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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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취향
3. 기타
4. 일화



1. 개요[편집]


한동훈에 관한 여담을 다루는 문서.


2. 취향[편집]


책, 음악, 영화 등
  • 감명 깊게 읽었거나 책상 위에 놓여있다고 밝힌 책이다.[1]
저자
제목
비고
허먼 멜빌
모비딕
[2]
오에 겐자부로
하마에게 물리다
[3]
레이먼드 카버
단편선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4]
밥 딜런
BOB DYLAN 가사집 원서

코맥 매카시
핏빛 자오선

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론 처노
알렉산더 해밀턴 전기

엘릭시르
미스테리아 44호
격월간지[5]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
[6]
주대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7]
최지수
전세지옥
[8]
  • 세상은 원자와 빈 공간뿐, 나머지는 의견이다.[9]좌우명이라고 밝혔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 를 감명 깊게 봤다고 한다.[10]


  • 모비딕》 중 항해사 스타벅이 말한 용기(만용)에 관해 쓴 구절(I will have no man in my boat who is not afraid of a whale.)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

  • 유럽 출장길 손에 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화제가 되었다. 예스24 기준 출장일 전후 5일간 판매율을 비교하면 무려 2233.33% 증가했다고 한다. #

  • 다이어리에 붙은 꼬부기 스티커가 화제가 되었는데 초등학생이 편지와 함께 보냈다고 한다.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생각도 많이 하면 어떨까 싶다, 살면서 취향이라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만들어진다.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취향 말이에요'라고 '지금 읽으면 지루할 게 틀림없지만 1851년에 나온 책이고, 172년을 살아남은 책이니 서두르지 말고 나중에 손에 잡힐 때 한 번 읽어 보라'며 '좀 지루한 게 인생의 본질인 것 같기도 하다'라고 모비딕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

  • 바나나맛우유를 들고 있는 사진이 포토뉴스임에도 댓글이 2000개가 넘을 정도로 화제였다. '빙그레, 한동훈 장관이 오른손에 잡은 이후 다음 거래일에 소폭 상승 중'이라는 내용의 증권가 지라시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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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질적으로 술을 입에 대지 못하고 평소 제로콜라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 한 인터뷰에서는 술을 따라주면 거절하면서 술 안마시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것도 싫고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선배랍시고 유세 떠는 꼴도 보기 싫어서 상가(喪家)에도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 반면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때는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곧바로 대구의 합동분향소를 찾아갔다. #

  •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


  • 사무실과 집에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고 턱걸이딥스 운동을 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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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등
  • 취미는 음악 감상, 영화 감상이다. 게임도 틈틈이 즐긴다고 한다. #

  • 중학생 시절부터 기원을 다녔다고 한다. 바둑 5급 정도의 실력을 갖고 지금도 취미로 둔 것으로 알려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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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골프, 당구 등을 좋아하지 않는 대신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초등학생 시절 자신의 취미에 대해 작문하는 시간에 제목을 ‘오디오 갖고 놀기’라고 쓰는 등 초등학교 때부터 팝송을 즐겨들었다. 35년 지기인 A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비틀즈를 정말 좋아했고, 지미 헨드릭스레드 제플린도 좋아했다고 한다. 헤비 메탈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같이 듣기도 했는데, 모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었다. 악기도 여러 가지 배웠는데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건 플루트 정도라고 한다.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 SNUPO의 1기 부원이었다. #

  • 지인[12]은 “동훈이는 음악 감상을 정말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미국 출장을 다녀오실 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음반을 많이 사오셨고 아들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시기도 했다”라며 “재즈, 블루스, 록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들었고 성인이 된 후 만날 때 가장 많이 갔던 장소가 이태원의 재즈바 ‘올 댓 재즈’였다”라고 말했다. #


  • 서울남부교도소 내 ‘만델라 소년학교’에 수감돼 있는 소년수들에 답장을 보내며 “라디오 음악 방송이니까 제가 좋아하는 음악 한 곡 틀어달라고 부탁했다”며 신청한 곡은 영화 ‘어바웃타임’의 OST인 지미 폰타나의 곡 ‘il mondo’이다. #
패션 등
  • 패션 감각이 엄청나게 좋다는 평가가 많다. 훤칠한 키에 남다른 비율의 날씬한 체형으로 체격이 좋으며, 외모 또한 상당히 동안이라서[13] 패션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것. 2022년 1월 유시민의 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날 코트, 머플러, 뿔테안경에 서류 가방까지 한동훈의 패션이 화제가 되었다. 법무부장관 지명 이후로는 그가 입고 나오는 옷부터 안경까지 패션 아이템 하나하나가 주목받고 있다. 수트핏이 좋기로 유명하며 패션 분석 기사가 자주 나온다. 정장 차림과 넥타이와 넥타이핀, 카라핀, 커프 링크스 등 액세서리도 관심을 받는다. 착용한 시계 및 시곗줄 또한 관심을 받았다. 본인의 아이템들은 모두 직접 고른다고 한다.[14]





  • 넥타이를 착용할 때는 넥타이 중간의 주름인 딤플을 갖춘다.[15] 유명 정치인 중 딤플을 잘 갖추어 넥타이를 맸던 사람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이 있다. #


  • IAB Studio의 후드티를 입은 사복 패션이 화제였다. 아트디렉터 김한준의 SNS에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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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Phone 13 Pro Max[16], MagSafe 가죽 카드지갑, CASETiFY 케이스를 사용한다. #

  • 안경은 Oliver Goldsmith[17]의 vice consul 이라는 제품을 주로 착용 중이고, Cutler and Gross[18]의 0772 BOB 50 안경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1970년대 수동시계인 페바 점프 아워, CITIZEN의 ‘에코 드라이브 밀리터리’ 그린, 1939년에 나온 스위스산 군용 시계로 추정되는 베이지색 나토 밴드를 끼운 빈티지 시계등을 착용한다. #

  • Sharpie[19]의 탱크 형광펜을 사용한다. ‘한동훈 형광펜’이란 호칭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

3. 기타[편집]


  • 필체가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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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자들로부터 '조선제일검(朝鮮第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20][21]

  • 한동훈의 언어는 발언이 직설적이고 임팩트가 강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파장이 크다고 한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한동훈 언어의 원천은 독서라고 말한다. 한동훈은 평소 책을 많이 읽고 그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차장 검사로 일한 시절 집무실을 가 본 이들은 한동훈이 갖고 있는 책의 숫자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책은 서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책상 옆 여러 곳에 탑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동훈의 글은 대화하듯 구어체적 문체가 특징이다.

  •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 법이라고 생각하여 법학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검사가 된 이유는 상식과 정의를 사법시스템 안에서 지키는 것이 검사라고 생각해 검사가 되었다고 한다. 적폐는 무엇이냐에는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부정부패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

  • 양손잡이이다. 왼손, 오른손 양손 다 필기하고 자유자재로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 진형구 전 대전고검장이 장인이다. 진 전 고검장은 법조인으로는 드물게 공대(서울대 전기전자학과) 출신이며 재직 당시 ‘검찰 3대 천재’로 불릴 정도로 두뇌 회전이 빨랐다고 한다.[22]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출신이 아닌 한동훈이 경제 분야와 첨단수사기법, 글로벌스탠더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전문성을 갖게 된 것은 장인의 영향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

  • 부인 진은정 김·장 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와는 서울대 법대 캠퍼스 커플로 알려져 있다.[23] 고등학교도 같은 현대고 출신이다. #

  • 처남 진동균도 검사 출신 변호사인데, 검찰 재직 중 후배 검사에게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징계를 받지 않은 채 퇴직한 일이 있었다. 황희석윤석열과 그 측근 검사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자형인 한 검사가 뒤를 봐 준 것 아니냐"며 근거 없는 의문을 제기했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역시 검찰청 내부 성추문을 보더라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 MBTI는 시도해봤는데 질문 수가 생각보다 많아서 끝까지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 학창 시절 등을 소개한 신동아기사가 180만 뷰, 댓글 1만 개를 넘었다고 한다. #

  • 2017년 방영된 KBS의 수목드라마 김과장한동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37세의 특수수사 전담 검사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회계 3팀 검사'로 극중에서 부패한 TQ그룹 회장 박현도를 기소해 징역형을 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이 한동훈 검사가 실제 한동훈 장관을 모델로 한 캐릭터인지는 불분명하다. 김과장이 방영된 2017년 1월 25일 ~ 3월 30일 사이에 한동훈은 박영수 특검에 속해 만 43세의 나이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켰다.

  •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많고 한 때 심히 부자연스러웠던 헤어스타일로 인해 머리가 가발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가 전혀 없고 학창 시절부터 검사 시절을 거쳐 장관이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머리숱이 풍성하고 길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앞머리도 완전히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등 헤어스타일의 변화가 꾸준한 점을 보아 본인 머리로 보인다는 의견이 많아 해프닝으로 보이며, 이와 관련해 한 장관을 잘 아는 법조인에게 기자가 관련 질문을 했는데 그는 사실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

  • 한동훈은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의 핵심인사이지만, 흥미롭게도 대표적 진보 운동가인 박노해 시인의 구독자이다.[24]

  • 2023년 6.25전쟁 제73주년 기념식에서 KLO부대 출신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이 한동훈 법무부장관에게 즉석에서 감사편지를 전달해 화제가 되었다. 이창건 전 회장은 "KLO가 (국가에서) 인정받은 건 이번(윤석열 정부)이 처음"이라고 소개하며, 이어 "2월엔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고 6월 14일엔 청와대[25] 오찬에 초청받았다"며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편지에 썼다. #

  • 2023년 6.25전쟁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휴대전화를 분실하여 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이 투입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은 범죄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재향군인회 관계자가 휴대전화를 습득한 직후 경찰서에 분실물 접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경찰은 휴대전화를 한동훈에게 돌려주고 사건을 종결했다. #

  • 재산이 43억원쯤 있다고한다. #


4. 일화[편집]


학창 시절
  • 배우 이정재와 현대고등학교 5기 동창이다. #

  • 초중고 동창들은 한동훈에 대해 공부도 잘하면서 두루두루 다 잘 하는 인싸였다고 한다. #

  • 서초구 잠원동 토박이로 경원중 출신이라는 40대 주부 김모 씨에 따르면 “당시 학교에서 한동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작고 하얘서 눈에 띄었는데 공부까지 잘하니 유명했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있는 것은 물론 남자애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 반장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또 “선생님들의 신임이 두터워 노는 애들, 소위 말하는 날라리들도 한동훈한테는 함부로 못했다”는 전언이다. #
검사 시절
  • 역대 최연소 검사장(만 46세), 검찰 출신 최연소 법무부장관(만 49세)[26], 검찰 최초 현직 국세청장 구속, 사법부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 구속, 전직 대통령 2명 구속 등 ‘최초’기록 제조기로 불리기도 한다. #

  • 첨단 수사기법과 글로벌스탠더드 도입으로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 평가가 있으며 경제 관련 사건과 부패 및 비리 수사에 능통하고 영어까지 잘해서 검찰 내에서 천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

  • 한동훈과 같이 일한 경험이 있는 A고검장은 “일 처리가 스마트 그 자체”라고 말했고, 전직 B고검장은 “온갖 천재가 모인다는 검찰에서도 최고의 천재”라고 평가하는 등 검찰 내에서도 일 잘하는 천재로 유명했고 “채널A 사건 수사를 보고 ‘유치원생이 대학생(한동훈) 수사하는 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검찰 관계자도 있었다. 같은 검사라도 그만큼 실력 차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

  • 2002년 경제부총리 표창(경제투명화 유공)[27] , 2007년 검찰총장 표창(반부패사범단속 유공), 2011년 대통령실장 표창을 수상하였다.[28]

  •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5년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 당시 미국 연방 검찰과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을 직접 접촉해 미국 수사당국으로부터 동국제강 미국법인의 자금 흐름과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카지노 도박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기도 했다. #

  • 초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을 맡은 이력에서 알 수 있듯 공정거래법 세법 증권거래법 회사법 등 상사법에 매우 밝고 회계 비리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주가 조작을 지휘한 애널리스트를 구속했는데 애널리스트의 구속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SK건설 담합 사건 수사 때 박성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고발 요청권을 행사하도록 설득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검찰의 첫 번째 고발 요청권 행사이다. 2015년 9월에는 일본 업체가 담합한 국제카르텔 사건을 한국 검찰 최초로 기소했다. #

  • 정운호 게이트최유정 전 변호사가 2016년 4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변호를 맡았을 때 수사팀장을 맡고 있던 한동훈의 사무실을 찾아와 항소심 형량을 낮추려고 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전화를 통한 구형을 낮춰달라는 요청에도 한동훈은 바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둘은 사법연수원 동기(27기)이다. #

  •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전 총장과 달리 한동훈 전 검사장을 옹호하는 발언이 적었는데 한동훈이 한때 보수 정권의 권력형 비리 수사와 사법처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수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 검사장의 과거 이력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일부 인사들이 있으며 당시 보수 진영의 ‘궤멸’[29]에 한 검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앙금이 남아 있다. #

  • KBS 검언유착 의혹 녹취록 허위 보도 사건 당시의 녹취록 전문이 공개된 이후 반문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동훈 검사장 어록이 공유되고 있으며[30] 유재일, 진중권 등의 논객들도 그의 발언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였다. 또한 윤석열에 이어 한동훈 또한 정부, 여당이 때릴수록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 2021년 3월, 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배제당하자, 당시 한동훈 검사장이 해당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검찰 수사관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만약 검찰이 (수사) 했다면, 아니 한동훈 검사장이 했다면 오늘쯤 국토부, LH, 광명시흥 부동산업계, 묘목 공급업체, 지분 쪼개기 컨설팅업체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을 것"이라며 정부의 합동조사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


  • 검사 시절 론스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을 담당해 유일하게 유죄 판결을 받아낸 데 이어, 법무부장관이 되어서는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해외로 도피한 스티븐 리를 17년 만에 美 서 체포하는데 큰 기여를 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한동훈 장관 등이 미국 내 고위급 채널을 통하는 식으로 송환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라고 한다.

  •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을 수사하던 평검사 시절 한동훈은 총장실로 찾아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사표를 내겠다”라고 배수의 진까지 치며 결국 구속을 성공 시켰고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수사할 때에는 국회에서 석방이 결의되자 홀로 담당 의사를 찾아가 정확한 건강 상태를 진술 받은 뒤 회기 이후 재구속 시키기도 했다. #

  • 한동훈은 평소 후배 검사들에게 검찰 수사는 “세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기름기를 빼고 봐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여러 번 밝혔다고 한다. 전자는 세 줄로 간단하게 요약될 만큼 일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진영 논리나 시대적 요구와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소구되는 ‘상식적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 2020년 7월, 녹취록과 관련해 오보를 한 KBS 기자와 앵커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는데, KBS 법인을 상대로는 소송을 걸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KBS가 피고로 되면 변호사 선임비용과 손해배상 지급액 등이 수신료 즉 '국민 세금'으로 나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그래서 그런지 KBS 자체가 아니라 간부진을 포함한 8명을 소송했다는 기사가 이후 나왔다. 5억 원을 기자 간부진이 개인 사비로 책임지라는 것이다.

  • 2017년 박영수 특검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주장과 2019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등 이 부회장에 대해 줄곧 압박했으며 결국 삼성 설립 이래 최초로 이 부회장을 구속 시키는데 성공하며 수사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진영 불문 반(反) 삼성 성향의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다만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여론 역시 존재했다.

  • 유시민을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유시민 이사장이 ‘한동훈 검사장이 뒷조사를 위해 대검찰청 반부패부에서 2019년 11월 말 또는 12월 초에 유시민 관련 계좌 추적을 했다’는 취지로 약 1년 반에 걸쳐 악의적 가짜 뉴스를 유포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 이로부터 두 달 뒤, 유시민 이사장이 기소되었다. 이에 대해 한 여권 인사가 검찰권을 남용했다며 비난하자 "황당하게 사실을 왜곡하거나 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뭐라 말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

  • 자신이 관여하지도 않은 엘시티 게이트 관련 수사를 부실수사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장 모 기자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한 검사장은 장 모 기자의 글에 대해 “LCT 특혜분양 의혹에 대한 부산지검 수사 당시 서울에 근무 중이었고, 당시 수사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대구·대전고검 근무 중이었다”라며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 2023년 5월 11일, 피고인 장 모 기자는 한동훈에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

  • 2019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냈지만, 의료사고와 관련해 반부패수사부 검사를 규탄하는 페이스북 게시물[31]에 '좋아요'를 눌러 화제가 된 바 있다. 글을 올린 당사자는 놀라서 "좋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 2019년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반부패강력부장인 한동훈을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실수로 '장관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리고 2022년 한동훈이 실제로 법무부장관이 되었다. #

  • 소년급제에도 불구하고 사법연수원 성적 또한 최상위권이었으나 판사가 아니라 고등학생 시절부터 꿈이던 검사를 택해 27기 중 1등으로 지금의 서울중앙지검에 배치되어 평검사 시작부터 SK그룹 분식회계 같은 굵직한 수사들을 맡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는데 연수원 동기들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한동훈이 검찰로 간다고 하니 잘 적응하지 못할까 봐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 연수원 내에서 총무와 복사 담당을 맡았고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놀 줄도 아는 연수생이었다.

  • 1999년 군법무관 시절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한동훈은 소속 부대 영관급 간부(중령)를 혼자 인지수사해 수뢰죄로 구속시켰고 그 당시 반발하는 헌병대장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검찰 조직에서 한동훈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

  •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내내 검찰에서 요직에 임명될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실력 하나만으로 꾸준히 승승장구했다.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 마찬가지였으나 살아있는 권력인 조국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후 1년 6개월 사이에 무려 4번 연속 좌천 당하는 검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곁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그가 정치적 판단을 떠나 사실관계만으로 수사해 온 결과라고 평했다. 대검 연구관 출신으로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서울대 1년 선배인 한 변호사는 “그는 수사에서 나오는 증거에 따라 사심 없이 객관적으로 처리했다”며 “‘정치적 고려’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검사였기에 역풍을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

  • 대검에서 한동훈을 보좌했던 후배 검사에 따르면 “검사장, 부장검사 등 간부급 인사들을 보좌하다 보면 승진이나 자리에 연연하는 느낌을 주는 분들이 있다. 한 장관은 승진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유일한 간부였다. 그는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검사가 된 것만으로 인생에서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더 좋은 자리에 가려 애쓸 필요 없고, 원하지 않는 자리로 간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조국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가던 날에도 자신이 앞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예감하며 같은 취지의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

  •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진모 전 대통령민정 2비서관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구속 수사하면서 “자신을 키워준 검찰 선배의 등에 칼을 꽂았다”, ”배은망덕하다”라는 비판도 받았는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던 검사였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 흔히들 한동훈을 ‘윤석열의 최측근’이라거나 윤석열 사단 대표주자로 이야기하지만 정작 한동훈은 "제가 그분(윤 당선인)과 같이 일했던 건 맞고, 그분과 같이 일할 때 저는 공정이나 정의에 대해서 나름대로 뜻을 같이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그 이상으로 인연에 서로 기대거나 서로를 맹종하거나 끌어주고 밀어주고 이런 관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아울러 "그렇기 때문에 그분(윤 당선인)도 (저를) 썼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해 온 대형수사 부분에서 인연에 기대거나, 진영론에 기대거나, 사회적 강자를 외압으로 봐줬던 사건이 있으면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례는) 없다고 생각한다. 있으면 갖고 와도 좋다고 자신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

  • 한동훈은 권력층이나 기업과 결탁해 세력을 과시하거나 돈 잘 쓰는 검사들, 이른바 ‘구악(舊惡)’을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그런 선배들은 강남 8학군-서울대 법대-소년등과-법조인 집안의 한동훈을 자기 라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했으나 번번이 실패한다.

  •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에 검찰 내에서 일하던 한 직원이 푼 썰에 의하면 “한동훈은 2010년 초반부터 검찰 내에서 천재라고 소문난 인간이야. 회사에 그런 인간 있잖아. 울 회사 먹여 살릴만한 놈... 최소 상무까진 무조건 갈 놈이다... 검찰 내에서 검사들이 한동훈은 천재다라고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겠니. 근데 타고난 천재이고 수사도 엄청 잘하는데 이 양반이 술은 체질상 한 잔도 못해요. 패션 감각은 또 좋구.... 대충 감 오지 않냐. 강남에서 태어나서 천재인데 술은 못 먹고 그냥 뭐랄까 강남 범생 같은.... 선배들은 그냥 버겁고 시른거임 술자리 나와서 머리도 조아리고 해야 하는데 거긴 안 나오고 수사는 잘해..... 그냥 꼴 보기 싫지” 한동훈이 술자리에 나가지 않는 수사 잘 하던 천재 검사라는 것은 한결같이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 2022년 5월 15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 작성한 검사 사직 글에 330여 개의 댓글이 이어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B 검사는 “대한민국 검사의 롤 모델이 돼줘서 후배로서 감사한 마음”이라며 “검사로서의 마지막보다 장관으로서 멋진 새로운 출발을 더 응원하겠다”라고 적었고 L 검사는 “얼어 죽더라도 곁불을 쬐지 않아야 하고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 호랑이가 돼야 하는 검사의 모범…‘조선제일검’의 모습은 후배들에게 든든한 선례가 됐다”라며 “우리도 ‘돼야 하는 것은 되게, 안 돼야 하는 것은 안 되게’ 일할 수 있는 법무 검찰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정권 핵심을 겨눈 수사를 이끌며 고초를 겪었던 일을 상기하는 듯한 댓글도 많았는데 “검사장님 욕보셨다”부터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참 검사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검사다운 기개로 모진 기간 청정하셨다”, “무뢰한 권력에 온몸으로 맞선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 “의연히 잘 견뎌주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바람막이가 돼줬다”, “(한 후보자의) 새로운 소명 역시 ‘정의와 상식’에 맞는 길을 가는 것이라 기대한다”와 이밖에도 “한동훈 검사장님과 동시대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 “모실 때부터 많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떠나면서도 깨우침을 주셨다”, “참으로 멋진 검사셨고 올곧은 검사의 모습으로 본보기가 되어주셨다”, “3차장 시절 눈치 보지 말고 범죄 엄정 대응하라던 말씀이 기억난다”, “검사장님께서 그간 보여주신 모습은 후배들에게 검사로서 사표가 될 것입니다”, “잠시라도 함께 근무할 수 있어 영광”, K지청장은 “마지막에 한동훈이라는 글자에 울림이 크다” 등 계급 구분 없이 많은 검사 후배들이 한동훈을 향해 다양한 응원 댓글들을 남겼다. # #
장관 시절
  • 조응천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인사 일부는 한동훈을 어나더 윤석열, 왕장관, 소통령이라고 부르며 적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퇴임을 앞둔 문재인 전 대통령윤석열 정부의 장관 후보자인 한동훈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은 현장을 책임질 장관 후보자가 몸 사리고 침묵하는 건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

  • 법무부장관 청문회 이후 '한동훈 현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 동기는 그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게 이해된다며 한동훈은 신세대 느낌이 있고 검사로서 성과를 내왔는데 외모도 잘 꾸미다 보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선배는 "예의 바르면서 브라이트(bright)한 후배라 모두가 아꼈다”라고 말했다. #

  • 한 출판사에서 한동훈의 어록들을 모은 '한동훈 스피치'를 출간하기도 했다. 다만 한동훈에게 따로 허락을 구한 건 아니다. #

  • 법무부 직원들에게 차 문을 여닫는 의전을 하지 말라고 금지시키고, 법무부 문서 작성 시 간부 호칭에 '님'자를 붙이지 말 것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해당 사안은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에 올라온 글로 인해 알려지게 된다. 출장을 준비하면서 작은 곳에서나마 예산을 절감하자는 취지로 일등석이 아닌 비즈니스 항공편 예약을 지시하면서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도 했다고 한다. #

  • 2022년 8월 1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양학선 선수의 영상을 소개하며 70년간 축적된 검찰의 수사와 재판에 대한 역량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산이라며 최대한 빨리 흡수하고 배우라고 조언을 건넸는데 이에 양학선 선수가 인터뷰에서 "신기했다. 옛날 체조 영상도 다 구하셨더라. 체조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제 기술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

  • 장관 취임식 영상이 SBS 영상 하나만 160만 뷰를 넘었다. 타 방송사 채널을 합치면 350만 뷰가 넘는다. #[32] 국민대학교 마스코트 쿠민이 패러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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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에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한 법무부 직원들의 우호적인 평가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는데 6월 말 법무부의 한 직원은 “한 장관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들에게 타라고 버튼을 눌러주는데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며 “복도에서 마주치면 소속이랑 이름 물어보고 외워서 다음번에 먼저 인사해 주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우리 과 대부분이 한동훈 장관의 팬”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 2023년 3월 영국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활동 및 전쟁피해자 지원을 위해 개최되는 '세계 법무부장관 회의'에 참석해 영어로 연설했다. #

  • 2023년 3월 기준으로 여권 대선후보 적합도 32%를 찍으며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제22대 총선 송파구 병 출마설이 돌았다. 송파구 병은 지금까지 국회의원 6명 중 김을동 의원 빼고는 전부 민주당계에서 당선된 보수정당의 험지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이를 반기고, 친 국민의힘 논객들은 계속 이야기가 나오면 출마할거라고 예상하지만 당협위원장인 김근식은 공천받기에 자신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언론계에서는 한동훈이 윤석열 정부의 호위무사 포지션이기에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내각에 머물 것이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총선에 출마하려면 2023년 9월에 사직을 해야 하는데 법무부장관으로서 해줘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한동훈의 존재와 활동 자체가 2024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직하는 검사들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 윤여준 전 장관은 한동훈의 직업정치인 도전에 대해 2022년 12월 아직 이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윤여준은 2023년 4월에는 한동훈 장관이 국회의원에 앞서서 국무총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국무총리에 올라 자신의 견해를 배제하는 연습을 한다면 더 좋은 직업정치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 이재오 전 장관은 국무위원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들인데 논리가 있어도 행동이 가볍다. 그러나 방송에서 보수 논객이 저런식이면 최고가 될 것이니 국무위원을 그만둔다면 내 자리를 줄 수도 있다. 라는 의견을 말했다.

  • 한동훈 효과에 힘입어 법무부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도 급증했다. 취임 당시에는 5만 8000여명이었는데, 취임 이후 1년새 구독자 수가 72% 급증해 구독자 수 10만 명을 돌파해 실버버튼 수령 예정이다. #

  • 2023년 5월 17일 법무부 장관 취임식과 100일에 이어 취임 1주년을 맞아 법무부 계단에 지지자들이 보낸 꽃바구니가 가득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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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 내리던 2023년 6월 21일 국회 출근 중에 본인이 직접 우산을 들고 보좌진에게도 씌워줘서 인품이 화제가 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기의 강성국 법무부차관이 받은 황제 의전이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입수보행하는 가운데 보좌진이 추 장관에게 우산을 씌워준 경우와도 대조된다는 평을 받았다. #

  • 시사저널에서 발표한 '2023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전문가, 일반 국민 조사 모두 4위에 올랐다. 정치인·행정관료 부분에서는 전문가, 일반 국민 조사 모두 2위에 올랐고 사회인 부분에서 전문가 4위, 일반 국민 조사 2위에 올랐다.
[1] 출처 # # #[2] '법의 날' 기념식에 참여해 준 청소년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 포켓몬스터 꼬부기 스티커를 선물했던 어린이에게 훗날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답례로 선물하기도 했다. 그만큼 모비딕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3] 일본을 휩쓴 연합적군 사건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연합적군은 적군파와 게이힌 안보공투가 결합한 테러 조직으로, 아사마 산장 사건 등을 일으켰다.[4] 법조인대관에서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힌 책.[5] 2022년 12월 ~ 2023년 1월호[6] 2023년 3월 7일 유럽 출장길에 손에 쥐고 출국했던 것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7]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언급[8] 2023년 11월 1일 전세 사기 발본색원 및 충실한 피해회복 지속 추진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언급 #[9]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했던 말이다.[10] 법조인대관에서 감명 깊게 봤다고 밝힌 영화.[11] 조로 피규어는 일본 법무성 고이케 타다히로 검사의 선물이라고 한다. #[12] 신동초-경원중-서울대 동기로 한때 ‘라이벌’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김현석 성형외과(서울 압구정동) 김현석 원장[13] 또래 혹은 주변 정치인들과 비교해 봤을 때, 하얗고 곱상한 외모가 눈에 띄는 편이다.[14] 패션 기사 # # # # # # # # #[15] 넥타이 중앙을 오목하게 만든 모양새가 보조개 같다 하여 딤플이라 불림[16] 시에라 블루 모델[17] 패션 선글라스의 시초로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선글라스 브랜드로 유명하다.[18] 영국 대표 아이웨어 브랜드.[19]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이 회사의 검은색 펜으로 법안에 서명하곤 했다.[20] ‘조선제일검’ 한동훈 법무장관이 상가에 가지 않는 이유 한동훈, ‘조선 제일검’ ‘쌍칼’ 별명의 최고 특수통[21] 이같은 주위의 평판에 매우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기동민 의원이 "특수부에 계실 때 칼을 잘 썼다."라며 간접적으로 언급하자 "오래전 이야기입니다."라고 대답했다.[22] 1990년대 《조선일보》 사회부 법조 출입기자였던 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진 전 고검장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기억력이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3] 한동훈은 92학번, 진은정은 93학번.[24] 다만 박노해 시인은 독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지 않으며, 또한 부패한 586 운동권 세력의 셀프 특혜 시도 등을 두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마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25]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했는데 헷갈린 모양이다.[26] 역대 최연소는 아니다. 역대 최연소 기록은 46세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27] 서울지방검찰청 형사9부 소속으로 명동 사채시장 수사 성과로 차동언 부부장, 이석환 검사와 함께 수상하였다. 2001년 검사 임관 다음해 받은 상이다.[28] 법조인대관 출처[29] 대한민국 제6공화국 이후 보수가 궤멸당할 뻔한 수준의 큰 위기가 2번 있었는데 그게 차떼기 사건박근혜 탄핵이었다. 둘 다 한동훈 검사가 주역이었으니 말 다 했다.[30] 기사 참고 #, #, #[31] 권 씨는 의료사고를 당한 故 권대희 군 사건과 고 김성은 양 사건에서, 현재 반부패 수사부에 근무하는 검사가 의사에게 유리하게 사실관계를 편집해서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했다.[32] 2022년 7월 기준[33] 취임식 취임백일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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