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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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의 직책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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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12
2016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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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KOVO컵 MVP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South Korea Women's National Volleyball Team

파일:한유미.jpg

한유미
韓有美 | Han Yoo-Mi

출생
1982년 2월 5일[빠른생일] (42세)
경기도 오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성호초등학교 (졸업)
수일여자중학교 (졸업)
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배구부 / 졸업)
경기대학교 (스포츠경영학[1] / 학사)
가족
아버지 한선택, 어머니 송문희, 여동생 한송이
신체
신장 180cm | 윙스팬 185cm | 발사이즈 265mm
포지션
아웃사이드 히터
배구 입문
초등학교 4학년
입단
1999년 현대건설 그린폭스
국가대표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1999~2012)
소속
선수
마산-수원 현대건설 그린폭스 (1999~2010, 2011)
대전 KGC인삼공사 (2011~2012)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4~2017)
GS칼텍스 서울 KIXX (2017)[2]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7~2018)
코치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2023~)
해설
파일:KBS 로고(1984-2023).svg / 파일:KBS N SPORTS 로고.svg 해설 위원 (2018.05.~ )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MBTI
ENTJ[3]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슈퍼리그 시절
2.2. V-리그 초창기부터 휴식기
2.3. 인삼공사 시절과 1차 은퇴
2.4. 현대건설 2기와 2차 은퇴
2.5. 은퇴
3. 은퇴 이후
3.1. 유튜브 채널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기록
5. 여담
5.1. 배구 선수 자매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레프트. 현재는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코치, KBS N SPORTS 해설 위원과,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여자 배구계를 대표하는 미녀 중 한 명이다. 별명은 배구코트의 패션모델[4], 유미여신 혹은 윰여신,[5] 제빵의 명장[6], 백발의 마녀[7].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드레드락과 탈색, 백발염색 등을 과감히 시도했다.

실업시절부터 현대건설과 함께한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V-리그 초창기의 간판스타 중 하나.

2001년 청대 세계선수권에서 득점왕을 받으며 화려한 국제무대 데뷔를 하였으나 2003년 국가대표 경기에서 입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긴 시간을 재활에 보내게 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8]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만 36세까지 현역으로 뛰며 롱런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슈퍼리그 시절[편집]


수원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출신으로,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한다. 입단 당시 81동기인 정대영과 함께 현대건설은 물론 대한민국 여자배구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에 증명이라도 하듯 200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주포로 활약, 한국 청대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본인은 득점상을 수상하였다.

이때의 호성적이 외국 배구 관계자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지 당시 NCAA 배구 여자부에 참가하는 미국 몇몇 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고 한다. 이는 81 동기 중에서도 에이스였던 정대영김사니도 마찬가지. 어느 학교에서는 한유미가 혼자 미국에 오면 힘들테니 친구 몇몇도 같이 오는 조건으로 제의했다고.[9]

슈퍼리그-V투어 시절 팀의 선배인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과 함께 현대건설의 5연패(1999-00 시즌~2004 시즌)를 이끌었다. 신인시절 구민정의 그림자에 가려 교체요원으로 출장했지만, 점차 성장하여 팀에서는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이 즈음 한국 여자배구 거포의 계보가 구민정에서 한유미로 넘어갈 것으로 보였는데...

2003년 여름에 열린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라운드 중국전에서 왼쪽무릎 인대 파열로 1년반 동안 개점휴업했다.[10] 경기 기사 이 부상 이후 제 기량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조별라운드에서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을 제치고 조 1위로 통과하였지만 한유미가 부상으로 아웃된 이후 파이널 라운드는 전패하였다.

한유미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국가대표팀은 김연경이 등장하여 자리를 잡기까지 약 2~3년의 기간 동안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장 차세대 에이스급 선수가 선수생활을 위협받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데다 바로 직전까지 주전급으로 활약하던 1970년대생 선배들의 선수생활 은퇴가 머지 않았기 때문.[11] 동생 한송이는 갓 성인무대에 올라왔으나 당시 최고참과 막내 사이를 이어줄 중간층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 당시 한유미의 부상에 관한 짧은 기억.


2.2. V-리그 초창기부터 휴식기[편집]


2004년 V투어를 끝으로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이 은퇴하며 본격적으로 팀의 간판이 된다. 하지만 무릎 부상의 여파로 공격 중심의 플레이를 하게 된다. 무리한 플레이를 팀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많이 막고 보호했다.

노장 트리오가 은퇴한 뒤 현대건설의 전력은 많이 약화됐다. 센터 정대영이 서브리시브를 받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한유미, 정대영 이 둘이 팀의 간판으로 열심히 헌신한 끝에 2006-07 시즌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고 도로공사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끈다. 그러나 챔피언전에서 흥국생명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2006-07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는데, 결국 원 소속구단인 현대건설에 당시 최고 금액인 연봉 1억 2천만원을 받고 남게됐다.[12] 반면 팀의 주축이었던 이숙자, 정대영이 FA로 풀려 GS칼텍스로 떠나게 되자 결국 한유미가 거의 혼자서 고군분투를 했다. 2007-08 시즌 현대건설은 꼴찌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한유미는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아직 한유미는 살아있다.'를 몸소 보여줬다.

한동안 팀이 어려운 가운데 있었으나 팀의 큰언니로 2009-10 시즌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KT&G에게 밀리며 준우승하게 되지만. 그리고 계약 만료로 오프시즌에 FA 자격을 다시 얻었다. 그런데 우승 과정에서 외국인 선수 케니 모레노, 양효진, 황연주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한유미와 프론트와의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외국진출을 선언했다.[13] 오프시즌에 몸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탈리아 리그 몇 팀의 트라이아웃에 응했고 다행이도 계약직전까지 갔으나 본인이 받는 연봉의 절반만 제의를 받았기에 국내에 남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현대건설과의 연봉협상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이후 다른 동유럽 리그[14] 팀에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기간 중 입단테스트 오퍼도 왔다고 했지만 결국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고 무적 신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대한배구협회 소속의 선수로 국제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KOVO 규정상 오프시즌에 연봉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선수는 다음 해에 뛸 수 없는 조항으로 1년을 통째로 쉬게 됐다. 그래도 쉬는 틈틈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 공부도 충실히 하면서 선수 생활 마무리를 준비하는 듯 했다.


2.3. 인삼공사 시절과 1차 은퇴[편집]


2010-11 시즌을 공쳐버리고 2011년 오프시즌에 현대건설과 FA 계약을 맺은 후 사인 앤 트레이드로 대전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이 흔쾌히 한유미의 진로를 도와줬다고 한다. 몬타뇨 혼자 가빈놀이를 하느라 대각에서 제대로 해줄 선수가 없던 KGC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고 결국 2011-12 시즌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15]에 큰 공을 세웠다. 본인에게는 V-리그 들어와서 첫 우승 경험.

한유미는 V-리그 컵대회를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은퇴 사유로 결혼 때문이라고 얘기했고 실제로도 결혼을 전제로 만났던 사람도 있긴 했지만[16], 그보다는 당시 인삼공사의 갑작스러운 선수단 변화 때문에 심정적인 부담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나무위키 낭독회에서 밝혔다. 당시 인삼공사의 박삼용 감독의 사퇴와 장소연의 방출, 김세영의 출산으로 인한 은퇴와 마델라이네 몬타뇨의 계약만료가 한번에 겹쳐지면서 고작 1년만 뛴 본인이 팀 리더를 맡기에는 너무나 버거워서였다고.

아무튼 2012 런던 올림픽이 한유미의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주전이 아닌 동생 한송이가 부진할 때 교체되어 들어가는 조커 역할을 했다. 출전한 경기 중에서는, 터키와의 조별 예선전 때 C속공 등의 빠른 공격으로 그날 지쳐보였던 주전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줬던 경기가 백미. 4세트를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다만 경기는 2:3으로 져 승점 1점을 얻는데 그치긴 했지만 국가대표팀이 모처럼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는데 보탬이 되는 활약을 했다.

다만, 배구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잠시간의 미국 유학 후에 2013년에 실업리그 부산시체육회에서 뛰었다. 부산시체육회 소속의 몇몇 선수와 함께 비치발리볼로 전향하여 2013년 해운대에서 열린 FIVB 세계비치발리볼 코리아 투어에 참가했다.깨알같은 배성재 이후 한유미의 해명으로는 비치발리볼 홍보 차 한 달 정도만 뛰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잠깐 뛰려고 참여한 것이며 당시 뉴스 인터뷰에서 말한 것(아시안게임까지 노리겠습니다)과 달리 실제로는 아시안게임 계획도 없었고 오래 뛸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2.4. 현대건설 2기와 2차 은퇴[편집]


2014년 5월 27일 친정팀인 현대건설로 복귀한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2013-14 시즌 팀의 외국인 잔혹사도 당연히 있었지만 황연주의 커리어 로우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세번째 공격 옵션의 부재, 그리고 최선참급 선수가 없어서 너무 어린 선수들이 즐비한 현대건설의 상황 때문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상기됐듯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투입이 가능했다는 점은 위안거리. 코보컵에서는 그나마 활약을 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실업리그와 프로리그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감독의 요상한 용병술처럼 불안한 공격과 리시브로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김주하, 황연주, 폴리 등의 체력안배를 위해 들어가는 형식의 백업이 되어버렸다. 대신 폐습을 끊은 것이 가장 큰 업적. 이때 한유미가 폐습을 끊은 이유는 자신이 비록 여자배구 쪽에서는 최고참에 속하지만 그것만 믿고 후배에게 막 대했다가는 그 후배가 동생인 한송이에게 그대로 내리갈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한다.[17][18] 어떤 이유에서든 폐습을 끊어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2015년 청주 코보컵부터는 플레잉코치로 전환되었다.

2015-16 시즌에 들어서는 장소연처럼 주전 출전을 하지 않는 대신, 주 임무는 팀 상황이 영 좋지 않거나 황연주가 부진할 때[19]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투입되고, 혹은 전위에 있는 로테이션 멤버들이 최악일 때 [20] 정미선을 대신해 들어가 공격력 강화를 목적으로 나온다. 이다영, 김주하와 더불어 현대의 더블스쿼드 운용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플레이오 1~2차전 흥국생명 전에서 자신의 손에서 끝내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며 그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게 해준 덕분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화 이후 현대건설에서의 우승을 이뤘다.

2015-16시즌 후 은퇴를 고려했지만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설득에 1년 더 뛰기로 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가 한유미를 왜 설득시켰는지 알 만한 장면들이 여러 번 발생하여 강제 전성기를 보내게 되버렸다. 그리고 백발마녀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허당끼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신다. 2016-17시즌 흑역사(...)로 길이 남을 배시브 후보선수의 부재, 그리고 팀 전술의 부재로 인해 2016-17시즌에는 고군분투했는데, 최근 7시즌 중 2011-12시즌 다음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8년 만에 한 경기에 20점을 넘게 올리는 등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삼공사의 돌풍 속에 결국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막지는 못했다.

V-리그 여자부 2017년 오프시즌 선수 대이동황민경의 보상선수로 GS칼텍스로 팀을 옮겼으나 하루 만에 김유리와 맞트레이드되어 현대건설로 돌아갔다. 보상 선수 지명 우선권이 있던 현대건설이 먼저 염혜선의 보상선수로 김유리를 지명한 다음 GS가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한유미를 지명했고 이 둘을 맞트레이드하는 형식이었다.응?[21] 이로써 동생인 한송이와 2012년 올스타 이후 5년만에 같은 팀이 되었지만[22] 하루 만에 도로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한송이는 그 직후 대전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되었다.

2017-18시즌 들어서는 시즌 초반 허리부상으로 인해 출전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5. 은퇴[편집]


결국 2018년 3월 19일, 한유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는데, 당일 현대건설이 IBK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예정되어 있었고, 1세트에 고유민이 부진하자 세트 중후반부터 투입되었다. 한유미의 투입으로 1세트 후반 눈에 띄는 반전을 보여준 현대건설은,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리시브와 디그에서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격까지 활로를 뚫어내는 데 성공, 경기 끝까지 선발 라인업을 지켰다. 특히 2세트와 3세트 결정적인 장면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10점을 기록하며 스스로 자신의 은퇴 시점을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3차전에서는 기업은행의 승리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이 날의 경기가 은퇴 경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018년 3월 28일 구단에서 한유미 선수의 공식 은퇴발표를 하였으며, 11월 2일 현대건설과 KGC인삼공사와의 경기가 끝난 후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3. 은퇴 이후[편집]


2018년 배구 네이션스리그부터 KBS N SPORTS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해설은 항상 비슷한 시니리오로만[23] 풀어나가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있지 못하지만 사측에서는 한유미를 1순위로 밀어주고 있다.

지도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 2020년에 교육대학원에 합격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대건설 배구단 유소년 배구교실과 OK저축은행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2018년 9월부터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 V리그 토크쇼에 이동근 아나운서, 김사니 해설위원과 같이 고정 멤버로 시작하였다. 2020년 2월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전 종목 라디오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가 올라왔고, 2020년 4월 10일 끝으로 마지막 방송을 했으며 6월 11일 유튜브로 옮겨서 다시 시작했다. 김사니 해설위원이 IBK 기업은행 코치 합류로 인해 공석이 생겨 새로운 멤버 이숙자 해설위원을 영입하여 같이 진행한다.

E채널노는 언니에 3회부터 출연 중이다.[24] 뒤늦게 들어갔지만 허당 캐릭터로 빵빵 터뜨리면서 숨겨진 예능 기질을 선보이고 있다.

파일:국유미.jpg
22-23시즌 후 VNL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세사르 에르난데스 감독을 보좌할 새로운 코치로 영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1. 유튜브 채널[편집]



파일:윰언니_유튜브_썸네일.jpg

윰언니[25]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컨텐츠
스포츠, 스트리밍, 브이로그
활동 시작
2020년 2월 28일[26]
구독자 수
9.72만명[A]
조회수
16,022,096회[A]

2020년 2월 28일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계정은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그냥 무편집본 직캠 몇 개정도만 올라온 정도였는데, 이를 리뉴얼해서 본격적으로 유튜브 활동을 개시했다. 보통 월요일에 영상이 올라온다.

주 컨텐츠는 당연히 배구 관련 컨텐츠. 기본적인 배구룰부터 시작해 관련 용어, 기록 보는 법 등 배구 관련된 것이라면 백과사전처럼 세세하게 알려준다. 선수 출신이다 보니 플레이와 관련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알지 못하는 부분도 집어주고 판정 기준, 트레이드 등 리그 관련 정보도 줄줄 푼다. 나름 현역 해설위원이라 말재주도 좋은 편.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현역 여자 선수들을 게스트로 부르는 실시간 스트리밍이다. 제일 만만한 한송이를 시작으로[27] 지금까지 배유나, 양효진, 박정아, 황민경, 김수지, 김희진, 염혜선, 백목화 등이 출연하였다. 게스트 출연이 확정되면 한유미 본인 계정의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해당 선수에게 하고싶은 질문을 받으니 관심있는 선수가 나온다면 이용해보자. 전부 성인대표팀 명단에 꾸준히 들었을 만큼 한가닥 하는 선수들이라 왜 인기 선수 위주로 섭외하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팬들이 있었는데, 한유미는 자기랑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들부터 섭외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섭외 대상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개인방송이다 보니 아무나 모셔오긴 힘들다는 듯. 청평 골짜기에 쳐박혀 정보통제가 철저한 GS칼텍스는 미리 구단의 승낙을 받아야 되고,[28]마케팅에 무관심한 흥국생명은 연락을 했지만 답이 없다 한다. 김연경을 살살 꼬셔서 구두로 출연을 약속받았다고 밝혔지만 소속팀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보니 아직 못 나왔다고.

2020년 7월 14일과 21일, 30일 업로드분에서 나무위키 낭독회를 진행했다.

황연주의 신혼집 방문 영상이 조회수 40만회를 넘으며 그야말로 대 히트를 쳤다.

2020년 10월 11일 황연주와의 브이로그 이후 시즌 시작과 대학원 공부 및 바쁜 스케줄 때문에 휴식기에 들어갔다.

2020-21시즌이 끝나고 2021년 4월 21일에 오랜만에 영상이 올라왔다.

2021년 6월 30일에 윰언니로 채널명을 변경하였다.

2021년 8월 7일에 구독자가 7만명을 넘겼고, 2021년 8월 9일에 8만명을 돌파했다.

마침내, 2021년 8월 28일 밤에 구독자 10만명(유튜브 실버버튼)을 돌파하게 되었다.

2021년 9월 25일에 커뮤니티 투표로 정한 구독자 애칭이 발표되었다. 묭이로 한유미의 애칭인 '윰'을 뒤집은 것이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 기록[편집]


  • 1999 FIVB U18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상
  • 2000 슈퍼리그 신인상
  • 2001 FIVB U20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상[29]
  • HILLSTATE 2006-2007 V-리그 기량발전상
  • 2006 KOVO컵 양산프로배구 MVP
  • 도드람 2017-2018 V-리그 베스트드레서상


5. 여담[편집]


  • 남자부의 김상우와 더불어 V-리그 최초의 득점자이다. 참고로 한유미는 1999년에 데뷔했고 김상우는 1995년에 데뷔했다.[30] 또한 V-리그 컵대회 여자부의 최초 MVP 수상자이기도 하다.

  • 동생과는 인상이 정반대다. 한유미의 경우에는 목소리에서도 느껴지듯 털털한 인상이 강한 반면, 동생인 한송이는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차분한 인상이 강하다. 다만, 연봉협상에서는 정 반대인데, 한유미는 외국리그 진출을 추진하면서 갈팡질팡했던 적도 있었지만, 한송이는 계약조건이 괜찮다면 시간 끌지는 않는다고 한다.

  • 선수 시절 김연경과 제빵의 명장 지분을 나눠가진 것과는 다르게 학창 시절에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기 주장을 잘하는 성격으로 바뀌게 됐다고.

  • 동생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호칭이 풀네임인 "한송이"다. 한송이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은 "너". 현실자매(...)

  • 노는 언니 출연분에서는 곽민정과 함께 유독 허당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 도토리묵을 쑤는 장면에서 진한 사투리를 쓰시는 어머니와 통화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전남 무안 출신이라고 밝혔다. 도토리묵은 어머니 말대로 안해서 실패

  • 2020-21 시즌에는 유독 한유미가 팡팡 인터뷰를 할 때 선수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많아서 '착즙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컵대회 때 자신의 첫번째 중계부터 정호영을 울리더니 김유리, 김하경, 이소영, 강소휘[31] 등 피해자(?)가 속출하는 중. 한유미가 아주 대놓고 유도를 하는데, 김유리 때는 질문하기도 전에 자신이 감정주체를 못 하고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서 주변이 울음바다가 되는가 하면, 살살 작업 들어가다 여의치 않으면 "부모님께 한마디 해달라"는 치트키멘트를 던지는데 이게 아주 효과가 좋다.

  • 선수 시절 악습을 없애는 데에 관심이 많았고 좋은 선배로서의 본보기를 많이 보였다. 영상

  • 머리스타일을 막 바꾸고 피어싱을 했던 것도 1~5년차에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몰아서 해본 건데, 이 역시 20대 초중반 또래들이라면 관심있어 할 화장, 염색, 귀걸이 착용 등을 금하는 선수단의 악습에도 소소하게 반기를 들었던 것. 영상 실제로도 백발마녀 시절에 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뛰었다 신인급 시절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는데도 '코트의 패션모델'이라는 별명이 불렸을 정도이니 그 미모를 짐작할 수 있다.

  • 양효진, 백목화, 마세롬, 신예지 신입 시절 한유미 주도 아래 귀를 뚫으러 갔다고 한다. 한유미가 신입 시절에는 5년차 부터 염색 및 귀걸이 착용을 할 수 있었는데, 본인이 최고참이 되니 그런 제한은 구시대 방식이라며 거의 웬만한 것은 풀어줬다고 한다. 백목화는 귀 뚫는 게 무서워서 안 뚫었다고

  • 얼굴이 상당히 동안이다. 도로공사의 정대영과 20-21시즌 후 은퇴한 김세영과 친구 사이인게 안 믿길 정도로 외모가 어려보인다.

  • 노는 언니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지' 게임에서 펜싱 선수 김준호를 향해서 비방을 해서 묵음처리 되는 일이 있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유미 선수가 사과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농구선수 전태풍은 한유미의 열애 상대로 추정되는 내용을 말하는 바람에 마찬가지로 묵음처리. 달력 판매 화에서는 김요한에게 전화를 했는데 김요한이 한유미에게 특정 선수 뒷담을 까는 게 방영되어 마찬가지로 묵음처리됐다.

  • 노는 언니에서 팔척귀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노는 언니에서 비타민 과다 복용으로 요로결석에 걸린 적이 있다고 한다.

  • 동생 한송이와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없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한유미(빠른 82)와 한송이(84)가 학년으로는 3학년 차이가 나 한유미가 졸업하면 한송이가 입학하는 상황이었고, 프로에 와서도 상기 설명했듯 V-리그 여자부 2017년 오프시즌 선수 대이동황민경의 FA 이적 보상선수로 서류상 GS칼텍스 소속으로 2일간 있었던 게 전부였다. 그로 인해 가족들이 못하는 팀을 응원하였으며, 물론 한송이도 개인의 능력의 뛰어났으나 팀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한 때가 있어서 주로 한송이 선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 한유미-한송이 자매는 배구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목들의 선수들과 친하다고 한다. 예전 2012 런던 올림픽 때 한유미, 한송이 그리고 최광희 코치가 장미란 방에 놀러가서 라면 세 개를 끓여서 같이 네 명이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런던 올림픽의 인연으로 장미란은 선수 은퇴 후 장미란재단 프로젝트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한유미-한송이 자매, 최광희는 시간이 나면 프로젝트나 행사를 도와준다고 한다. 그리고 재밌는 건, 이 네 명이서 라면을 먹고 있을 때 박태환도 장미란 방에 놀러왔는데, 박태환이 같이 먹자고 하긴 뻘쭘해서 같이 놀러온 물리치료사와 같이 장미란이 끓여준 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 남자배구 선수들과도 다양하게 친한데, 대한항공의 한선수랑 친하다고 한다. 한선수와 한선수 아내 그리고 동생인 한송이 선수와도 종종 4명이서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한다. 한유미가 중학생 시절, 초등학교 남자 배구부와 연습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 초등학교 남자애가 한선수였다고 한다. 한선수의 이름과 앞니 발치로 인해 앞니가 없어서 굉장히 인상깊었다고

  • 김연경은 국가대표팀 숙소 룸메이트로 양효진이랑 오랫동안 같이 썼는데, 그 이전에는 한유미랑 종종 같은 방을 썼다고 한다. 방을 같이 쓰던 시절 '도와줘! 리듬 히어로'라는 게임이 유행이어서 대표팀 선수들끼리 이 게임을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했다고 한다. 순번이 돌고돌아 경기 시합 하루 전날이 김연경-한유미 방이 리듬히어로의 순번이 되었다. 경기 시합 전이라 빨리 자야 돼서 게임을 얼마 하지 못해 자야된다고 한유미가 베개 아래에다 놓고 잤다고 한다. 슬슬 잠을 자던 찰나에 김연경이 "언니 나 한 번만 하면 안돼?" 한유미는 "내일 시합이니 빨리 자야한다" 그러나 김연경은 그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서 빨리 리듬히어로 내놓으라고 한유미랑 베개 싸움을 우당탕탕 했다고 한다. 김연경과 한유미는 나이차이가 6살인 것을 감안해봐도 김연경의 담대함이 놀랍다.한유미가 말하기를 김연경을 보면 그 때 싸웠던 기억이 가끔씩 난다고

  • 지금 현대건설의 주전 세터인 김다인이 신입시절 현대건설의 최고참이 한유미였는데, 겁없는 신인인 김다인이 최고참인 한유미에게 다짜고짜 "언니 저 밥좀 사주세요" 이랬다고 한다. 밥 사달라고 해서 한유미는 밥을 사줬는데 그 날 김다인이 집안에 일이 있어서 집에 가버렸고, 이영주김주향을 밥을 사주고 같이 먹었다고 한다.

  • 지금의 활달한 모습과 다르게, 학창시절에는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일례로 초등학생 시절 슈퍼마켓에 혼자 가지 못했고, 아빠가 한유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너가 먹고 싶은 것 사와라! 그러면 10만원 줄게" 이랬는데도 아빠의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했다고 한다.

  • 한유미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역사상 은퇴식을 두 번 한 진기록을 갖고있다. 그로 인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2018년 현대건설 배구단 2차 은퇴식을 본 이모가 다짜고짜 한유미 엄마에게 전화를 해 "유미 해설위원 한 지 얼마 안됐는데 또 해설위원 은퇴를 하냐"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 한유미가 인터뷰 하면서 김연경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김연경 선수가 잘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한유미 왈 "타고난 것도 있고 노력도 있지만, 연경이는 저희 엄마가 경기 보러 오시면 저에게 언니 엄마 오셨네", " 다들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에 준비운동하거나 정신이 없는데 연경이는 웜업존에 누가 있고, 경기장에 누가 있고, 해설위원석에 누가 있고 그런 걸 일일이 유심히 본다" 그러면서 한유미는 김연경은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남다른 시야를 갖고있다고 이야기 했다.

  • 배유나가 국가대표팀을 어린 나이에 승선하여 한유미와도 방을 자주 썼고 방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때 한유미가 배유나 별명을 선배들이 시키는 일 웃으면서 빠릿빠릿하게 잘한다고 '배하녀'라고 지었다고 한다.[32]

  • 배유나 결혼 선물로 다이슨 헤어드라이기를 선물해줬다고 한다.

  • 한유미 현대건설에 있는 시절에 염혜선을 기분 좋을때는 "염" 기분이 안 좋을때는 "야" 불렀고, 정미선을 기분 좋을때는 "미자야" 기분이 안 좋을때는 "추추야"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 현대건설 있던 시절 정대영한유미는 둘 다 공격욕심이 많아서 세터인 이숙자에게 "공 좀 많이 달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정대영 or 한유미 한쪽으로 몰아주면 한쪽은 삐지고 한쪽은 화내고 그래서 정대영과 한유미는 많이 싸웠다고 한다. 이숙자는 중간에서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래서 삐친 정대영이 이숙자를 꾀어내어 첫 FA 때 같이 GS칼텍스로 이적했다 카더라(...) 지금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도 추억이 됐고, 친한 친구라고

  • 노는언니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나왔는데 코보컵 준비로 인해 프로그램에 하차를 하게 되어, 그 자리를 한유미가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오랜생활 하던 박세리는 V리그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한유미를 봐도 "트레이너이거나 MC를 잠깐 봐주시는 분"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 한유미-한송이 자매는 어렸을 때 피부가 까맣다고 한다. 한유미는 프로팀 입단하면서 많은 화장품을 바르면서 피부가 백옥피부가 되었는데, 이걸 본 한송이가 "그래, 언니랑 나랑 같은 유전자고, 화장품만 잘 바르고 세월만 지나면 나도 언니처럼 하얘지겠지" 하고 화장품을 정말 꼼꼼히 발랐다고 한다. 본인이 원하는 백옥피부 보다는 건강한 피부로 바뀌어 상당히 좌절을 했다고 한다.

  • 배구를 시작한 계기는 키도 크고 친구가 배구부 같이 가보자고 해서 배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권유한 친구는 그만두고 본인이 이렇게 오래 배구를 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숙소에서 있으면 항상 가방 및 물품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머리 하러 미용실에 갈때면 "이런 머리는 어떻게 하냐" 등 헤어 디자이너 언니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본인도 배구를 그만두게 되면 헤어 디자이너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프로생활을 10년 이상 하기도 힘든데 19년을 한 것은 정말 대단한 거다

  • 숙소생활 할 때 숙소 가구 배치를 여기로 바꿨다가 또 질리면 저기로 바꿨다가 이랬다고 한다.

  • 배구선수 선배, 후배들과 두루두루 친한데, 후배들 중에는 제일 편안한 후배가 양효진, 배유나라고 한다.

  • 한유미가 선수시절 얼굴이 수척해보인다고 하자, 최광희가 고가의 홍삼 제품을 한유미에게 사줬다고 한다.최광희 왈 홍삼 제품을 돈 주고 사 본 적은 처음이라고[33]

  • 여자배구 선수들은 은퇴 이후 거의 대부분 유소년 지도자로 진출한다. 여기서 잘 풀리면 프로 코치, 해설위원을 하게 되고 여기서 더 잘 풀리게 되면 프로 감독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로 코치나 해설위원은 난다긴다하는 프로 선수들 중에서 국가대표로 명성을 날린 선수들이 하게 된다.
    • 프로 코치는 세터 코치를 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포지션이 세터이여야만 한다. 이도희, 이수정, 김사니, 이효희가 해당된다. 다른 포지션의 코치들은 서브 및 스파이크를 잘 때리는 은퇴한 남자배구 선수들이 맡는다.
    • 해설위원 또한 안정적인 발음과 경기 흐름 파악 및 방송 센스 3박자 맞아야 하기 때문에 되기가 굉장히 힘들다. 박미희, 이도희, 장윤희, 장소연, 이숙자, 김사니, 한유미가 해당된다.
    • 여자배구 프로감독은 정말 되기 힘든데,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조혜정, 박미희, 이도희 3명 밖에 안된다.
    • 이외의 진로는 사업 및 방송 쪽인데,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바로 한유미이다. 은퇴 후 일반적인 루트에서 벗어나 방송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인물은 한유미밖에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다.

  • 한유미는 god손호영을 좋아하고, 이숙자는 윤계상을 좋아해서 둘이 돈 모아 가습기를 사서 god 숙소에 보내줬다고 한다.

  • 1980년대생 이전의 여자배구 선수들은 부상 및 결혼으로 인한 출산으로 인해 백이면 백 20대 후반에 은퇴했다고 한다. 이효희, 이숙자, 정대영, 한유미, 김사니는 속된 말로 군번 하나는 기가 막히게 풀린 군번이라고 할 수 있다.[34] 20대 중반부터 최고참 노릇을 했으니 장점도 있었겠지만 단점으로는 최고참의 부담감이 실로 막대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현대건설에 김다인의 나이에 최고참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해 한유미, 김사니는 V리그 최고령 선수인 최광희에게 본인들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상 및 결혼으로 인한 출산도 있었지만 10년전만 해도 나이가 20대 후반~30대 초반만 되면 노장이라고 신인 및 저년차 선수 육성을 위해 피의 숙청으로 은퇴한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 시절 배구관계자의 피셜에 의하면 국가대표를 오래한 선수들은 그나마 이 피의 숙청에서 많이 비껴나갔으며, 가면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고 배구하는 인원도 없어서 한유미가 오래하게 된 것이다. 배구 잘한다는 박경낭, 윤혜숙, 임효숙, 김민지도 피의 숙청에 자유로울수 없었으며 자연스레 은퇴하게 되었다. 한유미를 비롯하여 한송이, 정대영, 김세영, 이효희, 김해란, 이숙자, 김사니 등 30대 중 후반까지 선수생활을 한 선수들 보면 하나같이 국가대표를 오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배들의 덕택에 여자배구 선수들간에 '30대 초중반까지는 한창할 때'라고 한다.

  • 후배 선수들이 말하기를 보통의 고참 선수들 치곤 많이 다르다고 한다. 대개 고참 선수들은 본인과 프로생활을 같이한 나이가 엇비슷한 선수들끼리 같이 다니는데 비해 한유미는 신인부터 최고참까지 두루두루 챙기고 잘 다닌다고 한다. 신입 및 막내선수들과도 농담도 잘하고 밥도 잘사준다고 한다.

  • 20대 초반 독일로 무릎수술을 혼자 하러갔는데, 혼자가서 외롭고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두 가지 놀라운 게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무릎수술하고 나왔는데, 한국은 수술하고 나면 미음 및 죽 그리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주는데 독일은 그냥 딱딱한 빵을 줘서 놀랐고, 또 하나는 한국은 수술하고 나서 아프면 "무통주사 놔주세요" 이야기하면 놔주는데 독일은 그런 게 안 된다고 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 황민경이 현대건설로 이적했을 때 회식을 했는데, 한유미가 술 못 먹는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다고 한다. 황민경은 한유미가 주당인줄 알았다고.

  • V-리그 2010년대 초반에 자매로 유명했던 선수가 한유미-한송이, 김수지-김재영, 한은지-한수지 자매 였다. 김수지와 김재영이 자매치곤 많이 안 닮아서 한유미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가끔씩 했다고 한다. "수지와 재영이가 안 닮았고, 수지는 우리 피랑 많이 섞여있는 것 같고, 재영이는 한은지-한수지 쪽 피가 많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또한 배구 관계자들 가끔씩 한유미와 비슷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일찍이 고참이 되는 바람에 책임감과 중압감으로 인해, 감독이 "이젠 에이스역할보다는 후배들 서포트해주고 이런 역할을 하라"했고 구단 측의 연봉 제시도 불만족 스러워서 은퇴를 했다. 1차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시절 카페알바[35]도 해보고, 새벽 일찍 일어나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한유미 왈"이때 인생에 있어서 힘든 시기였지만 겸손이란 것을 배웠다. 새벽에 출근하는 회사원, 학원에 일찍나와 수업들으러 오는 수강생들..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구나.. 내가 배구 힘들다고 짜증과 투정을 부렸는데"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2012 런던 올림픽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선수촌에 나타났는데[36] 한유미랑 선수들이 밥먹다가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보려고 뛰쳐나갔다고 한다. 선수들과 사진을 찍은 이후, 한유미는 대표팀 단톡방에 자랑삼아 올렸더니 김연경과 양효진이 카톡을 보고 진짜 미친듯이 달려가서 미국 농구선수들과 사진을 간신히 찍었다고 한다.

  • 한유미 공격중에 트레이드 마크는 '직선공격'이다. 배구를 보다보면 공격수들은 거의 대각을 때린다. 직선공격이 어려운 이유는 세터와의 호흡이 잘 맞아야하고 그리고 잘못 때리면 아웃당하는 것이 일상이기때문에 선수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공격이기도 하다. 세월을 올라가 선배인 장윤희 또한 직선공격을 굉장히 잘 썻다. 그래서 한유미 신입 시절부터 장윤희가 한유미를 눈여겨 보았다고 한다.

  • 배구시합 하기전에 선수들 간에 관례라고 하기엔 뭐한데 한유미가 배구를 30대 후반때까지 하다보니 본인 보다 거의다 후배여서 현대건설 팀으로 상대팀이 인사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대 건설 후배선수들이 편했다고 한다.상대 팀에서 현대건설 팀으로 인사오니 그때 후배들도 상대 팀 선배들한테 인사했다고 물론 예외의 팀도 있었는데 이효희가 있는 도로공사와 정지윤이 있는 GS칼텍스였다고 두 선수가 한유미 1년 선배

  • 런던올림픽 시절 이숙자와 본인과 정대영, 김사니가 최고참급이었다. 1년 후배인 임효숙도 짬에서 밀리진 않았으니 V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고 고참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김연경한테 맞췄다고 한다. 김연경이 2012년 한창 버스커버스커 노래에 빠져서 라커룸에서도 듣고, 버스에서도 몇백번은 들었다고 한다. 이숙자와 한유미 왈 "연경이 컨디션이 좋아야 우리가 성적이 좋아진다고, 연경이가 언니 나 이거 해도 돼? 하면 그래 하고싶은 것 다해라" 이렇게 했다고 한다.실제로 국가대표 분위기 메이커인 김연경은 최고참인 이숙자부터 막내인 김희진까지 성대모사를 하며 사람흉내를 잘했다고

  • 김세진 감독과 오랫동안 친분이 있으며,예전에 김세진과 지인들끼리 밥먹다가 개그우먼인 신봉선과 몇 번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봉선과 친해져서 여러 번 개그콘서트를 보러갔다고 한다. --신봉선 신인시절-

  • 김사니랑 친해진 계기가 있는데, 예전에는 싸이월드(SNS)하다가 김사니가 한유미에게 "유미야, 우리 나이 먹어서도 친하게 지내자 슈퍼주니어-U 노래 좀 선물로 보내줘" 이렇게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한유미가 우스갯소리로 "너 되게 어이없다" 이렇게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계기를 비롯하여 국가대표팀 출전 기타 등 등 더욱더 친해졌다고..지금의 사이는 어떤지 모르겠다.

  • 하계올림픽이나 동계올림픽 숙소가 배정되는데 올림픽 기념 이불은 다들 이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선수들이 올림픽 기념 이불은 가져가도 상관없다고 한다. 한유미는 런던올림픽 때 메달은 못 땃으니 이불이나 챙겨오자고, 이불의 부피가 커 이것저것 버린다고 고생을 좀 했다고 한다. 지금도 올림픽 이불을 간직하고 있다.

  • 노는언니에 나와 굉장히 허당미와 멍청미를 보여주지만 한유미 첫 FA(2007-2008)때 억대 연봉을 1위를 찍은 선수 중 하나이다. V리그 출범한 이후로 한유미를 비롯하여 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 5명 밖에 없다. 그니까 설명을 하자면 신입부터 6년 간 팀에 있다가 FA자격이 주어지는데 선배, 후배들 다 제끼고 1등 먹은거다

  • 처처크루 중 한 사람인 염혜선이 현대건설 배구단에 처음 들어왔을 때 최고참이 한유미였다고 한다. 염혜선은 배구를 시작하면서 선머슴머리('상고머리')를 했는데 최고참인 한유미가 헤어, 염색이런 것에 터치가 없어서 정말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한유미가 염혜선에게 자주 했던 말이 "넌 그만 좀 먹어"라고 많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염혜선은 굴하지 않고 많이 먹었다고 한다.

  •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팀 모임의 회장을 맡고있다.

  • KOVO 경기감독관으로 재직 중인 박주점 전 감독이 도로공사에서 코치 및 감독을 오래했는데, 한유미가 도로공사랑 시합을 하게 되면 박주점 감독을 보면 '아빠와 비슷하게 생겨 아빠 보는 것 같다고'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 양효진, 김수지를 비롯하여 현대건설로 입단한 신입생들은 젓가락질을 못하면 본인이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양효진, 김수지는 젓가락질을 못해 한유미한테 혼나는 바람에 아인슈타인 젓가락으로 사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김수지, 양효진은 신입생이기도 했고 그 시절 한유미가 왕고언니여서 군말없이 따랐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양효진, 김수지는 젓가락질을 할 때면 유미 언니가 생각난다면서 예전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정말 고맙다고 회고했다. 젓가락질 고친 걸 본 부모님들이 굉장히 좋아했다고

  • 2022-23시즌 올스타전에 해설위원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출장했다. 같이 중계를 맡았던 이호근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인삼공사 시절이었던 2011-12시즌 올스타전에서 1세트에 세트 퇴장을 당했다고 한다.[37][38][39] 심지어는 4세트 남자부 경기에서 중계를 하는 도중에 몰래 빵을 먹다가 그만 이호근 아나운서에게 들켜버렸다.

  • 2023년 2월 21일, 대한배구협회 배구인의 밤 행사에서, 두 자매의 부모님 한선택, 송문희씨가 장한 어버이상받았다.

5.1. 배구 선수 자매[편집]


동생 한송이와 함께 여자배구에서 자매 선수로 유명하다.[40] 아무래도 자매인 데다 포지션마저 동일해 자주 비교되는데, 한송이는 언니보다 차분한 반면, 한유미는 털털한 스타일이다. 실제로 경기가 안 풀릴 경우 한유미는 제빵을 비롯한 신경질을 부리는 데 비해, 한송이는 무한 범실 루프에 빠지게 된다(...)

한유미-한송이의 고등학교 직속후배인 김연경이 가장 부러워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큰언니가 배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배구선수가 되었는데 정작 큰언니는 배구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정작 한유미 본인이 부러워하는 선수들은 이재영-이다영 쌍둥이인데, 한유미와 한송이는 둘 다 포지션이 레프트이기 때문에 국대에서 어느 한 선수가 부진해서 서로가 교체될 경우 둘 다 서로 서먹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재영과 이다영은 둘 다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에(이재영은 레프트, 이다영은 세터) 그럴 걱정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김연경이 2006년 성인 국가대표에 합류하게 된 이후로는 동생 한송이와 동시에 레프트 주전으로 뛸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김연경의 대각에 설 윙스파이커 경쟁을 해야만 했던 처지. 위에 언급되었듯이 못하면 서로 교체가 되기 때문이다. 김연경의 데뷔 시절에는 한유미가 당연히 우위에 있었으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전후로는 한송이가 김연경의 대각자리에 서며 팀의 2번 공격옵션으로 정착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세계예선전이 끝난 직후 개최된 월드그랑프리에선 김연경이 휴식차 빠지게 되어 동생 한송이와 함께 오랜만에 주전으로 함께 활약했다.

동생에게 노는 언니, 해설위원 자리 다 못 준다고 한다. #


6. 관련 문서[편집]


[빠른생일] 1년 일찍 입학하여 1981년생인 정대영, 김세영 등과 친구로 지낸다.[1] 참고[2] 보상 선수로 이적했다가 하루 만에 김유리와 트레이드로 친정으로 돌아갔다.[3] 출처[4] KBS N 스포츠의 허주 옹이 한유미 데뷔 시절에 붙여준 별명이다.[5] 디시인사이드배구 갤러리가 생긴 이래 제일 먼저 인증했다. 이 덕택으로 배구 갤러리에서는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물론 디시 배갤 인증 이전부터도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여신으로 통했다.[6] 이것은 짤이 하도 많아서 알 사람은 다 아는 별명이다. 김연경과 함께 한때 제빵의 2대 지분 보유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선수생활 황혼기에 현대건설에 복귀하고 나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7] 파격적인 초싸이언 머리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8] 청대 시절 보여줬던 파괴력과 2003년 성인 국대 합류 후 한국이 브라질과 러시아를 꺾는 등 이변을 연출했던 것을 미루어 보아 부상이 아니었다면 2000년대 중후반 김연경과 함께 대한민국의 주전 레프트를 맡을 수도 있었던 선수.[9] 한유미의 유튜브 채널 '나무위키 낭독회 2편'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하지만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집안이 IMF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지라 한유미는 유학 대신 실업팀에 입단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10] 그 전부터 이미 무릎과 허리가 안좋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구협회의 무리한 차출로 인해서 결국 대회에서 부상을 당하였다. 한유미가 국가대표팀 전력에서 이탈될 때 임유진(당시 도로공사), 이정옥(당시 LG정유) 등의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했으나 임유진 역시 무릎인대 파열 부상으로, 이정옥은 포지션상의 문제(윙리베로에 가까운 플레이스타일)로 한유미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던 구민정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11] 상기했듯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구민정이 한유미의 부상으로 피치못하게 국가대표팀에 복귀한데 이어, 최광희 역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사실상 국가대표팀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12] 한유미의 유튜브 채널 '나무위키 낭독회 1편'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길, FA 자격을 얻을 당시 외국리그에 진출하고 싶었던 차, 에이전트를 통해 유럽의 모 클럽에서 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건설에서 당시 최고 금액을 제시하며 한국에 남았다고.[13] 위에 언급됐듯, 어릴 때 미국의 대학교로 유학 가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언젠가는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14] 한유미 기억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리그였던 것 같다고.[15] 참고로 인삼공사의 이전 2번의 우승은 통합우승이 아니었다.[16] 그러나 본인 트윗에서 약혼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미 결혼 날짜를 잡아놨지만 끝내 결혼 실패한 거라고. 이 때문에 다음에는 결혼이 확정나기 전까지는 결혼 날짜도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17] 다만, 이 즈음 V-리그에서 한유미와 한송이 사이에 현역선수는 남지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리갈굼은 불가능했던 것.[18] 스포츠머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악습을 끊으려고 노려했던 이유를 설명했는데, 중학생 시절 후배들에게 집합을 걸 때 으레 후배들을 야단쳤던 행동이 후배들에게 대물림되고, 이후 자신이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올 동생에게 영향을 미쳤던 걸 경험했던 게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답했다.[19] 2015-16 시즌부터 라이트 연습을 했다고 한다. 오오...[20] 정미선-염혜선-김세영이 다 전위에 있으면 김세영의 헛방과 정미선의 낮은 공격력으로 인해 메인 옵션인 황연주와 에밀리 하통의 공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 후위공격말고는 답이 없다. 양효진은 후위는 기대 못 하는데다가 그 땐 벤치에 있을 테고...[21] 이는 황연주김연견을 뺏기지 않기 위해 현대건설 측에서 머리를 쓴 것으로 보인다. 보호선수 구성상 둘 중 하나는 풀리기 마련이고 둘 중 하나라도 뺏긴다면 전력상 큰 손실이 있을수 밖에 없으니 지금 당장 GS칼텍스가 급한 센터를 지명한뒤 이를 트레이드 형식으로 GS칼텍스에 보내는 식으로 사전 협상이 끝난듯 하다. 이로써 현대는 황연주, 김연경을 지키는 동시에 한유미의 은퇴도 친정팀에서 할 수 있고 GS칼텍스는 즉전감 센터를 얻어 고생하던 센터문제를 해결했으니 윈윈 트레이드인 것. 그러나 결국 끝끝내 한유미는 동생 한송이와 한 팀에서 뛸 기회를 잃게 된다.[22] 배구 자매들은 대부분 적이 되지만 흥국생명 김수지-김재영이 한팀이었지만 김수지가 기업은행으로 가면서 적이 되었다. 그러나 김재영은 복귀한 시즌이 끝나고 다시 은퇴했으며 이후 2018-19시즌부터 IBK기업은행 통역으로 채용되면서 선수-스태프 사이지만 다시금 한 팀으로 되었다.[23]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요 등[24] 1회와 2회에는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출연했지만 둘이 소속팀의 겨울 시즌 준비 훈련에 들어가면서 대신 바뀌었다.그리고 이것은 그야말로 절묘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25] 2021년 6월 30일 한유미의 배구TV에서 윰언니로 채널명을 변경하였다.변경 이유는 배구 말고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26] 가입일은 2018년 6월 8일.[A] A B 2022년 2월 23일 기준[27] 다만, 한송이는 게스트와의 방송에서 나름 보조진행자로 언니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28] 구단의 승낙을 받아서 김유리가 출연했다.[29] Women's Junior World Championship 2001 - Best Scorers[30] 김상우는 V-리그 창설 이후 세 시즌 만에 강제로 은퇴당했으나, 한유미는 한 번 은퇴한 후 다시 현역으로 돌아왔다.[31] 강소휘는 인터뷰 중 울린건 아니다.한유미가 강소휘 표정이 안좋아서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네 괜찮아요' 대답하고 갑자기 울어서 당황했다고 한다.영상[32] 심지어 대표팀 선수촌탐방에서 선수들끼리의 대화 도중 담당PD가 배유나 역시 이상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자, 한유미는 아, 돌+I?라고 언급했다고.[33] 참고로 최광희는 인삼공사에서 10년 가까이(1999-2007) 뛰었다.[34] 81동기(+이숙자, 이효희) 바로 윗대 선배들은 구기란을 빼고는 IMF 여파로 자리도 못 잡고 일찌감치 은퇴해버리는 바람에 이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윗세대는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 최광희이다. 그런 구민정, 강혜미도 딱 30을 넘자마자 은퇴를 했고, 최광희도 30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허리디스크 후유증으로 33세에 은퇴를 했다. 40 넘어서도 프로 생활을 한 장소연이 특이한 케이스일 정도.[35] 이력서를 써내라길래 관련 경력으로 쓸 게 없어서 배구 프로팀과 국가대표 경력을 써서 냈더니 사장이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와서 깜짝 놀라서 이런 이력서는 처음봤다며 내일부터 나오라며 채용했다고 한다. [36] 미국 농구 국대팀은 당시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었다.[37] 심판진들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했다가 세트 퇴장을 당했다. 심지어는 국제대회에서도 항의했다가 경고를 받았었다고.[38] 이를 듣고 있던 이호근 아나운서가 원래 올스타전이 성스럽고 즐거운 축제의 장인데, 심판진들에게 얼마나 따졌으면 세트 퇴장을 당하고 그랬냐?며 일갈했다.[39]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세진 위원 역시 감독 시절이던 2015-16시즌 올스타전에서 現 삼성화재 감독을 맡고 있는 김상우에 의해서 퇴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심지어는 2016-17 시즌 올스타전에서는 최태웅 감독을 대신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 끝에 v스타 팀에게 1점을 내줬다. 당시 김상우 감독에 의해 이상한 사람도 되어봤단다.-분명 김세진 감독은 K스타 감독인데 지금 V스타 선수들이랑 하이파이브를 했어요.-[40] 한때 한유미-한송이 사이에 자매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자매의 극성팬이 퍼트린 유언 비어로, 실제로는 한유미-한송이 두 자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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