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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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외전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의 에피소드
동맹&제국 포로교환

돌튼 사건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귀환선단의 사건사고
3.2. 돌튼 사건
4. 사건 이후
5. 영향


1. 개요[편집]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 7장 『돌튼 사건』
  • 시기 :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3월 10일 ~ 3월 14일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자유행성동맹군 이블린 돌튼 대위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하이네센으로 향하던 선단을 항성 마즈닥에 충돌시키려 한 사건이다.

2. 배경[편집]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2월 19일에 이루어진 동맹&제국 포로교환으로 200만 명에 달하는 포로들이 자유행성동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 및 주둔함대 사령관 양 웬리 대장은 양아들 율리안 민츠와 부관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 200만 명의 귀환병, 포로교환식에 참석한 정치가들을 데리고 우주력 797년 2월 22일 이제르론 요새를 떠나 하이네센으로 향했다.

양 웬리가 하이네센에 오는 표면상의 목적은 수도에서 개최되는 귀환포로 환영식에 참석하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목적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이 사주할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대장과 접선하여 쿠데타 방지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목적은 율리안을 비롯해 측근 몇몇만 알고 있었고, 대다수의 사람은 알지 못했다.

3. 전개[편집]



3.1. 귀환선단의 사건사고[편집]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은 서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투 중 붙잡힌 포로나 억류된 민간인의 처우에 대한 국제법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국력상 열세인 자유행성동맹은 제국 신민들의 자국 망명을 독려하기 위해 포로나 억류 민간인에 대한 처우에 상당한 공을 들여 놓았지만 제국은 그렇지 않았다.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 출신 군인 포로나 민간 억류자를 '불경한 반역자'로 취급하여 잘못된 사상에 찌들어 철저한 재사회화 교육이 필요한 족속으로 분류하여 제국 변경 지역에 교정구를 두어 수용하였는데 애초에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전쟁으로 인해 예산이 향시 부족하다는 점까지 겹쳐 교정구의 식량, 의약품, 의복 등 생활필수품은 항상 부족한 상황이었고 군인, 민간인을 따로 분류하지도 않고 성별조차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교정구에 수용된 사람들은 곧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고 머지않아 인간성을 상실하고 만다.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2월 19일 이루어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대규모 포로교환식 이후 위와같은 이유로 인해 동맹으로 돌아오는 하이네센 행 귀환선단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교환식 이후 하이네센으로 돌아오는 선단은 색스 소장의 지휘아래 정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양 웬리 대장과 부관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를 비롯한 이제르론 요새 사령부의 주요 인사 몇 명과 교환식에 참석하기 위해 요새로 왔던 정치가들, 그리고 약 200만 명의 귀향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2월 26일, 선단의 항해에 차질이 빚어져 항법장교 이블린 돌튼 대위가 양 웬리 대장에게 예정이 5일에서 6일가량 늦어질 것 같다는 보고를 올렸다.

2월 27일, 과거 교정구에서 빚어진 원한이 원인으로 무려 100여명이 가담한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헌병이 출동하여 사태는 곧 진정되었으나 약 30여 명이 의무실로 이송되었다.

3월 3일, 또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마찬가지로 헌병이 출동하여 사건은 곧 가라앉았으나 이제르론 요새의 포플랭 소령이 폭력사태에 연루되었고[1] 헌병대가 출동하기 전 포플랭 소령은 살짝 몸을 피해 장교 클럽에서 술을 즐기고 있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행적이 모두 발각되었고 결국 소령은 거주층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2]

3월 7일, 선단 항해가 예정보다 7일 가량 늦어졌다.

3월 8일, 원래 항해 계획상으로는 하이네센에 도착해야 할 날이지만 항해가 지연되어 선단은 아직도 우주 어딘가에 있었다. 이 문제에 가장 큰 책임을 질 사령관 색스 소장은 자신에게 가해질 비난에 극도로 예민해져[3] 관련정보를 모두 통제하여 항해 지연에 대한 정보는 선단사령부 외 누구도 알지 못했다.


3.2. 돌튼 사건[편집]


3월 9일, 선단사령부의 비밀주의로 인해 선단 내부는 여러가지 소문이 돌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색스 소장은 양 웬리 대장에게 호출당한 자리에서도 원인을 어물거리며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선단 사령부를 들쑤시며 원인규명에 노력을 다하고 있었고 기습적으로 선단 항법 컴퓨터를 재검사한 결과 선단의 항로가 하이네센이 아닌, 항성 마즈닥을 향해 돌입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즉각 항법 컴퓨터의 회로를 차단하여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으나 현재 위치를 계산해본 결과, 선단은 항성 마즈닥으로부터 약 200광초, 약 6000만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고 원래 목적지인 하이네센은 약 1300광년 떨어진 거리라 결국 최단 항로로도 일주일은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3월 11일, 선단사령부는 항로를 다시 산정하고 선단을 재편성하는 작업에 분주했다. 연이은 사태에 귀환병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3월 12일, 선단을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수송선 1척이 행방불명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나 약 6시간 뒤 포착되어 무사히 선단에 복귀하였다.

3월 13일, 색스 소장은 항로 설정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을 색출하고 나섰고 곧 선단 항법장교인 이블린 돌튼 대위가 범인으로 밝혀졌으나 사태를 자기 선에서 조용하기 처리하겠다며 시간을 소모한 탓에 돌튼 대위가 무장을 하고 선단 긴급관제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농성을 시작하는 대형 사태가 벌어졌다.

소장은 상황이 이 꼴이 되고 나서야 양 웬리 대장에게 사건을 보고했고 이제르론 사령부의 조사 결과 이블린 돌튼 대위는 과거 애인이 있었는데, 그 애인은 이미 아내가 있는 몸임에도 돌튼 대위를 속여 유혹하였고 곧 군수투기꾼과 결탁한 부정행위에 돌튼 대위를 이용하다 발각되었다. 돌튼 대위는 크게 분개하였으나 이 자는 추궁을 피해 제국군에 투항해버렸고 이번 포로교환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일로 심한 배신감과 곤욕을 치룬 대위는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이 사건을 벌인 것.

우선 프레데리카 그린힐 대위가 2시간에 걸쳐 돌튼 대위를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포플랭 소령은 그냥 돌튼 대위가 원하는 대로 그 애인을 죽이게 해 주자고 제안했지만 그린힐 대위가 목적을 이루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고, 그녀가 선단 전체를 길동무로 삼을지도 모른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카스퍼 린츠가 자신이 돌입하겠다고 자원했지만 200만 귀환병이 무사히 귀환하는 방법을 생각하던 양 제독에 의해 기각되었다.

이제르론 사령부가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고심하던 중, 색스 소장의 지시로 헌병대가 투입되어 관제실에 최루가스를 투입한 뒤 돌튼 대위를 제압하려했지만 상황을 알아챈 대위가 선단 환기 시스템을 조작하여 최루가스가 선내로 퍼지는 촌극이 벌어졌다. 당연히 제압은 실패.

14일, 색스 소장은 헌병대를 또 투입시켰으나 헌병대는 환기구로 진입하려다 수 차례 실패했다.

14일 15시, 사태가 심각해지자 카스퍼 린츠, 올리비에 포플랭, 이반 코네프는 자기들끼리 의논하더니 결론을 내고 양 제독을 찾아가 허가를 받았다.

14일 15시 5분, 선교(船橋)에서 함선이 항성을 향해 통상항해를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항성 돌입까지 걸리는 시간은 3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으며, 선내시설의 에너지원까지 꺼지면서 선내가 혼란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양 제독은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귀환병들만이 아니라 돌튼 대위도 인내심과 냉정함을 잃고 혼란에 빠졌을 걸세. 지금이라면 어리석은 책략에도 걸려들 거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 김완, 이타카(2011), p.227


17시, 한 셔틀이 수송선에 이탈했다. 그린힐 대위는 이 셔틀에 그녀의 애인이 타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남자를 놓치고 죄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항성에 돌입해봤자 무익하다고 설득했다.

17시 5분, 수송선은 항성에 돌입하기 직전 침로를 바꾸었고, 수송선의 레이저 광선포가 셔틀을 조준하였다. 광선포를 충전하기 위해 선내 배전시스템이 복구되었다.

17시 8분, 광선포에 맞아 아무도 타지 않은 셔틀이 폭발했다. 그 사이 포플랭과 코네프가 문을 폭파하고 관제실에 진입했지만, 돌튼 대위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그제서야 헌병들이 달려와 고압적인 태도로 두 사람을 밀치고 돌튼 대위의 유체를 난폭하게 끌어내려 하자 두 사람은 헌병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다음 한껏 비꼬았다. 색스 소장은 사건 해결에 협조해준 양 제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양 웬리는 돌튼 대위의 최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돌튼 대위가 내 책략에 걸려들지는 않았을 거다. 다 알고 그랬겠지. 셔틀에 옛 애인이 타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셔틀을 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쏘고, 종지부를 찍은 거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 김완, 이타카(2011), p.230


4. 사건 이후[편집]


돌튼 대위의 장례는 우주장으로 치러졌다. 참석자는 많지 않았으며 그 중 1/3이 이제르론 팀이었다.

3월 16일, 하이네센에서 환영과 안내를 위해 순양함 4척과 구축함 15척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선단에 도착했다. 이는 환영식이 연기됨에 따라 높으신 분들의 계획 차질과 경비 지출 때문이었다.

색스 소장은 지체한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하이네센으로 급속 항해하여 3월 18일 도착했다. 바닥까지 파들어봤자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하므로, 돌튼 대위의 사건은 '소소한 돌발사고'로 처리되었다.

5. 영향[편집]


사람이 백만명 단위로 죽어 나가는 은영전 세계관에서는 정말 별 것도 아닌 해프닝이지만 결과적으로 이후 자유행성동맹의 운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에 벌어질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실상 빼앗았기 때문이다. 양 웬리가 하이네센을 방문하려는 목적은 단순히 귀환포로 환영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사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동맹 내 쿠데타를 직속상관인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대장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4]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돌튼 대위 사건으로 인해 시간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말았다. 실제 양 웬리에게 경고를 전해들은 뷰코크 제독은 쿠데타 가능성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5] 그대로 쿠데타파에 구금당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즉 복수에 눈이 뒤집혔던 돌튼 대위가 구국군사회의, 더 나아가 라인하르트에게 도움을 준 셈이다. 어떻게든 하이네센에서 목적을 달성한 양 역시 함대 내부에 있을 수 있는 쿠데타 세력을 대비하여 함대 장악을 위해 귀환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고, 간신히 쿠데타 발발 전 이제르론에 도착하여 함대와 요새의 지휘권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시간에 쫓기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 양 웬리 일행의 하이네센 체류기간은 당초 예정보다 2박 3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시간에 쫓기는 입장인 양 웬리와 올리비에 포플랭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양 웬리야 뷰코크 제독과 만나 관련 문제를 협의하고, 이제르론에 귀환하여 쿠데타 세력의 마수가 뻗히기 전에 함대를 장악해야 하는 상황이란 공적인 이유였지만, 포플랭은 넉넉한 일정을 고려하여 여러 여성들과 데이트 약속[6]을 파토낼 수 없다는 사적인 이유(...)였다. 그래도 둘 다 자신의 용무는 모두 달성하고 귀환길에 오를 수 있었다. 대신 포플랭은 48시간 동안 모두와 어울린 대가로 귀환하는 길에 침대는 역시 잠을 자는 곳이란 말과 함께 하루동안 떡실신해 있었다.(비슷한 일이 회랑 전투 이후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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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긴 항해에 지루해진 소령은 27일 사태 당시 자기가 그 자리에 없어서 유감(...)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몸을 푼 것.[2] 사실 꼼짝없이 영창행이었으나, 포플랭은 양 웬리 대장의 직속부하인 관계로 색스 소장이 양 웬리의 체면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이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끝났다. 참고로 포플랭이 양 웬리 때문에 곤경을 벗어난 걸 부끄러워 하자, 카스퍼 린츠를 비롯한 양 웬리 사단의 다른 일원들은 '진작 그걸 알고 좀 행동했으면 좋았을 걸'이라 핀잔을 주었다고.[3] 지지율에 민감한 하이네센의 정부인사들은 이 문제를 그리 즐겁게 여기지 않았고 특히 선단에 탑승한 정치가들이 유무형의 압력을 소장에게 넣고있었다. 출세를 노리는 색스 소장으로써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4] 통신으로 알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통신은 도청 가능성이 있기에 동맹 내부에 누가 쿠데타 세력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쓸 수 없는 방법이다.[5] 문제의 중대함에 더해 본인의 권한 문제로 신중했던 점도 있지만 그 전에 절대적으로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양이 뷰코크와 접선한 날이 3월 19일인데 불과 11일 뒤에 구국군사회의가 쿠브르슬리 대장을 피습하면서 준동하기 시작했다.[6] 율리안이 일기에 기억나는 이름은 거의 다 적어놓았는데 10명은 가뿐히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