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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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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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환조 ~ 연산군 후궁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고종의 후궁 보현당 귀인 정씨, 광화당 귀인 이씨, 복녕당 귀인 양씨, 삼축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후궁이었던 적이 없다.






조선 선조의 후궁
정빈 민씨 | 靜嬪 閔氏


파일:정빈민씨묘.jpg

정빈여흥민씨지묘 전경
출생
1567년 10월 30일
사망
1626년 12월 20일 (향년 60세)
능묘
정빈여흥민씨지묘
(靜嬪驪興閔氏之墓)
재위기간
조선 숙의~귀인
1580년 7월 7일 ~ 1592년 이전
조선 정빈
1592년 이전 ~ 1626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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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여흥 민씨
부모
부친 - 민사준(閔士俊, 1537 ~ ?)[1]
모친 - 신창 맹씨 맹익선(孟益善)의 딸
형제자매
2남 1녀 중 장녀[2]
배우자
선조
자녀
슬하 2남 3녀 [ 펼치기 · 접기 ]
1남 - 인성군(仁城君, 1588 ~ 1628)
1녀 - 정인옹주(貞仁翁主, 1590 ~ 1656)
2녀 - 정선옹주(貞善翁主, 1594 ~ 1614)
3녀 - 정근옹주貞謹翁主, 1599 ~ 1613)
2남 - 인흥군(仁興君, 1604 ~ 1652)

봉작
숙의(淑儀) → 소의(昭儀)
→ 귀인(貴人) → 정빈(靜嬪)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 선조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강화도호부사를 지낸 민사준(閔士俊)이며, 어머니는 사섬시 첨정을 지낸 맹익선(孟益善)의 딸이다. 또한, 성종의 딸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閔子芳)의 증손녀이다. 참고로 정빈 민씨의 5촌 당조카[1]광해군의 후궁 수빈 허씨이다.[2] 본관은 여흥이다.[3][4]

슬하에 인성군 이공, 인흥군 이영을 비롯하여 정인옹주, 정선옹주, 정근옹주를 낳아 2남 3녀를 두었다.

2. 생애[편집]


1580년(선조 13) 후궁 간택에서 홍여겸의 딸, 정순희의 딸과 함께 종2품 숙의로 책봉되었다. 이때 대간들이 민씨는 성종의 외손이니 간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선조가 따르지 않았다.[5] 민씨는 수진방(水眞坊)에 있는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입궁하였고, 이후 정2품 소의, 종1품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으로 품계가 올랐다.

그녀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선조에게 친정의 벼슬을 부탁하지 않았고, 의인왕후에게도 항상 예의를 갖추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다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고생길이 열리는데, 이때 민씨는 선조를 따라 행궁으로 가는 중에 가마 멀미에 시달리기까지 한다.[6]

또한, 이괄의 난이 일어나서 아들 인성군이 역모에 휘말린다. 인성군은 유배형에 처해지지만, 인조는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하다는 이유로 인성군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인성군이 한양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 결국 인성군은 1628년(인조 6) 유효립 등의 대북 세력이 꾸민 역모에 다시 이름이 언급되면서 자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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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빈 민씨의 고모 민연향의 손녀[2] 정빈 민씨의 자녀들인 인성군, 인흥군, 정인옹주, 정선옹주, 정근옹주는 수빈 허씨에게 6촌남매이자 시동생, 시누이가 된다.[3] 같은 여흥 민씨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황후와는 남남이다. 왜냐하면 이들과는 여흥 민씨 4세손(시조 민칭도의 증손자 민영모까지 공통 조상)까지 같고 그 아들 대에서 갈라졌기 때문.[4] 하지만 아주 별개라고 할 수없는게 고종사촌 언니의 손녀(재종손)가 민유중의 장모다. 민유중이 인현왕후의 아버지니 묘하게 연결되는 셈이다.[5] 연산군의 정실부인인 폐비 신씨도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의 외손녀라서 연산군과 7촌관계였고 당시에도 은근히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혼인했다. [6] 《기재사초》에 "후궁 민빈(閔嬪)은 가마 멀미로 계속 파주에 남아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