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빛가람/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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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윤빛가람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現 수원 FC 소속 미드필더 윤빛가람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클럽 경력[편집]



2.1. 경남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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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되어 경남 FC에 입단했다.

2월 27일 울산 현대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후반 37분 교체 투입되어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이어 5월 26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포스코컵에서 프로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이후 6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 6월 6일 강원 FC전에서도 골을 기록해 3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9월 25일 대구 FC전에서 프로 첫 프리킥 골을 넣었다.

결국 데뷔시즌 활약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1.1. 성남 일화 천마로의 이적 및 논란[편집]


그런데, 2011년 11월 17일 난데없이 성남 일화 천마로 팀에 입단한지 1년만에 이적했다. 경남 FC에서 조재철과 20억을 받는 조건으로 내준 것. 다만 경남 FC 구단이 사전에 윤빛가람에게 고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구단끼리 이적에 합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K리그 규정상 이적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이긴 하지만, 이래서는 인간적으로는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는지라. 여기에 이적 거부권 잘못 행사했다가 커리어가 꼬여 버린 이영표가 구단의 처사를 비난하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무엇보다 윤빛가람 자신도 '인터넷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이적을 알았다'면서 본인도 황당해하는 중.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인저스 FC에서 이적 제의가 있던 터라 유럽 진출을 꿈꿨기에 실망감이 커보인다.

조재철까지 담당하는 김동완이 자신도 몰랐다는 언플을 하는 걸로 봐서는 이미 구단과 에이전트 사이에서 합의가 되고 때리는 언플 정도로 보는 게 맞을 듯. 김동완은 방송일도 해서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애초에 빛가람 언플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 돈을 이길 순 없었지만 경남 FC 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제시한 언플일 수도 있다. 지동원처럼 국대에서 오래 플레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챔 진출한 성남 일화 천마에서 뛰며 유럽 진출을 노릴 수도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더구나 경남 FC는 도민구단이라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고, 설상가상 2013 시즌부터 승강제가 도입된다. 대기업 소유 구단들이라면 몰라도, 시민구단들은 2012 시즌 가혹한 생존경쟁에 떠밀리는 터라 전력보강이 절실한 형편이다. 선수 한 명 돈 한푼이 아쉬운 판국에, 선수 쪽에서 헐값이라도 좋으니 해외에 진출하겠다고 나서면 구단은 그냥 대승적 차원에서 나가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과거 전남 지동원이 바이아웃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해외진출에 성공한 사례를 생각한다면 한층 실망스러울 수밖에.[1]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선수의 권익를 우선으로 하여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니만큼 이 점에 관해서는 경남이 훨씬 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시 K리그 규정 상 국내 이적 시에 연봉이나 기본급을 조금이라도 더 높게 주면 거부권이 없었다.[2] 당시에는 거부할 경우 임의탈퇴로 간주되어 국내 어디에서도 뛸 수 없었다.

선수단 관리 규칙

제 33조 (선수 계약의 양도)

① 각 구단은 보유하고 있는 소속 선수를 타 구단에 양도(임대 또는 이적)할 수 있다. 구단이 보유선수를 양도할 수 있는 기간은 제12조(등록)의 등록기간에 따른다.

② 선수는 원소속 구단에서의 계약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기본급 연액과 연봉 중 어느 한쪽이라도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될 경우, 선수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③ 상기 ②항과 관련하여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경우, 선수는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된다.


감정적인 부분, 실제적인 부분과 별개로 당시 이적에 관한 K리그의 규정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상황일 수 있고 구단이 선수를 물건 취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선수가 원하는 클럽에 이적시키는 것은 물론 구단의 계약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러나 선수가 원하지 않는 구단으로의 강제 이적은 선수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영표의 경우도 이적 시장 막판에 거부했기 때문에 양 구단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영표의 커리어 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수의 의지에 반하는 이적이 강제 성사되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적 계약에서 선수는 당사자이지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구단과 K리그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해외 이적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선수의 의지에 반한 이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적을 거부할 때 선수를 매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 사건은 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느냐의 문제이고, 결국 구단이 먼저 때린 사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후 경남에서 김주영의 바이아웃, 루시오 이적 파동으로 욕을 몇 바가지 더 퍼먹으면서 윤빛가람 이적 사건은 그냥 묻혀 버렸다


2.2. 성남 일화 천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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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기준 성남빠들의 무한한 분노를 사고 있는 중. 한상운, 블라디미르 요반치치와 함께 한요윤을 결성한 성남빠들 공공의 적. 수는 적으나 독기만은 탄천을 메우는 성남빠들의 인터넷 배회처에서 성씨 대신 그러한 욕설적 접두어가 붙지 않고서 이름이 불리는 일은 극히 드물며, 대화 내용에도 욕설이 따라붙기 다반사. 성남에서는 조기 축구 자리라 할지라도 윤빛가람 이름자만 나오면 입을 모아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다. 아침에 모여서 욕하고 운동한 다음에 점심에 밥 먹으면서 식사자리 가십으로 욕하기 일쑤. 성남과 관계없는 K리그 팬들 역시 탄식과 비웃음을 연발하며 좀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K리그 팬들이 몰리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접두어로 욕이 붙고 내용은 멸시와 조롱으로 가득차는 게 태반. 심지어 축구 선수 부모 사이에서도 조금 뜨더니 스타 의식에 빠져 자만하는 이의 대명사로 통하며 타산지석의 좋은 교보재 및 가십거리로 쓰인다고 한다.

성남빠들 사이에서는 이적 이후 윤빛가람이 기대한 만큼의 실적을 보여 주고 있지 않다는 의견을 떠나서 일부러 태업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백태클 퇴장 이후 웃는 모습이 잡히면서 까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올림픽 대표팀 탈락을 보고 성남빠들이 꼴 좋다고 좋아할 정도. 그리고 결국 2군행. 이후 한국 올림픽 대표팀의 동메달과 병역 면제가 확정되자 성남빠들은 배를 잡고 뒤집어지는 중(…).

윤빛가람에 대한 샤다라빠 성남빠의 인식은 제멋대로 성남빠풋볼 다이어리에서 확인해보자. 샤다라빠가 골닷컴툰에서 요즘 부진한 이유.

성남 입단 이후 윤빛가람이 어떤 플레이를 했느냐에 대해 간단히 스탯으로 대답해 보자면, 36라운드 기준으로 1.8%라는 가공할 만한 슈팅 성공률을 기록하였었다. 57번 슈팅을 날려서 1골 들어간 것.

시즌 종료 후의 스탯은 68슈팅 1골, 1.5%의 슈팅 성공률. 저 1골이 프리킥이란 걸 생각해 보면 필드 슈팅 성공률은 0%다.

2013년 성남 전지훈련에서도 당연히 2군 명단에 들었다.

2013년 2월 당시 신태용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윤빛가람의 멘탈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 놓기도 했다. 윤빛가람+한상운+요반=시망

한편, 윤빛가람은 성남에서의 활약은 대놓고 태업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부진한 플레이를 펼쳐 일명 한상운+윤빛가람+요반=한요윤이라고 부르면서 성남의 팬들에게 놀림을 당했는데, 마침 본인이 이적하고 싶어했던 레인저스 FC가 구단주의 병크로 인해 재정난으로 4부 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성남 팬들은 "윤빛가람을 처음부터 성남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레인저스로 보내서 4부 리그에서 뛰게 만들어야 했다."고 속터지는 반응을 보였다. 후에 윤빛가람이 팀을 떠난 이후에도 성남 팬들과 윤빛가람은 아직까지 서로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여진다.[3]


2.3. 제주 유나이티드 FC 1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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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시즌 만에 2013년 2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당시 U-17 대표팀에서 윤빛가람을 지도했던 박경훈 감독이 제주를 맡고 있는만큼, 윤빛가람 본인에겐 기회가 될 듯 했다. 12시즌 주역이었던 산토스와 자일이 이탈하고 선수층이 깊지 못한 제주이기에 예전 기량이 나온다면 주전 확보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지만 형편없는 멘탈을 박경훈 감독이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한편 성남 팬들은 앓던 이가 빠진 듯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태용, 안익수 두 감독이 포기한 데다, 대표팀에선 조광래, 홍명보, 최강희 감독도 윤빛가람 카드를 버렸던 전적이 있는만큼 전력 손실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넷상에서는 어쨌든 해외 진출했으니 소원 성취하셨네하는 깨알같은 블랙 조크가 나돌고 있다.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은사인 박경훈 감독의 지도 아래 빠른 속도로 제주에 적응하는 중. 경기력도 상당히 끌어올린 모습이다. 아직 판단은 이르지만 예전 경남에서의 모습을 꽤 회복해 가고 있다. 3R까지 진행된 현재 제주의 전 경기에 출장을 하였으며 비록 한골도 넣지는 못하고 있으나 2, 3R은 선발 풀타임 출장. 2라운드 성남전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경기력을 선보여 성남팬들의 성질을 돋궜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26라운드가 종료하고 제주는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다. 박경훈 감독은 윤빛가람을 모든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에 실험해봤으나 부족한 활동량 때문에 권순형과 송진형이 동시에 뻗는 현상이 벌어졌다. 정작 윤빛가람도 공격 포인트를 많이 기록하지 못했다. 덕분에 축구팬들이 거품 좍 빼고 보니 터질 포텐 하나 없다고 평가할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다. 2007년에 허정무 감독이 윤빛가람을 평가한게 그대로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허카우터의 위엄###[4]

한편 U-20 대표팀 돌풍의 주역 중 한 명인 류승우를 제주가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였다. 가뜩이나 불안한 입지는 한층 더 좁아질 듯 하다.

결국 2013 시즌 스탯은 31경기 43슈팅 1골 2도움으로 작년 성남 때와 다를 바 없는 경기력으로 마무리하였다. 축구 센스는 분명히 있고 드문드문 날카로운 패스나 슈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 공격 수비 전반적인 모든 면에서 이름값에 못 미치는 활약이라는 평가다. 그렇다고 아예 폭망한 경기력은 또 아니고, 이번 시즌 제주의 전체적인 경기력 자체가 전반적으로 예년에 비해 다운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박경훈 감독이 계속 믿어주고 있으니 내년 시즌을 기약해 봐야 할 듯.

2014년에도 그럭저럭 꽤 괜찮은 활약을 했고, 2015년부터는 완벽히 부활했다. 아니 부활을 넘어서 2015년 폼이 경남 시절보다 더 좋다. 2년간 박경훈 감독 밑에서 전술을 익힌 뒤, 조성환 감독 체제에서 패스 축구의 중심이 되어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특히 날카로운 킬패스와 킥력은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평가. 로페즈, 송진형과 함께 제주의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제주는 시즌 중반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인천, 전남과의 상위 스플릿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2.4. 옌볜 푸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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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한 옌볜 푸더로 이적하였다. 드디어 해외 진출

일부 팬들이 중국 진출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보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5월부터 부상으로 출전히 힘들어진 하태균, 7월에 들어서야 제컨디션이 돌아온 김승대과는 달리 개막전부터 꾸준히 공격의 핵 노릇을 하고 있고, 이런 활약들 덕분에 2016년 6월에 오랜만에 국대에 뽑힐 수 있었다. 옌볜에서는 미드필드에서 큰 활약을 했고, 부상 및 적응 문제로 개점 휴업 상태였던 다른 두 한국 선수와는 달리 팀에 큰 공헌을 했다. 2016년에는 30라운드 중 25경기 출장, 8골을 넣었다.

2017년 여름에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귀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개월 동안 K리그에서 짧게 뛴 후에 상주 상무아산 무궁화로 입대하려는 듯. 그리고 옌볜과의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5] 전역한 후에는 다시 옌볜 푸더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며, # 여름 이적 시장을 앞두고 전북 현대 모터스를 포함한 9개 팀[6][7]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 하지만 옌볜 푸더에서 비싼 임대료를 요구했기 때문에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협상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얼마 안 있어 상위 랭크에 있는 K리그 클래식의 3∼4개 팀 가운데 한 팀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그런데 얼마 후.....


2.4.1. 제주 유나이티드 FC 2기 (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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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6일 제주 유나이티드 FC로 임대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나왔다. # 그 전부터 나온 윤빛가람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입단이 유력한 것으로 보였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옌볜 푸더에서 요구한 3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임대료 때문에 고민하다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선수에게 거액의 임대료를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영입을 포기하였고 제주 유나이티드울산 현대옌볜 푸더에서 제시한 임대료와 연봉을 합치면 10억 원에 이르기에 살짝 난색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뜬금없이 제주 유나이티드로 임대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나왔다. 그것도 무상 임대고 선수 본인 연봉도 자진 삭감한다고 해서 말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축구팬들은 의아해했는데 윤빛가람 측에서는 '입대 전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자신의 성남 일화 천마 시절 때 방황하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해외 진출을 도와준 구단을 위해 돕고 싶다는 결심했다'고 밝혔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옌볜 푸더와 윤빛가람이 거액의 임대료와 높은 연봉을 원해서 언론플레이를 한 후에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길 원했으나 본인들 뜻대로 전북 현대 모터스가 행동하지 않자 이대로 가다가는 상주 상무아산 무궁화가 아닌 현역병으로 입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제주 유나이티드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하였다.[8]

7월 19일 상주 상무전에서 복귀,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반 시즌만 활약했음에도 이창민, 권순형과 함께 중원에서 맹활약했다.

2010년 구자철의 포스를 보여주며 팀의 7년 만의 리그 준우승에 큰 기여를 한다.


2.4.2. 상주 상무 (군 복무)[편집]


2017년 12월 27일 발표된 상주 상무의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면서 2018년부터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24R 친정팀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서 간접프리킥을 받아 득점에 성공하면서 리그 통산 46번째 30-30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상주 잔류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런데 2019년 2월 원 소속 팀인 옌볜 푸더가 재정난으로 해체되면서 제대 후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2019 시즌을 앞두고 1월 8일에 있었던 제주 유나이티드 안승희 단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임대 영입했던 윤빛가람의 경우 올해 말로 계약이 만료되는데, 올 시즌이 끝나고 완전 영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9]#

2019년 K리그 1 개막전인 강원 FC전에서 멋진 중거리 슛으로 시즌 첫 골을 신고했다.

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도 송시우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4라운드 FC 서울전에서 수비 상황에서 공을 걷어낸다는 것이 김경재의 몸에 맞고 자책골이 되어 패배에 일조했다.

9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 2:2로 맞선 상황에서 본인이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찼고, 이것이 환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결승골을 기록했다.

11라운드 성남 FC전에서도 프리킥으로 득점에 성공했으나 동료들의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되었다. 이 판정은 다소 논란이 있다.

14라운드 경남 FC전에서 박용지가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며 득점했다.

1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송시우박용지의 다리 사이로 흘려 준 컷백을 그림 같은 감아차기로 연결, 득점에 성공했다.

21라운드 대구 FC전에서 PK를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2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 박용지가 얻어낸 PK를 아슬아슬하게 성공시키며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했다.

24라운드 경남 FC전에서 박용지가 얻어낸 PK를 파넨카 킥으로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2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PK가 막혔지만 다시 밀어 넣으며 득점했고, 이후 박용지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K리그 역사상 19번째로 40-40 클럽에 가입했다. 이로써 상주에서 두 시즌 동안 30-30과 40-40을 모두 클리어하고 전역하게 됐다.


2.5. 제주 유나이티드 FC 3기[편집]


전역 후 강등 위기의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32라운드 대구 FC전에서 안현범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고, 35라운드 경남 FC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엄청난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복귀 후 괜찮은 폼을 보여 줬지만 이미 조직력이 무너진 제주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시즌 종료 후 국내는 물론, 중국과 중동의 여러 팀들이 오퍼와 협상을 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1월 말 각종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에 울산 현대의 구단 지정 병원에서 메디컬 테스트를 봤다는 목격담이 올라오면서 울산 이적이 유력해졌다.


2.6. 울산 현대[편집]


2020년 1월 31일, 울산 현대 이적이 확정되었다. 계약 기간은 4년. 선수 소개 멘트는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더, 중원의 천재[10]

등번호 역시 에이스 10번을 배정받았다.

2.6.1. 2020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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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1. K리그, FA컵[편집]

1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선발 출전해 중원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 주었고, 후반전 막판 기습적인 중거리 슛으로 4번째 골을 넣으며 울산 데뷔골을 기록했다.

7라운드 강원 FC전에서 김인성의 컷백을 문전 앞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8라운드 FC 서울전에서는 후반전에 2차례 엄청난 중거리 슛을 선보였으나 유상훈의 슈퍼 세이브에 모두 막히고 말았다.

9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현대가 더비에서 팀이 예상과 달리 경기 내내 전북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와중에 후반전 반격을 주도하고 몇 차례 키패스와 찬스 메이킹을 선보이는 등 그나마 제 몫을 했으나, 경기 종료 직전 쿠니모토에게 쉽게 제쳐지고도 가만히 걸어 다니면서 방관하는 최악의 플레이로 실점에 관여하면서 팀은 0:2로 패배했고, 또 다시 정신 상태에 관해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11]

fa컵 8강전 강원과의 경기에 선발출전해 후반 5분 엄청난 중거리포로 선제골을 터뜨렸으며, 후반 9분 김태환의 크로스를 박스 안에서 발리슛으로 연결시켜 멀티골까지 뽑아내었다.

14라운드 부산전에서 완벽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해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이 골로 리그와 리그컵 포함 통산 50호골을 기록했다.

20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현대가 더비에 선발출전했다. 9라운드에서의 부진을 털어버리려는 듯 왕성한 활동량과 적절한 수비가담, 날카로운 중거리 슛과 프리킥 몇 차례를 보여주었으나 슛은 송범근의 선방에 죄다 막히고 말았고 팀도 1:2로 패배해 복수혈전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26라운드 전북 현대와의 올 시즌 리그 마지막 현대가 더비에서 전반 22분 날린 날카로운 프리킥이 골대를 맞아버렸고, 후반에 1: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시간에 얻어낸 프리킥에서 다시 한번 회심의 슈팅을 날렸으나 야속하게 이 슈팅마저 골대를 맞아 팀은 1: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27라운드 광주전에서 원두재의 크로스를 밀어넣어 결승골을 기록했다.

FA컵 결승 1차전 전북전에서 완벽한 스루패스로 주니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2.6.1.2. ACL[편집]

ACL 조별 2차전 상하이 선화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려 팀의 3:1 대승에 크게 공헌했다.

ACL 조별 3차전 퍼스 글로리전에서 툭 내주며 김인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ACL 조별 5차전 FC 도쿄 전에서 뒤지고 있던 전반 44분 상대 골키퍼가 반응하지 못하는 환상적인 오른발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만들었으며, 후반 40분 골문 앞에서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역전골까지 성공시켰다.

ACL 16강 멜버른전에서 전반 3분 골문 앞에서 홈런을 날렸으나 후반 31분 완벽한 프리킥 크로스로 원두재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ACL 4강 빗셀 고베전에서 빗맞은 슈팅으로 존슨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결국 연장 끝에 울산이 2:1로 고베를 꺾으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ACL 결승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0:1로 뒤진 상황에서 전반 종료 직전에 PK를 유도해 동점골에 기여했고, 울산이 페르세폴리스 FC를 2:1로 꺾고 우승에 성공하면서 2020 ACL MVP를 수상하였다. 이번시즌 ACL에서 4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2020년 베스트 풋볼러 인 아시아에서 5위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한국선수들 중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6.2. 2021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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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클럽 월드컵에서 크로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 후 그대로 바이시클 킥으로 연결하는 한국축구 역사에 남을 초 원더골을 넣었으나...오프사이드가 선언되면서 취소되었다.영상

2월 5일 산동 루넝,광저우 헝다와의 이적설이 대두되었다. 애초 중동쪽에서 제시를 했으나 무산되었고, 이러던 와중에 중국에서 제의를 했다. 아직 4년이 남아서 완전이적인지 혹은 임대이적인지는 모르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연봉을 제시받으면 울산입장에서는 잔류시키기 쉽지않다.

2월 7일 클럽 월드컵 5위 결정전 알 두하일 SC와의 경기에서 팀이 0 대 1로 끌려가던 와중 박스 안에서 시도한 과감한 왼발 슈팅이 상대 수비수 맞고 골망을 흔들어 천금 같은 동점골을 기록했다. 이 날 팀은 패배했지만 선수 본인은 지난 시즌과 더불어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2월 20일 서호정기자 유튜브 썰호정에서 홍명보감독의 1대1 면담으로 잔류를 선택했다. 이쯤되면 홍명보 감독은 이전 김도훈과 달리 선수단을 이끌 수 있는 리더쉽은 통했다고 무방하다. 3월 1일 강원 FC와의 리그 1R 홈 개막전에서 김지현이 얻어낸 파울을 통해 프리킥 선제골을 성공시키면서 리그 첫골을 만들어내어 팀의 5:0 대승에 기여했다.

3월 9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전반 13분 이동준이 얻어낸 PK를 실축했으나 차기 전부터 오재석이 페널티 박스 안에 발을 하나 넣고 있었기에 다시 기회를 얻어 깔끔히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넣었다. 이후 후반 13분 델브리지의 파울을 유도해내 이동준의 PK 추가골에 기여하기도 했다.

4월 3일 성남 FC와의 리그 7R에서 전반 27분 정확한 크로스로 이동준의 헤더골을 어시스트해 시즌 1호 도움을 기록, 1:0 승리에 기여했다.[12]

5월 19일 전북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중원에서 대활약하며 코너킥에서 불투이스와 힌터제어의 골에 2어시스트를 적립했다. 후반 막판에 이동준에게 완벽한 스루패스를 찔러주며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할 수도 있었으나 이동준이 아쉽게 기회를 날리며 어시트릭은 실패했다. 그래도 팀은 4:2로 완승을 거두며 리그 1위를 탈환했다.

5월 22일 리그 18라운드 홈에서의 동해안 더비에선 김인성이 얻어낸 프리킥 찬스를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집어넣어 결승골을 득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6월 20일 성남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전반 14분 프리킥 상황에서의 날카로운 패스로 힌터제어의 선제골에 어시스트를 적립했다.

6월 27일 ACL 조별리그 1차전 비엣텔전에 선발출전해 후반 1분을 남기고 신형민과 교체 아웃됐는데,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에서 부상 선수가 몇 명 생겼다는 뉘앙스의 말이 나왔고, 2차전 빠툼전에 명단 제외되며 부상을 당한 게 확실시 되는 상황이다. 다행히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리 큰 부상은 아닌 듯 하다.

7월 5일 부상에서 복귀해 카야 FC 전에 선발로 나왔다. 전반 27분 박스 안으로 날라온 크로스를 슈팅으로 연결하려다 다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넘어져가지고 박스 안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상황이였는데, 혼전 상황에서 힌터제어가 날린 슛에 앉아 있는 채로 안면을 가격당해 코스가 굴절되며 얼떨결에 선제골을 득점하게 됐다. 이후 후반 시작하자마자 울산이 골을 먹혀 후반전을 어렵게 풀어가는가 했지만 오세훈의 패스를 받아 환상적인 터닝 발리 슛으로 다시 앞서나가는 멀티골을 넣는 데 성공, 2:1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ACL 이후에는 당시 올림픽 이후 각성한 이동경이 워낙 좋은 폼을 보이고 있던지라 조금씩 출전시간이 적어졌다.

9월 14일 ACL 16강전 가와사키 프론탈레 전에서 이청용과 함께 후반 12분에 교체투입됐고,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상단을 노린 슈팅으로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13]

10월 17일 ACL 8강 전북과의 현대가 더비 원정에서도 선발로 나왔고, 날카로운 중거리 슛이 골대를 맞추기도 하는 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다 연장 전반 짧게 내주는 패스로 이동경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10월 20일 ACL 4강 동해안 더비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원두재가 후반 23분 퇴장당한 직후 박용우와 교체 아웃됐고, 팀은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탈락의 고베를 마셨다. 하지만 윤빛가람은 2년 연속 ACL 베스트 팀에 선정됐다.

11월 21일 제주와의 홈 경기에 선발로 나와 후반 10분 절묘한 스루패스로 오세훈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간만에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2021시즌 울산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포함해 도합 40경기 출전 6골 7도움.

시즌이 끝난 후 성남, 대전, 대구, 제주, 수원 FC 등 여러 팀과의 이적 썰이 돌았는데, 12월 20일에 친정 팀 제주로 이적한다는 단독기사가 떴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적료는 없다고 한다. #


2.7. 제주 유나이티드 FC 4기[편집]


2022년 1월 3일, 제주 구단에서 윤빛가람 영입을 공식발표 하였다. 이로써 3년만에 제주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2.7.1. 2022년[편집]


합류 직후 1월 7일 최영준과 함께 팀 부주장에 임명되었다. 등번호는 이전 제주에서 썼던 14번.

개막전 포항과의 경기에 바로 선발 출전하였는데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85분에 교체 아웃됐고, 이후 컨디션 난조와 부상을 이유로 3경기동안 결장했다.

5R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 명단에 복귀했으나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다.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반 결장했지만, 4월5일 울산전 이후 출전은 물론 아예 경기 명단에서 계속 제외되어 궁금중을 자아냈는데, 이후 남기일 감독이 부상 문제는 아니고 그저 경쟁에서 밀려 플랜에서 제외됐다고 밝혔자.

이후 여러 채널 등을 통해 남기일과 윤빛가람 둘 간의 불화가 있었다고 보도되었고, 실제로 선발에서 밀린 이후 윤빛가람은 팀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이에 남기일 입장에서는 팀 훈련도 참여하지 않는 선수를 기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14]

이에 자연스럽게 부주장직도 바로 내려놓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타구단 이적설이 돌았는데, 국내에서는 수원 FC대구 FC가 거론되는 동시에 중동팀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뜨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는 윤빛가람을 아예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여 성남의 뮬리치박수일을 영입하고자 하였으나, 선수 본인의 트레이드 거부로 인해 무산되어 결국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선 K리그 타팀으로 이적하진 않을 전망으로 보였다. 이후 남기일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다시 경기에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며 잔류하는것이 기정사실화 됐다.

8월 5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선수단의 연이은 부상 이슈로 인해 약 4개월여만에 선발출장해 복귀전을 가졌으며 장기 결장한 선수 치곤 좋은 폼을 보여주었다.

8월 14일 28R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4-3-3 포메이션의 좌측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하여 장거리에서 기습적으로 날린 무회전 프리킥이 포항의 골문을 가르며 제주 복귀 골과 함께 시즌 첫 골을 넣었고, 제르소의 추가골 장면에서도 윤빛가람의 환상적인 롱 패스가 기점이 됐다. 후반 26분에는 진성욱의 패스를 받아 멀티골까지 넣으며 맹활약, 팀의 5:0 대승에 기여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시즌 첫 MOM과 함께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확실히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3-4-3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렸으나, 4백의 3미들 채제에서는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며 제주의 또 다른 중원 옵션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10월 8일 35R 포항 스틸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전 8분 제르소 페르난데스의 백힐패스를 받고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후반전 교체아웃 되었고 팀은 동점골을 먹혔지만 2 : 1 역전승을 거두었다.

12월 9일 수원 FC 이기혁하고 트레이드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2022시즌 제주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16경기 출전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2.8. 수원 FC[편집]


파일:20230104154909166.jpg

이기혁과의 트레이드로 수원 FC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오다가, 결국 2023년 1월 4일에 수원 FC 구단에서 트레이드 형식으로 윤빛가람 영입을 공식발표했다.

2.8.1. 2023년[편집]


이적 직후에 바로 팀 주장직도 함께 맡게되었다.#

제주에서 달던 등번호 14번을 그대로 달게 됐다.

6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후반 프리킥은 아쉽게 득점에 실패했으나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러나 80분에 이광혁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 역전골을 집어넣으며 시즌 첫 골을 기록, 5대3 대승에 기여했다. 수원 입단 후 처음으로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7라운드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에서는 라스에게 감각적인 킬패스를 띄워줘 찬스를 만들어주는 등 전북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로써 두 라운드 연속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8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선 85분에 무릴로가 높게 띄워준 패스를 논스톱으로 때려 동점골을 넣으며 시즌 2호골을 기록, 2대2 무승부에 기여했다. 3연속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9라운두 대구 FC와의 홈경기에선 50분에 날카로운 패스로 이광혁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으나, 이내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리하진 못했다.

11라운드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는 62분에 이미 경고를 한 장 받은 상태에서 서민우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또 다시 경고를 받으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다행히 팀은 수적 열세 속에서도 라스의 골과 무릴로의 그림같은 프리킥 골로 2:0 승리를 지켜냈다. 또한 심판평가소위원회에서 사후 감면을 받아 출장 정지가 취소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16라운두 수원 더비 수원 삼성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전 측면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그대로 하프발리로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2:1 승리와 연패탈출에 기여했다.

17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여 전반 17분 흐른 볼을 정교한 하프발리로 때려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조현우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마무리였다. 그러나 팀은 이후 3실점을 허용하며 1:3으로 역전패했다.

18라운드 대구 FC 원정에서 85번의 패스를 성공시키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팀은 1:3으로 패하며 연패 탈출 이후 다시 연패에 빠지게 되었다.

21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8분 만에 상대 골키퍼 김동헌을 속이는 재치있는 직접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약 25분 뒤에 김현의 힐패스를 이어 받아 델브리지를 제친 후 가볍게 밀어넣으며 추가골을 기록하며 수원 소속 처음으로 한 경기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분전했지만 팀은 2:2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최근 5경기 연속 무승으로 상당히 고생중이다.

22라운드 FC 서울 원정에선 50분에 백종범의 세컨볼 처리 미스를 침착하게 집어넣어 추격골을 기록,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3골을 더 실점하며 대참패를 피하지 못했다.

현재 수원 FC는 리그 10위를 기록하며 강등권에 머물러 있으며 9위와도 승점차이가 10점이나 나기 때문에 하위스플릿 탈출은 둘째치고 강등권 탈출을 당장의 목표로 삼아야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비는 2부리그만도 못하고 공격진에서 그나마 믿을맨이었던 이승우이광혁, 김현이 모두 부진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고 게다가 경기력만 놓고 봤을 때는 강원이나 수원보다도 못하다. 그래도 윤빛가람라스 벨트비크는 제 몫 그 이상을 해주고 있다면서 팬들에게 "강등당하게 되면 좋은 팀으로 가라"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후 수원 더비를 앞두고 주장 자리를 이영재에게 넘겼다.

25라운드 수원 더비 원정에선 전반 26분에 코너킥으로 라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이 도움으로 인해 대망의 50-50을 달성했다.[15] 팀은 이승우의 추가골이 터지며 8경기만에 승리했다.

27라운드 강원 FC와의 원정경기에서 94분 이영재가 올려준 코너킥을 노마크 상황에서 발리로 때려 역전골을 기록, 팀의 2:1 역전승에 기여했다.

36라운드 수원 더비에서 전반 31분 날카로운 코너킥을 우고 고메스가 헤더로 넣으며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카즈키가 퇴장했음에도 수원삼성에 밀려 2:3으로 패배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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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대표팀부터 맹활약한 대한민국 특급 유망주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겪는 수모를 당했는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골짜기 세대라 불렸던 선수들 중 유일하게 쓸 만한 물건으로 평가받았다.[16] 그러나 이후 K리그 비하했다는 음모론에 휘말리면서[17] 커리어 시작부터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은사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후 2010년 8월 11일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바로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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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2011 AFC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도 지동원, 손흥민 등과 같이 어린나이에도 합류하였고, 16강 조별리그 호주전에 출전하여 국제 대회 첫 출전을 기록했다. 1월 23일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연장 전반 추가 시간 엄청난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하여 승리를 이끌어내 당시 준결승 진출에 일등공신이 되었고,[18] 비록 결승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대표팀이 3위를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란전 골 덕분에 한동안 기성용, 구자철과 함께 국대 중원을 책임질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조광래 감독의 경질과 소속 팀에서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이후로는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2015년 들어 소속팀에서 서서히 예전의 감각을 찾아가고 있었고, 당시 실력이 입증되면 국내파와 해외파를 막론하고 골고루 기용하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특성을 감안하여 국대 복귀 가능성이 슬슬 올라오게 되었는데, 결국 2016년 6월 유럽 국가들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국대에 다시 발탁이 되면서 2012년 9월 브라질 월드컵 예선 이후 정확히 3년 8개월 만의 발탁이 되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전반전 페트르 체흐 골키퍼를 상대로 환상적인 프리킥을 성공시켜 선제골을 넣으며 킥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팀은 2:1로 승리.

당시 손흥민, 이청용, 남태희 등 기존에 중용되던 해외파 2선 공격수들이 2016년 들어 대표팀에서 부진을 겪지 못했기에 윤빛가람이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플레이메이커로 대두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2017년 6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신태용 감독이 부임했는데 성남 시절 신태용 감독이 언론에 대놓고 멘탈 문제를 이야기할 정도로 윤빛가람과 관계가 안 좋은지라 당분간 국대에 발탁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였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물론 윤빛가람이 프로 경력이 쌓이면서 멘탈 문제가 많이 개선되었고 신태용 또한 이후로 윤빛가람과 특별히 불화가 있었던 적은 없지만, 신태용호의 4-4-2 전술에 윤빛가람이 들어갈 자리는 없긴 했다.

기성용이 은퇴한 후 국대 미드필더들의 패스, 중거리 슛 성공률이 낮은 편이고 세트피스 키커도 부족하기 때문에 벤투호에 새로 발탁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2020 시즌 울산에서 상당히 괜찮은 활약을 보여 주고 있어서 퇴물로 여겨지던 윤빛가람을 다시 발탁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2020년 10월 국가대표 이벤트 매치인 2020 하나은행컵 친선경기 팀 벤투vs팀 김학범 명단에 발탁되어 오랜만에 국대 승선했다. 이어서 2020 하나은행컵 친선경기 국가대표팀 vs 올림픽대표팀 10월 9일 1차전에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출전하였지만 계속해서 템포를 늦추는 등 4년전과는 달리 아쉬운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결국 2020년 11월 해외원정 평가전에서는 발탁되지 못하였다.

2020년 ACL에서 MVP로 선정되는 등 좋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 만큼, 다시한번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를 약간은 기대해볼만 하였는데, 특히 벤투의 라볼피아나 전술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원하는 팬들도 많았다.

그리고 2021년 3월 일본원정 평가전 명단에 포함되며 지난해 이벤트 매치를 제외하면 사실상 5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으나 3월 21일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결국 팀 동료였던 이동경이 대체발탁되어 대표팀 재승선은 다시 무산되었다. 이후로는 계속 벤투호에 뽑히지 못하였다.

이렇듯 국가대표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선수였지만 그래도 이란전 골, 체코전 골 등 굵직한 임팩트를 남기긴 했다.
[1] 레인저스 FC의 초기 제안은 1년 임대에 임대료 3억 임대 이후 영입 계약을 제시했지만 이는 계약기간이 1년 남은 윤빛가람을 3억 원에 임대로 쓰다가 FA로 풀리면 자유 계약으로 영입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할 것이다. 경남 FC 입장에서 3억 원을 주고 핵심선수를 내놓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에서 20억 원과 선수를 제시한 성남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지동원의 경우는 경쟁이 붙으면서 선더랜드 AFC가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사갔다는 점을 봤을 때, 하다못해 성남의 절반~15억 원 수준의 계약조차도 제시하지 않은 레인저스의 행각은 헐값에 데려가서 써보고, 아니면 말고 이상으로 해석되기가 어렵다.[2]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K리그의 해당 규정을 불공정 약관으로 지정하여 시정되었다.[3] 대표적으로 2019년 성남 FC 최종전인 제주전에서 윤빛가람이 교체로 나갈 때 성남팬들이 단체로 엄청난 야유를 했다. 경기 녹화본에서도 조그맣게 들린다.[4] 해당 기사를 보면 멘탈 지적도 하고 있는데 결국 그 멘탈 문제가 윤빛가람 본인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소름 돋을 정도의 안목이라 할 수 있다.[5] 2016년 기준 3년이 남아있다.[6] 이 중 알려진 구단은 제주 유나이티드, 울산 현대, FC 서울이며 K리그 챌린지 소속의 구단도 있다고 한다.[7] 하지만 FC 서울은 이후 이명주 영입으로 선회하며 발을 뺀 상황.[8] 사실 과거 윤빛가람이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옌볜 푸더로 이적할 때 세부적인 계약사항은 양 구단의 합의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계약 사항 중에서 군 입대 전에 K리그 복귀시에 제주 유나이티드로 복귀한다는 조항이 있었다는 루머가 있긴 있었다.[9]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 상 FA인 상태에서 입대한 선수나, 입대한 후 원 소속 팀의 해체로 인해 전역한 후 돌아갈 구단이 없는 선수가 군 복무를 마친 경우 공식 등록 기간이 아니더라도 전역 후 2주 내에만 선수로 등록하면 출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출처: K리그 규정 제2장 선수 제6조 6항[10] 2020시즌 멘트는 오늘 경기는 내가 지휘한다, 중원의 천재.[11] 허나 이 경기는 중원을 이끄는 신진호의 시합 전 갑작스런 어지럼증 호소로 인한 부상 교체와 전반전 초반 김기희의 다이렉트 퇴장으로 인하여 울산 측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된 상태이기에 모든 선수단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선보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12] 여담으로 이 경기는 윤빛가람이 울산 이적 이후 처음으로 성남 원정팬들 앞에서 플레이를 한 경기였는데, 윤빛가람한테 앙금이 남아있던 일부의 성남 팬들이 윤빛가람이 공만 잡으면 야유를 보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서포터석에 있던 팬들은 윤빛가람이 전반 33분 발리슛을 빗맞춰 넘어지자 조롱 섞인 박수를 보냈을 정도.[13] 문수의 페널티킥 스팟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승부차기에서 슈팅이 뜨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슈팅으로 성공시켰다.[14] 이를 두고 윤빛가람은 훈련을 안하고 클럽하우스를 뛰쳐 나간 것이 아니라 훈련을 안 시켜줘서 못한 거라고 반박했다.#[15] 다만 이 기록은 2010~2011 K리그 리그컵의 3도움이 포함된 기록으로, 2023년 5월부터 기록 개편을 시작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50-50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추후 윤빛가람이 리그에서 3도움을 더 기록하면 50-50에 공식 가입하게 되는 것.[16] 이 때 여론이 얼마나 안 좋았냐면, 당시 U-17 감독이던 박경훈 감독은 전술도 모르고 축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감독이라는 혹평을 받았으며 박 감독 본인도 '다시는 감독 생활을 못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감독이 이 정도였으니 선수들에 대한 이미지는 안 봐도 블루레이.[17] 'K리그는 재미없다.' 'K리그에 존경하는 선수가 없다.' 라는 망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데 후에 윤빛가람이 이에 대해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라면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서 이 발언은 기레기들의 농간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사실, 윤빛가람의 말대로 축구를 하는 유소년 선수들이 K리그에 입단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18]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축구팬들에게 윤빛가람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당시 이란전 결승골일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 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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