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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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톱 크래프트 · 스튜디오 지브리(연표)
관련 인물
미야자키 하야오스즈키 토시오콘도 요시후미
타카하타 이사오미야자키 고로히사이시 조그외 관련 인물
관련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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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
천공의 성 라퓨타
반딧불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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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귀를 기울이면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야마다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고양이의 보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벼랑 위의 포뇨
마루 밑 아리에티
코쿠리코 언덕에서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추억의 마니
붉은 거북
아야와 마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TV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기브리즈
아야와 마녀

단편 애니메이션
On Your Mark
빙글빙글
고래 잡기
고로의 산보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
상상속의 비행 기계들
상상의 기계들 중 파괴의 발명
기브리즈 에피소드 2
Portable Airport
Space Station No.9
비행 도시 계획
물거미 끙끙
별을 산 날
집찾기
쥐스모
빵반죽과 계란 공주
보물 찾기
털벌레 보로
젠 - 그로구와 더스트 버니

극장 실사 장편
식일
사토라레
실사 단편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극장판
게임(2)
니노쿠니 하얀 성회의 여왕
니노쿠니 칠흑의 마도사
(2) 니노쿠니 시리즈 중 1편을 한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을 검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함.




반딧불이의 묘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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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의 묘 (1988)
火垂るの墓 / Grave of the Firef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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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전쟁
원작
노사카 아키유키 〈반딧불이의 묘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타카하타 이사오
제작
하라 토오루
출연
다츠미 츠토무, 시라이시 아야노
음악
미치오 마미야
미술
야마모토 니조
캐릭터 디자인
콘도 요시후미
작화감독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배급사
파일:일본 국기.svg 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에이원엔터테인먼트
개봉일
파일:일본 국기.svg 1988년 4월 16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4년 6월 19일
상영 시간
89분
일본 흥행 수익
5억 9,000만 엔
대한민국 총 관객
3,674명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2세이상_2021.svg 12세 이상 관람가[1]

1. 개요
2. 예고편
3. 시놉시스
4. 등장인물
4.1. 주연
4.2. 가족 및 주변 인물
4.3. 기타 인물
5. 평가
6. 논란
7. 괴담
8. 제작 과정
9. 국내 방영
10. 기타
10.1. 7,000엔의 행방은?



1. 개요[편집]


4歳と14歳で、生きようと思った。

4살과 14살에, 살아 보자라고 생각했다.

반딧불이의 묘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로 작품성과 완성도만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남을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묘사에 대한 논란이 있어 높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국내에선 여타 지브리 작품들만큼의 큰 유명세를 얻지는 못했다.

제작진 ▼
  • 제작, 기획 - 사토 료이치
  • 음악 - 마미야 미치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콘도 요시후미
  • 레이아웃, 작화 감독 보좌 - 모모세 요시유키
  • 미술감독 - 야마모토 니조
  • 촬영감독 - 코야마 노부오
  • 음량감독, 음량연출 - 우라카미 야스오
  • - 원화 이시이 쿠니아키(石井邦幸), 하네 유키요시, 오오타니 아츠코(大谷敦子), 카와우치 히데오(河内日出夫), 오쿠야마 레이코, 야마우치 쇼주로(山内昇寿郎), 키가미 요시지, 코사카 키타로, 오카다 토시야스, 오가와 히로시(小川博司), 카가와 메구미, 우메츠 야스오미, 안노 히데아키, 사이다 토시츠구, 코타베 요이치논크레딧[1]
  • 동화 - 동화공방, 오! 프로덕션, 드래곤 프로덕션, 그룹 라이너스, 스튜디오 포켓 외
  • 배촬 - 히라타 슈이치, 히구치 노리코, 스도 에이코, 히시야마 토오루, 히라카와 에이지 외
  • 특수효과 - 카오루지 타니후미
  • 캐릭터 색채설계 - 야스다 미치요
  • 임상 - 스튜디오 키리, 스튜디오 딘, 타츠 프로덕션, IM 스튜디오, 토레스 스튜디오 M, 포비 기획, 스튜디오 OZ, 스튜디오 샤프트, 스튜디오 엔젤, 스튜디오 톰캣, 셀 아트 스튜디오 외
  • 촬영 - 럭키 모어
  • 편집 - 세야마 타케시
  • 음량효과 - 오히라 노리요시, 이토 미치히로
  • 제작비조 - 우에다 신이치로
  • 제작 데스크 - 오시키리 나오유키
  • 연출조수 - 스도 노리히코
  • 녹음제작 - 오디오 플래닝 U
  • 녹음 스튜디오 - APU 스튜디오
  • 현상 - 토쿄현상소
  •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 프로듀서 - 하라 토오루
  • 각본, 감독 - 타카하타 이사오



2. 예고편[편집]





3. 시놉시스[편집]


14살 오빠, 4살 여동생.. 오누이는 함께라서 행복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한 마을에 폭격기로 인한 대공습이 일어난다. 마을이 화염으로 휩싸이자, 14살인 세이타는 부모님과 따로 만나기로 약속한 채 4살짜리 여동생 세츠코를 업고 피신한다. 결국 집과 어머니를 잃고 먼 친척아주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세이타와 세츠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빠 세이타는 천진하고 착한 여동생 세츠코를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척아주머니의 남매에 대한 냉대는 더욱 심해지고, 세이타는 어머니가 남겨주었던 마지막 여비를 챙겨 세츠코와 함께 산 속에 있는 방공호로 거처를 옮긴다. 두 남매는 산 속 동굴에서 반딧불이를 잡아 불을 밝히고,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으며 살아가는데..



4. 등장인물[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주연[편집]


파일:반딧불이의 묘(1988) 세이타.jpg

파일:세츠코.jpg


4.2. 가족 및 주변 인물[편집]


  • 어머니 - 시노하라 요시코
파일:세츠코엄마.jpg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친으로, 일본 해군 대좌 남편을 둔 주부. 첫째 세이타에게 어린 둘째 세츠코를 맡기고 니혼마츠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고베 공습 중에 헤어지고 만다.
나중에 공습이 끝난 후 세이타와 대피소에서 만나지만 이미 상반신 전체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눈과 코, 입 부분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에 붕대를 감았고 곳곳에 피가 스며나왔다. 영화에서도 (분명 붕대를 다 두르긴 했지만) 비위 약한 사람은 흠칫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꽤 적나라하게 묘사했다.[2]
원래 심장이 좋지 못해[3] 제대로 된 병원에 옮기려 했으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옮기는 데 실패했다. 세이타는 공습 다음날 인력거를 불러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이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인력거 기사가 돈 받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버렸다. 결국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붕대만 감아놓은 상태로 누워만 있어야 했다. 병원은 매일 아침마다 화상 환자들 붕대 갈아주고 소독해주는 게 아침 일과다. 화상을 입은 시기가 6월, 즉 여름인 걸 감안해보면 그런 과정을 더욱 철저히 해줘야하는데, 입원조차 못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썩어 주변에 시커먼 파리떼가 들끓고 붕대 사이사이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사망하고 합동 화장으로 시신을 처리하였다. 그 후 어머니의 유골함은 세이타 남매가 소중히 보관한다.

  • 아버지
파일:세츠코아빠.jpg
세이타, 세츠코 남매의 부친으로, 일본 해군 장교다. 원작자의 아버지가 모델. 출전중이라 회상 씬과 사진으로만 등장한다. 원작에서도 대위로 나오며, 설정상 애니메이션에서는 타카오급 중순양함 마야 소속의 장교이다.
가족사진 촬영 당시 근무복의 계급장. 왼쪽과 가운데는 근무복용 견장(대좌), 오른쪽은 수장(대위)
한때 아버지의 계급이 대위냐 대좌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일단 원작소설에서는 '아버지는 해군 대위로 순양함에 타고는 소식이 없다.'[4]로 언급되고, 즉, 순양함에 승선하고 연락이 끊겼을 시점에도 계급은 대위였다. 또, '세이타와 세츠코도, 해군 대위의 가족으로, 공습으로 어머니를 잃은 불쌍한 아이들'[5]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적어도 원작자는 아버지의 계급을 '대위'로 설정했고, 원작 소설을 존중하고, 고증을 중요시하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인 만큼 원작의 설정을 최대한 반영했으며, 일본 위키피디아 애니메이션 인물 설명에도 아버지의 계급은 대위로 나온다.[6]
관함식(觀艦式)[7] 장면에서 아버지가 경례하는 모습의 옷소매의 수장계급대위이고,일본제국 해군의 수장, 세이타가 가지고 다녔던 아버지의 사진 역시 대위 계급장이지만,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가족 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면 근무복의 옷깃에 확실히 좌관급 계급장이 붙어 있어서 논란이 생긴 것으로 일종의 설정오류로 인한 소동에 가깝다. 일본군/계급에서 해군의 좌관급 장교는 견장과 디자인을 공유하는 옷깃용 계급장의 황색선이 2줄, 위관급 장교는 1줄이다. 그런데 사진 촬영 당시 근무복의 수장은 대위인데 계급장은 대좌를 그려버린 것.[8] 일본 해군 장교의 근무복은 수장이 검은색이어서 관함식처럼 빛을 받지 못하면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구별이 힘들다는 특성도 문제를 더한 것으로 보인다.
극중 후반에 세츠코를 살리려고 은행에서 돈을 전부 찾은 세이타는 다른 행인들로부터 일본의 패전과 아버지가 승선한 함선이 소속된 연합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아버지 역시 전사했음을 짐작하고서 절망한다. 아버지가 승선한 마야는 침몰되었어도 구조된 인원도 있어 정확히는 생사불명이지만, 작중 간간히 편지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이미 진작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판에서는 직접 등장.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설정충돌이 일어난 것을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TV 드라마판은 아예 대좌라고 직접 언급하여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다. 탑승함에 대한 언급은 없는 대신 켄고 함대 소속 대좌로 설정이 변경되었다. 일본에 복귀하여 가족과 재회하지만, 세이타에게 과달카날 전선을 언급하며 신문에서 보도하는 것과 달리 전황이 좋지 않음을 털어놓고, 세이타에게 모녀를 잘 돌볼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복귀할 시각이 되자 아내의 큰절 배웅을 받고[9] 부대로 복귀한다. 관함식과 가족사진 회상이 빠진 대신에 가족이 다같이 유카타를 입고 축제의 불꽃놀이를 보는 회상장면으로 한번 더 모습을 보인다.

파일:아주머니씨.jpg
고베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니시노미야 시에 사는 친척 아주머니. 세이타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부인으로, 촌수를 따지자면 당숙모. 남편이 죽은 미망인이다. 원작에는 미망인 또는 소모(小母)로 표기된다. 원작 정발판에서는 숙모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는 친척 관계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친척 아줌마는 오바상으로 퉁쳐 부르며 작중에도 오바상으로 부른다.
원작에서는 만약의 경우 공습으로 집이 불타거나 피난을 가야 할 경우 서로 신세를 지기로 미리 약속되었다. 영화는 이게 잘렸지만 TV 드라마는 이 장면을 집어넣었다. 사실 세이타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기모노, 모기장 등 피난 살림을 미리 옮겨 놓았다.
주인공 남매 입장에 감정이입해서 보면 나쁜 인물로 비춰질 수가 있는데 남매의 어머니가 죽고 친척 집에서의 시간이 지나자 점점 눈치를 주며 아이들 어머니의 옷을 팔아 쌀로 바꾸며 자신의 가족에게 흰쌀밥을 주나 남매에겐 멀건 죽을 주는 등 남매에게 구박을 주며 재산을 갈취하는 악역으로도 보일 수도 있으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절대 나쁜 인물이라 할 수 없다.
우선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가 처녀 때 입던 기모노를 쌀로 바꿔 흰 쌀밥을 며칠 주다 곧 남매들에게는 멀건 죽만 준다지만[10], 당초에 돈을 받고 남매를 돌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도 똑같이 멀건 죽으로 식사를 하기에 이는 자기 자식들만 편애하는게 아닌 학업과 노동에 대한 차등 보상이라고 보는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심지어 바꾼 쌀의 절반은 세이타의 몫으로 남겨주었기에 더욱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며 작중에서 남매를 구박하고 눈치를 주는 상황이 계속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끼니는 분명히 챙겨줬으며 잔소리는 자주 했지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고 위탁비나 생활비 등 금전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주인공 가족이 남긴 돈을 노리지도 가로채려 하지도 않았는데 이 돈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남매들끼리 얼마 정돈 음식을 사서 한동안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큰 돈이었다. 남매가 집을 떠나려고 하자 조금은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남매가 떠나자 바로 집으로 들어가려 했기에 진심으로 걱정했는지는 의심해 볼 부분이나 남매가 다른 데로 가도 이전에 말한 다른 친척 집에 갈 것으로 생각해 크게 걱정은 안 하고 들어간 것이지, 방공호에서 살 거라는 걸 알았다면 말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때 집에 들어가려던 참에 남매가 콧노래를 부르면서까지 떠나자 돌아보며 아마 이것 때문에 아예 신경을 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지만, 영상을 보면 오히려 자신이 눈치 준 것들 때문에 집 나가면서 세츠코가 저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마음 아파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와 별개로 숙모의 행동 중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너무 어린 세츠코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린 일과 남매들에게 정말 잘 대해줬다고는 결코 볼 수 없지만, 이러나저러나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한 입장이라 해도, 세츠코까지 대놓고 짐 덩어리 취급한 건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세이타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 4살밖에 안 된 세츠코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을 나이의 세이타마저도 전시상황에 친척 집에 신세를 지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감안하지 않으며 마치 자기 집인 것 마냥 철없이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돕지도 않으며 근로 동원이나 소방 활동을 하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나중에 따로 밥을 챙겨먹을 때도 뒷정리까지 아주머니에게 떠넘겼다. 전쟁 중에는 친척끼리도 인심이 각박해지기 쉽다는 걸 생각해보면, 세이타의 태도가 너무 안일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세이타는 현재 돌아갈 집도 없어진 상황인지라 더더욱 숙모에게 잘 보여야 했는데 완전히 거꾸로 해버린 셈.
일각에선 그래도 세이타는 아직 어려서 판단력이 없고 어머니의 사망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니 그럴 수 있다고 반문하는 의견도 있으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평가하려면 현대가 아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점의 세이타 또래 나이대의 친척 남매들과 비교해봐야 한다. 저 당시 세이타와 같은 나이대 아이들은 다 학업과 근로동원을 함께 하던 시기로 작중에서도 친척 아주머니의 딸은 근로동원에 동원되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기만 하는 세이타 남매를 주민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장면들도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또한, 같은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맨발의 겐만 봐도, 학업을 하면서 비는 시간대에서는 막노동하거나 돈이 될 만한 고철을 찾는 등의 행동이 나온다.
만일 세이타가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거나 근로 동원이나 소방 활동 등 자신이 속한 마을에 도움이 되려 했으면 절대 아주머니는 세이타에게 냉소적으로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상황을 보더라도 공장에서 일하는 하숙인이 "타 버린 공장의 일감이 남아있는 공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언급으로 일을 구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정신적 충격 때문에 빈둥거리며 놀기만 했단 건 핑계라고 해도 될 정도다.
정리하자면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벅찬 전시 상황에서 세이타 남매에게 금전적인 요구도 하지 않고 돌봐준 것만으로도 악인이라고 볼 수 없으나 작중 시점이 세이타 남매이기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원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과 하숙인이 있다. 애니메이션에는 딸과 하숙인만 등장. TV 드라마에는 딸이 많은 집안에 막내 아들 타로를 뒀다는 설정이 추가되었으며, 남편은 중간에 일본 제국 육군으로 징집되어 전사했다는 설정이 붙으면서 이때부터 세이타 남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복선이 된다. 드라마판에서는 추가로 전쟁이 끝난 뒤 가출한 세이타가 산노미야역에서 부랑아가 되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직접 데리러 간다. 역 구내에는 수많은 부랑아들이 거지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나, 그중에 세이타는 없었는데 이미 며칠 전에 부랑아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실만 역무원에게서 듣게 된다. 이후 세츠코의 버려진 뼈만 수습해 돌아오는데, 세이타를 신경쓰던 딸이 "엄마 때문에 세이타가 죽었다"고 오열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더 이상 세이타를 신경쓰지 않도록 다그친다.

파일:숙모의 딸.jpg
여학생. 세츠코에게 게다를 사주고, 세이타 남매를 걱정하는 듯한 말도 한다. 나름 세이타 남매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 애니메이션에서는 자신의 엄마가 세이타 남매에게 건더기를 거의 없게 국을 떠주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거나,[11] 밥을 따로 해먹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 자기 엄마가 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주먹밥을 싸들고 등교하는 장면 외엔 더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판에서는 현재 시점(헤이세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부랑아가 된 세이타가 산노미야역에서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으러 가지만, 역무원에게서 세이타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파일:숙모네 청년.jpg
세이타 남매랑 같이 친척 아주머니 집에서 신세를 지는 하숙인. 세이타 남매를 가엾게 여기기는 하지만, 자신도 하숙인이라는 입장이라 내색을 안 한다. 같은 근로동원인데다 잔정이 있다는 점에선 세이타네 숙모의 딸과 비슷하다. 이 사람이 일개 하숙인(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이타 남매의 숙모에게 은근히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은 절대 숙모가 자신의 친자식만 우대하는게 아니라는 증거다. 드라마판에서는 한쪽 다리가 불구라는 설정이 붙었다.
영화판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원작을 보면 고베 세관에서 근무한다. 일의 특성상 암시장 사정에 밝아 전시에 구하기 힘든 쇠고기, 물엿 등을 아주머니에게 선물하면서 호감을 샀다. 친척 아줌마의 딸에게 연애감정(짝사랑)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세이타 남매에게 반찬거리가 될 만한 야채를 (돈 받고) 파는 아저씨. 세이타 남매를 불쌍히 여겨 자신도 없는 형편에 먹을 것을 판다. 선술했듯 작중에선 꽤나 친절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이때 집 나간 남매를 걱정해 "친척 아줌마 집으로 돌아가 사과하고 도나리구미(隣組)에 들어가 배급을 받으라"고 충고한다. 이 말이 맞는 게, 도나리구미에 속하면 방화 예방작업 등을 하고 배급을 받을 수 있기에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4.3. 기타 인물[편집]


  • 아주머니
파일:이웃집 아주머니.jpg
공습 후 집합장소인 국민학교에서 만난 아주머니.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랑 친분이 있는 듯. 잠깐의 등장이지만 남매를 걱정하고 건빵을 얻어다 준다.

  • 빗길의 행인
파일:빗길의 행인.jpg
세이타 남매가 농부 아저씨와 헤어진 후 어느 비 오는 날 마주한 행인. 처음엔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세츠코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만 나와 약간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세츠코가 빗길에 감자를 실수로 떨구자 이를 주워주려는 듯 손을 뻗는다. 허나 그가 감자를 채갈지도 모른다 의심한 세이타가 먼저 감자를 주워버리고 도망치듯 세츠코를 데리고 떠난다. 상대가 얼마든지 길바닥에서 자신의 물건을 탐내고 훔칠 가능성을 아이인 세이타가 재보고 이를 경계할 정도로, 당시 전시라는 상황 탓에 민심이 상상 이상으로 각박하고 예민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세츠코는 그 행인을 의심하지 않았는지 가볍게 인사를 했으며, 행인은 그런 둘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등장 종료. 이때 행인은 세츠코의 손에 들린 감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세츠코를 쳐다만 본다. 세이타가 지레 의심하고 도망갈 때도 뭐라 하지도 않고 감자를 탐내지도 않으며 둘을 바라보기만 한다. 전시라 쳐도 코흘리개 애들의 감자까지 훔칠 정도로 사정이 급했다면 가차없이 빼앗았을 테지만, 행인은 그렇지 않고 지나갔으니 최소한 아이들의 물건을 훔칠 생각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가 세이타를 전혀 쫓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부터가, 그를 향한 세이타의 의심이 빗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

파일:밭 주인.jpg
세이타가 영양실조에 걸린 세츠코에게 설탕물을 먹이려고 훔치려던 사탕수수의 밭 주인. 세이타는 겨우 한 대의 사탕수수만 뽑았는데 그때 밭 주인이 나타나 세이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세이타를 마구 두들겨 패고는 파출소로 끌고 간다. 세이타와 실갱이를 하던 도중 "여태 서리하던 녀석이 너지?"하고 추궁하는데, 이를 볼 때 먹을 것이 부족하고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구 뛰는 괴랄한 상황 때문에 서리를 하는 사람들이 그 사탕수수밭에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이타를 동정한 파출소장이 오히려 어린애를 너무 심하게 때렸다며 미성년자 폭행과 상해죄 얘기를 꺼내자 당황하고[12],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달아나다시피 파출소에서 나간다. 원작 소설에서는 감자를 훔치려다 지키던 밭 주인에게 실컷 얻어맞고 전쟁 중에 서리는 중죄라며, 돼지우리(감옥)에 갈 거라며 세이타를 파출소로 끌고 갔지만 후쿠이에 공습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 결국 돌아간다.

파일:파출소장.jpg
세이타를 감싸 준 파출소장. 어깨에 달린 구(旧) 일본 경찰 계급장을 보면 경부보(警部補)로 원작에서는 나이나 외모 묘사는 없고, 계급도 순사로 나온다. 밭 주인이 사탕수수를 훔치려고 한 세이타를 때려서 끌고오자 어린 세이타를 동정해 설교만 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13] 밭 주인이 화를 참지 못해 세이타에게 폭력을 휘둘러 파출소로 끌고 오자 오히려 아직 미성년자인 세이타를 너무 심하게 때린거 아니냐면서 밭 주인을 상해죄로 추궁하려고 한다.

세츠코가 죽은 후, 세이타가 구역소에 가서 신고하니 "화장터는 예약이 밀려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데, 배급계 공무원으로 세이타에게 쌀을 배급한 이 아저씨가 특별 배급한 숯을 주면서, 세츠코를 어디 절 한 구석에 화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무심하게 "오늘 날씨 참 좋네"라고 말하는데, 전쟁으로 사람의 목숨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됐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이다.

  • 행인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역에서 생활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로, 패전으로 각박해진 인심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전쟁이 끝난 뒤 산노미야역 구내에는 세이타 말고도 수십 명의 갈 곳 없는 전쟁 고아들이 부랑아가 되어 기둥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다. 거지꼴을 한 아이들 수십명이 역 구내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행인들은 미군들이 보면 안 된다, 더럽다, 죽었나 등 마치 세이타나 다른 부랑아들을 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을 하며 지나쳐갔다. 그중에는 세이타가 앉아있는 걸 미처 모르고 지나가다 아랫쪽에서 풍겨오는 악취에 화들짝 놀라 욕설을 내뱉으며 피해가는 사람도 있었다. 중간중간에 세이타 또래의 여학생들이 말끔한 옷차림을 하고 지나가는데, 맨발에 누더기옷을 걸치고 역 구내에 주저앉아있는 세이타의 모습과 대비되어 비참함을 더욱 부각시킨다.[14] 다행히 모든 사람들이 부랑아들을 멸시하는 건 아니라서 어떤 아주머니는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는 세이타에게 먹을 걸 주고 갔으며, 먹다 남은 음식을 주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15]

세이타가 죽은 뒤 등장. 역 바닥을 청소하다 굶어죽은 세이타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또 죽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만큼 부랑아들이 산노미야역에서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상황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수십 명의 부랑아들이 저마다 역 구내 기둥에 기댄 채 자리잡고 있었고, 대부분은 세이타처럼 더이상 갈 곳도 없고 먹을 걸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기차역으로 온 것이었기 때문에 영양실조와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처지였다. 이런 판국이니 부랑아가 죽어나가는 것도 당연시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세이타가 살아있었을 때에는 부랑아들이 역 구내에 자리잡는 걸 싫어하여 자주 내쫓았다고 언급된다. 대부분의 부랑아들은 돌봐주는 사람 없이 거리 위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해 몹시 지저분하고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진 물건과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은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도 못 하는 처지였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소매치기나 도둑질 등 범죄 행각도 마다하지 않았다. 세이타처럼 그냥 자리에 앉아 행인들이 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의 부랑아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구걸을 하거나 앉은 자리에서 엎드린 채 동냥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거지가 되었다.
세이타의 경우를 예로 보면 8월 말에 방공호를 떠난 뒤, 죽을 때까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거리 위에서 부랑아 생활을 했다. 그동안 세이타는 어머니 유품, 교복, 각반, 신발 순으로 가지고 있던 물건을 전부 다 팔아서 연명했다. 이렇듯 입고 있던 옷도 팔아치우는 판에 새로 사서 입는다는 건 꿈도 못 꾸고 거리 위를 떠돌아다니니 제대로 씻고 생활할 수도 없었다. 부랑아 생활이 계속되자 몸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이가 생겨 나중에는 입은 누더기옷이 온통 이로 들끓었다. 게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된 뒤로는 그 자리에서 똥오줌을 지리고 만다. 이렇게 되자 주변에 가기만 해도 악취가 나 행인들도 그런 세이타의 모습을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세이타 한명만 해도 저런데, 비슷한 처지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습을 한 아이들이 수십 명씩이나 역 구내 기둥에 기대어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있다고 생각해보면 답이 없는 상황이다. 부랑아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 위를 떠돌면서 입은 옷에 신발까지 다 팔고, 결국 팔 물건도 다 떨어지고 수중에 돈 한푼 없는 처지가 된 뒤에야 산노미야역으로 왔다. 그래서 역 구내에 앉아있는 부랑아들은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다 해진 누더기옷을 걸친 채 맨발로 다니는 등 헐벗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이 부랑아지 사실상 거지라고 봐도 무방할 아이들 수십명이 역 구내에 하루종일 죽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구걸을 하고, 또 소매치기까지 하는 상황 속에서 하루에도 몇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니 시체를 수습해야 하는 역무원들이 좋아할 리 없다. 세이타가 죽은 날도 산노미야 역 전체에서 같이 수습된 부랑아들의 시체만 이십여구에 달한다고 할 정도니 충분히 싫어할 만한 상황이다.
세츠코의 유골이 담긴 사탕통을 발견하고는 그냥 던져 버린다.

  • 부랑아들
애니판과 원작에서는 단순히 언급만 되지만, 드라마에서는 부랑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조금이나마 묘사되어 세츠코가 죽은 뒤 세이타가 어떻게 생활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들은 친척 아주머니와 딸이 산노미야역에 가는 씬과, 세이타가 죽어가는 씬에 등장한다. 드라마는 약간의 각색이 이루어졌는데, 친척 아주머니의 딸과 세이타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세이타가 세츠코와 집을 뛰쳐나간 뒤에도 찾으려 해 산노미야역까지 오게 된다. 여기서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의 부랑아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맨 처음 등장하는 부랑아 소년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개찰구 근처 벽에 쪼그려 앉아있다. 그러다 자신의 앞 쪽으로 지나가는 어떤 아주머니가 밀려 넘어지면서 짐을 흘리자 재빠르게 훔쳐 달아나는데, 도둑질을 해서 끼니를 해결하는 부랑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 세츠코와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아이와 중간 나이대의 소년, 그리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역 기둥에 기대어 같이 앉아 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는 맨발로 다니는 걸 제외하면 그나마 옷차림이 깔끔하지만 나머지 두 소년은 고생을 많이 했는지 누더기옷을 걸치고 몹시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제일 어린 아이는 배가 고픈지 계속 보채고 칭얼댄다. 나이가 많은 소년이 달래주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지나가는 행인들의 동정심을 기대하며 애처롭게 바라보기만 한다.
이 소년들이 앉아있던 옆 기둥에는 또 다른 소년이 기둥에 기대어서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앉아있다. 한눈에 봐도 부랑아 생활을 좀 오래 했는지 입고 있던 바지는 다 해져 오른쪽 무릎이 다 드러났고, 윗도리도 누더기다. 때마침 나타난 역무원들이 친척 아주머니와 딸이 보는 앞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던 소년을 빗자루로 쳐 쫓아내고 더럽고 지저분한 녀석이라고 욕하며 다른 데로 가버리라고 한다. 미군들이 곧 들어올텐데 이런 아이들이 역에 있으니 부끄럽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소년을 포함한 부랑아들의 모습을 보면 납득이 가는 게 하나같이 맨발로 다니며 헐벗은 옷차림에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세이타도 예외가 아니라서 수 차례 역무원들에게 내쫓겼다고 작 중에서 언급된다.
마지막으로 쫓겨난 소년 옆에 엎드려 있던 다른 소년도 역무원들에게 내쫓긴다. 쫓겨날 때 자세히 보면 동전 소리가 들리면서 그릇을 들고 도망가는데, 계속 엎드려 구걸을 하며 동전 몇 푼이나마 얻어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년의 모습을 통해 가진 물건과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다. 돈도 다 떨어지고 가진 물건조차 없으니 별 수 없이 역 구내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거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세이타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시점에서는 산노미야역에서 같이 생활한 다른 부랑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힘없이 걸어다니며, 초점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역 구내에 있으면 배는 고파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은 물로 배를 채우며 허기를 달랬다. 물론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조차 못 하니 영양실조에 걸리는 건 당연했고, 만성적인 설사도 계속되어 세이타를 포함한 부랑아들이 죽는 원인이 되었다.

  • 기둥에 기댄 소년
세이타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죽은 날 밤, 역무원들이 세이타의 유품을 뒤지다 세이타가 앉아 있던 기둥 뒷편에서 발견한다. 비중은 거의 공기이지만 전쟁으로 각박해진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세이타보다 어린 나이의 소년으로, 다른 부랑아들처럼 헐벗은 모습을 하고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다. 역무원이 다가가서 잠깐 보더니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이제 곧 저세상으로 갈 것이다"고 한다. 한마디로 굶주림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돼 눈빛이 초점을 잃었고, 머지않아 세이타처럼 쓰러져 죽을 거라는 뜻이다.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가는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이제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이나 하는 비정한 모습은 전쟁으로 인해 각박해진 인심을 보여준다.


5.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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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이자 영화가 표현하는 전쟁 속의 아이들의 고통을 파격적으로 표현하는 심도있는 연출이 크게 평가받으며 단순한 애니를 넘어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꼽힌다. 로튼 토마토 점수도 무려 100%를 기록했다.

다만 한국 일반 관객 사이에선 피해자 행세물이라는 잘못된 낙인이 찍혀 저평가받는다. 그러나 1점 테러를 당했음에도 3점 이상이 뜨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도 제대로 본 사람들은 고평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고평가한다. 미국도 진주만 공습 때문에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걸 매우 싫어하는데[16], 이런 고평가는 미국에선 이 작품을 피해자 행세물로 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에선 타카하타 이사오의 대표작으로 다른 작품을 모두 제치고 반딧불이의 묘가 꼽힐 정도다.

2022년 개정된 명망있는 매체인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도 올라갔을 정도로 서구권에서 특히나 격찬을 받는 작품으로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와 함께 평론가들의 평가는 가장 월등하다.

「반딧불이의 묘」에 그토록 신경을 쓰던 미야는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순순히 칭찬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기묘한 포인트에서 투덜거렸다.
“군인의 자식이 그런 꼴을 당하는 건 리얼리티가 없어요.”
반면에 다카하타는 「이웃집 토토로」에 찬사를 보냈다.
“토토로는 지금까지 미야 씨 작품 중에서 단연 최고일세.”
출전: 스즈키 토시오의 [지브리의 천재들]


6.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반딧불이의 묘(애니메이션)/논란과 반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괴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반딧불이의 묘(애니메이션)/괴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제작 과정[편집]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
「반딧불이의 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내용의 무게도 그렇지만 개봉할 때까지의 과정이 외줄타기의 연속이라서 지금 돌이켜보아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처음에 문제가 된 것은 시나리오였다.
다카하타의 말에 따르면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형과 그렇지 않은 영화다. 미야 감독의 영화는 전자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롯해 「바람이 분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서 관객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고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일희일비한다. 한편 다카하타는 후자를 목표로 모든 등장인물에 적당히 거리를 둔다.
원작에서 작가인 노사카 아키유키는 여동생에 대한 속죄의식이 강해서, 그대로 만들면 주인공인 세이타에게 감정이입한 영화가 되어버린다.
“자기 연민은 그리고 싶지 않아…….”
다카하타의 중얼거림을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쓴 시나리오는 언뜻 보기에 원작과 똑같았지만, 내용은 세이타가 말하는 여동생 이야기였다.
원작자인 노사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원작의 사용 허락을 받기 위해 신초샤의 하쓰미 부장을 따라 그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던 그가 일어나자마자 맥주를 들이켜는 게 아닌가? 그것도 웬만큼 마시는 게 아니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벌컥벌컥 들이켜 우리를 당황시켰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첫인상과 달리 그는 영화 개봉에 맞추어 추천사를 써주는 등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었다.

느긋하게 만드는 타카하타의 성향 때문에 스케줄을 맞추지 못해 개봉 직후에는 몇 장면이 색칠하지 못한 채로 개봉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세이타가 도둑질하는 장면. 대다수는 연출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와 우연히 영화관에서 만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생이 큰 소리로 미완성 아니냐고 물어 프로듀서가 당황해했다고.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는 반딧불이의 묘 개봉 이후 조금 더 일본을 비판하는 장편을 기획했다. 《국경》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조선만주국을 배경으로 난징 대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의 《국경 BORDER 1939》의 기획안까지 제작했으나, 당시 천안문 사태로 인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 좋지 못할 꺼란 스즈키 토시오의 판단에 의해 취소되었다.

원제인 火垂るの墓의 火垂る는 반딧불을 뜻하는 蛍(ほたる)의 어원으로 추측되는 말 중 하나다. 그 외에는 〈火照る〉〈星垂る〉〈火太郎〉 등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 물론 영어 제목이 Grave of the Fireflies이며, 작품 내에서 반딧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제의 火垂る도 당연히 반딧불을 뜻하는 게 맞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로, 애니메이션 마지막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현대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 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6월 5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제작 스탭 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순양함의 원화를 맡겼을 때 밀덕후답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원화를 그렸더니 정작 작화 감독 콘도 요시후미는 관함식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실루엣만 보이게 하고, 흑백 영화처럼 어두운 색으로 처리해 버렸다. 안노:ㅂㄷㅂㄷ

색칠한 장본인은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의 부인 타카야 노리코. 안노가 나중에 연출한 톱을 노려라!의 주인공의 이름을 제공한 인물이다. 스즈키 토시오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이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그렇죠. 취직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 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해 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한 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반딧불이의 묘'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썼을까요'라는 숙제를 받아 오자, "마감에 쫓겨서, 헥헥거리며 썼다.(締め切りに追われ、ヒィヒィ言いながら書いた)"고 대답해 줬다고 TV 방송에서 밝혔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이는 최승호의 일화와 함께, 인터넷에서 문학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된다.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으로, 작가의 딸이 개인 블로그에서 아버지가 할 것 같은 말이지만(いかにも父が言いそうなことではありますが) 사실무근(全くの事実無根)이라고 직접 도시전설임을 인증했다.(출처)

이 가짜 일화는 일본어 위키백과에도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구체적인 방송 이름과 방영 날짜 등의 정보 없이 사실인 것처럼 실렸으며, 처음에는 손녀딸이라고 쓰였다가 중간에 딸로 슬쩍 내용이 바뀌었다. 이 일화는 위키백과에 실리기 전부터 2ch 등의 일본 사이트에서 도시전설처럼 회자된 것으로 보이며,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언급은 2003년의 2ch 영화작품·영화인 게시판의 어떤 스레드인데, 여기에는 숙제를 제출해 틀렸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 상영으로 개봉했다. 그런 이유로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하게 되면 반딧불이의 묘는 절대로 일본 피해자설을 주장하는 작품으로 해설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83~85쪽 참조.

이렇게 된 이유는 제작사 측에서 이웃집 토토로가 대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수작이 되었다.


9. 국내 방영[편집]


한국에서는 영화채널에서 더빙판으로 간간히 방영만 되다가 일본에서 개봉한 지 26년 후인 2014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개봉한 1988년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1990년대 초중반부터 한국에는 일본 등에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에 한국어 자막을 단 영상을 불법으로 상영하는 소규모 상영회인 '시네마테크'가 흥했다.

이때는 '반딧불이의 묘'가 아닌 '반딧불의 묘'라든가[17] 혹은 '반딧불의 무덤'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그 이유는 원제 '火垂るの墓'는 일본어로는 '호타루노 하카'로 읽는데, 이는 墓를 음독하면 보(ボ)=묘지만, 훈독으로 읽으면 하카(무덤)로 읽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다시금 재고된 탓인지 이후에 번역되어 나온 소설 판본에는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다.

또한 예전에는 반딧불과 반딧불이는 동의어로 썼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딧불을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과 ‘반딧불이’의 동의어로 제시한다. 따라서 반딧불은 동의어로 쓰였다. 이 때문에 상영회 등에서 '반딧불의 묘'로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이렇게 굳어진 것. 1990년대말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일본문화 해설서들[18]에도 대부분 이 제목으로 기재되어 있다.

대원방송에서 더빙 방영했다. 세이타는 김일, 세츠코는 김서영. 계약상 대원방송 계열의 애니 채널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편이며, 방영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엔 부모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왜 이런 애니를 방영하냐며 항의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 작중에 세이타가 하는 "네? 대일본제국이 졌다고요?!"라는 대사 때문에 특히나 부모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한국에서는 원작의 지명도가 낮다 보니 원작 소설의 작가 노사카가 우익이라는 출처 불명의 루머가 돈다.[19]


10. 기타[편집]


  •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버리는 바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이어서 나오는 반딧불이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관객들의 기분이 암울해져, 어이없게도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보다 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 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한 탓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토토로 항목의 10. 반딧불의 묘와의 관계를 참조.

  • 일본 대중 문화가 금지된 1990년대 초에 신촌 모처에서 애니메이션 동호회 주관으로 열린 상영회에서는 아키라와 함께 상영했다. 가정용 타이틀의 단체 상영은 따지자면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인식도 없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 참고로 두 작품 모두 반전 코드를 담고는 있지만, 분위기가 워낙 달라 보는 사람의 기분이 이상해진다. 특히 반딧불이의 묘는 외견상으로는 분명 비참하게 굶어 죽는 남매가 불쌍하고 피해자 코스프레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공감하고 동정해서는 안 될 상황이라...(감독의 성향이나 원작자의 의도 같은 작품 배경은 당시 상영회 관객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본편 상영 중 주인공인 애들이 죽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이니까) "꼴 좋다!"고 외치자, 관객들 반은 웃고 반은 화를 내는 그야말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다.

  • 작품 속에서 세츠코가 즐겨 먹던 캔 상자 안에 든 사탕은 '사쿠마식 드롭스'라는 상품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세이타가 세츠코에게 입 벌려 보라고 하면서 사탕을 먹인 것으로, 실사 영화에서는 친척 여자아이들이 캔 안의 사탕을 늘어놓으며 세츠코에게 사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세츠코가 좋아하고 드롭스를 다시 먹고 싶어한다. 2020년대 초까지도 계속 나오며 긴 역사를 자랑한 상품이었으나 23년 1월 중순 경 회사가 폐업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요리만화 아빠는 요리사에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추억의 소품 취급한다. 그야말로 설탕 덩어리로 만드는 캔디다.

  • 1988년에는 작중 배경인 전시에 판매된 상품을 디자인과 내용물을 복각한 상품이 나왔다. 복각판은 아니지만, 2008년에는 실사 영화 공개 기념으로 세츠코가 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사탕을 찾는 모습이 그려진 제품이 발매되었다.
이 두 제품은 동일한 디자인이다. 한쪽 면은 원래의 디자인을 복각한 형태고, 다른 면은 그 디자인 위에 세츠코의 모습을 겹쳐서 프린트한 제품이다. 그와는 별개로 동일한 깡통에 조금 밝은 디자인을 넣은 현행 제품도 존재한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카피 제품이 여럿 나왔는데, 그 중 롯데제과의 '사랑방선물'은 현재까지도 단종과 복각을 반복하며 발매중이다. 다만 납작한 스팸 모양 캔 드롭스는 아니고 둥근 원통형 캔에 들어있다. 이는 미국의 '침스 캔디'의 표절이다.

  • 세이타와 세츠코가 풍금을 연주하면서 "호니하니 호이토 호호호하니"하는 대목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를 금지하고 대신 일본어로 '이로하니호헤토'로 바꾼 것이다. 한국어로는 가나다라마바사. '가장조', '사단조' 할 때 '가~'가 이거다. '도레미파...' 순서대로는 '다라마바사가나(하니호헤토이로)'.
이는 영국과 미국을 악(귀축영미 鬼畜英美)으로 규정하고 영어 사용 금지, 서양 문화를 금지한 정책 때문이다. 당시 일제 치하인 국내에 나온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일본식인 '이로하니호헤토'로 계이름이 붙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영어가 아니고 이탈리아어이지만, 서양 문화 규제 및 금지 정책 때문에 금지했다. 근데 정작 당시 이탈리아는 같은 추축국이었으므로 팀킬 조치다. 이 이로하 관련 이야기는 비슷한 시대를 다룬 '스물네 개의 눈동자'란 소설에도 나온다.

  • 2005년 2시간 30분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요코가와 세이타 역은 이시다 호우시, 요코가와 세츠코 역은 사사키 마오.

  • 타가하타 이사오는 스태프진에게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 <戦火のなかの子どもたち>(전쟁 속의 아이들)을 읽도록 지시했다고 하며 이와사키 치히로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순간의 귀여움이 아니라, 내면을 지니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 게임 쿠키요미를 진행하다보면 주인공 남매를 패러디한 남매가 나온다. 여동생은 누운 채로 "배고파"라는 말을 하고, 오빠는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올게"라고 말한다.

  • 명암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포스터 제목 뒤에 폭격중인 B-29가 보인다.

  • 2020년에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이 넷플릭스에 제공되었는데, 장편 작품 중 유일하게 제외되었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 정서를 고려해서 빠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 관련 소재를 다룬 바람이 분다는 정상적으로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반딧불이의 묘> 해외 배급 판권이 지브리가 아닌 신쵸샤 쪽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 수입사도 대원미디어가 아니다. 여기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해외 홈 비디오 출시 판권료가 비싸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쵸샤 측은 싸게 부르는 편인지 지브리 블루레이 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와 함께 한국에 출시한 작품이다. 때문인지 한때 왓챠 플레이에 <반딧불이의 묘>가 수록되어 관람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왓챠에서 내려간 상태이다.

  • 2006년에 도서출판 디딤돌이 발행한 2007 수능 시리즈에 이 작품의 내용이 일부 실렸다.

  • 1945년 패망 직전의 방화 작업을 고증에 알맞게 연출했다.


10.1. 7,000엔의 행방은?[편집]


어머니가 저금해 둔 7,000엔이면 당시 가치로는 거금이다. 1940년대 일본의 교사나 은행원 초임 월급도 100엔이 채 안 되던 상황,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200만 원이 좀 안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순 계산으로도 1억 4천만 원에 해당한다. 일본의 웹 정보에 의하면, 약 700만엔에서 1050만엔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 돈으로 7천만 원에서 1억 초반 정도로 위 추정과도 큰 괴리는 없다.[20] 다만 오카다 토시오는 약 70만엔 정도라고 해설했다. #유튜브

그러나 세이타는 그 큰 돈을 어림잡아도 1달 반밖에 안 되는 사이에 다 날리고 여동생 세츠코를 영양실조로 보내고 자신도 부랑아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만다. 세이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러나 세이타가 7,000엔을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바람에 다 쓴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에 세츠코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후 세이타가 맛있는 것을 사다 주겠다고 은행으로 가서 남은 저금 3천엔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고작 음식 조금 사온다고 이런 거금을 찾는 것이 의아할 텐데, 전쟁 전에야 거금이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이것보다 이전에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의 초인플레이션 사태에선 생필품들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지폐만 흔한 것으로 취급되기까지 했다. 너무 남아돌아서 그냥 장난감이나 벽지 바르는 용도로까지 취급될 정도.

타카하타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물자 자체가 극심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물건을 살 수 없었다. 특히 식량은 더해서, 원작에 따르면 계란 1개에 3엔, 기름 1되 100엔, 쇠고기 100돈(刄 약 375g) 20엔, 1말(18리터) 25엔이던 게 패전 직전에는 더 올라 1되(升 1.8리터) 40엔, 즉 십수배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이것도 암시장에서 겨우 살 수 있는데다가 설령 돈 액수가 맞아도 쌀은 (화폐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저런 웃돈으로도 쉽게 거래가 가능하진 않았고, 국가에서도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극 중에서도 어머니의 유품인 옷 몇 벌을 물물교환으로 고작 쌀 1말(18리터)을 구한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서도 주인공 스즈가 암시장에서 배급보다 50배나 비싼 가격으로 설탕을 구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즉 실제로 패전을 맞이하고 전후 인플레이션이 아주 극심한 시기에 7,000엔은 현재 기준 잘 쳐줘야 100~200만 원 정도나 될까말까한 식량과 바꿀 수 있는 정도다. 게다가 현대라면 대량생산에 의한 저렴한 가공식품도 많고 통조림 등 값이 싼 장기보존식도 충분히 많이 있어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가성비 좋은 고열량 식료 구입[21]이 가능해 그 시대보다 더 오래 버티면서 이후 국가가 안정화 된 후 잡일이든 뭐든 돈과 식량을 구해서라도 살아갈 여지가 있었겠지만, 당시는 그런 것도 거의 없고 보관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농산물, 신선식품을 주로 섭취해야 했으며, 오히려 통조림과 같은 공산품은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체감 가치는 더더욱 낮다.

이마저도 의식주 중 나머지는 거의 포기 상태로 '식'에만 주로 신경썼을 때의 얘기다...

결국 그 돈은 두 아이가 두세달 정도 버티는 것은 몰라도, 장기적인 생활비로써는 턱없이 부족하다.

작중 세이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세츠코를 위해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하는데 그 계란 하나 구하기도 어렵고 비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또 세츠코가 먹고 싶어하던 '사쿠마식 드롭스'는 아무리 돈이 있고 구하려고 노력해도 물건 자체가 없어 살 수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설탕 공급이 중지되어 사탕 생산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업정비령(企業整備令)으로 인해 1945년에는 회사가 폐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 2005년경 개봉이 취소되었을 때는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다.[2] 이 장면은 전체 이용가, 12세 이상 관람가 수준이 아니다. 피를 심하게 흘렸기에 보기 안 좋은 사람은 유의해서 볼 것.[3] 영화 초반 생전에는 약을 챙기려고 했는데 심장약을 챙길 듯하다.[4] 父は海軍大尉で巡洋艦に乗組んだまま音信なく、[5] また清太と節子も、海軍大尉の家族で、空襲により母を失った気の毒な子供と[6] 映像描写においては、夜間に行われた観艦式の華やかさと、そこに父の乗艦が参加していることが描かれ、父の袖章は大尉を示している[7] 국가의 원수 등이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의식. 군함의 장비와 병사들의 사기 등을 살핀다.[8] 반면에 관함식 사진은 잘 안 보이긴 해도 확실하게 1줄을 그었다.[9] 아내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당신은 해군 대좌의 아내"임을 강조하자 마지못해 절을 올렸다.[10] 최소한, 세츠코에게 좋게 알아듣게 말하거나 흰 쌀밥을 약간 나눠주지 않는 것도 잘못이 있다.[11] 엄마가 그러는 이유를 이해를 못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남매의 상황을 안타까워한 것으로 보인다.[12] 물론 잘한건 아니지만 잘못하면 징역으로 갈 수도 있다. 만약 세이타가 얻어맞고 죽었다면 심하면 살인죄로 갈 수도 있다. 절도는 잘못했지만 지나치게 폭력을 휘두르는건 사적제재에 해당한다.[13] 세이타에게는 크게 화를 내지 않고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고 한다.[14] 원작에는 세이타 또래의 아이들이 세상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이 교복을 차려입고 학교로 등교한다고 언급되는데, 전쟁으로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세이타의 비참한 처지와 심히 대조된다. 세이타가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하는 부랑아가 된 이상 학교에 가는 건 꿈도 못 꾸는데다가 사실상 역 구내에서 행인들이 던져주고 가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거지가 되어버렸다는 걸 감안하면….[15] 이 장면을 통해 세이타가 부랑아가 된 이후 산노미야역으로 온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미 세이타는 옷과 신발을 다 팔아치웠고 그걸로 모자라 입고 있던 바지까지 팔려고 시도할 정도로 굶주리고 있었다. 게다가 한 달 넘게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몰골에 누더기옷을 걸치고 맨발로 다니는 모습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고 이러한 옷차림을 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기차역은 모든 사람들이 다 출입할 수 있고, 수돗물이나마 마음껏 마실 수 있는데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이 동정심에 주는 먹을 것도 얻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구경조차 못 하는 처지의 세이타에게는 행인들이 주는 음식은 물론이고 수돗물도 감지덕지였다. 결국 빈털털이가 된 세이타는 아예 산노미야 역 구내로 거처를 옮겨서 생활하게 되었다.[16] 이러한 평가는 전쟁을 제대로 경험한 노년 세대나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나 이런 것이고, 일본 문화의 인기와 와패니즈들의 영향으로 미국에서도 일본이 피해국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17] 중년 이상 오덕들은 대부분 이 이름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18] 이규형의 'J.J.가 온다', 김지룡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한겨레 '클릭 일본문화' 같은 책들.[19] 반대로 한국에서는 피해 지역인데다가 당연히 일본의 일제강점기때문에 나라도 잃고 어렵게 광복절로 되찾고 6.25전쟁까지들도 다 겪어야했기때문에 부정적인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일본이 지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절대로 일본에게서 해방 불가능은 물론이고 이렇게 자유롭게 한글도 한국어도 쓸 수도 없었을것이다.[20] 1엔=10원으로 환산[21] 예를 들자면 포대건빵, 라면 등. 물론 이런 것만 계속 먹어서는 다른 영양소와 미네랄이 부족해지므로 건강하게 지낼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채소 섭취로 보충하면 그만이고, 그럴 수 없더라도 생존 측면에서는 유의미한 열량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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