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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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치 경력
1.1.1. 2010 시즌
1.1.2. 2011 시즌
1.1.3. 2012 시즌
1.2.1. 2013 시즌
1.2.2. 2014 시즌
1.2.3. 2016 시즌
2. 감독 경력



1. 코치 경력[편집]



1.1.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KIA 타이거즈 No.72[1]
이강철(李强喆)

KIA 타이거즈 No.77[2]
이강철(李强喆)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113103313044.jpg
(출처 : 포토로)
2005 시즌 끝나고 은퇴했으며[3], 은퇴 후 KIA 타이거즈에서 불펜코치와 투수코치를 맡았다. 특히 옆구리 투수 키우는 데 일가견이 있어, 불만 질러대던 손영민을 필승조 불펜으로 키워내는데 성공했고 2009 시즌 유동훈을 언터쳐블 클로저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기사보기 다만 2009년 유동훈의 무시무시한 성적(대표적으로 0점대 방어율)은 다른 시즌의 성적과 비교해봤을 때, 우주의 기운을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BABIP 수치가 유독 낮게 나왔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의 몸에 맞는 공 숫자로 대표되는 제구력 문제는 이강철 코치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는 평이 대세. 그래도 손영민 등을 훌륭하게 키워내어 2009년 페넌트레이스2009년 한국시리즈를 포함한 통합우승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1.1.1. 2010 시즌[편집]


불펜코치를 맡다가 데스기모토. 즉 스기모토 타다시가 2군으로 내려가자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후반기에도 불펜진이 여전히 엉망이어서 스기모토와 함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코치로 승격되자마자 8월 1일 인천 SK전에서 선발투수 로페즈가 4회말 투구 도중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나광남 주심에게 항의하고 계속 궁시렁대자 마운드 위에 올라가서 진정시키고 공수교대 이후 또 덕아웃에 내려와서 궁시렁대자 락커룸으로 로페즈를 끌고가서 "야이 개새끼야!"라고 우리말 육두문자를 시전하면서 곧바로 진정시켰다.[4]


1.1.2. 2011 시즌[편집]


2011 시즌을 앞두고 그대로 1군 투수코치를 맡았는데, 불펜진이 '완전히' 붕괴되고 치솟은 방어율과 미친듯이 늘어나는 볼넷과 피홈런수때문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올드 타이거즈 팬들의 본거지인 호사방에서까지도 예외는 아니였다.

결국 건강을 이유로 야구계에 은퇴하여 일본에서 요양중인 칸베 토시오 전 기아 투수코치가 무너진 기아 투수진을 살리기 위해 투수 인스트럭터로 방문하여 일시적인 성과는 냈으나, 칸베옹의 귀국 뒤 다시 원상복귀. 준PO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1.1.3. 2012 시즌[편집]


하지만 감독이 선동열로 바뀌었음에도 살아남았다. 사표를 냈었지만 선동열이 만류하고 같이 하자고 했다고. 현역시절에 원정을 가면 숙소에서 항상 선동열과 같은 방을 쓰던 방장-방졸관계라 워낙 둘이 친한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군 불펜코치로 2012년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기아 투수진이 붕괴되자, 4월 25은 선동렬 감독은 다카하시 미치타케 투수코치를 2군으로 보내고 이강철을 1군 투수코치로 발령.

2012년 신인드래프트 중하위 픽이었던 홍성민을 잘 굴려 1군에서 요긴하게 써먹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언더투수 육성 능력은 있지만, 역시 문제는 그것 말고는 투수코치로서 이렇다 할 강점이 없다는 것. 그나마 선동열 감독이 투수진을 직접 관리해서 그런지 2011년보다는 욕을 덜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시즌이 끝난 후 뜬금없이 넥센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 2012년 시즌 종료 후부터 넥센의 감독을 맡게 된 염경엽광주제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친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5]


1.2.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넥센 히어로즈 No.89
이강철(李强喆)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C%259D%25B4%25EA%25B0%2595%25EC%25B2%25A0_%25EB%258D%2595%25EC%2595%2584%25EC%259B%258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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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코치 시절
고교 후배이기도 한 염경엽 전 넥센 감독과 커플룩


1.2.1. 2013 시즌[편집]


2013 시즌 시작전 투수총괄 겸 수석코치의 보직을 부여받았으나 사실상 투수쪽으로는 사이드암 선수들만 신경썼을 뿐 투수에 대한 운영은 최상덕 코치가 했다.

시즌 초반 옆구리 김병현한현희는 확실히 작년보다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결산을 하자면, 한현희는 완전히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고, 마정길은 쏠쏠하게 전천후로 역할을 맡아주었지만 김병현은 결국 후반기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


1.2.2. 2014 시즌[편집]


2014년 4월 25일 5.2이닝 12피안타 2피홈런 3볼넷 11실점을 기록하며 내려간 문성현을 조련하여 6일만인 5월 1일 6이닝 무실점 퀄리티 스타트, 82구 4피안타 1볼넷 4K을 던지는 투수로 변신시켰다. 구속도 5km/h 넘게 올라가서 최고구속 148km/h를 찍었다. 문성현의 투구폼을 미세조정하여 하나 '두울' 셋의 리듬으로 던지게 하고 여타 세세한 것을 조정한 것이 큰 효험을 보였다. 팬들은 이강철이 투수코치까지 겸해 달라며 기쁨의 환성을 올리고 있었는데... 문성현5월 7일에 등판하여 2이닝 12실점하였다. 이강철도 투수코치로 좋은 평을 못 들었던 이유가 있었고 문성현도 답이 없다.

5월 중순 이후 6월까지 넥센 투수진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팬들의 비판도 슬슬 늘어나는 추세다.

6월 11일 재활코치로 있던 류영수 코치[6]가 1군 메인 투수코치로 올라오게 되면서 수석코치의 본 임무로 돌아갔다.

6월 13일 "요즘 투수들은 요령이 없어" 라는 인터뷰를 했다. 기사

8월 이후 언더핸드 김대우가 평자 2.70을 찍으며 선발진에 안착하자 다시 넥센 팬들의 호감이 상승하고 있다.

김동수 배터리코치가 친정 팀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복귀하면서 이강철도 두산 베어스 이적설이 기사로까지 나왔으나, 구단과 본인이 낭설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도 수석코치로 염경엽 감독을 보좌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혀갤에서는 두산의 영입 시도 자체는 사실이나 염감에게 의리를 지켜 남은 게 아니냐고 추측.


1.2.3. 2016 시즌[편집]


2016년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사이드암 투수 신재영에게 불펜코치 박승민과 더불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시즌 시작 전 언더투수코치가 없는 삼성으로 이적한 김대우가 폭망하면서 이강철의 코칭 능력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염경엽 감독이 준플레이오프 직후 사퇴하자 넥센의 후임 감독 후보 중 하나로 예상되었지만, 프런트 출신인 장정석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자 넥센을 떠나게 되었다. 정황상 염경엽이 데려온 라인 일원이다 보니 염경엽이 떠나자 이강철 코치 역시 같이 사퇴한 듯.

11월 5일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강철 전 코치 “넥센과 함께 한 4년, 잊지 못할 것”, 여기서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의중을 강력하게 드러내기도. 그리고 2년 뒤 실제로 감독이 되었다.


1.3.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두산 베어스 No.71
이강철(李强喆)


파일:두산 베어스 수석ㆍ투수코치 이강철.jpg


2016년 12월 1일 조웅천, 이용호, 최경환과 함께 두산 베어스 코치로 영입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보직은 2군 투수코치.

2017년 4월 기존 2군 감독이던 공필성이 1군 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자 그 뒤를 이어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직을 맡게 됐다.

2017년 11월 2일 한용덕 수석코치가 한화감독으로 가는 바람에 자리가 공석이 되어서 2018년 시즌 수석코치로 내정 되었다. 1군 투수코치 자격도 겸하며 작년 한용덕의 포지션을 그대로 맡게 되었다.

2016 시즌에 비해 두산 투수들의 혹사가 많이 줄었다. 특히 선발진의 투구수 관리가 칼같아졌다. 김강률김승회의 부진과 부상, 이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과부하가 걸린 유희관장원준 때문에 영건 불펜들이 많이 굴렀지만, 차츰 상태가 좋아지면서 연투나 투구수도 관리해주는 편이다. 4월에 곽빈, 박치국, 함덕주가 그렇게 굴렀지만 단 한 번의 3연투도 없었다는 것은 특기할 점. 6월 15일 현재까지 불펜 투수의 3연투는 이영하가 딱 한 번 했었고, 이마저도 3일 내내 투구수가 적었다.

특히 영건 사이드암 박치국에게 투구 밸런스와 커브 구사, 체인지업까지 전수하였고, 박치국은 입단 2년차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리그 구원 WAR TOP10에 드는 불펜 투수이자 두산의 셋업맨으로 거듭났음은 물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까지 선발되어 금메달까지 얻고 병역특례도 받았다.

다만 한국시리즈에선 젊은 투수들의 발전 가능성만 보였을 뿐 준우승으로 마감짓고 2018년 11월 12일 두산 베어스 수석 코치직을 마무리지었다.


1.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시절[편집]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이강철.jpg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야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선동열호/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두산베어스 수석코치인 이강철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선동열호 국가대표 야구팀 투수코치로 내정되었다.


2. 감독 경력[편집]



2.1. kt wiz 시절[편집]


kt wiz No.71
이강철(李强喆)


파일:이강철 kt 위즈 감독.jpg

2018년 10월 20일, 김진욱 감독의 뒤를 이어 kt wiz의 3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나름대로 kt wiz로선 사정이 있었다. 2018년 10월 19일 이숭용 단장이 후임감독을 고심한 끝에 이강철 수석에게 제안을 했었고 고심한 끝에 이강철 수석은 두산 김태형 감독과 김태룡 단장과 의논한 끝에 수락을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전년 작년까지 수석이었던 한용덕 감독 때의 선례를 고려한 두산의 배려가 있었다. 지난해는 팀 분위기를 고려해 발표 시기를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로 미뤘는데, 그 결정이 오히려 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이미 결정된 일,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전에 발표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이숭용 단장은 "장기적 강팀을 꿈꾸는 KT의 그림을 가장 잘 그려주실 분"이라는 판단을 했으며 “경험과 인성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고 육성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으로 생각했다. 이 감독님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고 KT라는 팀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색깔을 입힐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강철 수석은 현재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비를 위해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참가 중이라 대면이 아닌 유선으로 제의를 받고 승락을 얻었다. 이 단장은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이지만 일본에 계셔서 부득이하게 유선으로 말씀드렸다. 2018년 10월 19일 제안을 했고 2018년 10월 20일 확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시리즈 전에 대승적으로 발표를 허락해준 두산에도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직전에 코치 사임 의사를 밝힌 이강철의 이러한 행보 때문에 두산 팬들에게는 이강철이 영 좋지 못한 이미지로 남았다. 이강철이 갑작스럽게 떠난 두산의 투수진들을 다독여 19시즌 우승까지 거둔 후임 투수코치가 김원형.[7]

선임 배경
두산 동의


2.1.1. 2019년[편집]


이강철/2019년 항목으로.


2.1.2. 2020년[편집]


이강철/2020년 항목으로.


2.1.3. 2021년[편집]



2.1.3.1. 정규시즌[편집]

단장의 여러 삽질로 인해[8] 로하스를 놓치고 애매한 성적을 거두었던 데스파이네쿠에바스는 그대로 남은 채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9] 팀에서는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한 팀을 만드는 것을 목표인듯 한데 정작 이렇다 할 전력 보강이 없어 지난 2년보다 더 험난한 시즌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5월 초까지 데스파이네가 호투 중이고, 4월 말을 기점으로 국내 선발진 3명이 리그 상위권급의 피칭을 보이고, 근심을 사게했던 알몬테의 타격이 터지면서 매년 순위가 좋지 않았던 시즌 초반임에도 5월 2일 기준 2위로 순항 중이다. 덤으로 강백호가 타격 여러 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도 포인트. 쿠에바스는 부진 끝에 5월 20일자로 말소시켰고 2군 경기에서도 4이닝 3실점으로 부진 중, 알몬테는 뇌수비와 산책주루로 일관하는 알못해모드로 되돌아가며 감독과 팬들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 장기화로 인해 외인이 입국할시 자가격리 기간을 비롯한 장기 대기문제, 적응 문제 등이 겹친 탓에 대다수 구단들이 외인 중간 교체는 테일러 모터처럼 엄청나게 못하지 않는 이상 되도록 꺼리는 추세이다. 알몬테의 경우 아예 꼬라박은 게 아니라 애매하게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교체는 요원...해보였으나 알몬테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자 한화에서 퇴출되었던 제라드 호잉을 구단에서 영입해주었다. 이강철 감독이 특별히 수비와 주루가 되는 선수를 요청했는데, 덕분에 외야 및 지명타자 로테이션에 숨통이 트였다.

여러가지 악재를 감안하면 순위 자체는 놀랍게도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건 절대적으로 강백호에게 의존한 결과이며[10] 불펜 마운드의 붕괴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탓에 불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전망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그동안은 1점을 잃으면 2점을 내면 된다는 식의 빠따 야구로 버티고 있지만 타자들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까지 계속 타격으로 버텨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7월 기준 스퀴즈번트, 더블스틸 등의 작전을 현란하게 구사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kt wiz를 잘 이끌고 있으며 새로운 원석 김태훈을 발굴해내고 주로 백업역할을 하던 선수들과 신인을 과감히 클린업 및 주전으로 기용하며 짜임새있는 타순과 좋은 대타 기용으로 많은 승리를 이끌고 있다.

2021년 8월 15일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다만, KT 측이 이걸 인지하지 못해서 경기 후 선수단 축하, 꽃 전달식, 기념사진 촬영 등이 전부 생략됐고 공식 SNS에 글이 올라오는 정도에 그쳤다. 명백한 KT 프런트의 실책으로 팬들과 언론 등지에서 까였다.

8월 3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도중, 강백호가 빗물에 미끄러진 최재훈의 발에 손을 밟히며 부상을 입었고, 비가 많이 오는 와중에도 경기를 진행해도 되는 것이냐며 전일수 주심에게 어필을 하다 신체적 접촉이 있어서 퇴장 조치를 당했다. 결국 kt는 이 경기에서 지긴 했으나, 우천 속행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11] 이후 9월 2일 상벌위에서 벌금 200만원의 징계 처분을 받게 되었다.

9월 들어서는 이대은을 필승조로 끌어 올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 사이에 팀 창단 첫 매직넘버 점등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9월 23일 한화전을 기점으로 팀 타격이 단체로 부진하며 1위 수성에 비상이 걸렸다. 득점이 잘 되지 않자 번트와 도루 등 적극적인 스몰볼을 실천하고 있으나 뚜렷한 성과없이 패배를 적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는 10월 1일 롯데전 더블헤더 두 경기를 모두 1번타자 강백호라는 고육책을 썼으나 스윕패와 함께 4연패를 기록했다.

허나 후반기의 심각한 타격부진은 선수단의 전체적인 한계였을 뿐 강백호 한명만 믿고 오프시즌에 전력보강을 제대로 안한 이숭용의 잘못이라는 의견이 많다. 애초에 로하스의 대체자원이랍시고 영입한게 그 알못해였으니 투수력으로 공격력을 메꾸는 동시에 한계가 뚜렷한 자원들을 데리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인정할 만하다는 평가다.

일단 10월 17일 기준, 포스트시즌은 확정된 상태다. 다만, 아직 정규시즌 우승은 확정짓지 못했다. 그러나 kt의 타선이 워낙 식물이 되어버린 상태라 10월 22일~23일 1.5경기 2위인 삼성과의 경기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운 나쁘게 1위를 삼성에게 내주고 창단 최초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직행은 좌절될 가능성이 크다.

23일 경기 4:0으로 패배하며 마침내 1위를 삼성에 내주고 말았다.

최근 7일 타율 .182 .214 .143에 빛나는 식물타자들을 진작에 한번 빼주고 2군에서 잘치는 선수들도 한번쯤 올려볼만 했으나 기존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보수적인 쓸놈쓸 운영을 시사하였고 기존 선수들은 기사가 나온 이틀 동안 전혀 활약하지 못하며 다시 한번 비판받았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진작에 저 3명 중 한명이라도 내려서 조정을 거치는 동안 2군 선수를 올려볼만도 했으나 허리통증이 있던 엄상백 대신 올라온다는 선수가 2군에서도 .266밖에 안 되는 문상철. 선수 스스로의 부진은 어쩔 수 없다지만 부진한 선수들로 밀고 나가는 경직된 선수 기용으로 패배하는 것은 감독의 책임이 맞다.

10월 28일 NC와의 DH에서 1승 1무를 거두면서 다시금 1위를 탈환했다.

이후 정규시즌 마지막날인 10월 30일, SSG에 8대3으로 승리하였다. 그렇지만 이보다 앞서서 끝난 삼성과 NC와의 경기에서는 삼성도 11대5로 이겼다. 이리하여 삼성과 kt는 정규시즌 공동 1위로 정규리그를 마치게 되었고, 결국 두 팀 중 정규리그 챔피언을 놓고 다투는 최종 대결은 다음날인 10월 31일, 끝장 승부(타이브레이커)로 결정나게 되었다. 그리고 타이브레이커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면서 팀의 첫 KBO 한국시리즈 진출과 팀 창단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날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는 이틀 밖에 쉬지 못하고 선발 등판했기에 정말 벼랑 끝 승부수였는데 쿠에바스가 7이닝 무실점 1피안타 3볼넷 8탈삼진을 하고, 박시영-김재윤으로 이어지는 불펜도 무실점, 결정적일 때 나온 호수비들 덕분에 1-0 의 아슬아슬한 승리가 가능했다.

정규리그 우승 후 인터뷰에서는 몇 몇 선수보다 팀 전체가 모두 잘 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 뒤 한국시리즈도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2.1.3.2. 포스트시즌[편집]


2.1.3.2.1. 2021년 한국시리즈[편집]

kt의 결승 상대는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거쳐서 올라온 두산 베어스로 결정되었다.

11월 14일 열린 1차전 경기에서 4대2로 승리했다. 특이한 점은 작년 플레이오프에서 이상한 운영으로 말아먹은 것과 전혀 다른 상당히 정석적인 운영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정규 시즌 선취 득점 성공 후 승률이 7할 5푼 4리일 정도로 KT는 지키는 야구에 강했기 때문에 무사 1,2루에서 제라드 호잉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등 주자를 번트로 진루시키거나, 황재균 타석 때 1사 1,3루에 1루 주자 런앤히트 작전을 사용해 병살을 면하며 득점에 성공하는 등 경기 내내 한 점 한 점을 위한 전술을 사용했다. 이런 작전이 모두 성공하며 기세 좋던 두산을 1차전에서 잡아내며 기세를 잡았다.

다음날 열린 2차전에서도 6대1로 승리했다.

11월 17일 3차전에서도 3대1로 승리했다. 이제 통합 챔피언이 되기까지는 단 1승만 남았다.

다음날 열린 4차전에서도 8대4로 승리하면서 KBO 한국시리즈도 제패하면서 이번 시즌의 주인공이 되면서 명장으로 우뚝 섰다. 상대 두산을 21-8로 압도한 것은 물론 역대 한국시리즈 4전 전승 우승팀 중 4승 모두를 선발승으로 거두는 대기록도 작성하였다.

전략적으로는 시즌 내내 선발로 등판했던 고영표를 선발 투수 직후에 등판시키는 필승조로 기용한 것이 신의 한 수로 꼽힌다. [12] 또한 좌투수 조현우를 두산 베어스 좌타자 김재환 타석 때 표적 등판시킨 것도 4경기 중 3경기에서 성공하며 유효했으며, 시리즈 내내 뛰는 야구를 구사한 것도 성공적이었다.

2.1.3.3. 시즌 총평[편집]

아무런 지원도 없이 육성&팀워크 정신을 일으켜 우승 시킨 감독으로 빛났던 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강철은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인으로 칭송받았다.

시즌 시작 전만 해도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은 kt의 최종 순위를 4~5위라고 예측했지 우승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할수록 kt는 1위를 달리다가 2020 도쿄 올림픽이 종료된 이후 9월 말부터 타격 침체로 인해 삼성에게 잠시 1위를 내 주었으나 정규시즌 최종 1위 결정전에서 삼성에 1 : 0으로 승리하면서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4경기 모두 홈런을 기록하면서 4 : 0 승리와 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부임 첫 해에 전력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위, 첫 5할 승률, 그 다음 해 가을야구, 올시즌엔 심재민, 고영표, 엄상백이 가세했지만 잘해줄지는 의문이였고 로하스가 일본으로 진출하여 전력이 악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잘 극복 해내며 포스트시즌 2번째 해에 우승을 이끌어 내 당당히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강철 감독 본인 또한 현역 시절 해태 타이거즈 시절 우승, 2009년 기아 타이거즈 코치로 우승, 2021년 kt wiz 감독으로 우승하면서 조범현에 이어 선수&코치&감독으로 모조리 우승한 야구인 2호가 되었다. 둘 다 타이거즈 선수&코칭스태프와 kt wiz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2.1.4. 2022년[편집]


시즌 전 KIA 타이거즈가 1973년 생인 김종국에게 감독직을 맡기면서 10개 구단의 모든 감독 자리가 확정, 전 구단 감독 중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

시즌 초반부터 강백호의 발가락 부상으로 인한 장기 이탈, 데스파이네의 부진, 쿠에바스의 팔꿈치 염증 등으로 주전들이 이탈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심각한 악재를 줄줄이 겪으면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강철 부임 후 kt는 항상 지독한 슬로우 스타터 성향을 보였기에 곧 반등하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13]

NC전에서는 아예 외국인 타자 라모스마저 사구로 인한 발가락 골절로 이탈하면서 감독 데뷔 이후 최악의 시즌을 맞고 있다.

그와중에 5월 8일 경기 종료 시점 15승 16패로 또 꾸역꾸역 승패마진을 -1까지 끌어올렸다. 4월 17일 3승 10패 승패마진 -7을 3주일만에 스윕승 한차례와 위닝 네차례로 복구한 셈이다. 강백호, 라모스, 쿠에바스 등이 엔트리에 없고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던 황재균마저 통증과 잔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누군가 한두명씩이 번갈아가며 버닝하는 19시즌의 좋은 전철을 밟는 중이다. 다만 2군의 신진급 선수를 적극적으로 1군에 기용하지 않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14]

6월 20일 오후에 복통을 호소했고 진단 결과 충수염 소견이 나옴에 따라 수술을 받았고 이후 중앙대학교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당분간 감독직을 비우게 되었다. 당분간 감독대행은 김태균 수석코치가 담당한다. 이후 6월 22일에 퇴원하고 24일에 사무실에 잠깐 출근하긴 했지만 충수염 특성 상 최소 일주일 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직무 복귀는 28일 삼성전부터가 될 전망이었는데 26일에 일찍 복귀했다.

이후 6월을 14승 9패라는 호성적으로 마치며 5할 복귀를 넘어 순위도 4위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지만 3위 이상 그룹과 차이가 제법 많이 나서(3위 LG와의 게임 차이가 7게임 이상이다.) 7월 초의 선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6월부터 도합 22승 1무 10패라는 엄청난 승수를 쌓으면서 4위권에 안착했다.

올스타전에서는 드림 올스타 감독을 맡았다. 출전한 모든 선수들의 사정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기에 대타와 대수비 등을 기용했다. 그리고 승부치기까지 온 10회 초, 오승환이 컨디션 난조로[15] 인해 등판이 어렵자, 포수인 김민식을 대신 투수로 등판시켰고, 황재균을 2루수로, 박세혁을 1루수로 기용하는 등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7월 22일 후반기 첫 경기인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선 선발 벤자민이 무려 3개의 홈런을 맞으며 흔들리면서 초반부터 경기의 흐름이 기울었고, 8회초 외야진의 실책성 플레이로 3타점 적시타를 내주는 등 불운이 겹쳐 0:8로 아쉽게 패하며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22시즌 들어 한화 상대로 1승 6패의 절대적 열세를 겪고 있다.

7월 30일 LG전에서는 7회 말 3:5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발투수 소형준이 안타 두개를 연속으로 얻어맞으며 1아웃 1,3루 상황이 되자 직접 마운드로 올라갔다. 이후 3번 타자 김현수를 고의사구로 거르며 만루작전을 펼쳤고 뒤이어 올라온 LG의 대체용병 가르시아가 병살타를 치면서 위기상황을 무실점으로 넘겼다. 이날 경기는 알포드가 9회 초 쓰리런을 치면서 연장까지 따라갔지만 10회 말 김재윤이 초구에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아쉽게 패배하였다.

8월 20일 KIA전에서 KBO 레전드 40인 선정인으로서 시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타이거즈 후배이자 상대팀 감독인 김종국이 시포를 맡았다.[16]

9월 16일 잠실 LG전에서 우천으로 인해 7시 50분에 시작되었던 경기가 3회말 선두타자 가르시아의 타석에서 다시 우천 중단되며 결국 9시 10분 경 김시진 경기감독관이 노게임을 선언하였다. 사태는 이 때부터 이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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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실 앞에서 항의하는 이강철 감독

심판진이 양 팀 감독 측에 아무런 설명 없이 전광판으로 노게임 통보를 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고, KT 구단 역시 노게임 선언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덕아웃에 앉아 전광판으로 노게임 선언을 확인해야했다. 자신들에게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통지하지 않은 심판진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오른 이강철 감독은 심판실 앞에서 10여 분 간 비를 맞으며 항의를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이 나오지 않자 결국 이강철 감독은 덕아웃으로 돌아가 짐을 싸야만 했다. 기사 한편 이에 대해 허운 심판위원장은 '점수가 난 상황에서 특정팀에만 설명을 하면 심판이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심판은 양팀 감독이나 코치, 선수들에게 설명을 해줄 의무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

이에 커뮤니티에서는 사진에서 kt wiz의 22시즌 정조대왕 유니폼이 이 장면의 무게를 더하여 '범죄도시 4 주인공', '느와르의 한 장면이다', '타 팀이지만 멋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KBO 심판진에 대한 팬들의 분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9월에는 팀 타격의 침체와 시즌 초반부터 이어지던 박경수 무지성 기용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작년에 이어 타격 침체때 신진 자원을 기용해볼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

김민수를 정규시즌 동안 76경기 80.2이닝 던지게 하는 혹사를 감행했음에도 공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포스트시즌에도 계속 전천후로 기용할 것을 시사해서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10월 11일 잠실에서 열린 LG와의 최종전에서 승리할 경우 키움을 1게임 차로 꺾고 3위에 오를 수 있었으나 9회말 끝내기 안타로 아쉽게 패배하면서 4위가 확정되면서 와카전부터 치르게 되었다. 상대는 친정팀 KIA 타이거즈. 결과는 6대2로 승리하며 준플레이오프로 올라가게 되었다. 상대는 키움 히어로즈.

10월 16일 원정 경기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8대4로 패했다. 이번에도 동점 상황에서 김민수를 또 등판시키다 결국 김민수는 퍼졌고, 뒤이어 등판한 김재윤을 또 1점 차 지는 상황에 등판시켜 홈런을 허용하는 기적의 운영을 보여주었다.

10월 17일 역시 고척에서 열린 2차전은 2대0으로 승리하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0월 19일 홈에서 열린 3차전에서는 2대9로 참패하면서 플옵에 가기 위해서는 4차전과 5차전을 모두 이겨야만 하는 위기일발의 상황에 놓였다. 더군다나 이 날 경기는 에이스와 외인 모두 무너지고 실책에 병살타까지 보이는 등 홈팬들 앞에서 경기가 안 풀린 날이었다.

그러나 10월 20일, 역시 홈에서 열린 4차전에서는 9대6으로 승리하면서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제 양 팀의 운명은 이틀 후의 5차전에서 결정된다.

10월 22일 고척에서 열린 5차전은 3대4로 패하면서 kt의 이번 시즌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마무리되었다.

2022년 11월 개최 예정인 MLB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의 KBO 올스타팀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자체가 취소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1.4.1. 총평[편집]

투수진으로만 한정하면 작년을 뛰어넘은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지만, 부상자 속출과 본인 특유의 지나친 베테랑 고집으로 디펜딩 챔피언에 안 어울리는 성적으로 생각보다 일찍 시즌을 마쳤다. 신진 야수를 발굴하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2군 야수팜이 황폐되었다는 것이다.[17]

그래도 부상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다음 시즌은 황재균과 박경수의 노쇠화로 인한 부진 및 심우준의 상무 입대로 인해 피할 수 없는 내야수 리빌딩을 해야만 하는데, 올해처럼 쓸놈쓸 기질이 또 드러나면 좋은 성과를 얻긴 힘들지도 모른다.[18]


2.1.5. 2023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강철/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kt 감독 총평[편집]


파일:이강철 kt 감독 평가.jpg
[19]

이강철은 현 시점 대한민국 최악의 야구감독이다

2022년까지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으나, 2023년 WBC에서의 추태와 구시대적 운영의 고집으로 인해 평가가 급격히 하락하였다. 류중일과의 비교는 실례고 이미 김기태와 비교되고 있으며,[20] 현재 대한민국 프로스포츠의 모든 감독들 중 김상식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다음으로 비판받고 있다.

전임자들인 조범현, 김진욱 감독은 성적은 못 냈어도 구단이 그 당시에 신생팀이었고 신인 투수, 타자들을 최대한 기회주며 키워가고 관리하는 육성 과정에 있었다.[21] 이강철은 임기 초 이를 잘 써먹으며 팀의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지만, 정작 그 이후를 봐야할 육성에 아예 관심을 안가지며 철저히 담을 쌓았고, 투수는 투수대로 갈아마시며 선수단을 완전히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2021년의 우승도 상대팀이 자멸한 게 컸고, 바뀐 타이브레이크의 룰의 덕을 보는 등 우주의 기운이 모였을 뿐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22]

게다가 '인간'으로서 한 팀을 이끄는 능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과거에는 사람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최소한 kt 감독, WBC 감독에서의 모습만 보자면 도대체 저런 평가를 누가 했는지 궁금해질 정도.

일단 인터뷰부터가 허문회, 김상식, 홍준학급으로 막장이다. 일단 자기자랑만 줄창 해대는 것은 물론 끊임없이 자신에게 평가가 유리하도록 인터뷰를 하며 시도때도 없는 남탓 시전을 한다. 과도한 인터뷰와 주목받고 싶어하는 성향, 본인 말에 배치되는 언행으로 인해 논란이 많은 스타일이며 LG 팬덤은 불필요한 인터뷰를 너무 많이 하는 모습을 두고 양상문, 염경엽, 차명석에 그를 비유한다.[23]

그리고 팀이 비인기 팀이어서 묻혀지는 점도 하나 있는데, 자신을 비판하는 불리한 기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특히 2023년 김태오 2이닝 68구 6실점 벌투 사건이 그 정점으로, 전날 문상철의 불필요한 스퀴즈 시도 실패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사는 나왔는데 벌투 관련해서는 기사 한 줄 나오지 않고 있다. 하물며 삼성 홍준학조차 옹호 기사가 더 많아도 홍준학 특성상 적을 많이 만드는 성격이라 홍준학을 극딜하는 기사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강철이 도대체 어떤 처세를 하는 지에 대해 궁금하다는 팬들이 많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팀의 미래는 아주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베테랑들을 중용하는 등 육성에 굉장히 둔감하며, 감독으로서의 선수 관리가 최악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김한수와 굉장히 유사하다.[24] 투수 교체 실패와 쓸놈쓸 혹사, 노장들 밀어주기 등 하면 안 되는 것만 죄다 골라서 하고, 그러면서 유망주도 제대로 못 키워 2군 선수진은 진작 초토화당하는 등 선수층을 한없이 얇게 만들었다. 이젠 1군마저 타자도 투수도 상태가 말이 아니다. 심지어 그가 WBC나 2023시즌 보인 투수 운용은 누가 보아도 악행이자 벌투이기 때문에, 단순히 kt 팬덤을 넘어서 리그 전체적 차원에서 까이고 있다.

결국 이강철은 우승 이후 단 두 시즌만에 세대교체 실패, 투수진 혹사로 인한 황폐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평가가 한순간에 최악까지 떨어졌다. 이강철이 떠나더라도 팀적으로 꽤나 긴 리빌딩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조범현, 김진욱 감독이 겪었던 감독 시기 그 이상의 암흑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암울할 따름.

2군 감독으로 영입한 김기태의 KIA 감독 시절과 행보가 심히 유사하다. 5년 동안 감독을 맡고, 3년차 시즌에 두산을 상대로 우승, 4년차 시즌에 가을야구에 올랐으나 키움에게 패배, 그러나 팀의 큰 문제점으로 떠오른 선수층의 고령화 그리고 투수 혹사 등등. 그리고 이로 인한 5년차 시즌 초반에 최하위권 추락까지. 삼성 허삼영이나 SK 염경엽과도 유사하다.

어찌보자면 삼성의 홍준학 단장과도 유사한데, 일단 운이 매우 좋았다는 점과 올드스쿨 성향부터 도의적인 면에서 밥말아먹은 행보를 보이고, 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되어왔으며 결정적으로 2021시즌 좋은 성적으로 평가가 좋았으나 2023시즌까지 오는 2년동안 평가가 폭망한 것이 홍준학과 비슷하다. 게다가 언론통제를 하고 자기자랑만 줄창 하며 순위싸움이 아니라는 말까지 하는 등, 진짜로 감독판 홍준학으로 평가가 격하되고 있다. 삼성팬들이 그동안 이강철이 밉상이기는 해도 야구인으로서는 대단하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실체는 홍준학같은 수준의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2.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2.3.1.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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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이강철호,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2022년 7월 21일, 2023 WBC 한국 대표팀을 이끌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1년 한국 시리즈 우승팀 감독이다 보니 선임 명분은 충분했지만[25], 현직 KBO 리그팀 감독으로서 시즌 준비에 한창일 3월달에 국가대표팀을 이끌게 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섞인 kt팬들의 반응이 있었다.[26] 마치 2013년 류중일과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야구팬들의 우려도 많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호주전을 쉽게 이기고 가겠다며 이야기 하면서 호주를 얕보더니 호주의 무서운 맹공이 쏟아짐에도 이해할수 없는 투수 교체, 대타 타이밍과 운영으로 WBC 본선 첫 경기 호주전에서 패배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강력한 우승후보 일본과의 전력차를 감안하면 사실상 이 경기의 패배로 인해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 기정 사실화 되었다. 단기전이 아닌 페넌트 레이스를 뛰는 것처럼 하는데다가 호주전을 무조건 잡아야 8강에 갈수 있는 상황에서 호주는 안중에 없고 그냥 다음 게임(일본전)을 다분히 고려한 듯한 운영이 문제. 가뜩이나 한일 양국 간의 객관적인 전력이 역대급으로 벌어져있는 상황에서 무슨 생각으로 호주전에 총력전을 안한 것인지 의문. 물론 한일전의 중요성은 전력과는 별개로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높긴 하나, 현실적으론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에 호주전에 올인을 하는게 십중팔구 옳은 판단이었다.[27]

일본과의 2차전도 이해하기 힘든 투수 운용으로 대패하는 데에 큰 원인이 되었다. 결국 꼭 잡아야 할 1차전에 안 쓰고 아낀 컨디션 좋은 투수들을[28] 2차전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쓰는 등의 어이없는 운용으로 역대 국가대표 경기중 가장 처참한 내용으로 패배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소속팀인 KT 선수인 소형준은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타팀인 정철원이나 김원중같은 투수들은 최대 4연투까지 하게 만든데다, 호주전에선 불펜 대기하던 김광현에게 경기 중에 일본전 선발등판을 지시하고, 일본전 패배로 완전히 분위기가 가라앉은 다음 맞이하는 체코전 선발로 일본전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1.1이닝을 소화한 박세웅을 예고하면서 그야말로 막장 행보를 보이며 크게 비판받는 중으로, 이강철에게 이번 국제 대회는 김경문의 사례와 같이 감독 커리어에 오점으로 남을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29]

kt 팬들은 대회 이전의 불안이 현실이 되자 그야말로 낙담하고 있다. 두 번이나 팀을 가을야구에 진출시키고 2021년에는 우승까지 거머쥐게 했던 감독이 과거 류중일과 같은 행보를 보였으니까. 물론 류중일이 2013년 국제전에서 폭망하고 2014년에 한국 시리즈를 또 우승한 것처럼 KT의 몰락 전조 신호가 될 진 알 수 없다.

kt의 2023년 시즌 전망이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 여러모로 골든 타임 시즌이라 봐야하는 상황인데, 국대 감독의 실패에 이어 이번 시즌 kt 감독으로서도 팀에 쌓이고 쌓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진한 성적을 낸다면, 감독 커리어로서도 완전히 끝장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심각한 운영 미숙으로 인해 후배양준혁에게 "이번 대회 졸전은 전부 이강철 감독의 책임이다", "국가대표팀 감독 그만두고 KT나 잘 챙기시라"는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한국에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존재하지만 이강철과 양준혁이 현역이던 시절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선후배 간의 군기가 심했던 시절이다. 그 시대를 살은 양준혁이 같은 팀에서 뛴(1년 뿐이긴 하지만) 선배를, 그것도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저런 식으로 강하게 얘기할 정도면 말 다했다.[30][31]

게다가, 투수진들 중 KT 선수들의 어깨만 아끼듯이, KT 소속 선수들만 투구를 적게 하는듯한 모습을 보여 더욱 비판받고 있다.[32] 심지어 박병호와 같은 자팀 선수는 2회부터 휴식 차원에서 교체해 주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며 타팀팬들의 화를 엄청나게 돋구고 있다. 정철원과 김원중은 연습경기를 포함 5경기 연속 등판을 했다. 특히, 김원중은 후유증인지 체코전에서 구속이 급감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국대 경기에서 자팀인 KT의 리그 성적을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고우석과 함께 투수진 과부하의 문제 원인으로 지적받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원태인, 정철원, 곽빈 등 2021년 kt 우승 당시 kt와 경쟁했던 두산, 삼성 선수들을 지나치게 갈아마시며 두 팀 팬들의 원성을 듣고 있다.[33] 그리고 박세웅 역시 중간계투 등판 이후 이틀만에 선발로 등판시켜서 5이닝 가까이 던지게 했다.

그렇다고 실점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전 경기들에서 심각하게 부진한 이의리, 구창모, 양현종, 김윤식, 소형준 등[34]을 기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원중은?[35] KT 투수들을 관리해줬다기에는 고영표는 1차전에 선발 등판해 2차전에 나오기 힘들었고, 3차전에는 등판했다. 박세웅이 2차전 등판 후 3차전에 선발 등판하기는 했지만 연달아 치룬 1,2차전과 달리 2,3차전 사이에 휴식일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것이었다. 소형준의 경우에는 위에 언급된대로 1차전 피칭 내용을 보면 전혀 믿고 기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는 KT 투수가 아닌 이의리, 김윤식, 구창모 등도 마찬가지. 즉 의도적으로 KT 투수들만 관리해주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높지는 않다. 거기다 결과적으로 대회 중 투수들이 관리된 곳을 찾으면 KT보다는 LG다.

물론 이와 같은 기용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결국 이강철 감독 본인만이 답할 수 있는 문제고, 어쨌건 특정 팀의 투수들만 집중적으로 갈려나간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보니 혹사 논란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정철원과 김원중의 경우 평가전 연투에 1, 2, 3차전 개근 등판으로 인해 3차전 등판에선 구속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물론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장면이 포착되었고, 원태인의 경우 3차전까지 불펜으로만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투구수가 압도적인 탓에 삼성 팬들의 우려와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36]

그리고 중국전 선발로 기어코 원태인을 내면서 여론은 폭발하고 있다. 이렇게 미친듯이 몇몇 팀 투수들 팔을 갈아넣고 있으니 해당 팀 팬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특히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역적 이상의 취급을 받는중이다.

중국전에 선발 등판한 원태인은 최고 구속은 150까지 나왔으나 체력이 빠져서 공에 전혀 힘이 없고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3피안타 2실점을 허용하고 강판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삼성 팬들에게 역적 그 이상의 악평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팬들에게 가장 까이는 인물이라 하면 단연 홍준학인데 그 홍준학이 묻힐 정도로 까이고 있다. 게다가 경기 전에 찍힌 사진에서 광대뼈 라인이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충격적으로 헬쑥한 모습이었다.

뒤를 이어 등판한 자팀 소속의 소형준이 준수한 컨디션으로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이럴거면 대체 왜 원태인을 선발로 낸거냐는 비판이 매우 강하다. 컨디션이 좋은데다 혹사도 안 당한 소형준 대신에 원태인을 선발로 내보낸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 오죽하면 자기팀 선수들은 만만한 상황에 등판시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고, 다른 선수들은 혹사시켜 자멸하게 만든 뒤에 책임전가를 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모두의 우려대로 1라운드 탈락과 함께 2020 도쿄 올림픽의 김경문이 재평가를 받는 상황이 있을정도로 악평을 받았고, 결국 감독과 야구인으로써의 위상에 거대한 흠집이 나게 되었다. 이강철의 경우 야구인으로써 상당히 성공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던 류중일의 타이중 참사와도 유사한데, 이 당시와는 달리 2023 WBC의 경우 역대급 꿀조에서 떨어진 대참사이기 때문에[37] 이강철의 위상이 더 심하게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2021년 우승도 이강철의 kt가 잘해서가 아니라 LG, 삼성, 두산이 생각보다 못해서 우승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확산되고 있다.[38]

3월 14일 귀국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투수 혹사와 다른 팀에서 선수 좀 늦게 써달라 는 요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한국 시리즈 할 때 투수 몇 명 쓰는가 좀 알아보시고 할 말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39][40] 라는 답변을 하여 또 다시 논란이 되고있다. ???: 한국시리즈 그거 투수 한 명 쓰는거 아닌가요? 이 발언으로 삼성, 두산, 롯데 팬들의 속이 뒤집어졌다. 이걸로는 모자랐는지 분명 비난은 자신에게만 해달라고 운을 띄워놓고 "소형준, 이의리 같은 젊은 투수들이 자기 공만 던졌다면 좋은 결과 나왔을거다"라는 오해 사기 딱 좋은 발언을 추가하며 팬들의 분노에 스스로 불을 지피고 있다.

그동안 kt팬들을 제외하면 약팀을 우승시킨 명장으로 치는 경우가 많았으나[41] 2023 WBC 이후에는 실체가 까발려지며 감독을 넘어 야구인으로써 그가 쌓았던 위상에 큰 흠집이 가해졌고, 결국 2023년 4월 kt가 벌투, 노인정 운영, 쓸놈쓸과 함께 초토화되며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완전히 사멸했다.

[1] 2006~2007 시즌[2] 2008~2012 시즌[3] 이 시즌 끝나고 베테랑 이강철, 조규제, 홍현우가 옷을 벗었으며, 최상덕+마해영은 LG로 트레이드 되는 팀 개편이 있었다.[4] 이 경기 이후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의 트위터에 올라온 내용.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100801.jpg[5] 신기하게도 선동열, 염경엽, 이강철 모두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6] 오랫동안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코치 생활을 한 사람이라 분위기를 잘 아는 코치다.[7] 아이러니하게도 김원형 역시 정확히 2년 뒤 두산이 한창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던 도중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두산을 떠났고, 이로써 근래 몇 년간 두산 투수코치 출신이 3명이나 타팀 감독으로 영전되는 사례가 일어났다.[8] 로하스는 일본 구단의 자금력을 이기기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FA 최대어이자 팀에 가장 필요한 포지션인 2루수 최주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팀이 좋아서 FA신청조차 하지 않았던 유원상을 푸대접하고 주권과의 연봉협상에서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는건 덤.[9] 사실 이건 라울 알칸타라가 KT에 남긴 여파가 커서 그렇다. KT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두산으로 이적하자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상위리그인 NPB로 떠난 알칸타라를 보고 KT 프런트와 전력분석팀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10] 강백호의 타율은 시즌 초반 무려 4할 이상이다.[11] 다만 kt가 반대 입장이었을 때에 보였던 태도로 인해 비판이 있긴 했다.[12] 이강철 본인도 선수 시절, 정규 시즌 내내 선발로 출장하다 한국시리즈에서 불펜으로 전환해 팀의 우승에 기여한 시즌이 있다.[13] 게다가 이강철 부임 이전 초대감독이었던 조범현, 2대 감독이었던 김진욱 시절 kt는 반등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하위권을 전전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시즌 운영을 하는데 있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점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강철이 kt 감독으로 부임하고 정규시즌 첫 5할 승률, 첫 가을야구 진출, 첫 정규시즌 우승,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14] 권동진과 전진영이 한번씩 등록되었으나 둘다 채 일주일을 채우지 못한 채 내려갔다. 기량부족이 확인된 박영현은 예외이긴 하다.[15] 오승환이 2022시즌 들어 발목 통증에 시달리는 것은 팀 안팎의 공공연한 사실이나 공식적인 당일 미등판 사유는 발목 통증이 아니라 단순 컨디션 난조라고 한다,[16] 현역 시절 폼이 살아있다는 호평이 줄을 지었다.[17] 주전 2루수나 백업 유격수로 낙점받았던 장준원이 십자인대 파열로 이탈한 것도 뼈아팠다.[18] 다만 내년 시즌에는 개막 전에 WBC 감독을 맡아야 해서 온전히 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다 계약 마지막 해라서 무리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다소 우려스럽다. 그리고 우물안 KBO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던 이 쓸놈쓸 야수 운영이 결국 WBC의 대참사로도 이어졌다.[19] 그러나 결국 2023시즌 이강철 감독의 kt는 10위까지 추락하며 작성자의 염원마저 이루어지지 못했다.[20] 투수 혹사의 강도는 김기태가 더 높지만, 몰락의 드라마틱함은 이강철 역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강철과 김기태 모두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가 추락시켰지만, 이강철이 맡은 kt는 만년 꼴찌팀 출신이라 이강철은 김태형과 함께 그동안 리그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평가받았으나 2022년의 김태형처럼 2023년 모든 옹호론을 싸그리 없애버렸다.[21]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두 감독에 대하여 비판 및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비난, 비판의 강도가 크지는 않았다. 여기에 KT 2대 감독이었던 김진욱은 자신의 모티브인 '관리야구'로 혹사를 배제하면서 고영표를 성공적으로 국가대표급 선발로 전향시켰고 강백호를 발굴한 업적까지 기록했다. 사실상 초대감독 조범현과 2대 감독 김진욱이 펌,시스템을 만들어놓은 상황에서 이강철이 KT 감독으로 부임하였기에 부임 첫해 최초 5할 승률 달성, 부임 두번째 해 첫 가을야구 진출, 부임 3년차에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 가능했다. 만약 이강철이 조범현, 김진욱 감독시기때와 같은 팀 시스템을 육성하는 과정 당시 감독으로 부임했다면 우승은 커녕 가을야구 진출 실패 및 하위권을 전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조범현, 김진욱은 타 팀에서 감독 경험까지 있는 반면에 이강철은 KT 감독이 이강철 본인의 첫 감독생활인 만큼 육성은커녕 팀 시스템을 박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2] 사실 2021년 정규시즌 kt의 피타고리안 승률은 .594로 10개 구단 중 1위였고, 실제 승률 .563보다 3푼 높았다. 감독이 조급증으로 날린 몇 경기를 이겼다면 타이브레이크 없이 정규시즌을 우승했을 것이다.[23] 다만 양상문, 차명석은 육성에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기에 욕벌이는 신나게 해도 실제 평가는 이 둘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지능적으로 얄밉게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홍준학이나 이강철과 달리 차명석은 육성 시스템 자체는 잘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직 인터뷰에서 대놓고 본인이 트레이드 차라는 괴랄한 별명을 스스로 짓고는 정작 리그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 능력을 보여주어 웃기기라도 하다는 평이 많다. 물론 최악의 트레이드로 불리던 함덕주-양석환 트레이드가 윈윈 트레이드로 흘러가면서 분위기가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트레이드 성과와 상관없이 트레이드 차 드립을 친 임팩트가 너무나도 커서 단장 성과와 관계없이 그냥 아갈차, 트레이드 차라는 별명 자체가 밈이 되어 조롱받고 있다. 하물며 차명석이나 임선남같은 단장들도 한때 심각한 정책 실패들을 연속으로 저질러서 이미지가 나쁘고, 평가가 반등해도 여전히 리그 전체적인 밈 취급받는데, 이깅철은 본인의 잘못이 확실한 상황에서도 인터뷰를 해대며 팬들의 속을 긁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24] 가을야구에 전혀 나가지 못한 김한수와 달리 이강철은 가을야구 두 번에 우승 경력이 있기에 김한수보다 낫지만, 딱 그 정도이고 오히려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 보자면 김한수보다도 심각하다.[25]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 이외에도 이강철은 코치로서 2017 아시아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투수 코치로 국제 대회를 경험하였고, 또한 KIA,넥센,두산에서 약 7년간 코치생활의 경험이 있다는 것에서도 가산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코치로서의 경험을 살려 가을야구 경험이 전혀 없던 kt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첫해에 5할 승률, 이듬해 첫 가을야구 진출 및 플레이오프, 세번째 해에 구단 첫 정규시즌 + 한국시리즈 우승의 엄청난 커리어를 기록하였다.[26] 왜 하필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업적을 남기며 다년간 단기전 운영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김태형이 아니라 우리팀 감독이냐는 의견도 있었다.[27] 일본은 올해 뉴욕 메츠에 입단한 전 소프트뱅크의 에이스 센가 코다이가 빅리그 적응을 이유로 빠졌지만 베테랑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MLB스카우터들도 노리는 오릭스의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 최고구속 165km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고 퍼펙트게임 기록을 보유한 치바 롯데의 사사키 로키 등 어마어마한 특급 선발투수진을 보유한 것은 물론이고 이들보다는 이름값이 떨어지지만 역시나 에이스급 선발투수들인 요미우리의 토고 쇼세이, 정교한 제구를 자랑하는 오릭스의 2선발 좌완 미야기 히로야, 야쿠르트의 타카하시 케이지, 요코하마의 이마나가 쇼타도 엔트리에 있으며 이들이 선발진에서 밀려 중간투수로 등판한다. 불펜투수들도 각 팀의 특급 마무리투수들인 마츠이 유키, 오타 타이세이, 쿠리바야시 료지 등 그 면면이 매우 화려하다. 투수진의 뎁스만 놓고보면 WBC 참가국 20개국 중 단연 최강이다. 야수들도 스즈키 세이야가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 일본인 단일시즌 최다 56홈런과 세계 유일의 5연타석홈런 기록을 보유한 거포 무라카미 무네타카, 2년연속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이자 올해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중장거리 교타자 요시다 마사타카, 퍼시픽리그의 홈런왕 세이부의 거포 야마카와 호타카, 세인트루이스의 일본계 외야수 라스 눗바 등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렇다보니 야구팬들은 어차피 상위라운드 진출이 목적이라면 일단 일본에게 져도 어쩔수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고 3년 후배인 양준혁마저 개인방송에서 왜 호주전때 총력전을 하지 않았냐는 의견을 토로하며 이강철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이 미국마저 꺾으며 이 대회 전승 우승을 했고, 이강철 감독이 일본과의 전력차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안되었다는 것이 제대로 입증되었다.[28] 다만 올라온 투수들이 하나같이 제구가 무너져 스트라이크조차 제대로 못 던진걸 보면 컨디션이 좋았는지도 의문이긴 하며, 스트라이크 존을 잘 공략해낸 소수의 투수들은 구위가 나빠 일본 타자들에게는 그저 배팅볼 수준에 그칠 뿐이었다. 즉, 호주전의 운용과는 별개로 그냥 대다수 투수들의 기량 자체가 일본 타자의 그것에 아득히 못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29] 사실 김경문도 2020 도쿄올림픽에서 영 좋지 않은 투수 운용, 나쁜 성적으로 인해 크게 비판은 받았을지언정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엄연히 우승을 거둬 금메달을 획득한 업적은 분명히 있다.[30] 다만 양준혁의 워딩 자체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과격했던지라, 일부 비판 여론이 있지만 그래도 옹호 여론이 더 많은 것부터 현재 이강철호가 위상이 많이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31] 양준혁 본인도 해설 하면서 용병들이면 몰라도 선수나 감독들은 오다가다 얼굴 마주할 사이라 최대한 안까려고 한다 밝히긴 했으나, 애당초 양준혁의 입장에선 과거 선수협과 관련된 행보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겐 미운털이 박힌 상태인지라 현장 야구인 선후배들 눈치 볼일이 없는 상황이긴 하다.[32] 2022시즌 일본에서도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 다카쓰 신고도 스왈로스 선수들은 칼같이 내리면서 경쟁팀 투수들은 오랫동안 던지게 하는 등의 행위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33] 재미있는 점은 저때부터 kt는 쭉 강팀이지만 두산, 삼성은 모종의 이유로 2022시즌 엄청난 몰락을 겪어서 현재는 가을야구 진출권도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저때 이미 kt는 두산과 삼성을 밟고 우승을 거두었고, 게다가 두산과 삼성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팀들임에도 불구하고 저 두 팀 선수들을 지나치게 갈아서 두 팀 팬들에게 이미지가 더욱 떨어졌다.[34] 몇몇은 상대 타자들에게 사정없이 두들겨맞았고, 또 몇몇은 제구난조를 보이며 스트라이크존에 투구하지도 못했다.[35] 김원중도 올라올때마다 썩 좋은 투구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위의 투수들보다는 상황이 낫다는 것이 문제. 더군다나 김원중과 더불어 유력한 마무리 자원이었던 고우석이 담 증세 때문에 아예 경기를 뛸 수 없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36] 가뜩이나 롯데, 두산, 삼성은 지난 시즌 7~9위를 찍어 각 팀에서 더더욱 소중한 투수들이다.[37] 타이중 참사는 그나마 네덜란드가 까고보니 강팀이었고 네덜란드가 대만한테 지는 등 다소 운이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하지만, 이번 대회는 그런 변명도 없다.[38] 마침 2021 삼성의 경우 전력이나 감독의 역량 대비 운이 많이 따라서 우승 경쟁을 했던 것임이 드러났고, 두산 역시 2022시즌 몰락하며 2021시즌이 마지막 불꽃이었음이 확실시되고 있다. kt와 한국 시리즈에서 맞붙은 두산의 경우 애초에 외국인 선발투수도 없이 계산이 서는 국내 선발이 2명만 있는 상태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가을야구를 시작하여 전력이 우세한 LG, 삼성의 뻘짓과 함께 풍부한 포스트시즌 경험을 앞세워 한국시리즈까지 업셋하며 올라갔고, 안그래도 kt에 비해 선발투수진에서 전력이 크게 열세인데다 그만큼 경기도 많이해서 힘이 빠질대로 빠진 상태에서 4연패로 맥없이 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애초에 2021시즌은 10개구단 모두가 부진하여 승률 6할이 넘는 강팀이 없는 소위 '빈집털이' 시즌이었다. kt는 정규시즌 막판 이강철의 쓸놈쓸 야수운영으로 인해 한때 1위를 내주기도 하면서 급격히 추락하다가 0.563의 승률로 겨우 공동 1위를 했고, 상대전적과 상성에서 크게 열세였던 삼성과의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서 불과 이틀만 쉬고 나온 윌리엄 쿠에바스의 인생투가 아니었다면 정규시즌 우승도 없었을 것이다.[39] 아무리 한국 시리즈라도 선발을 불펜으로 매 경기 올리는건 찾기 힘들며, 무엇보다 불펜투수라해도 정철원,김원중이 당했던 5경기 연속 등판을 시키지는 않는다.[40] 그리고 같은 단기전이다보니 본인의 성공 경험인 한국시리즈를 들어 반박하려고 했던 듯한데,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거니와 같은 상대와 7전4선승제를 하는 한국시리즈와 전력이 천차만별인 여러 상대와 1경기씩만 하는 WBC 조별리그는 전혀 다르다. 한국시리즈야 모든 경기의 중요도가 거의 똑같지만, 이번 조별리그 같은 경우 승패가 의미있는 경기들은 호주전과 일본전이었고 나머지 두경기는 사회인 야구팀이라 총력전이 큰 의미가 없고 지는게 더 어려웠던 경기다. 팬들이 화가 나있는 포인트는 정작 중요한 두경기를 본인이 말아먹고 나서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체코전과 중국전에서도 총력전을 하겠다고 앞선 두경기에서 잘던졌던 투수들만을 계속 올렸다는 점이고, 이강철의 말대로라면 체코전, 아니 탈락이 확정되고 난 뒤에도 굳이 원태인을 올린 중국전까지도 한국시리즈 급의 경기라는 말이냐고 분노하고 있다.[41] WBC 이전까진 kt팬들조차 팀을 강팀으로 만들고 우승시킨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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