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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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히데아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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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파일:japan-academy-prize.png
최우수 감독상
제39회
(2016년)


제40회
(2017년)


제41회
(2018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바닷마을 다이어리)

{{{#ffffff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

(신 고질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 번째 살인)


역대 키네마 준보 베스트 텐
파일:키네마준보.png
각본상
제89회
(2016년)


제90회
(2017년)


제91회
(2018년)

하시구치 료스케
(연인들)

안노 히데아키
(신 고질라)


이시이 유야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안노 히데아키
庵野秀明 | Anno Hideaki

파일:20230304 안노 히데아키.jpg

본명
안노 히데아키 ((あん( (ひで(あき)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생
1960년 5월 22일 (63세)
야마구치현 우베시
직업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 감독[1]
수훈
자수포장(2022년 수상)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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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스튜디오 카라 사장대표이사
프로젝트 스튜디오 Q 창작관리 총괄
애니메이션 특별 촬영 아카이브 기구 대표
활동 기간
1982년 – 현재
신체
180cm#, A형
학력
오사카예술대학 예술학부 영상 계획학과[1] (중퇴)
종교
무종교 (불가지론)
배우자
안노 모요코 (2002년 결혼)
자녀
없음


1. 개요
2. 생애
3. 작품 특징
4. 성격
5.1. 반오타쿠 성향?
6. 인간관계
6.4. 같이 작업하는 인물, 친구
6.5. 안노 히데아키의 영향을 받은 감독
7. 작품 목록
7.4. 실사 영화
7.5. 스태프로 참가한 작품 목록
7.6. 출연 작품 목록[2]
8. 기타



1. 개요[편집]


이해하기 쉽다면 거기서 끝나 버리는 것이죠.[3]

일본애니메이터이자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 감독, 배우, 성우.

대표작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있다.


2. 생애[편집]



2.1. 학창 시절과 아마추어 시절[편집]


파일:젊은 시절의 안노 히데아키.jpg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화와 텔레비전에 푹 빠져살았던[4] 이른바 1세대 오타쿠. 중학교 시절에는 순정만화에도 심취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부의 부장을 맡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출중했고 아마추어 특촬 모임에 들어간 적도 있었 다고 한다.

  • 2021년 방영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의 유의'에서 말하기를 안노의 아버지는 나무를 베는 일을 하다가 팀원 때문에 다리를 저는 장애를 입었고 세상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며 세상을 증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증오를 안노를 향해 풀어서 안노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그때마다 TV와 그림의 세계로 도피했다고 한다.[5] 그래서 그림 실력은 늘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는 그림은 항상 사람이 아닌 기계나 거대로봇이었고, 팔다리가 뜯겨지고 파괴되는 그림이었다고 한다. 뭔가가 결여된 자신의 마음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인간은 뭔가가 결여된 것에 애틋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재수한 끝에 실기시험만으로 입학 가능한 오사카예술대학에 들어 갔으나 학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난 학우들(훗날 결성되는 가이낙스의 주축 멤버들)과의 인연으로 아마추어 영상 제작 집단 DAICON FILM(다이콘 필름)의 멤버가 되었고, 오사카에서 열린 SF대회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특촬 영상 제작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돌아온 울트라맨》이란 패러디 특촬물과 《애국전대 대일본》 DAICON IV 오프닝 같은 작품의 제작에 참여해 관심을 받았다.


위는 「서투른 대포도 많이 쏘면 맞는다!(へたな鉄砲も数うちゃあたる!)」[6]는 1979년(재수할 때 소속되었던 아마추어 애니메이터 집단 '그룹 SHADO[7]'에서 취미활동으로), 「튼튼한 타이어(じょうぶなタイヤ!)[8]」은 1980년에 오사카 예대 재학 시절에 만든 것.[9]


DAICON III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은 한국에선 여태 정식 공개된 적이 없다가, 2008년 PISAF에서 《극장판 천원돌파 그렌라간 홍련편》의 상영 뒤에 치러진 특별 행사에서 상영되었다. 본편 BGM은 영국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Twilight.[10]

파일:attachment/daicon_film_poster.jpg
가이낙스의 초대 CEO였던 오카다 토시오가 운영하던 오타쿠 대상 굿즈 판매 가게 제너럴 프로덕츠의 홍보 포스터. 안노가 그린 DAICON FILM 포스터에는 중앙에 본인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파일:external/25.media.tumblr.com/tumblr_m7qwyzasbj1r9l7xlo1_1280.jpg
DAICA FILM 활동 시절의 아마추어 특촬 작품 《돌아온 울트라맨》, 안노 히데아키는 총감독[11] 겸 주연인 울트라맨(그것도 본인이 고집해서 안경 쓴 민낯)으로 출연했다.

위의 경험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인연으로,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로 스튜디오 누에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년작)의 원화를 그렸다.

  • 다이콘3에는 스튜디오 누에 팀(이들도 SF동호회 출신의 1세대 오타쿠들)이 왔었는데, 이때 만난 인연으로 프로의 애니메이터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스튜디오 누에가 만들고 있던 마크로스 TV판 작업에 견학을 갔는데, 이때 이타노 이치로가 느닷없이 컷봉투 원화를 주면서 이거 고쳐보라고 했다. 안노는 그렇게 메카반(班)에 들어가 3개월간 마크로스 원화를 그렸다. 원래 애니메이터는 동화부터 시작해서 선긋는 연습부터 하고 원화로 들어가는데 안노는 선을 너무 지저분하게 여러번 긋는 버릇이 있어서 도저히 동화는 시킬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림을 못 그리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원화로 투입되었다.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은 동화를 그린 경험이 없어서 그림이 서툴다고 겸손을 떨었다. 그리고 잠잘 곳이 없던 안노는 이때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마크로스 극장판에도 원화로 참가한다.#
  • 마크로스 TV판 작화를 할 때는 1컷 1,800엔을 받았다고 한다. . TV판이라서 적게 받았는데, 후술할 나우시카 때는 깜짝 놀랄 만큼 두둑하게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잠잘 곳이 없어서 톱크래프트의 작업 책상밑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

2.2. 스튜디오 지브리와의 인연[편집]


다이콘 필름에서 활동할 때 잡지 아니메쥬에 실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작) 작화 스탭의 모집 광고를 보고 도쿄로 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만났다. 미야자키는 안노가 면접에서 가져간 원화를 보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까다롭다고 여겨졌던 클라이막스의 거신병 장면의 원화를 맡겼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미야자키가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기도 한데, 안노 말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즈키 토시오 말로는 그런 어려운 씬은 젊은 애들에게 맡겨야 필사적으로 하니까 일부러 맡겼다고 밝힌 바 있다.

  • 안노가 밝히길, 자신은 거신병 장면의 매수를 더 늘려 그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야상'(미야자키)은 작화팀에 여유가 없어서 개봉일자에 못맞추니 그걸로 됐다고 하고[12], 거신병의 그림자도 색을 더 넣어서 거대한 입체감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야상으로부터 2색까지 늘리는 것은 허락하나 3색으로 늘리면 죽여버린다는 쪽지를 받았다고 한다. 안노는 스태프들 몰래 매수를 늘려 원화를 그렸지만, 지금도 "거신병이 무너져지기 전에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고개를 한바퀴 돌리면서 녹아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거신병이 녹아내리는 장면도 원화와 원화사이의 동화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동화 5장이면 된다고 지시했는데 동화 7장을 넣었어야 했다. 녹아내리는 것이 너무 빨라서 러시 필름을 봤을 때는 죽고 싶었다. 실패작이었다"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 이후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은 듣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미야자키 하야오는 훗날 인터뷰에서 안노를 보고 외계인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안노가 그린 원화에서 인물 부분은 마음에 안 들어서 수정을 했고, 안노가 작화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일해!"라고 독촉하면서, 극장 개봉날에는 내가 너하고 관객 앞에서 도게자하고 사죄하게 될 거라는 낙서를 그려 보내기도 했다.# #

안노는 지브리에서 채용이 결정됐지만 오사카 예대에서 학비를 내지 않아 제적되고 말았다. 도쿄에 거주지가 없던 안노는 나우시카 작업 기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그리고 이 3개월 동안 카나다 요시노리와도 함께 일했는데, 카나다는 애니메이션은 대충 할 곳은 대충해도 된다고 가르쳐 줬다. 안노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전력으로 집중해야 할 장면과 힘을 빼야할 대목은 빼는 연출을 하게 된다. 정해진 예산이 100일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까지 일일이 공을 들이면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낮아질 뿐으로, 보여주고 싶은 대목에 80을 들이고 나머지는 20으로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 가르침은 안노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드러난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그렇고 신세기 에반게리온(화장실 변기 그림 한 장으로 횡스크롤하면서 대사로만 몇 분간 때우면서 제작비를 절감하는 연출)도 그렇다.

안노는 이 시절에 만난 이타노 이치로미야자키 하야오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작화 스승이 이타노고 연출 스승이 미야자키이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애니메이션 감독의 역할이 뭔가를 배웠다고 한다. 안노가 미야자키를 의식하게 된 작품은 《미래소년 코난》인데, 여동생과 채널 싸움을 해서 이겨서[13] 본방을 사수했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극장에서 2번 연속 봤는데 동시상영이어서 다른 영화할 때는 로비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이후에도 안노는 가이낙스 소속이면서도, 가이낙스가 한가할 때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 참가했다. 반딧불이의 무덤(1988년작)에서 관함식 장면을 그렸다.

작화보루에서도 안노의 80년대 및 비교적 최근의[14] 작화영상들을 볼 수 있다.


2.3. 왕립우주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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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작업을 발판 삼아 1984년 12월 24일에 함께 DAICON IV를 만들었던 다이콘 필름 멤버들(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 오카다 토시오)을 주축으로 가이낙스를 설립했고, 첫번째 작품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왕립우주군》 제작에 참여했다. 안노는 우주선의 발사 장면, 전투기 격추 장면 등의 원화를 그렸다.

왕립우주군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은 재미없다며 외면했기에 흥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당초 이 작품만 만들고 해산할 예정이었던 가이낙스는 흥행 실패로 생긴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 방법을 궁리하여 여러 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과 간간히 만드는 오리지널 창작물로 회사의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2.4. 톱을 노려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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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우주군》의 실패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전기였다. 가이낙스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는 짊어진 빚을 갚기 위해 잘 팔릴만한 노선으로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미소녀와 메카가 등장하고 각종 패러디로 버무려진 OVA SF 애니메이션 《톱을 노려라!》를 기획했다. 그 각본을 읽은 안노는 감독직을 자청했다. 이렇게 안노의 경력에서 첫 연출작인 톱을 노려라[15]는 의외로 많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재능있는 작화가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가 뛰어난 연출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로써 안노는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5.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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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을 노려라!》의 준수한 흥행과 평가 이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NHK도호라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부터 넘겨받게 되었다. 나디아는 단번에 가이낙스의 대표작이 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며 안노를 애니메이션계의 양지로 끌어올려 줬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에게 상당한 좌절을 안겼다. 사실상 하청업체로서 버거운 스케줄을 감내해야 했으며 스폰서와의 잦은 충돌을 겪으며 가이낙스라는 조직 자체가 흔들렸는데 실질적인 수익은 대부분 NHK에서 가져갔고 빚을 다 갚지도 못했다. 결국 《나디아》 종영 직후 오카다 토시오가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는 가이낙스를 등졌으며[16] 마에다 마히로 등의 인물들은 퇴사하여 곤조를 설립했다.

나디아는 한국에선 1992년 10월 22일부터 1993년 4월 8일까지 MBC 방송에서 매주 목~금 오후 6시 10분에 방영하여 일본 못지 않게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2.6. 공백기[편집]


《나디아》 종영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말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의 기획이 오랫동안 승인되지 않았고, 안노는 스튜디오에서 이불을 깔고서 4년간 생활을 했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월급도 안 나왔다고. 이 시절에는 운동을 하며 몸에 체력을 붙였고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취미로 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17]

안노는 자신에게 있어서 멘토이자 목표이기도 한 토미노 요시유키를 찾아가 그의 아래에서 일을 하면서 비로소 초심으로 돌아와 다시금 자신만의 방향성을 추구하게 됐다.[18] 그리고...


2.7. 신세기 에반게리온[편집]


파일:안노 히데아키 ㅡ 신세기 에반게리온 .jpg

1995년, 그의 대표작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됐는데, 온갖 기독교적 요소와 은유, 오마주, 패러디음모론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이례적일 정도로 대성공을 이루었다.

에반게리온은 안노에게는 4년 만에 겨우 작업한 작품으로, 당시 인터뷰에서 '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있다'고 말하는 등 정말로 모든 것을 쏟아부은 모양이다. 게다가 작품 제작 과정이 힘들었는데, 제작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제작비에 치여가며 간신히 완성했다. 결국 TV판의 종영 이후 안노는 완전히 폐인이 되었는데, 소문을 들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나도 그랬다. 쉬면 된다!", "만들고 싶을 때가 될 때까지 쉬면 된다. 그 때가 되면 사람도 돈도 반드시 모인다."라고 말을 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극장판을 만들어야 할 사정이라서 압박을 느껴서 위험할 때도 여러 사람,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안노의 에반게리온 제작 비화 인터뷰 동영상

그렇게 힘들게 만든 작품이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던 안노는 주변의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1996년에 있던 인터뷰에서 논란이 많던 25화와 26화[19]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만약 이상하다면 시청자 니들 잘못이라고 말했다.[20]

이후 안노와 가이낙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의 제작에 착수했고, 총집편 격인 사도신생과 완결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내놓았다.

사도신생은 TV판 1화~24화의 단순한 총집영상이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진정한 에바 TV판의 결말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파격적인 연출과 내용 전개로 끝을 맺으면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완전히 멘붕시켰는데 일설에 의하면 관람도중 구토를 했다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다만 극장판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토미노 요시유키의 《전설거신 이데온》이 훨씬 앞섰다. 안노가 이데온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도 전체적으로 이데온의 극장판을 그대로 오마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데온도 토미노가 영미권 작품인 유년기의 끝을 흉내낸 것이고, 안노도 유년기의 끝의 팬임을 몇번이고 밝혔지만 영상적인 부분과 그것을 시청자에게 선보이는 방식은 명백히 이데온을 참고했다.

훗날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담을 주선한 적이 있는데, 미야자키는 안노를 옆에 두고 그의 작품을 논할 때, "안노의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에반게리온 같은 정직한 영화를 만들어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렸지."라고 웃으면서 독설을 날렸다. 옆에 앉아 있던 안노의 표정은 미묘...#[21]

미야자키 하야오 입장에서 에반게리온을 저평가한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TV를 보고 자란 '테레비 세대'가 자기들이 좋아하는 특촬물(울트라 시리즈, 가면라이더) + 거대로봇물 애니메이션(기동전사 건담, 전설거신 이데온) + 인형극(썬더버드) + 영미 SF 소설(유년기의 끝) 및 영화에서 이것저것 흉내낸 것(패러디오마쥬)일 뿐으로, 창작가 본인이 영향을 받은 작품을 스스로 소화해서 재창조한 철학과 사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친우인 오카다 토시오도 비슷한 논조로 에반게리온을 평했다. 이러한 주장은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구해보기 힘들었던 90년대와 2000년대까지는 "에반게리온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라는 이유로 에반게리온 팬에게 외면받았으나, 인터넷을 통해 이런 작품의 영상과 책을 다시 구해볼 수 있게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결국 이 주장이 맞았다는 것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미야자키나 토미노는 안노와 비슷한 시대의 작품을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많이 보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니 만큼 이런 걸 이미 과거부터 느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성공으로 가이낙스에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만큼의 거액이 들어왔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니 가이낙스 경영진들은 사업 계획 없이 그냥 되는대로 하는 식의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막대한 돈과 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만 본 프로젝트가 수없이 많았고, 프로젝트가 줄줄이 망해도 경영진이나 담당책임자는 돈이 있으니 개의치 않고 막장 식의 사업을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것은 사원들인데, 사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안노는 가이낙스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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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당시 사진

이후 1999년 당시 가이낙스 사장이었던 사와무라 타케시(澤村武伺)의 탈세 사건이 일어나자 안노 본인은 경영에 전혀 손을 댄 적이 없고 해당 사건을 당시에 전혀 몰랐음에도 에반게리온의 방송국인 TV 도쿄에 불려가 사죄를 해야만 했다. 다음해인 2000년에 탈세 사건으로 사와무라 타케시가 사장직을 사임하고 야마가 히로유키가 사장이 되었는데, 야마가는 안노에게 '네 이름이 대표이사직에 있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신용을 해주지 않는다. 이름만이라도 괜찮으니 임원을 해 달라'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안노는 '이름만 올리는 거라면 상관없어'라고 대답하며 가이낙스의 대표이사직을 맡게 됐다.

2003년에도 가이낙스의 막장 경영은 계속되었는데, 회사가 기울어져 '다음달에는 자금이 바닥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안노가 대표이사로서 할 일을 하려고 회사 상황을 서류 등으로 확인해 보았는데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급여에 편차가 심할 뿐더러 일을 거의 안 하는 사원들은 높은 급료를 받고 있었고, 정작 가이낙스를 부자로 만들어준 에반게리온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원들은 급료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안노는 수차례 사내 시스템의 개선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04년에 또 다시 에반게리온 덕으로 회사가 살아났지만 90년대 후반 당시처럼 돈을 낭비했다.

안노가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해 가이낙스를 퇴사한 이후로도 가이낙스와의 로열티 및 빚 문제, 사장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가이낙스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못한 상황이다.


2.8.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편집]


에반게리온 구극장판의 여운이 가실 때 즈음인 1998년에 안노는 순정만화 원작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를 감독했다.[22] 여러 실험적인 연출로 나름 호평을 받고 상업적 성과도 나쁘지 않았지만 막판 전개에서 자금이 부족해져서 여러 실험적 연출만 하다가 마지막화를 흐지부지 끝내버렸는데, 이 때문에 에반게리온 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그러나 애니메이터 스즈키 슌지 말로는 고교생의 사랑보다 더 나아간 묘사[23]를 제대로 넣으려다가 프로듀서와 싸우고 강판된 거라고 한다. # 가이낙스의 프로듀서인 사토 히로키(佐藤裕紀)가 이 작품의 프로듀서였으나 중간부터 감독으로 크레딧되는데 안노가 쫓겨나서 사토 히로키가 대신 감독을 했을 수도 있다.


2.9. 집보는 에비츄[편집]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도 안노가 기획했다(...) 딱히 일화는 없는데, 한국에서 이게 유명해지면서 "사실 에반게리온 만든 아저씨가 만든거다"라고 말해주면 다들 충격먹는다. 물론 감독은 다른 사람.


2.10. 실사영화[편집]


이후 안노는 한동안 애니메이션에는 손을 끊고[24]러브 앤 팝》, 《식일》 같은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실험적 실사영화를 연출했지만 평론은 좋지 않았다. 애니에서나 먹힐 기법을 무리하게 실사 영화에서 시도했다는 비평을 받았다. 그나마 러브 & 팝이 매니아 사이에서는 신선하단 평을 받았다.

또한 그러던 와중 오덕인증을 제대로 했는데, 2003년에 연출한 《큐티하니》 실사영화판은 애니메이션스러운 연출법과 안노 자신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터라 B급을 넘어서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나가이 고 선생과 안노 자신도 특별출연했다. 큐티하니는 흥행에도 실패해서 기울어가던 제작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쾌거를 이뤘다. 이 큐티하니 실사판으로 이득을 본 것은 당시 무명이었던 코다 쿠미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안노의 흑역사.

  • 2021년에 방영한 '프로페셔널의 유의' 안노 편에서 안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끝나고 인터넷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살해 모의를 하는 게시판을 본 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자살 시도를 2번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싫어졌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놈은 창작을 못하면 죽고 말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계 인맥도 없는 안노가 영화라도 만들 수 있게 인맥과 자금을 조달해주었다고 한다.

  • 애니메 스타일 인터뷰에서는 "애니를 만드니까 내 심리 상태나 성벽 같은 게 화면에 그대로 나가버려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더라. 배우와 카메라라는 필터를 한 번 거치면 그런 게 화면에 나가지 않고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고 실사영화로 옮긴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망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2003년 뉴타입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애니에도 써먹어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실사 영화들을 찍으며 독립영화 제작이라는 현실을 배운 안노 히데아키는 후속작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서 독립영화와 동일하게 사비를 들인 인디식 제작 방식을 도입하여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훗날 신 고질라를 감독할 때에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기는 아니었던 셈.


2.11. 에반게리온 신극장판[편집]


안노는 가이낙스를 떠나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한 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내놓았다. 인터뷰에 의하면 TVA와 같은 내용으로 만들고 결말만 살짝 바꾸면 되겠다고 시작했는데, 파부터 필름 유실 등의 문제로 완전 새롭게 만들어버렸다고... 그래도 파까지는 어느정도 TVA의 전개를 따라갔지만 세번째 작품에서는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를 펼쳤다. 그리고 결국 Q를 만들다가 우울증이 오게 된다.


2.12. 2차 공백기[편집]


에반게리온: Q를 만들면서 정신에 큰 충격을 받아 우울증이 생겼다. 각본, 콘티를 너무 늦게 작성해서 제대로 작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스즈키 슌지가 화를 냈으며, 스즈키 슌지가 회사를 그만두는 등 제작 현장에 불화도 일어났다. 결국 안노는 창작 활동 대부분을 접었다. 1년간 회사에서 출근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동안 동료와 아내 안노 모요코가 회사를 대신 운영했다고 한다. 결국 Q 시사회와 이벤트는 츠루마키 카즈야가 안노를 대신해서 다녔다.

우울증이 상당히 심각해지자 스승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격려를 하러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가 식사회를 마련하기도 했고, 바람이 분다에선 성우역을 맡겼다. 그런데 그걸로는 회복이 안 되더라고 밝혔다.

신 고질라를 만들 때 안노가 신 에바 극장판 (Q)때 많은 분들께 실례를 저질렀었고, 본인도 많은 신경증과 스트레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업계를 떠나 있었다고 하며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고지라 극장판을 만들어 달라고 한 회사의 열정에 감동하여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할 만큼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 하다.



이때의 이야기는 안노 모요코가 '커다란 순무(주)' 라는 작품으로 애니화했다. Q라는 순무를 뽑고 안노가 만신창이가 되는 걸 볼 수 있으며 그 이후 아내의 지원을 받고 요양을 하며 일본 애니(메이터) 견본시장신 고질라를 만든다. 그리고 표정이 밝아지고 깨달음을 얻는 엔딩으로 끝난다. 정황상 2017년 경에는 우울증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울증은 몇 차례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카다 토시오가 에반게리온의 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가 안노의 아내 안노 모요코라고 헛소리를 퍼트렸고, 그 때문에 아내가 욕을 먹는 것을 보고 정신적으로 괴로워서 신 가면라이더 작업을 끝나는 대로 쉬기로 했다고 한다.


2.13. 신 고질라[편집]


에반게리온 Q 이후 안노는 토호로부터 고지라 신작의 감독직을 제의받아 이를 수락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에바 팬들 사이에서는 "하던 거나 제대로 끝내라"는 악평이 나왔으나, 고지라 시리즈 팬들은 12년만에 드디어 신작이 나온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에 일부 극성 에바팬들이 "에바에 고지라 묻히지 마라", "이 영화가 망해야 안노가 딴 거 안 만들고 에반게리온 완결편을 만든다" 같은 폭언을 해서 한국 고지라 팬덤에서는 에바 팬덤을 곱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9일 가진 발표회견장에서 "제 작품은 완전히 무에서부터 다시 만드는 타입인데, 에바 신극장판에서 그걸 세 번이나 해 버려서 다시는 작품이라는 걸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까지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신 고지라의 감독직 제안이 들어와서 구원받았다는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며,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면서 심신을 재충전했기 때문에 에바를 계속 만들 수 있겠습니다. 에바를 기다리신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고지라 영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바 팬들한테 사과한 것인데, 그 순간 회견장 분위기가 무척 어색해졌다고... 이 사과도 에반게리온 팬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신 고지라는 초대 고지라에 담긴 비판적 메시지를 현대 일본에 맞게 리메이크했는데 고지라보다는 고지라라는 거대한 재난이 닥쳤을 때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본 관료제의 경직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개봉하자 높은 평가를 받았고, 2016년 일본 실사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 해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여지껏 실사영화에서 좋지 않은 평을 받은 안노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안노에게도 의미깊은 작품이 되었다.

또한 이때 호평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한다. 2021년 3월 22일에 방영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제작 다큐는 4년 동안 안노를 밀착 취재하면서 에반게리온 제작 과정을 담았는데, 그렇다는 건 신 에바의 제작 기간은 4년이며 신 고질라를 끝내자마자 에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공동 감독이자 특수촬영 감독인 히구치 신지, 주인공 아구치 란도 역의 하세가와 히로키와 함께 홍보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생애 첫 내한을 할 예정이였지만... 안타깝게도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을 위해 불발되었다. 한국 팬들은 안노가 대중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고 이전에도 홍보를 위해 다른 나라들을 방문한 적이 없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거나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 소식에 안도감을 표했지만, 내한 불발에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적지 않은 편.

다만 신 고질라를 안노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 안노가 애초에 고지라 오타쿠도 아니었고, 안노가 연출하고 각본에도 손댄 건 맞지만 나머지는 다 히구치 신지 느낌이라는 것이다. 안노는 그저 거대 괴수가 나오는 미니어처 특촬물의 연출을 해보고 싶어서 참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시이 마모루는 안노 히데아키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신 울트라맨일 것이며 신 고지라는 히구치 신지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


2.14.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편집]


신극장판 파부터 뿌려진 무수한 떡밥들이 Q에서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난데다가, Q가 나온 후 마지막편과의 텀이 길어서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또한 안노를 위해서라도 어서빨리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제작되어 개봉하기를 바라는 의견이 자주 나왔다.

일단 개봉년도는 2020년 6월이 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개봉이 늦어졌다. 그나마 2021년 1월에 개봉이 확정되면서 드디어 끝마무리를 할 분위기가 보이고 있었으나, 일본 내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다시 한번 개봉을 연기했다. 그러던 중 2월 26일 저녁에 스튜디오 카라의 공식 유튜브에 예고편이 공개되며 3월 8일로 개봉이 확정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어쨌든 마무리는 지었지만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모양새로 끝나버렸다. 연출이나 작품의 퀄리티 자체는 여전히 좋은 부분이기에 평론가나 취향에 맞는 관객은 호평하는 측도 많지만 시리즈물 전체의 관점에서 서사가 엇나가고 캐릭터들의 관계도 의도적으로 꼬아서[25] 등에서 싫어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작품과 관련한 자세한 평가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평가 문서 참조.


2.14.1. 에반게리온 신 시리즈?[편집]


그러나 이후 안노는 '아직 에반게리온이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라면서 새로운 에반게리온 차기작이 또 나올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사실 충분히 나올 만한 것이, 일단 에바의 판권부터 사실상 안노가 전부 갖고 있는데다,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전세계 미디어믹스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20위 안에 들 정도의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안노 입장에서도 신작만 내면 10년은 더 우려먹을 수 있을 에바를 그냥 완전히 끝내고 묵혀버리기엔 아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은 어디까지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완결일 뿐이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다른 외전작들과는 거의 상관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차기작이 나와도 문제는 없다. 예전에 안노는 에반게리온이 건담처럼 인물과 세계관을 바꿔서 계속 나오는 시리즈가 되길 희망한다는 의견도 밝힌 바 있다.

다만 성우들도 나이가 있고,[26] 다들 이번 극장판으로 본인들이 연기한 주요 캐릭터들과 완전히 작별했다는 입장이기에[27] 감독만 놓지 못한 에바 아마 기존 캐릭터들은 다시 나오기 힘들거나, 나오더라도 성우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15. 신 울트라맨[편집]


2019년 초 안노가 신 울트라맨의 제작 요청을 수락했다는 이야기가 일본 주간지에서 나왔다. 당시에는 아직 루머에 지나지 않지만 츠부라야 프로덕션과 안노는 한 번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고 결국 2019년 8월 신 울트라맨 제작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다만 신 고질라와 반대로 신 울트라맨은 감독은 히구치 신지이며 안노 히데아키는 각본과 연출 보조를 한다. 에반게리온 제작이 끝난 뒤인 2019년 6월 이후에 참여해 2021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안노가 각본도 이미 다 써서 제출했다고. 안노 히데아키는 이 작품을 만들려고 에반게리온 그만 만드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인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4부는 각본이나 콘티는 다 완성했다고 말하며 에바가 먼저 나온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2021년 3월 8일에 개봉하면서 약속은 지켜진 셈이 되었다. 그런데 신 울트라맨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 2022년 5월 13일에 개봉 했다.


2.16. 신 가면라이더[편집]


2021년 4월 3일 7시 30분부터 시작된 가면라이더 시리즈 탄생 50주년 기념 라이브 방송에서 발표된 신작. 2023년 3월 17일에 개봉했다.


2.17. 신 재팬 히어로즈 유니버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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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4일 신 재팬 히어로즈 유니버스를 발족하기로 했다. 안노가 진행했거나 진행중인 작품들인 신 고질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신 울트라맨, 신 가면라이더(영화)신(シン) 시리즈를 내걸어 한데 묶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프로젝트로 진행 할 것으로 보인다. 안노가 특촬 마니아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성덕 중에서도 가장 스케일이 큰 사례인 셈.

다만 여기에 대해 은근 반발이 있는데, 묶인 캐릭터들이 특촬물과 연관이 있다는 점[28]과 안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란 걸 빼면 연관성이 없다시피 한데다[29][30] 에반게리온을 빼면 전부 타사의 IP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기 때문.


2.18. 기타 경력[편집]


안노의 엑스트라 경력은 엄청나게 화려한데, 그 출연 목록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가령 러브 & 팝, 식일, 큐티하니)부터 아내의 만화가 원작인 사쿠란, 지인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일본침몰 등등등...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의외로 부드럽고 온화한 편이라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편으로 평소 거침없는 성격과 터프한 외모와 갭이 느껴진다는 평. 지인들 말로는 저 온화하고 친절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음담패설을 막 하는 것에서 신비로운 매력이 느껴진다나.

야애니크림레몬 시리즈 중 팝 체이서와 스타 트랩에 참여했다. 팝체이서는 키타쿠보 히로유키 감독이 참가해달라고 할 때 "너도 이제 이런거 만드냐..." 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콘티를 보고 매력을 느껴 참가했다고 한다. 완성본도 마음에 들어서 스승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자랑한다고 보여줬는데 "안 야하잖아! 포르노라면 더 막가야 되는 거 아니냐!" 하고 혼났다고 한다. [31]

에반게리온 드라마 CD에서는 사도들의 성우로서 활약하더니만 스튜디오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성우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려 했지만 지브리, 특히 미야자키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승낙했다고 한다. 말이 빠르고 단어 발음이 정확해서 적합하다 판단했다고. 안노 曰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대사가 별로 없는 과묵한 역이라고 들었기에 쉽겠거니 했는데 정작 대사는 잔뜩에다 독일어, 프랑스어에 노래까지 하는 하드코어한 배역이어서 애를 먹었다고. 깨알같은 평가. 미야자키 감독의 말로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는 사람의 존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모양. 카메오 출연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의 성우 데뷔작인데 이런 묵직한 작품의 주연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 때문에 연기력 면에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작중 호리코시 지로의 성격을 잘 드러냈다며 호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느니 나름대로 성공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을 듯.

파일:kanno.png

시로바코에서 칸노 미츠아키로 등장한다. 잠깐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라스트 레터에서 키시베노 소지로 역을 맡았다. 무려 장편 영화의 주연급 배우로 등장한 것인데 의외로 연기력은 나쁘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3. 작품 특징[편집]




▲ 2014년, 제27회 도쿄 국제 영화제 "안노 히데아키의 세계" PV.
▲ 안노가 그린 작화의 주목할 점은, 뭐니 뭐니 해도 파편의 묘사.[32]

애니메이터로서 '인물'은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메카/자연물 묘사력에 있어서의 실력이 워낙 압도적으로 뛰어난 반면 인물 쪽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자조적인 부분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본인도 타인도 인정한다. 바람계곡 나우시카를 할 때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안노의 거신병 작화는 칭찬했지만 사람 작화를 보고는 "세상에 이렇게 사람을 못 그리는 애니메이터는 처음 본다! 너는 사람은 레이아웃만 쳐서 줘라. 나머지는 내가 그릴 테니까." 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여기에 본인도 사람을 그리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 안노의 애니메이션 작화 경력을 보면 사람을 그린 일이 거의 없다. 아버지와의 갈등 등으로 인간에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 어린 시절부터 로봇과 기계만 주로 그려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사람을 아예 그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도 옛날엔 애니메이션 잡지에 만화를 그려서 투고하기도 했고 오카다 토시오도 미소녀 캐릭터 상품, 일러스트 중 안노가 그린 것도 있다고 했었다. #안노가 그렸던 만화1, #2, 애초에 거대로봇이라는 것은 사람의 움직임과 체형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그걸 그릴 수 있다는 건 사람도 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아예 못 그리는 건 아니지만 많이 그려보질 않아서 사람을 애니메이팅까지 넣어서 그리면 다소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데포르메[33] 되어있는 인간 그림은 평범한 수준이나, 대신에 메카, 건물, 기계, 폭파, 파편 작화는 수준급으로 그려낸다.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 눌러 앉아서 이 기술부터 배웠다고. 이타노에게 배우기 이전부터 기계는 잘 그렸다고 한다. 대학 동창 시마모토 카즈히코에 따르면 대학 때 과제물로 자동차 애니메이션을 그려냈는데 너무나도 굉장했고, 이런 놈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마모토는 애니메이터를 접고 만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이나 거대 메카닉 작화는 지금도 업계 일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거신병의 등장/전투 장면이 그의 작품으로, 이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커서 안노는 지금도 그를 "스승"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폭파 장면에 대해서도 일화가 있는데, 미사일이 발사될 때 연기와 불꽃을 리얼하게 그리기 위해 해외까지 나가서 직접 가서 보고 와서 그렸다고 한다.(가이낙스의 《왕립우주군》 제작시의 일화로, 우주선 발사 장면을 위해 직접 미국 NASA 견학까지 다녀왔다.)

애니메이터로서의 능력 외에, 연출가로서 콘티를 작성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쪽으로 활약한 작품의 경우엔 어차피 사람은 다른 작화가나 배우가 대신하니까 되니까 인물 묘사도 제대로 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캐릭터들이 꽤나 현실적으로 리얼하게 감정 묘사를 하고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을 잘 그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사람을 묘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연출가로서도 1세대 오타쿠 감독 중에서는 최고란 평가를 받고있다.

특징적인 것은 바로 연출 복사기라는 점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토미노 요시유키, 데자키 오사무, 카나다 요시노리, 이타노 이치로, 짓소지 아키오[34], 이쿠하라 쿠니히코 같은 거장들이나 하는 연출을 구사할 수 있다. 문제라면 자신이 창시한 연출은 딱히 없다는 것. 안노 최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35] 하지만 남들은 하기도 어려운 여러 거장의 연출법을 모두 습득했다는 점에서 현시점에서 안노를 따라갈 연출자는 많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안노가 새로운 걸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해도 자신의 뒤를 이어줄만한 인물로 안노를 지목하기도 했다. 스즈키 토시오가 나우시카 속편은 안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자 미야자키도 "그놈이라면 괜찮아" 라고 동의했다고. #

대표작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화면에 움직임이 적어 동화를 많이 쓰지 않는 데자키 오사무 스타일의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신카이 마코토도 그러한 연출을 안노 작품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데뷔 초기에는 동화를 많이 써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하는 걸 좋아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때는 거신병 장면에 "작화 매수(프레임)을 더 많이 썼어야 했는데." 라고 했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애니는 너 혼자만 작화 매수 다 쓰는 게 아니다."라고 혼났다고 한다. 오카다 토시오는 안노한테 장면을 맡기면 대단한 걸 만들지만 동화를 많이 써서 적자를 내는 위험 인물이라고 하기도 했다. 톱을 노려라!는 예산을 적게 줘서 동화를 많이 못 써서 하기 싫었다고 한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후반 2화는 한국 하청에다 작화를 줘서 액션 신이 거진 24프레임이었다. [36] 에반게리온도 저예산이라 동화를 많이 못 쓴 거지 거기서 동화를 아끼고 액션신에 동화를 몰아줘서 중요한 액션 신은 12 프레임 이상이었다. 그러나 점차 저예산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이러한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신 에반게리온 인터뷰 때는 "구도만 잘 잡아놓으면 화면에 움직임은 하나도 없어도 재밌다." 라고 말하며 구도 잡기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편집과 작품의 템포는 영화 감독 오카모토 기하치(岡本喜八)를 존경해 따라한다고 한다. 감독 작품마다 1개는 오카모토 기하치 작품의 오마주를 넣는다. 그와 대담을 하면서 긴장해서 벌벌 떨기도 했다. 오카모토는 안노가 자신을 따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좋아했다. #

팬들에게는 토미노 요시유키가 되고 싶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된 인물로 자주 불린다. 그가 숭배하는 인물은 토미노이지만 정작 안노의 연출법들 중 토미노의 연출을 토대로 연구된 것은 별로 없고 대부분 토미노의 연출을 패러디하거나 재해석한 정도. 오히려 미야자키의 연출법이 더욱 많이 엿보이며 스스로 재해석하고 연구한 티도 더 많이 보인다는 평. 한 예로 토미노 컷인이라 불리는 한 화면에 2 화면 이상의 정보를 넣는 토미노 식 연출은 안노의 작품에선 그다지 자주 시도되지 않는다. 아주 가끔 모니터 스크린에 비춰지는 식으로 변형해서 나오는 정도. 안노는 미야자키처럼 실존하는 사물을 그대로 찍은 것처럼 그려내는 연출을 즐긴다.

커리어에 일관성이 없이 맘대로 만든다는 특징도 있다. 그가 스승처럼 모시던 미야자키 하야오토미노 요시유키 등과의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37] 안노는 작품 리스트만 봐서는 같은 사람이 그린 것인지 몰라볼 정도로 장르도 소재도 작풍도 작품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편인 《신세기 에반게리온》, 《집 보는 에비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 모두 같은 감독이라고 하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의 정점에 올랐지만 한편으로 《에반게리온》 이후로 명확한 성공작이 없다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본래 안노는 자신의 작품이 성공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만 자기 맘대로 만드는 사람이다. 안노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이후 스폰서의 간섭을 피해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 영화판에서만 소규모로 놀면서 다른 작품의 연출을 도와주며 살고 있었다. 내놓은 작품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에바 이후 성공작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이 비판도 《신 고질라》의 대성공으로 옛말이 되었다.

토미노 요시유키, 미야자키 하야오는 물론이고 동시대에 활약했던 오시이 마모루 역시 과도한 상업적 요소 때문에 작품이 망가지는 걸 기피하는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안노 역시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닌 것이 스폰서들의 압박이나 요구사항들 때문에 자주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대표적으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캐릭터 디자인 당시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피규어 잘 팔리게 그려"라고 주문했다는 일화도 있고, 안노의 대표작들인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등에는 거대로봇, 미소녀 등 당대에 인기 있던 코드가 많이 투입되어 있으며 대중에게 익숙한 왕도적인 전개도 다수 사용되었다. 그 요소들 중에는 스폰서가 요구한 것도 있지만 안노 본인이 넣은 것도 꽤 된다.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성공했던 것도 그의 작품이 상업성을 띠기 때문이다. 단지 스폰서가 자신에게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자유로운 창작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폰서와 대립을 빚은 일이 많을 뿐이다.[38] 상업적인 작품 만들기를 싫어해서 스폰서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알아서 잘 팔리게 할 건데 왜 나한테 참견해"에 가깝다.

에반게리온이 워낙 유명하고, 이 작품의 결말을 그렸다고 할 수 있는[39]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선보인 특유의 세카이계 포스 때문에 안노 감독이 꿈도 희망도 없는 어두운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고 오해하는 신세대들이 있다. 아무래도 에바의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밝은 희망을 외치는 성향이다. 톱을 노려라!와 에반게리온의 주제를 생각하면 정말 희망찬 감독이란 걸 알 수 있다. 나디아는 아예 확 밝은 분위기로 시작해 최종적으로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어두운 비극적인 감독은 오시이 마모루토미노 요시유키가 더 가깝다.

90년대에만 해도, 안노는 왕립우주군의 실패 이후 상업성을 극히 증오하다가 에반게리온이라는 상업성에 거스르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사실처럼 돌았다. 이것은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잘 팔리기 위해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다르다는 논조로, 에반게리온이 작품 자체로서 깊이가 있다는 감상을 강조하기 위해 9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루머일 뿐이다. 이는 이후 안노의 수많은 인터뷰로 부정되었다. 안노의 취향 및 창작 스타일을 보고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부정할 수 없는 상업적 창작물의 오타쿠다. 에반게리온에도 상업적 요소는 넘치도록 많다.

또한 안노의 기본적 창작 성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재조명하고 오마주하기이다. 에반게리온에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장면들 중 상당수는 울트라 시리즈(짓소지 아키오의 연출작 + 돌아온 울트라맨), 우주전함 야마토, 데빌맨, 전설거신 이데온, 고지라 등에 등장하는 장면을 오마주한 장면이다. 나디아만 해도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타임보칸, 우주전함 야마토를 오마주한 장면이 대단히 많다. 안노 아니면 모를 법한 B급 영화의 오마주도 굉장히 많다. 그가 좋아하는, 실존하는 밀리터리 병기나 군함 등도 그의 작품에는 반드시 어딘가에 등장한다. 그러한 장면들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거나 안노가 직접 만든 창조적 장면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으나 100%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작품을 알고 있는 안노와 동세대의 오타쿠들은 그런 해석을 보면 어이 없어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이런 것도 고려해서 평가가 이루어지지만[40] 일본이 아닌 지역에는 안노와 같은 세대이면서도 같은 문화 환경에 노출되어 온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리고 안노가 영향을 받은 서브컬처에 정통한 사람이 해외에서는 얼마 없기 때문에, 안노가 만든 작품에 대해 종교적이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패러디 및 오마주를 자주 하기는 하지만, 실험 정신 또한 정말 투철해서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넘나들려는 시도까지 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는 도중에 실사 영상을 집어넣기도 하고,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에서는 원작 만화 장면을 그대로 넣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는 실사 영화 사업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장면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 있기에, 이 부분에서 안노의 실험 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평가되고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장면에서 기승전결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신 고질라부터 단순히 콘티에 의존하지 않고 모션 캡처와 CG로 일단 한 번 참고용 영상을 만들고 이를 돌려가면서 최적의 앵글과 연기를 찾아낸 뒤 최종 영상 촬영에 반영하는 '프리비즈' 작업을 도입하고 이에 심취해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도 이를 도입했다. 2021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의 유의'에서 한 말로는 콘티에서 바로 작화를 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결국 자기 머리 속에만 있는 평범한 게 나올 뿐이라 이런 방식을 사용해서 참고로 삼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도 많이 받아 자신의 능력 이상의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프리비즈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지만[41]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는 크게 시도된 바가 없으며 [42] 비효율적이라 신 에바의 제작 기간은 4년을 넘기고 말았다. 그러나 덕분에 연출과 영상미, 캐릭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오카다 토시오도 신 에바의 영상미의 비결은 프리비즈에 있다고 평했다. 다만 이노우에 토시유키 말로는 그림 콘티도 있었다고 하며 안노 말로는 그림 콘티 없이 만든 건 A파트라고 한다. # 이때 만든 영상으로 자신감이 생겼는지 신 가면라이더는 콘티를 너무 준비하지 않아[43] 배우, 스태프와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히구치 신지에 따르면 톱을 노려라!를 만들면서 여성 캐릭터의 가슴 크기와 형태를 전부 다르게 설정, 디자인해서 캐릭터 디자인 표에 넣으라고 지시한 최초의 인물이 안노 히데아키이며 이러한 묘사법은 이후 업계 표준이 되었다고 한다. 히구치에 따르면 안노가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가슴 묘사는 글렀다. 형태가 다 똑같다. 현실엔 가슴 형태가 똑같은 여자는 없다고!" 라고 주장했다고 한다.[44]

신 울트라맨부터 화질이 저하되는 걸 감수하고 스마트폰으로 찍는 영상을 넣을 때가 있다. 안노 말로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으면 스마트폰의 무게 때문에 인간의 손 떨림이 들어가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런 영상을 일상에서 많이 보게 되어 그런 영상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손 떨림은 카메라로 찍으면 무게가 달라서 나오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찍어야 한다고.

카나다 요시노리타케모토 코이치를 존경해서 실사 영화를 만들 때 프레임을 일부러 빼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연출을 한다. 애니메이션은 이런 기법이 일반적이라 그렇게 비판받지 않으나 실사 영화에서는 공포 영화가 아닌 이상 그렇게 널리 쓰이는 기법이 아니라 영화 팬들에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4. 성격[편집]


  • 완벽주의
완벽주의자여서 감독 데뷔작 《톱을 노려라!》에서는 외부로 발주한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리테이크 해달라고 하자, 하청의 미술감독이 시간도 없고 못해먹겠다며 거절하자, 안노는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근처의 책장에 머리를 꽝꽝 찍으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チクショー!チクショーッ!!(젠장! 젠장!!)" 하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보다못한 그 미술감독이 우는 놈은 못 이긴다면서 철야작업으로 수정해 준 일화가 있다. (작화감독이었던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회상)[45] 하지만 다른 완벽주의 감독과 달리 현실이나 예산과 타협하는 경우도 많다. 안 되는 건 포기할 때도 많다. 동료들 말로는 이상한 곳에서 완벽주의라고 한다. 그렇게 공을 들일 장면이 아닌 것 같은데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표적으론 신 에반게리온에서 아스카가 신지에게 밥을 억지로 먹이는 장면에 이상하게 집착해서 그 장면 담당 애니메이터는 1년 넘게 작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에바Q 제작 당시의 에피소드도 있는데 극중 초반 우주에서 사도를 쫒는 신에서 안노가 무려 49번의 리테이크를 냈다고 한다. 49번째의 리테이크신을 보더니 안노는 "7번째 컷으로 하지."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49개의 컷을 전부 기억하고 사소한 차이를 눈에 담아두고서 결정했다는 말이다.

또한 우주에서 로켓이 분리되는 장면에 무수한 부품이 산개되는 장면은 3D CG로 그려졌는데, 그걸 혼자서 담당한 3D CG 애니메이터가 해당 장면을 그린 다음 안노의 완벽주의에 질려서 퇴사했다고 한다.

흔히 나디아에서 한국 하청 보낸 것의 결과물이 안 좋아서 안노가 화를 냈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무근의 루머이다. 안노는 이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때 한국 하청에 데인 적이 있어서 큰 기대는 안 했고 일이 잘 안 풀리자 나중에는 최종화만 잘 만들겠다면서 히구치 신지에게 감독을 떠넘기고 도망갔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뷰를 보면 안노는 어쩔 수 없던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외에도 안노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도망쳤단 일화는 여럿 보이는데 이를 보면 기본적으론 완벽주의이나 하다하다 안 되거나 자신에게 실망하면 도망치는 게 습관인 것으로 보인다.[46]

오카다 토시오톱을 노려라!에서 안노가 감독직을 자처할 때만해도 애니메이터로서만 평가받던 인물이라 아무도 안노에게 그런 연출 재능이 있는 줄을 몰랐고, 당시 안노는 가이낙스내에서는 '최종 병기(핵폭탄; 보여줘야 할 이 장면을 맡기면 틀림없이 해 내지만, 제작비용을 초과하게 만들어서 적자를 각오하게 만드는 등 후폭풍이 어마어마한)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오카다 토시오는 안노가 왜 천재인지를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를 볼 때 멋진 장면이 나오면 멋지다고 생각하고 끝나지만 안노는 늘 '이게 어째서 멋진가?'를 분석한다" 라고 평했다. #

이렇게 완벽주의 성향과 맞물려 워낙 제1세대 오타쿠로 유명해서, 폐쇄적인 오타쿠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몇몇 일화들, 루머들로 성격도 괴팍한 사람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 말로는 의외로 인싸라 주변에 사람이 늘 많다고 한다. 가이낙스의 창립멤버이자 초대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평소의 성격은 '나디아'에 나오는 주인공 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항상 여자친구가 있고, 헤어져도 바로 새 여자친구가 생겨서 여자가 없던 적이 없는 리얼충이었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서고도 업계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 처세를 잘한다고 한다. 가이낙스 시절, 제작이 없을 때는 안노는 다른 스튜디오의 작품을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는데, 가이낙스 작품을 만들 때는 이때 사귀었던 스탭들을 데리고 와서 "지원군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의기양양했다고 한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 참여하는 스타 애니메이터 군단이 다 안노 히데아키 개인 인맥이다. 인맥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있는 점. 이런 인생을 살고있기 때문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폐쇄적인 오타쿠나 아싸들에게 "밖에 나와서 사람도 만나고 그래라" 라고 하는 메세지를 내놓는 것이다.)

잘 모르는 팬들이 많은데 인터뷰에서의 까칠한 모습들과 터프하고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듯 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종영 이후 어느정도 회복한 이후, 당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서 힘들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송에서 자신이 졸업한 모교, 초등학교에 방문하여 애니메이션 제작 기초 교육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안노의 고향집 및 부모님이 출연하는 것은 둘째치고 아이들과 친근하게 소통하고 질문에도 하나하나 답해주며 하나하나 챙겨주면서도 칭찬도 잘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웃는 모습까지 자주 보여주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긴장한 모습을 보였으나 점차 안노와 소통하며 마지막에는 무섭고 깐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동네 아저씨 마냥 너무 좋은 사람이였다, 이대로 계속 선생님으로 있어주시면 안 되냐는 등, 아쉬움을 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안노의 몇 안되는 인간미를 볼 수 있는 훈훈한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모로 스승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슷한점이 많다. 이밖에도 스태프들과 성우들이 이후 밝힌 제작 및 레코딩 일화에 따르면 의견을 잘 듣고 잘 받아주는 편[47]이라고 하며 아내인 안노 모요코감독부적격을 보면 진성 오타쿠 아니랄까봐 의외로 재미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 편식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나디아의 '섬'편에 나오는 나디아의 캐릭터는 히구치 신치가 옆에서 관찰한 안노를 투영하고 있다. "나 오늘 다시 태어났어!"라는 나디아의 대사는 실제로 안노가 한 말이고, 나디아의 이상한 식성(채식주의도 아니라 심각한 편식)은 안노가 육고기나 물고기는 안 먹으면서도 쇠고기 바베큐맛 스낵, 계란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나디아의 식성은 안노에게 물어보고 정했다.(안노에게 계란은 먹느냐고 하니까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안 먹는다.'라며 계란은 먹는다고 해서 나디아가 계란은 먹는다는 설정 등) 우유도 좋아하며 커피는 라떼나 커피우유로 마신다고 한다. 안노 모요코 말로는 야키토리 집에 가면 메추리알은 먹는다고 한다. 아내인 안노 모요코 말로는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보니 컵라면, 캔커피, 콜라, 맥주, 감자칩 같은 정크 푸드만 먹고 살고 있어서 경악했다고. #, #
  • 2021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의 유의'에서 아내 안노 모요코는 "이 사람은 이대로 방치하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하기도 했다. 채식이 반드시 건강한 건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사실상 채식주의가 아닌 편식이지만. 이밖에도 나디아와 비슷하게 아야나미 레이도 채식을 한다는 설정이지만 고기 육수로 만든 라멘은 먹는 장면이 있다. 오카다 토시오의 증언으로는 만두도 먹는다고 한다. 안노가 고기를 못 먹는 이유는 안노 눈에는 고기 덩어리가 끔찍한 물체로 인식되어서 그런 것이고 고기 맛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서 고기 모양으로 보이지 않게하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다만 영어 위키백과에는 세부적인 사실없이 그냥 채식주의자라고만 나왔다. 비건 측에서 어떻게든 안노를 비건으로 분류해서 유명한 채식주의자로 홍보하려고 이런 사실을 잘 알리지 않는다. 다만 하여튼 안노가 고기의 외형에 대한 혐오감이 심한 건 사실이라 거의 먹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고어한 작품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으로 보면 괜찮다고 한다. 안노는 그림으로 그리면 단순해지면서 질감이 줄어들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에바의 사지가 잘리는 연출도 할 수 있었던 것.

  • 목욕하기 싫어함
잘 안 씻기로 유명하다.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안노는 1년 가까이 안 씻은 적이 있다고 한다. 왜 안 씻냐고 하자 "씻지 않는다고 죽는 건 아니다. 매일 습관적으로 씻는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나는 해야할 일이 많고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씻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48] 그리고 "그래도 내가 한 2주 동안 머리를 못 감으니까 엄청 가렵던데?" 라고 하자 "1달이 넘으면 가려움이 사라진다" 라고 했다고 한다. # 안노가 목욕을 하자 목욕물이 회색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런 사람이 어째서 친구가 많은 것인지,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은 것인지 충격적인 지경이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씻는다는데 존경하는 애니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를 만나러 갈 때는 목욕을 했다고 한다. 토미노가 지휘하던 '역습의 샤아' 제작 당시 스탭으로서 첫출근 하게 되었을 때, 평소 씻지도 않고 지저분한 거지꼴로 뒹굴던 인간이 깨끗하게 목욕과 면도를 하고 머리도 올백으로 다듬고는 아끼던 외출복으로 치장하고 나와 같은 가이낙스 스탭들이 엄청나게 놀랐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뉴타입 100% 시리즈 '역샤' 단행본에 당시의 깔끔한 모습의 사진이 있다.) 1990년대 에반게리온이 유행하던 시절의 한 방송에서는 자신이 한때 짝사랑하고 청혼까지 했었던 성우 히다카 노리코가 인터뷰를 하러 온다고 하자 씻고 머리 염색까지 하고 나오기도 했다. # 감독부적격에 따르면 목욕을 하고나면 성격이 날카로워지며 목욕을 안 하면 성격이 다정하고 온화해져서 아내 안노 모요코가 왜 그러냐고 하니까 "목욕을 하면 내 몸에 있는 다정함 성분이 씻겨져 나간다." 라는 말을 해서 어이를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창작에 몰두할 때는 냅두기로 했다고 한다. 2021년 방영 다큐 '프로페셔널의 유의'에서 히구치 신지는 안노는 채식을 하는 사람이라 안 씻어도 체취가 안 나서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 때는 씻는 걸 본 적이 없었으며 나중에는 그의 감독방에서 닭장 냄새가 났다고 한다. 안노 모요코 말에 따르면 빨래도 못해서 옷과 속옷은 싼 걸 사서 빨지 않고 일주일 정도 몇 번 입고는 바로 버렸다고 한다.

  • 대인배
항상 자신의 작품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정당한 수익을 배분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며 에반게리온이 흥행했을 때도 인센티브를 주었고 스튜디오 카라를 만든 것도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카라 회사 규모가 작은 것도 있어서 고용은 주로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인센티브나 보너스는 확실히 챙겨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걸 보면 괜히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닌 셈. #[49]


5. 오타쿠[편집]


  • 아래에 엄청나게 길게 상술되어있지만 대부분 알려진 사실만 간략하게 적은 것이다. 그정도로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특촬물,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예술에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1세대 오타쿠. 특히 직업적으로 개인의 공부와 연구 외에도 본인이 너무나도 좋아해서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 상당한 수준의 밀덕후다. 자위대에 체험입대한 적도 있고 홍보 영화를 찍기도 했다. 《반딧불의 묘》에서는 원화를 그리는 아르바이트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주인공의 아버지가 승선한 순양함의 관함식 장면을 맡고, 자료조사를 아주 열심히 해서 창문 숫자까지 극사실주의로 디테일하게 그렸다. 하지만 작화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굳이 화려한 장면은 필요없다며 디테일을 뭉개버리고 순양함은 까맣게 칠하고 실루엣 처리를 해버렸다. 결국 그의 덕심은 《신 고질라》에서 빛을 발했다. 전직 방위대신(국방장관) 이시바 시게루가 봐도 적절히 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잡지 기사를 통해 정통 밀덕임을 인증했다.#

  • 또 《마크로스》의 '이타노 서커스'를 비디오에 녹화해두고 프레임 단위로 반복해서 보며 연출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에반게리온: 파》 초반의 에바 2호기 전투씬은 훌륭한 이타노 서커스. 다만 해당 장면의 체크는 안노가 했지만 그린 건 오시야마 키요타카라는 사람이다. 안노는 의외로 마크로스 외에는 이타노 서커스를 직접 그린 경우가 드믈다.

  • OVA 《기동전사 건담 MS IGLOO》도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포교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동일 작품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팬의 한 사람으로서 등장하여 기동전사 건담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고 있다. 《기동전사 V건담》도 좋아해서 감독이었던 94년 토미노와 V건담 관련 대담을 나눈적도 있다. 다만 이 대담에 대해 한국에서 많이 왜곡되어 있는데 재밌다고 하면서도 안노는 토미노 면전에다대고 "이건 애들에게 보여줄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하기도 해서 그렇게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다. 안노가 토미노 작품을 웬만해선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에선 V건담 팬들이 이상하게 안노가 V건담을 가장 좋아한단 식으로 정보를 왜곡해놨다. 안노가 가장 좋아하는 건 퍼건이나 이데온이다.

  • 그밖에 다른 로봇물도 좋아해서 작품 자체가 워낙 독자노선을 타고 스폰서 문제 때문에 슈퍼로봇대전에 참전시키기 어려웠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참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도 했었다.
    • 세가는 참전시키기 싫어서 그당시에도 괴팍하기로 유명한 안노 핑계를 댔는데, 정작 안노는 워낙 좋아하던 게임이라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콜.
    • 이후 진행된 미팅에서 테라다 타카노부의 증언에 따르면 슈로대에 참전하는 에바에 대해 물을 때마다 안노가 상세하게 조언을 해준것은 물론 아예 직접 테라다를 찾아가서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예를들면 작중 통곡의 벽 수준인 AT 필드[50]의 밸런싱 설정에서, 안뚫리게 설정하자니 사기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일정 데미지를 줘서 뚫리게 만들면 원작설정을 해칠 영향이 있어, 초전자 스핀의 예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생각외로 "그런 무식한걸로 꼴아박는데 안 뚫리겠습니까? 뚫리죠."라는 쿨한 답변을 제시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다른 스텝이 아무리 그래도 원작을 과하게 해치는데 회의는 해보고 결정하는게 맞지않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게임 콜라보잖아. 적당히 하자고. '우리가 짱이다.' 무조건 이런 식으로 나가면 사람도 질려. 적당히 하자" 하고 중재하며 다독였다고. 그래서 AT필드의 방어력을 적정선에서 합의할 수 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 또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2호기가 빨갛다는 이유로 에바 샤아를 태우자거나 뿔을 달아보자는 개드립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나온 이야기들은 훗날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서 실현되었다. 에반게리온: 파에서 2호기에 뿔을 달았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도입부 액션 신에서 마키나미 마리가 초전자 스핀 비슷한 기술로 AT필드를 뚫어버린다.
    • F에서 테라다 감독에게 부탁해서 신지가 브라이트한테 얻어맞고 "아버지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를 외치게 만든 것도 유명한 에피소드.

  • 건담, 특히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에 참여할 때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51] 해당 작에서 등장하는 네오 지온계열의 함선[52]들이 안노의 작품이다. 뉴 건담의 디자인 공모에도 초안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채용되지 않았다.#


  •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에 대해서도 작품의 동인지를 수집할 정도로 열렬한 팬으로, 에반게리온 작품 구상 작업 도중에도 TV 방송시간이 되면 작업을 내팽겨치고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세일러 문 보러간다고 했을 정도. 그는 특히 세일러 문에서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연출을 담당한 에피소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대체 저 이쿠하라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직접 제작 현장에 쳐들어가[54] 본인이 원화가로 《극장판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 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감동받아서 개봉 후 3번이나 봤다고 한다. TV 시리즈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에서도 103화 원화작업과 함께 세일러 우라누스세일러 넵튠의 변신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당시 안노는 가이낙스 소속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작업은 몰래 참여한 것이며, 따라서 크레딧엔 안노의 이름이 없다. 또한 자기 작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중요 인물 성우로 미츠이시 코토노(카츠라기 미사토 역)와 오가타 메구미(이카리 신지 역)를[55] 기용했다. 아야나미 레이의 이름이 히노 레이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또한 연출가 사토 준이치, 애니메이터 하세가와 신야와도 이 작품을 통해서 친해졌으며 에반게리온 제작 때 스카웃하였다.

  • 특촬 작품에도 큰 관심이 있으며, 그 중 울트라 시리즈의 왕팬으로서 알려져 있다. 특히 《울트라맨》, 《돌아온 울트라맨》에 열심이라고 한다. 울트라 세븐도 명작이고 좋아하지만 인간 사이즈일 땐 똑똑하게 보이던 외계인들이 거대화만 하면 바보처럼 변하는 게 아쉬웠다고 하며 역시 돌아온 울트라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외에는 울트라맨 80을 좋아하며, 울트라맨 타로는 고등학교 때 나온 거라 유치해서 안 봤는데 나중에 다시보고 엄청난 작품이란 걸 실감했다며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다. 돌아온 울트라맨은 너무나도 좋아해서 에반게리온 제작 때 상영회를 열기도 했고 나중엔 참고한 작품으로 스태프롤에 돌아온 울트라맨을 넣었다. 후년에 고 히데키를 맡은 주연배우와 올나이트상영회까지 가진 적이 있었다. # 2013년 말에 하이비전 방송기념으로 다시 재회해서 돌아온 울트라맨에 대한 팬심을 보여주었다.# 대학 시절에 '울트라맨' 8미리 영화를 독립 제작한 것으로 유명.

  •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팬이기도 하다. 아내가 그린 만화 감독부적격 속 내용에 따르면 지인에게 《가면라이더 파이즈》의 변신벨트인 파이즈 드라이버 컴플리트 셀렉션 버전을 선물받았다고 하며 그 후 반다이를 통하여 이러저러한 벨트들을 선물받거나 본인이 구매했다고. 파이즈 상품은 다 샀다고 한다. 그리고 똥배 때문에 안 맞자 울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라이더로는 쇼와는 가면라이더(초대)가면라이더 V3, 가면라이더 BLACK 헤이세이는 가면라이더 파이즈가면라이더 카부토를 꼽는다. 카부토는 좀 나중에 본 거라 장난감을 다 사지 못했다고 한다. 이 두 작품은 스토리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는 작품이라 스토리 위주로 작품을 보는 한국에선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안노 히데아키는 연출 덕후다. 저 두 작품은 전투 연출은 호평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헤이세이 라이더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의외로 이 두 작품이 끝. 라이더는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철덕인데 왜 토큐저는 보고 가면라이더 덴오는 안 봤냐는 질문에 "라이더가 오토바이를 타야지 전철을 타는 건 좀..."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가면라이더 쿠우가는 방영 당시 여유가 없어서 못 봤고 애정이 없다고 한다. 헤이세이 입문작은 가면라이더 아기토라고.

  • 사실 알고보면 오히려 라이더보다 슈퍼전대 시리즈 쪽을 더 좋아하는데 감독부적격에서 나오는 바로는 전대를 매주 보고 있다고 한다. 배틀피버 J부터 제대로 보기 시작했으며[56] 특히 태양전대 선발칸을 좋아해서 애국전대 대일본 때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외에 전자전대 덴지맨, 조인전대 제트맨, 격주전대 카레인저, 전자전대 메가레인저, 인풍전대 허리케인저, 특명전대 고버스터즈, 수전전대 쿄류저, 열차전대 토큐저 등을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만들면서 정신이 힘들어지면 전대를 보면서 정신을 치유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구판 때는 카레인저와 메가레인저를 봤고 신극장판때는 고 버스터즈와 쿄류저를 봤다고. # 다만 전대에서 원하는 건 밝은 분위기와 우정이라 너무 어두운 분위기의 전대는 싫어한다고 한다.

  • 수도 도쿄에 정기적으로 괴수가 출몰, 그 괴수를 물리치기 위한 조직이 있어서 긴급 출동한다는 '울트라맨'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전개가 그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어져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고질라'나 '가메라'의 영향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 실은 가장 좋아하는 특촬물은 썬더버드마이티잭 같이 슈트를 입고 찍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미니어처 만으로 이루어진 특촬물이라고 하는데 그런 작품이 거의 제작이 안 되어서 아쉽다고 한다.


  • 일본이나 독일이 제작한 전쟁 영화도 많이 본다고 한다. 이런 걸 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란 건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본 영화로서는 1971년작 《격동의 쇼와사~오키나와 결전》을 꼽고 있다. 이건 톱을 노려라!에 전적으로 오마주되었다. 참고로 제목이 저래서 오해하기 쉬운데 저 오키나와 결전이란 영화는 지들이 원인을 제공해놓고는 오키나와가 미군에게 공격받자 나몰라라 방치한 일본군의 한심함을 그린 영화로 우익들이 반일 영화라고 까는 영화다.

  • 특촬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서, 2012년 도쿄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람회(특촬박물관)용 이벤트 특촬 단편영화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의 기획과 각본을 맡았다. 기자회견에서는 특촬이라는 것이 앞으로는 없어지게 될거라며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남겨두고 싶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다.[57]

  •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하고도 관계가 깊은데 학생 시절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 철야 행렬 당시에 현장에 밤새고 줄서서 봤던 당사자이다. '야마토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다'라는 말을 공석에서 하기도 한다. 톱을 노려라, 나디아, 에반게리온 등 그의 작품 대부분에선 야마토 패러디가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 있다. 다만 2008년에 플레이보이에서 한 니시자키 요시노부와 안노의 대담에서 니시자키는 안노에게 야마토 리메이크의 감독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안노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이유는 "나는 전쟁 체험 세대가 아니라 야마토 같은 작품은 만들 수가 없다"라고. 우주전함 야마토 2199 제작에 참여하긴 했으나 오프닝 영상이나 원화를 그려줬을 뿐이지 작품 내용엔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에반게리온 Q를 만들면서 정신이 힘들 때 우주전함 야마토 2199를 보고나서 힘을 얻었다고 하며 이즈부치 유타카에게 매우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 일본에서 열린 배틀스타 갤럭티카 이벤트에 지인 히구치 신지와 참가해 둘 다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전개에 대해 아낌없는 비판을 가해 "과연 안노!"라는 소리를 듣기도.

  • 2011년 12월호 뉴타입에선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극장판 제작 소식에 축하 코멘트를 남겼다. 큐베마녀, 음악이 좋단 식의 정상적인 코멘트에 이어 10화의 호무호무 그림이 좋았다라는 말을 남겼다.근데 하필이면 Q 개봉에 앞서서 Q베를 언급해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58]

  • 철도 동호인이기도 하다. 안노의 작품에서 기차선로, 철도 건널목이 작중 심리묘사의 도구로 많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 신 고질라 개봉 당시 도요게이자이신보(東洋經濟新報)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철길 옆에서 자라서 철도가 좋다고 밝혔다. 실사영화 식일(式日)에 철도와 소녀(鉄道と少女)라는 단편영화가 포함되기도 했으며, 에반게리온: 서에서는 제3신동경시의 철도묘사나 야시마 작전에서 변압기 수송을 위해 DD51형 디젤기관차 3대를 한번에 붙여서 운행하는 디테일한 묘사가 있으며, 신 고질라에서는 후반에 전동차가 중요하게 활약하기도 한다. 신칸센 500계 전동차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라며 가장 좋아하는 열차라고 밝히기도 했고, 신칸센과 에반게리온을 콜라보한 에반게리온 신칸센이 산요 신칸센을 운행중인 500계 전동차에 낙첨되기도 했다. 본인은 철도 매니아라기보다는 철도가 좋을 뿐이라고 라이트한 철덕임을 나타냈지만 꼭 그런것도 아닌 모양이다. 부인인 안노 모요코가 그린 만화 감독부적격에서도 일화가 나오는데, 안노의 꿈은 '집에서 N게이지 철도 모형 디오라마를 깔아놓고 기차와 노는 것'이라고, 또한 리니어 신칸센 시승행사에도 부부가 참석했다는 일화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상술한 신 고질라 개봉 당시의 도요게이자이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철도 모형에 관한 주제에선 쉴틈없이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과 함께, 인터뷰 말미엔 "자신은 노리테츠(乗り鉄:열차 시승 중점)나 토리테츠(撮り鉄:열차 촬영 중점)라기보단 철도 모형 덕후(模型鉄)"라고 철덕임을 인증해 버렸다.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개봉을 앞두고 여행과 철도(旅と鉄道)라는 철도잡지의 2021년 1월호 부록으로 에반게리온과 철도가 발행되었는데, 에반게리온 세계관의 철도노선과 차량 설정집을 수록하였고 안노 감독의 철도 모형 이야기와 철도차량 외에도 선로분기기에서 느끼는 매력 등 철도에 대한 사랑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안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신지의 심리를 표현할 때 기차 안에 있는 연출을 썼고 실사영화 '식일'의 포스터에도 선로를 썼으며 안노 감독의 고향역이나 다름없는 우베신카와역의 구내선로 풍경이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티져 포스터로 활용되었고, 작중 마지막 장면에서도 우베신카와역이 등장한다.


5.1. 반오타쿠 성향?[편집]


《에반게리온》 TV판의 종영 이후부터 제기되어 왔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나온 문제의 장면 때문에 확산된 설이다. 《왕립우주군》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패러디와 미소녀로 점철된 작품에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던 오타쿠들에게 염증이 난 안노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오타쿠를 비판했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

실제로 안노는 《에반게리온》 종영 이후로 오타쿠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자주 했는데, 보통은 오타쿠 문화의 소비적인 풍토에 대한 비판을 했다. 이 정도라면 업계 중진의 질책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끔은 정도가 심해 "애니메이션 팬들은 자존심이 없는 현실 도피자들" 같은, 야마칸이 생각나는 발언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59]

한국에서는 과거 에반게리온 팬덤의 거대한 축이었던 세븐 아이즈(현재는 폐쇄됐다.)와 초창기 네이버 지식인이 만들어낸 오해의 확대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 세븐데이즈에서는 에반게리온의 가사를 끼워맞추며 반 오타쿠 작품이라는 농담식의 게시물이 있었는데 네이버 지식인 등지에서 이런 글을 퍼가며 에반게리온은 반오타쿠작품이라는 곡해된 인식을 만들어낸 것이 확대되어 지금에 이른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나디아》를 오타쿠 색이 없으며 《나디아》의 실패가 또 안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사실 《나디아》도 안노가 자신이 좋아한 여러 작품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잔뜩 집어넣은 오타쿠 색이 강한 물건이다.[60] 안노 본인이 인터뷰에서 그런 작품이라고 언급하는데 어떻게 이게 오타쿠 색이 없단 말인가.

오타쿠에 대한 그의 시각은 이전에 각종 영화 매체 등에 그의 인터뷰가 수록된 바 있으나(애니 관련 매체에서는 이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함) 현재는 구해보기가 쉽지 않다. 현재 가장 구해보기 쉬운 안노 본인의 견해는 그의 부인 안노 모요코가 그린 《감독부적격》 부록으로 인터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즉 오타쿠의 긍정적인 면은 인정하되 오타쿠의 폐쇄성을 경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작품에서 하고싶은 말은 "나는 오타쿠지만 이걸로 창작도 하고 인싸처럼 살아서 행복하게 살고있다.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봐라" 라는 것으로 오타쿠 비판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아싸 비판에 가깝다.

허나 에반게리온 Q 상영 당시 "작품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관객들의 빈축을 샀고[61]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비판을 위해 작품성을 희생하고 고의로 팬덤들이 원하는 쪽과는 정 반대로 작품을 제작하면서[62] 오타쿠들 돈으로 호의호식 하는 주제에 겉으로는 오타쿠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6. 인간관계[편집]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소리를 듣는 위치가 되었지만 그도 역시 젊은시절에는 유명인사들 밑에서 하청받고 공부하며 지냈다. 그 중에서 특히 토미노 요시유키미야자키 하야오와의 관계가 유명하다.

이 외에는 오시이 마모루하고도 아주 친하진 않아도 가끔 만나는 사이라고 한다. 오시이 마모루는 안노 히데아키가 오구로 유이치로와의 인터뷰에서 "연출이란 정보량을 통제하는 작업이다." 라고 한 것을 보고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생각하고 연출을 하는 녀석이었다." 라며 그 말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데자키 오사무 작품을 매우 존경해 그의 작품을 통째로 패러디한 톱을 노려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데자키 오사무의 1979년작 극장판 에이스를 노려라!/애니메이션베끼기 패러디하기로 한 것은 오카다 토시오의 아이디어였다. 안노는 극장판 영화 자체는 좋아하지만, 패러디하는 그 아이디어에는 '뭐 이런거야?' 라고 별로라고 생각했다.

성우는 히다카 노리코를 좋아했다. 히다카 노리코가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를 연기한 것을 보고 저 성우 굉장하다 생각해 톱을 노려라!에 캐스팅했으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도 연이어 캐스팅했다.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다 정말로 사랑에 빠져 청혼까지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며 같이 작업한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오타쿠계로 한정해서 인싸'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 평.


6.1. 토미노 요시유키[편집]


토미노 요시유키를 매우 존경한다고 하며 건담 시리즈의 제작에도 몇 번 참여했다.[63] 학창시절 기동전사 건담을 너무나 좋아했고 집에 비디오가 없어서 본방 1~43화를 모두 녹화해서 수십번 돌려봤다고 한다. 모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2위로 기동전사 건담을 뽑았을 정도. 심지어 3위는 역습의 샤아, 4위는 전설거신 이데온이다. 그야말로 1세대 건덕후이자 토미노덕후.[64]

오구로 유이치로와 함께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에 대한 동인지인 '역습의 샤아 친구 모임' 이라는 동인지를 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유우키 마사미(만화가), 미키모토 하루히코(일러스트레이터), 키타즈메 히로유키(애니메이터 & 일러스트레이터), 이쿠하라 쿠니히코, 스즈키 토시오(프로듀서) 등의 호화 멤버가 참가했고 안노와 오시이 마모루, 토미노 요시유키와의 대담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해당 서적에서는 후일 만들어진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안노의 생각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를 깊게 알기 위한 텍스트로서도 중요한 책이다.

안노 본인 말에 따르면 기동전사 V건담이 정말 재밌었는데 점점 작화가 망가지는 것 같아서 가이낙스 사단을 끌고가서 도우러 참가했었다고 하며 이때 교류를 나누며 연출을 배우긴 했다. 다만 스태프롤에는 이름을 걸지 않아서 잘 알려져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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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V건담 당시 존경하던 토미노와 대담을 나누는 안노.

사실 안노가 토미노를 따라간 행적은 "(중딩이) 이런 퀘스 파라야의 검열삭제를 핥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냐고?!"라는 명대사를 그대로 따라할 시추에이션을 만들어 그대로 따라해 버린 것을 비롯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로봇애니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후 성공에 의한 파장에 염증을 느껴 기존작을 파괴해버리는 후속작을 만들어 그걸로 자기 주관이나 투영해내고 이후 그 작품 자체에서 등돌리는 것 자체가 기동전사 건담에서 제타와 역습의 샤아에 이를 때까지 토미노가 보여줬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65] 너무 존경하는 나머지 인생 자체가 패러디가 되어가는 건지도. 게다가 슈퍼로봇대전 F에 에반게리온이 참전하였을때 제작진에게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퍼스트 건담 때 아무로가 수정당한 거처럼 브라이트 노아에게 수정당하는 이벤트를 직접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게임 이벤트 중 신지가 에바타고 탈영해서 찌질대다 브라이트에게 수정펀치를 맞고 갑자기 뭐에요! 아버지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라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하는 장면까지 나올 정도.[66]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4편 기획이 된 것 역시 토미노의 행적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 때 뉴건담을 디자인해달라는 토미노 감독의 의뢰를 받고 다른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디자인했는데 이 때, 안노는 퍼스트 건담 시절 수준으로 단순화된 디자인의 뉴건담을 제시했다. 이 일화가 세간에는 다소 과정되어 알려져있으나 이는 루머이다. 안노 말로는 Z건담, ZZ 건담은 디자인이 복잡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하면 디자인과 기능은 심플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퇴보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Z건담처럼 선이 많으면 애니메이터가 그리기 매우 곤란하다. 그래서 선을 줄이고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하니 퍼스트 건담처럼 됐다고 한다. #

토미노 감독은 심심하면 안노와 에반게리온을 까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2019년까지. 그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67] 2010년 방한 당시에도 "에바에서 '뭐시기짱'(아야나미 레이)이 붕대 감아놓은 건 고통을 표현한 게 아니고 그냥 패션"이라 말하며 안노를 깠다. 한국 기준으로 이데온을 따라해서 화를 낸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런 건 아니고 까는 포인트는 주로 폭력성, 희망이 없는 내용이다. 에반게리온은 이데온만 따라한 작품도 아니고 토미노도 자신의 작품을 조금 따라하는 것 정도로는 뭐라하지 않는다. 에반게리온 때문에 열이 뻗친 토미노 감독은 브레인 파워드를 통해 안노를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노를 싫어하냐는 질문에는 "그냥 아는 사이 정도다. 그런데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런가 후배가 잘 되니까 배가 아프다. (웃음)" 정도로 반응.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토미노는 안노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안노와 대담을 3차례 정도 했는데 이때도 허허 웃으면서 안노 말에 친절히 대응해주는 것이 보인다. 안노가 늘 공부하고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졌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만 유독 싫어하는 것이지 안노 개인에 대해선 괜찮게 생각한다.

사실 토미노는 안노를 싫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대하는 신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에반게리온 같은 걸 만들었고 그걸 리메이크한다고 또 만들어서 많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 아니메쥬의 고민 상담 코너 "토미노에게 물어봐" 아라키 테츠로 편에서는 "안노는 에반게리온을 만들고 망가졌다. 하지만 신 고질라 때부터 뭔가 탈피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며 신 고질라 이후로는 꽤 괜찮게 평가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유명함에도 정작 안노는 토미노에게 연출 공부를 제대로 사사하지 못했다. 둘이 크게 싸우진 않았지만 성격이 잘 맞지 않았던 것도 있고 안노가 토미노와 함께 일하게 됐을 때는 이미 안노는 너무나도 미야자키 하야오 식 연출법에 몸이 물들어 있었다. 안노는 토미노가 되고 싶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를 깔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토미노의 영향이 짙은데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캐릭터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려는 경향과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해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다 2016년, 안노의 신 고질라가 흥행을 하게 되고, 이후 신 고지라는 너의 이름은.과 함께 토미노가 가장 질투하는 두 가지 작품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만 처음 볼 때는 80점 이상의 작품이었는데 나중에 분석하고 60점 정도로 감점했다고 한다. '너의 이름은'도 나중에는 여러가지를 비판했다. 토미노는 이렇게 첫인상만 말했다가 나중에 여러가지 분석을 하고 작품 평가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있다.

과거에 리그베다 위키에서 토미노가 역습의 샤아 때 안노를 많이 갈궜다는 문장이 있어 부천 국제영화제에 토미노가 방한했을 때 한 기자가 토미노에게 이를 물어봤다가 "난 그런 적이 없는데?" 라는 답변을 들어 리그베다 위키의 신빙성이 크게 흔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오카다 토시오나 안노가 한 말로는 갈군 건 사실로 보인다. 원래 갈군 사람은 잘 기억이 안 나는 법이긴 하다. 역습의 샤아에서 같이 참여했던 키타쿠보 히로유키도 "내가 아는 감독 중 사람을 가장 잘 갈구는 감독이 토미노" 라고 했고 키타즈메 히로유키이즈부치 유타카도 갈굼을 증언하고 있으므로 그때 안노 만이 아니고 스태프들을 폭 넓게 갈군 건 확실. 역습의 샤아 제작 당시의 토미노는 스폰서 때문에 나가노 마모루를 부르지 못 했고 만들기 싫은 건담을 만들어야해서 평소보다 더 신경이 곤두서 스태프를 많이 갈궜다고 한다 #

파일:안노 히데아키에게 이데온이란.jpg

드라마 아오이 호노오에서 안노 히데아키의 대학생 시절을 배우 야스다 켄이 연기했는데 여기서 안노가 얼마나 토미노를 존경하는지 알수있다.[68] 참고로 안노 히데아키와 대화중인 저 덩치크고 머리긴 사람의 정체는 오카다 토시오.

이건 이후로도 여전해서 안노의 회사 스튜디오 카라는 기본 이데온을 본 사람을 뽑으며 안 본 사람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된다." 라고 하면서 끌고가서 상영회를 한다고 한다. #1, #2

재밋게도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를 투영해서 각자의 작품에 캐릭터로 출연시키기도 했는데, 토미노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69]를 투영해서 만든 캐릭터가 바로 템 레이고, 안노 역시 상술한대로 자신의 아버지를 투영하여 이카리 겐도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6.2. 미야자키 하야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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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 포즈를 취하는 안노와 그걸 가리키며 해탈한 미야자키 하야오

참고자료: 미야자키 하야오와 안노 히데아키 사이의 에피소드 모음(일본어 사이트)
참고자료: 안노 히데아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회상록(일본어 사이트)

미야자키 하야오가 안노에게 끼친 영향력 또한 결코 적지 않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안노의 우상일 뿐, 토미노에게 뭔가 직접 배우거나 하지는 않아 스승이라곤 할수 없지만 안노의 진짜 스승은 오히려 이쪽이다. 이건 애초에 안노 스스로도 밝힌 사실로, 인터뷰에서 스스로 말한 자신의 스승 두 명은 이타노 이치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워낙 거장이고 안노가 미야자키와 연출 스타일이 다른 면이 좀 있어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둘의 사제 관계는 자타 공인이다. 스즈키 토시오키타쿠보 히로유키도 안노의 스승은 미야자키가 맞다고 했다.[70]

안노는 감독이 해야 할 역할과, 레이아웃같은 연출 방법과 세세한 기술적인 면은 미야자키에게 배운 게 많다. 특히나 레이아웃, 화면 내 구성 요소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 지에 대한 철학과 노하우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써 기술적 역량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안노는 미야자키의 레이아웃 노하우를 많이 흡수했으며, 작품 외적으로는 다니던 회사와의 트러블 때문에 자기 회사를 차려서 독립해 나간 것마저 닮았다. 그래서인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정한 후계는 안노 히데아키라는 평도 있다.

레이아웃의 연출에 있어서 안노가 미야자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작인 에반게리온을 통해서 보면 우선 작품의 도입부에서 익스트림 롱샷으로 주변 환경을 비추며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와 배경을 설명한다. 에반게리온의 경우 수몰된 도시를 보여주는데, 이것을 통해서 시청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다소 어둡다는 것을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연출은 미야자키가 거의 매 작품마다 사용하는 연출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모래바람이 부는 황야, 모노노케 히메는 안개가 낀 숲, 이웃집의 토토로는 낡은 트럭이 굴러가는 일본의 시골 등을 보여주며 작품의 배경과 앞으로 전개될 작품의 톤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알려주며 시작한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미야자키뿐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는 도입부 연출이지만, 이런 클래식한 연출을 미야자키는 물론 안노도 고집한다.

또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첫 번째로 맨얼굴이 드러나거나, 첫 번째로 얼굴 위주 클로즈업 샷이 들어가는 인물은 그 작품의 주인공이다. 시작부터 관객에게 '얘 잘 기억해두세요' 하며 눈도장을 찍고 가는 것이다. 이 역시 상당히 클래식한 연출이긴 하지만, 하야오는 이 연출을 즐겨 사용하며 에반게리온 역시 이 연출을 그대로 사용한다. 에반게리온 1화에서 가장 먼저 얼굴에 클로즈업이 들어가는 캐릭터는 말 안해도 알겠지만 당연히 이카리 신지다.

안노가 토미노에게서 받은 영향은 암울한 세계관, 장중하면서도 무겁게 짓누르는 스토리 등인데 이런 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써의 기술적인 역량'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저런 건 소설가에게서도, 시나리오 작가에게서도, 만화가에게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비유하자면 안노가 기타리스트 학생이었던 시절 기타의 운지법과 악보 보는 법 등 기술적 요소를 가르친 것은 포크송 기타리스트인 미야자키였지만 안노가 되고 싶었던 것은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였던 토미노였고 실제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사이가 안 좋아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미야자키가 생긴 것과 다르게 토미노 요시유키, 오시이 마모루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직설적으로 뱉어 버리는 사람이고[71] 안노의 성격도 결코 유순하진 않다 보니 인터뷰를 보면 저 사람들 정말로 친한게 맞나고 오해할 수가 있다. 저 위에 나온 '안노의 장점은 솔직함. 에바 같은 걸 만들어서 솔직하게 안에 든 게 없음을 인증하는 용기' 같은 인터뷰도 그렇고 안노의 '미야상도 늙었다' 등의 발언 등도 그렇다는 평.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서로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례로 NHK에서 제작한 안노 다큐에서 미야자키는 "안노랑은 같이 일 안하는게 낫다, 자기가 한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싸움난다."라고 까버렸을 정도인데, 정작 미야자키 본인도 똑같이 독단적인 면이 있어 많은 인재들이 그의 곁을 떠났다.

안노가 실사영화를 만들거나 오랫 동안 쉰 것도 미야자키의 조언이었다고 한다. 안노가 슬럼프에 빠지자 '만들 수 있게 될 때까지 쉬어라.' 라며 휴식을 종용했고 '너는 그런 대단한 걸(신세기 에반게리온) 만든 사람이니까 언제든 사람과 돈이 다시 모일 것이다.' 라면서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 안노 모요코 말로는 에반게리온:Q를 만들고 안노가 우울증에 빠져 쓰러지자 미야자키가 바로 찾아와 "일을 해야 낫는다." 라면서 끌고 갔다고 한다. 키타쿠보 히로유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늘 바쁘고 까칠해서 웬만해선 사람을 만나주지 않는데 안노는 프리패스로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

둘이 친해진 계기는 밀리터리에 관련해서 서로 통하는 점이 있어서라고 한다. 한 번 얘기하면 몇 시간씩 밀리터리 토크를 한다고 한다. 안노 뿐만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주변 인맥들은 오시이 마모루도 그렇고 대부분 밀덕이었다.

2021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의 유의'에서 미야자키는 안노를 처음 봤을 때 "첫날 후줄근한 옷에 샌들을 신고 출근했다. 외계인이 왔다고 생각했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딱 봐도 재밌을 것 같은 놈이라 바로 일하라고 일을 시켰다고 한다. # 안노는 미야자키가 애니메이터이던 시절부터 존경했으나 나우시카를 만들 때 미야자키가 "인간따위 멸망해도 돼." 라고 딱 잘라 말했을 때 그를 인간적으로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72]

기타 일화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시절 거신병 앞에 사람을 그려넣어야 했는데, 안노가 거신병은 잘 그린 반면 사람은 도저히 잘 그리지 못해 "넌 사람은 됐으니까 스틱맨으로 그려라. 내가 수정할 테니까."라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으며 에반게리온 이후 지쳐 있던 안노를 다시 재기할 수 있게 용기를 준 사람이 미야자키이다. 이 밖에도 미야자키는 이후 자신의 작품인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인 호리코시 지로 역의 성우를 안노에게 맡겼다.


6.3. 아내 안노 모요코[편집]


2002년에 결혼했다. 배우자는《슈가슈가룬》의 작가로 유명한 만화가 안노 모요코. 부부의 나이 차이는 11살로 안노 히데아키가 연상이다.[73]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가 & 애니감독 커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다룬 《감독부적격》이라는 만화를 안노 모요코가 그리기도 했다.

안노 모요코가 자신의 만화 감독부적격에서 안노의 생활 감각 부족을 드러내는 내용을 많이 그려냈고 NHK 다큐멘터리에서 "이 남자는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라고 발언해서 모요코가 히데아키를 일방적으로 챙겨주는 동정혼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데 사실이 아니다. 안노 모요코는 가정 환경이 안 좋고 가족과 갈등이 있어 결혼 전에는 계속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연애할 때 안노 히데아키가 유머와 격려로 이를 극복하게 해주었다고 하며 그것 또한 결혼의 이유라고 한다. # 실제로 감독 부적격에서도 농담을 많이 하면서 아내를 웃기는 모습도 자주 나온다.

두 사람의 신혼 일기인 《감독부적격》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중증 오타쿠인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생생 자타공인 극렬 오타쿠 관찰 일지. 《현시연》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은 비교도 안된다. 아무래도 안노 모요코도 기본적으로 같은 오덕이라 잘 맞는 듯 하다.

결혼 후, 잉꼬부부이자 애처가가 된 영향인지는 몰라도 성격이 상당히 온화해지고 패션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 그 예로 2006년에 그가 출연한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의 광고를 보면 의외로 패션이 괜찮아서 충공깽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결혼 이후 결혼은 자신의 진정한 터닝포인트라고 자주 언급하고는 하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결혼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냐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74] '닛산광고' 이밖에도 12년이 지난 샷포로 맥주 광고에서도 좋은 패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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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 프로그램 정열대륙 2004년 2월 22일자 화면 캡처. 당시 모요코가 연재 중이였던 감독부적격에 나온 감독군의 모델답게 싱크로율이 대박이다. 감독부적격 작중에서도 나오지만 모요코의 닦달에 똥배가 없어진 것이 특징. 이밖에도 단적으로 안노의 애처가적인 면모는 감독부적격의 단행본 후기 겸 축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안노 모요코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가끔 안노 히데아키의 일상 사진을 올리기도 하며 감독부적격의 정기적 연재가 한참 이전에 끝났음에도 부부간의 일상을 전하는 목적으로 비정기 연재를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자녀는 없다. 감독부적격의 마지막 편의 마지막 장면이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로서 최고의 오타쿠 교육을 시키자고 각오를 다지는 장면인데 결국 실현되지 못한 셈.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팜플렛에서는 "아내의 작품은 다 본 독자들에게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힘을 주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그게 내가 신 극장판을 만든 이유." 라면서 안노 모요코는 자신보다 굉장한 창작자라고 평했다.

2021년 방영한 안노 감독의 에바 제작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에서 나온 안노의 작업 컴퓨터 배경 화면은 아내의 작품이었다. # 2000년대 중반 이후 에바 극장판에서 작품성향이 상당히 바뀌게 된것도 모요코와의 결혼으로 안정된 생활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많다.


6.4. 같이 작업하는 인물, 친구[편집]


인싸 감독 답게 굉장히 많으며 아예 안노 사단이라고 봐도 좋다. 대단한 건 이 사람들 대부분이 단순한 업무 파트너가 아니라 친구라는 점. 한국에서는 안노의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안 믿는 사람들이 많으나 진짜 친구들이 맞다. 유머를 잘 하고 웃기는 사람이라 친구가 많은 것이라고 한다. 취소선은 한때는 친구였으나 2022년 기준 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6.5. 안노 히데아키의 영향을 받은 감독[편집]


의외로 직접 키운 제자는 거의 없다. 자신 안에만 존재하는 느낌으로 연출을 하는 게 많아서 자신의 연출을 이론으로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제작 다큐를 봐도 스태프에게 자신의 뜻이 전달이 잘 안 되어서 서로 답답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이낙스의 연출가들은 대부분 츠루마키 카즈야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상적인 센스는 뛰어나서 그와 같이 일하면 배울 것이 많다고 한다. 그의 영상을 보고 연구하며 영향을 받았다는 애니메이션 감독은 굉장히 많다.


7. 작품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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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애니메이션 영화[편집]


년도
제목
감독
각본
원작
제작
비고
1997
사도신생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26화 연출
2007
에반게리온: 서





2009
에반게리온: 파





2012
에반게리온: 큐





2021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79]


7.2. TV 애니메이션[편집]


년도
제목
감독
각본
원작
비고
1990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80]
1995
신세기 에반게리온



메카닉 디자인
1998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81]


7.3. OVA[편집]


년도
제목
감독
각본
콘티
비고
1988
톱을 노려라!



설정
2004
Re 큐티하니






7.4. 실사 영화[편집]


년도
제목
감독
각본
비고
1998
러브 앤 팝



2000
식일



2004
큐티 하니



2016
신 고질라


공동 감독
히구치 신지
2023
신 가면라이더





7.5. 스태프로 참가한 작품 목록[편집]



신세기 에반게리온 OP 연출 츠루마키 카즈야 / 콘티 안노 히데아키[82]
작화 하세가와 신야가 그린 6컷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혼다 타케시
  • 집 보는 에비츄(1999) - 기획
  • 우타다 히카루 뮤직비디오 One Last Kiss(2021)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 - 원화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 원화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1984) - 원화 [83]
  • BIRTH (1984) - 원화
  • 시끌별 녀석들 (1981)[84] - 156화의 이타노 서커스 원화
  • 시끌별 녀석들 3 Remember My Love(1985) - 원화
  • 왕립우주군 - 원화, 작화감독, 스페셜 아티스트[85]
  • 몽환전사 바리스 패미컴판 PV 영상 - 감독, 콘티
  • 울트라맨 USA(1987) - 작화감독 보좌, 원화
  • 진 마신전 배틀로얄 하이스쿨(1987) - 작화감독 보좌


메탈 스킨 패닉 MADOX01 OP 작화 안노 히데아키




  •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1994) - 세일러 넵튠, 세일러 우라누스 변신 뱅크신 콘티(103화)[86]
  • 기동무투전 G건담(1994) - 오프닝1기 콘티 일부
  • 프리크리 (2000) - 원화



마호로매틱 더 아름다운 것 OP
콘티 안노 히데아키 / 연출 츠루오카 코지로(鶴岡耕次郎)
작화감독, 원화 타카무라 카즈히로
원화 요시나리 요우, 마사유키, 시바타 유카, 츠루마키 카즈야, 하야시 아케미, 쿠보타 치카시, 이토 료타
  • 마호로 매틱 더 아름다운 것 - OP 콘티
  • 톱을 노려라2! - 2화 원화. 6화 제2 원화, 4화 6화 콘티 [87]


슈가슈가룬 OP. 연출 안노 히데아키. 콘티 안노 히데아키, 안노 모요코 부부. 작화감독 히라마츠 타다시


콘티 안노 히데아키, 이즈부치 유타카 / 연출 에노모토 아키히로
캐릭터 작화감독 유키 노부테루 / 메카닉 작화감독 니시이 마사노리
  • 우주전함 야마토 2199(2012) - 오프닝 콘티
  • 우주전함 야마토 2199: 별을 도는 방주 (2013) - 원화
  • 신 울트라맨(2021) - 기획, 각본, 연출[88]


7.6. 출연 작품 목록[89][편집]



8. 기타[편집]


  • 1999년에 발견된 소행성 1994 VY이 9081 Hideakianno로 명명되기도 했다. 발견자이자 명명자는 그의 고교 시절 급우 나카무라 아키마사로, 에바 때문에 집중 포화를 받고 있던 안노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신청했다고. 역시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이다.[90] 그리고 안노 히데아키 별 근처에서 또 다른 소행성을 발견했는데 이 별에는 안노 모요코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노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야위어 가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인데 최근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환자가 따로 없다.# 다만 이건 과장된 게 라스트 레터란 영화에 출연한 안노를 보면 상당히 멀쩡해 보이고 이 사진 이후에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완결편 공개 이벤트의 비디오 메세지나 이즈부치 유타카와 같이 찍은 사진에서도 꽤 건강하게 나왔다. 그냥 작품이 잘 안 되던 시기에 스트레스 + 안 씻어서 저런 사진이 나온 것 같다. 이 사진은 2019년 5월 경에 찍은 사진인데 2020년에도 근황 및 안노 건강 이상설이라고 돌아다니고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 키가 크게 보이는 체형이 아니고 아내 안노 모요코감독부적격에서 안노를 작게 그려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키가 굉장히 크다. 키를 공식 발표한 건 아니지만 키가 170 중 후반인 배우보다 큰 사진이 꽤 있어 180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호소노 후지히코는 안노를 만나고 그린 만화에서 "키 되게 커!" 라고 하기도 했고 아오이 호노오에서도 다른 등장인물보다 머리 하나 이상 더 크다.

  • 2020년대에 가이낙스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가이낙스가 가히 막장급 경영을 하면서 안노 히데아키의 저작권자로서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심지어 악랄하게 이용한 정황들이 안노 히데아키 본인의 기고문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삼자가 읽어도 매우 참담한 안노 히데아키와 가이낙스 사이의 지난 20년간의 풀 스토리로, 이미 본인은 오래 전에 마음을 끊은 상태인 듯. <다이아몬드>지에 올라온 안노 히데아키의 기고문 번역

  • 신 고질라 이후로 안노가 만드는 이전 시리즈물의 리메이크 영화들 타이틀 앞에 シン(신)을 붙이고 있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도 마지막에서 기존의 규칙을 바꾸고 신을 앞에 붙였으며 울트라맨과 가면라이더가 그 뒤를 이었다.


  • 에반게리온 TV판을 만드는 동안 여성 성우진들에게 접근을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레이의 성우 하야시바라 메구미나 미사토의 성우 미츠이시 코토노 등에 접근했지만 거절당하고 그나마 주역 여성 성우진에서 막내 위치인 아스카의 성우 미야무라 유코를 꼬시려 했다가 차였다는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가 기사에 실렸다.# 완전히 사실 무근인 건 아니고 안노 히데아키 파라노 에반게리온(庵野秀明パラノ・エヴァンゲリオン)이라는 책에서 마사유키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안노는 아스카한테 여러가지 의미로 관심이 있지."라고 하면서 이를 암시하기도 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안노가 미야무라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으나 기사 어디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다. 안노가 히다카 노리코와 사귀려고 접근했던 사례처럼 미야무라와 이성 교제를 시도하려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91]

  • 신세기 에반게리온유대교-그리스도교 적인 모티브가 많아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성경에서 차용을 했을 뿐이고 불가지론자이며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에반게리온을 만들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안노가 에반게리온 기획 중에 고유명사 만드는 게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오시이 마모루가 "성경에서 따 와."라고 하고 성경 전집을 빌려줘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92] 그리고 오시이 말로는 그 성경 전집이 굉장히 비쌌는데 안 돌려줬다고 한다.# 신 가면라이더는 불교 적인 모티브를 많이 차용했다. 그리스도교를 믿어서 에반게리온에 그리스도교 상징이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 만화가 시마모토 카즈히코와는 대학 동창인데 막상 학교에 다닐땐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졸업 후 업계에서 일하다 다시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 다만 시마모토가 안노의 과제작품들을 보고 애니메이터에서 만화가로 진로를 변경한 일화가 있고 안노도 시마모토의 대학 시절 일화를 몇 개 알고 있었다. 안노 말로는 "시마모토는 학교에서 유명한 놈이라 모르는 놈이 없었다." 라고 한다. 시마모토는 "에이 그럴리가. 난 조용히 학교다녔어," 라고 했지만 안노는 "그건 아니야."라고 했다.


  • 씨네21에서 한 인터뷰에서 안노는 '어릴 적에 건담 프라모델 다 만들어놓고 불태운 일이 종종 있었다'며, '완벽하게 끝낸다는 것 자체가 싫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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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잘한 직업을 붙이자면 더 많다. 감독한 작품의 각본을 썼으니 각본가이고, 자기가 만든 특촬물을 포함해 장편 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본 적이 있는 배우이며, 《바람이 분다》에서는 주인공 역을 맡았으므로 성우라고도 할 수 있다.[2] 배우, 성우로서의 활동 내역.[3] 2018년 SAPPORO 생맥주 광고에서, 그의 작품이 (이해하기) 어려움을 추구하는 이유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광고 처음에 엘리베이터가 58층으로 되어 있는데 광고 당시 그의 나이를 표현한 듯.[4] 196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는 '테레빗코'라고 해서 현대 문명의 신기(神機)인 텔레비전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서 그 영향을 듬뿍 받은 세대였다. 컴퓨터, VCR, 가정용 게임기, PC방 등 TV 말곤 뭐도 없던 시절이라 놀이터에서 또래끼리 모래 먹어가며 뛰어놀거나, 집에서 만화를 읽거나 TV에서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실시간 시청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5] 이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카리 겐도이카리 신지 부자의 관계와 유사하다.[6] 제목의 뜻은 일본의 관용구로, '처음에 서툴러도 많이 하면 잘 하게 된다'라는 뜻으로, BGM은 《기동전사 건담》의 명브금 From Sleep의 후반부이다.[7] 영국의 SF 드라마 UFO에 나오는 특수 본부의 이름이다. 나중에 에반게리온의 네르프의 모티브가 된다.[8] BGM은 고지라 시리즈의 "괴수대전쟁 행진곡. 신 고질라의 '야시오리 작전' 장면에서도 등장하는 곡이다.[9] 이 두 작품은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자신의 오사카 예대 재학시절을 모티브로 그리는 만화 《아오이 호노오》(안노 등 실제 인물도 등장)에 전 컷 실려있기도 하다.[10] 전차남(드라마)의 오프닝곡도 똑같이 Twilight가 쓰였는데, 다이콘IV 오프닝의 오마주다. 애초에 서브컬쳐계를 다룬 드라마라서 오프닝부터가 GONZO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며 작중에 오덕계 패러디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의 아무로 드립이나 "지온 공국이여 영원하라"도 등장하고, 마지막회에서는 마틸다 아쟌 성우까지 까메오 출연할 정도.[11] 그러나 제작을 질질 끌다가 이대로는 완성이 안 되겠다고 도중에 감독직은 아카이 타카미로 교체당했다.[12] 본래 그림 콘티에는 거신병과 오무가 직접 대결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제작일정상 삭제되었다.[13] NHK에서 하는 거니까 봐야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여동생이 보고 싶어했던 애니는 오프닝만 보면 되는 허접이라고 눌러내리고.[14] 다만 추정(persumed)이다.[15] 다만 안노의 실질적인 프로 감독 데뷔작은 게임 '몽환전사 바리스' 광고라고 한다.[16] 이건 오카다 토시오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토시오가 너무 일을 안 해서 쫓겨났다는 정황이 많다.[17] 그래서인지 《에반게리온》에서도 스쿠버 다이빙 장면이 나온다.[18] 또다른 멘토인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상당히 사이가 벌어진 상태였다. 에바 종영 이후에야 화해했다고.[19] 마지막 26화에서 주변 사람들이 뜬금없이 신지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박수치자 신지가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나디아의 생일을 알게 된 친구들이 박수치며 생일 축하한다고 하자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과 똑같다.[20] 참고로 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다.[21] 안노는《모노노케 히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본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고 넘겼는데, 나중에 스즈키 토시오와의 대담에서 "레이아웃이 별로였다. 미야상(미야자키)이 어떻게 그런 레이아웃을 오케이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미야상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평했다.#[22] 후반부는 에반게리온 TV판 같이 연출된 오픈 엔딩이다. 이 때문에 원작자인 츠다 마사미는 안노의 이런 모호한 엔딩 처리 행태에 열받아 단행본 말미에서 안노를 깠다.[23] 원작의 정사신으로 추정.[24] 나중에 말하길 애니메이션계에 한동안 실망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지 않았고, 실사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25] 감독이 모르고 이런 전개를 한 것이 아니다. 이미 공식 굿즈, 일러스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팬덤의 인식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는데 그걸 고의적으로 엇나가게 한 것이다.[26] 주역 성우진들이 이제 5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조연 같은 경우 60~70대이기 때문에 거의 은퇴를 바라볼 나이다. 후유츠키 코조 역을 맡은 키요카와 모토무의 경우 90을 앞둔 고령이라 실제로도 Q부터 목소리에 힘이 점차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후 2022년 사망해 영영 작품 활동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27] 3.0 + 1.0 제작 당시 안그래도 심한 안노의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카라 설립 이후 더욱 강해지면서 작품에 몰입하여 연기해야 하는 성우들의 고충이 심했다는 설이 중론이다.[28] 가면라이더는 원래 만화 원작이고, 에반게리온은 울트라맨을 오마주한 애니메이션으로 특히 신 에바 극장판에서는 이 점을 대놓고 의식한 연출을 보였다. 또한 에반게리온 역시 TV시리즈와 신극장판 시리즈 마지막 에피소드에 촬영장, 대본, 무대장치 같은 요소를 노출하여 특촬물의 성격을 띄고 있음을 강조한바 있다.[29] 특히 다들 거대한 존재들인데 혼자만 사람 사이즈인 가면라이더(울트라맨 VS 가면라이더에선 거대화 이벤트가 있었다.), 상황 따라 사람을 돕는 결과가 나올뿐 인류를 위협하는 대괴수인 고지라(심지어 신 고질라는 애초에 재앙으로 묘사했다), 거대로봇도 괴수도 히어로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일뿐더러 애초에 세계 자체가 다른 시리즈들과 달리 너무 독자적인 에반게리온 등...[30] 그나마 신 울트라맨 세계관에는 어떤 생물이든 거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어서 울트라맨을 비롯한 외계인들도 이 기술로 거대화하고, 지구인도 거대화시킬 수 있다는 묘사가 나오면서 차후 등장할 히어로들이 울트라맨과 같은 크기가 될 개연성은 챙겼다.[31] 키타쿠보 히로유키의 증언. 안노가 미야쟈키한테 보여줄 때 같이 끌려가서 같이 혼났다고 한다. 미야자키는 거장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해 사람들이 안 믿는데 진짜라고 한다. # [32] 요즘처럼 CG로 작업하는 환경이 아닌 1980년대 셀 애니메이션에서, 1코마에 9장의 셀을 겹쳐 찍고, 3초에 동화 250매를 사용하는 등 피를 말리는 꼼꼼한 수공예 작업의 결과물은 지금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카나다 요시노리의 섬광, 이타노 이치로의 미사일 서커스, 나카무라 타카시의 바위 깨뜨리기에 비견될 만한 '이팩트 애니메이션' 표현의 업적이다.[33] 데포르마시옹.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 Super Deformation(흔히 말하는 SD캐릭터의 그 SD, 인물의 특정 부위를 과장 시키는 카툰에서 파생된 회화기법)[34] 안노는 짓소지 아키오빠로 유명하다.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연출을 많이 따라했다. 짓소지가 만든 울트라맨 에피소드를 다 보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다시보면 비슷한 장면이 정말 많다. 안노는 '짓소지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35]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를 두고 "안노 넌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36]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최대 프레임. 히구치 신지는 나디아 마지막 2화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걸 시켰다며 한국 하청 여러분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37] 모든 작품이 거대로봇물이던 토미노는 말할 것도 없고, 미야자키 역시 메카닉/페미니즘/환경문제 등을 서로 다른 장르에서 넣고 표현하면서 일관성을 지키는 편이다. 물론 장편 애니메이션 기준.[38] 사례를 들면, 신 고지라의 제작 당시 시 토호 측과 자기가 생각한 스토리의 괴리 때문에 몇 번이고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39]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리부트격 작품으로, 별개의 줄거리대로 전개된다.[40] 오카다 토시오의 평가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오카다는 안노와 함께 가이낙스에서 일했고 동시대의 서브컬처를 지켜봐 온 일본의 애니 평론가이다. 그가 안노 작품을 평가할 때에는 이러한 패러디 및 오마주가 얼마나 작품에 잘 녹아들었는지를 포함해서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가 출연한 방송이나 집필한 글을 보면, 안노가 만든 작품 속 요소에 특정한 유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안노의 독창성이 발휘된 부분인지에 대한 이해가 빨라진다. 이 사람은 "안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떠오르는 대로 여러 개 만들어놓고 그걸 자연스럽게 엮는 사람이다"를 전제로 삼고 안노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으며 에바 평론을 할 때 반드시 데빌맨을 언급한다.[41] 헐리우드 영화같이 한 번 잘못 촬영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는 시스템에서는 프리비즈로 영상을 잘못 찍는 사고를 방지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42] 안노 이외에는 야마시타 신고요시하라 타츠야 라인 애니메이터들이 사용한다. 다만 모션 캡처를 한 뒤에 그걸로 또 프리비즈를 하고 그 위에 작화를 또 하는 다소 비효율적인 방식은 안노가 처음한 것이다. 외톨이 THE ROCK!은 밴드 라이브를 작화로 그려내기 위해 안노의 방식을 보고 따라했다고 한다.[43] 다큐멘터리에서 과장 왜곡되었으나 신 가면라이더도 콘티가 있긴 있다고 한다.[44]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A KITE, MEZZO FORTE의 감독으로 유명한 우메츠 야스오미가 작화를 맡거나 감독을 맡은 작품에는 캐릭터들의 귀의 형태가 다르다. 현실에서 똑같은 귀 모양을 한 사람은 없다고.[45] 출전 : 最初は、外注に出した美術にキレたんですよ。ガイナックスにも美監(美術監督)はいたんだけど、スケジュールの都合で外部に出したら、それがちょっと不本意な仕上がりだった。でも、リテイクする為のお金が無いわけ。それで美監に頭を下げて「直してくれ」って頼むんだけど、「時間も無いし、やってられないよ!」と断られてしまったんです。そうすると庵野は、しばらく下を向いてたかと思うと、急にブルブルって全身が震え出した。で、いきなりその辺の本棚に頭をガンガンぶつけ出して、涙をボロボロ流しながら「チクショー!チクショーッ!!」と叫び始めたんです。そしたらとうとう美監が根負けして、「泣くヤツには勝てねえよなあ」って(笑)。その後、全員が徹夜で直すっていうような状況でしたね」(太田出版『スキゾ・エヴァンゲリオン』より.[46] 이런 성격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카리 신지의 성격에도 투영되어 있다. 명대사가 도망치면 안 돼인데 결국 도망치지 않는가.[47] 단적으로 성우들의 경우에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작중 마지막 대사이자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의 마지막 대사는 원래는 "너 같은 녀석에게 죽다니 정말 최악이야"이였다고 하나 아스카의 성우 미야무라 유코에서 의견을 묻고 현재의 "기분 나빠"로 대사를 바꾸어 주었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Q에서는 나기사 카오루의 사망 장면에서 이카리 신지의 성우 오가타 메구미가 감정이 북받치자 위로해주며 힘들겠다며 남은 대사들을 과감히 삭제해주기도 했다.[48] 이와 똑같은 소리를 빌 게이츠도 했다고 한다. 천재는 왜 이런 것인가.[49] 일본의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 원화 장당으로 받는 프리랜서 신분이며 회사 복리와 인센티브를 받는 애니메이터들은 거물급도 극히 드물다. 사실상 교토 애니메이션이나 P.A.WORKS를 제외하면 대다수 애니메이터들은 비정규직 이하의 취급을 받는 셈. 이런 상황에서 안노처럼 비정규직이더라도 정규직처럼 챙겨주려는 인원에게는 사람들이 모일 수 밖에 없다.[50] 설정상 마음의 힘, 신에 가까이 될수 있는 힘이다. 물론 핵무기이상의 물리력에는 잠깐 손상이 가기는 한다.[51] 한국에선 안노가 스태프를 이끌고가서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도는데 오카다 토시오가 주도해서 따온 일이지 안노가 하자고 해서 한 것은 아니다.[52] 무사카, 레우루라 등.[53] 그래서 토미노 요시유키는 이 점을 비판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감독이었기에 안노의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54] 이쿠하라의 회상으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제작 현장에 와 있더라고.[55] 본인이 원화작업으로 참가했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R 극장판을 보고 치바 마모루의 소년 시절 성우로 나왔던 오가타 메구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시 구상 중이었던 에반게리온의 신지 역을 맡겨야겠다고 사다모토에게 제안했다.[56] 비밀전대 고레인저는 유치해보여서 안 봤는데 나이먹고 보고 재밌어서 충격먹었다고. 다만 좋아하는 특촬로는 잘 거론하지 않는다.[57]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거신병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것이라서 당연히 허락을 맡아야 했고,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찾아가 부탁하자, 그 즉시 흔쾌히 승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우시카는 안된다고 한다.[58] 그리고 이 코멘트에 대한 몇몇 덕후들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에반게리온: Q 참고.[59] PREMIERE 97년 5월호.[60] 사실 나디아는 보다보면 확 눈에 띄일 정도로 천공의 성 라퓨타, 우주전함 야마토, 타임보칸 등의 패러디가 넘쳐나는 작품이다. 나디아가 나오던 당시는 지상파 방영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보기도 힘들었고 사람들도 구할 수 없는 작품엔 별 관심도 안 가졌기 때문에 이런 패러디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있지를 않아서 이런 루머가 퍼져나갔다. 지금은 구글 인터넷에 나디아 패러디라고만 치면 주르륵 정리된 걸 볼 수 있어서 이런 소리는 사라졌다.[61] 문화매체에 '우매한 대중'들이 피해를 입거나 잘못 끌려다닐수 있기에 위험하다는 식의 주장은 전형적인 선민사상이라 좋은 소리를 결코 듣기 힘든데, Q 자체가 혹평도 많이 받으면서 뜬금없이 면피성 발언을 하는거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있었다.[62] 주조연 담당 성우들도 입을 모아서 작품과 제작 과정을 비판했다. 그리고 안노는 에바에는 애착이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더 욕을 먹었다. 상영 직후 굿즈를 쏟아내고 신에바를 예고하는 언행불일치는 덤(...)[63] '역습의 샤아'에서 전함 디자인과 일부 메카의 원화를 담당했다. 0080에서는 변명을 써서 역시 일부 메카의 원화를 그렸다고 하며 심지어는 V건담에서는 가이낙스 스탭를 끌고나와 자원봉사까지 했다.[64] 참고로 1위는 우주전함 야마토이다.[65] 이때 토미노가 무슨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안노는 '토미노 선생님이 알몸으로 춤추는 것 같았다'라는 발언으로 표현한 바 있다.[66] 기각된 기획안 중에는 에바 2호기에 뿔을 달고 샤아를 태우는 것도 있었다. 물론 제안자는 안노. 이후 안노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서 결국 2호기에 뿔을 달고야 만다.[67] 토미노는 기동전사 Z건담이 시청자에게 세상과의 단절과 자폐라는 결론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내용을 전면 수정한 극장판을 제작한 바가 있는데, 비슷한 내용의 에반게리온을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68] 미야쟈키 하야오에 대한 언급도 종종 나온다.[69]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공장주였다고 한다.[70] 그보다 미야자키는 제자가 안노만 있는 게 아니고 의외로 제자가 많다.[71] 자국인 일본에서도 망언 제조기라고 할 정도이다.[72] 출처: 지브리의 땀투성이 안노 히데아키 편.[73] 팬들 사이에선 '진짜 이카리 겐도'라는 말도 있는데, 겐도가 아내보다 10살 연상이니 제법 적절한 표현이다.[74] 단적으로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안노 감독이 결혼하고 점점 사람같아져서 물어봤더니 "아내가 나 때문에 욕 먹으면 안되니까"라고 답변했다고 한다.[75] 대학 동창으로 많은 일을 같이했으나 돈 문제로 트러블이 생겨 2019년 의절하였다.[76] 불화로 단절.[77] 라스트 레터에 무려 배우로 출연.[78]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열렬한 팬이고 안노와 인맥이 있으면서도 "스포일러 당하니까 안 한다." 라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작화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79] 블루레이 특전 'EVANGELION:3.0(-46h)'[80] 26~38화 감독은 히구치 신지가 맡았다.[81] 공동감독 사토 히로키[82] 크레딧엔 츠루마키 카즈야만 있는데 나중에 공개된 콘티는 안노 히데아키 그림이어서 안노가 콘티를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츠루마키는 그림 실력이 좋아서 그렇게 대충 그리지 않는다. # [83] 전함 마크로스가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안노 작화. 마크로스의 그 디테일의 표면 질감은 안노가 하나하나 다 그린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 그게 또 움직인다.[84] 오시이 마모루가 TVA시리즈 총괄을 맡으며 오시이 자신의 출세작이 된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도 극찬하던 애니이며 안노가 참여 했던 시점에서는 감독이 야마자키 카즈오로 변경되었고 오시이의 조언에 원화로 참여하게 된다.[85] 로켓 신 발사장면 담당[86] 이때의 인연으로 세일러 우라누스 역의 오가타 메구미신세기 에반게리온이카리 신지 역으로 캐스팅하였다.[87] 이 때문에 6화는 사실상 안노 작품처럼 보인다.[88] 액션신 한정 연출. 본인도 워낙 바쁘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포스트 프로덕션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해 CG 액션신의 퀄리티가 들쭉날쭉해서 상당히 불만족스러워했으며, 이에 리테이크를 지시했으나 한정된 스케쥴상 무리라는 답변과 함께 기각당했다.[89] 배우, 성우로서의 활동 내역.[90] 나카무라 아키마사는 지금까지 111개의 소행성을 발견했는데, 안노 이외에도 도고온천, 타카스기 신사쿠, 히로시마 카프, 호빵맨, 가면라이더, 도련님, 언덕 위의 구름 등 하나같이 기괴한 이름들을 붙였다.[91] 애니메이션 감독이 성우와 이성 교제를 하는 경우는 꽤 있다. 니시쿠보 미즈호, 오키우라 히로유키, 오오바리 마사미 같은 경우도 그랬다.[92] 출처 '오시이 마모루의 영화 50년 50개(押井守の映画50年50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