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펠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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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제3대 총리.
2. 생애[편집]
1대 펠럼 남작 토머스 펠럼과 로프턴의 펠럼 남작부인 그레이스 펠럼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훗날 자신처럼 총리가 되는 형, 1대 뉴캐슬 백작 토머스 펠럼홀스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컬리지에서 수학하다 옥스퍼드 대학교 이후 허트포드 컬리지가 되는 하트 홀로 학적을 옮겨서 졸업하였다. 1715년 자원병으로 입대하여 프레스턴 전투에서 복무한 후 1717년 보궐선거에서 서식스의 시포드 소속의 국회의원이 되었고, 1722년까지 해당 직위를 역임하였다.
이후 1721년 가문의 영향과 초대 총리인 오폴드 백작 로버트 월폴 경의 추천으로 대장경에 발탁되었다. 1722년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
1724년 전쟁장관 직위를 역임한다. 허나 이후 1730년에 군 재정관 직위를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펠럼은 로버트 월폴 내각이 제안한 소비세 관련 사항에서 월폴 총리를 지지하면서 그의 신임을 어느 정도 얻게 된다.[1]
이후 1742년 정당 연합이 펠럼 내각의 형성을 초래하고 나서, 1743년 스펜서 컴프턴이 사망한 뒤 그의 뒤를 이어 영국의 제3대 총리직을 역임하게 되었다.
1748년에 엑스라샤펠 조약을 체결하여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함에 따라 자신의 권세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1751년에는 진 법[2] 을 제정했고, 1753년에는 유대인의 귀화를 촉진시키는 법도 제정했다.
1754년 총리 재임 중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뒤는 형인 토머스 펠럼홀스가 그의 뒤를 이어 영국 제4대 총리로 재임했다.
[1] 헨리 펠럼과 형인 뉴캐슬 백작, 그리고 월폴 총리의 3자회담이 종종 있었다고도 한다.[2] 진을 판매하려는 상점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차와 맥주를 대용품으로 권장하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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