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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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김재성(야구선수)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시절
3.1.1. 2015년
3.2. 경찰 야구단 시절
3.2.1. 2016년
3.2.2. 2017년
3.3. LG 트윈스 복귀 후
3.3.1. 2018년
3.3.2. 2019년
3.3.3. 2020년
3.3.4. 2021년



1. 개요[편집]


김재성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201407281901773404_53d61fae831fe.jpg


야구를 처음 시작하던 제주 신광초등학교[1] 2학년 때부터 포수를 도맡아 해왔고, 좋은 수비와 강한 어깨 그리고 좋은 타격까지 갖춘 선수로 전반적인 평이 굉장히 우수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2014 아시아세계선수권 대회에 승선하기도 했다.

고2 때부터 SK에 지명받은 동국대의 이현석과 함께 14년 지명에 참가하는 2대 포수로 손꼽혔다.[2] 그리고 넥센이 서울에서 지명 가능한 투수 중 최대어인 최원태를 뽑아가면서 이에 준하는 특급 투수가 보이지 않았던 당시 상황, 그리고 젊은 차세대 포수가 필요했던[3] LG의 상황이 겹쳐 김재성은 포수임에도 1차 지명된다.

이 해 SK 와이번스이현석을, 롯데 자이언츠강동관을 1차 지명하면서 이례적으로 무려 세 명의 포수가 1차 지명을 받았다.


3. 프로 시절[편집]



3.1. LG 트윈스 시절[편집]



파일:LG 김재성 프로필.jpg



3.1.1. 2015년[편집]


현재윤이 은퇴하면서 차세대 포수의 육성의 필요성이 상당했던 LG의 상황 때문에 바로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고, 볼을 고르는 능력과 타격 부문에서 신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 LG팬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3월 2일 삼성과의 연습경기에서,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치고 1루로 뛰던 중에 사회인 야구서도 안 보일 본헤드 주루플레이를 펼쳐 제대로 욕을 먹었다. 가뜩이나 상대 팀이 문선재가 사고를 내서 2년 연속 스프링캠프에 중도 탈락하고 무릎 수술까지 받은 조동찬이 속한 삼성이었고, 이를 떠나서 야구의 기본기 자체를 까먹은 것마냥 선상 안쪽에서 선상 바깥쪽으로 달려나가면서 1루를 오른발로 밟고 세이프 신호까지 보내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여서 차마 LG 팬들조차 이는 옹호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3월 11일 롯데와의 시범경기에서 박준서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이유 없이 욕설을 한 박준서가 욕을 먹는 중.

아무래도 포수는 성장시키는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지라 계속 2군에 머물러 있는데, (6월 1일 기준) 공격력이 극악이다. 홈런은 당연히 없고, 타점 3개에 타율은 2할4푼1리. 하지만 발은 빠른 편이라 조윤준의 백업으로 나왔는데도 3루타를 한 번 쳤을 정도다.

9월 1일 넥센전에서 확대엔트리에 들어서 1군으로 콜업되었다. 점수 차가 많이 난 경기 후반 대수비로 출장하여 데뷔전을 치루었다.

9월 6일 롯데전에서는 경기 후반 대주자로 출장하였다. 1사 1-3루 상황에서 1루주자였던 유강남과 교체되어 나갔으나 양석환의 땅볼에 3루주자 히메네스가 홈에서 아웃되고 김재성은 무리하게 류지현 주루코치의 멈춤 신호를 쿨하게 무시하고 3루까지 뛰다가 아웃되면서 순식간에 더블아웃으로 이닝이 종료되었다.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

9월 8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9회초 대수비로 교체출전, 10회초 정근우의 도루 시도를 잡아낸 데다, 흔들리는 투수들을 리드하며 팀의 연장전 승리에 공을 세웠다.

그 다음 날 경기 시작 전 인터뷰에서는 전날 경기에서 임정우를 다독이러 올라가서 무슨 얘기를 했냐는 질문에 타자들 믿고 1점만 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던지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진해수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고 기사에서 언급했다.

10월 14일 경찰청 입단이 확정되었다.



3.2. 경찰 야구단 시절[편집]



3.2.1. 2016년[편집]


전체적인 성적은 좋지만 1년차다보니 주 포지션인 포수로는 많이 못 나오고 대타나 여러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나오고 있다.


3.2.2. 2017년[편집]


9월 23일 경찰 야구단에서 제대하여 원소속팀인 LG 트윈스에 복귀하였다.



3.3. LG 트윈스 복귀 후[편집]



3.3.1. 2018년[편집]


유강남의 백업포수로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18시즌 한 번도 1군에서 뛰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3.3.2. 2019년[편집]


이젠 정말 정상호를 밀어내고 트윈스 차세대 안방마님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중일유강남을 주전, 정상호를 백업으로 쓰다가 정상호의 부상으로 이성우를 백업으로 쓰고있다. 1차지명으로 뽑은 그것도 군필에다가 5년차인 선수를 1군에 박아놓고 키워도 모자랄 판에 2군에서만 주야장천 박혀있다. 팬들은 김재성 좀 키우자고 하는 의견이 많지만 감독이 감독인지라 당분간은 1군에서 못 볼듯 싶다.

다만 퓨쳐스에서도 시즌 초부터 8월 현재까지 꾸준히 1할대 타격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에게 단지 1차지명자라는 이유만으로 1군 기회를 줄 수 있는 명분은 없다.
또한 밀어내려면 이성우보다 유강남 쪽이 더 쉬워보이는데, 유강남은 주전포수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또한 상술되었듯이 포수로서의 완성도를 쌓아야 할 경찰청 시절에 주 포지션인 포수로 많이 나오지 못하고 여러 포지션을 떠돌아다닌점 또한 제대 후 팀에 복귀해서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9월 26일 수원 kt전에 올해 첫 선발 출장을 했다! 이날 2회 1타점 중전 안타, 5회 볼넷, 6회 삼진으로 2타수 1안타 1타점을 올렸다. 프로 첫 안타를 적시타로 달성하고 8회 대타 유강남으로 교체되었다.[4] 이 날 2군 선수들이 주로 경기에 나왔는데, 4안타 경기를 한 홍창기가 굉장히 돋보였지만 김재성도 어느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준플레이오프백승현 대신 포수 강화 차원에서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3.3.3. 2020년[편집]


10월 1일 기준 2군 성적은 타율이 0.278이지만 좋은 선구안으로 출루율이 0.439, OPS 0.837로 1군에 올 법한 성적임에도 1군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다. 확대엔트리 때 1군으로 콜업된 포수 박재욱은 2군 OPS가 0.630였다.

2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타율 0.274에 출루율.430, 장타율 0.400으로 2020 시즌을 마쳤다.


3.3.4. 2021년[편집]


유강남의 뒤를 잇는 LG의 백업 포수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굳혀야 하는 해다. 상대적으로 LG의 포수진이 약해보이긴 하는데[5] 차명석 단장이 "포수 트레이드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김재성에게 상당한 기회가 갈 것으로 보인다.

3월 2일 NC와의 연습경기에 선발포수로 출장해 멀티히트에 김영규에게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며 박재욱과의 백업포수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포수로는 유강남과 둘 뿐.

1주일에 한번씩 유강남의 체력 안배를 위해 간간이 출장하고 있다.

4월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출장해 원태인을 상대로 2루타를 때려냈다.

5월 13일 광주 KIA전에서 5회 아쉬운 3루 송구 실책으로 실점을 내줬지만 7회초 브룩스를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2점차의 불안한 리드를 벌리는 귀중한 홈런이었다.

5월 17일 잠실 삼성전에서 3-1로 지고 있는 9회 2사에서 대타로 나와 오승환을 상대로 데뷔 첫 3루타를 쳐냈다.

6월 18일 잠실 KIA전에서 선발로 출장하였다. 데뷔 첫 도루를 성공시켰다.

유강남의 백업 포수 역할 뿐만 아니라 팀의 좌타 대타 역할까지 맡아주고 있다.

6월 22일 4타수 1볼넷 4삼진을 기록했다. 심지어 마지막 삼진은 외야수 김강민에게 당한 것이다.

타격 툴은 물론 수비 및 투수 리드도 많이 아쉽다. 1차 지명이랍시고 1군에 박아두는 감독이 잘못된 것이다.

후반기에는 은퇴를 앞둔 이성우에 밀려 1군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시즌 내내 별 존재감 없이 시즌을 보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탈락했다.

최종 성적은 58경기 65타수 9안타 1홈런 타/출/장 0.138/0.208/0.246 OPS 0.455.

백업포수인 이성우가 시즌 후 은퇴를 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상당히 기회가 갈 것으로 보였으나...


3.4.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2021년 12월 22일, LG 트윈스로 FA 이적한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구단 측에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포수 자원의 지속적인 뎁스 강화에 주안점을 뒀고, 또한 김재성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수라는 점에 주목했다."라고 밝혔다.[6]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LG와 영입한 삼성 모두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LG 입장에서는 1차 지명 선수인데다가, 이성우가 은퇴했고 김재성마저 팀을 옮긴 이상 2022시즌 유강남의 백업 포수가 박재욱을 제외하면 전부 1군 경험이 없는 포수들이기 때문에 시즌 중 백업 포수로 인한 돌발상황이 생길 우려가 있다. # 삼성 입장에서는 주전 포수인 강민호와도 재계약을 체결했고[7], 심창민김응민을 주고 트레이드해온 김태군도 있으며, 이미 백업 포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민수도 있는 상황에서 또 포수를 영입한 것이다. 물론 김민수 다음의 포수 뎁스가 권정웅이 있지만 한참 갈길이 먼 모습이고, 김응민은 김태군을 받아오면서 트레이드로 NC로 이적했다. 그 다음이 1999년생의 이병헌과 2000년생의 김도환으로 갭이 꽤 크며, 이병헌은 1군 경험이 아예 없고 김도환은 미숙한 모습을 많이 보였기에 96년생의 젊은 군필 포수는 분명 팀에 필요한 선수이다. 더군다나 삼성에는 없는 좌타 포수라는 이점도 있다.

아무래도 바로 그 점 때문에 김태군을 영입한 삼성이 또 포수를 뽑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고 LG가 보호선수 명단에서 뺐다가 허를 찔린 듯한데, 결국 이 선택으로 인해 마땅한 백업포수가 없어져 버린 LG는 FA로 허도환을 영입해 급한 불을 껐다.[8]

그리고 이 선택은 삼성의 신의 한수가 되었다.

3.4.1. 2022년[편집]



2022년 7월 22일 고척 키움전 팀이 0-1로 뒤진 9회초 1사 2루에서 동점 2루타를 때려낸 후 김재성의 모습.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재성(야구선수)/선수 경력/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적 후 표본은 적지만, 꾸준히 3할 중반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제3포수와 대타로 많은 기회를 받고 있는, 선수 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된 해.

3.4.2. 2023년[편집]


파일:김재성2023.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재성(야구선수)/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작년 보다 상당히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1] 강민호의 초등학교 후배다.[2] 송동욱까지 3명을 꼽는 팬들도 많았으나, 정작 송동욱은 스탯에 비해 현장평이 좋지 못했다. 이를 입증하듯 포수난임에도 송동욱은 전국구 포수라기엔 아쉬운, 3라운드까지 지명 순위가 밀렸다. 그리고 2020 시즌 이후 방출되었다.[3] 주전 포수인 최경철은 지명 당시 35세의 베테랑 선수였고, 백업인 윤요섭도 33세로 포수진의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대졸 출신의 2군 포수인 조윤준은 성장세가 더디고, 다른 포수 유망주인 유강남은 군복무 중이었다.[4] 그런데, 대타로 나온 유강남이 병살을 때려내며 선두타자로 출루했던 박지규를 없애버렸고, 다음 타자 구본혁이 안타를 쳤기에 더 아쉬웠다.[5] 사실 1군에서 써먹을 만한 주전급 포수는 유강남 1명 뿐이다. 베테랑 이성우는 2021년을 끝으로 예고 은퇴를 선언했고 100번대 등번호를 받은 포수 3명은 육성 대상이다. 사실상 유강남의 뒤에는 김재성과 박재욱 뿐인데 다른 구단에 비하면 다소 약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6] 2021 시즌 원태인오승환을 상대로 호쾌한 장타를 터뜨린 것이 삼성의 눈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LG에서는 이름값과 검증을 중시하여 김재성을 백업포수 슬롯조차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으려던 행보와 달리 삼성에서는 김재성의 포텐을 눈여겨 봤을지도 모른다.[7] 다만 보상선수 지명은 강민호와의 재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강민호와 계약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8] 그리고 KBO 리그/2023년/신인드래프트에서 김범석을 지명했다. 허도환도 사실 오랜 시간 뛰기는 어려운 84년생의 노장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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