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클리드
덤프버전 :
우주 망원경에 대한 내용은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 문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본명인 '에우클레이데스'(고전 그리스어)보다 영어 발음 표기인 '유클리드(Euclid)'로 알려져 있다.[1]
그리스령 식민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혈통이 그리스계인지 이집트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시절의 기하학은 오늘날의 수학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으므로[2]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뛰어난 수학자인 에우클레이데스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왕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워 그에게 물었다.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에우클레이데스는 "왕이시여.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3] 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격언은 워낙 오래된 말이라서,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에우클레이데스 본인이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말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메나이크모스 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제자 한 명도 "이렇게 딱딱한 정리들을 배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노예 한 명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자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주어라. 저놈은 자신이 배운 것으로부터 반드시 본전을 찾으려는 놈이다."
주요한 업적은 기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서인 《원론》(Στοιχεῖα, Elements of Geometry)을 남긴 점이다. 그 외에도 반사광학(Catoptrics)과 카논의 구분(Sectio canonis) 등의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논고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265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테네 학당에서 오른쪽 아래에 컴퍼스를 들고 있는 이가 바로 에우클레이데스다.
호페르 에데이 데익사이(ὅπερ ἔδει δεῖξαι / hóper édei deîxai, '이것이 보여야 할 것')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데[4] ,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하면 Quod Erat Demonstrandum가 된다.
기하학 원론. 혹은 유클리드 원론이라고 불린다. 에우클레이데스가 기원전 3세기에 집필한 책으로,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은 기하학과 정수론을 다루고 있는데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당대에 알려져 있는 수학에 관한 내용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한다.
제 1권에서 제 4권까지는 2차원 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 5권부터 비율과 비례로부터 시작해 기초적인 수론을 다룬다. 제 6권에서는 제 4권에 이어 이를 도형에 적용하고 제 10권까지 다시 수론을 다룬다. 제 11권에서 제 13권까지는 3차원 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약 2천년 넘게 수학, 특히 기하학의 주 교과서로 쓰였다. 19세기 말부터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태동하면서 기하학의 영역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포함한 형태로 더욱 확장되게 된다.
원론이 수학사의 고전이 된 이유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일정한 공리에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전개를 펼쳤는데, 이 방식이 바로 근대 수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 그리고 공준(공리 중에서 특별히 기하학적 성질을 가지는 것, 현재는 모두 공리로 통일)이란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전제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으로, 증명하지 않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공리를 근거로 하여 증명되는 것을 정리라고 부른다.
자세한 내용은 유클리드 기하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유클리드 호제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론에 나오는 두 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
두 자연수 A, B에 대하여 A를 B로 나눈 나머지를 R이라 하면, A와 B의 최대공약수와 B와 R의 최대공약수는 같다는 성질을 이용하여, B를 R로 나눈 나머지 R`1`을 구하고, 또 R을 R`1`로 나눈 나머지R`2`를 구하는 것을 반복하면 최대공약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유클리드 호제법이라고 하며 명시적으로 기술된 가장 오래된 알고리즘이다.
, SCP 재단의 주 등급에 대한 내용은 SCP 재단/유클리드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본명인 '에우클레이데스'(고전 그리스어)보다 영어 발음 표기인 '유클리드(Euclid)'로 알려져 있다.[1]
2. 상세[편집]
그리스령 식민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혈통이 그리스계인지 이집트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시절의 기하학은 오늘날의 수학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으므로[2]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뛰어난 수학자인 에우클레이데스에게 기하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왕은 기하학이 너무 어려워 그에게 물었다.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에우클레이데스는 "왕이시여.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3] 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격언은 워낙 오래된 말이라서,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에우클레이데스 본인이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말했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메나이크모스 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제자 한 명도 "이렇게 딱딱한 정리들을 배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노예 한 명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자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주어라. 저놈은 자신이 배운 것으로부터 반드시 본전을 찾으려는 놈이다."
주요한 업적은 기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서인 《원론》(Στοιχεῖα, Elements of Geometry)을 남긴 점이다. 그 외에도 반사광학(Catoptrics)과 카논의 구분(Sectio canonis) 등의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논고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265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테네 학당에서 오른쪽 아래에 컴퍼스를 들고 있는 이가 바로 에우클레이데스다.
호페르 에데이 데익사이(ὅπερ ἔδει δεῖξαι / hóper édei deîxai, '이것이 보여야 할 것')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데[4] , 이것을 라틴어로 번역하면 Quod Erat Demonstrandum가 된다.
2.1. 원론[편집]
기하학 원론. 혹은 유클리드 원론이라고 불린다. 에우클레이데스가 기원전 3세기에 집필한 책으로,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은 기하학과 정수론을 다루고 있는데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당대에 알려져 있는 수학에 관한 내용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한다.
제 1권에서 제 4권까지는 2차원 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 5권부터 비율과 비례로부터 시작해 기초적인 수론을 다룬다. 제 6권에서는 제 4권에 이어 이를 도형에 적용하고 제 10권까지 다시 수론을 다룬다. 제 11권에서 제 13권까지는 3차원 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약 2천년 넘게 수학, 특히 기하학의 주 교과서로 쓰였다. 19세기 말부터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태동하면서 기하학의 영역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포함한 형태로 더욱 확장되게 된다.
2.1.1. 공리 체계[편집]
원론이 수학사의 고전이 된 이유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일정한 공리에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전개를 펼쳤는데, 이 방식이 바로 근대 수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 그리고 공준(공리 중에서 특별히 기하학적 성질을 가지는 것, 현재는 모두 공리로 통일)이란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전제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으로, 증명하지 않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공리를 근거로 하여 증명되는 것을 정리라고 부른다.
2.1.2. 유클리드 기하학[편집]
자세한 내용은 유클리드 기하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3. 유클리드 호제법[편집]
자세한 내용은 유클리드 호제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론에 나오는 두 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
두 자연수 A, B에 대하여 A를 B로 나눈 나머지를 R이라 하면, A와 B의 최대공약수와 B와 R의 최대공약수는 같다는 성질을 이용하여, B를 R로 나눈 나머지 R`1`을 구하고, 또 R을 R`1`로 나눈 나머지R`2`를 구하는 것을 반복하면 최대공약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유클리드 호제법이라고 하며 명시적으로 기술된 가장 오래된 알고리즘이다.
[1] 현대 그리스어로는 에프클리디스(Ευκλείδης / Efkleídis)다. 한편 영어식 외에도 유럽 각국의 언어에 따라 여러가지 표기 어레인지가 있다. Euclide(프랑스어), Euclides(라틴어), Euklid(독일어), Euklide(스웨덴어), Euklides(네덜란드어), Euklido(에스페란토), Evklid(아제르바이잔어), Eoiclideas(아일랜드어) 등[2] 정확히는 산술학(수를 세는 것에 관련된 학문이라는 의미), 기하학이 (물론 인접하긴 하지만) 별개의 학문으로 인식되었다.[3] 왕도는 다리우스 대왕이 건설한 페르시아 왕도, 즉 왕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4] 이는 아르키메데스도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2 05:13:13에 나무위키 유클리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