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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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생
3. 법조인 경력
4. 정치 활동
4.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이후
4.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3.2. 긴축재정과 재정혁신
4.3.4. 지지율
4.3.4.1. 리얼미터


1. 개요[편집]


정치인 김진태의 생애를 서술한 문서.


2. 일생[편집]


1964년 10월 13일 강원도 춘천시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한규 씨는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의 군인이었으며[1] 어머니 윤종애 씨는 강원도 양구군 출신으로 교사[2]로 재직했다.

집안이 원래 경상북도 성주군이고 8대조의 선영이 있다. 아버지 김한규는 6.25 전쟁에 참전하고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도 참여해 화랑무공훈장 2개에 묘소도 국립대전현충원이다. 외할아버지는 1950년 6월 29일 북한군에게 죽었고, 외가 식구들은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6.25 전쟁 발발 이전 춘천시 서면 금산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이래 피난을 갔다가, 전후에 다시 춘천으로 돌아와 교편도 다시 잡으며 가족 뒷바라지를 했다. 김진태도 그때 태어났다. 모친은 그 후로도 1988년 2월 봉의초등학교 교감에 올라 명예퇴임까지 40여 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는 2남 중 차남으로 춘천교대부설초등학교, 소양중학교, 춘천 성수고등학교(강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4학년 때인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3. 법조인 경력[편집]


1989년 사법연수원 18기로 수료하였다.[3] 공부 하나만 현역 정치인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학과공부도 빡세다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4학년 재학중인 23세에 사시에 합격했다. 이 정도면 서울대 법대 출신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당장 기성 정치인 중에도 김진태보다 빨리, 즉 3학년에 붙은 사람은 거의 없다.[4] 1992년까지 공군 소속으로 국군기무사령부에서 공안담당 군법무관으로 복무했으며, 대검찰청 조직범죄과장을 지냈다. 1996년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근무할 때 PC통신을 통해 김대중 총재를 비방한 사람을 구속기소시켰다.

원주지청장을 끝으로 17년 검사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경력의 상당 부분을 공안검사로 보냈다. 2011년 11월 낸 책 ‘법대로 살까? 멋대로 살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와 부부장으로 근무했던 1996년과 2002년 두 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했다. 2003년 대선 당선자 신분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할 때는 기소를 주장하는 자신과 법 위반이 아니라는 부장검사가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고 한다.

2006년 대검찰청 강력부 조직범죄과장 시절 바다이야기 사건을 수사했다. 채동욱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 팀장을 맡고 김진태 조직범죄과장과 봉욱 첨단범죄과장이 팀원으로 포함되었다. 사실 이 사건 수사를 채동욱 수사기획관이 맡기 전에는 강력부가 이 사건을 맡았고 경대수 강력부장이 주축이 되어 이 사건을 수사했으나 검찰 윗선이 이 사건을 중수부로 넘긴 것.[5]

이후 2007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되었는데 지검 내 부장 보직이 아닌 과거사정리위원회에 파견 근무를 갔다. 그는 이 인사에 대해 “허탈하고 분통이 터졌다”고 본인 책에서 회고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대한 전원위원회 회의 때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한 것이 맞다”고 우기다가[6] 외부 위원들과 충돌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조봉암은 간첩이 맞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 시절 간첩죄로 사형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은 2011년 1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김진태는 그 뒤로도 간첩이란 주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조봉암이 김일성으로부터 대선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구소련 외교문서가 발견되어서 다시 쟁점화되었다. 이 부분은 다시 후속 연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차장검사 1차보직인 춘천지검 원주지청장을 지낸 후 서울고검으로 발령나자 2009년에 검사직을 그만두고 원주춘천에 법률사무소를 열었다.[7]


4. 정치 활동[편집]



파일:김진태(정치인)3.jpg

▲ 초선의원 시절

200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2012년부터 정계에 입문했고, 제19~20대 총선에서 강원도 춘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내리 당선했다. 2020년 5월까지 미래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지역구에서는 예산 확보 능력에 관해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1조 3,000억원 사업인 제2경춘국도를 예타 면제사업으로 확정받기도 했다.

본래 길게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 내지는 박근혜 정부 임기 후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계파색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정치인이었다. 지금이야 강성 친박 출신으로 유명하긴 한데, 정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새누리당 계파 논쟁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던 인물도 아니었고, 친박 vs 비박 갈등의 정점에서 행동대장으로 선봉에 섰던 인물도 아니었다. 단지 공안검사 출신으로 반공, 반북 성향이 강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었을 뿐. 이 때문에 원리적인 헌법주의자라는 평이 있다. 2013년 4월 처음으로 선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본 의원은 지금 이 자리에도 대한민국의 적(敵)이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라는 도발적 발언으로 신고식을 했다.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고 야유를 보냈지만, 그는 “이제 종북세력과 결별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은 스스로 이 땅을 떠나라”며 연설을 마쳤다. "김정은 심부름꾼이냐"…종북저격수 김진태 특히 2013~2014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과 관련하여 이석기를 비롯하여 통합진보당을 강하게 질타하였다. “저는 이석기 피의자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부터 공천을 받았다. 이때 박근혜는 선거운동 기간 춘천을 두 번 방문해 그를 지원 유세를 했다. 자신의 책에서 “몇만 명 관중 앞에서 내 이름을 또박또박 그것도 여러 번 불러줬다. 그래서 난 박근혜 대통령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고 썼다. 친박이라는 이미지가 탄핵 이후에 생긴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종북 저격수' 이미지에서 연장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도 이를 의식하는듯 2014년 12월 출간한 에세이집 ‘진태의 난중일기’에서 “종북 저격수보다는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나는 숨어서 쏘지 않고 드러내놓고 쏜다”고 적었다.


파일:김진태-2.jpg

▲ 2016년 모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 윤상현, 서청원, 최경환, 민경욱, 조원진 의원 등과 함께 친박 정치인들 중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꼽혔다. 그 전에도 이장우, 김태흠 등과 더불어 친박계 의원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인물인데,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이 2명은 공기가 되고[8] 태극기 집회의 지지를 받는 김진태가 부상하게 되었다. 그나마 김진태는 박근혜를 옹호한 게 아니라 탄핵 자체의 법사위 절차와 증거능력에 대해서 비판 의견을 낸 것이 더 많은 유권자에게 신뢰를 준 것으로 보인다.#

2017년 3월 14일,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강원도 출신 정치인으로 첫 대선출마이다. 이것의 시작으로 최문순도 이어서 대선에 도전하기도 하였다. 자유한국당 내 친박 단체의 지지와 후원에 힘입어 대선 후보 1차 컷오프에서 통과되었고, 2차 컷오프도 통과하였다. 2017년 3월 경선토론에서 강성친박답게 "배신자"라며 바른정당과 연합하는 것을 반대했다. # 하지만 결국은 20%에 못 미치는 득표율로 과반 득표한 홍준표에게 밀려 대선 후보로 선정되지는 못했다.[9]

이후 예상과 달리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지 않고 새로 생긴 새누리당이나 대한애국당행을 거부함은 물론, 자유한국당의 일원으로 19대 대선 당시 강원도 선거대책위원장 직을 맡아 강원도 곳곳에서 홍준표의 유세를 도왔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신통치 않았는데 19대 대선 결과 지역구 춘천시에서 문재인 몰표가 나오고, 다른 강원도 지역 역시 스윙 보터 지역으로 바뀌는 등, 우파정당 우세 지역이었던 강원도문재인 약우세 지역이 되었다. 자유한국당 역시 쪼그라들어 자기 텃밭에 민심이 반대함을 확인한 김진태 자리를 내줄 여유를 갖기 힘든 만큼, 재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 하락과 최문순 도지사의 친중 행보에 재평가되는 분위기도 고개를 든다. 일관성 있는 소신발언이 지지층을 만드는만큼 앞으로 시민들의 평가를 지켜볼 일이다.

2017년 5월 19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열린 재판 1심에서 벌금 200만원형을 선고 받았지만,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 파기되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8년 1월 25일 대법원 판결 결과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여기에 더해서 국가는 무죄를 선고받은 김진태에게 형사재판 비용 575만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지게 되었다. 무죄 받은 김진태, 국가로부터 보상금 575만 원 받는다.

제20대 국회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폐지 및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고 있는 국회의원이며, 정도로 따지자면 신림동을 끼고 있는 관악구를 지역구로 둔 김성식,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들[10]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육탄 방어하여 막으면서 본인을 '로스쿨의 어머니' 라고 자칭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서영교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11]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주요 공약에 로스쿨 완전 폐지 및 사법고시 존치를 포함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이국종 교수를 향한 인격테러라는 발언 논란에 대해 정의당을 향해 "선량한 소시민을 하루아침에 인격테러범으로 만드는 너희들이 바로 인격테러범이다."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때는 김종대와 정의당의 잘못이 빼박이기 때문에 김진태의 잘못이 아니다. 당시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비판 발언이 나왔을 정도다.

2017년 10월, 자기한테 개 입마개를 전달했던 '둥글이8'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시민운동 활동가[12]를 5가지 혐의[13]로 고소했다. #

2018년 4월에는 이희호 여사의 경호 기간 논란을 두고,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로 보장되는 경호기간 15년이 만료되었으니 대통령경호처의 경호를 중단하고 경찰청으로 이관할 것을 요구했다. #.

2018년 7월에는 난민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난민심사를 엄격히 하고 각종 특혜를 폐지하는 난민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라는 등 난민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했다.#. 평소에 김진태를 가루가 되도록 까기에 급급했던 대부분의 온라인 게시판에서도, 이번만큼은 김진태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했다.[14] 법치에 대하여 강한 신념이 있는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던 부분이었다.

2018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입장에 대해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다 비양심적이냐"고 비판했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당 대표 경선에 참여했다. 허나 얼마 후 이종명, 김순례 등과 함께 대표적인 5.18 민주화운동 폄훼 운동가인 지만원을 초청하여 5.18을 폄훼하는 공청회를, 그것도 국회에서 열어 여론의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다만 국회 토론회는 소수 의견부터 잘못된 의견까지 모두 수렴하며, 토론회에서 토론자 의견이 의원실 의견을 대변하지 않는 않는 점이 대의민주주의임을 감안해야 한다. 해당 토론회에 본인부터 참석하지 않는 것이 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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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과 연계해 활동하는 당시 모습
이 일이 있은 직후 후보 연설을 위해 나머지 후보들과 광주를 찾았지만 광주 시민들과 5월 단체들의 거센 항의에 간담회는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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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전당대회 시절 모습
경선에서 연설하는 김진태 의원의 모습이다. 결국 이 공청회와 망언 사태의 후폭풍으로 인해 최종 결과는 3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당내 강성보수층을 결집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캡션


이후 청문회에서 항상 존재감을 드러낸다. 뱅골보수도 청문회에서 나온 별명이다. 2019년 검찰총장 청문회에서 뉴스타파단독보도[15]를 인용하여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거짓말을 폭로한다. (한국경제)윤석열 청문회 막판 '위증 논란'…"변호사 소개" 녹음파일 공개 김진태가 조사한 윤우진 세무서장의 거짓말 폭로로 여론은 급반전하였고 야당은 거세게 윤석열의 거짓말을 비판하며 청문회에서 위증한 검찰총장 후보는 자격이 없는 만큼 검찰총장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였다. (조선일보)野 "윤석열, 청문회서 거짓말로 국민 우롱...즉각 사퇴해야"



캡션


이 밖에도 청문회 내내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를 매섭게 공격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청문회 질의는 훗날 윤석열을 극도로 비토하는 진보층에 의해 재조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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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의정보고회 활동 모습

2020년 3월 4일 본인의 사실상 지역구인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갑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다. 공약으로는 제 2 혁신도시 유치, 춘천 시내버스의 원상 복구, GTX-B 춘천 연장 성사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 출구조사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개표에서도 엎치락뒤치락 하다 결국 허영에게 패배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에도 강원은 원주시를 제외하고는 미래통합당이 다 가져갔는데, 결국 개인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춘천을 여당에 내주고 말았다.[16] 참고로 투표 개표 중 '김진태가 당선 유력'이라는 것이 뜨기도 했는데, 기사화가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의와 상관없는 설레발이 되고 말았다.


4.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이후[편집]


낙선 이후 김종인과는 신비한 인연이 이어진다. 김종인 비대위를 결사 반대하며 8.15 태극기집회에 참석하는 등 김종인이 당대표일 때 호흡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평가되었다. 당시 민경욱, 김소연 등과 함께 당무감사에서 당협위원장 컷오프 1순위로 꼽혔지만 '당내 역할이 있다'며 컷오프 되지 않았다.

그 때부터는 사실상 김종인 비대위 하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전직 대통령 사과 발언에 강경하게 반응하지 않고 이낙연의 이명박근혜 사면 떡밥을 물지도 않고, 비판도 자제하는 등 태도가 확 바뀌었다. 유튜브나 SNS에서도 발언의 수위가 내려갔으며, 오히려 민주당 비판이나 지역구 문제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올리는 것으로 발언이 확장되었다. 덕분에 본인 수위가 내려간 만큼, 기사화 되는 빈도도 줄었지만 이 모습만 봐도 국민의힘 전체에 친박 색채가 빠졌다는 평가가 있었고,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그 대가로 끝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했기에 최소한 당협위원장으로서 정치적 재기를 할 기회는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21대 총선 낙선 뒤 근황을 보이지 않다가 춘천과 홍천 지역의 차이나타운 건립 논란이 과열되자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페미니스트 교사 조직의 아동 세뇌 및 학대 음모론, 일명 '펨교조' 음모론이 제기된 후 발생하자 유튜버 성인권센터에게 법적 자문을 해주며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행위를 형사처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거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며 입장을 밝혔다. #

이후 2021년 5월 29일, 차이나타운 반대 시위를 하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당대표의 연단 위로 올라가 가벼운 포옹을 나누는 등[17], 차이나타운 반대에 대한 공감을 표시했다. #

며칠 뒤인 6월 5일에는 춘천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나서고 있는 이준석을 수행하며 닭갈비를 먹고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 그의 평소 강경 보수 행보와는 사뭇 달라 눈길을 끌었다. 중진 당협위원장과 젊은 당대표의 하모니로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다.


4.2.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편집]


선거 몇년 전부터 지역에서 차기 지선에서는 국민의힘 소속으로 강원지사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우선은 현역 최문순 지사가 3선 연임 제한으로 더 이상은 출마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강원도 영동 지방과 최전방 특유의 보수세에 더해 본인이 춘천 출신이라 보수정당이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영서지방의 표를 좀 더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속한다.[18] 보수 혁신을 위해 국민의힘 입장과 김진태 본인에게도 보수정당이 내리 4연패를 한 강원도지사를 다시 탈환한다는 명분도 충분하고, 또 정치인으로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도 서로에게 윈윈인 선택으로 보인다. 2021년 5월 31일에 강원도민일보에서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19] 권성동이 중앙 정치 활동으로 강원도지사 출마에 멀어지는 것으로 보아 김진태가 강원도지사에 나갈 것으로 예상되나, 라이벌 이광재 전 지사가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면서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었고 본인의 막장 비호감 이미지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후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전후로는 이미지 개선을 목표로 잡았는지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기 전 나오던 매일신문 프레스 18 유튜브에 나와 본인의 과거 발언에 대해 특히 청년층을 무시한듯한 뉘앙스로 보여지는 발언[20][21]에 대해 해명+반성과 사과를 하며 강원도에 대한 공약을 준비할 것을 약속했다. 본인 말로는 지만원과도 손절해버렸다고 한다.

2022년 1월 2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광재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며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2022년 3월 23일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강원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 하지만 황상무가 공천되면서 컷오프되었다. 황상무보다 무게감과 인지도에서는 좋으나 강성 친박 이미지로 인해 춘천 지역을 제외하고는 중도층 표 결집 면과 여론조사 면에서 이광재에게 밀리는 경향도 있고, 당 차원에서 17석밖에 되지 않아 과거의 발언들이 선거국면에서 다시 한 번 전국적으로 주목 받을 수 있는 광역단체장(강원도지사) 공천보다는 묻어갈 수 있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번 더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인은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특단의 조치를 언급하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놨다.[22][23]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망언이 컷오프의 결정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장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일 5월 18일과 그 즈음의 기간에 김 후보의 발언들이 환기되면서 전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공천 결과에 불복하여 단식농성에 들어갔다.[24] 이 자리에서 김진태 전 의원은 "그게 문제라면 2020년 4·15 총선에선 어떻게 공천을 줬나? 이번 대선에선 이재명 비리 검증특위위원장으로 실컷 일 시키고 대선 이기니 토사구팽인가?"라고 주장하면서 "부당한 탄핵에 맞서 태극기 들고나간 게 죄인가?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문재인 정권을 막기 위해서 그랬던 거"라고 강조했다. 단식농성 현장에는 이준석 대표, 김웅 의원, 같이 컷오프된 박맹우 울산광역시장 예비후보 등이 다녀갔다.

4월 18일, 김진태 컷오프에 대한 여론도 그다지 좋지 않은데다[25] 물밑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는지 공관위측에서 한발 물러나 황상무의 단수공천을 보류하고 김진태가 과거 발언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한다면 경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냈고, 김진태 역시 당일 오전 10시 30분에 깔끔하게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강원지사 경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결국 4월 23일, 김진태 본인이 58.29%를 득표해 정치 신인 가산점을 받은 황상무 후보(45.88%)를 누르고 강원도지사 국민의힘 후보로 최종 확정되었다.#

후보 확정 후 본선 상대가 된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김진태 후보에게 축하를, 황상무 후보에게는 위로를 전하며 "강원도를 여야의 표밭이 아닌 통합과 희망의 일터로 만들자"라고 덕담을 건넸고, 김진태 전 의원은 "멋진 레이스 기대된다. 64년생 동갑인 우리 셋[26]이서 강원도를 위해 제대로 뛰어보자"라고 화답했다.

이후 경선 상대였던 황상무를 자신의 선대위원장으로 맞아들였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유치를 핵심공약으로 밀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민주당의 이광재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시종일관 앞섰으며 결국 54%의 득표율로 당선이 확정되었다.[27] 이로서 지난 총선 낙선 이후 2년만에 재기함은 물론, 광역단체장으로 한 단계 체급을 더 높이게 되었다.


4.3. 제39대 강원특별자치도지사[편집]


2022년 6월 20일, 김명선 행정안전부 과천청사관리소장을 김진태 도정의 첫 강원도 행정부지사로 발탁하였다.

2022년 6월 23일, 내달 1일로 예정되있던 강원도지사 취임식을 예산 절감 등의 사유로 생략하였다. 대신 '강원도민의 날'인 8일에 취임식을 흡수해 개회하기로 했다.

6월 28일에는 정광열삼성전자 부사장을 강원도 경제부지사로 영입하며 취임 전 도정 지휘부 라인을 완성하였다.

2022년 7월 1일, 취임 후 첫 일정으로 119종합상황실 방문으로 강원도지사 직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142개의 선거공약 중 8개의 공약을 파기했다. #[28] 이에 대해 김진태 지사는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판은 달게 받겠다"라고 하면서도 “이러한 결단을 내린 것은 지킬 수 있는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29] 김 지사는 "나중에 (공약을 못 지킬 때) 책임을 공직자들이나 도의원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제가 오롯이 책임지기 위해 결단했다"라고 하며 "폐기하거나 제외한 공약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시책에 더욱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중하겠다"라고 했다. #

또한 최문순 도정 당시 보조금을 받았던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해 보조금 삭감을 시사했다. #

2022년 7월 19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 이후 전국을 돌며 당원을 만나고 있는 이준석을 만났는데, 단식 농성때 전해준 이불에 대한 답례로 홍삼세트를 선물하면서 의리를 지켰다. 징계 이후 대부분의 정치인이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아랑곳 않고 공개적으로 만난 첫 인물이라 화제가 되었다. 관련 기사[30]

2023년 4월 21일, 도 감사위원회에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망상1지구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한 감사를 긴급 지시했다. 인천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남 모씨가 전임 도정에서 망상1지구 사업자로 선정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경위를 밝히기 위한 지시였다.# 2023년 6월 5일, 강원도 감사위원회는 망상1지구 사업과 드론택시 시제기 개발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고, 망상1지구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사업제안서 심사 전반의 공정성 훼손, 법적 근거 없는 '예비개발사업시행자' 지위 부여 등 다수의 위법 및 부적정 사항이 드러났다며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관련자들을 수사의뢰했다.#

4.3.1. 강원특별자치도법 개정[편집]


취임 1년이 지난 현재, 김진태 도지사의 최대 성과가 강원특별자치도법 개정이라는 데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다.

당선 직전에 강원특별자치도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법률안의 내용이 21개 조항에 불과해 '이름만 특별자치도'인 빈껍데기 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2023년 6월 11일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1년 동안 법 개정을 위한 속도전을 펼쳤고, 결국 산림, 환경, 군사, 농업 등 4대 핵심규제에 대한 권한을 이양받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84개 조항의 강원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말이 개정이지 사실상 새로운 법을 만든 것인데,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법 개정을 이뤄낸 것은 김진태 도지사의 공이 크다는게 중론이다. 허영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대표발의를 요청하는 협치 노력, 정부부처와의 끈질긴 협의, 장제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이성만 의원의 설전으로 촉발된 여야 갈등 국면에서 국회를 찾아가 천막투쟁을 불사하며 국회를 압박한 정치적 승부수는 분명히 평가할만하다.[31]

다만 강원특별자치도법에 반영되지 못한 특례조항도 많이 있어서 아직은 '절반의 성과'라는 평가도 상존한다. 이에 대해 김진태 도지사는 추가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4.3.2. 긴축재정과 재정혁신[편집]


김진태 도지사가 도정운영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재정혁신이다.

2022년 6월 23일, 아직 당선인 신분으로써 기자회견을 열고 "도민의 혈세가 여기저기서 줄줄 새는 것을 막겠다"라고 하며 혈세낭비 보조금 지원사업에 대한 대수술을 공언했다. 그러면서 목적과 성격이 불분명한데도 4년간 예산 12억원이 소요되고, 주최단체에 71억원이 지원된 평창평화포럼 폐지를 공언했다. 일회성·선심성 행사도 없애겠다고 공언하며, 춘천 호수나라 물빛축제 중 불꽃놀이 예산 6억 2천만원의 집행을 보류하겠다고 밝혔으며, 예산절감을 위해 취임식 행사를 생략하고 강원도민의 날 행사와 함께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93개에서 2022년 4월 189개로 늘어난 도청 산하의 위원회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김진태 강원지사 당선인 "혈세 낭비 사업 과감히 메스대겠다"

7월 28일, 휴가를 앞두고 도청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긴축재정을 하는건 소중한 도민혈세를 아껴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하기 떄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라고 하며 긴축재정에 대한 필요성을 당부했다.#

8월 9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도청 간부들을 대상으로 "“취임 후에 긴축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이제는 긴축을 넘어서 재정혁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하면서 도청 조직과 재정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당부하며 재정혁신을 공식화했다. 통상적으로 하반기에 하는 2차 추경을 취소하고, 26개 출자출연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1 #2

8월 11일, 도청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10년만에 첫 도청 공무원 정원 동결을 선언했다, #

8월 18일, 1조원에 달하는 강원도의 채무를 임기내 60% 감축해 4천억원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방채 발행을 임기 동안 중지하고, 선심성, 일회성 행사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예산집행 후에 남는 잉여금을 채무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도정 출범 6개월만에 채무 2942억을 갚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60% 감축을 선언했는데 이미 그 절반에 가까운 감축에 성공한 것이다.#

12월 27일, 재정준칙 도입을 선언했다. 재정준칙은 채무비율, 재정수지 등 재정지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여야 간 이견으로 표류하고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재정준칙을 먼저 도입함으로써 정부 차원의 재정준칙 도입을 지원사격하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진태 지사는 "재정혁신이 일시적으로 그치지 않고 상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재정준칙 도입 취지를 밝혔다.# 2023년 5월 31일, 강원도는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 -3%, 실질채무비율 5%로 재정준칙 도입을 공식화했다. #

강원도는 이러한 재정혁신 결과로 통합재정수지가 2008년 이후 최초로 404억원 흑자를 기록했으며, 재정자립도는 지난해보다 2.6% 오른 29.4%를 기록해 30% 대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고강도 긴축’에 강원도 통합재정수지 15년 만에 404억원 흑자

2023년 7월 20일에는 도정 전반에 만연해 있는 과도한 외부 용역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3년 동안 도 본청과 23개 산하기관에서 수행한 용역 7758건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실·국별 용역 추진에 대한 관리·통제 시스템 부재 △용역 수행 필요성을 판단할 가이드라인 부재 △도 본청에서 산하기관에 맡긴 위탁사업을 다시 민간업체에 용역 주는 ‘용역의 재용역’ 등 크게 3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용역 관리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모든 용역에 대해 도지사 결재를 받게 하는 등 용역 심의 절차를 강화하고, 용역의 필요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신설하고, 용역 자체 수행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한다.과도한 용역 줄인다…강원도 용역 관리 강화 추진

민간단체와 기업에 지급한 보조금에 대한 감사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빚 갚기와 허리띠 졸라매기에 이은 재정혁신 3단계 사업이라고 한다. 김진태 “혈세도둑 용납 안 해”…이번엔 민간보조금

김진태 도정의 이러한 재정혁신에 대해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평창올림픽, 레고랜드 조성 사업,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망상1지구 사업, 드론택시 시제기 개발 사업, 플라이강원최문순 전임 도정에서 방만하게 추진된 사업들이 족족 실패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문순 전임 지사 시절에 과도하게 '좋은게 좋은거지' 식으로 무리하게 신규사업 추진이 남발됐고, 한번쯤 원점에서 재점검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데에는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다. 다만 다소 성급하게 추진되면서 전임 도정 지우기 논란과 후술할 레고랜드 사태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4.3.3. 레고랜드 사태[편집]


사태가 처음 가시화된 10월 19일 촬영된 증시각도기TV의 사태 추이 예측 해설. 진행에 증시각도기TV 운영자인 곽상준 #1 #2 신한금융투자 강북센터 지점장, 해설에 서준식 現 숭실대학교 금융경제학과 전임교수 前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부사장.

그러던 와중 레고랜드 사태를 터트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에게 비판을 받는 중이다.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두어 대한민국 지방채의 신용도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만들어버렸으며, 그로 인한 여파가 계속해서 불어나 중앙 경제부처(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가 주말에 긴급회의를 개최해 50조원 규모의 보증 및 채권매입을 약속하는 등 최악의 사태를 막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강원도가 2050억원을 갚지 않으려고 한 행동으로 인해 50조원 넘는 국고가 깨지는 중인 셈이다.

2022년 10월 21일, 결국 강원중도개발공사 변제 불능으로 인한 보증채무를 2023년 1월 29일까지 이행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보증채무 이행을 위한 지급금의 예산안 편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만기연장도 거부하며 채권을 부도낸 이상, 이미 떨어진 강원도 지방채의 신용도를 회복하기에는 어려울 전망이다. 최소한 2026년 6월까지의 민선 8기 강원도정에서 앞으로 지방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 정도.

그 이후 증권사가 일방적으로 부도처리 한거다, 유감이다 라는 입장을 밝힌 뒤 베트남으로 출국하여 더더욱 비판받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주요 논거로 든 최문순의 잘못 건은 다음날 김종배시선집중에서 최문순 전 도지사가 직접 반박하며 확전 양상을 띄고 있다.

해당 사건으로 임기 초기부터 벌써 재선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가 보수정당 우세 지역이긴 하지만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민심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소속에게도 표를 주는 등 어느 정도 표심이 유동적인 지역이며, 국민의힘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만큼 4년 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하여도 이 사건으로 인해 공천에서 패배하거나 아예 컷오프가 될 가능성도 있다.


10월 26일, 강원중도개발공사 송상익 대표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9월 29일에 BNK 증권과 예정대로 기업어음을 만기 연장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는데, 9월 28일 어떠한 사전 협의나 통지도 없이 (김진태 지사가) 갑자기 보증 의사를 철회하고 회생 신청하겠다 하는 바람에 BNK에서도 금융 연장을 철회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김진태 지사가 주장하는 GJC를 회생 신청한 핵심적인 이유인 GJC가 개발해 판매한 자산 가격이 저평가 되어 있기에 법원에서 제대로 평가하겠다에 대해 "매매 당시 자산가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철회한다는것은 민간에서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인데 공공기관에서 하는것은 절대 해선 안되는 일이고 자유 경제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해당 인터뷰를 통해 김진태 지사의 독단적 판단에 의한 내지름이었던 것이 드러나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10월 27일,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레고랜드 조성사업을 위해 진 빚 2,050억 원을 원래 정했던 채무 상환 일정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진 12월 15일까지 전액 상환하겠다밝혔다.[32] 이러다가 더 사태가 안 좋아지면 11월 15일에 갚을 기세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사흘 있다가 귀국한 김진태 지사는 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좀 미안하죠. 어찌됐던 전혀 본의가 아닌데도 국회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니까 좀 미안하게 됐고요."라고 입장을 밝혔다. 국가 채권시장이 흔들리고 지방채 시장이 박살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사과는 커녕 '좀 미안하다' 정도로 넘기는 발언에 국회의 동향만 신경쓰는 듯한 발언으로 사태파악이 하나도 안 되고 자기 책임은 여전히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며 사태의 파장만큼 비판도 지속되고 커지고 있다.

또 귀국길 인터뷰 중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밝히고 설득해오는 과정인데 부도처리부터 했다'며 더 길게 사과하기보다는 채권단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는데, 회생 절차에 대해 얘기한 것은 김진태 측이고 회생절차를 시작하면 부도처리부터 하기로 계약서면에 약정되어있던 상황이다. 법조인 20년 했다는 사람이 계약서나 절차를 제대로 파악 안하고 그냥 질러버렸다는 것이 해당 발언으로 확인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지금까지의 사태와 파장을 정리한 KBS 르포가 나왔다. “조금 미안” 김진태 지사, ‘주연’과 ‘씬 스틸러’ 사이

2022년 11월 10일 KBS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의 사태와 파장 정리.

위의 르포를 쓴 서영민 기자가 출연해 해설한다.



4.3.4. 지지율[편집]



4.3.4.1. 리얼미터[편집]

지선이 끝난 후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12위, 48.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링크

8월 여론조사에선 순위 동결, 지지율은 0.6%p 올라 49.3%을 기록했다.링크

9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올라 10위, 지지율 역시 0.5%p 올라 49.8%을 기록했다.링크

10월 여론조사에선 한 단계 떨어진 11위, 지지율은 0.7%p 떨어져 49.1%을 기록했다.링크

11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한 단계 떨어져 12위, 지지율은 1.3%p 떨어져 47.8%을 기록했다.링크

12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올라 6위, 지지율은 7.1%p 올라 54.9%를 기록했다.링크

2023년 1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하락해 9위, 지지율은 0.8%p 하락해 54.1%를 기록했다.링크
[1] 육군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고, 2013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2] 평소 저혈압을 앓고 있었는데, 2011년 12월 23일 새벽 목욕탕에 갔다가 심장부정맥으로 추정되는 불상의 원인으로 의식을 잃고 투병하다가 2012년 1월 4일 별세했다. #[3] 이재명과는 동기생이다. 검찰총장 출신의 띠동갑에 항렬까지 같은 동명이인은 14기다.[4] 보통 서울대 법대 출신을 사법시험 합격 학년으로 나눌 때에, 4학년에 합격한 사람이 최상위권이며, 3학년 합격자는 천재로 유명해진다. 소년등과의 상징인 우병우는 시골 출신이라 호적 등록이 늦었고 실제로는 1965년생(59세)으로 생활하며 84학번 입학 후 87년 4학년 합격이기에 김진태와 동급이다. 3학년 합격자로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과 진경준 전 검사장이 있는데 둘 다 천재로 유명하다. 한편 늦깎이 합격 대기만성으로도 유명한 윤석열 대통령과 비교하면 윤석열은 김진태보다 4살 형이자 4학번 선배이지만 사법연수원 기수는 5기수나 아래이다.[5] 봉욱과 김진태는 강력부 부장검사였기 때문에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이었는데, 사건을 중수부로 넘기면서 이에 반발한 경대수 강력부장이 사표를 쓰고 나가게 된다.[6]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작된 누명 사건이 맞고 김진태가 틀렸다.[7] 원주지청장을 지낸 경력 때문에 원주에 변호사 사무소를 연 것으로 추정된다. 춘천은 자신의 고향이니까 개업한 것으로 보인다.[8] 하지만 이 셋은 8회 지선에서 각각 대전시장, 충남지사, 강원지사에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한다.[9] 보수 성향 예비 후보들에 대한 평소 여론조사에 의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9%, 홍준표 지사가 1%, 그 외 나머지 후보들은 1% 미만이었다. 그러나 황교안은 불출마를 선언했다.[10] 이 두 의원은 로스쿨-사시 병행을 주장한다. 그리고 김진태보다는 비교적 중도파다.[11] 참고로 서영교의 딸은 로스쿨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본명은 박성수. 그전에도 박근혜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제작하다 구속된 경력이 있었다.[13] 출판물에 의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무고, 모욕, 정보 통신망 보호법 위반.[14]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난민수용 반대에 서명을 한 사람들이 무려 70만명이 넘었고, 여론조사에서 2030대 젊은 연령층이 압도적으로 반대여론이 우세하다. 특히 20대 연령층에서 반대여론이 찬성여론보다 무려 3배나 높은 66.0%로 나오는 등, 난민수용 반대여론이 굉장히 압도적으로 높다.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아졌다. 그러니 평소에 김진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김진태의 난민법 개정안 발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남겼다.[15] 청문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던 진보층에서는 "어어디 감히 강직하고 정의로운 검사 윤석열에 총질이여? 너희도 결국 입진보였구나?"라고 성토하며 뉴스타파 구독취소 운동이 벌어지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팟캐스트 진행자 이동형은 일찌기 윤석열이 양날의 검이라며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묵살당했다. 청와대 내부 인사 중 조국, 최강욱 등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에 반대했으나 청와대 내 다수파에 의해 묵살당했다. 물론 조국 사태 터지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 이후부터는 자신들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끼고 이불킥하며 뉴스타파를 더욱 열성적으로 후원해줬다고는 얘기했다. #[16] 짙은 친박 성향과 잦은 막말도 있지만, 선거구가 분리된 것도 낙선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선거구 변경으로 보수 성향이 더 강한 춘천시의 북부 지역이 철원, 양구, 화천과 같은 선거구로 들어가버렸다. 다만,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 지역 중에서 춘천 지역은 민주당 후보가 근소하게 앞섰다. 춘천시/정치 참고.[17] 이게 하필 재보선 끝나고 김종인이 당을 나간 뒤에 보인 행동이라, "김종인 나가니까 원래대로 돌아오느냐"는 부정평이 심했다.[18] 거기에 검사 시절 춘천지검 원주지청장을 지낸 바 있고 원주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이력도 있어서 원주에도 어느정도 연고가 있는 사람이다. 즉 도내 양대도시에 모두 기반이 있다는 지사 후보로서 실로 엄청난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19] 참고로 다른 유력 출마 후보는 강원도 최다선인 권성동인데 현재 국민의힘 의석수나 권성동이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를 겨우 사수한 것을 감안하면 불출마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권성동의 경우에는 보수 후보가 3명이나 출마했기에 겨우 당선된 것이기도 하다.[20] 대표적으로 군인 월급 인상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까고 가세연에 나왔던 것.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등을 말하였다.[21] 각종 욕설과 비아냥거리는 표현들도 많았는데 그걸 전부 복기했다고 한다. 예전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보였다.[22] 그러나 지난 태극기 부대 활동을 할 때도 조원진과 같이 신당을 만들고 활동하지 않고 당에서 자리를 지킨 만큼 탈당 후 무소속 출마 가능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대신해서 최대한 자신의 억울함을 알려 지역 내에서 동정론을 얻고 결국에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단수공천으로 확정된 황상무 후보를 도와주는 등 다음 정치적 활동을 위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더 크다.[23] 오히려 무소속 출마시 황 후보와 같이 표가 분산되어 이광재만 좋은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춘천 표가 찢겨서 황 후보 표가 김진태에게 분산되어 이광재에게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탈당 후 복당을 한다 한들 강성 친박을 쳐내려는 이준석과 권성동이 잠자코 복당을 해줄 것이라는 장담도 없다. 친박계인 이정현의 복당은 허가되지 않았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이정현은 애초에 강경파까지도 아니고, 친박이라도 탄핵 정국에서 대표직을 사퇴하고 탈당, 문정부 5년 내내 집 밖에서 야인으로서 조용히 살아 현재는 친박의 색채가 거의 사라졌으며 무엇보다도 호남에 새누리당 깃발을 2번이나 꽂아 호남 지지율도 좋기 때문에 복당이 가능했던 것이다. 당장 극우친박 강용석의 복당을 불허한 게 현재의 국민의힘 지도부다.[24] 그 와중에도 히터는 자신이 아닌 보좌진을 향해서 틀어놓았다.[25] 김진태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 지지율 1위 후보를 경선조차 치르지 않고 무작정 잘라버리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당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었다. 그렇다고 김진태를 자르고 단수공천 하기로 한 황상무가 크게 경쟁력이 있는 후보인 것도 아니었기에 지선 패하려고 작정했냐는 비아냥은 덤. 울산광역시대전광역시 역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컷오프 때문에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26] 김진태, 이광재, 황상무. 그러나 셋의 실제 나이는 황상무 63년생, 김진태 64년생, 이광재 빠른 1965년생으로서 완전한 동갑내기는 아니다. 황상무가 김진태와 함께 서울대학교 83학번 동기라서 김진태가 동갑이라고 생각했거나, 또는 황상무가 호적상 64년생이고 실제로는 1963년생이라서 그럴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됐건 셋은 같은 연령대이긴 하다.[27] 하지만 국힘당의 압도적 우세 계층이었던 이대남에서도 이광재와의 양자대결 득표율이 겨우 51%(...)에 그쳤는데, 이는 김진태가 군인들 월급을 올려주지 마라는 망언을 하는 등 개인의 비호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었다.[28] 김 지사가 폐기한 공약은 △건강 100세 바우처 △예비엄마 수당 △결혼축하금 100만원 △국립보훈병원 유치 △어업인 수당 △외국인 계절근로자 고용농가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분원 설립 △폐광지역 사계절 종합체육센터 건립 등 8개다.[29] 지킬 수 없는 공약은 지키지 못 하는 걸 확실히 인정하는 대신, 지킬 수 있는 나머지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을 역설한 것으로 보인다.[30] 김진태 지사의 경우 지난 지선에서 윤심을 업은 황상무 앵커에게 공천에서 밀려 의사당 앞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 이준석이 직접 현장에 찾아와주고 황상무 단수공천안을 부결시켜 재경선을 치르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다. 즉 다른 지자체장들과 달리 윤석열에게 빚진 게 없으니(8회 지선에서 윤석열에게 빚지지 않고 자력으로 공천장을 딴 사람은 홍준표와 김진태 둘밖에 없다.) 이준석을 공개적으로 만나도 전혀 껄끄러울 것이 없는 셈이다. 선거 당시에는 공보물에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친윤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서이지, 김진태 본인은 과거 윤석열을 '검찰 역사 상 최악의 정치 검사'라고 날을 세웠을 정도로 윤석열과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31] 장제원 의원은 "강원도민의 염원을 이뤄 드리고 대통령의 약속을 실현할 수 있다면 법안 통과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위원장으로서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라고 하며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고, 곧이어 이성만 의원도 사과했다. 강원특별자치도법 때문에 행안위 파행이 해결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32] 일반적으로 공직 집단의 수장이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중요 안건의 경우 결재는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김진태가 베트남 출장 중임에도 불구하고 상환 결정이 이렇게 빨리 진행된 것은 빚을 신속하게 상환하라는 정부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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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1주년이 된 6월 여론조사에서는 순위는 8위, 지지율은 전월보다 3.8% 상승해 52.5% 기록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얻었던 득표율 대비 현재 지지도 증가 순위는 김동연 경기지사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다.#

7월 여론조사에서는 순위는 9위, 지지율은 2.8% 하락해 49.7%를 기록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얻었던 득표율 대비 현재 지지도 증가 순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태흠 충남도지사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했다.#

8월 여론조사에서는 순위는 그대로 9위, 지지율은 2.5% 하락해 47.2%를 기록했다. 지난해 6·1지방선거 당시 얻었던 득표율 대비 현재 지지도 증가 순위는 전국 4위, 정당지지율 대비 현재 지지도도 전국 4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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