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윤호(1975)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1기 == [[충암고등학교|충암고]] 시절[* [[박명환]]과는 청구초-충암중-충암고 모두 동일하다. --박명환 왈 충암고의 엘리트 코스라고-- 초등학생 때 [[박명환]]에게 네거리 캔디(일명 신호등 사탕)을 사오게 시키고 사오면 안 때렸다고 한다(...).] [[주형광]]과 함께 [[고교야구]]계의 좌우 쌍두마차라고 불리며 "제2의 [[선동열]]" 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기대를 받던 역대급 유망주였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밝힌 바로는 정식으로 지명받기도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 LG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이후 연고 팀 [[LG 트윈스]]에 입단, 고졸 신인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총액 1억 원대(계약금 8,800만 원+연봉 1,200만 원)의 몸값을 받았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OB 베어스에서도 접촉했었고, 고려대와 한양대에서도 입학을 제의했다.] 그러나 정작 데뷔 후에는 [[구리 챔피언스 파크|구리 2군 숙소]]에서 틈만 나면 이탈하기 일쑤였으며 무단 이탈해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안양 LG 치타스|축구 팀]] 버스와 승용차를 두들겨 부수고 다니는 등의 기행'''[* 이 때 [[FC 서울/역사|같은 LG그룹 산하의 축구팀]]의 [[최용수]]와 맞짱을 뜨려 했는데, [[최용수]]가 신윤호를 보고 쫄아서 도망쳤다는 카더라가 있다.(참고로 최용수도 축구계에서 한 주먹 하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당사자인 신윤호 본인은 최용수랑 싸웠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이를 부정했으나 자동차 부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술에 취해서 숙소에 들어오다가 앞을 막으니 누구 차인지도 모르고 손상시켰다고...][* 정확히는 술에 취해서 축구팀과 야구팀이 같이 쓰는 구리 숙소에 왔을때, 주차된 차들을 지나가다가 앞이 막히니까 백미러를 손으로 밀어 부러뜨리고 지나갔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술에 취해서 돌아가다가 차가 막길래 손으로 밀고 간 건데 그게 누구 차인지 어떻게 아냐고?''']과 불성실한 연습 태도로 인해 고교 때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신윤호의 실패로 인해 LG는 고졸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을 얻기도 했다. [[1996년]] 말 '''현역'''으로 입대하여 [[철원군]]에서 복무했지만, 얼마 안 가서 허리를 다쳐 [[의병제대]]했다.[* 개그맨 [[김준호(코미디언)|김준호]]도 이 시기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공교롭게도 허리디스크로 의병 제대를 했다. 복무지도 신윤호와 같이 최전방인 [[양구군]]이다.] [[2001년]]에 [[이광은]] 감독이 경질되고 [[김성근]] 수석코치가 1군 감독 대행[* 2군 감독 - 수석코치 - 투수전권위임 - 감독대행 순서로 감독직에 올랐다.]으로 선임된 이후 집중적인 조련을 받고 기량이 급상승하여, '''1군 70경기(2위)[* 선발 등판은 겨우 4경기에 불과했다.] 144⅓이닝 15승 6패 18세이브(4위) 32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2(2위)'''라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 참고로 신윤호의 통산 승수는 28승이다.(…)] 이 활약으로 신윤호는 [[손민한]]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으며 다승, 구원, 승률 1위를 하여 3관왕에 올랐고 MVP투표 1차에서는 [[이승엽]]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2차투표에서 이승엽, 신윤호를 투표하지 않은 기자들이 이승엽에게 투표하면서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이승엽 인지도가 신윤호에 비하면 넘사벽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투수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 하지만 신윤호의 투수 골든 글러브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2012년까지 [[리그베다 위키]]에 서 투수 골든 글러브 수상이 누락되어 있었던 선수는 신윤호가 유일하다.] 하지만 규정 이닝을 넘어 불펜 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144이닝[* KT 위즈의 합류로 10구단 체제가 되어 자연히 규정 이닝이 늘어난 '''2015년 때부터의 기준을 적용하여도 규정이닝 충족'''이다.]이라는 무지막지한 수의 이닝을 먹은 탓에 혹사 논란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으며, [[김성근]] 감독의 대표적인 혹사 사례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신윤호 본인은 이에 대해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760|인터뷰]]에서 이후의 몸 관리가 문제였음을 밝히고 있고, 오히려 [[김성근]] 감독 덕분에 잠시나마 돈도 많이 벌어 봤고 선수 생명을 더 이어갈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 다만 훗날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이를 언급했을 때에는 지금은 나올 수 없는 기록이라고 말하기는 했다.]~~크보 공인 멘탈레기를 그나마 사람이라도 만들었으니 그거라도 다행이지~~ ~~아무리 봐도 이거 멘탈을 갱생시키는 대신 몸을 망가뜨리는 악마의 거래~~ 신윤호는 한동안 LG 최후의 15승 투수로 남아 있었고, 2020년 [[케이시 켈리]]가 19년만에 15승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토종 투수로는 아직까지 LG 최후의 15승 투수다. 더불어 그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고,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때까지 [[LG 트윈스]]에서는 21년 동안 시간이 멈춰 있었다.[* 가장 마지막 투수는 알다시피 [[최원호]]... 그러나 LG가 2023시즌 정규리그 우승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최후의 선발투수가 아니게 되었다.] 이후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부상으로 신음했다. 게다가 노는 거 좋아하는 성격 역시 재활에 도움이 되지 못했을 정도.[* 2001년 이후 가장 [[평균자책점]]이 좋았던 해는 2007년으로, 그나마도 고작 14이닝만을 던지고 4.50을 기록했다.][* 후일 [[박명환야구TV]]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1일을 훈련하면 몸이 안좋아져서 이틀을 쉬고 다시 훈련을 했을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2005년 시즌 초반 마무리로 낙점되어 9세이브를 기록했으나 점점 불쇼를 저지르더니 5월 26일 롯데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최준석에 결승 2점홈런을 맞는 등 4실점하면서 마무리 자리를 내려놓았다.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어 [[김성근]] 감독이 재직 중이던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SK에서도 마땅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