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퍼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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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제21대 총리. 1809년 10월 4일부터 1812년 5월 11일에 암살당할 때까지 영국 총리를 역임했으며, 영국 역사상 재임 중 암살당한 유일한 총리이다.[1]
2. 생애[편집]
아일랜드 귀족 제2대 에그먼트 백작 존 퍼시벌의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프레더릭 루이의 측근이었지만, 그가 10살 때 사망했다. 해로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법정 변호사로 일한 후 1796년에 의원이 되었다.
잉글랜드 국교회에 대한 믿음에서 소(小) 윌리엄 피트가 추진한 가톨릭 해방 법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가 경제 장관을 지낼 무렵, 윌리엄 윌버포스가 제출한 <노예 무역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한 대륙 봉쇄로 무역업계가 손해를 보았으며, 1811년에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조지 3세가 회복 불능의 정신 장애에 빠지면서, 퍼시벌은 이것을 살아남을 기회로 생각했다. 섭정 황태자를 자주 맡아왔던 프린스 오브 웨일스 조지(후의 조지 4세)와 그는 대립 관계에 있었다. 조지는 왕실 비용의 증액을 요구할 때마다 거절한 것 때문에 조지는 휘그당의 상징인 퍼시벌을 파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지의 측근들이 퍼시벌의 파면을 단념시켰기 때문에 황태자와 총리는 긴장 관계에 있었다.
1812년 5월 11일 퍼시벌 내각의 경제 정책에 불만을 가진 정신장애인 존 벨링엄에 의해 퍼시벌은 영국 하원(현 서민원) 로비에서 근거리에서 총탄을 맞아 즉사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존 벨링엄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내인 제인은 3년 뒤에 육군 중령인 윌리엄 헨리 카(1777~1821)와 재혼했으나,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여 큰 부상을 입던 카조차도 44살로 요절하여 이후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다가 1844년 74살로 세상을 떠났다. 퍼시벌과 자식들을 8남 5녀나 낳았는데 1년도 못살고 죽은 5번째 아들 찰스(1796년생)와 1824년 아기를 낳다가 33살로 죽은 장녀 제인을 빼고 자식들이 꽤 오래 살았다. 12번째 딸인 프레데리카는 95살까지 살다가 1900년에 사망했다. 4째인 스펜서(1795~1859)는 정치인으로 국회의원과 시장 등을 역임했으며 8째인 더들리 몬터규(1800~1859)도 정치인이 되었는데 1853년 하원 선거에서 맞서다가 패한 게 바로 글래드스턴이었다.
80년대 소년중앙에선 꿈이 미래를 예언한 사례로서 바로 링컨과 같이 며칠전에 총에 맞는 꿈을 꾼 정치인으로서 나온 바 있다. 링컨은 위인전에도 나올 정도로 암살을 각오하고 꿈을 꾸었다고 했지만 링컨 본인은 언제라도 각오할 일이라고 무시했듯이 퍼시벌도 꿈을 꾼 것을 아내에게 말하고 아내가 불길하다고 하자 코웃음치며 무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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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재임 기간 후에도 이 사람 외에 암살당한 총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