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호(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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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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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KBO 리그 다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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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KBO 리그 승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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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KBO 리그 구원왕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김동재
(1989~1993)

신윤호
(1994~1996)


장문석
(1997~2005)
LG 트윈스 등번호 87번
결번

신윤호
(1997~1998)


민우혁
(2003)
LG 트윈스 등번호 16번
앤더슨
(1998)

신윤호
(1999~2008.5.31.)


이재영
(2008.6.3.~2010.7.27.)
SK 와이번스 등번호 32번
이성우
(2008~2008.5.4.)

신윤호
(2008.6.8.~2008)


박윤
(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72번
신정익
(2011~2013)

신윤호
(2014)


오수호
(2015~2017)



파일:external/www.siminilbo.co.kr/338232_20238_2328.jpg

2008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직후에 찍은 사진.[1]
신윤호
申潤浩 | Yoon-ho Sin

출생
1975년 5월 15일 (48세)
서울특별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청구초 - 충암중 - 충암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08)
SK 와이번스 (2008, 2014)
가족
아들 신효수

1. 개요
2. 선수 경력 1기
2.1. 2001 시즌
3. 1차 은퇴
4. 선수 경력 2기
5. 2차 은퇴 이후
6. 연도별 성적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우완투수.


2. 선수 경력 1기[편집]


충암고 시절[2] 주형광과 함께 고교야구계의 좌우 쌍두마차라고 불리며 "제2의 선동열" 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기대를 받던 역대급 유망주였다.[3] 이후 연고 팀 LG 트윈스에 입단, 고졸 신인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총액 1억 원대(계약금 8,800만 원+연봉 1,200만 원)의 몸값을 받았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4]

그러나 정작 데뷔 후에는 구리 2군 숙소에서 틈만 나면 이탈하기 일쑤였으며 무단 이탈해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축구 팀 버스와 승용차를 두들겨 부수고 다니는 등의 기행[5][6]과 불성실한 연습 태도로 인해 고교 때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신윤호의 실패로 인해 LG는 고졸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을 얻기도 했다.

1996년현역으로 입대하여 철원군에서 복무했지만, 얼마 안 가서 허리를 다쳐 의병제대했다.[7]

2001년이광은 감독이 경질되고 김성근 수석코치가 1군 감독 대행[8]으로 선임된 이후 집중적인 조련을 받고 기량이 급상승하여, 1군 70경기(2위)[9] 144⅓이닝 15승 6패 18세이브(4위) 32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2(2위)라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10] 이 활약으로 신윤호는 손민한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으며 다승, 구원, 승률 1위를 하여 3관왕에 올랐고 MVP투표 1차에서는 이승엽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2차투표에서 이승엽, 신윤호를 투표하지 않은 기자들이 이승엽에게 투표하면서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이승엽 인지도가 신윤호에 비하면 넘사벽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투수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11] 하지만 규정 이닝을 넘어 불펜 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144이닝[12]이라는 무지막지한 수의 이닝을 먹은 탓에 혹사 논란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으며, 김성근 감독의 대표적인 혹사 사례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신윤호 본인은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후의 몸 관리가 문제였음을 밝히고 있고, 오히려 김성근 감독 덕분에 잠시나마 돈도 많이 벌어 봤고 선수 생명을 더 이어갈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13]크보 공인 멘탈레기를 그나마 사람이라도 만들었으니 그거라도 다행이지 아무리 봐도 이거 멘탈을 갱생시키는 대신 몸을 망가뜨리는 악마의 거래 신윤호는 한동안 LG 최후의 15승 투수로 남아 있었고, 2020년 케이시 켈리가 19년만에 15승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토종 투수로는 아직까지 LG 최후의 15승 투수다.

더불어 그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고,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때까지 LG 트윈스에서는 21년 동안 시간이 멈춰 있었다.[14]

이후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부상으로 신음했다. 게다가 노는 거 좋아하는 성격 역시 재활에 도움이 되지 못했을 정도.[15][16] 2005년 시즌 초반 마무리로 낙점되어 9세이브를 기록했으나 점점 불쇼를 저지르더니 5월 26일 롯데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최준석에 결승 2점홈런을 맞는 등 4실점하면서 마무리 자리를 내려놓았다.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어 김성근 감독이 재직 중이던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SK에서도 마땅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2.1. 2001 시즌[편집]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입단 8년차의 무명의 평범한 고졸 중간계투에 불과했다. 나오는 보직도 주로 점수가 벌어진 뒤에 등판하는 패전조나 롱릴리프였다. 4월 26일까지의 시즌 방어율은 4.61에 승리도 패전도 홀드도 세이브도 없는 그저 그런 무명의 투수였다.

그러다가 LG 선발진이 막장화되면서 선발투수로 등판하기 시작했다. 4월28일 대전 한화전에서 5.1이닝 6피안타 4K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지만 불펜의 난조로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5월 3일 잠실 롯데전에서는 4이닝 5피안타 4볼넷 4탈삼진 4실점(3자책)으로 승패 없이 물러났다.

5월 8일 수원 현대전에서 6이닝 동안 탈삼진 6개를 잡고 피안타 6개, 볼넷 3개로 3실점하며 팀의 6-3 승리를 이끌었다. 데뷔 8년만에 첫 선발승이자 2001 시즌 선발과 구원 할거 없이 막장화된 LG의 첫 토종투수 선발승이었다.

5월 13일 잠실 삼성전에서는 3.2이닝동안 4사구 5개에 5K 3실점에 그치며 조기 강판되었고 방어율은 4.68이었다. LG가 1-3으로 뒤지다가 역전하며 패전투수가 되지 않았지만 LG는 이날 다시 역전당하며 9-8로 져 5연패 수렁에 빠졌다. 결국 3일 뒤 이광은 감독이 9승1무25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전격 경질되고 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김성근 대행체제에서 선발 투수에서 마무리 투수로 보직이 변경됐다.

김성근 체제 첫 경기였던 5월 16일 두산전에서 5회 2사에서 등판해 4.1이닝을 55구 2피안타 1볼넷 3K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9회말 이병규의 끝내기 안타와 함께 구원승을 올렸다. 신윤호는 방어율을 4.14로 낮췄고, 김성근 체제에서 첫 번째 승리투수가 됐으며 LG는 36경기만에 팀 10승에 성공했다.

이틀 뒤인 5월 18일 광주 해태전에서 LG가 4-2로 앞선 7회말 2사에서 등판해 31개의 투구수를 가지고 8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 삼진 2개로 무실점하며 시즌 첫 세이브를 올렸다.

5월 23일 잠실 한화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6회초에 올라와 데이비스를 상대로 김민기의 주자를 분식하며 적시타로 역전을 허용했으나 4이닝동안 55구를 던지며 2피안타 1BB 1K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팀의 7-6 재역전승으로 시즌 3승째를 올렸다. 방어율은 3.53으로 낮아졌다. LG는 한화전 7전 전패 끝에 첫 승리를 올렸다.

다음날 6-2로 앞선 8회초 LG 구원투수 장문석이 볼질하고 안타를 맞아 무사만루가 되자 전날 55구의 투구에도 불구하고 등판했다. 송지만과 강석천에게 2루타를 맞아 본인 실점까지 포함하며 6-6 동점을 내줬지만 8회말 최동수의 솔로홈런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고 9회초 1사 2루의 위기를 넘기며 시즌 4승째를 올렸다. 이날 던진 투구수는 32구였다.

5월 25일 잠실 SK전에서 LG가 4-3으로 이기고 있는 9회초 1사 1루에서 올라와 3연투했다. 이틀동안 87구를 던지며 연투한 신윤호는 조원우를 공 두 개로 병살타를 잡으며 시즌 2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29일 광주 해태전에서 4-4로 팽팽히 맞선 7회말 등판해 2.2이닝 45구 4피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6경기 연속 구원에 성공하며 시즌 5승째를 올렸고 방어율은 3.33이 됐다. 최근 6경기에서 14이닝을 던지며 삼진 14개를 잡아내고 단 1점의 자책점만을 기록해 방어율 0.64의 초특급 피칭으로 LG 상승세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8회 선두타자 홍세완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 번트와 포일, 김상훈의 적시타로 패전위기에 몰렸으나 9회초 LG가 2사 1,2루에서 최동수의 2타점 2루타로 극적으로 역전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5월 31일 광주에서 열린 해태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9:6으로 7회말 1사에서 등판해 2.2이닝 41구 3피안타 1사사구 1K 무실점으로 시즌 3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방어율은 3.16으로 낮아졌다. 5월 한 달 동안 5승과 3세이브, 방어율 2.51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다음날인 6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LG가 8:8 동점을 만든 뒤 8회말에 등판해 2이닝 46구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이날은 피안타 1개와 사사구 3개를 기록할 정도로 내용은 좋지 않았다. 방어율은 3.04로 낮아지게 됐다.

6월 3일 대전 한화전에서 LG가 6:5로 앞선 8회말 1사1루에서 등판했지만 9회말 송진우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는 등 4개의 사사구와 4개의 피안타로 3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7:5로 앞선 9회말 1사에서 강석천장종훈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뒤 신국환에게 2루타를 맞고 폭투까지 허용하며 동점을 내줬다. 1사 3루에서 조경택을 고의4구로 거르고 한화 마무리 워렌을 상대하려 했으나 한화는 워렌 대신 대타 송진우를 투입했고 2-0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송진우에게 직구를 통타당하며 프로야구 최초의 투수 대타 끝내기라는 기록의 허용투수가 됐다.

6월 6일 잠실 SK전에서 7회초에 등판해 4이닝동안 62구를 던지며 3피안타 3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유지현의 연장 10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시즌 6승째를 올렸다. LG 천적 오상민을 무너뜨린 경기라서 의미가 있었다.

6월 8일 잠실 롯데전에서 6:5로 뒤진 8회초에 등판해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LG가 8회말 양준혁의 3타점 싹쓸이 3루타 등으로 9:6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7승째를 거뒀다. 이날 롯데 선발투수였던 손민한과 함께 다승 공동선두에 올랐고, LG는 개막 후 64일만에 처음으로 꼴찌에서 탈출했다.

6월 10일 잠실 롯데전에서 4:4로 맞선 6회초 2사만루에서 등판했으나 박정태에게 밀어내기 볼넷으로 결승점을 내주고 말았다. 7회초 볼넷 2개와 피안타 2개로 3실점하며 방어율은 3.52로 올라갔다.

6월 12일 대구 삼성전에서 6:6으로 맞선 9회말에 등판해 첫 이닝은 삼성의 중심타선 이승엽마르티네스, 마해영을 삼자범퇴로 처리했으나 연장 10회말 1사에서 연속 볼넷과 내야안타로 만루 위기를 맞은 뒤 강동우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시즌 2번째 패전투수가 됐다. 방어율은 4.02로 올라갔다.

6월 15일 두산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해리거의 뒤를 이어 8회초에 등판해 2이닝동안 4사구만 3개를 허용했지만 무실점했고, LG가 9회초 유지현의 3점홈런 등 4득점하며 시즌 8승째를 올렸다. 방어율은 3.90으로 낮췄다.

다음날 5:4로 뒤진 7회말 1사에서 등판했으나 8회말 2실점하며 부진했다. 1.1이닝 2실점으로 방어율은 4.07이 됐다.

6월 21일 해태와의 잠실 더블헤더 1차전에서 LG가 2:1로 앞선 7회초 무사 1루에서 선발 해리거에 이어 등판해 3이닝동안 사사구 없이 2탈삼진 퍼펙트로 시즌 4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방어율은 3.89로 낮췄다. 이날 LG는 해태와의 더블헤더와 3연전을 스윕하며 SK를 제치고 6위로 올라갔고 4위 해태와의 승차를 2.5경기차로 좁히며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밝혔다.

6월 27일 인천 SK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해리거의 뒤를 이어 8회초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5세이브를 기록했다. 2피안타를 허용했지만 2개의 탈삼진과 1개의 병살타 유도를 했으며 방어율은 3.79로 낮췄다.

6월 30일 삼성과의 잠실 더블헤더 1차전에서 1:1로 맞선 8회초에 선발 발데스에 이어 등판해 2이닝동안 3피안타를 맞았지만 3탈삼진과 함께 무실점했고 8회말 LG의 5득점과 함께 시즌 9승째를 올렸다.[17] 현대의 전준호, 삼성 임창용, 롯데 손민한을 제치고 다승 단독 선두가 됐고, 8개구단 투수 중 가장 먼저 전구단 상대로 승리투수가 됐다. 방어율은 3.68로 낮아졌다.

7월 4일 잠실 현대전에서 6회 2사에서 선발 김민기 대신 구원등판해 3.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시즌 10승에 선착했다. LG는 현대에 2-1로 승리하며 5위 한화와 승차가 같은 7위가 됐다. 다음날에는 6-4로 앞선 7회 2사에 등판했으나 8회초 퀸란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발데스의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 LG는 현대와 6-6 무승부를 기록했다.

7월 7일 인천 SK전에서 4-1로 앞선 7회에 등판했으나 8회와 9회 각각 1실점해 4-3으로 추격을 허용했고 가까스로 이동현의 시즌 3승을 지켜내며 시즌 6세이브를 거뒀다.

7월 10일 5위 자리가 걸린 대전 한화전에서 8회에 발데스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송진우와의 구원 맞대결 끝에 2이닝 무실점으로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3. 1차 은퇴[편집]


은퇴 이후에는 인쇄업 등 개인 사업을 했다. 2009 시즌에는 LG 트윈스상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한편 야구 레슨을 하며 사회인야구 팀에서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인야구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했고, 야구레슨을 하면서 4000개 가량의 공을 던지면서 단련이 되었다고 한다. 몇몇 인터넷 강사들이 돈 벌려고 과외를 하다 수능감이 죽지 않아 다시 대학에 도전한 것과 비슷하게, 본인도 4천개 가까이 던지면서 구위가 죽지 않고 컨디션이 돌아와 재기를 결심한 듯.


4. 선수 경력 2기[편집]


불혹을 앞두고 2013년 9월 9일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사회인 야구 팀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몸을 만들어 왔다고.

2013년 10월 27일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복귀에 성공했다. 당시 구속이 147~148km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2014년 2월, 그동안 몸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이 있었지만, 6일 스프링캠프 자체 홍백전에 출장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도 게임을 뛸수 있는 몸 상태는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시즌이 시작된 후 퓨처스리그에서 6월 17일까지 기준으로 2군 14경기 26이닝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5.19로 부진했다. 그러다 8월 31일 자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고, 바로 당일에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16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하지만 2이닝만 던지고 내려왔으며, 2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그래도 본인은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팀은 4:3으로 이겼다. 이후 2014년 9월 10일 사직 롯데전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4피안타 1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2014 시즌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9.00만 기록했다. 그걸로 그의 1군 복귀전은 끝났다.

시즌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연봉은 안 받아도 되니 현역으로 계속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그걸로 끝.

여담으로 이 신윤호의 복귀건이 야구에서 프로와 아마간 격차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현역 복귀를 타진하게 된 이유가 사회인 야구 1부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찍어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인데, 2군에서도 탈탈 털렸다...


5. 2차 은퇴 이후[편집]


이후 사회인 야구를 했었을 때 알게 된 사람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나온 뒤에는 LG 시절 동료인 이정준[18], 이정선 형제가 운영하는 주류 유통업체에서 상무이사로 일했다. 그리고 부업으로 고양 원흥지구 근처의 도내동에서 서승화와 함께 야구 레슨을 했다.

그런데 신윤호가 일하는 회사의 대표이사인 이정선이 거래하던 식당에서 거래를 끊자 식당을 찾아가 영업주를 협박하고 행패를 부리고, 미성년자를 식당에 들여보내 술을 마시게 한 후 경찰에 신고를 하여 식당이 영업 정지를 받게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식당의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입건되었고, 결국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기사에는 마치 신윤호도 범행에 가담한 것처럼 언급되었지만, 신윤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신윤호가 그 회사에서 일했는지는 불명이다.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겨서 야구레슨을 했다. 이름은 여전히 '신윤호의 야구왕국'이었다.

2020년 10월부터 성수동에서 광진구 군자동으로 자리를 옮겨 야구레슨장을 운영중이다. 레슨장의 이름은 전과 동일하나 레슨장 크기가 성수동 대비 2배가 넓어졌다고.

2023넌 7월 경 또 다시 야구레슨장을 이전하여 고양시 덕양구로 옮겼다.레슨장 소개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재밌게 썰들을 풀어냈다.상편 하편 말솜씨가 좋으며 목소리가 듣기 좋은 톤이다.

6.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5
LG
2
5
0
0
0
0
1.80
7
0
2
1
4
1.80
1996
2
4
0
0
0
0
11.25
7
0
6
2
1
3.25
1997
군복무
1998
34
64
2
1
0
0
4.64
53
6
37
6
43
1.41
1999
10
32⅔
0
0
0
0
5.79
39
2
15
1
23
1.65
2000
5
4⅔
0
1
0
0
13.50
10
1
3
0
4
2.79
2001
70
(2위)
144⅓
15
(1위)
6
18
(4위)
0
3.12
(2위)
129
8
79
12
99
1.44
2002
37
60
4
3
1
2
6.45
76
9
23
10
44
1.65
2003
4
2
0
1
0
0
13.50
5
2
1
0
1
3.00
2004
54
69⅔
6
3
0
3
5.43
77
12
34
6
36
1.59
2005
29
31⅔
1
4
9
1
6.25
44
3
15
1
15
1.86
2006
14
22⅔
0
0
0
0
6.35
27
1
7
1
13
1.50
2007
10
14
0
1
0
0
4.50
20
0
8
1
11
2.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8
SK
2

0
0
0
0
27.00
3
0
3
0
1
9.00
2014
2
3
0
0
0
0
9.00
8
1
2
0
1
3.33
KBO 통산
(14시즌)
275
458⅓
28
20
28
6
5.01
505
45
235
41
296
1.62


7. 기타[편집]


  • 송진우가 기록한 투수 끝내기 안타라는 이색 기록의 희생양이 신윤호다. 그것도 자신이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던 2001년 시즌 (정확히는 6월 3일 경기)에 맞은 것. 그런데 송진우 본인이 네이버 라디오볼 2015년 8월 21일 방송에서 LG 덕아웃의 싸인을 훔쳐서 쳤다는 발언을 했다.

  • LG에서 같이 뛴 선배 중 존경하는 선배는 최원호, 이종열, 김용수, 김정민이라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으로 정말 자기관리를 잘 하고 매사에 철두철미한 선수라는 점인데, 본인이 그렇게 못 했기 때문에 그 분들을 존경한다고 박명환야구TV에서 밝혔다.[19]

  • 박명환야구TV에서 과거 이상훈에게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20][21]

  • 그야말로 짧고 굵게 간다는 것이 뭔지 보여준 선수이다. 프로 통산 14년 총합 WAR이 5.54인데 (스탯티즈 기준) 2001년 한 해동안 기록한 성적(WAR 4.52) 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2001년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적도 없고.

  • 아들 신효수휘문고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하면서 2019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었으나 프로팀의 지명을 받는 데는 실패했고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2020학번으로 입학했다.[22] 3학년 이었던 2022년 타율 0.350을 기록하면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드래프트를 앞둔 2023년 타율이 급감하여 2할 4푼대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2023년 9월 14일에 시행된 2024 KBO 드래프트에서도 최종 미지명 되었다. 같은해 10월, 키움 히어로즈의 육성선수로 입단하였다.

  • 최강야구에 트라이아웃에 아들 신효수와 함께 출연해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2라운드에서 탈락하였다.[23]

  • 2023 시즌부터 삼성 라이온즈에 활동하는 동명이인 신윤호 역시 청구초등학교 동문이다.[24]

8. 관련 문서[편집]


[1] 사진 속 모자에 있는 우승 앰블럼은 SK의 첫 우승인 2007년 한국시리즈의 것이며, 따라서 2008 시즌에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유니폼은 채병용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2008년 당시 40번대 등번호 중 채씨는 채병용 뿐이기 때문이다.[2] 박명환과는 청구초-충암중-충암고 모두 동일하다. 박명환 왈 충암고의 엘리트 코스라고 초등학생 때 박명환에게 네거리 캔디(일명 신호등 사탕)을 사오게 시키고 사오면 안 때렸다고 한다(...).[3] 실제로 유튜브에서 밝힌 바로는 정식으로 지명받기도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 LG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4] OB 베어스에서도 접촉했었고, 고려대와 한양대에서도 입학을 제의했다.[5] 이 때 같은 LG그룹 산하의 축구팀최용수와 맞짱을 뜨려 했는데, 최용수가 신윤호를 보고 쫄아서 도망쳤다는 카더라가 있다.(참고로 최용수도 축구계에서 한 주먹 하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당사자인 신윤호 본인은 최용수랑 싸웠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이를 부정했으나 자동차 부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술에 취해서 숙소에 들어오다가 앞을 막으니 누구 차인지도 모르고 손상시켰다고...[6] 정확히는 술에 취해서 축구팀과 야구팀이 같이 쓰는 구리 숙소에 왔을때, 주차된 차들을 지나가다가 앞이 막히니까 백미러를 손으로 밀어 부러뜨리고 지나갔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술에 취해서 돌아가다가 차가 막길래 손으로 밀고 간 건데 그게 누구 차인지 어떻게 아냐고?[7] 개그맨 김준호도 이 시기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공교롭게도 허리디스크로 의병 제대를 했다. 복무지도 신윤호와 같이 최전방인 양구군이다.[8] 2군 감독 - 수석코치 - 투수전권위임 - 감독대행 순서로 감독직에 올랐다.[9] 선발 등판은 겨우 4경기에 불과했다.[10] 참고로 신윤호의 통산 승수는 28승이다.(…)[11] 하지만 신윤호의 투수 골든 글러브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2012년까지 리그베다 위키에 서 투수 골든 글러브 수상이 누락되어 있었던 선수는 신윤호가 유일하다.[12] KT 위즈의 합류로 10구단 체제가 되어 자연히 규정 이닝이 늘어난 2015년 때부터의 기준을 적용하여도 규정이닝 충족이다.[13] 다만 훗날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이를 언급했을 때에는 지금은 나올 수 없는 기록이라고 말하기는 했다.[14] 가장 마지막 투수는 알다시피 최원호... 그러나 LG가 2023시즌 정규리그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최후의 선발투수가 아니게 되었다.[15] 2001년 이후 가장 평균자책점이 좋았던 해는 2007년으로, 그나마도 고작 14이닝만을 던지고 4.50을 기록했다.[16] 후일 박명환야구TV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1일을 훈련하면 몸이 안좋아져서 이틀을 쉬고 다시 훈련을 했을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17] LG의 2001시즌 삼성 상대 8연패 끝에 올린 첫 승이었다.[18] 1996~1997년에 LG 트윈스에서 53번을 달고 활동했었던 내야수. 1996년 드래프트를 끝으로 2차지명의 인원제한이 생기면서 그 해에는 모든 구단이 선수를 많이 뽑았는데, 이정선은 18라운드씩이나 되어서 지명을 받았다. 참고로 그 해는 쌍방울이 무려 27라운드까지 지명권을 행사해 32명을 뽑았다.[19] 실제로 이 네 사람은 오랫동안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다.[20] 이 때 일화가 재밌는데 이상훈이 투수조 불러다 머리를 박게하는 얼차려를 시켰는데 투수조에서 선임에 속한 류택현이 나도 머리를 박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상훈이 '류택현 너도 머리 박아'라고 소리치며 결국 같이 머리를 박았다고 말했다.[21] 신윤호는 이 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따귀를 맞으면서 눈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이 때 열받아서 이상훈에게 들이받으려고 까지 생각했으나 나중에 이상훈이 조용히 불러 타이르며 넘어갔다고 한다. 물론 이상훈의 이러한 행동이 지금은 있어서는 안 될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행위다.[22] 야구부 입학 동기로 투수 박계륜(세광고), 이승훈(광주일고), 조성민(경남고), 내야수 이도겸(부산고), 고승완(광주동성고), 고경표(경북고), 외야수 성준환(충훈고), 박진(신일고)이 있다. 여담으로, 연세대 입학 동기 중 농구부에 이원석(경복고, 205cm, 센터)이 입학했는데 대학 선배 서장훈과 많이 맞대결한 이창수의 아들이다.[23] 아들인 신효수도 2라운드에서 탈락하였다.[24] 다만 삼성 신윤호는 사이드암 투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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