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철/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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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임재철


1. 개요
5.1. 2004~2011 시즌
5.2. 2012 시즌
5.3. 2013 시즌
6.1. 2014년
7. 롯데 자이언츠 2기
7.1. 2015년
8. 은퇴



1. 개요[편집]


임재철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롯데 자이언츠 1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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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롯데 1기 시절. 그리고 롯데를 떠난 지 13년만인 2015년에 돌아왔다.

1999년 롯데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사직 야구장에서 펼쳐진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20승 투수였던 정민태를 상대로 프로 첫 타석[1]을 섰고 좌익선상 적시 2루타를 치며 역전승을 만들어내 '무서운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그 해 좌완투수들을 농락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이더니, 가을 야구에서 구대성 등 내로라하는 투수들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는 김민재가 2루타를 칠 때 역전을 하는 득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만족해야했다.


3. 삼성 라이온즈[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21019205030820.jpg
(출처 : 포토로)

2002년 4월 김태균, 이명호를 상대로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여기서 임창용과 함께 찍은 사진 모습도 있다. 의외로 삼성팬 아닌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여담으로 삼성을 떠나기 직전인 2003년 4월 5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적 있다.


4. 한화 이글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30508230143305.jpg
(출처 : 포토로)

2003년 시즌 초 김승권과 함께 지승민, 고지행을 상대로 고향 팀 한화로 트레이드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한화의 유승안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김응용 감독에게 요청하여 이루어졌다.[2]

그러나 한화의 성골이나 다름없는 북일고등학교 출신임에도 고향 팀인 한화를 상당히 싫어한다. 다만 임재철의 이런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가던 것이 삼성 라이온즈는 선수들에게 후하게 돈을 쓰던 것은 물론 우수한 재활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글스는 전지훈련도 구단에서 예산을 짜게 쓰는 바람에 제주도로 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고, 신인 지명도 제대로 안 했으며 여기에 2군 구장도 없던 막장 팀이었다. 선수 대우 역시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한화를 떠날 때에도 구단의 열악한 시설에 학을 뗐는지 롯데보다 더 X 같은 데는 처음 봤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다만 이범호 등 타지 출신 후배 한화 선수들에게 자기 집에 선뜻 묵게해준 것을 볼 때, 선수들과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낸 듯하다.

5. 두산 베어스[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90410184523902.jpg
(출처 : 포토로)

파일:external/sports.donga.com/31793592.2.jpg
(출처 : 스포츠동아)

5.1. 2004~2011 시즌[편집]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2004년 6월 차명주를 상대로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그해 말 병역 비리에 연루되었고, 이후 2006년까지 입대를 연기하다가 2006 시즌 후 31세의 나이에 병역 의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상근 예비역으로 활동하다가 두산으로 복귀했고 페이스가 떨어진 전상렬 대신에 우익수를 맡아 꾸준히 활약을 하였다. 2010년 이후로는 정수빈, 민병헌 등의 등장으로 백업으로 밀려나 심심찮게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등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뛰어난 수비 센스와 뜬금포를 갖춘 공격력 덕분에 필요할 때마다 계속 기용되었다.

롯데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4타수 5안타 2볼넷 3사구(死球) 2타점 6득점, 타율&장타율 .357, 출루율 .526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0년 10월 10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스코어 팀이 8:6으로 지던 11회말 무사 만루에서 2타점 2루타를 쳐서 동점을 만들어 팀의 스코어 8:9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임재철은 4회초부터 대수비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 1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임재철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4안타 5볼넷 1도루 4타점 1득점, 타율 .308,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2승 3패로 패하여 탈락했다.

임재철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기복이 심한 이성열 대신 주전으로 낙점되어, 27타수 9안타 7볼넷 3사구(死球) 1도루 6타점 9득점, 타율 .333, 장타율 .370, 장타율 .514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1년 11월 19일, FA 자격을 얻어 두산과 2년 간 5억 원(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1억5,000만 원, 옵션 5,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그리고 심판의 엄청난(...)제구력으로 스냅볼에 머리를 맞아버렸다!! 2011년 9월 22일 한화와의 경기 때의 일이다. 공수 교대를 위해 외야로 가다가 오석환 주심이 두산의 선발투수 이용찬에게 새 공을 교체해 주기 위해 던진 공에 머리를 맞은 것.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주심에게 앞으로 자기 한 번 잘 봐주셔야 한다고 농담을 했다고. 그리고 이 장면이 주간 야구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면서 유명해졌다.


5.2. 2012 시즌[편집]


주장으로 선임된 2012년.

2012년 4월 27일잠실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호수비와 스코어 0:0이던 7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때리면서 팀의 주장다운 플레이로 그 날 최고의 선수가 되었며, 팀의 0:2 승리와 이용찬의 시즌 2승에 크게 기여했고, 팀은 단독 선두가 되었다. 여러모로 주장다운 선수.그런데 타율이 .111
이날 임재철은 3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 1병살타를 기록했다.

2012년 5월 10일 잠실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는 팀이 스코어 8:7로 지던 9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우중간 깊숙한 끝내기 3루타를 기록했다! 그것도 정우람을 상대로. 그리고 수훈선수로 선정.
이날 임재철은 5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3피삼진은 덤

2012년 5월 18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 에서는 팀이 2:3으로 지고 9회말 2사 2루에 대주자로 나갔으나 어이없는 견제사를 당하면서 LG측의 수훈선수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루플레이 미스로 인한 손가락 골절로 한동안 2군에 있다 올라왔다. 부상으로 2군에 있는 시간이 한달 이상 되자, 결국 6월 28일 코칭스테프는 주장을 이종욱으로 교체 했다. 다시 1군으로 콜업후 여전히 허술한 플레이나 타격 부진으로 속을 썩이고 있었으나,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이후로 각성, 호수비에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인태야 보고있니 아무래도 신인 지명에서 외야수 보강에 힘을 쓴 구단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9월 8일 삼성과의 대구 원정경기에서는 연장 12회 초 결승 싹쓸이 2루타로 3타점을 만들어내며 팀의 승리를 굳히는 데 기여한다. 오오 타신의 친정복수안타

롯데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4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 3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13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 타율, 장타율 .077, 출루율 .143을 기록하며 타석에서는 부진했지만 외야에서 알토란같은 수비를 해주며 분투했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5.3. 2013 시즌[편집]


타격은 전에 비해 부족하지만, 수비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였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수비, 2, 3, 5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1득점만을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9일 LG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신재웅을 노리고 선발 우익수 겸 2번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2볼넷 3득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다. 특히 두번의 출루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에 불과했으니, 팀이 스코어 4:5로 앞선 9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정성훈의 좌전 안타 타구를 4회초부터 좌익수로 수비를 바꾼 임재철이 잡아 정확하고 빠른 홈송구로 2루주자 이대형을 아웃시켰다. 그리고 스코어 4:5, 2사 2루 상황에서 이병규의 안타 때 나온 우익수 민병헌의 보살과 최재훈의 2루주자 문선재를 막는 혼신의 블로킹이 나와 팀은 9회초 대위기를 수비진 덕에 극복하고 3차전을 승리로 가져갔다.

임재철은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2번타자, 4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1안타 2볼넷 1사구(死球) 3득점, 타율&장타율 .2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임재철은 삼성과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선발 우익수, 7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6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167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임재철은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11타수 2안타 2볼넷 1사구(死球) 4득점, 타율&장타율 .182, 출루율 .357을 기록했다.

2013년 11월 22일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통하여 LG로 이적하였다. LG 팬들은 어깨 좋은 우타 외야수가 들어왔다며 풍악을 울렸지만, 두산 팬들은 왜 임재철을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냐며 프런트를 향해 극딜을 퍼부었다. 게다가 프런트에서 은퇴 제의를 했다는 소식은 분노한 팬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2013시즌에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한 것을 보고 왜 로스터에서 제외시켰는지 팬들은 다시 한번 의문을 가졌다.


6. LG 트윈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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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2014년[편집]


다리 부상이 있어서인지, 시범경기 마지막 날인 3월 23일 KIA전에 박용택과 교체되어 중견수로 나와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후 몇차례 더 출전하였으나 도저히 눈뜨고 못봐줄 성적을 기록하며 전격 2군행. 2군에서조차 뒷목을 잡게 하는 성적으로 팬들에게는 잘못된 영입이라며 저거 왜 데려왔냐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6월 26일 NC 다이노스 전을 맞아 이보다 더 나쁜 용병은 없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조쉬 벨이 2군으로 가며 반작용으로 1군으로 올라왔다. 첫 타석에서 유격수 앞 땅볼을 쳤고, 전일수 1루심이 아웃을 선언하자 헬멧을 땅에 집어던지며 심판에게 항의하였다. 느린 그림으로 돌려본 결과 임재철의 발이 먼저 들어가 세이프. 팬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임재철을 찬양했다.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중견수로 출장하였다. 매 경기 안타를 쳐내면서 시즌 초반 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7월 5일 NC전에서 또 다시 오심을 당했다. 세 번째 타석에서 기습번트를 댓는데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손이 먼저 베이스에 들어갔음에도 불구 이기중 1루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다행히 후속 타자인 최경철이 적시타를 치며 팀이 스코어 2: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7월 23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으나 2군으로 내려가지 않고 1군과 동행했다. 그리고 8월 2일자로 1군 엔트리에 다시 등록되었다가 8월 12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다시 말소되었다.

그러다가 확장 엔트리 때 다시 1군에 콜업되어 대수비로 간간히 출장했다. 그리고 10월 9일에 8번 타자 봉중근의 대타로 나와[3]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며 대망의 1,1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NC와의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014 시즌 후 본인이 방출을 요구하여 LG를 떠났다.

그런데 의외로 여러 팀에서 임재철의 영입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도 FA가 된 기분이라고. 밑에도 나와 있지만 워낙 인성이 뛰어나 고참으로서 팀 분위기를 잡아주고, 외야수로서도 아직은 나쁘지 않기 때문.

그러다가 2014년 11월 27일, 친정 팀 롯데와 연봉 1억 5,000만 원에 계약하여 이적하였다.[4] 이종운 감독이 직접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7. 롯데 자이언츠 2기[편집]



7.1. 2015년[편집]


친정 팀으로 돌아왔지만, 딱히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고 2군에서 박준서와 1루 경쟁을 하고 있는 중. 2015년 6월 10일 사직 kt wiz 전 이후 더 이상 1군에 오르지 못했다.

사실 나이가 나이인만큼 큰 활약은 기대하고 데려온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기대치를 밑도는 실력으로 인해 결국 2군 주전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 팀 성적도 영 좋지 못 한 상황인지라...

참고로 연봉도 무려 1억 5,000만원이다. 나이가 40살인 만큼 사실 야구는 오래 했지만 커리어가 변변치 않고 동갑내기인 권용관, 박정진 처럼 가늘고 길게 야구를 한 선수이니만큼 그 정도 금액도 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2009년 이후로 폭망한 김상현이나 장성호도 억대 연봉 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또 모른다.

결국 2015년 11월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13년 이후 2년 동안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는데 결국 욕먹을 각오를 하고 보호명단에서 임재철을 제외했던 두산 프런트의 결정이 옳았다고 볼 수 있다.

8. 은퇴[편집]


2015년 11월 28일에 있었던 롯데의 납회식에 갔다가 방출 통보를 받은 그는 1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5개 구단을 거친 17년 간의 야구 인생을 끝마치게 되었다. 선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롯데에서 장식한 셈.

롯데에서 방출당한 날 임재철의 부인이 딸에게 아빠도 선우 삼촌처럼 은퇴할 거 같다고 전하자 딸이 그 날 내내 엉엉 울었다고 한다.[5]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에는 롯데 선수 출신들이 감독으로 있는 개성고와 부산신정중학교를 돌며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해설위원 제의가 왔으나, 울렁증이 있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선수 시절을 회고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지도자들 중에서는 김경문 감독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 외에는 김기태 감독과 최정우 現 LG 벤치코치를 꼽았다.
[1] 대타로 들어갔다.[2] 결과적으로 지승민은 2004년에 재능이 만개하면서 삼성에서 좌완 계투요원으로서 1시즌 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고, 고지행 역시 주전 2루수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2시즌간 보여주었다. 반면 김승권은 1할대 타율을 보여주다가 사라졌고, 임재철은 한화에서 부진하면서 한화가 손해를 봤다. [3] 실제로 봉중근은 대기타석에서 타격을 준비했으나 무사에 끝내기 주자가 살아나감으로써 봉중근 타석에서 작전이 필요한 상황이 되니 대타를 기용하게 되었다.[4] 이적 당시에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알려지지 않았다.[5] 임재철과 김선우는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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