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리/선수 경력/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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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의리의 국가대표 경력에 대해 다룬 문서.

2. 연도별 대회[편집]



2.1. 2020 도쿄 올림픽[편집]



파일:도쿄올림픽 이의리.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ERA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4사구
탈삼진
2
2
10
4.50
0
1
0
0
9
2
5
5
4
18
(1위)[1]

KIA 타이거즈 선수 중 유일하게 선발되었다. 평균 146km/h, 최고 151km/h의 빠른 구속과 신인인데도 선발 로테이션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는 점 그리고 김광현, 양현종의 미국행과 구창모의 부상, 최채흥의 부진으로 좌완 투수가 귀해진 덕을 봤다. 마침 엔트리가 발표된 6월 16일은 본인의 생일이었고, 이 날 경기에서 5⅔이닝 1피안타 10K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선발승도 챙겼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최고의 하루가 되었다.



210725 국가대표팀 평가전[2]

7월 25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평가전에서 두 번째 투수로 4회말에 등판해 2⅔이닝 3피안타 1K 1실점을 기록하였다. 포심의 평균 구속은 146km/h, 최고 구속은 148km/h으로 기록되었다. 6회말 1사 후 박준태에게 던진 포심이 좌전 안타가 되었고, 서건창에게 던진 변화구가 장타로 연결되어 1실점을 하였다. 4사구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던 점이 고무적이었다.



210801 1라운드 도미니카 공화국전 | 파일:KBS 로고 화이트.svg

8월 1일 녹아웃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다. 1회초 선두 타자 보니파시오와 2번타자 멜키 카브레라에게 연달아 안타를 허용하며 주자 1, 3루 위기를 맞았다. 거기다가 폭투까지 허용하며 1실점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고 세 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하며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4회에 투런 홈런을 허용하긴 했으나 그 외의 실점은 없었고 5회까지 3실점으로 잘 막아주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5회를 넘긴 선발 투수가 됐고 이날 경기에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위주의 피칭으로 5이닝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9K 3실점을 기록했다. 만 19살의 신인 투수에다 선발 투수로서 아주 중요한 경기를 이끌어가는 부담감이 상당했을텐데 기대 이상의 투구를 보였지만, 투런 홈런을 맞은 실투가 상당히 아쉬웠다. 실점으로 이어진 실투만 빼면 이렇다 할 흔들림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향후 경기에서는 실투의 비율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

8월 5일, 준결승 B경기 미국을 상대로 선발 등판한다. 3일 휴식 후 선발 등판이다. 도미니카전에서 74구를 던지고 단 3일 휴식후 미국전 선발 등판이란 소식에 KIA에서도 철저한 로테이션 관리를 받는 신인을 굴린다며 일부 팬들이 걱정 중이다.



210805 패자 준결승 미국전 | 파일:KBS 로고 화이트.svg

8월 5일 준결승 B경기에서 미국을 상대로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9K 2실점으로 쾌투했다. 도미니카전 투구에 비해 다소 힘이 떨어진 모습이었지만,[3] 신인 투수가 3일 휴식 후에도 좋은 투구를 해줬다. 다만 타선이 터지지 않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5이닝을 2실점으로 잘 틀어막고 내려갔지만 6회에 올라온 무려 5명의 투수들이 미국 타자들에게 대량 득점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5실점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이의리가 국제대회에서도 통한다는 걸 엿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4이닝 이후 더 던질수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모습.
미국전 패배 이후 아쉬움에 덕아웃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탈삼진 18개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 중 탈삼진 1위를 기록중이며, 이번 올림픽에서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공동 1위이다. 이닝수까지 고려한다면 이의리는 10이닝, 야마모토는 11⅓이닝으로, K/9[4]는 1위다.

일본에서도 이번 미국전 호투를 많이 칭찬하였고, 아래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 펼치기 · 접기 ]

"김광현, 양현종의 좌완 에이스 자리를 이어받기를 바란다."


"고등학교까지만 나왔는데 이 정도면 대단하네, 일본전에서 만나보고 싶다."


" "


"한국의 이의리, 고등학교 졸업인데 완성도가 높다, 스기우치 도시야를 떠올렸다."[1]


"체인지업이 좋은 것이 인상적이며, 왼쪽으로 공이 빠른 것도 매력적이지만 한국의 젊은 투수들 중 흔히 있는 2피치 스타일이 아닌 것이 류현진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에 6:10으로 대패를 당하며 군 면제 혜택도 날아가게 되었다. 병역 혜택의 다음 기회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마저도 대회 기간 동안 시즌 중단은 없다는 방침이 세워졌기 때문에[5] 프로 선수들의 차출이 힘들어지는지라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은 어디까지나 임시 종목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 이외에는 병역 혜택을 잡을 수 있는 대회가 별로 많지 않은 데다 아시안 게임을 놓치면 다음 병역면제 기회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이라 무려 4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에 시기적으로도 항저우 대회가 군면제를 받기 가장 적합하고 때마침 김기훈이 전역하고 윤영철도 합류하는 만큼 구단 역시도 될 수 있으면 보내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에서는 대표팀 차기 에이스로서의 쇼케이스를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6]

2.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파일:강철호이의리.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선발
이닝
ERA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사구
탈삼진
상세
1
0

0.00
0
0
0
0
0
0
0
3
1
-
같은 팀 동료인 양현종, 나성범과 함께 최종 30인 엔트리에 승선하였다. 도쿄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대표팀 막내를 맡게 되었다.

대회 전 이정후와 함께 미국으로 먼저 건너가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대표팀 소집 후 가진 소속팀 KIA와의 연습경기에서 변우혁에게 홈런을 맞았다(...)

3월 7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평가전에서 7회 등판해 초구 151Km을 기록하면서 시작하였고 선두 타자를 김하성의 멋진 호수비로 잡아냈지만 그 이후 사구와 볼넷을 허용하며 1사 1, 2루 상황에서 사이드암 정우영에게 마운드를 넘겨주고 강판됐다. 정우영이 실점없이 7회를 끝내며 ⅓이닝 1볼넷 1사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3월 10일, 일본전 7회말 11: 4로 뒤진 상황에 등판 ⅓이닝 3볼넷 1K 무실점을 기록했다. 전력 투구로 한국 투수들 중 가장 빠른 공인 151~155km를 뿌렸으나, 제구가 아예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강판당했다(높게는 포수 머리부터 좌우로 포수가 몸을 날려야 잡을 수 있는 공이 수두룩했다. 스트라이크존에 던질 확률이 3할이었으니 말 다했다). 속구부터가 이렇다보니 변화구는 거의 던지지도 못하고 내려왔다.[7]다음 투수 박세웅이 실점없이 이닝을 끝내 자책점을 기록하진 않았으나 2사 만루에 콜드게임 위기를 볼넷으로 자초했다. 당시 1사 2, 3루 상황이라 젊은 나이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콘도 켄스케에게 볼넷, 오타니 쇼헤이에게 볼넷 및 폭투[8],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김윤식과 함께 일본전 한국 투수 최다 볼넷(3볼넷) 허용 기록을 세웠다. 공인구 적응에 실패하며 제구 난조를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투수들이 KBO 리그에서의 구속보다 느려진 투구를 하며 배팅볼을 던졌다면, 이의리는 전력 투구로 구속은 빨랐지만 제구가 안 잡혀 볼질을 했다. 어쩌다가 가끔씩 일본 타자들조차도 어찌하지 못하는 엄청난 위력의 돌직구[9]를 스트라이크존에 넣기도 했지만 문자 그대로 어쩌다가 한 번에 불과했고, 해설위원 이대호 역시 '저런 좋은 공이 가끔씩 들어가면 안 되며, 계속 던질 수 있어야 좋은 투수로 성장할 수 있다'며 지적했다.

이 날의 피칭이 해외에서도 상당히 인상 깊었는지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이의리를 탐내는 반응과 저런 투수는 나오면 안 된다(...)는 반응이 병존했다. 하지만 워낙 피칭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인 중국전까지 추가 등판은 가지지 못했고 대회 종료 후 이강철 감독에게 대놓고 자신의 공을 던지지 못했다고 지적당했다.

2.3.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참가 불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류중일호/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같은 팀의 최지민, 최원준과 함께 엔트리에 들며 3년차에 벌써 국가대표에 세 번이나 승선하게 되었다.

하지만 9월 22일 손가락 물집 부상을 원인으로 대표팀에서 낙마당했다.

2.4.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파일:이의리 apbc.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세이브
홀드
ERA
탈삼진
승률
이닝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투구수
1
0
1
0
0
3.00
3
.000
6
6
1
3
96

2023년에 개최되는 APBC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팀 동료인 정해영, 최지민, 김도영과 함께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었다. 11월 16일 일본전에 선발투수로 낙점받았다. 상대투수는 같은 좌완투수인 스미다 치히로이다.

11월 17일 일본전에 등판했다. 1회부터 1사 만루위기를 맞으며 실점위기에 처했지만 잘 막아냈다. 그후 특유의 이닝당 주사위 피칭으로 퐁당퐁당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일단 2회는 잘 틀어막은 후 3회에 무려 무사만루 위기를 맞아 정말로 무너지나 했지만 만루변태답게 병살과 뜬공아웃으로 1점만 허용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후 4회에 만나미 츄세이에게 1점 홈런을 허용한것을 빼면 6회까지 잘 막아주면서 무려 일본을 상대로 6이닝 6피안타 3K 2실점으로 QS를 기록하며 본인이 왜 국가대표 좌완에이스인지 또다시 증명했다. 구속역시 평균 148km/h, 최고 153km/h의 직구를 내새워 일본타선을 잘 상대했다. 하지만 타선이 침묵하며 2:1로 경기를 패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상하게 리그와는 다르게 국대에선 승리운이 없다.

여담으로 이 날 이의리가 기록한 한일전 퀄리티 스타트는 (일본 프로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아시안게임을 제외하면) 2008 베이징 올림픽 김광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3. 대회별 성적[편집]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역대 A대표 국가대표 기록


연도
대회
경기




승률
ERA
이닝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투구수
2021
올림픽
2
0
1
0
0
.000
4.50
10
9
2
4
18
5
5
162
2022
WBC
1
0
0
0
0
.000
0.00

0
0
3
1
0
0
22
2023
ABPC
1
0
1
0
0
.000
3.00
6
6
1
3
3
2
2
96
국가대표 통산
(2대회)
4
0
2
0
0
.000
3.86
16⅓
15
3
10
22
7
7
280

[1] 일본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공동 1위[2] 1분 27초부터 3분 29초까지[3] 포심의 최고 구속은 147km/h, 최저 구속 140km/h 로, 평소보다 1~2km/h 정도 덜 나오는 구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개의 탈삼진을 유도했다.[4] 9이닝 당 탈삼진 개수[5] 물론 이번 대회에서의 처참한 성적으로 인해 2022 시즌 직전까지 협회 차원에서 방침을 바꿀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6] 류현진, 윤석민, 김광현, 양현종 이후로 확실한 국가대표 에이스가 없던 한국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꾸준히 활약해줄 국가대표 에이스가 간절하기에 2019년 이후 부진한 이영하나 유리몸인 구창모와는 다르게 꾸준히 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7] 평가전에서부터 이의리의 투구를 보면 제구도 불안한데, 구창모처럼 공인구 적응도 거의 안된 모습이다.[8] 폭투할 때 몸에 맞을 뻔했고 이는 빈볼에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 아닌 것으로 유명한 오타니를 분노하게 했다.. 다만 오타니는 볼넷으로 1루 출루 후 1루수 박해민의 해명과 이의리가 다음 타자를 상대하며 여전히 전혀 제구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고의가 아니었다는 알고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고 한다(...)#[9] 이의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평가받는다. 리그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구위로 탈삼진을 많이 잡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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