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욱/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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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2.1. 2009~2010 시즌
2.2. 2011 시즌
2.3. 2012 시즌
2.4. 군복무
2.6. 2016 시즌
2.7. 2017 시즌
2.8. 2018 시즌
2.9. 2019 시즌
2.10. 2020 시즌
3.1. 2021 시즌
4. 은퇴



1. 아마추어 시절[편집]


원래 내야수였으나 대구고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해[1] 대구고의 2008년 청룡기 우승을 이끌며 청룡기 MVP도 수상했다.[2] 같은해 봉황대기에서는 구원으로 등판하여 지역 라이벌 경북고를 2-1 한 점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고 MVP를 수상하였다.

짧은 투수 경험에도 뛰어난 평가를 받아 1차 지명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고교 1학년 때부터 1차 지명자로 기대됐던 내야수가 있어서... 또한 세계 청소년대회에 참가한 대표팀에는 아쉽게도 뽑히지 못했다.

2008 제일화재 프로야구 대상에서 아마야구 MVP를 수상했다.


2.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파일:삼성 정인욱.jpg

빠른 구속으로 기대를 받았고 군입대 전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군 전역 이후 부진하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3]


2.1. 2009~2010 시즌[편집]


삼성 입단 첫 해인 2009 시즌에는 허리 부상으로 2군에서도 많은 경기에 못 나서고 재활에만 힘썼다.

2010 시즌에는 2군에서 선발 투수로 9경기 등판해 4승을 올리고 5월 4일 1군에 올라왔다. 첫 데뷔전은 롯데전이었는데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 홍성흔을 상대로 파울 플라이를 잡았다.

베테랑을 상대로도 떨지 않고 정면 승부한 것을 선동열 감독이 좋게 봤는지 5월 14일 넥센전에서 선발로 등판하게 된다. 1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2회에 6실점, 3회에도 1실점, 그리고 4회에는 황재균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다시 6실점, 총 13실점을 기록하며 한 경기 투수 최다 실점 기록을 경신할 뻔했다.[4]

하지만 그래도 선동열 감독이 정인욱을 괜찮게 봤는지 이후로도 계속 기회를 줬다. 6월 30일 9회에 등판해 팀의 승리로 구원승을 올리면서 개인 통산 첫 승을 기록했다. 이후로 선발, 계투를 오가며 활약. 2010 시즌 기록은 28경기 등판 4승 2패 1홀드 61이닝 55피안타 42실점 5.31의 평균자책점.

시즌 초반 때는 130km/h 후반대의 직구를 던졌지만 중반 이후로는 140km/h 초반까지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0년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스코어 6:6이던 10회말에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0회말을 삼자범퇴로 막았다. 하지만 팀이 스코어 8:6으로 이기던 11회말에도 등판했다가 아웃카운트 하나 못 잡고 3실점을 하며 역전패를 허용하였다. 이 날 정인욱은 1이닝 32투구수 3피안타 2볼넷 3실점 3자책점, 패전투수가 되었다.

정인욱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⅔이닝 4피안타 3볼넷 1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0.13,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정인욱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1⅔이닝 2피안타 3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정인욱은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5경기 등판하여 4⅓이닝 6피안타 6볼넷 2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6.23, 1패를 기록했다.


2.2. 2011 시즌[편집]


2011 시즌에는 장원삼이 어깨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 합류가 늦어지며 6선발 후보로 낙점되었다. 그러나 로테이션 상 기회가 오지 않아 계투로 등판하다 4월 16일 두산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한다. 결과적으로 5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가능성을 보인 등판이었다.이후 장원삼이 선발로 합류하며 자리가 없어진 정인욱은 2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1군에서도 롱릴리프 추격조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많은 어린 선수이니만큼 2군에서 선발로 키우겠다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발투수인 외국인 선수 카도쿠라 켄이 부진하자 이 경기에서 정인욱은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부상으로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5⅓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막으며 데뷔 첫 선발승의 감격을 누린다. 경기 직후 곧바로 2군으로 다시 내려가지만, 선발의축을 담당하던 안지만이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기며 다시 6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예정.

6월 8일 롯데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양승호 감독이 '정인욱은 롯데 전담 투수 같다'고 할 정도로 롯데전에 출전하여 승리를 챙기고 있는 좋은 컨디션이다.
그러나 8월 6일 롯데를 상대로 4이닝 6실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대호와의 악연도 지긋지긋하다.[5]

9월 넥센전 선발등판하여 85개의 공을 던지고 7이닝 무실점 1피안타 1사사구 7K를 잡아내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와 함께 강명호 기자의 사진기사가 올라왔는데… 이쯤되면 무섭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윤성환의 뒤를 이어 팀이 4:1로 앞서던 4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박진만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정근우에게 볼넷을 내주어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박재상을 삼진으로 잡고 4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후 5회와 6회 위력적인 투구로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7회말 박진만에게 안타, 정근우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무사 1,2루에서 박재상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아서 스코어 5:4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최정에게 안타를 맞아 무사 1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다음 투수인 권혁이 폭투을 하고 박정권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가는 바람에 무사 1, 3루가 되었으나 그 다음 투수인 안지만이 환상적인 투구로 7회말을 무실점으로 리드를 지켜내어 정인욱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 이날 정인욱의 성적은 2⅔이닝 47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2볼넷 3실점 3자책점 구원승.

정인욱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4⅔이닝 4피안타 1피홈런 3볼넷 4K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5.79,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그리고 밑에 보듯이 정인욱이 이후로 얻어맞고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시즌이 사실상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실 데뷔 시즌에 너무 잘했기 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삼성이 10년이나 잡았던 것이다. 오죽하면 삼성의 필승의 목표 중 하나가 정인욱의 부활이다.

사실 이 당시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 시즌 정인욱의 BABIP은 무려 0.220으로 우주의 기운을 듬뿍 받은 시즌이다. 어찌됐든 80이닝 동안 스탯티즈 기준 WAR 2.13, ERA 2.25로 스윙맨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이후가 문제지만...


2.3. 2012 시즌[편집]


시즌을 앞두고 차우찬처럼 무려 11kg을 감량하고 투구 폼을 바꿨다. 스프링캠프 때는 바뀐 투구 폼에 무리가 없었으나,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후 쌀쌀한 날씨 탓에 투구 폼 적응에 실패하면서, 이 때문에 밸런스가 망가졌다. 이로 인해 2012년에는 주춤했다. 애초에는 배영수와 6선발을 두고 경쟁할 예정이었으나,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5월 3일에 1군에 올라온 적이 있으나, 2군에서도 한창 안 좋았을 때니 잘할리가 만무했다. 4일만에 경산행. 2군에서도 6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고전하면서 잔류군(3군)으로 강등되기도 하고, 중간계투로 보직이 바뀌기도 했다. 중간계투로서 그럭저럭 좋은 모습을 보여 다시 선발로 복귀했고, 점점 좋아져 7월 1달 동안은 4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24이닝 동안 4실점(3자책)을 기록했다. 8월 2일 차우찬 대신 1군으로 올라와 중간계투로 합류했다. 그러나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파일:attachment/dufjf.jpg

참고로 저 은 나중에 한 팀에서 뛰게 된다

시즌 후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야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출전하기도 했다. 중국전과 대만전 두 경기에 출전, 9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활약을 하며대회 평균자책점 1위 상을 받았다.[6]

11월 20일 상무 입대가 최종 확정되었다.


2.4. 군복무[편집]


상무 첫 해부터 1선발로 등판했다. 148⅓이닝을 소화해 경찰청장원준에 이은 퓨처스 전체 이닝 소화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장원준의 경우엔 투구수가 110개를 넘게 던진다거나 시즌 후반 들어서는 계투 알바로 연투하는 등 혹사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인욱은 시즌 초반을 제외하면 투구수가 110개를 넘은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5월에는 컨디션 난조로 로테이션을 아예 거르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관리를 받았다. 첫 해 성적은 26경기 148⅓이닝 7승 6패 평균자책점 3.40. 다소 승운이 없었는데, 정인욱 스스로가 말아먹은 경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시즌 후 허리 문제로 수술을 고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애초에 투수 전향이 늦었고, 삼성에서도 시즌 소화 이닝을 관리받던 차에 갑자기 늘어난 이닝을 버텨 내지 못한 것. 결국 고민 끝에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한다. 상무 복무 시절에는 어깨도 안 좋았다고 한다.

2년차에는 허리 재활의 영향인지 5월에서야 올라올 정도로 시작이 늦었고, 등판 간격을 길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후 STC로 보냈는데,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은지 바로 퇴소했다고 한다. 키도 많이 커서 189~190cm까지 컸다는 듯.

박치왕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유독 지도하기 힘들었던 선수가 있었는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술회했다.

정인욱 같은 선수는 고칠 부분이 정말 많았죠. 인성은 좋아요. 그런데 좀 특이했어요. 말투, 행동, 걸음걸이. 심지어 의자에 앉지 않고 구석에 앉을 때가 있어서 지적하기도 했어요. '가슴 펴고 당당히 의자에 앉아라'고요.



2.5. 2015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인욱/선수 경력/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6. 2016 시즌[편집]


시범경기에서 현저하게 떨어진 구속으로 류중일 감독의 걱정을 샀다. 시범경기 성적은 3경기 등판 1승 2패 ERA 8.18.

원래 개막전 엔트리에서는 빠졌다가 4월 3일 선발 투수로 내정되면서 당일날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런데 막상 경기는 비 때문에 취소됐다. 4월 5일 콜린 벨레스터가 볼질 끝에 강판된 후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3⅓이닝 5피안타 3실점을 했다. 벨레스터보다는 그나마 나았지만 구속이나 제구 모두 시범경기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4월 9일에는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나 투구수가 많아 2⅔이닝 6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됐다. 장원삼의 부상으로 인해 불과 사흘밖에 쉬지 못하고 나오긴 했지만 투구 내용만 보면 대량 실점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을 정도. 4월 11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원래라면 한참이나 2군에 머물러야 했겠지만 차우찬의 부상으로 4월 22일 kt전 선발로 내정되면서 1군에 복귀했다. 9일날 경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3⅓이닝 5실점을 기록하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4월 23일 권오준, 조현근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5월 8일 선발로 내정돼 1군에 올라왔으나[7] 4이닝 6피안타 5실점을 기록하고 교체됐다. 1회부터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해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 안타와 희생플라이 2개로 4점을 내줬다. 그나마 타선의 도움으로 패전투수는 면했는데, 1군에 올라오기 전인 5월 1일 상무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으로 그리 인상적인 투구 내용은 보여주지 못했던지라 애초에 이 날 경기에서도 호투할 가능성이 낮았다.

5월 14일 대구 롯데전에서 5이닝 4실점(3자책) 4K 7피안타로 나름의 선방을 하여 240일 만의 승리를 따냈다. 시즌 초 130~140 초반에 그쳤던 구속도 최고 147km을 찍으면서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 류중일 감독도 정인욱의 구속이 올라온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5월 20일 마산 NC전에서 빵빵한 타선 지원을 받으며 5이닝 2실점 6K로 호투했다. 투구수가 102개로 많았기에 6회말 교체되었다.

5월 27일 인천 SK전에서 1실점으로 호투하였다. 게다가 그 1점도 수비의 실책으로 비자책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올라온 불펜의 방화와, 답이 없는 물빠따로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6월 2일 넥센전에서 5.1이닝 동안 112개의 공을 던지며 삼진 5개를 잡아냈으나, 홈런 3개를 두들겨맞으며, 밀어내기 볼넷 등 갖은 방법으로 야금야금 점수를 내주었다. 5자책으로 6회 마운드를 내려갔다. 평소라면 갖은 욕을 얻어 먹었겠지만, 대폭발한 삼성의 타선이 무려 14점을 뽑아내며 정인욱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구속을 회복하고 구위도 오르면서 흔들리는 선발진에서 하위 선발로 제 몫을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제구가 흔들리는 일이 잦고, 이닝당 투구수가 평균 20구에 달할 정도로 투구수 관리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5이닝을 넘겨 던지는 일이 없다시피 한 것이 다소 아쉽다. 그래도 웹스터, 레온이 재활군에 내려간 터라 선발 로테이션은 계속해서 돌고 있다.

6월 8일 LG전 등판했으나 1회에만 2실점을 하는 등 불안한 모습으로 시작했고, 결국 3과 3분의 2이닝 동안 6실점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최고 구속은 148km까지 나왔으나 전혀 제구가 되지 않았고 제구가 되는 공은 130km 후반~140km 초반에 그쳤다. 장필준이 올라와 남은 아웃 카운트를 처리하여 추가 실점은 없었다.

14일 SK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2피홈런 2실점으로 시즌 최다 이닝을 소화했지만 김대우의 방화와 타선의 2번 만루찬스 무득점이라는 빈공이 겹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19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선발 등판했다. 현 시즌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산을 상대로 정인욱이 버텨낼 수 있을지 다들 회의적인 모습이었는데... 6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 단점으로 손꼽히던 투구수도 6이닝까지 고작 87개로, 드디어 정인욱도 터진거냐는 삼팬들의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면모를 보여줬다. 허나 안타 9개, 볼넷 3개를 얻고도 1득점에 그친 타선의 끔찍한 결정력 부재로 인해 또 패전투수의 멍에를 썼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나온 기사에 의하면 불펜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김기태가 선발을 대신 맡을 것이라고. 군 입대 이전에도 불펜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많은 만큼 삼성의 불펜 불안을 덜어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아놀드 레온이 선발에 있어야 했으나 1군 복귀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되어 선발진에 재합류했다.

2016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과는 무관한 선수로 밝혀졌다. 다만 결백함이 밝혀진 멘트가 굴욕.

최충연을 1군에 콜업하며 롱맨으로 보직 이동했으나, 장원삼이 허리 통증으로 말소되고 김기태마저 어깨 통증 관리 차원서 말소되면서 선발로 복귀했다. 어느덧 팀 내 선발 등판 횟수 3위를 차지하며, 이 성적의 투수가 고정 선발이 될 정도로 팀 내 선발 투수진이 망했음을 요약하고 있다.

9월 20일, 개그우먼 허민과의 열애설 기사가 터졌다. 그리고 이 날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했는데, 1이닝부터 최고 148km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며 몇몇 삼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2이닝부터 본래 정인욱의 모습을 되찾으며 4.1이닝 7피안타 3사사구 5실점으로 거하게 털렸다.

10월 6일 KIA전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1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6월 2일 넥센전 이후 4달 만에 나온 승리. 10월 8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차우찬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올해 선발로만 23번을 나오면서 확실하게 선발 기회를 보장 받았지만, 평균 이닝이 5이닝도 되지 않는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62볼넷에 70삼진으로 제구 또한 좋지 못했으며, 피안타율도 3할을 넘긴데다 피홈런도 19개. 그러니까 안타 많이 맞고 볼넷 많이 내주고 홈런도 많이 맞는 투수로 선발로는 완전히 낙제 수준인데, 이런 투수가 계속 로테이션을 돌았다는 것 자체가 2016년 암울했던 삼성 투수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최고 구속 148을 찍기도 하는 등 구속 자체는 작년에 비해 올라온 모습을 보였다. 내년 외국인 투수 두명이 정상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기만 한다면 불펜에서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2.7. 2017 시즌[편집]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20번에서 11번으로 바꾸었다.

2월 16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해 2이닝 5자책 4피안타 3볼넷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43km로 구속을 빨리 끌어올렸다. 실점은 모두 1회에 기록했는데, 안타-2루타-볼넷으로 빠르게 무사 만루를 만든 뒤,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먼저 실점했다. 그 후 2루타로 0-3, 무사 2, 3루에서 적시타로 0-5. 2회는 삼자범퇴처리했다. 뜬공이 4개 나왔는데, 모두 외야수가 처리한 뜬공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기대가 안 되는 출발.

3월 2일 SK와의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7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6실점을 기록했다. 3이닝 동안 57구를 던지며 작년과 다를 바 없는 이닝당 투구수를 보여줬다.

3월 8일 넥센과의 연습경기에 선발 이수민에 이어 3회 등판해 2이닝 1볼넷 2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여전히 뜬공은 3개로 많았다. 결국 선발경쟁서 장원삼과 최충연, 최지광에게 밀리면서 불펜으로 투입되었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김현욱 BB 아크 코치와 함께 투구폼 개조에 나서면서 5월 11일에서야 2군 경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투구폼 적응 문제인지 그냥 실력이 퇴화하는 것인지 3경기에 등판해 6⅔이닝 ERA 12.15로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21일 SK 2군전에서는 선발로 등판해 1⅔이닝 7실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25일 안규현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

26일 넥센과의 1차전에서 6회 등판했다. 역시나 이름값이 아깝지 않게 130후반~140대의 직구로도 볼넷을 남발하며 연속 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고 채태인, 이정후, 고종욱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순식간에 4실점. 7회에도 올라와 김하성에게 안타, 김지수에게 홈런, 김민성에게 안타를 얻어맞으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이후 김민성이 득점에 성공하며 1이닝 투구수 40개에 2볼넷 6피안타를 내주며 7실점. ERA는 63.00라는 대기록을 써냈다. 27일 백상원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다시 3군에서 가다듬다가 1군에서 제외된지 거의 2달만인 7월 26일 한화 2군전에 선발로 등판해 4⅓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앤서니 레나도의 시즌 아웃과 이에 따른 대체 선발 후보였던 김기태[8]최지광[9]이 부진하면서 8월 2일 두산전 선발 투수로 내정됐다.

2일 선발로 나와서는 1회 2실점했으나 이후 4이닝 동안 무실점하며 5이닝 2실점 1자책으로 호투했고, 이후 최충연으로 교체되었다. 비록 탈삼진이 적었기는 했으나 이전처럼 홈런을 맞지도 않았고 사사구도 내주지 않았다. 거기에 2달간 재활하고 온 터라 2경기 연속 투구수 관리차원서 조기강판된 것이지 투구수 조절도 괜찮았다. 다만 최근 커리어가 워낙 화려해서 팬들의 의구심을 씻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24일 SK전에서는 5이닝 동안 5실점하며 정인욱 어디 안 갔다는 모습을 보여줬다.[10] 하지만 경기가 끝나기 전 인스타그램에서 김동욱의 계정에 팔로잉한 것이 드러났다. 6년 전 하이데어로 김평호 코치에게 까이고서 또![11] 한 팬이 김동욱 선수에게 확인한 결과 오해였다고 한다.

8월 30일 KIA전에서 6.1이닝 3실점하면서 QS를 기록다. 6이닝까지 1실점했는데 7회부터 안타를 맞았다.

9월 5일 NC전에서 5.1이닝 5피안타 1홈런 2사사구 1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수치플

9월 17일 두산전에서는 1이닝 4피안타 사사구3(볼넷 2개 死球 1개) 7실점(7자책) ERA 54.00 1K로 완전히 털렸다.1회 볼넷, 안타로 만루 이후 김재환에게 만루홈런 허용 후 2회 2실점하고 강판되었다. 그후 박근홍이 박건우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면서 책임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다음날인 18일 1군에서 말소됐다.


2.8. 2018 시즌[편집]


2018년 삼성 라이온즈 오키나와 훈련 명단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연봉은 2017년 7,200만원보다 1,500만원 삭감된 5,700만원을 받게 되었다.

아내가 딸[12]을 출산하면서 이제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짊어지는 책임이 막중해졌다. 하지만 구단은 이미 08~10 드래프터들을 대거 정리하고 체격 좋은 우완투수를 대거 영입하면서 새 판을 짜기 시작했기에, 자신의 가치를 18시즌에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17시즌을 끝으로 방출된 김현우처럼 다음 시즌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단 대구 출신인지라 프렌차이즈 스타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2011 시즌의 커리어 하이까진 아니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우완 투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팬들도 일부 있다.[13] 좌완 위주의 한국리그에서 젊은 우완 선발 투수는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데다 암울한 삼성 투수진의 특성상 함부로 방출시키기도 쉽지 않다.[14] 그야말로 삼성에게는 계륵 그 자체.

스프링캠프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 옆구리 부상으로 조기 귀국했다고 한다(...). 올해는 다를까 노심초사하던 삼갤과 엠팍, 사사방 등의 모든 삼팬들은 하나가 되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6월 15일 1군에 등록되었다. 김대우가 말소되고 올라오자 반응은 '폭탄이 가고 핵폭탄이 온다'(...).[15]하지만 한기주가 1이닝 5자책으로 무너지자 올라와 5이닝 3실점 3탈삼진으로 롱맨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다시 1군 말소.[* 그러나 6월 15일은 한기주749일만에 선발투수로 등판을 한 경기다.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봤을 때, 당시 2군에서 롱릴리프를 맡을 수 있었던 투수는 정인욱 밖에 없었다. 한기주가 넥센의 타선에 털릴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면 정인욱을 올린 것은 마냥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 실제로 한기주는 마지막 선발 등판이 2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체력 조절을 못해 조기강판을 당하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7월 1일 다시 1군에 등록된 후, 6일 두산전에서 등판했다.

7월 24일 공을 맞고 부상으로 내려간 이승현을 대신해 6이닝 2아웃 때 올라왔다. 유강남을 포수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 마지막 9회에도 등판, 만루 위기를 맞았지만 두 타자를 모두 잡아내면서 2⅓이닝 무실점을 달성했다. 특히 8회에는 145km정도의 직구와 130km 후반대의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2개나 잡으며 마치 11년 커리어하이 시절을 보여주는듯 했다.

7월 29일 KIA전 7:1로 앞선 8회 1사에 올라와 5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하고 경기를 끝냈다. 팀은 13:1로 승리.

8월 1일 백정현이 3.1이닝 7실점으로 불을 지른 뒤 올라와 2.2이닝 무실점으로 불을 껐다.

8월 7일 SK전에서는 다시 선발 투수 백정현이 불을 지르자 급하게 등판했고,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3회 초까지 8점을 지원했으나 3회 말 노수광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맞았다. 그럼에도 팀이 10:8로 이기면서 만루홈런을 맞고도 승리투수가 되었다(...). 다행인 점은 SK의 강력한 클린업을 실점없이 막았다는 것.[16]

8월 10일 경기에서 8회말 2실점을 했고 이 2실점 없었다면 삼성은 10:10 동점상황으로 경기를 이어나갔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답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경기 연속 털리니 이제 거품이 꺼지려는 모양이라고 삼팬들은 생각한다.

8월 12일 9:2로 크게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9회말 등판,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과정이 좋지는 않았지만[17]. 그래도 나름 잘 막아줬으니 다행이다.

9월 25일 한화전에서 최채흥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1K로 잘 막고 마운드를 임현준에게 넘겼다.

9월 26일 한화전에서 ⅔이닝 1실점으로 흔들렸다. 다행히도 대량실점 전에 강판.

9월 30일 SK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10월 3일 KIA전에서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권오준의 뒤를 이어 1이닝 무실점 1피안타 2K로 잘 틀어막고 안성무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2018 시즌을 평가하자면 그래도 최소한 1군에 있을 자격은 보여준 한해였다. 물론 필승조로 쓰기엔 위험 부담이 있고 대부분 점수차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 나왔지만, 최소한 그 상황에서 나름 이닝을 먹는 역할은 담당했다. 그러나 극타고투의 리그 상태에서 불펜으로 30이닝을 소화한 동시에 3점대 방어율[18] 정인욱이 분유버프와 오치아이 효과가 겹친다면 최충연[19]과 심창민[20]의 이탈로 부실해질 삼성 필승조에 도전장을 던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9. 2019 시즌[편집]


심창민이 상무에 지원했고, 최충연을 선발로 키워보겠다고 오치아이 코치가 밝힘에 따라 공백이 생긴 삼성 필승조의 한 축이 되주어야 한다. 게다가 이젠 나이도 서른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안 터지면 방출이라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2군에서 선발로 등판하다가 4월 27일 NC 2군과의 경기 중 이인혁의 타구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귀쪽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다른 부상 예후는 없었는데, 부인인 허민의 SNS에 따르면 맞은 부위가 귀였던지라 후유증으로 이석증이 생겼던 모양. 7월 6일 상무전에서 복귀했다.

8월 1일 경기 중 햄스트링 통증으로 강판된 덱 맥과이어가 2일 1군에서 제외되면서 대신 공민규와 함께 1군에 등록됐다.

8월 3일 LG와의 경기에서 3점차로 지고있던 7회부터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 1삼진으로 시즌 첫 1군 등판을 성공적으로 했으나 팀은 그동안 무득점을 하면서 졌다.

9월 28일 홍정우가 등록되면서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2.10. 2020 시즌[편집]


거의 이 때쯤을 기점으로 인욱신이라 불리며 팬들 사이에서 화되기 시작했다.

2월 24일 청백전에서 1회부터 5실점하고 얼마 못 가 교체되었다.

리그 시작 후 1, 2군 경기 등판이 없었다. 박성윤 기자에 의하면 투구에 어려움이 있어 재활군에 있다고 한다.

7월말 들어 다시 2군에서 던지기 시작했다. 첫 등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9월 5일 NC전에 올해 1군경기 첫 선발등판 예정이였지만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면서 9월 6일 더블헤더 2차전 선발로 밀려났다. 더블헤더 첫 경기에는 순서를 바꾸어 지난 번 등판때 혹사한 라이블리가 나왔는데, 혈이 제대로 뚫리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2차전은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하지만 9일에 한화와의 더블헤더가 예정되어 있어 이날 2차전에서 선발로 나올 가능성도 있었으나 뷰캐넌과 원태인이 각각 1,2차전 선발로 나왔고, 본인은 DH 2차전 9회초에 7:0으로 크게 뒤진 상황에 계투로 등판하여 삼자범퇴로 막았다.

9월 10일 경기와 9월 11일 경기에 연투를 하며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21] 삼성 팬들은 불펜이 싹 다 터진 상황에서 구세주가 등장했다고 찬양 중이다.

9월 9일 한화전부터 11일까지 3일 간 3연투를 했는데, 기록은 3이닝 1피안타 2볼넷 1탈삼진 무실점.

9월 14일 득남했다.

9월 16일 KT전에서 10대2로 뒤진 8회말에 등판했다. 첫타자에 내야안타를 허용한 뒤, 볼넷과 안타로 1실점했다. 이후 2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잡으며 이닝을 끝냈다. 평균자책점은 0에서 2.25로 올랐다. 최고 구속은 143km. 그래도 노성호와 함께 제일 잘 던졌다...

그러나 9월 18일 KIA전에서 등판, 8회초는 뜬공으로 마무리 했지만 9회 첫타자 김민식에게 풀카운트 끝 볼넷을 내주고 김태진에게 안타를 맞고 희생번트와 사구로 1사 만루를 만들었다가 김규성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말았다. 평균자책점은 8.44.

해설진들도 말한 것처럼 구속이 1군 콜업 초반때보다 거의 2~3키로 더 줄었다. 평속이 139~140 정도로 떨어지며 베팅볼이 되어버렸다. 제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콜업 이후 불안불안한 투구를 이어가다 결국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경기서 나름 잘 던진 것도 있고, 추격조로 내정된 장필준이 너무 못던진 것도 있어서인지 추격조로 올라온 듯한데, 첫 등판부터 거하게 털려버렸다...

이후 등판이 없다가 9월 23일 2군으로 내려갔다. 당일날 퓨처스 롯데전에 "또" 선발투수로 내정되었다.

아마 23일 1군 NC전에 선발로 내정된 이승민 대신 내려간 듯 하다. 이승민이 올라오면 2군 선발진에 한자리가 비는데, 2군서 던질만한 선발이 없어서 정인욱이 내려간 듯. 이승민이 잘 던진다면 콜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웨이버 공시됐다. 보통 방출을 알리는 시기보다 빠르게 공식화 되었는데 이런 경우는 타 팀에 빨리 자리잡게 보내주는 경우다. 그러나 과연 주워갈 팀이 있을지..

본인은 엠스플뉴스 등 관련 매체를 통해 현역 연장 의지를 계속 내비쳤지만 그동안 보여준 게 다른 의미로 많다 보니 반응은 매우 싸늘하다. 예를 들어 링크된 엠스플뉴스의 기사만 봐도, 보통 방출된 선수가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면 관련 기사의 반응에서도 슬퍼요나 좋아요같은 반응이 많지만 해당 기사에서는 화나요의 비중이 다수를 차지한다거나 하는 식. 그나마 장점이라면 31세로 젊은 편(?)이라는 것 정도.[22]


3.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방출된 후인 12월 7일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12월 13일 한화 이글스에 입단이 확정됐다. 입단 테스트 당시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최고 구속이 142km/h로 측정되었고 구속 대비 회전수 또한 준수하다고 하며, 또 야구 외적으로 가장으로서의 동기부여도 고려했다고 한다. 팬들은 투수 하나 정도가 늘어서 좋기는 하다는 반응이나 큰 기대를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구단의 기대치도 그리 크진 않은지 연봉은 최저 연봉인 3,000만원[23]으로 책정되었고 그마저도 정식 등록선수가 아닌 육성선수로 계약했다. 무엇보다 한화가 방출 선수들 활용에 적극적인 구단인 점을 고려하면 시즌 초 1군에서 뛸 기회는 어느 정도 주어지겠지만, 대신 성적이 저조하다면 받아준 당 해에도 바로 방출해버리는만큼[24] 중요한 시즌이 될 듯. 그리고 우려한 대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1년 만에 방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다른 팀에서 방출된 투수까지 단 2명만 테스트를 받았으나, 정인욱 외엔 추가로 방출된 선수를 영입하진 않을 예정이다.


3.1. 2021 시즌[편집]


4월 퓨처스리그에서의 세 번의 구원 등판에서 모두 실점하며 평균자책 10점대에 WHIP는 2를 넘긴 수치를 보이고 있다가, 5월 9일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평균자책점을 낮췄고, 이를 계기로 반등이 가능하다고 판단된 것인지 5월 21일에 정식 선수로 전환됨과 동시에 닉 킹험이 광배근 통증으로 말소되면서 정인욱은 1군에 등록되었다. 수베로 감독은 정인욱을 선발 자원으로 준비했으나, 23일 kt전에서 중간 계투로 먼저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

5월 23일 kt전에서 김종수의 뒤를 이어 4번째 투수로, 그리고 한화 이적 후 처음으로 등판했다. 1이닝을 던지면서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을 위주로 던졌는데, 직구 최대 구속이 147km/h까지 찍혔다. 탈삼진 1개를 잡았지만, 4사구를 5개[25]나 내주며 제구에 대한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은 피칭을 했고, 다음 투수로 나온 주현상이 정인욱의 승계주자를 실점하면서 정인욱은 이날 1실점도 기록했다.

5월 28일 SSG전에서 윤대경에 이어 세 번째 투수로 등판했고, 최정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등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5월 29일 SSG전에서도 윤대경에 이어 시즌 세 번째 등판을 했다. 이날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을 던지며 최고 구속 146km/h를 찍었고, 로맥김강민을 각각 볼넷과 야수 실책으로 출루시켰으나, 김찬형-최지훈을 범타로 처리했고, 김강민을 견제사로 잡아내며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6월 2일 KIA전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고, 2이닝을 1탈삼진과 2사사구를 곁들이며 1실점했지만, 힐리의 실책으로 비자책점으로 기록됐다.

6월 16일 롯데전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로 나섰으나 심각한 제구난조를 보이더니 2회 2아웃 2, 3루의 위기의 상황을 맞았고, 볼카운트 3B 2S에서 김재유에게 3점 홈런을 허용했고, 3회에 바로 주현상으로 교체되었다. 타선이 4회 동점을 만들며 패전은 면했다. 그리고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10월 14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삼성에서 방출된 데 이어 한화에서도 안 좋은 제구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새 팀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 팀을 찾지 못하면 이대로 은퇴해야 할 수도 있다.


4. 은퇴[편집]


결국 현역에서 은퇴했고, 고향 대구로 내려가 수성구에 막창집을 개업했다.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

[1] 고교 시절 정인욱을 지도한 박태호 대구고 감독 말로는 공 빠른 거 말고는 써먹을 데가 없어서 투수로 전향시켰다고 한다. 우승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결승전 다음날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가서 놀고 싶다고 말했다.[2] 상대팀인 경남고는 청룡기 3연패(2006-2008)에 도전했으나 에이스 박민규가 9회말 대구고 대타 임세원(외야수)에게 끝내기 2루타를 맞으며 1-2로 패했다.[3] 2018년에 좋은 모습을 보이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가 했으나 그 뒤로 계속 부진했고 결국 2020 시즌 후 방출되었다.[4] 역대 투수 최다 실점 기록은 1999년 두산 베어스의 김유봉이 대구 삼성전에서 3⅔이닝 동안 14실점을 내준 게 최고다.[5] 2011시즌에 이대호에게 3연타석 홈런을 맞은 기록도 있다. 이 경기는 이대호의 엄청난 활약 속에 무려 3:3 무승부로 끝이 났다.[6] 한국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3승2패의 성적을 거두며 최종 3위를 기록했다.[7] 실제로는 며칠 전 1군에 합류한 상태였다.[8] 허리디스크 수술 후 재활하다 7월 30일 SK 2군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2이닝 4실점을 했다.[9] 허리 통증에서 복귀한 7월 25일 한화 2군전에서는 2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7월 31일 롯데 2군전에서는 2이닝 4실점을 기록했다.[10] 다만 22일 넥센전 구원등판한 뒤 하루 쉬고 선발로 나왔음을 감안하자.[11] 해당 스크린샷에서 김헌곤 계정이 같이 보였으나, 일단 김헌곤은 예전에 팔로잉 했고 정인욱이 팔로잉하면서 같이 뜬 것으로 보인다.[12] 이름은 정아인이다.[13] 군대를 가기 전에는 준수한 선발 투수였으나 군대에서 폼이 망가지기도 한지라 일단 이거라도 고쳐본다면 혹시? 하는 심정인 듯.[14] 그러니까 2군에서 정인욱만큼이라도 (...) 하는 투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15] 링크 기사의 베댓이다.[16] 아이러니한 것이, 3회 말 만루홈런을 허용했는데 저 4점은 모두 본인의 자책이었다. 그러나 백정현이 내려간 2회 말엔 정인욱이 1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았다.[17] 러프의 실책이있었고 안타를 한개 맞아서 1사 2,3루가 되었다[18] 30이닝 이상 던진 삼성 투수들 중 방어율 1위다. 2위는 3.60의 최충연, 최채흥은 3.21이지만 28이닝을 소화했다.[19] 선발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김한수 감독이 직접 밝혔다. [20] 상무 지원. 12월 6일 기준으로 1차 서류는 합격했나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니다. 물론 한 팀의 주전 선수였고 국가대표 유니폼도 두번이나 입었던 선수이기에 최종 합격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결국 상무 최종 합격했다.[21] 최고 구속은 147km까지 나왔다. 평균 구속은 140km정도.[22] 방출된 선수들에 대해 네이버 스포츠 이용자들이 자기 맘에 안 들면 유독 박하게 구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23] 2021 시즌부터 최저 연봉이 기존의 2,7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24] 2020 시즌만 해도 최승준, 김문호, 이현호 등이 기대 이하의 폼을 보이자 입단 1년 만에 방출됐던 전례가 있다.[25] 6회 3개, 7회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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