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차호별 상세설명 (r5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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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의 전동차
고속열차>>> 150000호대
간선열차>> 220000호대 >
광역전철>>>>>>>>
도입 예정> 230000호대 >>
전량 퇴역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padding: 0px 5px; margin-right: 5px; border-radius: 4px; background: #f55839; font-size: 1em;" 무궁화
 9900호대(1980~2001)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text-align: center; margin-right: 5px; border-radius: 50%; background: #0052A4; font-size: 1em; width: 1.4em; height: 1.4em;"1 1000호대(상세)(1974~2020)
한국철도공사 소속 기관차 · 디젤동차


1. 개요
2. 상세
2.1. 전기형
2.1.1. 1차분 (1974.)
2.1.2. 2차분 (1976~1979)
2.1.3. 3차분 (1980~1981)
2.1.4. 4차분 (1984~1986)
2.2. 중기형
2.2.1. 5차분 (1986~1989)
2.2.2. 6차분 (1991~1992)
2.3. 후기형
2.3.1. 7차분 (1994~1995)
2.3.2. 8차분 (1996~1997)
2.4. 개조분
2.4.1. 9차분 (1999)
2.4.2. 10차분 (2002)


1. 개요[편집]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의 차호별 상세 설명에 대한 문서다.


2. 상세[편집]



2.1. 전기형[편집]


파일:1002 (초저항).png파일:1782a5f835ac55ca2afbd7f660187ec1.jpg
터널 도색 (1974 ~ 1997)[1]역삼각 도색 (1995 ~ 2004)[2]
흔히 '초저항'이라 불린 열차들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1990년대에 패찰이 전부 제거되었다.

이쪽도 서울지하철공사의 초저항과 마찬가지로 원형 손잡이를 장착했었다. 4차분까지 모두 원형 손잡이로 도입하였으나, 냉방 개조 이후인 1992년에 전부 뽑아버리고 녹색 삼각형 손잡이로 교체하였다.[3] 표면적인 목적은 잡고있기 편한 삼각형 손잡이로 바꾸어 고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철도청 퇴직간부의 비리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철도차량 부품을 납품하던 플라스틱사출금형업체에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 퇴직간부가 돈세탁을 하기 위해 불필요한 일감을 만든 것이다. 결국 짧게는 6년밖에 되지 않은 멀쩡한 손잡이도 개인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버려젔다. 반대로 몇년 후면 폐차될 운명이었던 1차분 차량에도 어김없이 새 손잡이를 달았다. #


2.1.1. 1차분 (1974.)[편집]


당시 국내에선 전동차 자체를 만들 능력이 없고, 기차증기 기관차객차, 화차를 겨우 만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통해서 수입하였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은 편성을 도입하게 될 경우 자금 조달이 어렵단 문제가 있어 여러 번에 걸쳐 도입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차량 제조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당시, 일본에서 6량 21개 편성을 수입했으며, 이렇게 수입해 온 전동차를 수리, 분해, 결합 등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1976년 대우중공업에서 대한민국 제조 1호기 1x15편성 전동차를 제작할 수 있고,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다양한 열차들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4] 이후 계속 증차되어 1979년까지 총 6량 42개 편성이 도입되었다.

처음은 6량으로 운행하였다가 1981년 8량을 거쳐 1986년 최종적으로 10량으로 증결되었다.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을 운행하기 위한 4량 편성 차량도 있다.

당시 일본의 통근, 근교형 전동차의 사양을 적당히 섞어서 한국 사정에 맞게 부분 변형해 투입되었다. 101계를 필두로 도입된 전형적인 일본식 통근형 전동차의 4도어 형식 8개 출입문과 3-7-7-7-3 형태의 좌석 배치, 슬라이딩 방식의 미닫이 객실 간 출입문이 적용되어 있고, 강철 재질 차체와 직병렬조합 약계자 저항제어, SELD 제동 또한 전형적인 일본 국철 차량의 영향을 받아 설계되었으나 고속주행에 조금 더 적합한 설계가 이루어져 있다.[5]

일본의 철도 동호인들이 좋아한 한국의 열차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도쿄 지하철 5000계나 도큐 8500계와 매우 흡사한 식빵형 전두부를 지녔으며[6] 그 외에도 일본 국철 101계, 103계, 301계 등과도 비슷한 상자형 전두부 모양과 내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국내에서 운용된 유일한 중문 열차였다.[7] 원래 서울 지하철의 계획은 여러 편성의 전동차를 병결하여 운행하려고 했다. 이는 러시 아워 시간대엔 전동차 2~5편성 정도를 붙여 많은 승객을 나르고, 평시에는 6량 1개 편성으로만 운행해서 배차 운영을 유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하철이라는 물건이 너무 신기하였고, 지하철의 장점이 너무 부각되면서 예상했던 것에 비해 상당량의 승객이 넘칠 정도로 늘어나서 1989년부터 10량으로 증결했고 사실상 흑역사 중 하나로 치부되기도 하였다.[8] 원래 자주 열어 줄 계획이 있던 문이었던지라, 나중에 밀폐가 잘 안 되어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문제점이 있다.
  • 1x01~14편성, 1x29~35편성 (6량)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첫 개통을 대비하여, 일본에서 6량 21개 편성을 직수입하였다. 수입된 제작사는 아래와 같다.

니혼샤료: 39량 (1001~1701, 1002~1702, 1003~1703, 1004~1704, 1005, 1205, 1305, 1029, 1129, 1030, 1130)
가와사키중공업: 39량 (1105, 1405~1705, 1006~1706, 1007~1707, 1008~1708, 1009~1509, 1031, 1131, 1032, 1132, 1033)
도큐차량제작소: 24량 (1112, 1412~1712, 1013~1713, 1014~1714, 1134, 1035, 1135)
긴키차량제작소: 24량 (1109, 1609, 1709, 1010~1710, 1011~1711, 1012, 1212, 1312, 1133, 1034)

1차분 차량의 특징은 출입문 안쪽에 연두색으로 페인트칠이 칠해져 있는 것인데, 이후의 한국철도공사 전동차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었다.


2.1.2. 2차분 (1976~1979)[편집]


  • 1x15~28편성, 1x36~42편성 (6량)

1976년 대우중공업에서 일본과의 기술 제휴로 국내 조립에 성공하여 1979년까지 6량 21개 편성을 추가 도입하였다.

2차분 부터 출입문 안쪽이 민무늬 스테인레스로 변경되었다.


2.1.3. 3차분 (1980~1981)[편집]


  • 1x01~42편성 → 1x01~28편성 (6량 → 8량 증결 및 재조합)
  • 1x29~39편성 (8량)
  • 1x40편성 (4량)

국철 구간의 이용객 폭증으로 6량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전국 지하철 최초로 8량화가 확정되면서 도입되었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을 통해 동력 부수 객차 68량이 도입되었다.

기존 6량 42개 편성을 재조합하여 8량 28개 편성으로 만들었으며, 남는 Tc 차량 28량 중 24량은 증결분과 조합하여 12개 편성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남는 Tc 차량 4량은 1986년까지 구로차량기지에서 장기간 휴차 되었다.[9]

1981년 기준으로 재적된 편성
8량1x01~39편성
4량1x40편성


2.1.4. 4차분 (1984~1986)[편집]


  • 1x01~38편성 (8량 → 10량 증결)
  • 1x40편성 (4량 → 8량 증결)
  • 1x41편성 (4량)

1984년 7~8월대우중공업1x01~15편성의 무동력차 30량
1984년 12월현대정공1x16편성의 무동력차 2량
1985년 6월현대정공1x17~30편성의 무동력차 28량
1985년 12월현대정공1x31~35편성의 무동력차 10량
1986년 1월대우중공업1x02편성의 동력차 1량
1x40~41편성의 동력차 6량
1986년 9월대우중공업1x36~38편성의 무동력차 6량

국철 구간의 이용객 폭증으로 8량으로도 한계에 봉착하자, 전국 지하철 최초로 10량화가 되면서 도입되었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을 통해 동력 + 무동력 부수 객차 83량이 도입되었다.

1986년까지 남아 있던 Tc 차량 4량 중 2량은 1x02편성의 운전실 차량으로 투입되었다. 1984년 발생한 휘경역 추돌사고로 1x02편성의 운전실 차량 1002호와 인천역 사고로 1x14편성의 운전실 차량 1114호가 대파되었기 때문이다.[10] 나머지 2량은 1x41편성의 운전실 차량으로 투입되었다.

1986년 기준으로 재적된 편성
10량1x01~38편성
8량1x39~40편성
4량1x41편성

2000년대 중반 대부분의 저항 차량들에 혼재되어 있던 차량들이며, 대다수의 차량이 2005~2006년에 운행을 중지하고 2010년까지 병점차량기지에 장기간 유치되어 있다가 고철로 분해 및 매각되었다. 단, 일부 차량[11]2005~2006년에 내장재 개조가 이루어졌으며 2009년 내구 연한 연장 심사를 통과하고 2014년까지 운행하였다. 또한, 이 중 1x40편성에 있던 1640, 1740호와 1x41편성에 있던 1241호와 1341호는 중저항 부수 객차로 운행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1x40편성 객차는 내장재 개조를 받지 않고 운행하다 2008년폐차되었고, 1x41편성 객차는 1x60편성으로 겨처 1x47편성으로 옮겨가 계속 운행하다, 2012년에 1x47편이 퇴역하면서 1x52편성으로 옮겨가[12] 3개월 정도 운행하다 폐차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1x52편성도 휴차되었다. 1x55편성에 있던 부수객차의 경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초저항 동력 부수 객차였다.


2.2. 중기형[편집]


【 터널 도색 (1986 ~ 1997) 】
파일:한국철도공사 1x56편성(터널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54편성(터널 도색).jpg
1x56편성[1]1x54편성[2]
[1] 한 편성 단위로 완전체인 도색은 1996년까지 존재했으며 이후 역삼각 도색 작업으로 인해 단계별로 감축되면서 1997년 하반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한편 오른쪽의 작은 열차는 수인선 협궤 열차다.[2] 과천선 1단계 개통 당시 산본~인덕원간 구간 열차에도 1호선 열차가 투입되었다. 일부는 안산역까지 운행되기도 했다. 다만 과천선 선로엔 ATC 장치가 설비되었지만 해당열차는 ATC 장치가 없기에 금정역에서 관제사와 무선통화하고 과천선 구간으로 진입했다. 이 때문에 배차간격도 길어졌다.

【 역삼각 도색 (1994 ~ 2008) 】
파일:1144.png파일:한국철도공사 1x63편성(역삼각 도색).jpg
1x44편성1x63편성
파일:한국철도공사 1x56편성(역삼각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65편성(역삼각 도색).jpg
1x56편성[1]1x65편성
[1] 도입 초기엔 상단 흰 부분의 범위가 더 넓었으나, 어느 순간 신저항과 동일하게 바뀌었다

【 자석 도색 (2006 ~ 2017) 】
파일:한국철도공사 1x45편성(자석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60편성(자석 도색).jpg
1x45편성1x60편성
파일:코레일_1000호대중저항.png파일:한국철도공사 1x65편성(자석 도색).jpg
1x68편성1x65편성[1]
[1] 현재 1x65편성의 1065호와 1165호가 구둔역에 전시 중이다.

흔히 '중저항'이라 불린 차량들이다. 여담이지만 저항 차량 중 도색변경을 모두 거쳤다.[13]


2.2.1. 5차분 (1986~1989)[편집]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 등으로 인한 수요 증가, 경원선 창동 ~의정부북부 구간 연장, 안산선 금정 ~ 안산 구간 개통, 영등포 ~ 구로 3복선화, 배차 시격 단축, 과천선 1단계 개통 등에 대비하여 도입된 편성이다.

  • 1x39~40편성 (8량 → 10량 증결)
  • 1x41편성 (4량 → 10량 증결)
  • 1x42~49편성 (10량)
  • 1x50~56편성 (6량)
  • 1x57~58편성 (4량)

경원선 창동 ~ 의정부북부 구간 연장, 안산선 금정 ~ 안산 구간 개통에 따라 반입되었다.

철도청 전동차 최초로 출입문 유리창을 직사각형으로 적용했다. 또한 출입문 안쪽은 민무늬 스테인리스다.

1987년 반입 당시엔 지금과 차호 구성이 달랐다. 기존 초저항과 동일한 차호 구성으로, 현재의 중저항 1042-1142편성은 반입 당시 1127-1129의 차호로 반입되었다. 여담이지만 1x49~53편성의 경우, 반입 당시엔 2000호대로 반입되었다.[14]

1989년 기존의 차호 구성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기존의 8량과 4량으로 다니던 초저항[15]을 10량으로 증결하기 위한 부수 객차가 추가로 도입되었다.[16]

1990년 기준으로 제작된 편성
10량1x01~49편성
6량1x50~56편성
4량1x57~58편성

1x51편성은 1993년 과천선 부분 개통식 때 운행했던 열차다.

2005년 2월 22일경부선 청량리 ~ 천안 구간 완행열차로 투입되었던 1x42편성이 지하 서울역에서 변압기가 터진 사고가 일어난 뒤로 코레일은 병점 이남으로는 저항제어 전동차를 투입시킨 일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게다가 2006년에 저항제어 소자가 퍼진 사건까지 터지면서 저항제어 전동차는 반드시 병점 이남으로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17]

2006년 기존 초저항 부수 객차[18]들의 대거 폐차로 인해 조성을 맞출 수 없게 되어 1053, 1153, 1057, 1157 4량이 조기 휴차되었고[19], 나머지 차량은 2005~2006년 초반 내장재 교체 및 2006년 후반~2007년 외부 도장 변경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LED 개조를 1번 받았다는 것이다.[20]

또한 일부 편성의 도장 변경 작업 때 출입문 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x47~49편성은 광창형 금속테두리 출입문으로[21], 1x45, 1x50~52, 1x54~56, 1x61편성은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되었으며[22] 1x58편성에 있던 1258, 1358호와 1x41편성의 동력차 4량 역시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되었고[23][24], 1x71편성도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했다.[25]

1x42편성의 1342호는 한때 출입문 하나만 정사각형 출입문인 짝짝이 출입문으로 다녔다.

1x58편성은 2010년 구로차량기지 내 추돌사고로 10량이 모조리 조기 폐차되었다. 참고로 1x58편성은 1x41편성의 증결분 M차 4량(1441~1741)이 모두 끼어 있던 편성이었다.

1x42~44편성은 TC칸 한정으로 측면 행선기가 없으며 1x45편성은 1045호칸에만 없다가 1x46편성부터 TC칸에도 측면행선기가 달려나오기 시작했다.[26]

운전실 출입문의 경우도 형태가 약간 다른데 1x42~1x54편성은 운전실 출입문의 유리테두리가 얇은 반면 1x55편성부터는 유리테두리가 두꺼워졌다.


2.2.2. 6차분 (1991~1992)[편집]


  • 1x59~63편성 (4량)
  • 1x64~66편성 (6량)
  • 1x67~73편성 (10량)

영등포 ~구로 3복선화, 배차 시격 단축, 과천선 1단계 개통 등에 대비하여 도입된 편성이다.

1x59~63편성은 직사각형 출입문에 하단 쪽에 손잡이가 생겼으며[27] 1x64편성부턴 출입문 유리창이 다시 정사각형 모양으로 회귀하였으며 안쪽엔 부식무늬를 적용하였다. 또한 1x61편성이 2007년 도장 변경 이후 2009년에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되었으며, 1x62편성도 말년에 1062호만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되었다.

1x59~63편성은 5차분이랑 비슷해보이지만 전두부쪽에 손잡이가 생기고 출입문 하단에 손잡이가 생긴것과 Only 에어컨에서 선풍기+에어컨 조합으로 나온 것을 보면 나름 정사각형 출입문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형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엔 직사각형 출입문은 중저항, 정사각형 출입문은 후저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92년 기준으로 재적된 편성
10량1x01~49편성, 1x67~73편성
6량1x50~56편성, 1x64~66편성
4량1x57~63편성

2006년 기존 초저항 중간차[28]들의 대거 폐차로 인해 조성을 맞출 수 없게 되어 1063, 1163, 1065, 1165 4량이 조기 휴차되었고[29], 나머지 차량은 2004년 후반~2006년 초반 내장재 교체 및 2006년 후반~2007년 외부 도장 변경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LED 개조를 2번 받았단 것이다.[30]

  • 2017년 3월 30일, 1x73편성을 마지막으로 모두 영업 운전에서 철수하였다. 단, 2016년에 1x62편성과 중간차를 맞바꾼 상태로 운행하다가 구로기지에 사용 대기로 빠진 1x74편성의 중간차와 1x64편성의 중간차는 1996년 도입된 신저항 차량이기 때문에 폐차 대상이 아니다.

  • 2017년 4월, 시흥차량기지에 유치되어 있던 1x73편성은 내구연한 연장과 더 불어 4량으로 재편성되어[31] 기관차에 끌려 제천역으로 내려간 후 제천역에서 영주역까지 자력으로 회송을 하고 이후 영동선에서 시운전을 한 장면까지 포착이 되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지면서 많은 철도 동호인들이 지방 노선용으로 시운전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으나 머지않아 시흥차량기지로 복귀했다. # 현재 시운전 이후 시흥차량기지에서 입환용으로 쓰이다 2018년 10월 14일11월 11일에 '경인선 철길 따라' 행사에 임시적으로 경인선 부천역~인천역 구간을 운행한 등 임시 열차로 운행되었다.

  • 2017년 6월 25일, 구로차량기지에 유치되어 있던 1x72편성이 제천조차장으로 회송되었다.[32] 이 차량은 최근에 제천조차장 유치선 구석에 RDC와 같이 묶여 있으나 2019년 제천 철도테마파크 계획이 무산된 관계로 2019년 4월에 고철로 분해 및 매각되었다. 다만 4월에 보존 차량 선별로 인해 회송이 지연되면서 어느 정도 보존될 거란 희망은 있으나 해당 계획마저 무산되었는지 곧 매각되었다. 조차장 구내에서 부서져 있단 동호인의 목격담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내에서 파쇄 후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 폐차된 1x71편성의 1171, 1771호는 경북전문대학교에서 트레일러로 운반해 갔고, 도색을 바꾸고 개조가 이뤄져, 철도전기기관사과 실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황

  • 67편성부터 73편성은 이문소속 출신이라 측면에 차량번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적이 있다.

  • 1x64편성은 2004년 말~2005년 초에 롤지 + LED 조합으로 운행한 적이 있다. 그 당시 1x52편성 객차 2량이 있는데 그것만 미개조 상태로 운행했기 때문.[33]


2.3. 후기형[편집]


【 역삼각 도색 (1994 ~ 2006) 】
파일:1x78편성구도색.jpg
1x78편성[1]
파일:한국철도공사 1x81편성(역삼각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83편성(역삼각 도색).jpg
1x81편성1x83편성
[1] 초저항, 중저항과 달리 역삼각CI 발표 이후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터널도색이 존재하지 않았다.

【 자석 도색 (2005 ~ 2021) 】
파일:한국철도공사 1x74편성(자석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81편성(자석 도색).jpg
1x74편성1x81편성
파일:한국철도공사 1x83편성(자석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84편성(자석 도색).jpg
1x83편성1x84편성

운행종료 당시 차량조성
  • 1x74편성: 1074-1462-1562-1861-1463-1563-1961-1661-1761-1174
  • 1x75편성: 1075-1275-1375-1875-1475-1575-1975-1675-1775-1175
  • 1x76편성: 1076-1276-1376-1876-1476-1576-1976-1676-1776-1176
  • 1x77편성: 1077-1277-1377-1877-1477-1577-1977-1677-1777-1177
  • 1x78편성: 1078-1278-1378-1878-1478-1578-1978-1678-1778-1178
  • 1x79편성: 1079-1279-1379-1879-1479-1579-1979-1673-1773-1179
  • 1x80편성: 1080-1280-1380-1880-1480-1580-1980-1680-1780-1180
  • 1x81편성: 1081-1281-1381-1850-1481-1581-1950-1681-1781-1181
  • 1x83편성: 1083-1483-1583-1852-1683-1783-1952-1283-1383-1183
  • 1x84편성: 1084-1284-1384-1853-1484-1584-1953-1684-1784-1184
  • 1x85편성: 1085-1652-1752-1859-1653-1753-1959-1457-1557-1185
  • 1x86편성: 1086-1458-1558-1860-1659-1759-1960-1660-1760-1186

흔히 신저항이라 불린 차량들이다.

철도공사의 CI 변경 이후에도 살아남아있다가, 2006년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자취를 감추었다. 3번째 사진

여담으로 간혹 2009년까진 신저항에 중저항 객차가 끼워져있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객차 트레이드가 진행된 2009년 말 이후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2.3.1. 7차분 (1994~1995)[편집]


외형은 당시 막 도입되던 전동차였던 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 한국철도공사 351000호대 전동차 초기형의 외형을 기반으로 하였다.

구로3복선 개통 및 기존 2차분 증차분 대비하여 도입된 차량이다.

다만 4호선과 분당선에 당시 신형 VVVF 전동차가 투입되는 중이었는데 주 노선인 1호선은 굳이 신형 방식인 VVVF를 놔두고 저항제어로 도입한 이유는 VVVF-GTO의 경우 소자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 등의 사례처럼 만들 기술은 있으나 역시 구동 계통을 전량 수입해야 했으며 그 당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재 상황이 그렇듯 IGBT로 넘어갈 분위기였기에 신규 노선을 제외하고는 굳이 어중간한 VVVF-GTO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가 도입 초기 남태령역~선바위역 사이 절연 구간 등에서 잔고장이 잦았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며 4량, 6량으로 다니고 있는 중저항의 10량화도 필요했기 때문에 도입한 것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96~1997년한국철도공사 31x000호대 전동차가 도입되어, 1호선에서도 VVVF 전동차가 운행하게 된다.

도색은 처음부터 철도청 시절의 역삼각CI 도색인 초록색-노랑색의 도색을 적용한 채로 출고되었다.[34]

출입문 창문이 중저항 전기 때는 직사각형이었으나, 중저항 후기 때와 신저항 때부터는 조그마한 정사각형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경인선 혹은 경원선에서 넘쳐난 인원을 견디다 못해 창문이 깨져 부상자들이 속출해서 중저항 후기형, 신저항, 납작이가 정사각형 창문이 되었단 이야기가 있다.

내장재도 시트 부분을 제외하면 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 초기형과 거의 같은 것으로 바뀌었지만 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초저항처럼 평천장에 선풍기가 달려있는 특이한 구성이었지만[35] 이후에 불연재로 교체되면서 선풍기 역시 라인데리어로 교체되어 사라지게 되었다.[36]

주 제어장치인 저항기가 국산 제품으로 대체되었단 점, 1993년에 도입된 VVVF 전동차의 외형을 그대로 가져온 점 외엔 중저항과 큰 차이가 없다.

운전석이 초저항처럼 왼쪽에 위치했다.

출입문의 창틀이 쇠창틀로 바뀌었으며, 색은 진한 금색이다.

경적음이 동요 자전거로 나온다. 톤음은 먼저 도입했던 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와 동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 초도편성인 74편성이 제일 늦게 제작되었다. 75~79편성은 94년 제작이고, 초도편성인 74편성은 95년 제작이다. 어째서 제일 나중에 도입된 차량이 초도편성의 번호를 배정 받았는진 알 수 없으나, 특이한 케이스다.

2005~2007년에 도색 교체를 마쳤지만 내장재와 LED 행선 안내기 개조는 2004년 하반기에 이미 이뤄졌다. 중저항 증량화로 도입된 객차들도 2004년에 개조되었다.[37] 본디 LED 행선 안내기의 글씨체는 VVVF 차량과 똑같은 헤드라인체 계열이었으나, 2009년 말부터 차내 전광판이 설치될 무렵에 폰트가 바뀌었다. 변경 초기엔 글꼴이 달랐으며 편성 별로 글꼴이 고딕체, HY한강체, 굴림체 3가지로 나뉘었으나 2012년 후반부터 고딕체로 통일되었다.
  • 1x59~61편성 (4량 → 6량 증결)[2량증결]
  • 1x74~79편성 (10량)

1994~1995년대우중공업에서 10량 6개 편성과 동력 부수 객차 6량(1459, 1559, 1460, 1560, 1461, 1561)을 도입하였다. 이 동력차 6량은 2010년 이후 6량 모두 1x61편성에서 운행했으며,[38] 1461호는 2009년 7월에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내부가 의자 색과 바닥 재질을 제외하면, 앞서 도입된 한국철도공사 2030호대 전동차의 재질 및 구성과 거의 흡사했다.[39]

1995년 기준으로 재적된 편성
10량1x01~49편성, 1x67~79편성
6량1x50~56편성, 1x59~61편성, 1x64~66편성
4량1x57~58편성, 1x62~63편성

  • 2019년 11월 25일 312B04편성이 운행을 시작함에 따라 1x78편성이 운행이 중지되었다.

  • 2019년 12월 18일 312B05~07편성이 운행을 시작함에 따라 1x75편성, 1x76편성, 1x77편성, 1x79편성도 운행이 중지되었다.

  • 1x74편성은 1x83편성의 신길역 탈선사고 여파로 저항 차량들이 하나둘씩 휴차에 들어가자 같이 운행이 중단되었으며, 구로기지에 유치되고 있다가 폐차되었다. 원래는 현대산 신저항과 같이 21년에 대차될 예정이었지만 조기 대차로 인하여 차량이 부족해지자, 341B31~34, 36편성이 1호선에 임시 투입되었다.[40]
  • 2020년 8월 1x75~79편성 및 74편성 부수객차가 폐차매각되었다.
  • 2021년에 1x74편성[41] 및 1X75편성의 잔존 객차(1275, 1375, 1475, 1575, 1875호)가 폐차매각되었다.
  • 이 중 74편성은 이문 소속 출신이라 측면에 차량번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 적이 있다.


2.3.2. 8차분 (1996~1997)[편집]


  • 1x50~53편성 (6량 → 10량 증결)[4량증결]
  • 1x57~58편성 (4량 → 6량 증결)[2량증결]
  • 1x59~61편성 (6량 → 10량 증결)[4량증결]
  • 1x62~63편성 (4량 → 6량 증결)[2량증결]
  • 1x80편성 (10량)
  • 1x81편성, 1x83~84편성 (8량)
  • 1482, 1582 (2량)[42]
  • 1x85~86편성 (2량)

1996~1997년현대정공에서 도입하였다.

순수 증차분은 VVVF 차량으로 결정되었고, 이 차량들은 대다수 기존 저항 차량들의 증결분이다. 또한, 기존의 6량과 4량으로 다니던 중저항을 10량으로 증결하기 위한 중간 객차가 추가로 도입되었다.[43]

이 때 1x50~53편성, 1x57~63편성이 증차되었으나, 1998년 말에 초저항 중간 객차들을 폐차시키면서 차번이 꼬여버리게 되면서 현재 이 차량들은 비슷한 연식의 신저항과 묶여 중간 객차로 운행되고 있는 상황이다.[44]

  • 1x50편성 중간 객차: 1x64편성과 1x81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51편성 중간 객차: 1x64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52편성 중간 객차: 1x83편성과 1x85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53편성 중간 객차: 1x84편성과 1x85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57편성 중간 객차: 1x85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58편성 중간 객차: 1x86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59편성 중간 객차: 1x85편성과 1x86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60편성 중간 객차: 1x86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61편성 중간 객차: 1x74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62편성 중간 객차: 1x74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 1x63편성 중간 객차: 1x74편성의 중간 객차로 사용

1x81편성, 1x83~84편성의 경우 8량으로, 1x85~86편성의 경우 2량으로 도입되어 2004년까지 중간 객차로 초저항 객차를 끼우고 운행했다.[45] 2004년 로윈에서 시행한 내장재 교체 사업으로 인해 이후엔 동시기 도입되었던 중저항 증결분과 함께 조성되어서 같은 연식의 객차끼리 편성을 맞췄다.[46] 그렇기에 1x80편성만 중간 객차 없이 순수 증차분이고 나머지 1x81편성, 1x83~86편성은 개조저항과 비슷한 목적으로 초저항 객차의 내구 연한을 채울 목적으로 나온 편성들이다. 물론 내장재 개조 이후 2005년 경에는 잠시 사라졌었다가 2006년 이후에 재조성 되는 과정에서 소수의 신저항에 초저항 부수객차가 편입되는 경우도 있다.

2차분 차량의 특징으로는, 쉽게 때가 타는 까칠까칠한 벽면 재질에서 기존의 매끄러운 FRP 재질로 바뀌는 등 개량이 있단 것이다. 또한, 1차분 차량의 바닥 색이 녹색이고 2차분 차량의 바닥 색이 회색으로 서로 특징이 달랐지만, 2004년 내장재 개조 사업 이후 색깔 및 내장재가 모두 같아졌다. 참조

1997년 기준으로 재적된 편성
10량1x01~53편성, 1x59~61편성 1x67~80편성
6량1x54~58편성, 1x62~66편성, 1x81편성, 1x83~86편성

1x83편성은 2020년 4월 14일 오전 6시 28분 경 영등포 ~ 신길 구간 운행 중 탈선 사고가 발생하면서 휴차되었다. 원인은 차축 베어링의 파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정비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기사 이후, 1호선 전동차 중 가장 노후가 심한 열차부터 긴급정밀진단을 시행하게 되었는데, 1x85편성은 2020년 4월 말에 시흥기지로 중검수를 받으러 갔다가 결함 발견, 휴차 처리되었고, 1x85편성과 마찬가지로 1x81편성도 2020년 5월 28일에 시흥기지로 회송되었다.

2020년 5월 이후로, 현대정공산 후기형 편성들도 전량 휴차되었다. 폐차가 확정된 차량들은 부품 취거와 분해를 위해 시흥차량기지로 이동했고 나머지 차량들은 구로차량기지문산차량기지에 유치되어 있다.[47] 아직 내구연한이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적 삭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0년 8월 기준으로 가끔 입환용으로 사용하기는 하나 이마저도 준비 절차가 복잡해서 동해선 전동차 투입으로 잉여화된 광명셔틀 전동차로 입환한 경우가 많다 보니 사실상 방치중이라고 한다.



1X81편성은 현재 동목포역에 1181호만 보존 중이다. 링크

출입문 창틀의 색깔이 약간 다른데 7차분은 진한 금색인 반면 8차분은 연한 금색으로 되어있다.


2.4. 개조분[편집]


【 역삼각 도색 (1999 ~ 2006) 】
파일:한국철도공사 1x82편성(역삼각 도색).jpg파일:한국철도공사 1x92편성(역삼각 도색).jpg
1x82편성1x92편성
파일:1190.png파일:한국철도공사 1x91편성(역삼각 도색).jpg
1x90편성1x91편성[1]
[1] 현재 1x91편성의 1091호가 불정역에 전시 중이며 현재는 폐쇄되었으나 고철 매각되었다.

초저항, 중저항의 일부 T차(무동력 객차)를 TC차량(선두차)으로 개조한 열차들이다. 다만 편성 번호는 TC차 기준이며, 그 외 중간 차량들의 편성 번호는 섞여 있다. 위 편성 번호를 따른 열차는 TC차 2개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48] 개조저항의 부수 객차는 대부분 초저항이지만, 간혹 중저항인 경우도 있다.

모든 개조저항의 M차(동력 차량)들이 1980~1981년에 생산된 초저항 M차들이다. 이들의 내구 연한 25년이 도래한 2005~2006년, 이 M 차량들이 폐차되자 Tc 차량만 남아돌게 되어 운행이 중지되고 병점차량기지에 장기간 유치되었다. 심지어 도색 변경, LED 행선 안내기 장착, 내장재 개조도 시행되지 않았다.[49]

1x82편성과 1x87편성은 중저항 개조분이고, 1x88~94편성은 초저항 개조분이어서 창틀의 형태가 다르다.

경적 소리는 신저항 차량이랑 같은 동요 자전거였다.


2.4.1. 9차분 (1999)[편집]


  • 1x82, 1x87편성

파일:1087개조저항.jpg
사실상 거의 유일한 1x87편성의 영업 운전 사진이다.
이 중 1082호, 1182호, 1087호는 1999년 초저항 대폐차 시에 중저항 T차량을 TC차량으로 개조한 편성이다.[50] 잘 보면 1087호가 있음에도 1x87편성이 비어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087호가 제작되었지만 이것과 쌍을 이룰 1187호가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87호는 2001년경 잠시 저항제어 후기형 1x86편성의 1086호와 짝을 맞춰 2달만 운행하고 그 이후로는 계속 사용 대기 상태였다가 폐차되었다. 그래서인지 본선에서 영업 운전을 뛰는 사진조차 거의 없다시피하다.


2.4.2. 10차분 (2002)[편집]


  • 1x88~94편성

2002년 초저항 대 폐차 시에 내구 연한이 남은 T차[51]을 TC차으로 개조한 것이다.

  • 1x88편성의 1188호는 육군특수전사령부 대원들의 훈련용으로 쓰이고 있다. 도색은 영업운전 당시 한 적이 없는 자석도색으로 재도색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도 좋아 보인다. #

  • 1x91편성의 1091호는 불정역 열차펜션으로 개조되었으나 열차펜션이 폐업하면서 방치되고 있다. 현재는 폐쇄 후 고철 매각되었다.기사

이 차량이 휴차된 이후 차량에 부착된 열번표시기를 1x42~48에 바꿔달았다.

3. 짬뽕편성[편집]



파일:attachment/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DSC02565-2.jpg
노량진역에서의 1x55편성 초저항 부수 객차

2004년에 Tc 차량들이 퇴역했음에도 부수 동력 객차는 한국철도공사 1호선 열차에 드문 짬뽕편성으로 들어가 있다.[52] 원래 6량 1편성으로 도입되었다가 1980년대 초반에 8량으로, 이후 10량으로 증차되었기 때문에, 초저항 및 중저항 차량이라도 10량으로 증결될 때 도입된 차량은 아직 내구연한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시점[53]에서 초저항 객차가 편입된 차량은 1x42~52편성, 1x55편성이었으며[54] 물론 남은 차량은 모두 불연재 개조가 되어 있다. 그러나 2014년을 기준으로 1x55편성에만 짬뽕편성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마저도 1x55편성이 2014년 8월 31일을 끝으로 운행 종료를 하면서 한국철도공사에서 초저항 차량은 사실상 완전히 퇴역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해당 편성은 한국철도공사 초저항 중 유일하게 배전반이 돌출형이 아닌 매립형으로 되어있어 노약자석 창의 폭이 약간 좁다.
[1] 개통 초기인 1974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하였다. 다만 한 편성 단위로 완전체인 도색은 1995년까지 존재했으며 이후 역삼각 도색 작업으로 인해 단계별로 감축되면서 1997년 하반기에 완전히 사라졌다.[2] A B C D 14xx (M) - 15xx (M)[3] 비슷한 시기에 비둘기호 객차와 수인선 협궤동차에 있던 원형 손잡이도 삼각형 손잡이로 바꾸어 달기 시작하였다.[4] A B C 16xx (M) - 17xx (M) - 18xx (T) - 19xx (T)[5] 의외로 그 당시 차량들 중에서는 고스펙이다. 당시 일본 국철의 통근형, 근교형 전동차의 최고 속도는 100km/h였다. 사철 차량들도 대부분이 최고 속도가 100-110km/h정도였다.[6] 특히 5000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80% 비슷하다.[7] 현재 초저항 Tc차 전량과 객차 대다수가 폐차되는 대신 서울교통공사 광폭형 GEC 초퍼제어 전동차, 신분당선 D000호대 전동차, 인천교통공사 2000호대 전동차, 대구도시철도공사 3000호대 전동차가 비상 탈출용으로 중문을 채택했다.[8] 지하철 개통 후 1980년대 말까지 서울의 지하철은 러시아워 기준 250%~300%의 혼잡률을 매우 흔하게 기록하던 때다. 참고로 현재 서울 지하철에서 가장 혼잡한 2호선 사당 ~ 방배 구간의 러시 아워 때의 혼잡률이 224% 정도이므로 250%~300% 정도이면 엄청난 수치임을 짐작할 수 있다.[9] 당시 차호 1121,1123,1124,1126[10] 휘경역 사고 당시 차량번호는 1004, 1304호였고, 이후 1x02는 휴차되었으며 인천역 사고땐 1042호가 폐차되었고 1006호는 14편성으로 옮겨졌다.[11] 1x15, 1x18~22, 1x25~28, 1x36~38편성 무동력차와 1x41편성 동력차.[12] 1x52편성으로 옮겨간 이유는 1x52편성에 있던 1647, 1747호가 1x47편성 퇴역으로 같이 빠졌기 때문이다.[13] 중저항 편성 내 부수객차 한정으로 초저항도 도색변경을 모두 거쳤다.[14] 현재 기준 1x49편성은 반입당시 2001-2301-2601-2303-2603-2003의 조성이었다. 1989년 차적 정리 후 1049-1249-1349-1649-1749-1149[15] 당시 1x39~41편성[16] 중저항 편성 내에 초저항 부수차가 끼어있는 것이 제일 유명하지만, 반대로 초저항 편성 내에 중저항 객차가 들어 있는 케이스이다. 총 6량의 무동력 객차와 4량의 동력 객차가 도입되었는데, 이 중 5량의 무동력 객차는 VVVF 차량의 부수객차로 운행하였으며, 나머지 1량의 무동력 객차와 동력 객차는 중저항에 편입되어 운행되다가 폐차되었으며 동력 객차는 출입문이 초저항 출입문으로 교체되었다.[17] 그래서 병점 이남에서 중.신저항을 본 건 매우 희귀한 경헙이었다.[18] 1980~1981년산 동력 객차[19] 내장재 교체 사업에서도 제외되었다. 또한 1x53편성과 1x57편성은 병점기지에서 TC칸만 남겨진 채로 장기간 휴차 중에 있다가 2011년, 2013년에 고철 매각되었다. 물론 53, 57이 들어간 중간객차는 내장재 개조되어 다른 편성에 편입되었다. 사실 53편성은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중저항 6량+신저항 4량 조합으로 운행했고 57편성은 중저항+초저항+신저항 조합으로 운행했다.[20] 2011년한국철도공사에서 1991년 이후 제작 차량에 또 1번 LED 개조를 했기 때문에 1986~1989년 제작 차량은 개조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연한 빨간색 바탕에 굴림체로 되어있는 행선지를 사용한 것이다.[21] 동글이 이후의 차량에 쓰이는 것과 동일한 형태로, 1x47편성은 2006년 2월에, 1x48편성은 2006년 4월에, 1x49편성은 2005년 12월에 교체했다. 참고로 구도색 시절에 개조되어서 몇개월간은 구도색으로 다니다가 2006년 11월~12월에 신도색으로 변경되었다. 여담으로 1x49편성은 도색을 제대로 했었지만 1x47편성, 1x48편성은 도색을 성의없게 한 바람에 출입문과 주변쪽의 도색이 안맞는 상태로 다녔었다.[22] 2007년 9월 경부터 2009년 2월에 걸쳐 교체하였다. 도장 변경과 함께 교체된 편성은 2007년 9~11월 사이에 진행되었으며 1x50~54편성이 해당되며 반면 1x45, 1x55~56, 1x61편성은 신도색으로 도장 변경 이후에도 계속 기존 출입문을 유지하다가 2008년~2009년에 교체되었다.[23] 2008년 교체 당시 1x58편성이 아니라 다른 편성에 조성되어 있던 탓에 1x58편성의 TC칸은 그대로 직사각형 출입문 유지.[24] 1x41편성 동력차 4량은 2003년 11월에 교체되었는데 출입문을 통일시키기 위해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정작 1x64~66 중에 2량 조성되어 있는 직사각형 출입문 객차는 그대로 놔두었는데 어차피 그 당시엔 저항차들의 조성 재배치는 일상이었다.[25] 후기형 중저항의 출입문이 초저항 출입문과 동일하게 정사각형 창문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교체가 안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26] 다만 1x45편성의 경우 1145호에만 달려있다. 이는 1145호 객차는 1988년 1월에 나왔기 때문이다.[27] 초기 도입분은 손잡이가 있다가 후기 도입분 때 손잡이가 사라진 광폭형 GEC 쵸퍼와는 정반대의 사례다.[28] 1980년~1981년산 동력 객차[29] 내장재 교체 사업에서도 제외된 데다, 63, 65가 들어간 중간객차들은 내장재 개조되어 다른 편성에 편입되었다. 63편성은 2000년대 초반에도 8량 모두 초저항이었고 63 번호를 받은 중저항 객차나 신저항 객차는 다른 중저항에 편입되어 운행한 상태였고 65편성은 중저항+초저항+신저항 또는 중저항+초저항+직사각형 출입문 중저항 조합으로 다녔다.[30] 2011년에 한국철도공사에서 1991년 이후 제작 차량에 또 1번 LED 개조를 했기 때문에 1986~1989년 제작 차량은 개조 대상에서 제외되어, 빨간색 바탕에 고딕체로 되어 있는 행선지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1가지 사실은 조기 휴차된 차량들도 자석도색을 입혔단 것이다. 이후 이문기지에서 교육용 차량으로 한 동안 쓰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그마저도 없어졌다.[31] 동력차가 1대다.[32] 문제는 100분씩이나 지연되어 원덕역에서 기다리던 철도 동호인이 청량리역으로 갔을 정도.[33] 그 외에도 몇몇 차들이 이런 적이 있는데 LED랑 롤지는 연동이 안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어차피 LED랑 롤지는 표시 방식만 다를 뿐, 행선지령기는 동일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단지 종점에서 행선지를 바꿀 때 LED는 바로 바뀐 반면 롤지는 한참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이다. 이후 LED + 롤지 짬뽕은 2006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으며 2006~07년은 신저항칸은 헤드라인체, 중저항칸은 굴림체로 송출된 LED 글꼴 짬뽕객차가 등장했는데 2004년 하반기에 내장재 개조를 받았던 1x62편성, 1x64편성 내에 있던 신저항 객차가 다른 중저항 편성으로 흩어지고 기존 1x62편성, 1x64편성 중간 객차가 다시 본 편성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34] 역삼각CI가 나온 때가 1994년이다. 다만 1993년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341B01편성(당시 2x30편성)에 먼저 부착했다.[35] 중저항의 경우 초창기 도입분은 에어컨만 달려나왔으나 후기 도입분부터 선풍기도 달려나왔다. 그렇다고 에어컨이 없단 것은 아니다. 에어컨도 물론 있다. 천장에 길다란 몰딩같은 부분이 바로 에어컨이다. 선풍기는 보조 냉방일 뿐이였다. 만약 정말로 선풍기만 있다면 민원감이다.[36] 그런데, 1987년부터 초저항에 에어컨을 장착했고, 1993년부터 도입된 과천선안산선ᆞ분당선 차량에도 에어컨을 달았단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이해할 수 없는 철도청의 행보였다.[37] 다만 예외적으로 1459, 1559, 1460, 1560, 1461, 1561은 2006년 경에 SLS중공업에서 개조되었다.[38] 2010년 1월 기준 1460, 1560호가 2, 3호차, 1461, 1561호가 본래 조성에 맞는 5, 6호차로, 1459, 1559호가 8, 9호차로 운행했다.[39] 의자 색이 빨간색 바탕에 파란색 패턴으로 이루어졌고 바닥 색은 진한 녹색이었다.[40] 74편성은 2016년에 중간차를 연식이 덜 된 62편성의 96년식 중간차 8량과 맞바꿔 내구연한이 1년 늘어났지만 중간차의 내구연한을 다 채우지 않고 2020년에 퇴역하였으므로, 맞바꾼 의미가 없어졌다.[41] 1x62편성 출신 중간차 8량 포함[42] 1x82편성 자체는 1999년에 생겼는데 1996년에 어떻게 82 번호를 달고 나왔는지 의문이다. 6량 편성 존재하던 시절은 1x85편성에 편입되었다가 모든 편성 10량화 이후 내장재 개조 전은 1x54~57, 1x64~66편성 중 한 곳에 끼워서 다녔으며 실제로 가연재 시절에 1x66편성에 끼워서 다닌 적도 있다.[43] 다만 1x57편성과 1x58편성, 1x62편성, 1x63편성은 2량만 증결되어 6량으로 다니다가 1999년이 되어서야 초저항 객차를 통해 10량으로 증결되었지만 얼마 안가 객차 재배치를 하면서 1x57을 제외하면 1x58, 1x62, 1x63은 중간객차가 다른 중저항(주로 1x54~57, 1x64~66)에 배치되고 이 차들은 8량 모두 초저항으로 다녔으며 그 외에도 편성번호는 순수였던 1x50~53, 1x59~61 역시 가끔씩은 정비 관계로 임시로 조성이 바뀌기도 했다.[44] 이런 식으로 차번이 꼬여서인지 스무 개 가까이 된 중저항 전기 편성 중에 10량 전체가 직사각형 출입문인 편성은 1x43~49편성 뿐이었으며, 이 차량들마저도 2009년 후반부터 퇴역 전까진 T 차량을 초저항 중간 객차로 끼우고 다녔다.[45] 1x81, 1x83~84는 1984~85년산 T칸 2량을 끼우고 운행했고, 1x85~86은 Tc 차량을 제외한 1980~1981년산 M칸 6량과 1984~1985년산 2량을 끼웠었다. 물론 그 당시에 중저항 번호를 받은 신저항 객차들은 당연히 본 편성에 다녔다.[46] 여담으로 현대정공 신저항은 1994년에 도입된 대우중공업 신저항에 비해 개조를 약간 늦게 했다.[47] 1x80, 1x84편성은 인천역 동북측에 있는 인천분소에 주박된 적이 있으나, 현재는 구로기지에 유치된 상태.[48] 다만 1x82편성을 받은 차가 TC차 말고도 2량이 더 있다. 1x64편성에 있는 1482, 1582호가 그 증거. 현재 1x85편성의 부수 객차로 도입되었으며 1999년 이후엔 중저항 1x54~57, 1x64~66 중 한곳에 조성되어서 다녔으며 실제로 1x66편성에 조성되어 운행했던 이력이 있다.[49] 2003년부터 실시된 코레일의 내장재 불연재화 개조에서는 폐차 기한이 5년 이하로 남은 편성은 포함되지 않았다.[50] 1x42, 1x43편성에서 차출했다. 1x82편성의 경우 1082호는 1842호, 1182호는 1942호 출신이며, 1087호는 1943호 출신이다. 이렇게 되면서 1x43편성은 1941호 객차를 투입해 중저항끼리 짝을 맞출 수 있지만, 1x42편성의 경우 남는 중저항 부수객차가 없어 초저항 객차 후기형을 끼우고 다녔으며, 2010년은 2차량 모두 초저항 부수객차 초기형으로 부수차가 교체되어 운행했다.[51] 1x29~35편성에서 차출했다.[52] 창문이 (위아래로 큼직하게 열린) 낙창식 창문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반면 요즘 전동차들은 반개폐식이거나 통짜 유리다.[53] 2009년까지는 정비 관계로 인해 조성이 자주 바뀌었으며 본래 순수 편성인 차량들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2010년 이후로는 조성이 고정되었다.[54] 1x47편성은 4량이었고 무려 초저항 동력 객차도 2량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1x42~43편성은 개조저항을 만든다며 부수 객차를 각각 2대, 1대씩 뜯어 가면서 1x43편성은 남은 중저항 무동력 객차 1량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1x42편성은 1986년산 초저항 부수 객차를 끼워서 굴려야 했다. 물론 이 두 편성도 2010년부터 1984~1985년산 초저항 부수객차로 교체되어 운행했으며, 다른 편성들도 상황은 비슷해서, 기존 부수 객차들을 신저항으로 넘기고 초저항 부수 객차들을 끼워서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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