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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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김민성

2.1. 2011 시즌
2.2. 2012 시즌
2.3. 2013 시즌
2.7.1. FA 취득을 둔 법적 분쟁
2.8. 2018 시즌
2.8.1. FA
3. LG 트윈스 시절
4. 연도별 주요 성적


1.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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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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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성 롯데 시절 응원가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를 졸업[1]하고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08 시즌에는 간간히 경기에 나오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뛰는 것은 2009 시즌부터였다. 첫 풀타임 시즌 치고는 공격/수비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당시 미필자였던 박기혁이 입대하게 되면, 2010 시즌부터는 주전 유격수가 확실시된다는 평을 받았을 정도다. 6월 이전까지는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모처럼 롯데에서 신인왕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주장 조성환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채병용의 공에 부상을 당하면서 생긴 2루수 구멍을 충실하게 메워 주었다. 다만, 여름 이후 후반기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불안한 모습도 나오기도 했다.

2009 시즌은 타율 0.248, 홈런 4, 타점 37, OPS 0.685를 기록했다.

2010 시즌에는 시즌 초반 갑자기 주전 유격수 박기혁의 부상으로 주전 유격수가 되었다. 게다가 2루수 조성환마저 부상으로 빠져서 시즌 초반에는 혹사가 예상되었다. 수비 부담때문인지 풀타임 출장 덕분인지 타격은 2할대 초반 타율로 고전했다.

4월 18일 오른쪽 검지 골절 부상으로 1달 이상의 결장해서 복귀했고, 6월말 박기혁의 복사뼈 골절로 2개월 이상은 주전 유격수로 뛸 것으로 보였다. 6월 30일, 올시즌 첫 홈런을 날렸는데 2010 시즌 팀의 100개째 홈런이었다. 2009년에 기록했던 데뷔 첫 홈런도 삼성 상대로 기록했는데, 2010 시즌 첫 홈런도 역시 삼성전이었다.

7월 19일 현재 타율 0.256, 출루율 0.360 홈런 2, 타점 8, OPS 0.721을 기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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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때부터 개그의 혼이 있었다(...) 포수 마스크를 쓰며 김민성을 놀리는 선수는 가르시아이다. 사실 이현승을 방심시켜 홈런을 때려내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 카더라. 그리고 수훈선수가 되었다. 2009년 8월 28일 롯데 홈경기 참조. #당시의상황을 그린 샤다리빠의 웹툰


2.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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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트레이드 된 김수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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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성 넥센 시절 등장곡 & 응원가


롯데의 대전 원정 경기 도중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이는 트레이드 통보였다.

2010년 7월 20일 황재균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를 통해 김수화도 함께 넥센으로 이적했다. 즉, 김민성+김수화↔황재균 2:1 트레이드. 누가 보더라도 황재균은 1987년 생 젊은 나이에 18홈런과 30개의 도루까지 기록한 주전 3루수였기 때문에 딱히 보여준 것이 거의 없다시피한 김민성, 김수화를 주고 황재균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당연히 현금이 낀 트레이드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대해 KBO가 조사에 나서 트레이드 승인을 하루 보류하고 승인해 주기도 했다.

이 사건 때문에 젊은 야구팬은 KBO 리그에서 현금 트레이드가 금지되어 있다고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 문서도 처음에 그런 논조로 작성되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타 리그와 마찬가지로 KBO 리그에서도 현금 트레이드는 당연히 합법이다. 최근에는 현금 트레이드 사례가 별로 없지만 과거 KBO 리그에서는 현금 트레이드가 꽤나 빈번했다. 특히 현금 트레이드를 잘 활용한 사람이 김성근 감독인데, 김성근 감독은 아예 취임 조건으로 현금 트레이드로 선수를 영입할 것을 요구하여, 삼성 감독에 부임하면서 7명의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태평양에 취임했을 때는 5명의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 바 있다. 김성근의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과거 KBO에서는 '선수+현금↔선수'가 아닌 말그대로 선수를 사는 '선수↔현금' 형식의 현금 트레이드도 꽤나 빈번하게 이루어졌었다.

김민성+김수화↔황재균 트레이드 때 KBO가 곧바로 승인을 하지 않고 조사에 나선 것은 당시 히어로즈가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히어로즈는 창단 당시 KBO 가입 조건이었던 가입금을 갑자기 내지 않고 째겠다고 나오면서 KBO 및 기존 구단들과 분쟁을 일으켰고, 이어 선수를 잇달아 팔면서 야구팬들 사이에 크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던 중이었다. 히어로즈의 선수 팔기가 크게 문제가 되자 결국 과거 쌍방울의 사례 때처럼 KBO가 히어로즈의 선수 팔기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개입하고 나서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민성, 김수화, 황재균 트레이드가 일어나자 KBO가 곧바로 승인해주지 않고 이례적으로 조사에 나선 것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히어로즈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현금 트레이드가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롯데가 현금을 얹어줬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에 가깝다.[2]

그리고, 8년 후 현금트레이드가 맞았다는 것이 밝혀졌고, KBO는 할 일을 다했다는 사실도 입증되었으니, 김민성 자신에게는 안 된 일일 지도 모르지만[3] 그의 트레이드 보류는 옳았다.[4]

넥센 팬이 말하는 3대 막장 트레이드(이택근, 황재균, 고원준)의 여파인지 팬들이 상당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롯데 팬들이 김민성이 아깝다고 각종 사이트에 도배했기 때문에 팬들이 더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또 넥센 창단 이후 황재균 팬들이 상당히 많았던 점도 호감을 받지 못한 한 이유이다. 이적 후 아주 잠깐 팀 동료들이 몽키매직으로 타격감이 좋아지는듯 했으나 그런 건 없었다. 결국 타율 1할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하며 2010 시즌 하반기 들어서 넥센에서 제일 많이 까이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연봉 5,500만원을 동결하며 팬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2.1. 2011 시즌[편집]


2011년에는 상당히 많이 주전으로 나왔다. 하지만 팬들에게는 장영석과 함께 넥센의 잉여타자로 불렸다. 4월 13일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출전했는데, 상대 투수의 몸쪽으로 꽤 들어오는 공을 일부러 몸을 들이밀다시피하며 피하지 않고 맞아냈다. 이 때 얻은 점수 이후로 넥센의 기세가 살아나 기아를 6:0으로 완파했다. 어떤 의미로는 장영석과 함께 이 날 승리의 공신.

황재균 트레이드의 충격도 흐릿해져가는 즈음이고, 비록 이렇다 할 성적은 나오지 않고 있으나(특히 타격) 2루수 김일경의 부재를 나름대로 충실하게 메워 주고 있는 점, 4월에만도 몸에 맞는 공을 벌써 3개나 얻어냈을 정도로 근성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점[5] 등을 감안하여 히어로즈 내에서도 팬이 증가했다.

물론 타격이 안 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이긴 하나, 마땅한 내야 백업(특히 유격수 백업)이 없었던 넥센에게는 김민성을 그냥 2군에 내리거나 내쫓을 수도 없는 형편인지라 계속 1군에 등록되었다. 4월 28일에는 결승점을 뽑는 적시타를 쳐 냈다. 그 이후 후속타자의 안타에서 홈으로 달리다가 아웃당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타격 기록상의 특이점이라면 얼마 안 되는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높았다는 것. 실제로 커트가 많고 출루를 많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몸에 맞는 공 숫자도 많다. 그래서 김민성이 출루할 때마다 출루덕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7월 20일 LG전에서 박현준에게 솔로 홈런, 레다메스 리즈에게 끝내기 안타를 쳐내면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 줬다.그 날만
9월 29일 LG전에서 레다메스 리즈에게 몸에 맞는 공으로 인해 손가락 골절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지만 어차피 시즌 다 끝날때 쯤이라...

2011년 성적은 124경기 타율 0.236, 23타점, 37득점.


2.2. 2012 시즌[편집]


2012 시즌에는 군에서 제대한 내야수들이 많아서 치열한 포지션 경쟁이 예상되었다. 다만, 그래도 1군 경험은 많아서 나름대로 유리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동안에 부상을 당했고 LG에서 방출되고 군복무를 마친 후 신고선수로 넥센에 입단한 서건창이 개막전을 앞두고 2루수를 차지했다.

서건창이 4월달이 수비 실책과 1할대의 타율로 박살날 때는 넥센 팬들은 김민성을 그리워했지만, 5월 들면서 서건창의 수비가 안정되고 2루수 중 최고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그러니까 정근우, 안치홍, 조성환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타격 성적을 내자 김민성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대신 넥센의 2012시즌 고질적인 문제인 3루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민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있었다. 여하간 부상 공백동안 서건창에게 2루 주전은 완전히 뺐겼다. 더군다나 서건창은 이미 현역으로 입대하여 복무를 마치고 입단한 군필자라서 군입대를 이유로 엔트리에서 빠질 상황도 없다는 것.

강정호봉와직염으로 입원하면서 6월 22일 삼성전부터 뛰기 시작했다.

6월 26일 두산전에서는 홈런스퀴즈 그리고 희생플라이로 무려 3타점을 쓸어담는 위용을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더욱 팀과 팬들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 다음날 6월 27일 두산전에서도 적시타 1타점 안타를 추가하면서 강정호의 공백을 충분히 메워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 국대유격수 강정호에 비하면 송구가 약하고 무엇보다 27일 경기에서는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유재신의 안타성 타구를 결국 2루에서 홈으로 쇄도하다 태그아웃 당하고 말았다. 발 느린분이란 별명 어디 안간다.[6] 비록 이러한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꾸준히 유격수와 3루수로 출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안타와 타점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7월 4일 한화전에서는 3점홈런 쐐기포로 팀의 승리를 훌륭하게 견인하였다. 유격수비와 3루수비 모두 굉장히 안정적이여서 아직 몸이 온전치 못한 강정호를 완벽하게 백업해 주기도 하였다.

7월 11일 SK전에서는 4타수 3안타(1홈런)으로 2타점 맹활약을 펼쳤다. 7월 11일 기준 현재 김민성의 타율은 무려 0.333이다. 거기다가 13경기만에 13타점 3홈런. 과연 작년의 김민성이 맞는지 팬들은 기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강정호 와도 유격수 자리 없다.

2012 시즌 김민성의 최대 공로라고 할 수 있는것은 본의 아니게 서건창을 발굴해 냈다는 것이다. 넥센팬들은 만약 김민성의 부상이 없었다면 신인왕 유력후보 2루수인 서건창을 보지 못할수도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 그리고 강정호가 부상으로 빠지자 그 자리를 무난하게 메워주고 있는 귀신같은 복귀 타이밍. 그야말로 발굴(?)도 잘하고 땜빵도 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본인마저 물만난 고기마냥 야구장을 종횡무진 하고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하리오?!

본인은 지난 겨울에 많은 훈련을 통해 준비를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을 입어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날씨가 더워지고 주전 멤버들의 체력이 떨어져 갈쯤에 자신이 복귀할 수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고. 주전 멤버 뿐만아니라 자신같은 백업 멤버들도 잘해야만 팀이 4강에 들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잘 수행하고 있었다.

2012년 성적은 1군 71경기 타율 0.283 4홈런 22타점 24득점 7도루 출루율 0.346 장타율 0.379. 부상으로 출장수가 적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트레이드 당시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던 황재균에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이라 볼 수 있다. 2012년 황재균은 133경기 타율 0.272 4홈런 51타점 42득점 26도루 출루율 0.335 장타율 0.346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김민성이 실책 3개, 황재균이 15개로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는 중에도 황재균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비를 펼쳤다.[7] 뿐만 아니라 팀내에서도 김민성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타자를 모두 포함하더라도 강정호(0.314)와 박병호(0.290) 단 2명뿐이다. 거기에 팀 창단 뒤 정성훈이 FA로 LG 트윈스로 떠나고 황재균마저 팔린 후, 소위 3루수 뫼비우스의 띠라 하여 특출난 주전이 잡히지 않았던 3루수 자리에 뫼비우스의 띠를 끊고 주전을 확정지은 한 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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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13 시즌[편집]


시즌 전 캠프에서 고유라 기자[8]에게 캠프의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번 캠프를 통해 '내가 누군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 캠프에서 계속 나는 무엇을 잘하는 선수인지를 생각해봤다. 예전까지는 공을 치는 것에만 급급해 내 폼이나 타이밍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근데 지금은 나한테 맞는 폼과 타이밍을 점점 알아가고 있고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기쁘다"

2013년 염경엽 감독이 "우리 팀에서 해줘야 할 게 많은 선수"라면서 주전 3루수로 김민성을 기용할 뜻을 밝혔고, 2012년과는 달리 부상 없이 시즌을 시작하여 주전 3루수로 자리를 잡았다.

5월 15일 한화전에서 개인 역대 한 경기 최다인 4안타를 몰아쳤다.

5월 23일에는 3번 타자로 나와 2루타 2개에 사사구 3개로 3타수 2안타, 6번 중 5번 출루하는 대활약을 펼치는 등 완전히 물오른 타격을 보이고 있다. 5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무사 12루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쳤다. 이날 기준으로 타율 0.331로 전체 4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현재 타격 1위 최정이 0.333으로 사실상 공동 1위 그룹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필이면 3루수 최정과 포지션이 겹쳐 넥센 팬들은 김민성이 2루수였다면 국가대표 확정이라며 설레발치는 중. 참고로 이 날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 '김민성'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글이 10,000개를 돌파했다. 별명도 옛날의 '김민성씨 발느린분'은 거의 사라지고 '갓민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

6월 들어서 다소 체력이 부쳐하는 모습이 종종 나오고 있었다. 문제는 백업이었던 선수가 사고를 치는 통에 백업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덕분이 별다른 휴식 없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넥센이 후반기 들어 내흉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역시 컨디션이 상승, 7월말 만루홈런 포함, 4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등 갑자기 거포로 변신했다. 동계기간 웨이트에 힘쓴 결과 장타력이 크게 상승해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고 강정호가 잠깐 주춤한 사이에 대신 5번을 치기도 했다. 지난 시즌까지 통산 홈런 14개, 한 시즌 최대 홈런 4개였던 타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좋은 모습의 영향인지 최근 5번 타순에서 출장하는 경기가 잦아지고 있다. 그리고 강게이 6번 최적화설의 완벽한 증거자료가 되고 있다

8월 21일에는 전날 18년 만에 1위에 오른 LG를 다시 2위로 돌려보내는 극적인 역전 쓰리런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14호. 홈런은 많아졌지만 최근 들어 멀티히트를 기록하는 모습은 별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안타 개수도 더 늘어야 할 듯. 8월 21일 현재 타율 0.289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신 거포 변신의 영향으로 타점은 홍성흔과 함께 공동 10위, 팀내에선 박병호-강정호에 이어 이택근을 제치고 3위를 기록 중이다.

9월 28일 LG와의 잠실 경기에서 4회초 선제 희생플라이, 6회초 승부를 결정짓는 3점 홈런을 작렬하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이 홈런으로 시즌 15호 홈런을 기록했고, 팀도 PO 진출을 확정짓는 것과 동시에 2위에 도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 승리였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김민성이 기록한 홈런과 타점이 홍성흔과 똑같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진입했던 해이기도 하며, 팀에서 박병호와 함께 유이하게 전경기 출장을 이루어낸 타자이기도 하다. 3루를 볼 수 있던 김민우신현철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탈하면서 백업이 거의 없다시피[9]했기에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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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당시 스리런을 날린 후 포효하는 모습.

팀이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선 2013년 10월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노경은에게 고전하여 팀이 스코어 0:3으로 지던 7회초에 선두 타자이자 3번타자인 이택근의 내야안타와 4번타자 박병호의 볼넷 무사 1, 2루가 된 상황에서 승부의 균형을 맞추는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여담이지만 이 커다란 홈런을 맞은 노경은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김민성은 선발 3루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연장 14회말에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스코어 3:4로 패했다.

김민성은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은 선발 3루수 겸 6번타자, 3, 4, 5차전은 선발 3루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19타수 5안타 1홈런 3볼넷 3타점 1득점, 타율 .263, 장타율 .421, 출루율 .364를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시즌 이후 연봉협상에서 8500만원에서 9500만원(112%)오른 1억 80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준 보상으로 생애 첫 1억을 돌파, 2억선 가까이 연봉이 인상되었다.


2.4. 201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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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4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을 세운 후.


2.5. 20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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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장석 사장이 시즌 시작 전 war 5짜리 야수가 되라고 했으나 최종 성적은 스탯티즈 기준 war 3.08, kbreport 기준으로는 2.20을 기록했다.


2.6.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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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7.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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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7.1. FA 취득을 둔 법적 분쟁[편집]


김민성이 2017 시즌 이후 FA가 될 수 없다는 기사가 나왔다. 1군 등록 일수가 145일 이상이 된 시즌이 6시즌이고 145일 미만이 된 시즌이 4시즌이라 일단 2008 시즌(109일) 2012 시즌(54일)을 합쳐 145일을 채울 수 있었지만 2007 시즌(6일)과 2010 시즌(138일)을 합치면 144일로 딱 하루가 모자란다. 그 딱 하루 때문에 1군 등록 일수를 채우더라도 2018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첫 FA 자격을 얻게 된다. 결국 트레이드 승인이 하루 늦어진 게 발목을 잡은 셈이다. 관련 기사 다만, 트레이드 승인이 하루 늦어진 건 당시 상황상 뒷돈이 오갔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충분히 가질 만한 상황이었고 그 하루 때문에 FA 자격 취득이 늦어지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을 리도 만무하기 때문에 그냥 운이 없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송승준의 경우는 등록일수 대신 규정이닝으로 FA 자격 요건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권해석을 할 수 있었기에 1년 일찍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으나 김민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서 구제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10][11]

10월 31일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어 17 시즌 후 FA취득은 물 건너갔다. 기사 항소할 수는 있지만 당연히 FA기간을 놓쳐버리게 되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17시즌후 FA들과 방출선수들이 많아서 몸값들이 많이 떨어진 탓에, 새옹지마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스톡킹 76-4화 치질 수술편 8분 53초 부분에서 이 분쟁의 자세한 내막이 밝혀졌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수감자인 김민성의 점수가 1점 모자라서 가석방되지 못했다라고 패러디되었다.


2.8. 2018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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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창의 부재가 길어지자, 5월 28일 정식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팀의 위기 속에서도 야구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주장다운 리더를 보이고 있다.

6월 2일 역대 111번째, 1,100경기 출장하였다.

7월 5일 고척 SK와의 9차전에서 4회 말 김광현을 상대로 파울홈런 뒤 좌중간 넘어가는 홈런을 치면서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요새는 선발보다는 대타 출전이 많아지고 있다. 시즌 막바지 넥센팬들의 입장은 잡지도 않겠지만, 잡을 필요 없고, 빨리 딴 팀으로 꺼지고 보상선수나 내놔라로 요약할 수 있다. 9월들어 선발로 출전하면 욕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9월 들어서는 완전히 삽질이나 퍼는 중이다. 안타를 치는 일이 없다. 넥센팬들은 김민성이 딴 팀 못가고 FA미아 되어서 팀에 남아 계속 연봉 축내는거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넥센팬들 특히 넥센갤 유저들은 타팀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홍보중이다.[12]

포스트시즌에서 정말 미친듯이 삽을 푸고 있다. 장정석이 뺄 생각도 없어서 6-7번 왔다갔다 하면서 1사 12루면 병살타 치고 2사 23루면 깔끔하게 이닝끝내는 땅볼을 치며 팬들 혈압 터져 죽으라는 듯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 4번이 준플 1차전에서 기적의 홈런을 치고 그 뒤로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갔는데 뒤에서 잘 쳐도 모자란 판에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타팀에서 몰래 선제시가 들어온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해봐야 한다.

그러나 SK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기적과도 같은 동점을 만들고 난 뒤에 연장 10회초에 임병욱이 2루타를 치고 나가서 후속 타자로 나와 2루타를 때려 대역전극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아쉽게도 팀은 10회 말에 백투백 홈런을 맞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 그래도 마지막에 함께 부진하던 박병호와 함께 둘 다 결정적일 때 쳐줬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시즌 최종 성적은 128경기 465타석 117안타 10홈런 45타점. .283 / .351 / .414의 타출장을 기록했으며 ops는 0.765, wrc+ 93.4 스탯티즈 war은 1.75를 기록했다.


2.8.1. FA[편집]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했다. 저번 시즌에서 등록 일수가 딱 하루 모자라 FA 신청이 불가능했는데, 그 설움을 이번에 풀게 된 것. 그러나 반응은 1년 사이에 매우 달라졌다.

히어로즈에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좋지 못한 선구안과 벌크업 이후로 감소한 수비력 때문에 주전 수비수로서 활용하기에는 물음표가 많이 붙기 때문. 게다가 소속팀인 히어로즈가 젊은 선수들이 많이 있어 대체 자원 발굴이 쉬운 반면 재정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팀이라는 팀 컬러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한 몫 한다. 당장 2018년만 해도 송성문이 급부상하며 김민성의 자리를 순식간에 채웠고, 임지열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했으며, 여차하면 장영석까지 기용할수도 있다. 게다가 육성선수로 영입한 김준연까지 3루수라 만약 히어로즈에 남는다면 필연적으로 경쟁이 예고되어 있는 셈이다. 즉 히어로즈에서 거금을 들여 김민성을 잡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볼 수 있으며, 오히려 김민성을 다른 팀에 주고 보상금과 보상선수를 얻어와서 재정을 보강하거나, 아니면 김민성이 FA 시장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최대한 저렴하게 후려치는 것이 더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비교적 적은 나이 때문에 다른 팀에서 입질할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1월까지 어느 팀과도 계약했다는 소식이 않으면서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졌다. 일각에서는 양석환의 입대로 3루수 자리에 공백이 생긴 LG 트윈스와의 사인 앤드 트레이드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이 역시 실현될지는 미지수. #[13]

현재 개막이 20일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계약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루 차이로 인생이 바뀐셈. FA 직전 2년간 애매한 성적을 낸건 김민성 본인이긴 하지만 운도 굉장히 따라주지 않고 있다.

결국 2019년 3월 4일, LG로 간다는 단독 기사가 떴다. 사인 앤드 트레이드 방식으로 옮겨가게 된 것.[14] 김재율, 장시윤, 류형우 가지고는 도저히 시즌을 치를 자신이 없었다는 차명석 단장의 생각이 적중한 셈.

그리고 다음날인 3월 5일, 사인 앤드 트레이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키움은 보도대로 현금 5억을 받고 LG는 김민성과 3년 18억에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날, 스포츠동아 강산 기자가 이적 과정에서 발생한 이적료 5억원을 선수 본인이 자비로 부담했다는 기사를 올려 논란이 되었지만, 얼마 안 있어 LG에서 반박 기사가 나왔고, 키움 히어로즈와 에이전트의 반박 기사도 나왔으며, 스포츠서울 담당 윤세호 기자가 양 팀 측 운영팀장간의 문자 내역을 올렸다. 결국 강산 기자가 본인 트위터에 사과문을 올렸고 기사는 삭제되어, 오보로 결론났다. ###

이 협상 결과로 차명석 단장은 갓명석 이라 불리며 엄청난 칭송을 받은 반면 키움 히어로즈김치현 단장은 키움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협상력 부재를 드러냈다는 비난에 키움 히어로즈의 팀 특성상 애매한 FA가 계속 나올 경우 김민성의 사례가 전례가 되어서 다른 8개구단들도 이런 식으로 덤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혀를 차는 중. 그러나 3년 후, 이 사인 앤 트레이드에 대한 평가는 180도 뒤집어지게 된다고 상술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러진 않았다. 당시 LG가 필요한 영입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김민성이 먹튀급 행적을 보여준 것도 아니기 때문.

3. LG 트윈스 시절[편집]



3.1. 2019 시즌[편집]



파일:19김민성.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LG의 3루 고민을 해결해준 준수한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3.2. 2020 시즌[편집]



파일:20김민성.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지난해와 비교해 성적이 약간 떨어졌고,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

3.3. 2021 시즌[편집]



파일:21김민성.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1 시즌 서건창, 이형종, 이천웅, 저스틴 보어, 정주현, 함덕주 등과 함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타격에서 에이징커브를 제대로 찍었고, 시즌 내내 자신의 유일한 장점이였던 수비 마저 가을야구에서는 완전히 잃었다. 특히 준플레이오프 3차전 5회 그의 포구 실책 이후 팀이 대량실점을 하면서 팀의 탈락 주범 중 하나로 꼽혔다. 2차전 때는 영웅이 되더니 3차전에서는 역적이 되었다. 이대로는 LG에서의 선수생활은 물론이고 선수생활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3.3.1. FA 총평[편집]


3년간 정규시즌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315
1018
253
58
0
21
108
136
96
214
27
7
0.249
0.320
0.367
0.688

LG에서의 3년 간 성적은 그냥 값싸게 와서 값싸게 활약한 선수라 보면 되겠다. 히어로즈에서 보여주었던 좋은 수비와 일발 장타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시원찮은 모습이었기에 먹튀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만 히어로즈에서의 마지막 해를 생각하면 이렇게 에이징 커브가 올 거라 예상되긴 했지만 4년 30억대 계약은 따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기에[15] LG는 사인 앤 트레이드로 나름 싸게 양석환이 제대하고 문보경이 성장할 때까지 3루를 받쳐준 무난한 B급 3루수를 데려왔다고 볼 수는 있어서 이해 못할 영입이나 아주 실패한 영입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 보통 WAR 1당 5억이면 적당한 계약으로 평가받는데, 3년 sWAR 총합 4.51, WAR 3.45로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WAR은 착실히 쌓았고 가격도 저렴해 딱 돈값 한 선수가 되게 된다. 그리고 정성훈이 2013년을 끝으로 3루수를 내려놓은 뒤 외국인 타자를 3루수로 뽑는 등 무주공산이었던 3루를 김민성이 맡은 뒤부터 LG 내야 수비는 철벽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해서 나쁜 영입도 아니다.

3.4. 2022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 202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민성/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지난 몇 년간 실망스러웠던 모습을 지워낸 말 그대로 슈퍼백업이자 부상병동이었던 LG 전반기의 난세 영웅이 되었다. 다만 후반기 부상과 부진으로 페이스가 급락해 성적이 뚝 떨어진 것은 아쉬운 부분.
그래도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와중에 팀의 내야 슈퍼 유틸리티로 부활했고 팀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해줬으며 신민재와 함께 외국인 타자와 더불어 LG 역사상 최대의 약점이었던 2루를 플래툰으로 나눠가지는 대반전을 보여주며 먹튀라는 오명을 벗는데는 충분한 시즌을 치뤘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07
롯데
4
1
.000
0
0
0
0
0
0
0
0
1
.000
.000
-
2008
20
25
.200
5
1
0
0
6
1
0
2
5
.259
.240
32.5
2009
114
327
.248
81
17
0
4
51
37
5
52
72
.349
.336
78.3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0
롯데/
넥센
80
180
.200
36
4
0
2
26
12
1
29
41
.310
.256
47.2
2011
넥센
124
314
.236
74
10
1
4
37
23
12
35
51
.311
.312
64.0
2012
71
219
.283
62
9
0
4
24
22
7
23
58
.346
.379
105.7
2013
128
458
.282
129
24
2
15
60
72
7
58
84
.360
.441
118.5
2014
116
438
.292
128
29
2
12
60
77
3
40
80
.349
.450
94.3
2015
118
445
.303
135
24
0
16
60
71
1
39
62
.357
.465
108.2
2016
141
510
.306
156
39
(2위)
5
17
76
90
6
56
89
.367
.502
111.6
2017
133
472
.282
133
26
1
15
59
78
0
50
93
.345
.436
98.5
2018
128
413
.283
117
24
0
10
46
45
1
46
80
.351
.414
92.8
연도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9
LG
107
361
.260
94
16
0
8
44
50
2
34
75
.323
.371
94.6
2020
87
297
.266
79
20
0
5
29
47
2
28
66
.325
.384
87.9
2021
121
360
.222
80
22
0
8
35
39
3
50
73
.313
.350
80.7
2022
92
140
.207
29
4
0
3
16
20
0
13
27
.273
.300
64.2
2023
112
273
.249
68
11
0
8
34
41
2
32
58
.326
.377
96.9
KBO 통산
(17시즌)

1696
5233
.269
1406
280
11
131
663
725
52
587
1015
.339
.401
95.6

[1] 고3때 봉황대기 우승을 했으며, 고등학교 동기인 김주현KIA 타이거즈, 김유선과 최종인은 LG 트윈스에 지명받았다.[2] 나중에 롯데 프런트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3] 이도 새옹지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FA시즌에 얼마나 받느냐를 보아야 판단이 가능할듯.[4] 스톡킹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건을 재차 언급했다고 한다.[5] 5월 19일 기준으로 몸에 맞는 공수가 5개 넘는 선수 중에 가장 타석수가 적다.(90개) 그보다 더 적은 타석에서 그만큼 공을 맞은 선수는 없다.[6] 저 장면을 보고 어떤 팬들은 허도환으로 착각했다고...[7] 다만 김민성은 시즌 절반을 날린 것도 있고, 황재균도 송구가 불안정해 실책이 적진 않은 편이다. 롯데 팬들이 이대호와의 대비효과로 잠시 좋게 봤을 뿐이지 원래부터 잡을 건 잡아줬으나 수비범위가 좁았고 송구가 매우 강한 대신 안정감이 떨어졌는데, 롯데 이적 후 수비가 더 나빠졌다.[8] OSEN의 넥센 히어로즈 구단 담당 기자.[9] 유재신은 수비가 불안하고, 서동욱도 3루와 유격수 수비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외야수로 기용된 적이 여러번이다. 그나마 중반기 이후 김지수가 들어왔는데 여전히 부족했다.[10] 이에 대해 2017년 9월 김민성 측은 FA산정일수로 인정 못 받고 있는 이 미등록 1일의 구제를 위해 KBO를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11] 이는 스톡킹에서 재차 해명한 내용.[12] 다만 김민성의 최대 강점은 나이다. 김민성은 1988년 12월생으로 미국 야구나이 기준으로 2019시즌에 겨우 30세 밖에 되지 않는다.[13] 류중일은 주전 3루수 후보로, 김재율, 장시윤, 류형우를 점 찍어놨지만, 김재율은 유리몸에 나머지 둘은 타격성적이...[14] 보상 선수없이 현금 5억만 키움으로 갈 예정.[15] 세이버로나 FA 직전인 18년 하반기에 심히 못했긴 하지만 만약 17년에 FA를 신청했거나 18년에 하반기 폭락만 아니었다면 대형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8년 성적 자체도 아주 나쁜 건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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