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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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순조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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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문헌공(文獻公)
조두순
趙斗淳

출생
1796년 5월 13일
(음력 정조 20년 4월 7일)[출처]
사망
1870년(고종 7)
시호
문헌(文獻)
본관
양주 조씨

원칠(元七)

심암(心菴)
부모
부친 - 조진익(趙鎭翼)
모친 - 반남 박씨 박종악(朴宗岳, 1735 ~ 1795)의 딸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극(趙榮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종철(趙宗喆)이고, 아버지는 조진익(趙鎭翼)이며, 어머니는 박종악(朴宗岳)의 딸이다.[1]

동학농민운동도화선이 된 탐관오리로 유명한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 그의 서조카이다. 즉, 본 문서의 조두순은 조병갑의 백부이다. 다만 조카와 달리 조두순 본인은 특별히 악행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고, 생애를 보면 나름 유능하여 관직 생활을 순탄하게 지낸 것으로 보인다.

그 범죄자 조두순과 이름의 한자 표기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


2. 생애[편집]


1816년(순조 16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1826년(순조 26년)에 황감제시(黃柑製試)[2]에 장원 급제했다. 이어 같은 해 4월에 열린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규장각대교로 선발되었다.

1849년에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헌종실록 편찬을 주관했다. 1850년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신도비문을 지었으며, 병조판서가 되었다. 1851년 동문휘고(同文彙考)[3] 편찬을 담당했다.

고종이 즉위하고 초반에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의 복고적 개혁 정치의 일환인 경복궁 중건, 삼군부 설치, 대전회통 편찬 등을 담당했다. 1866년에 은퇴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1870년에 사망했고,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대중매체[편집]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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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주조씨족보》 조두순편.[1] 출처 [2] 매년 제주목에서 진상밀감을 임금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하사하면서 거행하는 일종의 과거 시험.[3] 조선 후기의 대청(對淸)과 대일(對日) 관계의 교섭 문서를 집대성한 외교문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