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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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은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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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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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KBO 리그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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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KBO 리그 승리타점왕







MBC 청룡 / LG 트윈스 등번호 33번
팀 창단

이광은
(1982~1996)


임선동
(1997~1998)
LG 트윈스 등번호 90번
김인식
(1990~1996)

이광은
(1997~2001)


김용수
(2002)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121801001159100096741.jpg
이광은
李光殷 | Kwang-eun Lee

출생
1955년 6월 28일 (68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배명중 - 배재고 - 연세대
포지션
3루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소속팀
포항제철 야구단 (1978~1979)
MBC 청룡-LG 트윈스 (1982~1991)
지도자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1992~1993)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1994)
LG 트윈스 루키군 책임코치 (1995~1996)
LG 트윈스 2군 수석·타격코치(1997)
LG 트윈스 루키군 책임코치 (1998)
LG 트윈스 2군 감독 (1999)
LG 트윈스 감독 (2000~2001)[1]
연세대학교 야구부 타격 인스트럭터 (2004~2005)
연세대학교 야구부 감독 (2006~2010)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0~2012)
병역
성무 야구단 (1979~1982)
가족
누나 이옥자[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경력
2.3. 연도별 주요 성적
4. 근황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현역 시절에는 MBC 청룡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감독 시절은 LG의 기나긴 암흑기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중학교까지는 무명에 가까웠다. 배명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배명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 하고 재창단한 배재고에 입학했는데, 그나마도 농구 국대였던 누나 이옥자의 명성 덕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

1973년 청룡기에서 처음 야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그 방법은 혹사였다.

그 해 청룡기 대회에서 팀 동료였던 하기룡이 부정선수 판정을 받자[3] 투수가 없어진 배재고가 3루수였던 그를 투수로 급히 출전시켰던 것이다.[4] 비록 팀은 중도 탈락하지만, 5일 동안 매일 나와서 혼자 59이닝을 던진 것이다. 그간 던진 투구가 223명의 타자를 상대로 총 697개. 그럼에도 32안타를 맞고 단 7점을 내주는 호투를 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감투상을 차지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온달'. 순한 외모인데도 독한 구석이 있다고 붙여졌다고. 이러한 혹사 레이스는 하기룡의 출장정지가 끝나게 된 봉황기 4강까지 계속되었으나, 결승전에서 대구상고에게 패하면서 무관으로 남게 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주전 3루수로 활동했고, 졸업 무렵에는 후배인 양세종에게 3루수를 물려주고 외야수로 출전했다. 졸업 후인 1978년에 포항제철 야구단이 창단하자 실업 무대에 데뷔, 2년간 뛰었다. 1979년에 공군 야구부(성무)에 입대하여 뛰었다.


2.2. 프로 경력[편집]




파일:external/dimg.donga.com/49136771.7.jpg
선수 시절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MBC 청룡의 창단 멤버로 지명받아 합류한다. 하지만 개막전 당시에는 군 복무를 위해 성무(공군) 소속으로 활동 중이었고, 제대한 시즌 중반부터 비로소 합류할 수 있었다.

파일:external/www.ejanews.co.kr/2013120829037359.jpg
MBC 청룡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10년간 한 팀에서 맹활약한 선수였고, 3할의 타율과 잠실에서는 수준급이던 장타력[5], 나쁘지 않았던 베이스 러닝을 바탕으로 한 도루 능력과 내야수 출신으로 좋은 어깨를 바탕으로 준수한 수비까지 보여주면서 구단을 대표하는 호타준족으로 자리매김했었으며 3루수로 한 번, 외야수로 세 번의 KBO 골든글러브[6]를 차지했다. 무엇보다도 MBC-LG 구단 역사상 몇 안되는 우타자 성공사례이기도 하다.[7] 1990년 LG의 첫번째이자 본인의 선수시절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에도 주전 3루수로 출장하여 활약했다.

김일권이 훗날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해 밝히길 김일권-이광은 트레이드가 성사될 뻔하다가 해태에서 틀었다고 한다. 김일권은 김응룡 당시 해태 감독, 이광은은 김동엽 당시 MBC 감독 눈 밖에 나서 서로 윈윈하는 트레이드를 계획했으나 김일권은 결국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가 선수 말년에 LG 유니폼을 입었다.


2.3.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MBC
64
243
.313
76
16
3
5
36
46
17
19
.465
.363
1983
93
329
.271
89
12
4
(4위)
8
36
45
17
(5위)
32
.404
.335
1984
99
378
.288
109
(3위)
19
(4위)
3
18
(3위)
68
(2위)
53
7
31
.497
.342
1985
87
326
.279
91
11
3
6
39
38
20
28
.387
.336
1986
107
408
.304
(3위)
124
(1위)
21
(4위)
3
15
(4위)
60
(4위)
59
(5위)
20
53
.480
(3위)
.379
(3위)
1987
108
410
.298
122
(3위)
21
(4위)
2
14
(4위)
74
(2위)
66
(1위)
8
45
.461
.362
1988
67
247
.279
69
9
1
7
28
35
1
26
.409
.348
1989
87
273
.234
64
11
5
(4위)
4
47
40
12
38
.355
.32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0
LG
102
336
.286
96
13
2
8
44
55
11
51
.408
.375
1991
109
329
.271
89
16
0
5
41
38
6
43
.365
.354
KBO 통산
(10시즌)
923
3279
.283
929
149
26
90
473
475
119
366
.427
.352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광은/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근황[편집]


2014년 4월 4일 부친상을 당했다. 부친상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6년 7월 14일 장기기증 홍보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사회인야구 팀들을 방문하여 야구지도를 종종 해주고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3 03:40:28에 나무위키 이광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5월 15일[2] 농구선수 출신으로 2012-13 시즌에 구리 KDB생명 위너스 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3] 부산고에서 전학 온 그는 당시 선수 등록이 늦어지면서 부정선수 판정을 받았다.[4] 원래 투수도 했었으나 부산고에서 전학 온 하기룡에 밀려서 투수를 포기하게 된 것이었다.[5] 3번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6] 1985년부터 3년 연속 수상[7] LG 트윈스는 전신이던 MBC 청룡 시절부터 좌타자가 많았던 것에 비해 우타자가 많이 없기로 유명했던 팀이었다. 그나마 성공했던 우타자 사례가 이광은을 비롯해 노찬엽, 조인성, 채은성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