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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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2001 ~ 2002 시즌
2.2. 2003 ~ 2006 시즌
2.3. 2007 시즌
2.4. 2008 시즌
2.5. 2009 시즌
2.6. 2010 시즌
2.8. 2012 시즌
2.9. 2013 시즌
2.10. 2014 시즌
2.11. FA
2.12. 2015 시즌
2.13. 2016 시즌
2.14. 2017 시즌
2.16. 2019 시즌
2.17. 2020 시즌
3. 수상 내역
3.1. KBO
3.2. 국가대표
4. 연도별 주요 성적
4.1. 타자
4.2. 투수


1. 개요[편집]


SSG 랜더스 소속 외야수 김강민의 선수 경력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SK 와이번스-SSG 랜더스[편집]



2.1. 2001 ~ 200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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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은 투수로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입단 1년만인 2002 시즌에 내야수로 전향해 2군에서 주로 내야수로 활약했다.

2002년 7월 21일 문학 LG 전에 대주자로 나와 프로 데뷔전을 치뤘으나, 도루자를 기록했다.


2.2. 2003 ~ 200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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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시즌부터 우익수로 전향하였다. 그리고 이해부터 등번호를 0번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2004시즌부터 박재상, 조동화와 함께 2006년까지는 외야에 자리가 남으면 메꿔주는 백업 멤버 수준에 가까웠다.

2.3. 2007 시즌[편집]


부상당한 이진영이 풀타임 주전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박재홍이 우익수를 더 많이 보기 시작함에 따라 주전 중견수로 발돋움하게 시작했다.

박재홍보다 중견수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주전에 기용되는 일이 잦아 박재홍이 불만을 갖기도 했으며, 형편 없는 타격 때문에 주전으로 기용시마다 김성근 감독 양아들이라고 하면서 까이기도 했다.[1]

2.4. 2008 시즌[편집]


OPS .743, wRC+ 107.5를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2.5. 2009 시즌[편집]


홈런 12개를 치며 커리어 첫 두 자리수 홈런을 기록하여 2010년 연봉도 1억 2,0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김강민의 연봉이 1억을 돌파하면서 SK는 주전 야수 전원이 억대 연봉자에 오르게 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럭저럭 중견수 자리를 꿰차고 있었지만 오직 수비능력과 빠른 발을 가지고 중견수를 하고 있어 팬들이 불안불안했다. 타격에선 2할 6푼대이다. 플래툰으로 조동화가 있지만 조동화의 2009년 타율은 1할대로 더 부진하다.


2.6. 2010 시즌[편집]


6월 30일 타율 .358, 8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바라고 바라던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선수로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0번인데 국제대회에서 달수가 없어 9번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병역특례를 받는 것에 성공했다.[2]

9월 12일 타율 0.324에 규정타석을 채워 타율 6위에 랭크되었다. 스탯티즈에 의하면 팀 내 공헌도가 김광현에 이어 2위로 랭크되었다. 팀 내 타율 1위 도루 2위 타점 3위 홈런 4위. 심지어 실책이 0개로 수비율 1.000의 포스를 풍겼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17 출루율 0.369 장타율 0.449 OPS 0.818로 일취월장한 타격실력을 보여줬다.

타율은 외야수 부문에서 공동 1위(김현수)고 전체로도 공동 6위로 타격에 눈을 뜬 것으로 평가받았다.

다른 타격스탯도 전 부문 상승을 이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수비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출중하기에 타격까지 받쳐주는 지금 모습을 유지한다면 중견수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을 듯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 3차전은 선발 중견수 겸 6번 타자, 2, 4차전은 선발 중견수 겸 1번 타자로 출장하여 13타수 4안타 1볼넷 2사구(死球), 타율 .308, 장타율 .462, 출루율 .43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2010 시즌이 끝나고 12월 18일 대구 남구 대명2동 프린스호텔에서 박정선 씨와 결혼했다.

12월 11일, 두산 베어스의 김현수, 이종욱과 함께 2010 시즌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7. 2011 시즌[편집]



파일:김강민 2011.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강민/선수 경력/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8. 2012 시즌[편집]


시즌 초반부터 무난하게 활약을 했다.

그런데 5월 10일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 원정경기에서 8:7로 앞서던 9회 말 2아웃 1, 2루 상황에서 임재철의 타구를 거의 잡았다가 놓치면서 3루타가 되어 히 드랍 더 볼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임재철의 타구가 정상적이었으면 잡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당시 중계석에 있었던 XTM 민훈기 해설위원도 '김강민이니까 저렇게 따라가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타격은 2010년 수준으로 돌아온 상태인데, 5월 중순까지 볼넷병살타를 단 한 개도 기록하지 않는 변태스탯을 기록했다. 5월 셋째주에 접어들어서야 볼넷과 병살이 나왔으며 덕분에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타격 순위 10위 안에 들고 있다.

헌데 6월에 들어서며 타격 페이스까지 떨어져서 순식간에 2할 중반까지 도달하였다.

6월 20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스코어 1:3으로 SK가 리드하고 있는 8회 초 2사 1, 3루 상황에서 엄정욱의 직구를 강민호가 받아쳐 좌중간 깊숙히 날렸으나 귀신같이 뛰어와서 잡아내면서 실점을 면하는 수비를 보여주었다.[3] 하지만 이날도 타격은 무안타.

6월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스코어 0:2로 삼성이 앞서고 있는 3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조동찬의 뜬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4] 이닝 종료 찬스를 날려먹고 3점을 허용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김강민은 멘붕하고, SK는 0:6으로 패배했다. 공교롭게도 그날부터 7월 7일 한화전까지 SK는 6연패에 빠졌다.

7월말부터 간간히 톱타자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8월 들어서 1번 타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타순이 변경되자, 타격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대신 정근우가 6번 타자로 내려갔는데 정근우도 6번 타순에 정착한 후에 타격이 개선되는 WIN-WIN효과가 나타났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9월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홈 쇄도 중 강민호와 충돌해 강민호가 목부상을 입음으로써 롯데 파괴자로써의 칭호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9월 19일 롯데팬들이 SK 이만수 감독의 얼굴에 레이저빔을 쏘는 등 양쪽 관계는 그야말로 앙숙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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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와 충돌한 장면.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중견수 겸 6번 타자로 출장하여 19타수 4안타 1득점, 타율&출루율 .211, 장타율 .26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7:8로 앞선 6회 말 2사 2루 상황에서, 삼성 배터리는 박정권을 거르고 김강민과의 승부를 이어갔으나 김강민은 좌측담장을 그대로 넘겨버리는 통렬한 스리런 홈런을 작렬했다. 이 홈런으로 승부는 완전히 SK쪽으로 넘어갔다. 9회 초에는 아웃 타구를 모두 김강민이 처리했다. 마지막 최형우의 타구는 날카로웠지만 김강민의 수비 범위가 더 넓었다. SK는 이날 스코어 8:12로 이겼고 김강민은 선발 중견수 겸 6번 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 1득점을 기록하여 이 날 경기의 MVP로 선정되었다.

김강민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3, 4, 5차전은 선발 중견수 겸 6번 타자, 2, 6차전은 선발 중견수 겸 5번 타자로 출장하여 22타수 6안타 1홈런 1볼넷 5타점 1득점, 타율 .273, 장타율 .409, 출루율 .30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김강민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41타수 10안타 1홈런 1볼넷 5타점 2득점, 타율 .244, 장타율 .341, 출루율 .262를 기록했다.


2.9. 201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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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중견수로 손꼽히는 수비력은 여전하나 타격에서는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면 부진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방망이가 죽어버린 수준. 4월 14일까지 24타수 1안타 0.042 사푼이라는 조롱과 함께 결국 2군행을 통보받았다.

팬들은 2군에서 타격감을 끌어올리고 1군으로 다시 올라오길 바랬으나 박정권이 7할을 치는 2군에서도 여전히 사푼이... 거기에다 4월 17일 2군 경기에서는 수비 실책도 했다. 여러모로 본인의 입지가 위험한 상황.

그러나 5월부터 타격감을 찾기 시작하고, 6월에 0.366의 타율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성적이 올라왔다. 8월 25일 기자의 장타가 늘어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쎄게 쳐서요' 라고 답변했다.

후반기에 좋은 활약을 보여 주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짐종대왕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더니 기어이 8월 27일에 0.300의 타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거의 경악할 상전벽해 수준.

시즌 최종성적은 0.301(352타수 106안타)/0.370/0.466 10홈런 55타점 10도루로 통산 두번째 3할을 달성했다.


2.10. 201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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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1번 타자 역할을 하던 정근우한화 이글스로 이적함에 따라 새로운 1번 타자로 주목받고 있다. 정규타석 3할을 두 번 기록했고 발도 그럭저럭 빠른 편이며 나름 일발 장타를 노릴 수도 있는 등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 타자이기 때문인 듯.

하지만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크지 않은 타자인데다 도루 개수도 10개 언저리에서 형성되곤 하는 타자이고 장타력을 생각한다면 1번 타자보다는 6번 타자가 낫지 않냐는 의견도 많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2014년 오프시즌 연습경기를 보면 거의 1번 타자로 출전하고 있어 시즌 중에도 1번 타자 보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연습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고 있기도 하고.

일단 작년과는 달리 개막전부터 해서 12일 기준으로 11경기 연속안타를 때려내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월 30일 45경기에서 180타수 57안타 타율 .317, 출루율 .403, 장타율 .561로 3/4/5를 기록 중이며 도루 14개, 홈런 9개 타점 27개로 리그 탑급의 1번 타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팀에서 야구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다.

6월 4일 2점 차로 리드당한 상황에서 무사 만루를 만든 상대 마무리 이용찬을 상대로 끝내기 3타점 2루타를 날렸다.

6월 5일 2대2 상황에서 솔로 홈런을 날려 이틀 연속으로 결승타를 기록했다.

6월 20일 0대2로 뒤진 상황에서 하영민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팀은 윤길현서건창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으며 패배.

그 이후 잔부상으로 인해 잠깐 부진을 겪어 타율이 .295 정도까지 떨어지다가 7월 9일 다시 페이스가 돌아와서 타율 .312를 마크 중.

8월 14일 삼성전에서 7회 초 무사 1루 상황에서 이지영의 중견수 앞 안타를 8-5-3 병살타로 둔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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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만 잘 해서 시즌을 마친다면 본인의 커리어 하이가 될 수도 있는 시즌이다. 일단 홈런과 도루는 커리어 하이를 넘어선 상태이다. 안타와 타점, 타율도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무난히 커리어 하이가 될 듯.

10월 13일 타점-득점 모두 80점을 넘으며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안타 역시 개인 통산 처음으로 130안타를 넘겼다.그리고 이날 두산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 들어 약간 부진하긴 했지만 3할을 유지하며 시즌을 마쳤다. 안타-득점-타점-도루-홈런-장타율에서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팀에 존재가치를 각인시켰다.

2014년 도중 딸의 유치원 학부형 계주에 참여하여 전력질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상대 학부형들에게 욕을 잔뜩 먹었다고 한다.


2.11. FA[편집]


시즌 이후 FA 자격을 취득, 원 소속팀 SK와의 우선협상 마지막날 4년 56억(계약금 28억+연봉 24억+옵션 4억)의 조건으로 잔류하였다.


2.12. 20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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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수원 kt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무릎 인대가 부분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약 두 달 정도 결장이 예상되고 있다. FA 계약 이후 첫 시즌인데 시작부터 좋지 않은 상황. 팬들은 물론 본인도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

5월 30일 넥센전에서 복귀를 했다. 팀이 연패를 하고있고 연패의 주요 원인이 타자들의 부진임을 생각하면 김강민의 복귀는 팀에게 좋은 소식. 다행히도 복귀뒤 첫 시리즈에서 타격감과 수비감 모두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출전한 두 경기에서 각각 안타 하나씩을 기록했고 31일 경기에선 호수비를 무려 세개나 선보이며 복귀를 알렸다.

6월 2일 kt전에서는 4안타를 폭발시키며 팀의 20:6대승에 큰 기여를 했다.

6월 16일 한화전에서 드디어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했다. 그리고 6월 17일 경기에선 5타수 4안타 홈런 하나, 2루타 두개로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이날의 MVP가 되었다.

6월 25일 두산전에서 경기 분위기를 뒤바꾸는 쓰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이 홈런을 포함해 5타점을 쓸어담으며 승리에 기여, MVP로 선정되었다.

당해 굉장히 저조한 성적으로 먹튀에 대한 우려가 심하게 나오고 있었고 결국 타율 2할 4푼 6리에 홈런도 4개에 불과하는 등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성적을 기록하며 아쉬움을 낳았다.


2.13.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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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의 뒤를 이어 2016 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일명 짐장님.

3월 15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시범경기 중 만루홈런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고척 스카이돔 개장 이후 첫 번째 프로 공식 경기 홈런으로 기록됐다.

4월달엔 시즌 초에 삼진 내야뜬공 땅볼만 쳐서 엄청 까였으나 4월 말에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5월 초 갈비뼈 부근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후 전년도 주장이었던 조동화가 임시로 주장을 맡고 있는 중이지만 주장의 이탈로 인해 팀의 케미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그리고 6월 10일 경기에서 드디어 [5] 복귀했다! 그러나 2:2의 균형이 유지되던 9회 초 박석민의 거짓말같은 만루홈런으로 팀이 패배하면서 뒷맛이 씁쓸한 복귀전이 되었다.

6월 11일엔 대타로 나와서 추격하는 솔로포를 터뜨리고 호수비를 선보였으나 팀은 7:6으로 아깝게 패했다.

복귀 이후에 미쳐 날뛰고 있다. 홈런도 복귀 이후 두 개를 쳤으며 타율은 .354 최훈 카툰에서 이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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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LG전에는 류제국의 사구에 맞고, 1루로 나가는 중 김강민을 계속 응시하던 류제국과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을 벌였다. 두 선수 모두 경기에서 퇴장당하고 KBO에서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제재금 300만 원과 유소년 야구봉사활동 120시간을 부과했다. 그나마 그 경기 다음 날에 두 선수가 서로 훈훈하게 사과한 것은 다행.[6][7]



8월 4일 문학 삼성전에서 외야 플라잉을 잡은 뒤 바로 포수 글러브로 보내는 괴물같은 송구가 화제가 되었다.

8월 6일 고척 넥센전에서 멀티히트를 때려내면서 통산 1,000안타의 고지를 밟았다. 2002년 프로 데뷔 이후 15시즌 만이다. 시즌 타율은 0.300으로 3할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9월 2일 고척 넥센전에서 멀티히트를 때려내 통산 1,500루타를 기록했다. 통산 홈런(82개)이 많지 않아 안타와 루타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시즌을 10홈런 47타점 12도루(5도실) 0.298 0.371 0.437로 마감하였다. 시즌 내내 특출난 활약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제 몫을 해줬다.


2.14. 2017 시즌[편집]


6월 말까지 2할 1푼의 타율과 1개에 불과한 홈런으로 충실한 먹튀의 길을 걷고 있다. 수비력은 여전해 1군 엔트리에 머물고 있지만 조용호, 노수광, 정진기 등에 밀려 대수비, 대주자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

6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8회 말 달아나는 솔로홈런을 쳐냈다. 시즌 2호.

10월 5일 4위 NC 다이노스와의 와일드카드 전에서 이성우의 대타로 나와 볼넷을 얻어냈다. 허나 메릴 켈리가 이미 거하게 불을 질러 놓은지라 딱히 추가적인 활약은 못했고 팀은 와일드카드에서 탈락했다.

시즌 성적은 타-출-장 0.219-0.296-0.339. WAR은 0.03. 거의 대체 선수에 가까운 성적을 남겨 장렬하게 산화했다. 타격 부진이 너무 심해서 시즌도중 타격폼도 바꿔보았지만 소용없던 시즌이었다.


2.15. 2018 시즌[편집]



파일:file1_1560732689.png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동점포를 치고 배트플립하는 모습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강민/선수 경력/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초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경쟁에서 뒤쳐지며 정말로 올해 끝나면 은퇴를 할것으로 보였으나....
후반기에 드라마틱하게 반등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반등의 정점을 찍었던 포스트시즌엔 팀에 주전 중견수였던 노수광의 공백을 지우는걸 넘어서 아예 날라다니며 팀의 4번째 우승에 멱살을 잡고 캐리를 했고 개인 4번째 우승반지를 얻었다.

2.16. 2019 시즌[편집]



파일:김강민 2019.jpg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며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3월 19일 두산과의 시범경기 9회말에서 함덕주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시범경기 동안 타율 0.158(19타수 3안타) 3안타 2홈런 4득점 5타점을 기록하며 장성우, 김현수와 함께 홈런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렸다.

3월 23일 KT와의 경기에 7번타자 중견수로 나와 3타수 1안타 2득점을 기록했다.

3월 24일 KT와의 경기에 1번타자 중견수로 나와 4타수 3안타 1득점으로 활약했다.

4월 5일 기준으로 타율 0.333(48타수 16안타) 5타점 4도루(3위) 6득점 출루율 0.396 장타율 0.438 OPS 0.834를 기록하며 식물이 된 팀 타선에서 정의윤과 고군분투 중이다.

4월 19일 6타수 1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기록하며 타점을 만들어냈다.

4월 20일 4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으로 4출루를 기록하며 경기 내내 날아다녔다.

4월 21일 역시 4타수 3안타를 기록했으며 1회 1번타자로 출장한 첫 타석에서 홈런을 만들어내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즌 성적은 0.354/0.417/0.485 2홈런 4도루 OPS 0.902로 최고의 시즌 초를 보내는 중이다. 다만 BABIP 수치가 무려 0.427로 약간의 행운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어 BABIP 수치가 떨어졌을 때의 성적 유지 능력이 관건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나이가 무색한 활약.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 중이던 5월 14일 NC전에서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실패했는데 경기가 끝난 뒤 복통을 호소해 병원 검진을 받은 결과 췌장 혈종이라는 진단이 나와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5월 31일 1군에 복귀했다.

노수광이 부진했던 가운데 무난히 활약했지만,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로 스윕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70 422타수 114안타 8홈런.


2.17. 2020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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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후 두 번째 FA 신청을 했고, 협상이 길어지다가 1월 초 1+1년 계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투수 1명과 함께 금액 조율이 아직 안 되고 있다고...

그리고 결국 2020년 1월 13일 SK와 2년(1+1년) 총액 10억원(계약금 1억원, 연봉 3.5억원, 옵션 연 1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박정권, 채병용, 박정배[8]의 은퇴로 신재웅, 채태인과 함께 팀 내 최고참이 되었다.

5월 8일 롯데전에서 롯데 팬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하는 호수비를 두 번이나 펼쳤으나 팀은 폭투로 패배했다.

7월 17일 키움전에서는 3회말에 희생플라이를 치고, 8회초에 키움 허정협이 홈런성 타구를 치자 짐승수비로 홈런볼을 잡아내고[9] 병살타로 만들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으며, 채태인이 역전 적시타를 날린 직후 타석에 들어서서 2타점 적시타로 쐐기를 박았다. 승리기사의 제목부터가 '김강민 영웅적 활약' SK, 혈전 끝에 키움에 역전승이니 말 다했다. 자세한 건 김강민 하이라이트 참조.

7월 28일 9회말 4번 타자 정영일[10]의 대타로 나와 사구로 출루했다.

8월 19일 문학 한화전에서 1회말 박주홍을 상대로 역전 그랜드슬램을 날렸다[11]. 이날 팀은 총 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총 스코어 26:6 대승을 이뤘다.

9월 27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6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3회 초 원태인을 상대로 투런 홈런(시즌 9호), 5회 초 장필준을 상대로 또다시 투런 홈런(시즌 10호)을 쳐내며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2018 시즌 이후 2년만에 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10월 30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한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윤희상의 은퇴 경기에서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KBO 리그/2020년/10월/30일 참조바람. 팀이 매각됨에 따라 이 홈런은 SK 와이번스의 최후의 홈런이 되었다.

최종 성적은 122경기 타율 .253, WAR 0.92로 마무리했다. 에이징 커브가 올 만한 30대 후반의 나이와 여러가지 문제로 몰락한 팀의 상황을 감안하면 팀내 최고참 선수로써는 제 몫을 해줬다는 평가.


2.18. 2021 시즌[편집]



파일:914889_322356_5134.jpg

SSG 랜더스 임시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는 김강민의 모습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강민/선수 경력/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9. 2022 시즌[편집]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 끝내기 쓰리런 홈런을 친 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강민/선수 경력/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만 40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정규시즌에서 백업으로 준수하다 못해 넘치는 활약으로 팀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기여하였으며 202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는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9회말 동점 홈런, 3차전에는 빅이닝의 서막을 여는 1타점 중전 적시타, 5차전에서는 패배 위기에 빠진 팀을 한방에 구해내는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대타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날리는 등 시리즈 내내 노익장을 과시하며 랜더스 시대 첫 통합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2.20. 202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강민/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SK-SSG에서 맞는 23번째 시즌. KBO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한 팀에서 활약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만 41세를 넘긴 나이의 한계로 인해 선발 출전은 거의 못하고 백업으로 활약했다. 여기에 후계자로 낙점된 최지훈이 병역 면제 혜택을 따내면서 랜더스의 주전 중견수 자리를 확실히 물려주게 됐다. 때문에 2023년이 마지막 현역 시즌이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도[12] 나오고 있다.

3. 수상 내역[편집]



3.1. KBO[편집]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



김강민의 KBO 수상 경력

2001
수상 내역 없음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한국시리즈 우승 / 페넌트레이스 우승
2008
한국시리즈 우승 / 페넌트레이스 우승
2009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0
한국시리즈 우승 / 페넌트레이스 우승 /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1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2
한국시리즈 준우승 /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3
수상 내역 없음
2014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5
드림 올스타(감독추천)
2016
수상 내역 없음
2017
2018
한국시리즈 우승 / 플레이오프 MVP
2019
드림 올스타(감독추천)
2020
수상 내역 없음
2021
2022
한국시리즈 우승 / 페넌트레이스 우승 / 한국시리즈 MVP
2023
수상 내역 없음


3.2. 국가대표[편집]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김강민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10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4.1. 타자[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1
SK-SSG
1군 기록 없음
2002
1
0
.000
0
0
0
0
0
0
0
0
0
.000
.000
-
2003
2
4
.500
2
0
0
0
1
0
0
0
1
.500
.500
192.0
2004
23
25
.120
3
1
0
1
2
4
2
3
7
.214
.280
18.9
2005
23
40
.225
9
1
0
0
3
6
2
4
9
.259
.250
37.8
2006
96
145
.276
40
9
1
1
14
20
8
15
30
.342
.372
103.3
2007
124
334
.243
81
10
3
4
18
51
19
34
57
.312
.326
78.6
2008
106
258
.271
70
16
3
3
32
38
16
32
46
.352
.391
107.5
2009
104
341
.267
91
18
3
12
42
48
10
29
67
.323
.443
86.4
2010
115
401
.317
127
19
2
10
72
74
23
35
51
.369
.449
115.3
2011
80
281
.281
79
14
1
8
33
37
9
22
56
.331
.423
105.0
2012
123
427
.272
116
20
0
5
31
49
11
33
72
.354
.422
92.6
2013
105
352
.301
106
22
3
10
55
39
10
40
54
.370
.466
127.0
2014
113
430
.302
130
29
3
16
82
86
32
47
91
.368
.495
117.3
2015
96
293
.246
72
17
0
4
31
43
7
30
83
.315
.345
72.9
2016
115
366
.298
109
21
0
10
47
59
12
44
89
.371
.437
100.7
2017
88
183
.219
40
5
1
5
18
31
10
20
50
.296
.339
61.2
2018
80
235
.298
70
14
0
14
46
40
10
27
57
.370
.536
119.1
2019
127
422
.270
114
14
2
8
50
54
15
35
103
.324
.370
90.9
2020
122
327
.253
73
11
1
12
45
39
7
27
62
.323
.422
87.7
2021
122
223
.238
53
12
1
8
27
43
3
32
52
.327
.408
95.1
2022
84
178
.303
54
11
0
5
18
24
1
21
39
.375
.449
132.3
2023
70
137
.226
31
3
0
2
7
20
2
24
38
.335
.292
79.8
KBO 통산
(22시즌)
1919
5364
.274
1470
266
24
138
674
805
209
557
1114
.340
.410
99.2


4.2. 투수[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21
SSG
1

0
0
0
0
0.000
13.50
1
1
1
1
1
1
3.00
KBO 통산
(1시즌)
1

0
0
0
0
0.000
13.50
1
1
1
1
1
1
3.00

[1] 이 때문에 당시 김강민은 김성근의 양아들이란 뜻으로 세자라 불렸다.[2] 당시 김강민의 나이가 29살로 아시안게임에 발탁이 되지 못하거나 발탁이 되더라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현역으로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3] 이 타구를 못 잡았으면 순식간에 동점이 되고 선발투수 김광현의 승리는 날아가는 것이었다.[4] 머리 뒤로 공이 떨어지고 말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조명탑 라이트인 듯.[5] 빅보드에 김강민이 잡혔을 때 예쁜 공주님 축하드려요 라는 문구가 나온 것으로 보아 딸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6] 당시 이 둘은 선수협 이사였으며 원래 사적으로는 친한 사이라고 한다.[7] 당시 네티즌들이 정상호는 왜 설쳐서 잡았냐고 욕했다. 더군다나 둘이 알아서 터지든 냅둬야 하는데 문제는 김강민의 그 날 컨디션이 최악 + 아픈 상처를 더 깊게 입힌 것에 네티즌들의 2차 분노까지 간 것이다.[8] 박정배는 방출 후 질롱 코리아를 잠시 거쳤다 은퇴했다.[9] 영상에 나오듯 수비를 포기하고 잡지 않으면 꼼짝없이 홈런이 되는 타구였는데 김강민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잡아냈다.[10] 투수다.[11] 이 만루포는 팀의 역대 최다 득점의 시발점이었다. 1회초 무사 만루 상황에서 제이미 로맥한동민이 삼진으로 돌아서고 김강민마저 범타 처리된다면 사기가 떨어져 다득점은커녕 1회초 였기에 승리를 보장할 수도 없었다.[12] 선수 본인이 2023년 4월부터 시즌 후 은퇴를 암시하는 말을 종종 하고 있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고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는 더더욱 "지금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등의 말을 인터뷰에서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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