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공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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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순조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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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문헌공(文獻公)
남공철
南公轍

출생
1760년(영조 36)
사망
1840년(헌종 6)
재임기간
제223대 영의정 (10년 2개월 29일)
1823년 4월 4일 - 1833년 7월 3일
(음력 순조 23년 2월 23일 - 순조 33년 5월 16일)
시호
문헌(文獻)
본관
의령 남씨[1]

원평(元平)

금릉(金陵)
붕당

(탕평당, 시파)
부모
부친 - 남유용(南有容, 1698 ~ 1773)
모친 - 안동 김씨 김석태(金錫泰)의 딸
부인
청주 한씨 한용화(韓用和)[2]의 딸
자녀
(양자) - 남지구(南芝耉)[3]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원평(元平). 호는 금릉(金陵),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순조영의정을 지냈다.

부친은 정조의 세손 시절의 사부이자 대제학을 지낸 남유용(南有容)이고, 조부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낸 남한기(南漢紀)이다.


2. 생애[편집]


1780년(정조 4) 초시에 합격하였고, 아버지가 정조의 사부였기에 1784년에 음보(음서)로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를 제수받았다. 이어 산청, 임실의 현감을 역임했다. 친시 문과에 급제했을 때, 정조가 친히 남공철을 불러서 아버지 남유용을 회고하며 감격스러움을 표할 정도로 아꼈다. 특히 정조는 남공철을 낭청에 배속해 사관직을 겸하도록 배려하였다. 급제 이후 홍문관 부교리(弘文館副校理)·규장각 직각(奎章閣直閣)에 임명되어 정조의 우문정치(右文政治) 추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임되었으며, 친구이자 후일의 정치적 동지인 김조순(金祖淳)·심상규(沈象奎)와 함께 패관 문학풍을 일신하려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참여하였다. 문체반정 운동에 참여한 이후 육경고문(六經古文)을 깊이 연찬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성균관 대사성, 승정원 우승지를 지내고 비변사 부제조, 강원감사, 홍문관부제학, 규장각직제학, 승정원 도승지, 경상감사를 거쳐 판의금부사, 공조판서,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예문관제학, 대제학, 병조판서, 홍문관제학, 세자시강원 우빈객, 좌빈객,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하다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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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경공파(忠景公派)-감찰공파(監察公派)[2] 정치적 동지이자 221대 영의정인 한용귀(韓用龜)의 큰형이다.[3] 사촌 남공혁(南公爀)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