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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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초명은 용구(用九).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시호는 익정(翼貞)이다. 서매수, 김조순, 남공철, 이상황, 심상규 등과 함께 노론 시파 실세 중 한명이며 순조 때 영의정에 이르렀다.
훈구파 대신인 좌의정 한확의 후손이며, 노론의 핵심인 영의정 한익모와도 가까운 친척이었다. 정조의 신임을 받은 노론 대신 중에 한명이다.
2. 생애[편집]
영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해서, 정조 때 문과에 급제했다. 사간원 정언, 홍문관 응교와 부사과를 지내고 이후 이조참의와 사간원 대사간, 이조참의, 동부승지,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다.
후에 재상에 오르고 순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의정부 우참찬, 좌참찬, 빈전제조, 예조판서, 이조판서, 사헌부 대사헌, 수원부 유수, 실록청 당상, 전라도관찰사, 약방제조,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1821년 영의정으로 승진하고 효의왕후의 장례를 치른 다음 사퇴하였다. 시호는 익정(翼貞)이다.
서매수, 남공철 등과 노론 시파 세력 중 한명이다.
[1] 양절공파(襄節公派)-공안공파(恭安公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