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펠럼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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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제4, 6대 총리. 6대 총리 재임기간(1757-1762) 동안 프랑스와 7년 전쟁을 치렀다.
2. 생애[편집]
1693년 7월 21일 런던에서 토머스 펠럼 초대 남작과 그레이스 홀스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되고 나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1715년에는 뉴캐슬의 공작 작위를 서임받았다.
1717년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1724년 로버트 월폴에게 해임된 존 카트렛의 뒤를 이어 남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동생 헨리 펠럼도 정치에 입문해서 육군 사무 장관으로 임명된뒤, 펠럼형제는 휘그당에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선 카트렛 경과 펠럼 형제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나자 펠럼 형제는 자신과 대립한 존 러셀을 내각에서 쫓아내는데에 기여해 펠럼 형제의 권세를 위협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곧 북미에서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하노버 왕국을 지키려고 1755년 헤센 대공국, 러시아 제국과 조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두나라에게 많은 공여금을 주었기 때문에, 이 조약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1756년엔 프랑스군이 영국령인 미노르카 섬에 상륙하자, 영국은 먼저 선전포고를 했지만, 존 빙이 이끄는 영국군은 처참히 발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펠럼홀리스가 이끄는 정부의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1757년 그들은 제2차 내각을 출범하는데 성공했고 위대한 평민(The Great Commoner) 윌리엄 피트를 남부장관(現 내무장관, 1757-1761)으로 재임명하여 7년 전쟁을 잘 수행해 나갔다. 그러나 1760년 조지 2세가 죽고, 조지 3세가 즉위하자 뉴캐슬 공작들은 당시 권세를 부리던 존 스튜어트를 견제할 힘이 없었고, 1762년 말까지 토머스 펠럼홀스를 포함한[1] 뉴캐슬 공작과 그들과 친한 사람들도 모두 경질당하게 되고, 다음 영국 총리는 존 스튜어트가 되었다.
그는 내각에서 경질된뒤, 1768년 11월 17일에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 동생인 헨리 펠럼은 1754년에 이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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