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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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구
秦炯九


파일:진형구.jpg

출생
1945년 9월 24일 (78세)
경기도 광주군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법학 / 석사)
경력
제11회 사법시험 합격
제1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법무부 인권과장
법무부 법무과장
서울지방검찰청 조사부장
서울지방검찰청 총무부장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대검찰청 감찰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해강신익희 기념사업회 사업추진위 위원장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고문
가족
배우자, 슬하 3녀 1남[1]
둘째사위 한동훈

1. 개요
2. 생애
3. 가족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으며,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기도 하다. 법무부장관 한동훈의 장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945년 9월 24일 경기도 광주시에서 태어났다. 1957년 광주초등학교[2], 1960년 경복중학교, 1963년 경복고등학교, 196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를 차례로 졸업했다. 1975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형사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학위[3]를 취득했다.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4]하고 사법연수원을 1기로 수료했다. 검사로 임용된 이후 1983년에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1985년에 대검찰청 전산관리담당관, 1986년에 법무부 인권과장, 1987년에 법무부 법무과장을 맡았으며 1989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5] 형사2부장으로 영전했다. 그 뒤 1990년에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되었고 1991년에 서울지방검찰청 총무부장, 1992년에 서울지방검찰청 조사부장, 1993년에 서울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등을 두루 거쳤다. 검사에 임용된 이후에는 주로 기획통으로 활약했으며 동시에 형사통, 공안통이기도 했다. 머리회전이 빠르고 분석력이 좋아 업무 추진력이 남다르고 검찰실무, 법무행정에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후배 검사들의 신망을 상당히 많이 얻기도 했다는 의견이 있다. #

1994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6]이 되었으며 이후 1995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을 거쳐서 1997년에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되었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1998년에는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김태정 검찰총장의 신뢰를 받으면서 신공안을 뒷받침하기도 했으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소환 방침을 흘리는 등의 행위를 하면서 "신중하지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대전고검장으로 발령이 났지만 이후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는 과정에서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을 하고 모든 언론이 보도를 하면서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에 진형구는 취중실언이라고 변명하고 덮으려 했다 검찰 측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을 했지만 검찰에 대한 부정여론이 거세지자 진형구는 구속되었고, 이후 대전고검장에서 면직되었다.

하지만 당시 옷로비 사건과 맞물려서 김대중 정부가 수세에 몰리고 특별검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국가의 조직적인 개입은 없었다고 하면서 수사는 종결되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후 법원은 진형구에게 다른 혐의는 무죄를 선고하고, "1998년 9월 22일 고등학교 후배인 강희복 당시 조폐공사 사장에게 전화해 "좋지 않은 정보 보고가 올라온다. 서울이 시끄럽다. 빨리 직장폐쇄를 풀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라."라고 말한 혐의(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만 인정,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다#. 서울지방법원 2001. 7. 27. 선고 99고합790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2.6.14. 2001노2159, 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2도3453 판결

법원에서 파업유도 자체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김대중 정부에 대한 여론은 점점 좋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김태정 법무부장관이 취임 8일만에 사임하는 등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에 큰 치명타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야인으로 있다가 2002년에 차이나라이프 발행인을 맡으면서 언론인으로 재기했으며 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뉴월코프 주가조작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이름이 오르내렸다. <주간 뉴스타파> 한동훈 장인 진형구, 과거 주가조작 사건 연루 정황, <주간 뉴스타파>'한동훈 처가 연루' 주가조작범, 검찰로부터 특혜 정황


3. 가족[편집]


진은정(秦銀廷)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93학번)과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LL.M.)을 나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무 중이다. 진은정의 남편이자 진형구의 사위는 검사 출신인 한동훈으로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을 거쳐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아들인 진동균(秦東均, 1977. 2. 20. ~ )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제4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32기로 수료한 뒤 부장검사가 되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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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딸 1명은 요절[2] #[3] 석사 학위 논문 : 背任罪의 本質과 範圍에 關한 考察 : 特히 債務不履行의 경우 民事責任과 關聯하여(배임죄의 본질과 범위에 관한 고찰 : 특히 채무불이행의 경우 민사책임과 관련하여).[4] 유일한 공과대학 출신으로 신문기사에 났었다. # #[5] 현 서울서부지방검찰청[6] 현 서울서부지검장. 당시만 해도 차장검사가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가는 자리였다.[7] 그러나 2015년에 후배 검사를 성폭행해서 물의를 빚었는데 징계를 안 받고 CJ그룹의 법무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논란이 되었다. 결국 2018년에 재조사에 들어가 2021년 2월에 징역 10개월형을 선고 받아 징역을 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