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누엘 아데바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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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아데바요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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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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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토고의 前 축구 선수


파일:Emmanuel Adebayor.jpg

이름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Emmanuel Adebayor

본명
셰이 에마뉘엘 아드베요르[1]
Sheyi Emmanuel Adebayor
출생
1984년 2월 26일 (40세) /
토고 마리팀 주 로메 현 로메
국적
[[토고|

토고
display: none; display: 토고"
행정구
]]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
193cm / 82kg
주발
오른발
소속
유스
OC 아가자 (1998~1999)
FC 메스 (1999~2001)
프로
FC 메스 (2001~2003)
AS 모나코 (2003~2006)
아스날 FC (2006~2009)
맨체스터 시티 FC (2009~2012)
레알 마드리드 CF (2011 / 임대)
토트넘 홋스퍼 FC (2011~2012 / 임대)
토트넘 홋스퍼 FC (2012~2015)
크리스탈 팰리스 FC (2016)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2017~2019)
카이세리스포르 (2019)
클루브 올림피아 (2020)
AC 세마시 FC (2021~2023)
국가대표
87경기 32골[2] (토고 / 2000~2019)
종교
개신교이슬람[3]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출전 기록
5.1.1. 클럽
5.1.2. 국가대표
5.2. 대회 기록
5.3. 개인 수상
6. 여담
6.1. 멘탈킹의 반전



1. 개요[편집]


토고의 전 축구 선수.

토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축구에서 역주행하면 역대급 동점골을 넣은 이분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장본인이다. 당시 토고는 아프리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약체였지만 본인의 힘으로 2006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이변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2. 클럽 경력[편집]


프랑스의 클럽인 FC 메츠의 유소년 클럽 소속이었다. 1999년 1군에 합류하였고,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된 02/03 시즌 17골을 넣으며 팀을 다시 승격시켰다. 이후 AS 모나코로 이적하였으나 주급 문제와 무단이탈 등으로 갈등을 겪고 2006년 윈터 브레이크 때 아스날로 이적한다.


2.1. 아스날 FC[편집]


파일:external/www.uefa.com/817586_w2.jpg

아스날로 이적한 후 첫 해에는 아스날의 킹이었던 티에리 앙리에 밀려 벤치 신세였다. 그러다 06/07 시즌,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레알 마드리드 임대 이적과 데니스 베르캄프의 은퇴로 앙리의 투 톱 파트너 자리가 하나 비면서 로빈 반 페르시, 임대 온 줄리우 밥티스타, 시오 월콧과 경쟁하게 되었는데 부상이 잦은 반 페르시, 부진한 밥티스타, 아직까지는 유망주에 불과했던 월콧을 제치고 주전 공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데바요르는 레예스 못지 않은[4] 심각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5] 많은 팬들의 비판을 받았고 오죽하면 이 당시 별명이 골 결정력이 자비롭다고 해서 비꼬는 의미로 갓데발이었다.

2006/07 시즌: 44경기 12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9
21
8
8
3
챔피언스 리그
6
4
2
0
0
FA컵
3
2
1
2
0
EFL컵
4
3
1
2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0
0
합계
44
32
12
12
3

07/08 시즌 전 여름 이적시장에서 앙리가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말그대로 잠재력이 폭발했다. 07/08 시즌 도합 30골을 넣으며 아스날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었고[6], 특히 AC 밀란과의 1차전에서의 모습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아드리아노 갈리아니의 눈에 확띄어 밀란과의 링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지만 산시로에서의 2차전은 파올로 말디니에게 막혀 90분 동안 경기장에서 문자 그대로 삭제 당했다.[7] 하지만 이후 08/09 시즌에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14골을 기록하며 우수한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2007/08 시즌: 48경기 30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6
32
4
24
4
챔피언스 리그
8
7
1
3
0
FA컵
2
1
1
2
0
EFL컵
1
0
1
1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0
1
0
0
합계
48
40
8
30
4

하지만 아스날에서도 꾸준히 주급 문제로 구단과 갈등이 많았고,[8] 매 시즌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AC 밀란 등 이적설에 휩싸이며 팀에 그다지 충성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불화설과 이적설로 팀의 분위기에 계속 안 좋은 영향을 끼치자 결국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그를 이적시키기로 결심하고 08/09 시즌 이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적료 2,500만 파운드에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시킨다.

2008/09 시즌: 37경기 16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6
21
5
10
4
챔피언스 리그
7
7
0
5
0
FA컵
2
1
1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1
1
1
0
합계
37
30
7
16
4


2.2. 맨체스터 시티 FC[편집]


파일:external/images.dailystar.co.uk/237004.jpg

09/10 시즌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초반 연속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굳혔지만 친정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직후 아스날 팬들을 자극하는 세레머니를 하고 역주행[9], 옛 동료였던 로빈 반 페르시의 얼굴을 가격하여 협회로부터 3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는다. 징계 이후에는 시즌 초의 맹렬한 기세는 약간 사그라 들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서 피습을 당하는 악재에도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였고 리그 33라운드 번리전, 리그 34라운드 버밍엄전에서 각각 2골 1도움을 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9/10 시즌: 31경기 14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6
25
1
14
3
FA컵
2
2
0
0
1
EFL컵
3
2
1
0
0
합계
31
29
2
14
4

시즌 후에는 또다시 이적설이 도는 모양. 이적설이 도는 이유는 맨시티가 4위 안에 들지 못해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로베르토 만치니 맨시티 감독이 직접 이를 부인했다고 하니 일단은 맨시티에서 계속 뛸 것 같다.

하지만 10/11 시즌, 입지가 매우 불안하게 됐다. 폼이 떨어져 예전만큼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벤치 신세인데다가 콜로 투레와는 훈련 중 난투극을 벌이는 등 저지를 건 다 저질렀다.

유로파 리그 3라운드에서 해트트릭을 하였고 리그 11라운드 울버햄튼 전에서 다비드 실바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하였지만 이내 역전당하면서 팀은 2:1 패배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이 3,33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들여 볼푸스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에딘 제코를 영입했기 때문에 인원 제한으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다.

2010/11 시즌: 14경기 5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8
2
6
1
0
유로파 리그
4
3
1
4
0
유로파 리그 예선
2
2
0
0
0
합계
14
7
7
5
0


2.2.1. 레알 마드리드 CF (임대)[편집]


파일:external/i3.manchestereveningnews.co.uk/C_71_article_1410660_image_list_image_list_item_0_image.jpg

결국 하반기에 레알 마드리드 CF로의 임대가 확정되었다. 10/11 시즌 끝날 때까지 임대되는데 레알 마드리드의 주포였던 곤살로 이과인의 시즌아웃이 결정되었고 남은 공격수인 카림 벤제마 마저도 폼이 안좋은 상태. FC 바르셀로나에 다소 밀리고 있는 현 레알의 상황에 돌파구가 되어줄지 아닐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시즌 아데바요르 본인의 폼이 워낙 좋지 않다는 것이 커다란 변수이다.

일단 데뷔전인 오사수나 전에서는 레알이 0-1로 패하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1:1 상황만 3번 말아먹는 위엄을 보여준 끝에 국왕컵 4강 2경기에서 벤제마가 온갖 명수비로 공격기회를 말아먹자 83분에 교체 출전, 벤제마를 멀리 보내는 데뷔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이 골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5,000번째 골이라고 한다.

2월 6일 라리가 22라운드 소시에다드 홈 경기에서 리그 데뷔골을 뽑아냈다

3월 6일 라리가 27라운드 라싱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하였다

마지막 38라운드 UD알메리아와의 경기에선 해트트릭을 하였다.

라리가 14경기 5골, 챔피언스 리그 6경기 2골, 국왕컵 2경기 1골

무난한 활약에 맨시티에서 자리도 없고 하니 완전 영입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후술할 가족 문제로 성사되지 않고 맨시티로 돌아갔다.

2010/11 시즌: 22경기 8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14
6
8
5
0
챔피언스 리그
6
3
3
2
0
코파 델 레이
2
0
2
1
0
합계
22
9
13
8
0


2.2.2. 토트넘 홋스퍼 FC (임대)[편집]


2011-12 시즌에는 토트넘 홋스퍼 FC로 임대되어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4-0 대승에 기여했다. 이후 21경기에서 모두 9골을 기록하며 팀 내 득점 1위(가레스 베일도 9골을 기록했지만 23경기에 참여했기에)로 맹활약 중이다.

7라운드 아스날과의 홈 경기에서 반더바르트에게 어시스트를 하였다.

12라운드 애스턴 빌라 전에서 멀티골을 넣었으며 13라운드 웨스트브롬 원정경기에서 2골과 1도움을 하여 2경기 연속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리그 24라운드 리버풀 전에 출전해선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교체되었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 25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전에선 1골 4도움으로 5:0 대승에 모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10골 10도움을 넘어서며 팀 내 득점 1위로 올라섰다. 이런 활약 속에 토트넘에서 완전 이적을 원하지만 아데바요르가 맨시티에서 받던 돈만큼을 요구하는 통에 토트넘이 난감을 표하고 있다.

26라운드 아스날 원정경기에서 1골 1도움을 하였지만 팀은 5대2로 역전패 당했다

31라운드 스완지 시티 전과 34라운드 볼튼전에서 멀티골을 넣었다.

리그 33경기 17골 11도움을 포함하여 시즌 37경기 18골 12도움을 기록했다.

11/12 시즌이 끝난 후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이 토트넘에 부임하고 나서 그를 원했고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도 재정 페어플레이 룰 때문에 고액 주급자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데바요르를 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그 결과 5m 파운드의 가격으로 영입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주급은 맨시에서 받던 것보다는 더 적게 받아야 하는데 이걸 아데바요르가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

결국 2012년 8월 21일 주급 문제가 해결되면서 토트넘으로 완전 이적했다. 등번호는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에서 쓰던 25번을 배정받았으나, 등번호 10번으로 배정된 반 더 바르트가 이적으로 임대 시절 쓰던 10번을 다시 배정받았다.

2011/12 시즌: 37경기 18골 1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32
1
17
11
FA컵
4
3
1
1
1
합계
37
35
2
18
12


2.3. 토트넘 홋스퍼 FC[편집]


파일:external/sayfala.com/16797-2-c022dbad4e8819c5124dc0ec6c6e2e96.jpg

토트넘에서의 활약상은 나쁘지 않은데 골 결정력의 부족으로 상당히 까이고 있다. 저메인 데포에게 선발에서 밀리는 이유 중 하나인데, 볼키핑 및 포스트 플레이에서는 데포보다는 좋을 지 몰라도 그 외에는 그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주급 떨어져서 그런가게다가 그놈의 멘탈은 어디 안갔는지 경기 도중에 거친 태클이나 상대 선수와의 싸움 등으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경기이면 모르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아스날 원정에서 그랬다.[10] 그의 리그 24경기 5골이라는 활약 덕분에 토트넘은 구단 최고 승점기록을 달성하고도 5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리그 21라운드 레딩과의 홈 경기에서 레넌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로 득점하였다.

32라운드 에버튼과의 홈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하였으며 33라운드 첼시 원정경기에서도 1골 1도움을 하였다.

37라운드 스토크 시티 원정경기에서 뎀프시의 패스를 받아 역전골을 성공하였다.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6라운드에서 1골을 넣었으며 16강 인테르전, 8강 바젤전에서도 득점을 하였다.

리그 25경기 5골 2도움, 유로파 리그 8경기 3골.

2012/13 시즌: 34경기 8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5
18
7
5
1
유로파 리그
8
8
0
3
0
FA컵
1
1
0
0
0
합계
34
27
7
8
1

결국 2013-14 시즌에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눈 밖에 나서 보아스 경질 전까지 2군에 내려가는 수모까지 당했다. 그러나 토트넘의 득점력은 루이스 수아레스 한 명에게 통째로 밀리는 수준으로 부진했고 보아스는 경질되고 말았다.[11] 그리고 팀 셔우드 감독[12]의 감독 데뷔전인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 27경기만에 선발 출전하더니 멀티골을 넣어버렸다. 이후 맨유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으며 스완지시티(2득점), 에버턴, 뉴캐슬(2골 1도움), 선더랜드(2골), 아스톤빌라전에서도 득점에 성공하였다.

유로파리그 32강 홈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었다. 이후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로써 사실상 토트넘의 득점력 부진을 말끔히 해소해 주고 있다. 토트넘에게는 로베르토 솔다도의 원톱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격전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데바요르가 득점을 늘리면서 득점 빈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한심한 수비들이 그만큼 더 실점을 해주는 까닭에 골득실은 여전히 답이 없다. 여하튼 13/14 시즌 리그 11골(리그컵까지 합치면 14골)을 기록했다.

2013/14 시즌: 25경기 14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1
20
1
11
4
유로파 리그
2
2
0
2
0
FA컵
1
1
0
0
0
EFL컵
1
1
0
1
0
합계
25
24
1
14
4

13-14 시즌이 끝나고 팀 셔우드 감독이 경질되자 다음 감독과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14-15 시즌은 심히 부진해 결국 토트넘은 재계약을 포기하고 임대까지 할 예정이다.아데바요르는 올 시즌 리그 12경기(교체 3회)에 출전해 2골에 그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 넣은 골은 지난해 10월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이었다. 게다가 해리 케인이라는 구세주가 등장하면서 토트넘에서 아데바요르 입지는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팀 최고 주급인 10만 파운드(약 1억 5,900만 원)을 받는 걸로 알려진 터라 토트넘에서는 처치곤란인 선수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주급을 줄일 생각이 없는 아데바요르를 임대하는 팀에게 일부 주급을 지원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여름이적시장 내내 이적설만 있을 뿐 오피셜은 뜨지 않아 로베르토 솔다도가 나간 상황에 팀에 잔류하나 싶더니, 2015년 9월 13일, 결국 소속팀과의 계약을 상호해지하기로 합의했다.

2014/15 시즌: 15경기 2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3
9
4
2
1
FA컵
1
0
1
0
0
EFL컵
1
1
0
1
0
합계
15
10
5
2
1


2.4. 크리스탈 팰리스 FC[편집]


파일:emmanuel_adebayor_palace-xlarge_trans_NvBQzQNjv4BqYG-7GzYVtFQSFAHuTMXOjF3wpgrT0a_OmQ_ZLBjc6g4.jpg
계약해지 시기가 아직 잉글랜드 리그 내에서는 자유이적이 가능한 시기[13]가 아직 꽤 남은 시기였으나 팀을 찾지 못했다. 이 후 백수로 지내다 2016년 1월, 최전방 공격수 문제 해결이 시급한 크리스탈 팰리스 FC[14]와 6개월 단기 계약에 합의했다. 이후 본머스 AFC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처음 출전했고, 뒤이은 스완지 시티 AFC와의 경기에선 선발로 출전했다. 득점은 없었지만 오래 경기에 못 나온 것 치고는 움직임이 괜찮은 편. 3번째 출전인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헤더로 첫 골을 넣었다.

그러나 왓포드 전 이후 다시 부진하며 위컴, 게일과 번갈아 출전하며 경쟁하게 되었고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인 FA컵 결승에서는 결국 위컴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역시 실패한 영입으로 평가받았고, 결국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2015/16 시즌: 15경기 1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2
7
5
1
1
FA컵
3
2
1
0
0
합계
15
9
6
1
1


2.5.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편집]


파일:10-Emmanuel-Adebayor.jpg
16/17 시즌 시작되고도 팀을 찾지 못하다가 9월 경 올랭피크 리옹 입단이 유력해보였으나 협상이 틀어져 무산되었다. 아데바요르가 협상 테이블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위스키를 찾았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는 전혀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

리옹과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도 2016년이 다가도록 팀을 구하지 못했고 2017년 1월 31일자로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에 입단하였다. 계약 기간은 18개월.

그리고 17~18 시즌 동안 리그 15골, FA컵 1골, 유로파리그 1골을 기록하며 팀 리그 득점 순위 1위다. 팀도 리그 2위를 기록했기에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음을 보이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18~19 시즌에는 리그 3골 및 컵 대회 1골로 부진하면서 계약기한이 되자 떠났다.


2.6. 카이세리스포르[편집]


19~20 시즌에서 터키 쉬페르리그 카이세리스포르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6경기동안 1골을 기록하는데 그치고 있고, 팀도 18위 꼴찌로 강등위기에 처해있다.

2020년 2월 14일 파라과이의 클럽인 클럽 올림피아로 이적하면서 유럽생활을 청산했다.


2.7. 클루브 올림피아[편집]


리그 2번째 경기에서 수비수에게 날아차기를 해서 다이렉트 퇴장당했고 팀에서 방출되었다. 정확히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리그가 중단되자 올림피아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던 것. 단 4경기만 뛰고 해고된 아데바요르는 FIFA에 제소했고, FIFA 윤리위원회는 지난 2022년 6월 16일 "올림피아는 아데바요르에게 51만 달러(약 6억 6,500만 원)와 2020년으로 소급된 12%의 이자를 지불하라"고 명했다.


2.8. AC 세마시 FC[편집]


2021년 7월, 자국 리그 클럽인 AC 세마시 FC로 이적했다.

2023년 3월 20일, SNS를 통해 은퇴 소식을 전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external/i2.wp.com/emmanuel-adebayor1.jpg

토고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지역예선에서는 11골을 넣으며 무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프랑스를 격파하며 8강(7위)을 기록한 세네갈을 탈락시키며 토고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다. 그리고 그 때 토고는 2006 월드컵[15]에서 대한민국, 스위스, 프랑스와 같은 조가 되었다. 하지만 보너스 문제로 인하여 선수들과 토고 축구 협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등[16] 악재가 터져 토고 대표팀 분위기는 엉망진창이었고, 그 때 아데바요르는 아직 잠재력이 터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토고는 3전 전패[17]로 조별리그에서 탈락(30위)하여 16강 진출에 실패한다.[18]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앙골라에 출전하기 위해 해당 대회 개최국 앙골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3명이 사망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아데바요르 본인은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대표팀 동료[19]가 사망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렸고, 결국 토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때 인터뷰 할때 입은 옷이 아스날 피케티셔츠였으며, 그 난장판을 쳐놓고 나와놓고 입은 옷이 아스날 의류라 상당히 의아해 한 아스날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201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했고, 지역예선에서 케냐와 가봉을 차례대로 무찌르고 본선에 진출한 후 본선 조별리그에서 튀니지를 골득실로 제치고 토고 대표팀의 사상 첫 네이션스컵 1라운드 통과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스트라이커로서는 드물게 4번을 선호하는 듯 하다.[20][21] 국가대표팀 한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팀 케이힐과 같은 예가 있으니 아주 이상할 건 없지만, 등번호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 깨는 면이 있다. 비슷한 포지션임에도 3번을 고집하는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 5번을 단 튀니지지에드 자지리의 예도 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빠르고, 공중전에 강하다.은완코 카누와 흡사한 선수지만, 거기에 침투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아르센 벵거


아프리카인 특유의 탄력과 키 192cm의 장신에 뛰어난 운동능력까지 완전체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뛰어난 침투능력과 주력,활동량 까지 겸비하며 공격수로서는 가히 사기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골대를 등지는 등딱 플레이를 담당하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주로 활약했는데, 유연하면서도 개인기도 좋아서 윙어 수준의 주력을 선보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측면을 돌파하며 직접 수비진을 휘저으며 공격의 활로를 뚫기도 하거나 해리 케인처럼 깊숙이 내려와 패스를 통해 공격 전개를 돕는 타겟맨, 침투형 공격수와 연계형 공격수의 역할을 자유롭게 바꿔가며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득점 유형도 정말 다채롭다. 아스날 시절 총 득점의 26%를 헤딩으로 득점하며 데이터상 타겟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토트넘과 뉴캐슬전에서 유연하고 아크로바틱한 발리슛으로 득점하는 등 고전적인 타겟맨과는 또 먼 모습도 보인다. 개인기도 정말 좋아서 마찬가지로 아스날 시절엔 리버풀 전에서 라보나 킥으로 크로스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선보였던 활약은 그야말로 압권. 연계 플레이에도 상당히 능해서 반더바르트와 같은 2선 공격수와도 좋은 호흡을 보이며 한경기에서 4어시스트를 기록한적도 있다. 이러한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폼이 극강으로 서있을때는 모든 유형의 공격에 능하면서도 약점이 없는, 거의 만능형 공격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불세출의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기억됐겠지만 아데바요르는 분명한 약점 또한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우선 일관성이 높은 선수였으나 잘할땐 일관되게 잘했고, 못할때는 일관되게 못했다. 아스날시절에는 한해 12월부터 2월까지 모든 경기에서 득점하며 9경기 연속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쓰는가 하면 어려운 찬스와 빅클럽 상대로는 폭풍같은 원더골을 만들며 '빅게임 플레이어'로 불리면서도 안풀릴때는 쉬운 찬스는 그대로 날려먹는, 상대적으로 골 결정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자비로운 갓데발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07/08 시즌 이후 이러한 측면은 다소 줄었으나 그래도 중요한 때 자비를 선사하는 것은 여전했다. 게다가 이미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불안정한 가정사 문제가 선수시절 내내 멘탈을 뒤흔들어놓으며 선수 본인의 성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아데바요르의 커리어와 이미지에 있어 상당한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5. 기록[편집]



5.1. 출전 기록[편집]



5.1.1. 클럽[편집]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1-02
메스
10
2
1
-
-
-
-
-
-
-
-
-
10
2
-
2002-03
34
13
1
6
2
-
-
-
-
-
-
-
40
15
-
2시즌
합계
44
15
2
6
2
-
-
-
-
-
-
-
50
17
-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22]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3-04
모나코
31
8
1
4
-
-
9
-
-
-
-
-
44
8
1
2004-05
34
9
1
6
3
-
10
2
3
-
-
-
50
14
3
2005-06
13
1
1
1
-
-
7
3
3
-
-
-
21
4
4
3시즌
합계
78
18
3
11
3
-
26
5
6
-
-
-
115
26
9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5-06
아스날
13
4
4
-
-
-
-
-
-
-
-
-
13
4
4
2006-07
29
8
3
7
4
-
8
-
-
-
-
-
44
12
3
2007-08
36
24
4
3
3
-
9
3
1
-
-
-
48
30
5
2008-09
26
10
4
2
-
-
9
6
2
-
-
-
37
16
6
4시즌
합계
104
46
15
12
7
-
26
9
3
-
-
-
142
62
18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23]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9-10
맨체스터 시티
26
14
3
5
-
1
-
-
-
-
-
-
31
14
4
2010-11
8
1
1
-
-
-
6
4
-
-
-
-
14
5
-
2시즌
합계
34
15
4
5
-
1
6
4
-
-
-
-
45
19
5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24]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0-11
레알 마드리드
14
5
1
2
1
-
6
2
-
-
-
-
22
8
1
시즌
합계
14
5
1
2
1
-
6
2
-
-
-
-
22
8
1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25]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1-12
토트넘 홋스퍼
33
17
11
4
1
1
-
-
-
-
-
-
37
18
12
2012-13
25
5
2
1
-
-
8
3
-
-
-
-
34
8
1
2013-14
21
11
4
2
1
-
2
2
-
-
-
-
25
14
4
2014-15
13
2
1
2
-
-
2
-
-
-
-
-
17
2
1
4시즌
합계
92
35
18
9
2
1
12
5
-
-
-
-
113
42
18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5-16
크리스탈 팰리스
12
1
1
3
-
-
-
-
-
-
-
-
15
1
1
1시즌
합계
12
1
1
3
-
-
-
-
-
-
-
-
15
1
1
시즌
클럽
리그
국내 컵
유럽 클럽 대항전[26]
기타 컵 대회
총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6-17
바샥셰히르
11
6
1
5
1
1
-
-
-
-
-
-
16
7
2
2017-18
30
15
3
1
1
-
5
1
1
-
-
-
36
17
4
2시즌
합계
41
21
4
6
2
1
5
1
1
-
-
-
52
24
6
17시즌
통산
419
156
41
54
17
3
81
26
10
-
-
-
554
199
54


5.1.2. 국가대표[편집]


소속 대표팀
연도
경기
득점
토고
2000
5
0
2001
1
0
2002
3
1
2003
4
2
2004
5
4
2005
6
6
2006
8
0
2007
6
4
2008
6
5
2009
6
1
2010
0
0
2011
1
0
2012
4
3
2013
4
1
2014
6
2
2015
8
0
2016
8
1
2017
6
1
2018
4
0
2019
1
1
통산
87
32


5.2. 대회 기록[편집]




5.3. 개인 수상[편집]


  • PFA 올해의 팀: 2007-08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08
  • 토고 올해의 축구 선수: 2005, 2006, 2007, 2008, 2009
  • BBC 올해의 아프리카 축구 선수: 2007
  • BBC 올해의 골: 2007-08


6. 여담[편집]



파일:external/i.telegraph.co.uk/emmanuel-adebayor_2014493c.jpg
멘탈킹. 해외 축구팬이 역주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짤[27]

  • 일단 리그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여 쉽게 이적설과 불화설에 휩싸였다. AS 모나코에서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하기 위해 무단으로 구단을 이탈했다가 구단과 대립각을 세웠고, 200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당시 토고 대표팀의 감독과 불화를 일으켰다. 아스날에서도 심심하면 아르센 벵거 감독 또는 로빈 반 페르시 등의 동료들과 불화설이 터졌고, 매년 이적시장 때마다 이적설이 터졌다. AC 밀란 이적설은 정말 심심하면 터졌고, 실제 본인도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여 정말로 이적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28]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그 모습이 어디 안 가서 친정팀 아스날을 상대로 골을 넣고 논란이자 지금도 역대급으로 회자되고있는 역주행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29] 당시 아스날 팬들이 아데바요르의 부모를 창녀라는 식으로 욕하는 노래를 부르고[30] 토고 대표팀 테러 사건에 대해 비하하는 내용의 욕설을 퍼부어 그 같은 행동을 했었다고 한다. 아데바요르 아스날 전 세레모니에 대해 입을 열다. 흥분한 수천 명의 아스날 원정팬들도 피치 가까이 쏟아져 나왔는데, 겨우겨우 혼란을 막고 있던 안전요원들을 비롯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하마터면 대형 참사를 유발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그래서 팀 동료들까지도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고, 세리머니 직후 옐로카드를 받았다. 리그 중반 맨시티가 한창 막장 가도를 달릴 때도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물론 시즌 이후에는 또 이적설이 떠돌고 있고, 결국 2011년에 부주장 콜로 투레와 새해맞이 주먹다짐을 벌였다. 마침 본인의 입지도 좁아지고, 에딘 제코도 영입될 즈음에 벌어진 상황이라서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2023년 10월 26일, 위 역주행 사건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아스널 서포터즈의 조롱이었는데, 아데바요르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기사
  • 여튼 여러 문제들과 관련하여 구단들과 잡음이 많은 선수 중 한 명이다. 물론 그 중 주급 문제는 선수와 구단 간의 문제이니 만큼 제3자가 간섭하기 어렵고 프로의 세계에서 주급은 곧 자신의 가치와 직결되므로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 없지만, 아데바요르는 정말 심심하면 주급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긴다. AS 모나코 시절에는 "구단에서 나를 인종 차별하여 적당한 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주급으로 구단과 싸웠고, 아스날에서도 07/08 시즌 이후 주급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하여 구단과 갈등을 빚었다. 06/07 시즌 직후에 주급을 2배로 인상해놓고 1년도 채 지나가기도 전에 다시 두 배 이상의 주급을 요구하는데 들어줄 구단이 어디 있겠는가? 맨시티야 구단주가 워낙 돈이 많은 만큼 아직까지는 별 말이 없다. 아래 각주에서 설명했듯 토고 대표팀에서도 보너스 문제로 인하여 토고 축구 협회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토고 축구 협회 잘못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 한국 해축팬들 사이에서는 '갓데발'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경기 내 후덜덜한 활약으로 마치 신과 같은 포스를 뿜는다는 긍정적 의미와, 정작 쉬운 골과 결정적인 찬스에서는 삽질을 해서 상대팀에게 자비의 은총을 선보인다는 부정적인 의미 두 가지 모두 내포하고 있는 별명.


  • 아데바요르는 조국 토고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가족들은 아데바요르가 사 준 벤츠를 굴린다고 한다. 2006 월드컵 당시 한국전을 앞두고 중앙일보가 토고까지 가서 그의 식구들을 만났는데, 한국 서민이 봐도 꽤 잘 산다는 느낌이 오는 집에서 살면서 집안 살림도 상당했다. 당시 아데바요르의 형제들도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취재 당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는데, 월드컵 이후에 그의 형 피터 아데바요르가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동생에 비해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평가만 받고 탈락한 걸 보면 재능은 한없이 평범했던 모양이다.[31] 그러다 2013년 사망했다. 아데바요르는 비행기 값을 줬지만 다른 형제들이 피터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자 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렇게 형 피터가 죽고 홀로 남겨진 형의 아들을 본인의 호적에 올리며 양자로 들였다.[32]

  • 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가나한국에 2:1로 승리할것으로 예상했다.[33] # 하지만 실제 경기는 3:2로 가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1점 차로 한국이 가나한테 졌으니 맞다.

  • 피부가 매우 좋아보인다.

6.1. 멘탈킹의 반전[편집]


그 동안 멘탈이 꽝이어서 멘탈킹으로 조롱받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 멘탈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데바요르는 이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프로 선수라면 돈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라고 일축했다. 기사 같은 아프리카권인 세네갈엘 하지 디우프"나는 돈 때문에 축구를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아데바요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이렇다. 워낙에 경제적으로 극과 극이며 친척이나 식구가 많은 게 다반사인 아프리카 및 중남미 선수들은 부양할 식구가 10명 이상, 때론 40명이 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워낙에 실업자가 넘치고 돈을 벌어먹을 직업이 별로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축구선수로 대박을 거두면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부양해야 할 사람이 많다고 한다.

거기선 이런 게 당연한 인식인데, 미국의 흑인들도 비슷해서 일명 '패밀리 문화', '호미 문화' 라고 부른다. NBA의 전설 찰스 바클리가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하여 이런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돈을 많이 주는 팀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당연히 모든 흑인들이 이렇게 도외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고 분명히 과장된 부분도 있다.#

그리고 디디에 드록바, 사무엘 에투, 은완코 카누처럼 병원과 재단을 관리하는 데에도 많은 돈을 쓴다. 보통 주급의 50%를 기부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매주 9만 파운드 가량을 쓴 셈이다. 그래서, 토고 현지에선 선행을 많이 해서 범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자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기사

"선수들은 돈을 벌기위해 경기에 나서지만 저 같은 아프리카인들은 지역사회에 환원할 의무가 있어요."

"저는 지금 많은 자선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건 전부 제 주급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제 커리어를 마칠 때까지 이 일을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2014년에는 자기 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유로 본인 소유의 집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전체가 다 쓰레기 콩가루 집안이었다! 2015년 5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가 축구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가족들을 부양해왔지만 가족들은 그런 고마움을 전혀 모른 채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가족들의 만행 요약.

이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던 축빠들은 이를 알게 되자 가히 장윤정 가족 수준의 막장 가족이라며 아데바요르의 멘탈을 재평가하고 있는 중이다. 아프리카나 기타 개도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다른 가족들까지 부양하는 것은 사회안전망이 불안전한 그 동네에서는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아프리카도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만큼, 아데바요르 가족들 수준의 악질적인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슈퍼스타나 성공한 사장 정도 되면 수백 명을 부양해야 할 수도 있고, 톱스타 당사자들도 자신들의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지출이 크지 않다면 부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엄청난 중압감으로 무려 16살 때 자살을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원문 기사, 이제는 국가마저...


잉글랜드의 심판 크리스 포이는 아데바요르의 세레머니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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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ɛmanɥɛl adəbɛjɔʁ/. 프랑스어에서 어말을 비롯하여 무강세 음절에 오는 모음 e는 /ə/로 발음되며, 이 발음은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라 '으'로 표기한다. 또한 프랑스어에서 ay는 /ɛj/로 발음되는데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라 모음 사이의 /j/는 뒤따르는 모음과 합쳐 적는다.[2] 토고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신교 집안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엠마누엘 본인은 왜 개신교에서 예수는 다른 예언자들과 다르게 신으로 간주되는지 끝없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슬람을 접했고 기독교와 달리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으로 보는 이슬람의 교리가 본인의 의문점을 완벽하게 풀어주었다고.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개종 후에도 종교를 가리지 않고 YMCA 등의 개신교 자선기관에도 꾸준히 기부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려 주급의 50%를 꼬박꼬박 기부 중이다.출처.[4] 사실 레예스는 원 포지션이 윙 포워드이고 아스날에서만 어쩔 수 없이 공격수로 뛰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부진한 골 결정력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5] 특히 이 시기에는 앙리가 시즌 중간에 부상으로 아웃을 당하면서 전 시즌에 비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기 때문에 아데바요르의 골 결정력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6] 아스날은 03/04 시즌 무패우승 이후 주전들의 은퇴와 이적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전력이 약화되고 있었다. 이 시즌에도 변함은 없어서 언론에서는 아스날이 'BIG4'의 자리를 지키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시즌 후반 맨유에 역전당할 때까지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아데바요르가 있었음은 당연하다.[7] 당시 말디니의 나이는 30대 후반. 말디니야 당대 세계 최고의 선수를 전부 상대했으니 그럴만 하다.[8] 07/08 시즌의 활약 이후 구단에 대폭적인 주급 인상을 요구했지만, 아스날은 당시 경기장 신축으로 재정에 여유가 없었다. 그런 판인데 이미 2배의 주급 인상을 받은지 3개월만에 또 다시 주급 인상을 요구하는 상식 없는 짓을 벌였다. 상식 없는 짓을 한 이유는 아래 후술 참고.[9] 사실 아스날 팬들이 아데바요르에게 심각한 인종차별 및 패드립 등 폭언을 일삼아서 결국 보복성 세러머니를 했다고 본인이 얘기했지만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10] 그래도 이 경기 골을 넣기는 했다. 그리고 골 넣자마자 5분도 안돼서 퇴장당했다. 팀은 5:2로 대역전패[11] 여담으로 보아스 경질의 계기가 되었던 리버풀 전 5:0 패배 이후 베노아 아수에코토와 찍은 토트넘 패배를 조롱하는 듯한 사진이 에코토의 트위터에 올라와 논란이 있었다. 얼마 뒤 아데바요르는 토트넘 조롱이 아니라고 사과했다.[12] 이때는 감독 대행이었다.[13] 이적시장은 9월에 닫히지만 FA 이적은 11월 중순까지 할 수 있다.[14] 올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의 최전방 스트라이커인 프레이저 캠벨, 드와이트 게일, 코너 위컴, 임대로 왔다가 1월달에 돌아간 패트릭 뱀포드 네 명이 합쳐서 단 한 골을 넣는데 그쳤고, 그마저도 위컴의 PK골이라 필드골은 없었다.[15] 32개국 본선.[16] 언뜻 보면 선수들이 돈만 밝히는 것 같지만, 토고 축구 협회가 좀 병맛이었다. 당시 토고 축구 협회는 쿠데타를 일으켜 38년 동안 토고를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냐싱베 에야데마(1935 ~ 2005)장군의 아들 포르 냐싱베(1966 ~ )가 회장으로 있었는데, 이 자는 FIFA의 지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예전에 약속했던 본선 진출에 대한 보너스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선수들은 협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보너스 지급을 직접 요구하기에 이른 것. FIFA의 출전 지원금과 경기 출전수당에서 선수들이 요구한 금액을 주어도 10억여 원이 남았었다고 하던데 그걸 안 줬다. 참고로 포르 나싱베는 애비가 죽자마자 정권을 이어받아서 2023년 현재까지 토고 대통령으로 집권하여 2대에 걸쳐 56년째 집권하고 있다.[17] 대한민국과의 1차전에서는 전반에 팀 동료 쿠바자의 월드컵 데뷔 첫 선제골로 후반 초반까지는 경기를 장악했으나, 선수단의 수준이 높지 않아 확실하게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그리고 팀 동료이자 주장 아발로가 퇴장당한 뒤 한국 공격수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였고, 급기야 이천수의 프리킥 동점골과 안정환의 역전골에 의해 무너졌다. 2차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고, 3차전은 16강 가기 위해 혈안이 된 프랑스를 막기에는 토고의 전력이 너무 약했다.[18] 이런 졸전에 분노한 토르 나싱베 대통령과 오토 피스터 토고 감독은 갈등을 겪었고, 결국 피스터는 당해 가을에 사퇴했다. 한편 선수들은 감독 탓을 절대 하지 말라며 같이 분노했고, 이후 토고는 다시 아프리카 축구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오토 피스터 감독조차도 월드컵 개막 4개월 전인 2006년 2월 말에 부임한 상태였고, 이미 그 전에 토고를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나이지리아 출신 스티븐 케시 감독이 200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에서의 부진 때문에 해임된 이력까지 있었다.[19] 사망자 중에 선수는 없고 버스 기사와 스태프가 숨졌다. 다만 부상으로 선수 인생이 끝난 선수들은 있었다.[20] 진짜로 그가 4번을 선호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사실 아프리카 국대에선 4번을 에이스에게 준다.[21] 나이지리아의 은완코 카누도 스트라이커임에도 국대에서 4번을 달았다.[22]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컵[23] UEFA 유로파 리그[24] UEFA 챔피언스 리그[25] UEFA 유로파 리그[26]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27] 09-10 시즌 초 친정팀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아스널 서포터스 석으로 달려가 아스널 팬들을 도발하는 장면. 그나마 맨시티 홈구장이어서 다행이었지 아스날 홈구장에서 이랬다면 진짜 폭동날수도 있었던 위험한 행동이었다.[28] 뜬금없이 AC 밀란에 대해 비욘세만큼 섹시한 팀이라고 하는 둥 본인 주급을 본인 입으로 스스로 밝히며 본인은 이거밖에 못 받고 축구한다는 등 구단 관계자 및 팬들을 데꿀멍하게 만들기도 했다.[29] 게다가 골을 넣은 곳 반대쪽의 관중석이었다. 즉, 100m를 슬라이딩 세레모니 및 도발을 하겠다고 달려왔던 것이다.[30] 아버지는 코끼리를 씻기고 어머니는 창녀다라는 인종차별+패드립 챈트인데, 이 사건 이후에도 아스날 팬덤은 계속 이 노래를 불러댔다.[31] 참고로 피터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시즌 도중 이경규가 간다에 출연하며 한국 연예인들과 꽤 친해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월드컵 이후 K리그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한국에 왔을 때 당시 만났던 모델 출신 연예인 VJ 찰스를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만 당하고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11월 피터의 한국 방문 당시 VJ 찰스와 재회했다는 기사가 남아 있다.[32] 형 피터도 동생에게 받은 돈을 사업한답시고 말아먹고 이후에도 동생에게 의존해가면서 사는 등 막장 인생이었다. 그런데도 형의 아들, 즉 자기 조카를 아들로 입양했으니 대인배 오브 대인배다.[33] 그 후에도 일본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스페인일본에 1:0으로 이길 것으로 예측했다. # 하지만 이 경기는 반대로 2:1로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 되어서 이 예측도 틀리게 되었다. 어째 예언이 다 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