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일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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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6.25 전쟁의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북한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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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군의 남침
6월
폭풍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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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문산 전투

· 고랑포 전투

· 봉일천 전투

· 김포반도 전투

· 옥계 전투

· 강릉 전투

· 춘천-홍천 전투

· 대한해협 해전

· 동두천 전투

· 포천 전투

· 의정부 전투

· 내촌-태릉 전투

· 수원 비행장 전투

· 한강 인도교 폭파 · 한강 방어선 전투


7월
주문진항 해전

· 동락리 전투

· 오산 전투

· 평택 전투

· 진천 전투

· 천안 전투

· 전의-조치원 전투

· 청주 전투

· 금강 방어선 전투(공주-대평리 전투)

· 장항-군산-이리 전투

· 대전 전투


8월
청송 전투

· 낙동강 방어선 전투

(안동·의성전투

· 마산 전투

·다부동 전투

· 창녕·영산전투

· 안강·기계 ~ 영천·신녕 전투

· 포항 전투

· 포항 철수작전

· 통영 상륙작전

)
유엔군의 반격
9월
장사 상륙작전

· 인천 상륙작전

· 9.28 서울 수복


10월
평양 탈환작전

· 초산 전투


중공군 개입
10월
중공군 1차 공세(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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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비호산 전투

· 중공군 2차 공세(11/25)

· 청천강 전투

· 장진호 전투


12월
평양 철수

· 흥남 철수작전

· 중공군 3차 공세(12/31)


1951년
1월
1.4 후퇴

· 평양 대공습

· 울프하운드 작전

· 유엔군 1차 반격(1/25)

· 선더볼트 작전

· 원산 포위전

· 금양장리 전투

· 라운드업 작전


2월
중공군 4차 공세(2/11)

· 횡성 전투

· 지평리 전투

· 유엔군 2차 반격(2/20)

· 전략도서 확보 작전

· 원산 포위전

· 킬러 작전


3월
리퍼 작전

· 커리지어스 작전

· 토마호크 작전


4월
러기드 작전

· 중공군 5차 공세(4/22)

· 매봉·한석산 전투

· 사창리 전투

· 설마리 전투

· 파평산 전투

· 가평 전투


5월
설악산 전투

· 중공군 6차 공세(5/16)

· 현리 전투

· 용문산 전투

· 한계 전투

· 유엔군 3차 반격(5/23)


전선 교착
6·7월
도솔산 전투

· 평양 대공습


8월
피의 능선 전투

· 펀치볼 전투


9·10월
가칠봉 전투

· 단장의 능선 전투

· 백석산 전투

· 코만도 작전


11·12월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3월
장단-사천강 전투


7월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351고지 전투


9월
백마고지 전투

· 1차 화살머리고지 전투

· 저격능선 전투


1953년
3월
폭찹힐 전투


5월
M-1고지 전투


6월
351고지 전투

· 2차 화살머리고지 전투

· 949-973-883고지 전투


7월
중공군 7차 공세(7/13)

· 금성 전투

· 백암산 전투

· 425고지-406고지 전투


첨자 : 공산군의 승리 / 첨자 : 유엔군의 승리
월표기: 전투 개시일 기준, 실제 교전기간은 개별 문서 확인




1. 개요
2. 배경
3. 전투
4. 결과


1. 개요[편집]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군 제1사단경기도 파주시 봉일천 지역에서 서울의 서쪽 방향을 향해 침공해온 북한군 제1사단, 제6사단 등과 맞서 싸운 전투이다. 국군 제1사단은 방어선을 구축해서 북한군의 진공을 막았으나, 6월 28일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되자 방어선을 포기하고 후퇴하였다.

2. 배경[편집]


한국전쟁 당시 북한은 ‘개성-문산-파주-서울’로 이어지는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신속히 침공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이 지역의 38선 경비는 국군 제1사단이 맡고 있었는데, 개성 지구는 제12연대가, 그 오른쪽 지역은 제13연대가 지키고 있었으며, 제11연대는 예비부대로서 사단사령부와 함께 수색에 주둔하고 있었다.

6월 25일 북한군 제6사단이 개성을 양쪽에서 공격해오자 국군 제12연대는 개성을 포기하고 문산 방면으로 후퇴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국군 제13연대가 지키던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高浪浦) 방면으로 공격해왔다. 고랑포 일대를 지키던 국군 제13연대는 북한군 전차의 진격을 막으며 분전을 벌였으나 결국 임진강 남안의 파평산으로 후퇴했다. 그러는 동안 예비부대로서 수색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1연대는 문산으로 이동해 임진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국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낮추기 위해 임진강 철교를 폭파하려 했으나 폭약이 터지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러자 6월 26일 북한군 제6사단은 전차를 앞세워 임진강 철교 방면으로 대규모 공격을 가해왔으며, 북한군 제1사단은 국군 제13연대가 지키던 파평산 방어선을 공격하며 문산 방면으로 협공을 가해왔다.

3. 전투[편집]


6월 26일 오후 파평산 방어선이 뚫리면서 앞뒤에서 협공을 당할 위험에 빠지게 되자 국군 제1사단은 임진강 방어선을 포기하고 파주 봉일천 지역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제15연대와 함께 금촌(金村) 일대의 위전리(葦田里)·229고지·다락고개·도내리(都內里)·151고지·신산리(新山里) 등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진지를 쌓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6월 27일 북한군 제6사단이 전차를 앞세워 1번 국도를 따라 진격해오자 국군은 육탄 공격을 감행해 위전리에서 229고지를 잇는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제15연대 3대대의 병력은 북한군의 전차에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도내리와 신산리로 이어지는 지역을 지키던 제13연대도 북한군 제1사단과 격전을 벌이며 북한군의 진격을 막았다.

6월 28일 오전 제1사단은 제11연대의 병력을 동원해 반격 작전을 벌여 임진강 하류 지역의 방어선을 일부 회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아리 방어선이 뚫려 서울이 북한군의 손에 넘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퇴로가 차단될 것을 우려한 사단 사령부는 방어선을 포기하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 결과[편집]


당시에는 이미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어 철수로가 차단된 상태였고, 제1사단은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이산포와 행주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시흥에서 다시 집결했다. 그러나 중화기 등은 포기하고 개인화기만을 지니고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전투력에 큰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도하 과정에서 한강 하류의 개화산과 봉성산 등을 이미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국군 제1사단은 봉일천 전투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3일이나 늦추는 데 성공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에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