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반 페르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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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빈 반 페르시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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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시절. 뒷줄 왼쪽에서 3번째가 반 페르시다.[1]
자국 고향 클럽인 네덜란드 로테르담SBV 엑셀시오르에서 유스 생활을 시작했으며, 16세가 되는 해에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옮긴 후 그 곳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클럽 안팎으로 사고를 일으키고[2] 당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2004년 아스날 FC로 쫒겨나듯이 이적했다.[3][4]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악동으로 유명했고 아스날 또한 처음에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지 않나 우려를 했으나 스카우트 팀의 책임자 스티브 로울리가 주도면밀하게 장기간 관찰하면서 오히려 오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파악해서 싼 가격에 영입했고, 대박을 쳤다. 이적료가 2.75m 파운드였다. 참고로 박주영의 이적료가 3m 이었다.

당시 페예노르트와 부산의 친선경기에도 출전했는데 팀은 4-1로 졌지만 반 페르시는 프리킥으로 팀의 유일한 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3. 아스날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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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경기 132골 33도움
아스날로 이적하고 나서도 불같은 성격은 어디가지 않아 피치 위에서 선수들과 자주 다툼을 벌이기도 했으며[5], 여성 강간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기도 했지만 꽃뱀이었다. 다행히도 아르센 벵거 감독의 지원과 그의 우상인 데니스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같은 멘토들의 도움[6]으로 안정을 되찾으며 기량을 발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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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런 개그 움짤이 나돌 정도로 오른발이 의족스러웠으나 2009-2010 시즌부터 갑자기 각성했는지 오른발로도 왼발같은 캐논슛을 종종 만들어낸다. 다만 이번엔 본디 주족인 왼발에서 삑사리가 나는게 에러였다.

페예노르트 시절에는 오프 더 볼 무브먼트가 좋지 않아 경기 내내 잠수하다가도 찬스가 오면 날카로운 피니쉬로 득점하는, 한 방을 지닌 스나이퍼같은 스타일에 가까웠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계가 좋아지는게 점점 베르기화 되고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제2의 데니스 베르캄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릴때부터 축구선수에게 최고의 덕목인 극상의 퍼스트 터치 능력을 갖춘 공격수였고 기량이 늘면서부터 공간 및 동료를 활용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결국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베르캄프의 10번을 물려받았다. 진즉에 2006-2007 시즌에 앞서 구단에게 10번을 다는게 어떻냐는 제의를 받았었지만 거절한 후[7] 베르캄프가 아스날에서 10번을 단 나이가 되자 10번을 달았다. 이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레알 진성 베르캄프 덕후. 베르캄프가 현역이던 05-06시즌만 해도 훈련 사진에 베르캄프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쫄래쫄래 따라나니는 로빈 반 페르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때는 레알 양아치 소리를 계속 듣던 시절이었다.

2008-2009 시즌 이후 아데바요르아스날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에이스 스트라이커로써 활약하게 되었으며, 2009-2010 시즌 초반 리그 12경기에서 7골-7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아니나 다를까 시즌 중반에 가진 A매치 이탈리아전에서 부상을 입고 거의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2009-2010 시즌 이후 선수로써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상을 잘 당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경기에 나올 때의 모습은 확실한 에이스 스트라이커이다. 실질적으로 주득점원과 공격의 에이스 역할을 맡기 시작한 2009-2010시즌 이후로는 연계능력과 더불어 득점력까지 확실히 갖춘 모습. 아스날 팬들이 '시즌 풀 페르시'에 대한 기대를 다시 한 번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의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며 준우승에 기여했으나 눈에 보이는 활약이 큰 편은 아니었다.

2010-2011 시즌에는 역시나 시즌 초 상대 선수의 태클에 의해 두 달짜리 부상을 끊고 쉬고 있다가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야 복귀했다. 한 동안 골은 커녕 스탯을 쌓지 못해 애를 먹었다만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4경기출전 14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과연 팬들이 '부상만 안 당한다면...'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기에 충분한 활약을 펼친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기적같은 동점골을 넣기도 하였으나 2차전인 원정 경기에서 어이없게 퇴장을 받는 바람[8]에 주포가 없어진 아스날은 공격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탈락하게 된다. 퇴장당할때 굉장히 억울해했고 그 이후로 FC 바르셀로나를 싫어하고 있는듯.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 이겨라'라는 트윗을 하기도 했다. 2010-2011 시즌 전반기는 부상으로 날려먹었지만 복귀 후 리그를 반만 뛰고도 18골을 넣었다. 특히 원정 경기 9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을 썼다. 다만 막판에 아스날 FC의 폼이 말이 아니라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후반기에 팀이 완전히 붕괴된 와중에 혼자서 골을 넣어가며 팀을 이끌었었다.

소속팀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했었다. 이적루머도 적은 편이며, 가끔 아스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기가 아스날에서 뛰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아스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어차피 프로 축구선수니까! 처음 아스날에 입단할 때만 해도 개인 플레이 위주에 그라운드 안밖에선 상양아치가 따로 없었지만 멘토(아르센 벵거, 베르캄프 등)들의 존재,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는 사실 등에 영향을 받았는지 어느새 팀의 리더로 성장했었다.

3.1. 2011-1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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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FC 바르셀로나로 떠난 11-12시즌 팀의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

2011-12 시즌 아스날은 엄청난 부진으로 시즌초에 18위까지 순위가 떨어지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고, 리그 3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전에 시즌 첫 골을 넣었지만 전반 27분 페널티킥을 실축했으며 8-2라는 끔찍한 패배를 당했다. 경기 종료 후,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선수진들을 고함쳐 불러 세운 후 원정온 팬들한테 인사시켰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이 소식을 접한 축구팬들에게 진정한 멘탈갑, 진정한 남자라고 추앙받고 있다.

9월 24일 볼튼 원더러스전에는 두골을 넣으며 아스널 역대 17번째로 통산 100호골의 주인공이 됐다.

선더랜드와의 리그 8라운드 경기에서는 팀이 불안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반 페르시의 2골에 힘입어 2:1로 선더랜드를 격파하면서 다소 찜찜한 1승을 챙겼다.

리그 9라운드 스토크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샤막과 교체출전, 두 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3대1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어서 10월 29일에 펼쳐진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첼시 FC 원정 경기에서 선발출전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홈팀 첼시의 우세를 점쳤지만 반 페르시는 상대의 수비를 완전히 허물면서 끝내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아스널의 5-3 승리를 이끌었다.

11월 23일에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 도르트문트와의 홈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아스널에서의 홈경기 50, 51호 골을 기록했는데, 이로써 반 페르시는 아스날이 2006년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이전한 이후 최초로 홈경기 50골을 득점한 주인공이 되었다.

12월 11일에 펼쳐진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 에버튼과의 홈 경기에서 티에리 앙리의 동상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바깥에 완공되면서, 앙리가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후반전 24분에 알렉스 송의 롱패스를 왼발 논스톱 발리슈팅으로 연결시키는 환상적인 골을 성공시키면서 1-0 승리를 이끌었다. 리그 4위로 오르는 듯 했으나 그런거없이 5위에 머물렀다.

2011년 12월 22일 프리미어리그 17라운드 아스톤 빌라 FC전에서도 선발출전하여 전반 17분에 시오 월콧이 만들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2011년에만 무려 34골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티에리 앙리가 세웠던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기록이라고 한다. 이는 2011년 들어서 부상이 급격하게 줄어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친듯한 득점력을 보여주며 EPL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당시 반 페르시가 아스날을 먹여살린다고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스날의 주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벵거가 원톱 전술을 쓰기 때문에 박주영과 샤막은 벤치만 달구고 있다. 또한 그라운드 안팎에서 주장으로서 굉장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시즌과 비교해서 팀 스피릿이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그 중심에는 주장인 반 페르시가 있다. 피치 안팎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중이다. 골을 넣을때도 꼭 어시스트를 한 선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1년 내내 골을 몰아치며 앨런 시어러의 기록인 한 해 36골 득점을 갈아치울까 주목받았지만 35골을 기록하며 한골 차로 아쉽게 기록을 갈아치우지는 못했다. 차위 기록이자 아스날 클럽 한 해 최다 득점 기록인 티에리 앙리의 34골을 경신했다. 시어러의 기록은 못 깼지만 이 페이스 대로 후반기에도 득점행진을 이어간다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프리미어리그 한시즌 최다 득점 기록도 넘볼만 하였다.

리그 24라운드 블랙번전에서 시즌 두 번째 해트트릭과 2도움을 기록하여 7-1 대승을 이끌었다. 3월 3일에 펼쳐진 리버풀과의 리그 27라운드 경기에서는 잉글랜드와의 A매치 기간에 입은 사타구니 부상을 안고 뛰었지만 자신에게 온 두 차례 기회를 모두 골로 연결시키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말미에는 워낙 혹사당하다 보니 무득점 경기도 늘어나고 절정에 이를 때의 폼은 아니었으나 리그 37라운드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두골을 작렬시키면서 결국 리그 30골 고지에 올랐고 득점왕을 거의 굳혔다.

결국 반 페르시의 독보적인 활약으로[9] 시즌 초 크나큰 부진으로 위기에 빠졌던 아스날은 3위로 2011-2012 시즌을 마무리하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32강 직행 티켓을 손에 쥐게 되었다. 반 페르시의 개인 기록으로는 리그 38경기 전경기 출전에 30골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부상만 안 당하면 최고'라는 말이 허언으로 나온게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개인 수상 및 기록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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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골든부츠 수상 (30골)
2011-12 프리미어 리그 최다 공격포인트 (30골 14어시스트)
프리미어 리그 한 해(2011) 최다 득점 2위 (35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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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시즌 PFA 올해의 선수 수상
2011-12 시즌 PFA 올해의 팀 수상
2011-12 시즌 FWA 올해의 선수 수상
2011-12 시즌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수상

올시즌 초반 아스날의 팀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원맨캐리.

2011/12 시즌: 48경기 37골 9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8
37
1
30
9
챔피언스 리그
8
6
2
5
0
FA컵
2
2
0
2
0
합계
48
45
3
37
9

3.1.1. 이적 사가[편집]


그러나 반 페르시가 현재 아스날과의 계약이 2년 남았고 재계약을 미루고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안팎에선 이적을 할 것이다 안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아스날이 반 페르시마저 떠나보낸다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반 페르시의 미적지근한 재계약 태도 때문에 여러 팀에서 링크가 떴는데 갑부 구단이자 2011-12 시즌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인 맨체스터 시티나, 아스날에 이어 무패 우승을 이룩한 세리에A유벤투스 및 러시아 부자구단 FC 안지 마하치칼라 등 여러 쟁쟁한 클럽에서 링크가 뜨는 중이다.

아무래도 무위자연급 멘탈이 아닌 이상 견물생심이라고 많은 돈을 보면 혹하기 마련, 게다가 반 페르시의 주급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10] 맨시티의 통 큰 액수, 그리고 아스날에서 활약하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서 우승을 맛 본 콜로 투레, 사미르 나스리가엘 클리쉬를 보면서 고민을 꽤 많이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본인이야 시즌 도중에 재계약을 맺으면 생각이 많아져서 맺지 않고 있다.[11] 어쨌든 시즌이 종료되고 유로 2012가 코앞인 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 및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7월 5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아스날과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기사보기 아스날 팬들은 이놈의 집구석은 완장만 채웠다하면 이적이냐고 아우성 중.

유벤투스와의 링크도 있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오래가지 못했고, 그 후 맨유와 링크가 뜨면서 구너들은 어이없어 했다.[12] 이미 성명서를 냈을 때 틀어졌지만 맨유 이적이 가까워지자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그 후 한국에서 붙은 별명은 반통수 또는 반패륜. 한편 반 페르시 등 대형 공격수를 노리던 유벤투스는 다 거절당하고 대신 아스날의 또 다른 공격수를 데려왔다.

그리고 반 페르시는 이적 전날, 아르센 벵거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벵거는 반 페르시에게 팀에 남아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반 페르시는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저녁식사 후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기며 이적하게 되었다.

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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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경기 58골 15도움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속삭였다.

맨유 이적 후 인터뷰에서.[원문]

[13]




결국 2012-13 시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뛰게 되었다. # 설마설마하던 아스날 팬들은 분노한 나머지 단체로 어이없어 했고, 전술했듯이 반 페르시가 맨유에 입단했을 때 한 작은 아이 드립은 전설이 되었다. 부상 경력이 많고 곧 서른인 공격수에게 24M 파운드나 받았으니 괜찮은 장사였다고 위안도 해보지만,[14] 그래도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다.

4.1. 2012-1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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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페르시의 영입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카가와 신지였다. 원래 2012/13 맨유의 기본 전술은 웨인 루니를 최전방에 놓고 그 뒤를 카가와가 받치는 전술을 사용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반 페르시의 영입으로 반 페르시가 최전방에 서고 루니가 그 뒤를 받치는 전술이 주가 되었다. 게다가 루니가 공미로 뛰면서[15] 카가와와의 클래스 차이를 여실하게 보여준지라 카가와의 입지가 더 좁아졌다.[16]

판 페르시는 8월 20일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에버튼 FC전 원정경기에서 후반 22분에 대니 웰벡을 대신하여 교체로 출전하여 데뷔전을 치뤘으나 팀은 패배했다.

8월 26일, 주말 경기인 리그 2라운드 풀럼 FC전에서 선발로 출전하였고, 전반 10분에 파트리스 에브라의 크로스를 받아서 왼발 하프발리 슈팅으로 그는 자신의 데뷔골을 만들어냈다. 이적 후 첫 슈팅을 데뷔골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클래스를 증명해주는 득점. 팀은 3-2로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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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리그 3라운드 사우스햄튼전에서는 전반 23분에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크로스를 트레핑 이후 왼발 슈팅으로 시즌 2호골이자 팀의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후반전 1-2로 뒤지던 상황에서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파넨카킥으로 처리하다 켈빈 데이비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며 동점골 찬스를 날려버리고 말았지만, 후반 막바지에 두골을 몰아넣으며 이적 후 본인의 첫 해트트릭을 완성하였고 팀은 극적으로 3-2 승리를 거두었다.[17]

9월 12일 헝가리와의 A매치에서 헝가리 수비수 롤란드 주하즈에게 거친 태클을 당해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하프타임에 교체되어 또 유리몸이 도지는거 아닌가 했지만 부상 예방 차원에서 뺀 것이라고 말하며 부상은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9월 15일 4라운드 위건 애슬레틱 FC전에 벤치멤버로 포함되었고, 후반 15분 폴 스콜스를 대신하여 그라운드를 밟으면서 부상이 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9월 23일 리그 5라운드 리버풀전에서는 선발로 나서서 후반 25분에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만들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일궈냈다. 이어서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CFR 클루이 원정 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두 골을 뽑아내며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후 스토크 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 경기에 선발로 나서 1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10월 29일 리그 9라운드 1위 첼시 FC 원정 경기에서 판 페르시는 선발 풀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기록하였고 맨유도 3-2로 승리하며 리그에서 10년 만에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선두 첼시와의 격차를 승점 1점 차이로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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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3일 아스날과의 리그 10라운드 홈 경기에서 전반 3분만에 토마스 베르마엘렌의 실수를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으로 연결하였다. 아스날 팬들에게 빅엿을 선사했지만, 친정팀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세레머니는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여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18]

11월 7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SC 브라가 원정에서는 체력 안배를 위해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지만 후반 18분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교체 투입되어 후반 34분에 환상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웨인 루니의 페널티킥 골과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골까지 더하여 3-1 승리를 거두고 4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1라운드 아스톤 빌라 원정 경기에서는 골대를 두번 연속으로 맞추는 등 불운했으나 경기 막바지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결승골을 어시하면서 3:2 승리를에 관여하였다. 다만 경기 종료 후 허벅지에 경미한 부상을 입어 주중에 열리는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 소집되지 않았으며, 노리치 시티 원정 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했으나 골을 넣지 못했고 팀은 0-1로 패하고 말았다.

11월 28일 프리미어리그 14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전에서 치차리토와 투톱으로 선발 출전하여 전반 32초만에 득점을 기록하면서[19]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12월 1일에 펼쳐진 리그 15라운드 레딩 원정에서는 전반 34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지만 후반전에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먹은 뒤 대니 웰벡으로 교체되면서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20]

극장골로 팀을 승리로 이끌다
12월 9일 1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맨체스터 더비에서 판 페르시는 2-2 동점이 유지되던 후반전 추가 시간에 하파엘 다 실바가 얻어낸 프리킥을 골로 성공시키면서 극적인 3-2 승리를 이끌게 된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맨유는 맨시티와의 격차를 6점차로 벌리며 선두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게 되었다. 12월 15일 17라운드 선더랜드전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3 :1 승리를 이끌었다.

18라운드 스완지 원정에서는 득점을 올리지 못하였다. 여담으로 후반전에는 스완지 시티의 수비수인 애슐리 윌리엄스가 수비 상황에서 공을 걷어내려다가 넘어져 있던 반 페르시의 머리에 맞는 바람에 반 페르시가 엄청나게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리그 19라운드 뉴캐슬과의 홈 경기에서 2-3으로 뒤지던 후반에 동점골을 넣었고 팀은 막판에 치차리토의 골로 극적인 4-3 승리를 거두었다. 2012년의 마지막 경기였던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FC전에서는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경기 종료 직전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시즌 14호골을 터뜨렸다. 이 골로 다시 리그 득점 단독 선두로 올라갔으며, 골을 넣은 직후에는 경기 전 날에 사망한 친구를 애도하는 세레머니를 하면서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3년 첫 경기였던 리그 21라운드 위건전에서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한편, 반 페르시는 12월에 5골 1도움을 기록한 활약을 인정받아 프리미어리그 이 달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1월 6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경기에서는 체력 안배를 위해 벤치에서 출발했으나 팀이 1:2로 지고 있자 후반전에 교체투입 되어 라이언 긱스의 패스를 받아서 귀신같은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1월 13일 리버풀 전에서는 전반 19분에 선취골을 기록하여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기준으로 현재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17골로 득점 1위 기록 중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골이 영양가 만점의 골이었기에 맨유팬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다. 영입 당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상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히 몸값을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맨유로 이적하자마자 마치 맨유에서 수년간 있었던 것 같은 플레이와 시도때도 없이 맨유에 대한 강한 애정과 충성심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하는 그를 보고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맨유 유스 출신 반 페르시라고 하기도 한다.[21][22] 사실 맨유 선수들이 적응을 위해 많이 도와주었다는 본인 인터뷰도 수차례 있었고, 같은리그에서 팀을 옮긴 것이니 적응은 많이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팀 컬러가 확연히 다른 두팀인지라 반 페르시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리그 23라운드 토트넘 핫스퍼 원정에서 선발 출전하여 시즌 18호골을 득점하였으나 팀은 막판 추가시간에 클린트 뎀프시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여 맨시티와 승점 5점 차이로 좁혀지게 됐다. 그리고 24, 25라운드 경기에서는 무득점[23]을 기록하였다. 2월 10일, 에버튼과의 프리미어리그 26라운드 경기에서는 1골 1도움을 올리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같은 날 맨시티가 패배를 거두면서 승점차는 어느새 12점차가 되어 리그 우승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매우 높아보인다. 따라서 챔스 16강 레알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2월 13일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다소 밀리는듯한 전반전에서 웰백의 코너킥 선취골로 분위기를 잡았으나 얼마 안되어 호날두의 헤더 동점골을 허용했다.[24] 한편, 반 페르시가 이 날 경기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득점에서 실패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원정에서 1:1 무승부로 끝내는데 성공하면서 만족스런 결과를 얻게되었다. 2차전은 홈인 OT에서 열리고 상대 팀인 레알 마드리드의 험난한 일정에 비해 맨유는 비교적 여유있는 일정이기 때문에 맨유가 유리하다는 반응이다.

2월 23일에 펼쳐진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의 리그 27라운드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판 페르시는 전반 23분 하파엘의 골 과정에서 크로스를 올리던 도중 미끄러져 엉덩이 쪽에 부상을 입었다. 이후 13분여를 더 뛰다가 대니 웰백과 교체되었다. 당초 노리치 시티와의 28라운드에서는 출전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큰 부상이 아니었는지 빠르게 회복하여 노리치전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65분을 소화하며 1도움을 기록하였다.[25]

3월 5일에 치뤄진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16강 2차전[26] 홈경기에서 맨유는 잘 짜여진 작전 수행으로 마드리드의 공격을 전반전 동안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오히려 네마냐 비디치가 코너 킥에서 헤더로 골대를 맞추는 등 위협적인 기회는 맨유가 더 많이 만들어냈지만, 전반전은 0-0으로 끝났다. 후반전 시작 후, 나니가 나갈듯한 공을 쫓아 잡아내 올린 땅볼 크로스가 세르히오 라모스에 의해 자책골이 되면서 유리한 고지를 잡았으나, 10분 후 나니가 퇴장당하면서 경기의 양상은 바뀌었고, 모드리치의 벼락같은 중거리슛과 이과인의 훌륭한 크로스를 호날두가 집어넣으며 불과 3분 안에 맨유는 유리한 입장에서 아주 불리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이후 맨유는 총공세를 펼쳤지만 전체적인 골 결정력 부족과 마드리드 골키퍼 디에고 로페즈의 신들린 선방에 막히며 트레블을 향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2013년 4월 기준으로 최근 13경기째 무득점에 시달리고 있다.[27] 이는 먹튀의 대명사인 페르난도 토레스의 무득점 기록[28]을 1경기 남겨 놓고 있는 상태였으며 오죽하면 퍼기조차 반 페르시가 연료를 다 태운게 아닌지 걱정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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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4월 14일 리그 33라운드 스토크 시티 원정에서 직접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며 무득점 탈출에 성공했다. PK 성공후 알렉스 퍼거슨에게 달려가서 포옹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팀도 2-0 승리를 거두었다. 주중에 열린 웨스트햄 원정 경기에서도 후반전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카가와 신지의 슈팅이 골대 맞고 튀어나온 볼을 재차 슈팅으로 연결시키면서 동점골을 넣었다. 이제 수아레스를 한골차로 추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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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월 22일, 팀이 승리하면 우승을 확정짓는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34라운드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하며 팀의 20번째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이 경기에서 넣은 발리 슈팅은 맨유 올해의 골에 선정되었다. 반 페르시로서는 첫 리그 우승컵이며, 동시에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 자리를 루이스 수아레스로부터 재탈환한 건 덤. 거기에 치아레즈로 인해 수아레스가 10경기 징계를 받아 득점왕 경쟁에 탈락하면서 득점왕이 거의 확정되었다. 지역 언론에서는 이 경기 후 매긴 평점에서 반 페르시에게 평점 20점을 주기도 했다.#

우승을 확정지은 맨유의 다음경기는 공교롭게도 아스날 원정. 반 페르시로서는 거의 1년만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방문인데 아스날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할 예정. 과연 경기 당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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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사된 35라운드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아스날 선수들에게 가드 오브 아너를 받으며 입장하였으나, 반 페르시가 공을 잡으면 아스날 팬들이 열렬한 야유로 화답하였다. 이 날 전반 2분만에 패스미스로 시오 월콧에게 실점하여 비웃음을 당하나 했지만 43분에 바카리 사냐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내 본인이 직접 성공시켜 구너들을 완전 녹다운 시켰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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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라운드 알렉스 퍼거슨의 홈 고별전이었던 스완지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는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후반 막바지에 반 페르시가 올린 코너킥을 리오 퍼디난드가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퍼거슨에게 올드 트레포드에서의 마지막 승리를 안겼고, 이후 시상식에서 우승 메달을 전달받고 트로피를 들면서 신나게 환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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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년 연속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퍼거슨의 마지막 경기였던 WBA전에서도 골을 기록, 리그 26호골을 기록하면서 2시즌 연속 득점왕을 달성했다.

12-13 시즌부터 마이클 캐릭을 제외하곤 맨유선수들의 전체적인 폼이 하락세인데다 특히 들의 부진이 심각했기 때문에[29] 측면공격루트가 실종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할 때마다 한건씩 해주면서 20번째 우승의 1등 공신 역할을 하였다. 팬과 구단은 역사적인 프리미어 리그 첫 두자릿수 우승에 환호했으며, 선수는 무관탈출에 성공했고, 감독은 자신의 전설을 우승이라는 피날레로 장식해 모두에게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었다. 퍼거슨의 반 페르시 영입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012/13 시즌: 48경기 30골 9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8
35
3
26
9
챔피언스 리그
6
5
1
3
0
FA컵
4
0
4
1
0
합계
48
40
8
30
9


4.2. 2013-1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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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애슬레틱과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는 홀로 두골을 기록하면서 2:0 승리를 이끌었다. 모예스 체제에서도 여전히 핵심 선수로 활용될듯 보인다.

8월 17일 프리미어리그 1R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모예스의 맨유 첫 경기에서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첫번째 골과 두번째 골 모두 왜 반 페르시가 탑 클래스의 스트라이커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골이었다. 한편, 이 경기는 반 페르시가 맨유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50번째 경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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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9월 14일에 펼쳐진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FC를 상대로 페널티킥으로 득점하였고,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바이어 04 레버쿠젠전에서도 한 골을 득점하였다. 다만 리그 5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사타구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4-1로 패배하였다. 1-2로 패배한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교체로 부상 복귀전을 치렀다. 그 뒤로 팀이 부진하면서 본인도 득점포가 잠잠하다 싶었지만, 팀과 함께 금방 살아나면서 11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리그 7골에 4경기 연속 골 행진중이다. 특히 11월 10일에 펼쳐진 프리미어리그 11R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는 또다시 친정팀에게 비수를 꽂는 결승골을 선사하며 아스날전 3경기 3골의 스탯을 쌓았다.

허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는 PK를 실축하면서 0-0 무승부에 일조했다. 그리고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채 12월 7일 리그 뉴캐슬전에서 선발출전했으며, 12월 11일 챔스 샤흐타르전에서는 교체출전해 필 존스의 결승골을 돕긴 했지만 무리한 출전의 여파로 인해 허벅지 부상으로 약 1개월간 얄짤없이 결장하게 되었다. 지난 2시즌간 세심한 관리와 훈련을 통해서 부상없는 풀페르시가 되었는데, 맨유의 새 감독이 된 모예스의 무리한 체력훈련이 다시 시즌 반 페르시를 만들었다는 루머도 돌고있다.

반 페르시는 부상 전까지 시즌 15경기에 출전해 10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 5경기에서 네 골을 몰아치며 기운찬 출발을 보였고, 10월 말 부상 복귀 이후에도 4골 2도움을 몰아치며 여전한 존재감을 보였다. 반 페르시가 출전한 경기에서도 맨유는 3번의 패배를 당했는데, 9월 28일 WBA 전에는 부상 복귀전으로 후반 13분에 교체 투입됐고, 12월 뉴캐슬전은 풀타임을 소화했으나 역시 한 달여의 결장 뒤 치른 복귀전이었다. 컨디션도 감각도 정상이 아니었다. 반 페르시는 알렉스 퍼거슨 경이 야심차게 영입한 팀의 중심 기둥이다. 반 페르시의 잦은 이탈 및 컨디션 난조는 맨유의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반 페르시의 부상으로 빠지는 상황에서 웨인 루니가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맨유에 승점과 승리를 안겨줬지만, 루니 역시 올 시즌 두 차례 부상을 입은 점을 감안하면 반 페르시의 부상은 맨유 입장에서 더욱 뼈아프다.

결국 복귀하지 못하고 또 1월에 6주 부상. 2년간 이후 평생 쓸 건강을 다 썼다는 말도 있다. 2014년 1월 21일 맨유 의료진이 반 페르시의 몸상태가 거의 완벽해졌다고 진단하였으나, 본인은 부상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복귀하지 않고 있어서 데이비드 모예스면담까지 했으나, 출전 여부는 미지수라고 한다.

1월 29일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카디프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드디어 복귀전을 치뤘고 경기 시작한 지 6분만에 골을 넣었다. 팀은 2-0 승리를 거두었다. 첼시에서 클럽 레코드를 깨고 영입한 후안 마타까지 합류한 상황이라 부상없이 끝까지 간다면 팀이 후반기 레이스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2월 2일 프리미어리그 24R 스토크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마타와의 멋진 콤비네이션 플레이로 동점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1:2로 패배했다.

리그 25R 풀럼 전에서 득점을 올리며 4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이번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14경기에만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하고 있다. 출전 수가 적지만, 골 감각은 여전한 모습이다. 2월 26일에 펼쳐진 UFE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올림피아코스에게 0-2로 패했는데 이에 대해 조니 자일스가 "반 페르시가 멍청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고 모예스는 선수들을 제대로 못지휘했지만 감독과 상관없이 반 페르시는 최선을 다해야했다"라고 비판하였으며 반 페르시 자신은 모예스 감독의 전술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후로 본인이 훈련장에서 인터뷰에 대해 동료들에게 사과했다는 기사가 올라왔지만 팀 분위기를 해쳤다는 비난은 피하기 힘들다. 거기에 심지어 아스날 복귀설까지 떴다. 판 페르시, 맨유 떠나 아스널로 충격 복귀? 그러나 반 페르시 본인이 맨유 공홈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은 맨유에서 행복하고 재계약을 원한다며 아스날 복귀설을 부인했다.

그리고 3월 20일에 펼쳐진 올림피아코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홈경기에서는 홀로 캐리하면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30] 극적인 8강 진출의 1등 공신이 되면서 모예스 감독에게 호흡기를 달아줬다. 전반 25분에는 본인이 얻어낸 PK를 성공시켰으며, 전반 종료 직전에 루니의 크로스를 받아 동점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왔고, 후반 4분에 프리킥을 통해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 그렇게 본인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그러나 문제는 후반 90분 경기 종료 직전에 무릎 부상으로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최대 6주 이탈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맨체스터 더비에는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3월 23일에 치료차 네덜란드로 갔다고 한다.

무릎 부상으로 두 달여를 쉬다가 5월 6일에 펼쳐진 헐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에서 복귀하여 시즌 12호골을 터뜨렸다. 경기 후 남긴 인터뷰는 그야말로 폭풍간지 그 자체!!! [31]

2013/14 시즌: 28경기 18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1
18
3
12
3
챔피언스 리그
6
4
2
4
0
커뮤니티 실드
1
1
0
2
0
합계
28
23
5
18
3


4.3. 2014-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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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월드컵에서의 후유증 때문인지 최근 3경기에서 공격 포인트가 0개였다. 폼 자체가 별로 살아나지 않았고 2년 연속 득점왕이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폼이 안좋았다. 원래 수비가담이 적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서 팀이 밀릴때 존재감이 사라지긴 하나 4대0으로 압도적으로 압살한 4라운드 QPR전 마저 존재감이 사라지며 주전 경쟁에 빨간 불이 켜졌었다. 그래도 감독이 판할이니 주전확보엔 어려움이 없겠지만 워낙 네임밸류가 있는 선수인만큼 팀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폼 회복이 필요해보였다.

드디어 레스터 시티 FC와의 리그 5라운드 경기에서 팔카오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 골을 기록했다. 이후 6라운드 웨스트햄전에서도 골을 터뜨리며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32] 그러나 6라운드 이후 7,8라운드에는 주장 완장까지 차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부진에 빠져있다. 디마리아가 기가막히게 찔러주는 패스를 넣어줄 때마다 거부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팬들은 판할 감독에게 반 페르시 대신 팔카오를 출전시켜보라고 아우성이다.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첼시전에서는 팔카오와 투톱이 예상되었으나 훈련 중 팔카오가 부상을 당해서 홀로 출전한다. 전반 22분 야누자이의 패스로 1대1을 찬스를 맞았으나 쿠르투와의 선방에 막힌 것 이외에는 그다지 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한방이 있는 선수답게, 후반 인저리 타임에 펠라이니의 헤더로 튕겨나온 루즈볼을 그대로 꽂아넣어 팀의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여담으로 극적인 골을 넣은 이후 세레모니 하려다가 중심을 잃고 자빠졌는데 위에서 동료들이 샌드위치를 하기 직전에 이런 장면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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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맨체스터 더비때는 (한명이 퇴장당한 후라 미드진에서 완전히 밀렸기 때문이었지만) 한번 드리블 돌파로 2명을 제끼고 슛을 날린 장면을 제외하면 보이질 않았고, 11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도 민폐르시의 모습을 보여주며 폼이 더럽게 안올라오고 있었다. 맨유 팬들은 시즌 전 루니, 팔카오, 반 페르시 중 누굴 써야 할까라는 행복한 고민에서 이제 루니, 팔카오, 반 페르시 중 어떤 X이 똥을 안 쌀까라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리그 12라운드 아스날 원정 경기에서 거의 안보였다. 전체적으로 아스날에게 점유율을 내주고 실속있는 역습축구를 구사했다지만 몇 번 헤더로 수비한거 정도 빼면 너무할 정도로 안보였다. 결국 74분 윌슨과 교체되어 나갔다. 이 경기에서 반 페르시의 볼터치는 고작 12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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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13라운드 헐시티 전에서 팀의 3번째 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상대가 헐시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전체적인 폼이 올라왔고 골 역시 퍼스트 터치 후 골대 구석으로 빠르고 강하게 꽂아넣는 그다운 클래스를 보여주는 골이어서 부상 병동으로 골골대는 맨유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게 되었다.

그 다음 14라운드 스토크 시티 전에서는 윌슨과의 호흡이 잘 안맞았던 관계로 연속골에는 실패했으나 대체로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그 15라운드 사우스햄튼전. 이 경기는 4연승을 질주하고 있던 맨유로는 5연승 달성과 리그 3위 수성을 위해 질 수 없었던 경기였는데, 정신없이 슈팅을 두들겨 맞을 정도로 형편없던 경기를 단 3번의 슈팅 만으로 멀티골을 뽑아내 팀에게 5연승과 3위를 안겼다! 특히 이 경기가 반 페르시에게 의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골을 넣은 것 뿐만 아니라 키핑,드리블은 물론 수비가담까지 이전 경기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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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폰테의 어이없는 백패스 실수를 틈타 빠르게 침투해 선제골을 뽑아냈고, 그라지아노 펠레에게 동점골을 얻어 맞은 후에도 루니의 긴 프리킥을 왼발로 센스있게 마무리지은 완벽한 결승골을 넣으면서 맨유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 맨유가 시도한 슈팅이 반 페르시가 시도한 3번이 전부[33]인걸 보면 얼마나 공격전개가 형편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 맨유 팬들이 선정한 M.O.M에 당연히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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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과의 리그 16라운드 노스웨스트 더비에서는 후안 마타의 도움을 받아 승리를 장식하는 마무리 골을 뽑아내면서 시즌 7호골을 기록했다. 팬들이 13-14 시즌 후반부터 무척 기대했던 루니-마타-페르시로 연결되는 공격 작업이었기에 더욱 인상깊었다. 한편 이 경기에서 후안 마타에게 어시를 제공했는데 핀페르시의 머리에 볼이 닿을때 마타의 위치를 못 본 주심이 맨유의 두번째 득점을 인정하면서[34][35] 논란이 일긴 했으나 리버풀의 경기력이 매우 저조했기에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17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는 좋은 슈팅을 여러번 시도했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후반에 디 마리아와 교체됐다.

EPL 18 라운드 뉴캐슬과에 경기에서 팔카오와 같이 투톱으로서 선발 출장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판타스틱 4의 1번째 골장면에선 상대 수비수를 자신쪽으로 끌어들여 마타,루니와 팔카오가 합작골에 성공하는데 기여하였다. 후반전에는 루니의 기가 막히는 긴 패스를 해딩으로 정확히 꽂아넣어 쐐기골도 박았다.

그러나 다음날 바로 이어진 다음 라운드에서는 활약이 좋지 못했다.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반 페르시를 포함한 판타스틱 4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활발했던 전반전에는 토트넘의 키퍼 위고 요리스에게 쳐막히기만 했으며 체력이 고갈된 후반전에는 오히려 토트넘의 압박에 맥을 못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반 페르시의 환상적인 베르캄프 빙의 볼터치에 이은 슈팅은 아직 그의 클래스를 보여주었으나 팔카오 등의 삽질에 힘입어 이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는 부진했다. 아스날때부터 스토크에게 강한 모습을 보였던 반 페르시는 전반전에 이렇다 할 찬스를 잡지 못했다. 후반 21분 마타의 패스를 받아 재치있게 슛을 때려보긴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물론 중원에서의 패스플레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게 한몫한다. 이 경기에서 맨유는 무의미한 백패스시도가 많았고 중원에서 볼만 돌릴뿐 번뜩이는 패스장면은 없다시피 했다. 맨유가 넣은 1골 역시 세트피스에서 팔카오가 넣은것일 뿐 수비진을 공략하는 공격은 아니었다.결과적으로 팔카오와 반 페르시 모두 공격진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결과는 1:1로 무승부.

이후 FA컵 요빌타운전은 휴식차원에서 한경기 쉬었고, 21라운드 소튼전에 선발로 나왔지만 60분만에 교체됐다. 이후 발목부상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22라운드 qpr전에는 결장했다. FA컵 캠브리지 유나이티드전에 교체로 복귀했으나 이렇다할 활약은 없었다. 23라운드 레스터전때 선발로 팔카오와 함께 나와서 전반 26분 블린트의 로빙패스를 그 다운 멋진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마무리하면서 득점에 성공했다.

캠브리지 유나이티드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로호의 골을 도왔다. 웨스트햄전도 팔카오랑 함께 투톱으로 나왔지만 영 아쉬웠다. 간간히 날린 슈팅은 아드리안의 슈퍼세이브에 막혔고,팔카오에게 찔러준 어시는 팔카오가 날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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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25라운드 번리전에서도 팔카오와 투톱으로 나와서 pk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시즌 10득점을 달성했다. 이후 FA컵 16강전 프레스턴 노스엔드전은 쉬었고, 리그 26라운드 스완지 원정에서는 루니와 투톱으로 나왔지만 상당히 부진한 모습이었다. 슈팅을 전후반동안 꽤 많이 시도했으나 유효슈팅은 없다시피할정도 였으며 팀은 결국 1-2로 패했고, 본인도 부상을 당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엔 부상으로 고생하다 34라운드 wba전에 선발로 복귀했지만 pk를 실축하면서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그리고 시즌 10골(리그 10골)로 마무리하면서 이름값에 비해 약간 실망스러운 14-15시즌을 마무리했다.

그 동안의 잦은 부상으로 피지컬의 저하가 계속되었고 기량이 쇠퇴하면서 점점 계륵화되었다. 예전처럼 주전으로 밀어주기에는 폼이 떨어졌고, 그렇다고 후보로 쓰자니 주전으로 뛰고싶어 하는 반 페르시의 성격상 골치 아픈 문제였다.[36] 계약기간이 1년 남은 상황에서 맨유는 반 페르시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적에 대한 대화를 듣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거침없이 분노의 영입 스킬을 시전하던 페네르바흐체 SK와 합의하면서 맨유와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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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RVP.

2014/15 시즌: 29경기 10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7
25
2
10
2
FA컵
2
1
1
0
1
합계
29
26
3
10
3


5. 페네르바흐체 SK[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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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15-16 시즌[편집]


이번 시즌 거침없이 분노의 영입 스킬을 시전하던 페네르바흐체 SK와 합의하여 7월 14일에 15,000여명의 페네르바흐체 서포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년 계약에 서명했다.

마침 맨유 동료였던 루이스 나니 역시 다가오는 시즌을 페네르바체에서 보내게 되었기에 두 선수의 활약상을 기대하고 응원하도록 하자.

2015년 10월 페네르바체에서의 근황이라면 근황으로 알려진 모습이 벤치에서 동료의 골에도 기뻐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앉아 있고 승리 후 페레이라 감독과 악수를 나눌때에도 별다른 반응없이 대하고 있다. 이는 현 소속팀에서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지 못하고 교체로 등장하는데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본인도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맨유에 있을때부터 기량 하락이 있긴 했지만 아예 팀의 전력에서 제외당할 정도는 아니며, 그보다는 감독의 전술상 맞지 않아서 경기 출전 시간이 적은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와중에 터키의 어느 언론에서는 겨울 이적 시장때 첼시가 팔카오를 페네르바체로 보내고 반 페르시를 데려갈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2016년 1월 들어 뜬금 없이 K리그 클래식전북 현대 모터스에 이적설이 떴다. 연봉은 76억을 준다고. 최강희 감독이 이전 시즌부터 빅네임 스트라이커 영입을 구단에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고[37] 구단 프런트도 적극적으로 영입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가능성이 적지만 현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재력을 생각해 보면 마냥 불가능 한 것 도 아니라 전북과 국내 축구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전북 구단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반 페르시 영입설을 극구 부인했다. 기사

시즌 종료 후 리그에서 29경기에 출전하여(11번 교체투입) 16골을 기록하여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하였다. 컵대회에서도 4골을 기록하였지만 유로파리그에서는 1도움에 그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프리시즌 현재 웨스트햄, 크리스탈 팰리스와 연결되고 있다. 페네르바체의 회장도 반 페르시의 판매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어쩌면 판 페르시의 모습을 16-17시즌에 EPL에서 다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5.2. 2016-17 시즌[편집]


하지만 무수했던 이적설과는 다르게 결국 페네르바체에 잔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등번호를 11번에서 10번으로 변경하였다.#

한편 유로파 리그 조별리그 추첨 결과 페네르바체가 반 페르시 자신의 친정팀들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같은 조에 배정되었다. 반 페르시 입장에서는 본인의 유년기를 보냈던 팀, 전성기를 누렸던 팀과 같은 조에 배정된 셈.[38]

10월 21일 맨유와의 유로파 리그 원정에서 맨유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으며 팀이 0-4로 끌려가던 경기 막판에 만회골을 넣었다. 그럼에도 맨유팬들은 반 페르시에게 박수를 보내주었으며 반 페르시 역시 박수로 화답하였다.


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기[편집]


2018년 1월 19일,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페네르바체에서 친정팀인 페예노르트로 복귀했다. 2월 28일 자신의 커리어 300번째 골을 터트렸고, 2017-18 KNVB 베이커 결승전 AZ 알크마르와의 경기에서 추가골을 넣어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018-19 시즌에는 사우디 리그 알 이티하드 FC로 이적한 카림 엘 아마디에 이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많은 나이로 인해 노쇠화되었지만 여전한 플레이메이킹으로 공격수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한다.

파일:반페 은퇴.jpg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경기를 소화한 후 페예노르트 소속으로서 은퇴식을 마침으로서 그의 커리어를 마무리지었다.
[1] 바로 오른쪽에 송종국의 모습도 보인다.[2] 밤놀이가 원인으로 지각상습범이었고, 인터뷰에서 팀내 사정을 너무나도 간단히 누설해버리거나 과격한 언행을 선보이는 등으로 매스컴의 환대를 받았다.[3] 그 당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이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그래도 과거는 과거일 뿐, 판 마르베이크 체제의 네덜란드 주축 선수이며 경기 외적으로도 이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4] 당시 PSV 아인트호벤과 먼저 협상이 진행 중이고 계약서 사인만 남은 단계였는데, 아스날이 끼어들어 PSV에 '난 아스날 간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5] 맨유를 상대로 데뷔했는데 그 경기에서 앨런 스미스에게 헤드락을 걸었다.[6] 반 페르시 본인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은 콜로 투레였다. 먼저 다가와서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많이 써 줬다고 한다.[7] 반 페르시가 거절한 10번은 결국 수비수인 윌리엄 갈라스가 받았다. 당시 갈라스는 3번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본인이 3번을 거절했기 때문에 남은 10번을 받은 것이었다.[8] 2002년 한일 월드컵한국 vs 이탈리아 경기의 다미아노 토마시처럼 호각이 울렸는데도 무시하고 골망을 흔들었다가 심판 판정 불복으로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심판이 제대로 룰을 적용했을 뿐이지, 오심이 아니다.[9] 이 시즌의 활약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것이 홈에서 벌어진 에버튼전과 앞서 서술한 3월 3일 벌어진 리버풀과의 안필드 원정경기. 에버튼전은 알렉스 송의 로빙 스루패스를 환상적인 침투에 이은 발리슛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아스날은 경기 내내 리버풀에게 압도당하며 고전했으나 반 페르시가 단 두번의 찬스를 모두 골로 연결시키며 1:2로 아스날에게 승리를 가져왔다.[10] 약 8만 파운드. 한화로는 1억 5천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박지성은 1억 7천. 간단하게 얘기하면 애정으로 주급 반 정도 받고 뛰는데 맨시티에서는 본래 받아야 할 주급의 2배를 제안했다.[11] 본인 주급이 팀 내 주급 상한선이라 우승의 걸림돌이라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대강 그의 심정을 정리하자면 나니까 이 정도 받고 뛰지 나랑 비슷한 다른 애들이 이 정도 받고 뛰겠냐? 주급 때문에 영입이 안 되는데 우승 하겠냐? 유망주가 아무리 많아도 걔네가 주급 못 받으면 남아 있겠냐? 주급 때문에 슈퍼스타가 없어서 우승도 못 할 텐데 등의 이유다.[12] 몇몇 구너들은 라이벌 구단(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으로 이적한다고 멘붕... 다만, 2010년대부터는 맨유와 아스널 간 라이벌리는 많이 약해졌다.[원문] When I have to make tough decisions in my life, I listen to the little boy inside me. That little boy was screaming 'Manchester United'[13] 원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단순 속삭임이 아니라 'Screaming' 소리지르는 거였다.[14] 퍼거슨이 원래 책정한 몸값은 20M이었지만 벵거가 라이벌인 맨유에게는 25M 이하로는 팔지 않겠다고 버텨서 옵션 포함 24M까지 올렸다.[15] 원래도 4411전술의 셰도우 스트라이커로 뛰었고 보통 뛰어난 공격수와 합을 이룰때 루니는 더 잘했다.[16] 프리시즌과 시즌 초 좋은모습을 보였던 카가와는 이 이적으로 벤치행, 자신을 데려온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고 모예스를 거쳐 반할에 이르러서는 아예 없는 선수 취급 당하듯 방치되고만다. 예상치 못했던 강력한 경쟁자 반 페르시의 등장, 데려온 감독의 은퇴와 부상이 연달아 터지며 부진했고 결국 친정팀 도르트문트로 돌아가게된다.[17] 알렉스 퍼거슨의 리그 1000번째 경기이기도 했고 판 페르시의 프리미어리그 100호골이 터진 경기이기도 하다.[18] 리그 선두였던 첼시가 스완지 시티 원정에서 1-1 무승부에 그치며 맨유는 승점 2점차로 첼시를 따돌리고 리그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19]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빠른시간에 나온 득점이었으나 36라운드에서 시오 월콧QPR을 상대로 20초만에 득점에 성공하며 경신한다.[20] 다만 전반전에 시도한 슈팅이 골라인을 넘으면서 멀티골을 기록할 수도 있었는데 오심으로 인정이 안되면서 다소 불운했다고 볼 수도 있다.[21] 심지어 반 페르시는 이적하면서 새 등번호로 20번을 선택했는데 이에 대해서 맨유의 20번째 우승을 위해서 골랐다고 하여 많은 아스날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22] 보통 선수들은 이적할때 선호하는 등번호에 이미 주인이 있으면 의미를 부여해 등번호를 선정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8번에 주인이 있으면 비슷한 18번이나 1+7=8 이라며 17번을 고르기도 한다. 반 페르시의 20번은 10x2=20 과 맨유의 20번째 우승이라는 의미를 지닌다.[23] 24라운드 경기에서는 지난번 레딩전에 이어 또 다시 한번 골라인을 넘은 슈팅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골을 도둑맞았다.[24] 하지만 후반전에서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전환하여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들을 잘 막아냈으며 가끔 허용한 찬스도 데헤아의 선방들로 잘 막았다.[25] 이를 통해 올시즌 모든 프리미어리그 팀 상대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게 되었다.[26]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올드 트래포드 복귀전인[27] 이로 인해 한동안 득점 랭킹에서 1위였지만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추월당했다.[28] 14경기 연속 무득점[29] 이로 인해 종종 포메이션을 다이아몬드 4-4-2로 바꾸거나 대니 웰벡카가와 신지가 측면에 자주 기용되기도 했다.[30] 맨유 역사상 챔스 토너먼트에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되었다.[31] 나를 믿어라,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믿어라 나를. 이 인터뷰 꼭 기억해놔라 라는 내용의 인터뷰다.[32] 이로인해 맨유에서 통산 50호 골을 기록하였다.[33] 맨유가 시도한 총 슈팅이 3번에 그친것은 2003년 8월 이후 처음 있었던 기록이라 한다.[34] 애슐리 영이 크로스로 올린 볼이 반 페르시의 머리에 닿았는데 빗나갈 뻔한걸 노마크 상태였던 마타가 잽싸게 헤더로 골을 넣었다.[35]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반 페르시는 "마타의 골 상황에서 내가 볼을 건드렸음을 솔직히 밝힌다. 그래야 내가 도움을 가져갈 수 있을테니까, 하하하~" 라며 오심을 인정하였다.[36] 내년에 유로 2016이 열리기도 하여 주전으로 뛰어야 대표팀에 발탁될 확률이 높은건 당연지사.[37] 금액 때문에 포기하긴 했지만 디디에 드록바를 영입하려 했었다.[38] 본인도 감회가 새로운지 자신의 SNS에 기대감을 표출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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