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모토 타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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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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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유니폼을 입은 스기모토. 왼쪽 선수는 이대진, 오른쪽은 아킬리노 로페즈.

이름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생년월일
1959년 5월 3일
국적
일본
출신지
시즈오카현 슨토 군 오야마정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0년 드래프트 3라운드 세이부 라이온즈 지명
소속팀
세이부 라이온즈 (1981~1984)
주니치 드래곤즈 (1985~1990)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0~1993)
지도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군 투수코치 (1995~1997)
세이부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1998~2001)
후쿠오카 다이에-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투수코치 (2004~2005)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투수코치 (2006~2008)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군 투수코치 (2009)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10)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0)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012~201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1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2군 순회 투수코치 (2017~2018)
프런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스카우터 (2011)



1. 개요
2. 현역 시절
3. 코치 시절
4.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5. 이후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2. 현역 시절[편집]


1978년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의 사회인야구 다이쇼와 제지팀에 입단하며 3년간 활동하다가 1981년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야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감독은 히로오카 타츠로, 동료로는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이토 쓰토무,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와타나베 히사노부가 있었다. 주니치 드래곤즈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거치며 1993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현역 시절에는 통산 81승을 거두었다. 83, 86 ,87년에는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기도 했다.

여담으로 현역시절이었던 1986년 어느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나카하타 키요시를 상대로 시속 90km짜리 커브를 던져 끝내기 홈런을 맞고 덕아웃에 들어와 글러브를 내팽겨친 적이 있다고 한다.


3. 코치 시절[편집]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No.76[1]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세이부 라이온즈 No.70[2]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No.71[3]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85[4]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No.77[5]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커리어의 좌완투수 정도로 기억될 이 양반이 일본 야구팬들에게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코치시절 투수 커리어를 망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1993년 현역 은퇴 후 1994년에는 마이니치 방송의 야구 라디오 해설가로 1년간 활동했다. 1995년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2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8년에는 세이부 라이온즈의 1군코치로 임명되어 2001년까지 활동했다. [6] 2004년에는 다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2군 코치로 돌아왔고 2006년부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1군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투수 왕국이라 불리던 호크스였지만 병맛나는 투수교체 타이밍과 그의 손을 거치면 맛탱이가 가버리는 투수들의 속출로 2008년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전까지 퍼시픽리그 3위였던 팀을 전년도 대비 평균자책점 1점을 상승시키며 단숨에 꼴찌로 추락시키며, 시즌 종료 후 짤리고 말았다.[7]

병맛나는 투수교체 타이밍의 예로 2007년 5월 3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교류전에서 3-0으로 잘 이기고 있다가 6회말 어이없는 계투 투입으로 찬스를 계속 내주다 대타로 나온 야노 켄지에게 역전 만루홈런을 맞으며 패배를 자초했던 경기가 있었다. 이 경기에 대해 세이부 라이온즈의 전신인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강타자 출신 야구 평론가 토요다 야스미츠는 "참으로 멍청한 계투 운용이 아닐 수 없다" 라며 대놓고 까기도 했다.

2009년 용케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투수코치로 부임, 가뜩이나 빈약한 투수진이 문제인 팀에서 소프트뱅크 시절처럼 황당하게하는 계투운용[8]과 도대체 투수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를 정도로 부상 투수들이 생겨나며 팀의 2년 연속 꼴찌를 이끌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짤렸는데, 이 때 요코하마 팬들은 물론 프런트건 코칭스태프이건 모두 만세를 불렀다고 하는 루머가 있다.


4.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편집]


KIA 타이거즈 No.78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2009년 시즌 종료 후 요코하마에서 짤리자마자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로 부임했는데, 이것은 전년도까지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로 있던 칸베 토시오의 추천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2ch 상주 일본인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13:09:35 ID:ZjjnIDly0
( ´・ω・`)

13:11:52 ID:PYt/i7A+O
기아, 간만에 우승했는데 안됐다.
이제 끝났네.

13:15:46 ID:hGuTuy4O0
데스기모토 말하는 거?

13:16:03 ID:FtE6IlYn0
투수진 아작 나겠다 ㅋㅋㅋ

13:20:27 ID:Z+5L3xBn0
[[구톰슨]]이 넘흐 불쌍해....

13:22:33 ID:JBZ8pU0k0
코리안 머신건 아냐.

13:25:03 ID:hjc9UMdvO
이건...
기아가 불쌍한데...

13:27:53 ID:D8OZ3+StO
이 사람, 평이 안 좋은 거 같던데.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야?

13:28:25 ID:vYt3lAnu0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현역 일본인 코치는
[[오치아이 에이지]], [[타네다 히토시]]에 이어 이걸로 세 명째인가?
아니면 더 있나?

14:15:11 ID:n/oEmiyz0
SK인가 하는 팀에 아카호리[* 아카호리 모토유키. 90년대 [[킨테츠 버팔로즈]]의 주전 [[마무리 투수]]였다.]도 있을 걸?
아마 전체로 보면 더 있을 거야.

13:33:04 ID:5Zus8KwZ0
[[구톰슨]][* 2007 ~ 08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 으헉 !

13:46:14 ID:2chH8aOn0

13:46:41 ID:r7l3l4gN0
역시 요코하마에서 짤렸구나...

14:19:42 ID:xOG+zmHAO
코치 능력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취직 자리를 구하다니.

14:20:39 ID:WTfapV420
요즘 들어서 KBO에 가는 일본인 코치들이 많네.

14:28:20 ID:o76spk940
무능함
투수 혹사
부상자를 만들어냄
마운드에 올린 투수는 얻어맞음
팀 분위기를 해침
암흑의 청부사

전 시즌 우승팀에 이 인간이 가서 투수진이 붕괴됨 →
팬들에게 야유 받음 →
선수 탓이라고 돌림 →
2군 코치로 떨어짐 →
시즌이 끝난 후 해고

아마 이렇게 될 듯.
어쩌면 시즌 중에 짤릴지도.

15:13:27 ID:bkBY9d780
기아 끝났다.


부임하자마자 이미 변화구를 많이 익혀 고질적인 어깨 근육통을 달고 사는 윤석민에게 슈트를 가르친다는 내용의 기사가 떴고, 시즌이 시작하자 2008~2009년보다 더 알 수 없는 계투 운용[9]과 도대체 선수들 투구폼에 뭘 손댔는지 투수들의 전반적인 구위 하락이 발생하며 KIA 타이거즈의 창단 후 첫 두자릿수 연패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된다.

게다가 전임 투수코치였던 칸베 토시오가 마운드 위에 올라갔다 오면 투수들이 안정을 찾고 다시 잘 던지던 것에 비해, 이 양반이 올라오면 오히려 투수들 멘탈이 어떻게 되는건지 불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이상군, 양상문급의 무능한 투수코치. 이렇듯 선수들을 작살낸다는 것 때문에 위에 있는 일본인의 반응에도 나오지만 붙은 별명이 데스기모토[10]이다. 그런데 어째 양현종하고는 상성이 맞는 것 같다.


5. 이후[편집]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No.88[11]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No.73[12]
스기모토 타다시 (杉本正)

그리고 2010년 7월 23일 2군 코치로 밀려났다. 그런데 2군에 내려갔다가 올라온 곽정철이 호투하자 디시 KIA팬들 사이에선 간베 코치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진정한 2군 코치, 그가 있어야 할 곳은 함평뿐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2010시즌 종료 후 KIA 타이거즈가 조규제 코치를 새로 영입함과 동시에 해임되었다.

그런데 2011년 그의 뒤를 이어 투수코치가 된 이강철 때문에 KIA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가 되자 스기모토에 대한 재평가가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칸베옹이 병신같은 KIA 투수진을 위해 보낸 인재로 결론이 나고 있다.

KIA와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한국과 일본에서의 별 다른 성과가 없는 인물이었는데도 곧바로 2011년에는 라쿠텐의 스카우트로 활동했고 2012년에 세이부로 복귀, 2013년까지 1군 투수코치를, 2014년에는 2군 투수코치를 역임하며 생존왕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4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하고 별 다른 거처를 찾지 못했는지 이대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역시 생존왕답게 2015년부터는 일본 도쿄권에서 세이부 경기를 중계하는 분카방송의 해설자와 스포츠 닛폰(스포츠 신문)의 야구 평론가로 임명되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7년부터 라쿠텐의 1·2군 순회투수코치로 임명되어 3년만에 현장 복귀. 2018시즌을 끝으로 물러났다. 2019년 부터는 다시 스포츠 닛폰의 야구 평론가로 복귀.

지도자로서 마땅한 업적은커녕 팀을 망가뜨려 악명만 높은데 은퇴 후 어떻게든 투수코치로 이팀 저팀 옮겨다니며 활동하고 있다. 투수코치직을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구단의 스카우터나 TV방송, 라디오 방송, 스포츠신문 등의 해설가와 평론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1] 1995~1997 다이에 2군 투수코치 시절[2] 1998~2001 세이부 1군 투수코치 시절[3] 2004~2005 다이에 2군 투수코치 시절[4] 2006~2008 소프트뱅크 1군 투수코치 시절[5] 2009 요코하마 1군 투수코치 시절[6] 세이부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시절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지도해 키워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마쓰자카는 워낙 특급 신인이라 개막전 로스터부터 1군에 올라와서 2군에서 스기모토를 볼 일도 없었다. 프로에서의 마쓰자카의 역량은 같은 투수 출신이자 통산 251승을 올린 라이온즈의 레전드 히가시오 오사무 당시 감독이 장기이던 수싸움 노하우 전수부터 관리까지 직접 맡아서 육성시킨 것이다.[7] 게다가 이 해는 일본의 야구 영웅 오 사다하루가 감독을 맡은 마지막 해였다.[8] 90년대 말 전성기 베이스타즈의 상징과도 같은 '머신건 타선'을 비꼬아 '머신건 계투'라 불리며 조롱당했다. 연속안타를 때려내는 머신건 타선과 대비되게 계투들이 나오는 족족 안타를 허용한다는 의미에서.[9] 세이브 상황인데도 필승조인 손영민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결국 역전을 허용하고 그제서야 유동훈을 올린다던가...[10] Death + 스기모토의 합성어[11] 2012~2014 세이부 코치 시절[12] 2017~2018 라쿠텐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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