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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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豊府院君 李曙(완풍부원군 이서)
1581년 1월 7일[1] (음력 1580년, 선조 13년 11월 22일) ~ 1637년 1월 28일(음력 인조 15년 1월 3일) (향년 56세)[2]
이서는 이경록[3] 의 아들이며, 조선시대 인조반정에 가담해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된 조선시대의 군인이다.
인조반정 당시 광해군의 측근 중 하나였던 영의정 박승종의 친척이었는데, 본래 박승종은 살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반정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인조가 허락하지 않자 무척 상심하였고, 본래 이서에게 약속을 했던 김류와 이귀가 끈질기게 인조를 설득하여 일단 후일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양보를 받아냈으나, 그때 지방으로 도망친 박승종은 이미 장남과 같이 음독자살한 뒤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인조에게 박승종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고 청했고, 인조에게서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장례를 허락받는다.
남한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재상 이귀의 지원을 받아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전쟁 대비를 했다. 병자호란때 왕을 호종하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지키다가 1637년 1월 적군이 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항복을 재촉하는 가운데 과로로 순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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