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설 (r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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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창조설(創造說)은 우주 만물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에 의해 창조됐다는 교리인 창조론을[2] 과학의 영역에 도입한 가설이다.과학에는 확실성 없는 증거가 있다. 반면 창조설 신봉자들에게는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확실성이 있다.
참고로, 창조설과 창조론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연과학은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 '가설 → 이론 → 입증'의 순서를 밟는데, 진화론은 이미 각종 근거와 증거로 입증된 상황이지만, 창조설은 해석과 추측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소리만 있지, 제대로 된 체계와 추론과정이 없으므로 '이론'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2. 표기[편집]
창조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론(論)"이라는 한자어는 담론, 공론, 의논, 논변, 논문 등의 준말로 사용되므로 일반적인 자리에서 창조론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무신론 갤러리 및 네이버 캐스트에서는 '창조"설"이 대표적인 표기법이 되었다. 그 후 유신론적 진화론자 사이에서 창조신화와 창조과학을 분리시키고자 전자는 창조론, 후자는 창조설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향이 생겼다.
3. 현황[편집]
창조설을 유사과학으로 분류하곤 하는데, 창조설은 나름의 체계와 추론과정이 없기 때문에 유사과학의 범주에 넣기도 어렵다. 그래서 과학자뿐만 아니라 신학자도 창조설을 오개념으로 일축하곤 한다.
모든 종교인이 창조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장 칼뱅도 "창세기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쓴 것", "초자연적 신비는 어리석은 자도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적은 것"이라고 비유적인 표현임을 주장했다.
이것은 과학이론이 아니며, 신에 대한 증명을 상정하지 않는 기독교 교리상 과학과 양립할 수도 없다. 공통점은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만 방식은 정반대이다. 창조설은 기독교의 문자주의적 창조교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이며, 종교적 운동에 가깝다.
창조설자들이 '창조설의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고, 창조설은 과학이론이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결국 하나다. 바로 성경. 즉 근거를 대라고 하면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물론 비신자에게 성경은 아무 권위도 없는 책에 불과하니 이 시점에서 이미 모든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주장의 근거를 성경으로 들면서("성경에 나와 있음") 성경 비판론에 대한 반박으로 비판받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다시 근거로 드는 회피성 순환논리의 추태를 보인다. 이들에게 창조설은 명명백백한 사실이고, 남들이 뭐래든 신께서 부여하신 악마의 유혹이며, 신의 뜻에 따라 창조설이란 '사실'을 설득시켜 불쌍한 그들도 같이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만 남았을 뿐이다. 논리가 통할 리 없다.
창조설은 근본주의적 기독교로부터 지지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창조설을 주도하고, 미국을 벤치마킹한 한국 기독교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자 및 다수의 일반인에게 창조설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가르치는 것 또한 금지되어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지적설계로 이름을 바꾸어 창조설을 가르치려고 했으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각국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신학이나 철학으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적은 없으나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 카테고리에 넣으려 하기에 문제가 된다.
창조설은 젊은 지구설 / 오래된 지구설로 나뉘기도 한다. 젊은 지구설은 성경에 나오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주의 나이가 6천 년이라고 추측하는 주장으로, 창조설 중 한국창조과학회를 비롯한 가장 광신적인 부류에서 지지하고 있는 주장이다.
창조설은 단일격변설 / 다중격변설로 나뉘기도 한다. 단일격변설은 태초부터 현재까지 '노아의 홍수' 단 한 번만이 환경을 변화시켰으며 나머지 기간은 계속해서 안정된 상태였다는 주장이다. 다중격변설은 여러 번 격변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아예 부정하는 입장 / 처음 창조가 있었고 이후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입장과, 진화 개념을 둘로 나눠서 소진화는 인정하지만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 있다.
즉, 그들 내부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한국창조과학회 같은 단체의 글을 보면 저런 주장이 섞여있다.
이러한 현상은 창조설이 내부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주장을 가다듬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걸러낼 수 있는 자체 검증 시스템이 없으며, 일단 진화론을 비판하는 말은 인정해주고 보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말이 되든 안 되든 터뜨려놓고 반박을 받으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주장을 접든가 말을 바꾸고 있다.
창조설 지지자들의 다른 중요한 특징은 자체적인 연구나 실험을 거의 실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주장은 대개 다른 학문의 성과나 연구 결과를 그대로 가져온 후 거기에 종교색을 덧붙인 것이다. 어차피 창조설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상식적으로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험 설계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남이 해놓은 연구 결과 중 자기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창조의 증거인 것처럼, 또는 진화를 부정하는 증거인 것처럼 덧칠하는 수준 이상의 생산적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창조설 설파를 위해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 창조론 중심의 자연사박물관...이라고 스스로는 주장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Creation Wiki라는 창조위키까지 만들어서 창조설을 전파하고 있다. 한 번 들어가서 뭘 설명하는지 확인해 보자.
과학계에 유신론계 과학, 무신론계 과학으로 편 가르기가 있다고들 말하는데, 과학자 중 유신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지만, 유신론계와 무신론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유신론 과학자도 창조설을 유사과학 취급한다.
3.1. 창조설의 분파[편집]
한국창조과학회가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창조설=젊은 지구 창조설로 본다. 실제로 그들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창조설에는 여러 분파가 있다. 기본적으로 젊은 지구 창조설/오랜 지구 창조설로 분류되고 오랜 지구 창조설도 또 나뉜다.[3]
- 오랜 지구설: 어린 지구설에 반대하여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이나 우주, 지구의 나이를 인정한다. 다만 진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래된 지구 위에 생명이 창조되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된 창세기의 해석에 따라 이들도 둘로 나뉜다.
- 간격 창조설: 창조가 2번 있었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 1절이 첫 창조로서 우주의 역사와 고생물의 등장은 이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후 창세기 1장 3절에 나온 창조가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기존의 생물들은 멸종하여 화석이 되고 인간과 현생종들이 새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 날-시대 창조설: 성경의 행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지 모르니 섣불리 해석하면 안 된다는 창조설. 아우구스티누스(354 ~ 430)가 내놓은 이론이다. 기독신학의 교부(敎父)로 추앙받는 4세기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아우렐리우스는 6일에 창조했다는 성경 구절에 대하여 본인의 저서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De genesi ad literam)에서, "1일이 우리가 아는 1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주님께는 1일이나 1000년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보듯 날-시대 창조설은 1일이 문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라 긴 지질학적 연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 과학철학에서 바라보는 창조설[편집]
4.1. 유사과학(사이비 과학)[편집]
과학철학의 주요한 과제 중 하나는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여러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과학관을 피력하는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는 창조설을 유사과학으로 보고 있다. 이 중 칼 포퍼, 토마스 쿤, 임레 라카토슈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참고 자료: 네이버캐스트 - 과학시간에 창조론도 가르쳐야 할까? (장대익 교수)
4.1.1. 입증 불가능성[편집]
과학철학은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대해서 연구한다. 과학철학계에서는 창조설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는 창조설이 유사과학이라고 분류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우선, 창조설의 기초가 되는 '신의 존재'는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의한 입증이 불가능하다.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설계해야 할지 모르고, 또 어떻게 실험을 설계한다고 해도 그게 옳은 실험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현상 발견 → 가설 세우기 → 가설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 및 실험 → 결과 분석'이라는 과학적 연구 방법에서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과학적 실험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해도, 그 신이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를 했는지, 그리고 창조 행위를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창조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는 문제에 부딪힌다. 제아무리 실험실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신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명을 창조했다는 근거는 없으므로, 그 실험으로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실험은 '뜨거운 원시 지구에서 원자들의 화학적 결합에 의하여 생명이 자연 발생되었다.'는 현대 과학의 생명 탄생 가설에 대한 강력한 실험적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4.1.2. 반증 불가능성[편집]
그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이라면, 창조설은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창조설에선 '신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증을 위해 그 어떤 사례를 제시하더라도, 창조과학자들은 "그 역시 신이 설계한 것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창조설에 대한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반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하기에 창조설은 어떻게 보면 무적의 이론인 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경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막말로 확실하게 믿어지는 중력법칙도 어느날 사과가 위로 떠오르는 것이 관찰된다면 틀린 것이 된다.
그래서 저 이론은 '틀린' 이론이 된다. 왜냐하면 창조설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대부분 "순환 논증의 오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국어적, 언어적으로 순환논증의 오류에 해당하는 논리는 애초에 반박할 필요도 없는 틀린 논리다. 일반적으로 논리란 어떠한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근거를 들어 밝히는 언어 사고를 의미한다. 그런데 순환논증의 오류에서는 명제가 근거가 되고, 근거가 명제가 된다. 즉 '어머니'가 왜 어머니인지 밝히려면 그 근거로 어머니의 '자식'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순환논증의 오류에서는 "어머니가 어머니인 이유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라고만 한다. 자식이 없는 여성을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여성일 뿐이다. 창조설도 마찬가지다. 신이 생물은 설계한 게 맞다면 그 근거를 들고 와야 한다. 그런데 신이 생물을 설계하고 창조한 것은 성경에 써져 있고, 그 성경은 신이 썼다고만 한다. 신이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근거로 '신'만 내세우는 꼴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이처럼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론, 즉 반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이론은 과학이 아니다"고 하였다.[4][5] 그리고 칼 포퍼는 과학이 아님에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사이비과학 또는 유사과학이라고 불렀고, 유사과학은 과학 시간에 들여 놓아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4.2.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편집]
물론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이 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신론자들 중 생물의 진화 자체는 인정하는 사람들은 '신이 생명을 설계하면서, 진화도 같이 설계해 놓았다'는 주장(유신론적 진화론)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가설 역시 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은 위에서 보았듯이 검증도 불가능하고, 반증도 불가능하다. 해당 가설의 참/거짓에 대해서 연구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연구자는 할 일이 없다. 가설만 존재할 뿐 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존재할 수가 없다.[6] 따라서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은 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고, 그저 믿음의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가설은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교리적 성격을 가질 뿐이다. 물론 그러한 가설을 믿을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믿더라도 과학적 근거는 있을 수 없고, 그저 종교 경전 정도만이 그들 입장에서의 나름 근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철학계에서는 단지 종교의 영역에 속할 뿐인 창조설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자들은 과학이 뭔지 모르거나, 반지성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4.2.1. 그마저도 잘못된 믿음[편집]
또한,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이 참이라 쳐도, 그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모순이 드러난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있다. 즉, 창조설 자체가 신의 능력을 폄하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과학적으로 사이비이자 신앙적으로도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지전능이란 말부터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말은 어디에서든 존재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능력에 제한이 없다는 것도 의미한다. 당연히 시간 조작이나 현실 조작 같은,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초능력을 포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애초에 이러한 가정은 '전능 역설'로도 직결되는 가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굳이 '엿새'가 아니더라도, 단 1초만에 천지를 창조하는 것도 가능하기에, '1초 창조설'이나 '순간 창조설', 심지어는 인류 원리와 비슷한 극단적인 논리도 가능하다. 3차원에 사는 우리 인류가 2차원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듯 말이다. 또한 그 '엿새'가 실제로는 우리 인류가 보는 '엿새'와 같을 수 없다는 결론에도 도달한다. 다시 말해, 정말로 신을 믿는다면 굳이 '엿새' 같은 특정 기간에 집착할 이유도 없고, 결코 집착해서도 안된다는 것. 즉, 신을 찬양한다면서도 창조설을 내세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숫자에 집착하다 오류를 스스로 범하는 예는 십사만 사천 명 같이 숫자가 언급된 부분이라면 흔히 찾을 수 있다. 사실 독실한 목사들마저 알게 모르게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애초에 성경이라는 것이 특정 구절을 정확하게 나눈 것도 아닌데다가, 이야기 전개 등을 위해 불필요한 서술은 악마 등 초자연적인 존재를 통해 생략하기도 하고, 동양에서도 그랬듯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엿새'이니 '십사만 사천'이니 하는 숫자들의 비유적인 뜻 혹은 2000년 간에 성경 필사 과정 중에 생긴 오류로 생각해야지, 그 단어의 표면적인 뜻에만 집착하는 행위는 뉘앙스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자백하는 꼴이다.
특히 창세기는 묵시문학적 표현이기에 숫자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어렵다. 지구의 형성 과정만 보더라도 '하루'의 정의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창조설 옹호자들이 고증 없이 창조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는 것과 같이, 창조에 대한 반박자들 또한 일부 신앙인들의 고증이 잘못된 근거를 창조설이 틀린 근거로 착각하지만 이 또한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다. 위와 같이 잘못된 이해를 가진 신앙인들이 있다고 해서 창조설에 대한 부정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5. 과학이라고 우기는 창조설자들[편집]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되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의 신을 독실히 믿겠다'는 사람을 비난할 구실이 없다. 하지만 다수의 창조설 지지자는 창조설이 '과학적'이며, '다른 사람이 믿어야 한다'고 하며,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진화론과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주장이나 반박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신앙적 영역으로 주장하며, 종교적인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데서 과학의 영역을 침햬하며 많은 지성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간혹 창조설을 진화론과 같은 위치에 놓으려고 하는 지지자가 있는데, 창조설이 과학계에서 가지는 위치는 사학계의 환빠 그 이하이다.
창조설 이론이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면 기독교 밖에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창조과학을 수많은 성경 해석의 방법들 중 하나로 주장하는 것이라면, 신학계 밖의 학자들 중에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험 설계를 통한 과학적 입증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을 가지고 과학이라고 주장하기에 까이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창조설자들에게는 '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반증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목적은 단지 과학의 이름을 빌어서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이 맞는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설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진화론을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이유다. 실험적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실험상의 오류 역시 생길 수 있는 진화론에 대해서 갖은 주장으로 공격함으로써, 어떠한 반례 제시도 불가능한 자신들의 학설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진화론이 거짓이라고 해도, 그것이 창조설이 우위에 있다는 뜻은 아니며, 창조설은 실험이라도 가능한 진화론과 달리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입증하는 과정도 거칠 수 없다.
창조설이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주로 진화론이 가지는 불확실한 부분을 지적하며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설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흑백논리에 지나지 않아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창조설이 맞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누군가가 생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식의 창조설이 맞는다는 보장 역시 없다. 가령 신이 아닌 외계인이 지구상의 생물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외계에서 왔다는 주장은 그럼 그 외계에서 온 놈은 어떻게 창조되었냐 하는 질문 하나로 순환논리의 덫에 빠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종교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자 드립으로 무책임하게 회피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존의 진화론에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그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서 계속 발전해나가는 것이 과학이다. 만에 하나, 진화론이 근본적으로 거짓이라고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과학자 입장에서는 그냥 진화론을 폐기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워서 실험을 통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창조설은 결코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할 수 없는 수준의 주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창조설자들은 과학적인 주장이 있다며 외국인 교수들의 해설문이나 논문을 자료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자료들이 대부분 날조거나 인정받지 못한 논문들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1980년 폭발했을 때의 예를 들어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 시절의 대홍수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주장하며 지각 변동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논문이 있다. 그런데 지구과학계에서는 "말이 되냐?"라고 비웃었고,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인용된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또 비웃음을 샀다. 애초에 상당한 권위를 가진 지질학자 중에서 저 논문의 발표자가 한 말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 중 과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은 창조설을 굳이 과학과 연결하려 하지 않는다.
종교는 믿음을 가장 중요시하는 데 반해, 과학은 의심하는 자세를 중요시하므로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두 영역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창조설에 과학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창조과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비판받을 지점이다. 창조설 지지자들은 창조설을 과학으로 입증하겠다고 말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창조설은 과학적 입증과 반증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창조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 믿을 수 있다면, 굳이 종교의 카테고리에 구속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옳은 일인가는 또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6. 성서적으로도 맞는가?[편집]
이 문단은 진보신학적 입장에서 작성되었다. 다만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도 이와 유사한 의견을 표한 경우가 많다.
한국 기독교와 미국 내 보수주의에 팽배해 있는 성서무오설 때문에 진화론이 비판받고 있다고 본다. 조직신학 교과서는 노지구설, 진화론, 문학적 구성설 모두 양립 가능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창조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인데, 구약학 전공자 중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억지로 과학이론을 끌어들이다 보니 성경의 논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신학자보다 보수적 목회자, 신자, 비생물학 전공의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로 이루어져 있다.
창조설은 성경의 권위를 과학에서 찾는다. 신앙의 토대가 과학인 것이다. 신앙이 과학이론을 기반으로 세워졌을 때, 과학이론이 무너지면 신앙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반면 과학자는 자신의 주장이나 이론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며 작업해야 한다. 과학자는 "진화론이 확고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진화론에 반하는 정확한 증거가 나오면 미련 없이 진화론을 폐기할 수 있지만, 당장은 그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일단 진화론을 사실로 추정하고 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과학자에게는 새로운 강력한 증거가 나타나서 기존의 과학 이론이 폐기되는 것이 매우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오히려 기존의 이론을 폐기시킬 만큼 정교한 이론이라면 실재(實在)를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기존 이론을 뒤엎는 일은 과학자에게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바로 그 영광을 위해, 기존의 이론들을 예의주시하며 허점을 찾기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이다. 결론적으로, 과학은 신앙의 토대로 쓰기에 부적절하다. 과학의 이런 특성도 모른 채 과학 위에 신앙을 세우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여담으로 로마 제국 시절 유명한 교부 성(聖)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창조설을 대놓고 겨냥한 듯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창세기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창세기에 담긴 신학적인 의미를 꼼꼼하게 연구해서 받아들여야지, 문자로 기록된 내용만 어설프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불신자에게 망신당하고 다른 신자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라는 뜻으로 읽힌다. 성경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실제 우주 모델은 엄연히 다르며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헛소리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1,600년 전 사람이자 가장 독실한 크리스천 중 한 명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겼다는 것은, 이미 그 시대부터 크리스천의 간판을 내세워 오늘날의 창조과학자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덤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6일창조에 대하여 "1일이 우리가 아는 1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 하느님께는 1일이나 1000년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대개의 경우, 지구와 하늘과 이 세상의 구성 요소, 천체의 움직임과 궤도 그리고 크기와 상대적 위치, 일식과 월식의 예측, 일년과 계절의 순환, 동물과 식물 광물 등의 종류 등에 대해서는 기독교 비신자들도 많이 알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은 이성과 경험에 의한 명확한 것이다.
그런데, 비신자에게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의미를 앞세우며 그러한 주제에 관해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소리를 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위험한 일이다. 이는 기독교 신자의 엄청난 무식함을 드러내어 비신자들의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그런 창피한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 수치는 단지 무지한 개인이 조롱받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믿음의 울타리 밖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신성한 성경 저자들 역시 그렇게 무식하다고 생각하게 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힘들게 일한 것도 소용없이, 우리의 성경 저자들이 배움이 없는 이라 여겨져 그들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비신자들이 자신들이 매우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이 실수를 하고 우리의 성경에 대한 그런 멍청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비신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의 경전이 자신들이 경험과 이성으로 습득한 것들에 대해 오류로 가득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어떻게 죽은 자의 부활, 영생의 희망, 하늘의 왕국을 믿게 할 수 있겠는가?
경솔하고 서툰 성경 해설자들이 유해한 오류에 빠져 우리의 신성한 성경의 권위 밖의 이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은 보다 현명한 그들의 형제들에게 전에 없는 곤란과 슬픔을 가져다 준다.
그럴 경우, 그들의 멍청하고 명백히 틀린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그 증거로써 성경을 내세우고 심지어 그들이 기억하는 많은 문장들이 그들의 입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1:7)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I- XIX-39, A.D. 408
고생물학자인 로버트 바커 교수는 창조설자에게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읽고 와라"라고 말한 바 있다.# 바커 교수는 공룡이 둔한 파충류가 아니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온혈동물임을 주장한 '공룡 르네상스'의 주역 중 1명이며, 동시에 에큐메니컬파 크리스천이다.[7] 단 바커는 창조설자뿐 아니라, 신학에 대해 무지하면서 창조설=그리스도교로 동치시키는 일부 과학자에게도 똑같이 "너희도 아우구스티누스 읽고 와라"라는 말을 했다.
7. 종교적 가치관과 과학적 방법론의 충돌[편집]
1. 종교적인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2. 창조설을 도입해야 할 타당성과 개연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드물다.
3. 그래서 창조설이 진화론 및 "반창조"적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기존의 응용과학에 어떤 대체 학술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가?
4. 전문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설사 앞서 언급한 학술적 엄밀함의 측면을 떠나 소위 전공/학부 같은 정통성이나 자격의 (말했듯 아주 무의미 한건 아니므로) 측면에서 따져 본다 한더라도, 창조설을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련 과학분야를 전공하거나 관련 과학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굳이 창조설을 입증하겠다면 성경에 있는 내용부터 과학적으로 증명해야하므로 지질학, 고생물학, 천문학, 천체물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 그나마 신자들과 대중에게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15] 하지만 이들 내부엔 저 4개의 전공을 가진 과학자들은 전혀 없으며, 설령 비슷한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세부 전공이 다른 케이스를 볼 수 있다.[16] 그나마 이런 경우라면 다른 전공 지식도 대학교에서 배웠기에 어느정도라도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케이스도 앞의 것보단 비율이 다소 높을 뿐, 비율상으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이들 중에선 전자공학, 기계공학, 의학 등 여기에 상관이 거의 없거나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자기 전공 분야의 지식은 전개가 가능한 학문[17] 을 전공을 한 (응용)과학자도 많고, 심지어 변호사 같은 인문학 계열도 있다. 이 현상이 반복되다보니 해외에선 심지어 기계, 전자공학자들과 창조설의 상관관계에 대해 비꼬는 Salem Hypothesis 라는 가설도 있다. 과학이 워낙 거대한 학문이다보니 자기 분야의 유사과학은 잘 아는 전문가들이 옆동네의 유사과학은 잘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5. 창조설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들이 학술적 연구성과는 보여주지 않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으로 점철되어있다.
"전자의 지식을 실험과학(experimental science)이라 부르고 후자의 지식을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 혹은 기원과학(origin science)라고 부른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관찰과 실험이 불가능한 역사과학이다. 실험과학에 대해서는 창조과학자들이건 진화론 과학자들이건 별 이견이 없다. 사실을 다루기 때문에 어떤 이론의 사실 여부를 현재 혹은 내일 실험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실험과학적인 내용은 모든 과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게 된다."}}} 라고 발언 한 곳인데, 그들만의 임의의 방식으로 진화론을 소위 "역사과학"으로 분류하여 거부하는 논리로 쓰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우리는 우리가 직접 목격 혹 기억하지 못하는 가장 어릴 적 기억의 이전의 모든 역사와 사건들까지 거부하는 논리로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런 논리는 유아론과 같이 말 자체로써는 타당할 수 있어보이나 그렇다고 별 다른 대책이 나오는 것도 아닌 논변들과 별 다르지 않다. 역사, 혹 역사 이전의 것들을 탐구하는데에도 과학이 사용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이 말하는 자연법칙에 대해 깔려 있는 거대한 전제, 즉: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과거, 현재, 미래에도 같은 규칙을 가지고 일어날 것이다"라는 전제 위에서 전개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이 전제가 틀렸다는 걸 의심 할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을 정도로 예측/재현성의 신뢰도가 지난 몇백년간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검증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해당 칼럼의 투고자의 주장대로라면 과학은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데만 유효하다. 이런 논리를 관철하고 있으니 수 많은 고생물의 화석이나 오랜세월 당대의 화학적 특성들을 담아온 빙하나 지층들조차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갖다 놓으신 것이다."와 같은 주장으로 반박하는 시늉만 해줘도 박수갈채를 받는다.]
6. 그릇된 탐구 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과학 이론이라 부를 수 없다.
그릇된 탐구 과정이라는 것은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과학자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교리나 신앙고백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대게 데카르트와 뉴턴 시절 쯤의 계몽시대부터 축적돼온 자연을 법칙을 알아내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쌓여오던 성공과 실패사례, 노하우와 성찰, 논리와 메타논의들의 정수를 추려내 체계적인 철학으로 정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19] 이러한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사용해서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의 산물 – 응용과학 – 즉,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통신, 의학 등 과거 초강대국의 황제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현대문명의 혜택을 만들어내는 법을 알아내고 이룩해내게 도와준 어마어마한 실적을 생각해보면, 과학적 방법을 맹목적인 교리나 신앙고백으로 여기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적 방법론이 과학철학적 성찰을 통해 개선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과학적 방법론의 기여도가 무가치하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과학적 방법의 특징 중 하나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를 지지하는 증거들만 골라 취사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연구자가 자신의 가설이 맞길 바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바램이나, 그 가설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물증들을 취사선택하는 등의 연구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는 귀납적인 추측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나, 그 추측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떨어지는지,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얼마나 되는지 등의 가설에 대한 입증/반증여부는 자연에 대한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들을 분석해서 결정하며, 연구자 자신조차도 결과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런면에서 이 과정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귀납적인 가설에 대해 일종의 연역적인 피드백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20]
자연으로부터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성공적으로 이행한 실험내용과 가설은 학회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연구 과정을 재현하려는 시도들이 다른 학자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현성이 떨어진다면 그 가설은 이론으로 격상되는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현성이 좋다면 이론이 되는데에 좋은 첫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이 실험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으로 가설을 실험해보는 시도들이 나올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설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더 높아질 수도, 추후에는 이론으로 격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격상된 이론이 틀렸다는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있거나 지지하는 근거가 쌓이면 그 이론은 버려지고 그 반례들까지 실험으로 포괄 가능한 이론으로 보강된다.[21]
반면 창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전부 다 실제 일어난 일이다"라는 결론을 정해 놓는다. 그리고 이 결론이 부정되면 자신의 신앙이 무너지기에 이 결론은 어떻게든 참이어야 하는 것이다.[22] 그렇기에 이 연구자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자신의 결론에 기존 과학개념이 맞도록 짜집기할 수밖에 없다. 반증 불가능, 반증되면 안 되는 결론을 정해놓고서 가설/이론인 것처럼 부르는 것이기에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연구자의 이해상충 혹은 이해충돌이라고 해석할 여지까지도 있으며, 꼭 과학적 방법론이나 연구 윤리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왜 치팅인지 납득할 수 있다.
창조설자들은 자신이 학술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없으면서 적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넓힌다. 창조설에 모순이 있더라도 무시해버리고, 진화론을 지지하는 "위험한 이론들"의 "허점"만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근거 A를 다른 근거들과 같이 보거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특정 이론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근거 A만 따로 보면 특정 이론에 적합해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23] 창조설자들은 수많은 과학 개념과 연구 결과 중 조금이라도 허점을 발견하면 그 개념을 창조설의 근거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설은 이론에 모순이 있어도 그 간극에 신으로 떼워 넣으면 그만이고, 자신이 무너뜨린 "위험한 이론"들의 부재로 공백이 생기든 말든 또 다시 기독교의 신으로 떼워넣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간편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24] 가 따로 없다.
8. 세계 동향[편집]
8.1. 미국[편집]
1925년, 제대로 못 배운 정치인들이 나치처럼 우성 인종에 대한 설명을 곡해한 결과 벌어진 스코프스 재판으로 인해 40여 년간 테네시주 교육계에서는 진화론이 퇴출되었다. 종교계의 입김이 워낙 큰 나라인 만큼 교육 과정에서 진화론의 재도입은 한동안 지지부진했으나, 1951년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해 커다란 안보 위기가 발생하고 과학/공학 인력 확충의 필요성이 종교계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하게 대두되면서 진화론은 대다수의 생물학 교과서에 다시 수록되게 되었다. 4개의 주가 끝까지 버텼으나, 1987년 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에서 미국 대법원은 정교 분리 원칙 위반을 이유로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였다. 물론 신학대학교 같은 곳까지는 터치하지 않고, 공공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것을 못하게 한 것이다.[25] 당시 대법원은 창조설 교육을 "과학으로 위장해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려는 시도"로 판단해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인종/다민족/다종교 국가인 미국은 특정 종교의 교리를 옹호하거나 보조하는 형태의 가설이 발표될 경우 특정 민족/종교의 세력을 확대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판단해서 제지하곤 한다. 아무리 기독교가 미국에서 세력을 떨쳐도 여기까지 건드리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특정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지적설계설이 만들어졌지만, 야훼를 지적 설계자라는 것으로 바꾸었을 뿐,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란 조소를 받으며 위법 판결을 받는다.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교회 연합의 높은 지지를 받던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이에 대한 소송을 걸었는데 자료부터 주장까지 신의 뜻이라는 말을 주장해서 패소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소 직전까지 자신들은 창조론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뒤엎는 문서가 발견돼서 패소했다. 이 재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자.
지적 설계를 주장한 교회 연합과 신의 뜻을 주장한 펜실베니아 주의 재판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 재판에 참가한 과학자와 재판의 내용을 접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패러디 종교가 만들어지게 된다.
또한 2006년, 교회 연합이 창조설을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부결되었고, 교회 연합은 이에 반박 재판까지 벌였으나 3심 모두 기각되었다. 그러나 몇몇 지역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등) 은 보수 대학들이 아직도 가르치고 있으며, 밥 존스, 리버티, 펜서콜라에서 성행하고 있다. 창조론 기반의 자연사 박물관은 미국이 원조다. Creation Museum이라 해서 몇 군데 있는데, 특히 칼 보(Carl Baugh)가 운영하는 박물관은 발자국 유물을 어마어마하게 위조하기로 유명하다. 어쨌거나 위의 학교를 나오면 학기당 한 번씩 무료로 갈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미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창조설을 믿는 사람이 42%, 유신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3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졸자에 한해서는 양쪽 모두 27%에 그쳤다. # 그나마 현역 과학자 수준까지 올라가면 창조설 1%, 유신론적 진화론 7% 정도로 양쪽합쳐 한자리 숫자로 떨어지긴 한다.#
2015년에는 이러한 창조설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정리한 도표가 사이언스지에 직접 공개된 바 있으며, 이것으로 계통수까지 그려졌다.
미국은 생각보다 강력한 개신교 국가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기도 한만큼 개인 의사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지켜지는데, 여전히 복음주의 기독교 가치관이 상대적으로 많은 몇몇 상대적으로 다양한 지역에서는 (주로 미국 중부와 남부와 북부) 사립학교에서 창조론만 과학으로 가르쳐도 주 정부가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공립학교에서는 창조론만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될 지 몰라도, 사립 학교의 경우는 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을 때 커리큘럼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커리큘럼을 선택할 때 대표적인 침례교 베이스 출판사인 "아베카 (Abeka)" 를 선택하게 되면 과학, 역사의 영역에서 창조론만이 유일한 진리로 교육된다. 진화론에 반감을 가진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공립학교에서 자퇴시키고 보내거나, 아예 홈스쿨링을 시키는 경우 주로 이용하는 교재다.
하지만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이든 일반적인 대학을 가고 싶다면 진화론을 공부해야 한다.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미국의 명문대와 주립대는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렇게 창조론 교육만을 받고 온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 심지어 신학대학이 있는 하버드 대학교조차 현대 과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필수적으로 요구할 정도다.[26]
8.2. 유럽[편집]
2007년 유럽의회 의원총회(PACE)는 47개 회원국의 공립학교에서 과학 수업시간에 창조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표결했다. PACE 측은 "종교적인 이유로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며 "이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인권도 위협할 수 있다." 고 밝혔다.
2009년 영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51%가 "진화론이 생명체 탄생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중요한 단계에 '설계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27] 에 동의했다. 40%는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머지 9%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신이 1만 년 이내의 어느 시점에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진실로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32%가 '믿는다'고 답했고, 60%는 '믿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8%는 '모른다'고 답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인들이 과학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나타내는 설문조사라고 평가하였다.
다만 유럽의 기독교는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와는 달리 진화론과 다투려는 경향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유럽의 기독교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거치면서 자연 연구는 과학에 맡기고 우리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만 집중하자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20세기에도 이어져서 20세기 기독교 신학이 실존주의적인 성향을 띄게 된 원인이 되었다. 어찌 보면 스티븐 제이 굴드의 NOMA 개념과 비슷하게 과학은 과학의 언어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경향이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고 볼수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서로 담 쌓고 지내면 발전이 없다고 해서 과감하게 진화론 등을 수용하는 측도 있긴 하다.
8.3. 중동 및 이슬람권[편집]
이슬람권도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과정에서 서구와 똑같이 수학과 과학을 배운다. 그러기에 우수한 인재들이 서구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종교 교육은 따로 하지만, IS나 탈레반 같은 사이비 막장이 아닌 이상 국력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 과학을 안 가르칠리가 없다. 따라서 진화론을 대충이나마 배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신정국가인 이란 학교 과정에서도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한다 한편 세속주의 국가인 튀르키예에서는 튀르키예 독립전쟁 이후 쭉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2017년 교과서에서 삭제한다고 밝혔다. #기사.
일반 무슬림 대중 역시 진화론과 창조설을 받아들이는 의견이 갈린다. 일반 대중은 창조설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이는 기독교처럼 진화론을 적대한다는 의식을 명확하게 하고 창조설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교육을 꾸란으로 받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면이 크다. 상당수의 이슬람권 국가들은 소수 엘리트를 제외하면 보통교육이 잘 완비되어 있지 않고 평균적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통계에 따르면 무슬림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비율은 개신교인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비율보다 낮지만, 복음주의 계열[28] 기독교인보다 높다.
가끔 이슬람 창조설 지지자들과 기독교 계열 창조설 지지자가 종종 힘을 합치기도 한다.[29]
이슬람에서도 기독교권과 마찬가지로 창조설을 비유로 받아들여한다는 의견이 예전부터 있었다. 찰스 다윈보다 1000년이나 앞서 진화론을 주장한 알 자히즈 라는 신학자도 있었다. 사실 꾸란은 성경보다 훨씬 뒤에 (성경의 영향을 받아)성립되었다.[30] 구약성경의 창세기가 대체로 기원전 400~1500년 정도에 성립되었다는 설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꾸란은 구약성경의 창세기보다 최소 1000년 이상, 최대 2000년 뒤에야 쓰여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집 방식 자체가 창조부터를 연대기순으로 다루는 성향이 아니다보니 성경에 비해 과학과 충돌할 여지가 훨씬 적은 편이다.
9. 대한민국[편집]
한국은 1960년대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 집필 규정에는 창조설이 들어갈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재를 걸어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활발한 포교 활동을 하던 교회들이 창조설을 주장하였고, 이를 아니꼽게 본 당대의 지식인들이 훗날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관직에 오르면서 금지시켰다는 설이 지지를 받고 있다.[31]
1970년대 중반, 일부 미션스쿨계열의 고등학교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냥 무시되었다.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어 계속해서 창조설을 퍼뜨려 왔으며, 2009년 5월 창조과학회에서는 창조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법규의 삭제를 요청하는 헌법소원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 진화론 개정추진회 출범.
한국에서 진화론을 옳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대략 60% 정도. 원본 글처럼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에서 나온 것이라면 2009년의 조사 결과로,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가톨릭[32] 과 개신교의 차이가 인상적이다. 사실 불교 쪽도 의외로 비율이 낮은데, 그건 불교 쪽에서 창조론을 만든 게 아니라,불교는 불교적으로 별로 중요치 않아서 그럴 확률이 높다.[33] , 종교 없음인 경우도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라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오히려 가톨릭은 교황청이 진화론을 인정했고 진화론을 권장하기 때문에 불교와 무종교보다 높게 나온다. 즉 사실상 개신교 쪽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셈이다.
근래에 들어서 일부 개신교계 선교단체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인정하려는 듯한 추세를 보이는데 그 이유인즉 사범대 자연과학계열 학생들의 집단 반발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34] 요즘 창조과학 세미나에서는 '창조설만 맞는다고 하진 않아요. 하지만 진화론과 같은 레벨의 가설적 이론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에 초점을 맞춰서 강의하고 있다.
물론 이런 추세 말고도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에 비판적인 시각이 한국 기독교 내에도 제법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장대익, 신재식, 김윤성의 "종교전쟁"을 참조하기 바란다. 특히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히트 이후로 무신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의 궤변이 도킨스의 무신론을 불렀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유신론적 진화론, 혹은 진화론적 유신론이 대안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기 때문에 창조과학 협회 측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이나 진화론적 유신론도 결국 진화론에 불과하다고 어떻게든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라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되는 한국 창조과학 협회의 창조과학 탐사에서 진화론적 유신론도 결국 진화론이며 현실과 타협한 매우 잘못된 이론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쨌든 2017년 기준의 대세는 기독교에서도 진화론을 인정하는 추세이나 한국에서는 아직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세간의 인식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편.
기독교에서 만든 신문인 국민일보는 창간 초기에 지속적으로 창조설을 밀었다. 심지어 정근모 박사까지도 비슷한 글을 올렸으니... 앞서 말한 여러 논문들이나 이론도 국민일보에서 한두 번 정도 다루었다. 90년대 이후로는 미션 섹션에 단순히 신앙이나 QT 선교 관련 기사만 실어주고 창조설이나 환빠, 뉴에이지 비판 주장은 없어진 상태이다. 하지만 2018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가짜 뉴스를 인용해 다시 창조설을 주장하는 황당한 행동을 시작했다. 해당 뉴스는 완전 가짜 뉴스로 밝혀진 상황.[35]
크리스천투데이에서도 창조설을 민다.
2015년 8월 11일, 연세대학교에서 2학기에 창조과학 수업을 개설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학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1학점 짜리 교양으로, 수업을 담당할 교수는 전기공학 전공자이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진화론도 빅뱅 이론도 모두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며 누가 본 것도 아니므로[36]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수업 내용은 생명의 출현, 종(種)의 기원, 노아의 홍수, 우주의 기원, 공룡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의 계획서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전의 장로교 계열 4년제 대학교인 한남대학교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에 기초한 창조과학 교양과목을 진행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기준으로 부산의 고신대학교에서 정병갑 교수가 창조과학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 중임이 확인되었다
포항의 한동대학교에서는 교양 필수 과목으로 '창조와 진화'나 '기독교 세계관'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둘 모두 창조과학을 다루며 진화론을 부정한다. 그 외의 종교 과목에서는 교수의 강의 스타일에 따라 정도나 비중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같다.
2017년 들어 문재인 정부의 첫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인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였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2017년 8월 25일에 이사직을 사임하고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의 자기 기고 글을 삭제했다. 그전에 역시 문재인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첫 장관인 유영민도 창조론자 논란이 있자 청문회에서 자신이 창조과학론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25일 네이버-JTBC뉴스룸 비하인드 뉴스 종교관 논란 …다시 등장한 '창조론'
비타민C 만능론과 코로나 백신 관련 주장으로 유명한 서울의대 이왕재 교수도 창조설 지지자이다.[기자] 첫 번째 키워드는 < 다시 등장한 '창조론' >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지명이 됐는데요. 박 후보자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앵커] 한국창조과학회. 낯선 시청자분들도 계실 텐데 어떤 단체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 주시죠.
[기자] 설명드리면 그러니까 진화론을 부정하면서 과학을 통해서 성서에 등장하는 창조론을 증명하고자 하는 학회입니다. 그래서 박 후보자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모든 분야에 성경적인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지난달에 임명된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같은 논란이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유 장관은 "자신은 창조과학론자가 아니다. 그리고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명을 해서 논란이 잠재워졌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박 후보자의 과거 이런 활동들 청와대에서도 미리 알고 있었겠죠.
[기자]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 청와대에서 "임명 전에 알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그러면서 종교가 공직자의 임명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종교관이 만약에 문제가 된다면 청문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본인의 해명을 듣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 후보자의 비주류 과학에 대한 신념이 새로운 기술을 다루는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냐, 이런 지적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좀 커지니까 박성진 후보자가 오늘 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앵커]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사임했다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제까지 이렇게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기고글도 삭제가 된 상태고요.
10. 창조설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적 한마디[편집]
- 찰스 다윈 : 아마 우리는 절대로 어떤 강(Class)의 구성원들 사이의 복잡하게 얽힌 유연 관계를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목표[37] 를 눈앞에 두고, 어떤 미지의 창조 계획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느리지만 확실한 진보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38]
- 리처드 도킨스 : 신앙이란 증거가 없어도(심지어는 반대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맹신; 눈앞에 반박 증거가 보여도 눈을 감고 믿는 것)을 말한다.[39] / 지적설계설에서 거론되는 '지적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
- 스티븐 호킹 : 우주에 시작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창조주가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모든 것을 완전히 품고 있으며, 우주에 경계선도 가장자리도 없다면,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가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창조주의 자리가 어디일까?
- 토마스 헨리 헉슬리 : 나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보다[40]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욱 수치스럽습니다.
- 정재승 :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단지 종교적 선택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적 성취를 부정하는 '반과학적인 태도를 지녔다'는 뜻이다.
- 이정모[41] : 창조론을 믿어도 된다. 창조과학자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신앙을 과학이라고 우기면 안 된다. 신앙은 신앙이고 과학은 과학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성서의 말씀은 신앙과 과학의 문제에도 유효하다. 과학은 신앙을 넘보지 않는다. 신앙도 과학을 넘보지 말고 각자 자기 영역을 지키며 착하게 살자.
11. 관련 작품[편집]
12. 관련 문서[편집]
- 근본주의
- 한동대학교: 대표적인 보수 개신교 대학인 만큼 창조설을 상당히 밀어준다. 관련 강의도 자주 개설되는 편.
- 젊은 지구 창조설
- 반동주의
- 광신도
- 유사과학
- 진화론/비방에 대한 반박
- 지적설계
- 인류 원리
- 온누리교회: 한국 개신교에 창조과학을 퍼뜨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교회이다. 자체적으로도 창조과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창조과학회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 유신론
- 유신론적 진화론
- 창조과학회
- 창조론
- 창조좀비
- 창조설/비판
- 창세신화
- 진화
- 지구공동설
- 크리스천투데이
- 파스칼의 내기
- NoiseSymphony진화론 vs 창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