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후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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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양상
3. 실태
4. 원인
4.1. 사회·문화적 원인 및 인식 문제
4.2. 국가·제도적 원인
5. 실제 사례
5.1. 현대 한국
5.2. 해외
5.3. 근대 이전
6. 가상의 사례
7. 여담



1. 개요[편집]


살해 후 자살(, murder-suicide)[1]은 사람을 살해한 범인이 범행 후 자살을 기도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사법용어로, 특히 일반적인 살인사건보다는 범인과 피해자가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인 상황에서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범인 자신도 죽음을 택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2. 양상[편집]


흔히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어린 자녀나 노부모, 장애인 등이 포함된 일가족자살 사건이나 사이비 종교의 자살 등 평상시 구성원들에게 매우 강한 유대감이 존재하거나 요구되는 집단의 자살 관련 사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며, 대중적으로는 동반자살의 일종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엄밀히 말해 승낙 살인이나 자살 사주와는 달리 피해자가 자유의지로 생존을 선택하지 못하고 살해당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살해 후 자살을 그 맥락에 관계 없이 동반자살로 표현하는 행위는 자칫 살인자의 범죄를 온정적으로 미화할 수 있어 구분에 주의가 필요하다.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며, 죽은 사람도 한 데 묶어서 '자살자'가 아닌, '살인자'와 '피해자'이다.

단독 자살은 혼자서 스스로 원해서 단행하는 것이라 상황 파악이 상대적으로 쉽고 책임관계도 뚜렷하지만 동반자살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존재한다. 자살자들이 함께 동반자살을 결의한 자살(촉탁살인 등)이 있는 한편, 동반자살을 주도하는 자가 일방적으로 "우리 다 같이 죽자!"고 선언해 집단 구성원들 중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이들을 살려두지 않기 위해 위력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어차피 범인 자신도 죽기를 각오한 만큼 살인행위에 주저함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녀를 살해하는 것으로, 자살을 결심한 일가족 가운데 아직 어린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당연히 죽고 싶지 않거나 아예 죽음이나 자살이라는 말의 의미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살해 후 자살은 자살의 주동(권유)자가 집단 내 구성원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을 빙자한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어린이 권익 단체를 중심으로 "동반자살" 대신에 '자녀 살해 후 자살' 등 다른 표현을 쓰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3. 실태[편집]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우리 사회에서 살해 후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공통되는 원인으로,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그에 기인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꼽혔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이러한 범죄는 동반자살이란 명목으로 미화되거나 윤색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유형의 범행은 동반자살이 아니다. 이 범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다. 살해 후 자살 또는 살해에 수반된 자살에 불과하다.

동반자살이라는 워딩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 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 개인에게 책임을 온전히 묻기 어려운 정신질환자 범죄의 경우에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음에도, 유독 부모라는 사정이 관대한 처벌의 이유로 거론되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는 그 어떤 경우도 용납될 수 없는 중범죄다. 형사정책적으로 볼 때도 자녀 살해 후 관대한 처벌을 노린 자살 시도와의 구별도 사실상 용이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살해 후 자살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다. 사회구조적 요인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책임을 온전히 국가와 사회에게로만 돌릴 수 없다.

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365 판결[2]

판결문 중


2009년부터 최소 279명(미수 포함)의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에 동반됐다. 매달 두 명 꼴이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191건에서 드러난 살해 수법은 번개탄 사용(66건, 34.5%)과 교살(55건, 28.8%)이 가장 많았다. 흉기 사용은 22건(11.5%)으로 집계됐다. 이어 방화 및 투신 14건, 익사 10건, 음독 8건 등으로 나타났다. 흉기 사용이 가장 많은 일반 살인 범죄와는 차이가 있다. 191건 중 생활고 및 빈곤, 채무,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영역의 문제가 가해자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확인된 사건은 97건(50.7%)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일반 자살자의 동기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31.7%)가 가장 컸다.

​아동보호·자살예방 활동가 및 전문가 26명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비극이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지목됐다. 관련기사만 봐도 궁지에 몰린 한 가정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시각의 댓글이 많이 달린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무고한 자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최악의 아동 학대이자 명확한 비속살해[3]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4]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분석 보도 기사에 달린 댓글 인식 조사에서는 32.3%가 가해자를 이해하거나 동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혼자 못 죽는 부모 심정도 이해한다” 등 가해부모가 처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가해자 부모를 탓하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한다는 복합적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나 살림이 퍽퍽했으면 그랬을까 심정도 이해는 하지만 애꿎은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식이다. 가해부모의 선택을 비난한 독자들 사이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오롯이 부모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도 확인됐다. 사건의 책임을 지적한 반응 중에서는 53.3%가량이 가정이나 개인을 언급했다. 원인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는 댓글에서는 가해 부모를 이해한다는 반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피해자인 아동이 언급된 경우는 전체 글 중 16.9%에 불과했다. 사회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을 피해자인 아동보다는 가해자인 부모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4. 원인[편집]



4.1. 사회·문화적 원인 및 인식 문제[편집]


​아동보호·자살예방 단체 소속 활동가들은 온정주의 이면에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가족문화가 깔려있는 것으로 봤다. 한 활동가는 “살해 후 자살 사건을 동정하는 사회인식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오죽했으면’이라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자녀의 생명권을 부모에게 종속시켜 생각하는 부분이 크다”는 답변도 있었다. 다른 응답자는 “가부장적 가족 개념이 강해 가족의 주인은 가장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고, 상대적으로 아동(미성년)에 대한 인권의식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살해 후 자살은 가족을 이끌 수 없는 가장이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가족 자살, 동반자살’로 치부된 문제는 개인사가 아닌 사회·구조 문제에 가까웠다. 실직, 사업 실패, 빚 등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변동하고 이를 수용하지 못할 때 벼랑 끝에 내몰린다. 고립된 인간은 주변에 손을 내밀기보다 스스로 결정내리길 선호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고 회생하지 못한 이들은 ‘부모 없는 아이’의 미래와 운명을 가망이 없어질 것이라 멋대로 예단한다. 부모가 죽으면 아이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생각이 자녀살해의 비극을 초래한다. 부부 갈등으로 표출되는 분노도 어린아이에게 향하기 쉽다.

한 전문가는 “2019년 대한민국은 핵가족화로 가정이 해체됐지만 이를 보완할 공동체는 아직 만들어 지기 전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를 감지할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 등으로 위기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위기 신호를 감지하는 ‘게이트키퍼’를 양성해 해당 가정을 위한 전문 서비스 체계와 연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죽했으면’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것은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국민이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녀의 양육자는 오로지 부모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본인의 돌봄 없이는 아이를 도와줄 곳이 없고 시설 등에서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반영됐다는 것. 한 응답자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부모가 없으면 자녀의 삶이 고되리라는 확신으로 인한 안타까움”이라고 말했다. 한 자살예방 활동가는 “가족이 당면한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실업이나 경제적 문제, 정신과적 문제 모두 개인의 능력이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유가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것은, 부모을 잃더라도 자녀가 현재는 살고 싶을 것이고, 예전과 달리 고아원의 시설도 좋아진 데다가, 고아원 내에서도 착실히 살며 자립을 준비해서 (잘 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살 만할 확률도 분명히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가 어떠할지 모르는 상황에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멋대로 예측해서 '자녀가 힘들게 살 것 같아서'라는 상술한 선입견으로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라고 보기가 힘들다.

제도 안에서 지켜내지 못한 사회 그리고 구조신호에 무신경했던 국가 역시 아이들의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안전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왜 부모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누군가와 상의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누군가 부모에게 안부만 물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사전 예방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서 끝나지 말고 심리적 부검 등 다양한 방식의 조사를 통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자살 사건으로 수사가 종료되면 거기서 분석이 끝나고 만다. 이미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가정에서 참극이 벌어졌다면 국가의 직무유기다. 한 활동가는 “극단에 몰린 사람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와 공적 자원의 부족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해 달라”고 했다. 결국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빈번한 발생은 국가의 방치와 외면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비행청소년의 범죄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흔히 말하는 소외되고 불행한 집안에서 자라서 국가의 안전망 속에 보호받지 못해서 빠지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저지르는 사람은 대부분 주변으로부터 고립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일반 자살의 경우 가족 중에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자녀 살해 후 자살의 경우) 지켜볼 사람이 구조적으로 없다. 일정 기간 이상 월세가 밀린 세입자가 있는 경우 민간 주택 소유자도 신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식으로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면 누군가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주변 사람의 사전 위기 신호를 인식해 관심을 가져주고,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게이트키퍼’ 교육이 보다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수준이 갑작스럽게 하락할 때 그 변화의 순간이 곧 위기가 된다. 살해 후 자살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족이 극단적 변화에 놓이는 경우면 위기에 더 취약해진다. 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도움을 청하면 삶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정부와 관련 기관, 언론이 계속 줘야 한다. 쉽게 손 내밀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비극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자녀는 부모가 낳았다고 해서 부모의 소유물이 아닐뿐더러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생살여탈권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는 2020년대 현재도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문화가 지금까지도 약하게 남아 있다. 헬리콥터 부모도 이래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부터 수백 년간 이어내려온 유교적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어서 자식을 부모의 일부, 운명공동체로 여기는 인식이 매우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녀를 키울때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일이 벌어질 경우 큰 사회적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런 인식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고쳐지지 않을 경우 지금의 자녀들이 부모가 되어 세대가 교체되어도 대물림될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4.2. 국가·제도적 원인[편집]


아이는 부모와 국가가 함께 길러야 한다.[5] 부모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면 국가가 개입하는 게 맞다. 위험군 가정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전화나 방문 확인이 필요하다. 방문을 거부하더라도 설득해야 한다. 국가가 개입해서 아이의 얼굴도 한번 보고, 집안 상태도 보고, 부모랑 얘기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실제로 살해 후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경우에는 아이를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분리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이미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고위험군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영유아들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예방주사가 대표적이다. 부모가 정해진 일정을 걸렀다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고위험군 가정일 확률이 크다. 현재 한 해 출생아 수가 30만 명 정도로 떨어졌으니 이 정도면 모든 가정을 방문해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출산 직후 1년 동안에는 방문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보호단체 관계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미수에 그친 가정에서 또다시 비슷한 선택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며 “사건 직후에는 아동을 분리해 보호를 하지만 원가정으로 복귀하고 난 후에는 관련 단체나 기관들이 해당 가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보호할 방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군 가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개입과 집중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법원이나 검찰 등이 동원할 수 있는 강제성을 연계해 보다 치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선 “관련 기관들이 사례를 충분히 깊게 관리할 수 있도록 상담 및 관리 전문가 인력 확충도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살해 후 자살 고위험군에게 심리치료, 경제적 지원을 해주기 위한 예산이 너무 적다”며 “적어도 우울증인 사람이나 자살 유가족, 자살 시도자 등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이라도 국가의 개입을 의무화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자살은 한 번에 완수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수에 그쳤을 때가 제일 위험하고 중요하다. 경찰, 검찰, 법원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가정이 회복될 수 있는지) 논의하는 과정이 전면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 고립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지 말고 손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 개인회생·파산 등 법적 구제책 이용을 부끄러워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자살예방법 3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본인이 자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하면 국가나 지자체에 구조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한 정신의학과 교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심리부검이나 사후 조사를 통해 ‘우울증을 겪었구나’ 알지만, 그 당시 본인이나 주변은 우울증을 겪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정신의학과 교수는 “가족 중 한 명이 설득을 해 병원이나 센터를 찾아 치료 서비스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다음 자살률은 높지 않다”며 “우울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되는데, 외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6]


5. 실제 사례[편집]



5.1. 현대 한국[편집]


4.19 혁명이 벌어지고 얼마 안 된 시기 장남 이강석에게 일가가 총살당했고, 이강석 자신도 범행 직후 권총 자살했다. 다만 이전부터 이기붕과 배우자가 자살 기도를 한 전과가 있고, 이미 자살한 후에 이강석이 총상을 입혔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면 사전적 의미의 동반자살이 성립한다. 또한 후술될 사건들과 달리 이기붕은 3.15 부정선거에 깊게 연루된 등의 업보가 있는 쓰레기 정치인이라 동정받을 여지가 전혀 없다. 보통 비속살해인 경우가 상당수인 대부분의 살해 후 자살 사건과 달리 존속살해라는 점도 특이하다.
범행 후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오자, 범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여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악질인 이종대라는 자는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장장 17시간 동안 대치한 끝에 아내와 자녀들을 죽이고 자살했다.[7]
불륜을 의심받은 모친이 아이들을 살해 후 자살했다.
이 사건의 경우 범인인 남편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엄마를 죽인 살인자 아버지의 아들로 낙인찍히게 할 바에는 차라리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부모가 빚 때문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이 과정에서 두 딸만 사망했고, 부모는 살아남아 계속 도주 행각을 벌이다 2년 후인 2013년에 부산의 한 농장에서 주민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피해자인 조유나 양과 부모의 체내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으며, 블랙박스 조사 결과 부부가 조 양을 먼저 약으로 재워 항거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리고 동반자살을 빙자한 살해를 결행한 뒤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아버지가 아내와 세 자식들을 모두 살해 후 자살했다.

5.2. 해외[편집]



5.3. 근대 이전[편집]


인권 문제가 경시되던 근대까지만 해도 명분이 있는 살해 후 자살은 명예를 지키기 위한 죽음으로 여겨졌고, 이것이 칭송되거나 권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온정주의적인 인식이 남아있는 이유도 이러한 문화가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대에서는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도 부모가 되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결혼법이 개정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 처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가면서 백제의 운명을 맞이한 계백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사극위인전 등 미디어물을 통해 상당히 미화되고 영웅시되고 있다. 물론 계백의 일화는 인권의 개념도 발달하지 않은 고대의 시기, 나라 전체가 존망의 위기에 있어 패배하여 국가가 멸망하면 유가족 전체가 약탈, 겁탈, 학살, 노예화 등 영 좋지 않은[8]을 당했을 것임을 능히 추측할 수 있었던 상태에서 벌어진 옛날 이야기로, 사회와 아동청소년 인권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일어나는 살해 후 자살 사건과 동일선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죽임을 당하는 맥락에 관하여서는 결국 당사자들만 알 일인 셈이라는 점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라 하겠다.
    • 백제멸망전을 그린 영화 황산벌에서 이미 이런 형태의 자살을 신랄하게 깐 바 있다. 김선아가 연기한 계백의 부인은 계백이 자신과 아이들을 죽이려 하자 "느그 애비 애미가 살아있었어도... 느그 애비 애미도... 이라고 죽여불라냐잉?" 하고 맞선다. 계백(박중훈)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깨끗하게 가장께!" 라고 말하며 가족들에게 재차 자결을 종용하자, 아내는 죽기 직전에 "아가리는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제.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것이여!! 이 인간아!!" 라고 절규한다.



6. 가상의 사례[편집]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 사쿠라 쿄코아버지: 쿄코의 여동생 모모와 어머니를 죽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 School Idol Days
  • 연탄길 - 3권 마지막 화 <우리들의 상처>에서 수세미 행상이 월세가 몇 달째 밀려 쫓겨나게 되자[9] 연탄을 피워 아이들과 함께 죽는 내용을 다룬다.
  • 【최애의 아이】 - 스토커

7. 여담[편집]



3)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해 부모의 범행을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발생 원인을 가해 부모의 게으름, 무능력, 나약함 등에서 비롯된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는 시각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시각은 사회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줄어들게 할 수 있다. 살해 후 자살 위험이 감지되거나 시도가 이뤄졌을 때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원해야 한다. 범행에 이른 경위에 개인의 문제 못지않게 사회구조적 문제가 작용하고 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가해 부모에 대한 단죄만으로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없다. 중범죄임을 선언하고 단죄함과 동시에, 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우리가 맡아 키우겠다고, 최소한 당신이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자신 있게 공표하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살해 후 자살 범행에 대한 온정주의의 기저에는, 부모 없는 아이들, 극도로 궁핍한 아이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앓는 아이들을 굳건하게 지지해 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불신과 자각이 깔려 있다. 과연 그러한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대한민국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버팀목 역할도 하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나라였는가. 우리 사회도 그러했는가. 지금도 그러한가. 많은 노력에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막지 못했고 계속 재발된다는 점에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피해 아동과 피고인 가족을 장시간 치료하고 지켜본 담당의사의 탄원서 내용(… 김□□ 양의 죽음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일지 모릅니다. 한 부모에게, 한 가족에게만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 자녀를 책임지우는 것은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 합니다 …)을 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한 개인과 그 가족에게 얼마나 힘들고 가혹한 환경인지 절감하게 된다. 피고인 개인을 비난하면서도 중벌에 처할 수 없는 이유는, 결과에 상응한 적정한 형벌과 실제 선고되는 형벌 사이의 차이만큼이 바로 국가와 사회의 잘못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이 우리 잘못이다. 선고되지 않은 나머지 형이 우리가 받아야 할 비난의 몫이다.

가정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비극은 언제든 재발될 우려가 있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피눈물 흘리고 울음 삼키며 슬퍼하는 일[ [[허난설헌]] ‘곡자(哭子)’ 중]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아동보호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비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안전망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위험군 가정에 꾸준히 개입하고 감시하며, 이들을 배려하고 치료해야 한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트리거를 당기게 했는지도 면밀히 조사해서 밝혀야 한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요인들을 찾아 없애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이런 조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가난과 장애와 타인의 불행을 조소하거나 절망 위에 또 절망을 한 짐 부리는 짓만은 그만둬야 한다. 당장 공감하고 행동할 수 없더라도 장애와 불행을 혐오하고 조롱하진 말아야 한다.

4) 마지막 호명이길 바란다

‘아리따울 ❍’와 ‘❍’ 자를 이름으로 쓰는 9살 아이가 친모에게 살해된 이 사건을 보며 당원은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한 아이의 돌이킬 수 없는 애석한 죽음을 앞에 두고도, 피고인을 엄하게 단죄할 수만은 없는 여러 사정을 지켜보며, 과연 무엇이 피고인에게 합당한 형벌인지, 이런 사건에서 가해의 궁극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피해자는 과연 누구인지, 자폐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전력을 다해 살아 왔음에도 아동이 호전되지 않고, 개인회생을 신청할 정도로 경제력이 파탄 난 상태에서 결국 우울증으로 충동적인 범행에 이른 피고인을 구금하는 것이 맞는 지, 이 비극적 결과를 온전히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만 묻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피고인의 입장에 처해 보지 않은 우리가 섣불리 피고인을 비난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숱한 의문이 들어, 형의 정도와 피고인의 신병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그 고민의 끝에 당원은, 유리한 정상을 모두 참작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불행이 아무리 견디기 힘들더라도, 아이를 살해하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의 생명을 넘어설 수 있는 그 어떤 가치도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거듭 확인하고자 한다.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이런 참혹한 범죄를 두고 참작할만한 사정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고통도, 그 어떤 변명의 존재도 단호하게 부정한다. 자기 자식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인 동시에 반자연적 행위다.

아이들에게 출생의 자유가 없다고 죽음마저 그러하다 말할 수 없다. 설령 가난과 장애 때문에 행복이 담보되지 않은 삶이라도,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인생이더라도, 이들의 미래와 생명은 그 누구도 좌우할 수 없다. 부모라도 그러하다.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 선택일지라도, 일단 태어난 아이는 한 부모의 자식에만 그칠 수 없다. □□이는 생물학적 부모인 피고인의 아이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적 부모이다. 우리가 딸을 잃었다.

당원은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이름이 아동학대로,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또 다시 희망한다.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임을 예감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이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 최소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쉬이 스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만 그런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의 무관심방임을 환기시키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숫자가 부족한가. 그렇지 않다.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부족한 건 언제나 공감과 행동뿐이다.[10]


도대체 아이들의 목숨조차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면서, 무슨 복지를 논하고, 어떤 이념을 따지며, 어떻게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다시 묻는다. 우리는 과연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5) 우리가 안전망이다

재판은 사회의 문제점을 미리 막아 내지 못 한다. 형사재판은 우물가에 서성이는 아이를 안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절차가 아니다. 아이는 이미 우물에 빠졌다. 형사재판은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를 놓고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절차다. 형사법정은 오직 한 사건, 한 개인만을 단죄할 뿐 국가와 사회를 단죄할 순 없다. 이 지점이 당원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의 입에 물린 거품을 보며, 분홍색 잠옷을 보며 비통해 하고 또 비통해 하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참혹한 기록을 상세하게 부기하는 이유는, 우물가에 서 있는 또 다른 □□이 때문이다. 가난하고 마음이 불안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그 부모를 의지하기는커녕 두려워해야만 하는 이 끔찍한 현실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것 말고, 이제 와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보았듯, 세상이 힘들면 힘들수록 이런 범행은 급격히 증가한다.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의 급속한 붕괴는 우리에게서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앗아갈까 두렵기 그지없다.

반복되는 이런 범행을 볼 때마다 당원은, ‘청테이프가, 번개탄이, 졸피뎀이, 수면유도제가, 감기약이, 찢어진 약봉지가, 빨랫줄이, 둥글게 말아 쥔 손아귀가, 열려진 옥상 문이,[11]

갑작스런 고급 반찬이, 분에 넘친 장난감이, 예상치 못한 선물이, 계획에 없던 가족여행이,[12] 혼자 남겨진 인형이, 발에 묻은 그을음이, 부러진 손톱이’ 두렵다. 우리의 망각과 무덤덤함이 무섭고 또 무섭다. 어떤 이의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 닿을 수 없는 이상이 되는 현실은 얼마나 서글픈가.

아이를 키우는 세상 모든 어머니가 아이에게 할 말은 응당 이러해야 한다. (…)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주었지만 /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 /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 네가 바라보는 하늘 / 네가 마음껏 뒹구는 땅이 / 네가 한생 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 (렴형미, <아이를 키우며>)

□□이가 됐어야 할 눈사람도, 바라보고 뒹굴었을 하늘과 땅도, 평생 심장에 품고 살았을 사랑도, 푸른 이 땅의 아름다운 모든 것도 □□이의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엄마가 아이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 ‘약 먹어라, 문 꼭 닫아라, 자자, 좋은 곳으로 같이 가자’가 되는 세상은, 얼마나 비통하고 또 비통한가.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할 순 있지만, 일단 뛰기 시작한 심장은 그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뻗쳐 나를,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폴 오스터 <달의 궁전>).” 폴 오스터의 말처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타인에 대한 연민 외에는 이처럼 극단적인 절망고통에 맞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애로 서로 깍지 낀 두 손만이 최후이자 최선의 안전망이다. 우리가 안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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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365 판결문의 후일담.[13]


  • 영어에서는 Murder-suicide(살해 후 자살)라는 용어를 Joint suicide(동반 자살)와 구분하고 있으며, 각 용어의 정의에 따르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살했을 때, 살해당하는 사람의 동의가 있었으면 Murder-suicide와 Joint suicide 둘 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지만(예를 들어 자살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 살해당하는 사람의 동의가 없었으면 Murder-suicide에만 해당한다(예를 들어 일가족이 잠든 사이에 살해 후 자살). 물론 Murder-suicide는 '총기 난사 후 자살' 등도 포함하는 말이며, 일가족이 모두 승낙해서 살인한 후 자살했다면 동반 자살로도 본다.

  • 일본어에서는 무리신주(無理心中)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동반자살에 동의를 하지 않은 상대를 죽이고 자살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14] 가족 전부가 목숨을 끊는 것은 잇카신주(一家心中)라고 한다. 원래 연인 사이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슬퍼하여 서로 합의 하에 정사(情死) 하는 것을 일본어로 신주(心中)라고 불렀다가 이 단어가 점점 의미가 확장되어 동반자살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됐고 파생하여 무리신주나 잇카신주 같은 단어가 나오게 됐는데, 여기서 心中라는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상황을 돌려 말하는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표현이라 일본 내에서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드라마 언내추럴에서도 부검의인 주인공 미스미 미코토[15]의 입을 빌어 영어의 murder-suicide라는 표현과 무리신주라는 표현을 비교하며 해당 단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스미 미코토 본인 역시 어머니가 주도한 자살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

[1]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의 원인과 대책", 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365 판결 용어 참조.[2] 모친이 9세 딸을 살해한 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작성자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박주영 판사다.[3] '비속'이란 자신의 아랫항렬 친족을 뜻하는 말로, 윗항렬 친족을 말하는 '존속'과는 반대 개념. '직계존속'이 친부모나 친조부모라면, '직계비속'은 자식이나 손자 등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현행법에는 존속을 살해하는 존속살해죄는 있는 반면 비속을 살해하는 '비속살해'죄를 별도로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존속살해는 폐지 논란이 생겼고 아동학대 피해자가 에 대한 심각한 반감을 갖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며 심각해질 경우에는 자국 혐오까지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4] 그래도 현재에는 비난의 목소리도 많아져서 2022년에 발생한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에서 전말을 모르던 초기에는 일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전말이 드러나자 아이 부모를 비난하고 아이를 동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5] 괜히 학교교사, 의무교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괜히 교사가 아동 학대 신고의무자가 된 것이 아니다.[6] 이상의 내용은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의 2019. 10. 8.부터 같은 달 18.까지의 ‘살해 후 자살’에 관한 일련의 기사(2009년 이후 발생한 살해 후 자살 사건 가운데 미성년 자녀가 피해자인 사건의 수사 자료, 살해 자살 미수자 판결문, 언론 보도 등을 분석하고, 경찰관 40여명과 유가족, 전문가를 상대로 한 인터뷰 등이 실림)에서 인용하였음[7] 다른 범인인 문도석의 경우 아내는 남편에게서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몸을 피한 덕분에 무사했으나, 당시 고작 7세였던 어린 아들은 끝내 아버지의 길동무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19화에서 다뤄지기도 했다.[8] 더욱이 계백은 일개 졸병이 아니라 그야말로 백제의 마지막 충장(忠將)이었기 때문에 그가 전사하면 유가족들은 적들로부터 죽음보다 더욱 치욕적인 능욕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또한, 그에게 장성한 아들이 있었다면 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반굴과 관창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9] 아내와 사별, 세 남매 중에 둘째딸은 언어장애, 가장인 행상 본인은 계모의 학대를 피해 가출한 뒤 평생 막노동 아니면 행상만 했으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걸음마저 불편해서 일을 제대로 못 하던 상황이었고 보육원에 맡기자니 자식들을 버린다는 생각에 못 했다고 한다.[10]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구로동 카빈 강도사건 편에서 게스트가 읽은 부분이다. #[11] 자살에 많이 쓰이는 도구와 수단들이다.[12] 가족 살해 후 자살을 하기 전에 이런 행동을 하는 부모가 많다고 한다. 일종의 마지막 추억 만들기다.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 역시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13] 작성자인 박주영 판사는 이후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이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14] 일본어에서 '무리'는 '억지, 강제'라는 뜻이 있다.[15] 이시하라 사토미가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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