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 켄스케

덤프버전 :


}}} ||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 3 콘도 켄스케 · 7 나카무라 아키라 · 9 야나기타 유키 · 24 쿠리하라 료야 · 28 애덤 워커 · 31 마사키 토모야
32 야나기마치 타츠루 · 37 이쿠미 · 44 사사가와 요시야스 ||
||<-2><bgcolor=#fcc800,#fcc800>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
||<bgcolor=#ffffff,#1f2023><:><-3>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돌아가기 ||
||<-2><height=30><bgcolor=#ffffff,#1f2023>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콘도 켄스케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콘도 켄스케의 수상 경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우승 엠블럼 V3.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16

파일: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반지}}}
2023


파일:asia_probaseball_champion_ship_2017.png
2017 APBC
{{{#c7bc69 우승

2017



파일:2020 도쿄 올림픽 로고.svg
2020 도쿄올림픽
{{{#c7bc69 금메달

2021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9-2020,2023 퍼시픽 리그 최고 출루율
2015-2018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9-2020
콘도 켄스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21-2022
요시다 마사타카
(오릭스 버팔로즈)
2021-2022
요시다 마사타카
(오릭스 버팔로즈)

2023
콘도 켄스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TBD
(TBD)





콘도 켄스케의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fff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8번}}}
니시카와 하루키
(2015)

콘도 켄스케
(2016~2022)


아사마 다이키
(202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3번
프레디 갈비스
(2022)

콘도 켄스케
(2023~)


현역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3
콘도 켄스케
近藤健介 | Kensuke Kondo

생년월일
1993년 8월 9일 (30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치바현 치바시 미도리구
출신학교
요코하마 고등학교
포지션
외야수[1], 지명타자[2], 3루수, 포수[3]
투타
우투좌타
신체
171cm, 85kg
프로 입단
2011년 드래프트 4라운드 (닛폰햄)
소속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2~20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3~)
등장곡
샤이니 - Boys Meet U
응원가
응원단 자작곡[4][5]
계약
2023 ~ 2029 / ¥5,000,000,000
연봉
2023 / ¥700,000,000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의 외야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초등학교 때부터 연식야구클럽 '이즈미야 메츠'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6학년 때 치바 롯데 마린즈 주니어에 선출되어 제1회 NPB 12구단 주니어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 진출 이후 포수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3학년에는 제3회 전국중학생 추계야구대회에 치바 롯데 마린즈 주장 겸 4번타자 포수로 출장해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이후 2009년 명문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때부터 유격수로 주전을 꿰차 타율 0.438을 기록했지만 여름 현대회에서 8강 탈락했고 가을부터 어깨 힘을 키워 포수로 출장했다. 2학년 때는 여름 현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도카이대학부속 사가미에 패하며 고시엔 진출이 좌절되었고, 2학년 가을부터 3학년 봄까지 주장을 맡았다. 3학년 봄에 출전한 고시엔에서 1차전에서 탈락하고 주장을 동기였던 오토사카 토모[6]에게 넘겼다. 3학년 여름 현대회 직전에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치며 타격 부진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승전에서 결승타를 날리며 고시엔에 출장하게 되었고 여기서 16강 진출의 성적을 올린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제9회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팀의 우승에 공헌하고 본인도 베스트 나인에 포수로 뽑혔다. 고등학교 시절 공식경기 통산 38홈런으로, 역대 요코하마 고등학교 포수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2011년 드래프트에서 닛폰햄에 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계약금 3천만엔에 연봉 500만엔의 조건이었다. 등번호는 54번.

2.2. 프로 경력[편집]



2.2.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편집]


프로 첫 해인 2012년, 2군에서 시작했지만 7월 4일 오릭스전에서 6회 대타로 출전하며 1군 데뷔한 뒤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수로 뛰었다. 7월 13일 라쿠텐전에서는 8번 포수로 선발출전하며 56년만에 닛폰햄에서 고졸 신인이 포수로 선발 출전한 3번째 선수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2년 일본시리즈에도 대타로 3경기에 출전하며 56년만에 고졸 신인 포수가 일본시리즈에 출장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3년에는 2군에서 클린업으로 뛰면서 3,4월에 리그 월간 MVP를 수상했고, 5월 8일에 1군 승격했지만 5월 16일 다시 말소되었고, 이후 2군에서 고타율을 유지하면서 2군 올스타 게임에 출전하기도 했다. 8월 2일 나카타 쇼의 사구 부상이탈을 배경으로 1군에 재승격되면서 이후 포수 겸 외야수로 출전했다.

2014년에는 첫 개막 1군 엔트리에 들면서 시작했고, 5월 2일 주전 3루수인 코야노 에이이치가 부상을 당하면서 3루수로서 선발 출전하기 시작했다. 5월 16일 삿포로 돔에서의 지바 롯데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치기도 했고 5월 29일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전에서 백스크린을 넘기는 만루홈런을 치며 장훈이 가지고 있던 퍼시픽리그 최연소 만루홈런 기록을 20세 9개월로 경신하기도 했다. 이후 3루수로서 출전을 계속했지만 6월 15일 삿포로 돔에서의 야쿠르트전에서 주루 중에 왼쪽 허벅지 부상을 입으며 1군 말소되었다. 1군 복귀 이후에는 다시 포수로 출장하며 입단동기 우와사와 나오유키의 첫 완봉승 때 배터리를 이루기도 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 타율 0.258 4홈런 28타점을 기록했고 팀내 최다인 20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장타력을 발휘했다. 11월에는 U-21 야구 월드컵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4번 1루수로 선발출전하기도 했다.

4년차인 2015년, 7번 포수로 첫 개막전 선발 출전한 뒤 3할 타율을 치며 좋은 타격을 보였으나 도루 저지율이 10%대에 그쳤고, 오타니 쇼헤이가 지명타자 쪽에서 타격 부진을 보이며 타격에 집중하기 위해 후반기부터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결국 타격왕 경쟁 끝에 타율 3위를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16년, 등번호를 8번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부터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타격에서 감소세를 보이기도 했고, 오타니가 지명타자로 타격에서도 폭발하면서 2군에서 포수를 보기 위한 조정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결국 1군에서는 대부분의 경기를 외야수로 기용되었다. 그래도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팀의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에는 시즌 전 2루수 전향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고, 우익수나 지명타자로 출전하며 시즌 초반 4할 타율을 기록했고, 결국 47경기째인 6월 1일 요코하마전까지 4할을 유지하며 장훈의 개막 이후 4할 유지 경기 수 기록을 넘어섰고, 외야수로서 올스타에도 선출되었으나 6월 3일 한신전에서 오른쪽 허벅지 부상을 호소하며 1군 말소되었고, 말소 후의 검사에서 허리 디스크를 진단받으면서 척추 내시경 수술을 받아 3개월간 전력에서 이탈하였다.[7] 결국 시즌 막판에 돌아와 17타수 8안타를 때리며 시즌을 마쳤지만 퍼시픽리그 규정타석인 443타석에 한참 미달한 231타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최종 타율은 0.413, 출루율은 0.567로 시즌 타석 수가 100타석 이상인 선수로는 역대 최고의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활약으로 시즌 이후 열린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도 선발되어 전경기를 3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12타수 7안타를 기록했다.

2018년에도 시즌 초반 타울 0.392를 기록하는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지만 오른쪽 종아리 부상으로 1군 말소되었고 그래도 이번엔 빠르게 복귀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지명타자로 올스타에 다시 선출되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결국 시즌 최종 성적 129경기 타율 .323, 69타점, 149안타의 아주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홈런은 겨우 9개였으나 뛰어난 선구안 덕분에 OPS .884를 찍으며 29홈런의 알프레도 데스파이네를 제치고 지명타자 베스트나인을 차지하였다.

2019년에는 3루수 주전이었던 브랜든 레어드가 지바 롯데로 이적하면서 다시 3루수로 전향하기 위해 3루 수비 연습을 했지만 결국 시즌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가끔씩 좌익수나 3루수로 출전하였다. 시즌 중 40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쓰면서 구단 역대 4위를 기록했고, 또다시 지명타자 부문 팬투표 1위를 차지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138경기 타율 .302, 출루율 .422, OPS .822, 59타점, 148안타를 기록했으며 첫 출루율 1위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홈런이 더 줄어서 2개밖에 치지 못했으나 사사구 105개에 삼진 81개로 미친 선구안을 보여주었다.[8] 시즌 뒤에는 2019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외야수로서 일본의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뒤에는 닛폰햄과 3년 계약에 합의했다.

2020년에는 6월 타율 0.212로 부진한 출발을 보였지만 나머지 달에 모두 월간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하며[9] 108경기 타율 .340, 출루율 .465, OPS .934, 5홈런, 60타점, 126안타를 기록하여 2년 연속 출루율 1위 타이틀을 따냈고 프로 입단 후 두번째 베스트나인에 선정됐다.

2021년에는 지명타자를 중심으로 가끔 좌익수로 기용되었지만, 오타 타이시가 부진하고 아사마 다이키가 활약하며 니시카와 하루키가 좌익수으로 포지션 변경했고, 지명타자에서는 왕보룽이 활약하며 콘도는 우익수로서의 출전이 늘어났다. 또 시즌 중 나카타가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4번 타자로의 기용도 많아졌다. 2년 만에 개최된 올스타 게임에 선출되었지만 급성 위장염에 걸려 2경기 모두 결장하였다. 도쿄 올림픽에도 선출되어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역할(?)을 한 뒤 다시 돌아온 정규시즌에는 왕보룽이 부진하면서 지명 타자로 출장했지만, 9월 11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는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수비 중 펜스에 부딪혀 부상 교체되었고, 다음날인 12일에 「뇌진탕 특례 조치」로 말소되었다. 결국 시즌 타율 .298은 리그 5위, 11홈런, 69타점은 각각 구단 1위, 372루타는 리그 1위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지명타자 부문으로 3년 만에 두 번째, 외야수 부문까지 포함하면 2년 연속 세 번째 베스트나인에 선출됐다.

2022년에는 4월까지 타율 0.298의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5,6월을 대부분 결장했고 7월에 복귀한 이후로는 월간 타율 3할을 계속 지키며 마츠모토 고, 키요미야 코타로와 함께 닛폰햄의 타선을 지탱했다. 8월 9일 본인의 생일에 프로 첫 역전 끝내기 홈런을 쳤는데, 생일에 끝내기 홈런을 친 경우는 NPB 사상 2번째이며, 닛폰햄의 레이와 시대 첫 끝내기 홈런이기도 했다. 그리고 9월 10일 세이부전에서 통산 1000안타, 다음날 세이부전에서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98경기 타율 .302, 8홈런 41타점으로 2017년 이후 5년만에 규정타석 도달과 100안타 달성에 실패했다.

2.2.2. FA 선언[편집]


시즌 종료 이후 FA를 선언했고,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오릭스 버팔로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 여러 팀[10]이 콘도를 붙잡으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통에 12월 초까지도 이적팀을 정했다는 소식이 나오질 않았으며, 여기에 닛폰햄도 콘도를 잔류시키기 위해 협상에 나서면서 콘도의 FA 행선지는 혼란에 빠졌다. 이 상황에 대해 미야모토 신야가 계속 고민해도 결론에 큰 차이가 없고 시간만 계속 끌게 되면 주위에도 민폐니, 콘도에게 한시라도 빨리 이적할 팀을 정하라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이 일침이 통한 것인지 12월 12일에 드디어 이적하는 구단이 발표되었는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 최초 보도 당시에는 6년 35~40억엔 규모로 알려졌지만 13일 자정에 닛칸스포츠 보도에 의해 7년 50억엔이라는 초대형 규모의 계약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당연히 이 엄청난 계약 규모에 야구팬들은 뒤집어졌는데 몇 년 전에 나온 야나기타 유키의 계약이 4+3년에 42억엔+@, 야마다 테츠토의 계약이 7년 35억엔+@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명백한 오버페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야나기타와 야마다는 트리플 쓰리 달성 등의 기록을 세우거나, 전성기 동안 다수의 타이틀을 수상하며 리그 최강급 타자 반열에 올랐던 5툴 플레이어급 슈퍼스타들이었기 때문에 부진한 시즌이 있긴 했어도 저런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것에 대부분 납득했다. 반면 콘도는 준수한 컨택과 선구안을 자랑하는 뛰어난 타자인 것은 맞으나, 그 외엔 장타력과 수비력이 나쁘고 체력도 그다지 좋지 못한 데다 부상도 잦아서 지명타자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등 장단점이 극명히 갈리는 선수라서 저 둘에 비견될 정도로 리그를 지배하는 타자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그런 타자가 저 둘을 뛰어넘는 초대형 계약을 받았으니 놀랍다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닛폰햄 측에선 보상선수로 5구단 경합 끝에 획득했으나 터지지 않았던 유망주 투수 타나카 세이기를 지명했다.

2.2.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편집]


시즌 초중반인 5월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역시 오버페이였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듯 했으나 6월부터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 귀신 같이 3할 타율과 4할 출루율을 회복하면서 소프트뱅크 타선의 중핵으로 활약하고 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홈런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 닛폰햄 시절 삿포로 돔의 높은 펜스과 넓은 구장 사이즈로 인해 두 자릿수 홈런을 2021년 단 한 해만 기록했으나 홈런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는 페이페이돔 입성 첫 해에 커리어 최다였던 11홈런은 진작에 뛰어 넘었으며 8월 24일 롯데전에서는 커리어 처음으로 20홈런 고지를 밟았다.

여기에 자주 발목을 잡던 부상 문제도 아직은 잠잠하고 이전 홈구장이던 삿포로 돔에 비해 좁아진 페이페이돔의 외야 덕분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던 수비도 개선되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대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FA 계약 첫 해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143경기에 모두 출장해 타율 .303, 26홈런 87타점 출루율 .431, 장타율 .528로 시즌을 마감했다. 투고타저가 심했던 파리그에서 압도적인 타격성적을 기록했다. 홈런 타점 2관왕에 득점, 출루율, 장타율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했다. WAR 8.3, WRC+는 193으로 경이적인 수치.

2.3. 국가대표 경력[편집]



2.3.1. 2019 WBSC 프리미어 12[편집]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31
21
4
1
0
0
4
3
0
9
9
.190
.452
.238
.690


2.3.2. 2020 도쿄 올림픽[편집]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6
6
2
0
0
0
1
0
1
0
0
.333
.333
.333
.667
2020 도쿄 올림픽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해 6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8월 4일 한국과의 준결승 1경기에서 좌익수로 나섰지만 6회초 박해민의 타구를 놓쳐 2실점의 단초를 열었던 탓에 전범이 될 뻔 했다.[11] 게다가 8회말 1사 1루 상황에서도 병살성 타구를 쳤고 2루 주자가 아웃되어 그대로 전범 자리가 확고해지나 싶었지만 고우석의 본헤드 플레이로 본인은 아슬아슬하게 살아나갔고[12], 그 이후 맞이한 2사 만루 상황에서 야마다 테츠토가 싹슬이 2루타를 친 덕에 곤도의 전범 행위들은 묻혔다.


2.3.3.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34
26
9
4
0
1
9
5
0
8
9
.346
.500
.615
1.115

당초 사무라이 재팬은 좌익수 요시다 마사타카, 중견수 라스 눗바, 우익수 스즈키 세이야에 콘도를 백업으로 운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막을 열흘 앞두고 스즈키가 허리 통증으로 하차하게 되어 유틸리티 플레이어 마키하라 타이세이가 대체선수로 발탁되면서 콘도는 주전 우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귀중한 우타슬러거 자원인 스즈키의 공백을 안그래도 많은 좌타라인에 콘도가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지만, 강화시합에서의 활약으로 우려를 일축시켰다.

첫 경기인 중국전에서는 1회부터 상대를 얕잡아본 것인지는 몰라도 내야수 플라이에 홈으로 쇄도하는 본헤드 플레이로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멀티 출루를 기록했음에도 이후에도 뇌절성 플레이를 거듭하면서 약체 중국 상대로 콜드게임 내지도 못하고 고작 8:1로 이기는 데 그쳐 경기 워스트 플레이어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투수 중 몇 안되는 호투를 펼치던 투수였던 원태인을 상대로 개인 국가대표 커리어 첫 홈런을 뽑아냈다. 이후에도 결승전까지 붙박이 2번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며 압도적인 컨택능력으로 오타니, 요시다와 함께 일본타선의 중핵으로서 우승에 기여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정상급 컨택과 선구안을 바탕으로 높은 출루율이 장점인 타자. 특히 2022시즌까지 통산 볼삼비가 1.07개일 정도로 현역 NPB 야수들 중에서 선구안이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명이다.[13] 여기에 2018년 이후로 항상 거의 3할[14]을 마크할 정도로 뛰어난 컨택이 더해져 출루율 1위를 항상 노리는 선수이다. 배트를 낼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유인구도 다 골라내고 보더라인에 절묘하게 걸친 공들도 다 안타로 때려 낸다는 평이 있을 정도.

다만 발이 느리며[15] 체력이 약한데다가 유리몸이기까지 하다. 수비도 어깨는 강한데 그게 전부다. 하필 입스가 오는 바람에 포수로는 불가능하다는 판정까지 받았다.[16] 코너 포지션 수비를 보는 발 느리고 출루율 높은 똑딱이라 딱 웨이드 보그스 유형의 선수.[17] 홋카이도 시절까지는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18] 장타력 문제의 경우 상대적으로 구장이 작은 소프트뱅크 이적 후 갑자기 시즌 20홈런을 넘기며 나름대로 파워가 있었지만 구장이 너무 커서 손해를 봤다는 것으로 드러났다.[19]

문제의 입스 때문에 코너 외야수와 3루수를 병행하는데 3루수로 풀시즌 뛰기에는 역시 저질 체력이 문제가 되며 3루 수비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결국 좌익수와 지명타자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3루가 구멍이 나면 투입하는게 곤도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경우. 외야 수비는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좌익수 수비는 괜찮으며 어깨는 강하다보니 송구에서는 호평을 받는다.

4. 여담[편집]


  • 고교시절에는 팀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성격으로 리더가 될 수 있는 존재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 2019년 3월 삿포로의 20대 여성과 결혼을 발표했고, 2020년 3월 딸이 태어났다는 것을 발표했다.


5.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NPB 로고.svg 콘도 켄스케의 역대 NPB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12



20
30
5
0
0
0
2
2
0
2
5
.192
.241
.192
.434
-0.1
2013
32
80
10
0
0
0
7
2
2
11
14
.152
.269
.152
.421
-0.6
2014
89
291
68
20
1
4
24
28
3
15
45
.258
.295
.386
.682
1.1
2015
129
504
142
33
2
8
68
60
6
59
59
.326
.405
.467
.872
4
2016
80
291
68
9
0
2
36
27
5
29
45
.265
.337
.323
.660
0.2
2017
57
231
69
15
0
3
32
29
3
60
27
.413
.567
.557
1.124
4
2018
129
555
149
29
3
9
59
69
5
87
90
.323
.427
.457
.884
4.4
2019
138
600
148
32
5
2
74
59
1
103
81
.302
.422
.400
.822
2.8
2020
108
467
126
31
1
5
56
60
4
89
72
.340
.465
.469
.934
4.2
2021
133
545
133
37
4
11
61
69
4
88
84
.298
.413
.472
.885
5.5
2022
99
396
98
26
1
8
51
41
8
66
45
.302
.418
.462
.879
4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23
소프트
뱅크

143
618
149
33
0
26
75
87
3
109
117
.303
.431
.528
.960
8.3
NPB 통산
(12시즌)

1157
4603
1165
265
17
78
545
533
44
718
684
.306
.415
.447
.862
37.8


6. 관련 문서[편집]


[1] 코너 외야수. 현시점에선 메인 포지션이라 봐도 무방하다.[2] 체력 안배용으로 왔다갔다한다.[3] 포수는 2016년 이후로, 3루수는 2019년 이후로 출전 기록이 없다.[4] 極めた技で打球が冴え渡る遥か夢追い求めて頂へと進め(뛰어난 기술로 타구를 맑게 날려라 아득한 꿈을 추구하여 정상으로 나아가라)[5] 닛폰햄 시절さあ狙いを定め遠く遠く飛ばせ眩く光る時代近藤築き上げろ(자 목표를 노려서 멀리 멀리 날려라 눈부시게 빛나는 시대를 콘도가 쌓아올려라)[6] 곤도랑 같은 해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지명되어 10년간 뛰었던 외야수로, 현재는 멕시칸리그에서 뛰고 있다.[7] 결국 올스타전은 니시카와 하루키가 대신 출장했다.[8] 참고로 2019년 닛폰햄 타선이 워낙 망가졌기 때문에 저렇게 치고 OPS가 팀내 1위였다. 20홈런을 넘긴 나카타 쇼와 오타 타이시는 둘 다 선풍기라 OPS 7할 7푼 대를 찍었고 나머지 선수 중 유일하게 10홈런을 넘긴 와타나베 료는 OPS 7할만 겨우 지킨데다 나머지는 OPS 7할 7푼대를 찍은 리드오프 니시카와 하루키를 제외하면 그냥 연봉 도둑 수준이다.[9] 10월 15일 세이부전에서는 4개의 2루타를 기록하며 NPB 타이 기록을 쓰기도 했다.[10] 당초엔 고향에 위치한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할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롯데 측으로부터 영입전 참가설이 나오지 않으면서 가능성이 사라졌다.[11] 그후 포수였던 카이 타쿠야가 못잡은 걸 감안해야 하지만 후속타자인 강백호가 자신에게 오는 안타를 치고 잡은뒤에 홈송구 과정에서 악송구를 저지른탓에 무리하게 뛴 박해민을 홈에서 잡아낼수 있었으나 실패했다.[12] 세이프 판정이 났고, 태그 하라는 외침이 들리자 고우석이 곤도와 태그, 여기서 김경문 감독이 곤도의 오버런을 어필했고 심판진 재량으로 비디오 판독에 들어가서 최종 세이프 판정. #[13] 다만 2020년부터 요시다 마사타카가 타석 접근법에서 크게 각성하며 경이적인 볼삼비를 보이기 시작해 요시다의 선구안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14] 2021년은 아쉽게 0.298을 찍었다.[15] 한 시즌 최다 도루가 8개. 통산 도루 성공률 67.6%[16] 포수 리드에 대해서는 호평을 받기는 했다. 일본은 아직도 포수 리드가 정설이다 보니 이것도 중요하게 평가받는다.[17] 둘 다 우투좌타인 점도 공통점이다. 다만 수비 실력은 비교 불가다.[18] 잘해야 한 시즌에 5~10홈런이었다. 2019년에는 전반기에 홈런이 하나도 없다가 겨우 2개로 시즌을 끝냈다. 다만 2루타는 부상이 없다면 30개 가까이 칠 수 있는 라인 드라이브형 타자로 펜스까지 날아가는 공은 많이 치는데 펜스를 넘길 정도의 높이만큼 공을 띄우지는 못했다. 홈구장이 NPB 최고의 투수 친화구장인 삿포로 돔이었던 점도 곤도의 장타력을 깎아 먹었던 요인 중 하나.[19] 호크스의 홈구장 후쿠오카 돔홈런 테라스 설치 전까지는 삿포로돔과 비슷한 외야 넓이와 펜스 높이를 자랑해 다른 구장이면 넘어가는 타구가 펜스 앞 안타, 펜스 직격 안타로 돌변하는 극도의 투수구장이었다. 테라스를 처음 설치한 2015년에 파워히터 소리를 들었음에도 15~20홈런 정도에 그치던 야나기타 유키, 마쓰다 노부히로, 이대호 등이 일제히 일본 커리어 첫 30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1 00:02:10에 나무위키 콘도 켄스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