3. 방어 기제
4.4. 예외
5. 불로불사는 가능할까?
5.1. 다양한 노력
5.2. 의식 이식
5.3. 실제로 불로불사하는 생물
5.4. 우주적 한계
11. 언어별 명칭
12. 여담
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죽음 또는 사망()은 생명체생명이 끊기는 것을 말한다. 즉,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로 말미암아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반대말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출생.


2. 기준과 판단[편집]


상술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라는 정의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어느 시점부터 기능이 되돌릴 수 없는 저 편으로 흘러간 것이냐는 점. 과거에는 이 판정이 엄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묻어도 사실은 죽은 게 아닌 경우도 있었다.[1]

과거에는 심장정지하면 당연히 살릴 방법이 없었으므로 심장사(心臟死)가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기준이었다. 따라서 목이나 가슴의 맥을 짚어 본 뒤 박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심폐소생술제세동기가 개발된 후 심장이 정지해도 빠른 처치로 소생이 가능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죽음의 정의는 심장의 정지에서 더 근본적인 의 기능 정지로 옮겨 갔다. 뇌의 다른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부분은 멀쩡한 식물인간 상태와,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모두 정지한 뇌사(腦死)가 이에 속한다. 특히 전자인 식물인간의 경우 일부에서 환자가 의식을 갖고 있으며 몇몇은 깨어나기도 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196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는 뇌파호흡계까지 정지한, 완전한 뇌사를 죽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2]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안락사시키거나, 뇌사자를 장기기증에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뇌사와 심장사를 복합적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든 세포의 기능 정지까지 주장되었다. 참수 등 '즉사'로 판정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그 즉시 죽음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참는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게 아닌 것처럼, 뇌를 향한 혈류가 끊어져 영양소의 공급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포 자체가 ATP 등의 형태로 저장해 둔 에너지원이 존재한다. 참수를 해도 심장은 바로 멈추지 않으며, 뇌도 활동한다[3]. 체내의 모든 세포의 생명 활동이 멈추고, 자체 효소와 부패균의 활동으로 세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여러 시간이 걸린다. 죽은 지 충분한 시간이 지나 모든 세포가 죽은 사람, 죽어서 화장을 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살릴 방도가 전혀 없으며, 퍼센티지로 치면 인체의 100%가 기능 정지 및 복구 불가 상태라는 의미이므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사망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나온 묘사처럼, 생명체의 주인을 유전자로 두고 인간의 육신을 '유전자를 후대에 전파하기 위한 운반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자식이 있어 자신의 유전자가 복제, 전달된다면 죽지 않은 것이 된다. 반대로 내 후손의 대가 끊기면 죽는 것이다.

미래에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죽은 세포 하나하나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위 정의는 재검토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기술적 특이점 지지자나 안티에이징을 연구하는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머지 않은 미래에 죽음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죽는 시기[편집]



3.1. 연령대[편집]


출생 직후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다. 특히 1년 이내 영아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신생아 사망(생후 28일 미만 사망)이다. 출생 직후에는 면역 체계가 거의 발달하지 않아 환경의 영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산아, 저체중아, 기형아 등은 대부분 영아 시절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대에는 의학의 발달로 이조차도 줄어들고 있다. 다만 중증의 기형은 여전히 사망률이 높은 편.

그 후 1세까지 사망률이 급격하게 내려가고, 이후에도 점점 낮아지다가 아동기 후반에 가장 낮은 사망률을 보인다. 대한민국의 경우 통계청의 생명표를 참고하면 1세의 사망률은 0세의 약 10분의 1 수준이며, 보통 10세 전후에 사망률이 가장 낮다.

청소년기 이후부터는 나이가 많을수록 사망률이 높다. 특히 60대 이상이 되면 사망률이 급증한다. 남자는 50세 무렵, 여자는 60세 무렵에 1년 이내 사망률이 영아 사망률을 추월한다. 성인이 되면서 성인병의 발병이 늘어나며 노년층에 이르면 면역력이 약화되면서 ,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뇌졸중, 심근경색, 간경화 등으로 사망률이 높아진다. 질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노화가 진행되면 언젠가는 노환으로 죽는다.

3.2. 시간대[편집]


대부분 이나 새벽(밤 10시~오전 8시 사이)에 죽는다. 특히 사망률이 더 높은 시간은 새벽 2시~오전 7시이다. 그래서 오늘 밤이 고비입니다라는 표현이 중환자실에서도, 매체의 사망 플래그로도 자주 쓰인다. 이 시간대에 사망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야간에 신체 리듬이 떨어져 증상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밤새 버티다가 탈진하여 이른 아침에 죽는 경우도 많다.

계절과 사망률은 관련이 있다. 폐렴바이러스성 질병이 유행하는 겨울에 가장 높으며 바이러스 활동이 둔화되는 여름에 가장 낮다.

날씨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맑은 날보다는 흐리거나 가 오는 날에 사망률이 높다. 날씨가 흐릴 때는 기압이 낮아지므로 컨디션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3.3. 죽음 예측(임종 전 증상)[편집]


갑작스러운 감염병이나 사고가 아닌 지병이나 노환으로 사망하는 노인들은 사망하기 몇 년~20여년 전부터 서서히 기력이 떨어져 거동이 불편해진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와상생활을 할 정도로 쇠약해진 경우에는 대부분 10년 이내에 사망한다.[4]

임종 1~3개월 전부터는 급격한 식욕 저하 및 식사량 감소[5], 입마름, 수면시간 증가, 저체온증, 짙은 색의 소변, 고혈압, 환각, 지남력 저하 등이 나타난다. 환자 본인도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짐작하고 두려움과 우울감을 느끼므로 위로해 주어야 한다.

임종 직전에는 뚜렷하고 복합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임종 1~2주 전 정도부터는 급격한 기력 저하[6], 소변량 감소, 섬망(의식이 흐릿해지는 증상), 반응 속도 저하, 호흡곤란, 체인스톡 호흡(숨을 쉬지 않다가 몰아쉬는 호흡), 거친 숨소리, 입 안의 끈적한 분비물 등이 나타나며, 임종이 24~72시간 내로 임박하면 심한 호흡곤란, 느린 맥박, 식은땀, 청색증, 저혈압, 급격한 피부 온도 저하, 다량의 변실금 등의 증상이 추가된다.

위와 같은 증상으로 사망 시간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임종 전 증상은 개인차가 있으므로 위의 증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심한 증상을 보이지 않고 기력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쇠약해진 상태로 장기간 생존하는 경우도 있다.


4. 공포[편집]


죽음은 일반적으로 매우 공포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7]

죽음에 대한 인식(필연적)은 보통 7세에서 11세 사이에 형성된다.[8] 이것을 알아낸 방법도 약간 특이한데,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인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킨 다음에 같은 나라 아이와 다른 나라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둘 중 어느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죽음을 이해하는 성인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 자신과 동류인 사람들, 즉 자기 공동체의 일원과 가까워지려고 하는데[9] 이를 이용한 것이다. 죽음을 어렴풋이 인식하는 아이들은 교묘한 속임수나 힘, 또는 전지전능한 누군가(부모 등)를 통해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10] 그러한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삶을 어둡게 보는 염세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이것이 심화된 것을 죽음 공포증이라 한다. 허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이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방증이다. 반대로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철학, 예술, 종교 등 인류의 심층적인 정신 활동 중에서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발달한 것들이 많다.

죽음의 공포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철학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르게 생각하자면 죽는다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시작이 없으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태어나지 않으면 죽음도 없다.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두려워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삶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4.1. 원인[편집]


죽는 것이 공포스러운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이유들을 꼽아보자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에 대한 공포, 죽음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11],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평생동안 쌓아왔던 지식과 재산, 혹은 익숙하고 정겨운 세상과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나쁜 이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죽음이 삶의 좋은 점을 박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2] 반면 에피쿠로스는 우리는 (죽는 순간 죽음을 경험할 주체가 사라져서)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화생물학적으로는 오래전 고대의 생명체 중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체와 죽음을 두려워하는 개체가 함께 존재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본능을 가진 개체만이 자연선택되어 살아남아 후세에 유전자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생물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설령 감정을 느낄 만한 중추신경계를 갖지 않은 생물이라도 본능적으로 죽음을 '회피' 하려든다.


4.2. 종교로의 발달[편집]


죽음에 대한 공포는 불멸, 불로장생에 대한 염원과 승화로 이어지며 종교, 역사, 예술, 권력 등등 여러 분야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오시리스아누비스[13]의 심판을 받아 심장[14]을 깃털과 함께 저울에 재는데, 이때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죄를 많이 지은 걸로 판정되어 [15]암무트에게 심장을 먹혀 영원히 구천을 떠돌고, 착한 사람은 오시리스의 왕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고 믿었다.[16]

인도인들은 모든 생명체들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은 불교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불교에서는 현세에서 지은 업보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내세에서 어떤 존재로 윤회할지가 결정되며, 모든 업에서 해방되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러 부처가 된다고 믿게 되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다가 제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고 믿었는데, 그곳에서 태양신 미트라가 죽은 자의 삶의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하여 저울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으며, 심판을 받은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나가게 되는데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계곡 너머의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 같은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계곡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4.3. 방어 기제[편집]


죽음의 공포는 너무나 커서 사람들은 평소에 이 공포를 억누르며 사는데, 억누르는 방법은 공포의 강도에 따라 중심 방어와 말단 방어로 나눌 수 있다.[17]

중심 방어는 죽음의 공포가 강할 때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없애려는 것으로 단순히 억압하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자신에겐 먼 미래의 일이라는 둥 합리화로 애써 무시하려 한다.

반면 말단 방어는 죽음의 공포가 그나마 약할 때 자신의 불멸성을 추구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려 하는데 자신의 자존감을 올리거나, 주변 공동체에 의지하거나, 자신이 가진 세계관(과 관련된 사람들)을 찬양하고 다른 세계관(과 관련된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똑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껴도 중심 방어를 사용할 때와 말단 방어를 사용할 때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말단 방어를 사용한 사람은 자신의 불멸, 장수를 위해 술을 줄이는 반면 중심 방어를 사용한 사람은 죽음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술을 더 마신다.[18]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TMT)이라는 심리학 이론에서 다루는 현상은 주로 말단 방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 등의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여러 가지 과정을 겪는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미성숙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이 잘못되면 위에서 말했듯 타나토포비아네크로포비아 등의 정신증에 걸리게 된다. 그러니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하고, 이러한 생각을 한다면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퀴블러로스는 5단계로 나누어,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순으로 설명한다.

4.4. 예외[편집]


이따금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목숨보다도 명예나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오히려 죽음을 환영하며[19] 하다못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창작물에서도 죽음을 피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례가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칼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는 이야기가 있고,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한 손양원 목사조차도 두 아들이 순교한 일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5. 불로불사는 가능할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불로불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안티에이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근대 시기 눈부신 의료 기술의 발달로 영아 사망률, 질병에 의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인류는 노화로 인한 자연 수명까지 살 수 있을 확률이 매우 늘어났다.[20] 그러나 아직까지도 늙어죽지 않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5.1. 다양한 노력[편집]


우선은 가 죽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요즈음에는 다른 기관들은 멀쩡하지만 뇌가 노화하면서 기억상실증이나 치매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정말 생명 활동만이라면 식물인간 상태로 매우 오랫동안 살 수 있지만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뇌에 실리콘 따위로 만든 생체컴퓨터를 연결해서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 정도가 구상되고 있다. 21세기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기술이 발명되고 실용화될 때까지 살아남을지 매우 불확실하다.

신체를 보존하여 죽음이 극복된 미래에 깨어나기 위한 냉동인간 기술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인간을 산 채로 냉동할 방법이 없어 살아있더라도 냉동시키면 언 시체가 되며 그들을 소생시킬 방법도 없다. 보관 절차에서부터 오염과 괴사 등의 문제가 드러나는 등 난국이 계속되고 있다. 이 방안보다 차라리 신체 노화와 질병의 극복에 노력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다.

늙어 죽는 것의 궁극적 원인인 신체의 노화를 늦추거나,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중지시키거나, 아예 역행시켜 회춘한다는 구상은 의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터무니없이 많긴 해도 상당히 진전은 있는 모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헬렌 블라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텔로미어를 연장하는 효소를 개발했다는 소식이나, 바이오비바 사의 CEO가 직접 자신들이 개발한 효소로 자신의 백혈구의 수명을 대폭 연장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1]. 물론 효소 자체가 개발이 되었어도 이를 전신의 모든 세포에 적용할 까다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시작은 확실히 한 셈이니 가능성이 있다. 2021년 최근, 억만장자 제프 베이조스와 유리 밀너가 Altos Labs를 설립하여 전폭적 지원을 보장하며 유망한 노화 연구가들을 대거 끌어들이는 중이다.


5.2. 의식 이식[편집]


인간의 몸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막기 어렵거나, 막지 못한다면 그 의식을 컴퓨터로 이식하여 영생을 누린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한 예로 러시아의 재벌 드미트리 이츠보프가 밝힌 '아바타 프로젝트'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 2015년~2020년, 사람의 뇌파로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22]
  • 2020년~2025년, 사람의 뇌를 이식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든다.[23]
  • 2030년~2035년, 인공두뇌를 가진 아바타를 만들고 여기에 인간의 개성과 의식을 이식한다.
  • 2040년~2045년, 홀로그램 아바타, 즉 불멸의 존재를 완성한다.

이는 논란이 많은데, 이식된 의식을 가진 컴퓨터가 기존의 인간과 동일인인지 아니면 그 인격과 기억이 복제된 완전히 새로운 인간인지 애매하기 때문. 만약 의식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잘라넣기식으로 전해진다면, 원본 인간은 말 그대로 사망하고, 그 사람의 의식과 기억을 가진 컴퓨터는 스스로(원본 인간)가 죽지 않았다고 믿으며 이미 죽은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 의식을 복제하되 원본이 그대로 존재하는 경우, 의식을 두 컴퓨터에 동시에 복제하는 경우 등을 사고 실험 해 보면 이는 그렇게 단순히 받아들일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일이 실현 가능한 기술이 된 후, 오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치고 나서 인간의 생명과 개인성에 대한 정의가 재정립되고 나서야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벼운 논리퀴즈정도로 5급 공개경쟁채용 1차 시험인 PSAT에서 이 문제를 다룬적이있다.


5.3. 실제로 불로불사하는 생물[편집]


오늘날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종은 시생누대에 등장한 시아노박테리아이며, 단일 개체로 가장 오래 생존한 생명체는 연구실에서 부활시킨 페름기 지층의 박테리아로,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에서 2억 5,000만 년 동안 살았다(관련 사이트). 현재까지도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개체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분지에서 4,800년간 살고 있는 나무로, '므두셀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라는 히드라충강에 속하는 생명체는 이론상으로는 번식이 끝나면 다시 미성숙 상태인 폴립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해 영원히 산다.

위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언급한 대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의식이라는 것이 사라진 상태로 번식하는 것도 불로불사로 볼 수도 있겠다. 가령 미토콘드리아는 생명 활동이 가능함에도 세포에 기생해서 세포 분열을 얻어타며 번식을 이룬다. 죽은 채로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면 진화가 그런 식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식도 '진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없는 것이 더 낫다면 사라질 수 있다.


5.4. 우주적 한계[편집]


현 기술력으로는 우주의 끝을 볼 만큼 오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우주가 유한하다고는 해도 최소 몇억 년 단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우주 자체의 수명이 끝나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우주를 연장시키는 것도 상상할 수 있을 테지만 본 문서의 범위를 뛰어넘으므로 생략한다.[24] 다만 분야의 따른 기술력 발전이 조금은 차이가 있긴 해도 인간의 생명(혹은 의식)을 몇억 년 가량 연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갖추어졌다면 우주나 시공간을 다루는 기술도 상당히 발달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6. 종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죽음/종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관련 통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죽음/통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자살/통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죽음을 일컫는 표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죽음/표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죽음과 관련된 명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명언/죽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사 이래 존재한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영원한 과업이자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살던 이들이 남긴 말에서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고찰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10. 창작물에서의 묘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죽음/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언어별 명칭[편집]



4한자문화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숫자인데, 그 이유는 죽을 사()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4자 금기 참고.

이탈리아에서는 숫자 17을 금기하는 경우가 있다. 17을 로마 숫자로 쓰면 XVII가 되는데, 애너그램(배열 변경)을 하면 VIXI가 된다. VIXI는 라틴어로 VIVO의 과거형이다. VIVO는 '나는 살아 있다'라는 의미이며, VIXI는 나는 살았었다, 즉, '나는 죽었다' 가 되기 때문에 죽음의 숫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 문화권의 4자 금기에 비해 정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17은 4나 서구권의 13과 달리 죽음과 관련된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4+13=17이다.

켈트인들은 13을 죽음을 상징하는 숫자로 봤다.

영어에서 '자유의 여신'을 그냥 "Liberty"라고 부르듯 "Death"라는 단어에도 저승사자 혹은 사신이라는 의미가 있다.[25]


12. 여담[편집]


의식이 사라진다는 점에선 기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영면(永眠)이라고 하는 등 에 비유하기도 한다. 다만 의식만 상실하는 기절과 다른 점은 의식은 물론 생명활동 일체가 영구적으로 멈추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

꽃말 중 죽음을 상징하는 이 있다. 백합, 하얀 안개꽃, 연령초,[26] 주목나무, 흑장미[27] 등이 그렇다. 이런 꽃을 장례식 때 사용하기도 하니 선물, 특히 병문안 갈 때의 선물로는 좋지 않다.물론 절대 사망할 일 없는 문제로 입원했을 때 고의적으로 약올리려고 가져가기도 한다. 충수절제술이 나온 뒤로는 병원에 가기만 하면 생존이 보장되는 맹장염이라든가...


13. 관련 문서[편집]



[1] 때문에 문서에서도 보듯 서구권에서는 그런 사태를 대비하는 장치가 존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꽤 오랫동안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2] The diagnosis of brain death, Ajay Kumar Goila and Mridula Pawar, Indian J Crit Care Med. 2009 Jan-Mar; 13(1): 7-1[3] 하지만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 잘린 머리를 들고 걸었다든지,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당연한 것인데, 머리가 잘린 후 뇌의 전기신호가 텔레파시로 육신에 보내지지 않는 이상 몸은 반응할 리가 없고, 말을 하려면 성대가 있어야하는데 참수 시 성대가 손상되기 때문.[4] 하지만 개인차는 있으므로 와상 상태로 20년 이상 생존하는 경우도 있다.[5] 흔히 '곡기를 끊는다' 라고 표현한다.[6] 팔을 들거나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7] 죽음이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경험해 본적이 없을 뿐이다. 본인이 환자가 되어 직접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경험을 해본다면 그 공포를 알 수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깝거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를 느낄 수 있다.[8] Florian, V., & Mikulincer, M. (1998). Terror management in childhood: Does death conceptualization moderate the effects of mortality salience on acceptance of similar and different other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4(10), 1104-1112[9] Pyszczynski, T., Greenberg, J., & Solomon, S. (1997). Why do we need what we need? A terror management perspective on the roots of human social motivation. Psychological inquiry, 8(1), 1-20에서 재인용[10] Pyszczynski, T., Greenberg, J., & Solomon, S. '슬픈 불멸주의자', 이은경 역, 흐름출판, 2016, pp53-54[11] 무지, 즉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는 생각보다 매우 강력하다. 예를 들자면, 아주 어두운 동굴이나 조용하고 깊은 숲속 등에서 느껴지는 음산하고 두려운 느낌이 바로 그 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12] 셸리 케이건, <죽음이란 무엇인가>[13] 둘 다 고대 이집트 종교의 사신(死神)이었는데 원래 의미로서의 사신, 이를테면 염라대왕이나 하데스 같은 저승의 군주는 오시리스, 흔히 통용되는 의미로서의 사신 (리퍼나 타나토스 같은 저승사자) 은 아누비스다. 이집트가 그리스, 로마의 속주로 있던 시절에 아누비스는 헤르메스와 융합되어 숭배되기도 했다.[14] 그래서 시체를 미라화할 때에도 나머지 내부 장기를 모두 들어냈지만, 심장만은 놔두거나 모조 심장이라도 넣어줬다.[15] 전승에 따라조금씩 다르다.[16] 물론 여기서 심장의 질량이 아닌 죄의 무게가 재어진다. 그리고 같이 재는 깃털은 진실의 깃털이다.[17] Pyszczynski, T., Greenberg, J., & Solomon, S. '슬픈 불멸주의자', 이은경 역, 흐름출판, 2016, pp. 266-269[18] Ein-Dor, T., Hirschberger, G., Perry, A., Levin, N., Cohen, R., Horesh, H., & Rothschild, E. (2014). Implicit death primes increase alcohol consumption. Health Psychology, 33(7), 748[19] 대표적으로 북유럽의 바이킹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전사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겨 병사나 자연사하게 되었을 경우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고 한다.[20] 이에 따라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와 《영원히 사는 법》에서 인간 수명의 증가 속도가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으며, 이 속도가 인간의 수명이 진행하는 시간(1년/년)을 초과하는 순간 영생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증가 속도는 20세기 후반까지는 굉장히 빨랐다가 2010년대 이후로 정체기에 접어들며 계속 둔화되고 있다. 이는 전체 통계에서 영아의 조기사망률만이 확실히 개선되었고 실제 노인들이 사망하는 치매, 그리고 심혈관계 질환은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1] 다만 외신은 과학적 성과와 별개로 이에 대해 '굉장히 무모한 짓'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임상도 하지 않은 약물을 썼다는 것.[22] 현재 거의 실현된 기술이다. 뇌파로 조종하는 의수족이 굉장히 비싸기는 하지만 실현되었다.[23] 인공 아바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복이 현저히 불가능해지는 자연 신체보다 유지보수가 용이할 것이므로, 이식된 뇌만을 집중 관리할 수 있고, 따라서 기대 수명이 크게 올라갈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24] 미국의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우주를 만들어서 키운 다음 넘어가는 우주 탈출을 제시하기도 했다.[25] 소문자 death는 말 그대로 추상적인 의미의 죽음, 대문자가 앞에 붙은 Death는 사신이라는 뜻으로 구분한다.[26]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27] 검붉은색의 장미이다. 완전하게 검은색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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