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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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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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김경태
(2006~2008)

박현준
(2009~2010.7.27.)


이재영
(2010.7.28.~2010)
LG 트윈스 등번호 11번
김민기
(1997~2010.5.25.)

박현준
(2010.7.28.~2011)


류제국
(2013~2019)



파일:htm_2012022917513261006120.jpg

박현준
朴顯俊 | Park Hyeonjun

출생
1986년 9월 22일 (37세)
전라북도 전주시 인후동
(現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인후2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금평초 - 전주동중 - 전주고 - 경희대[1]
신체
185cm, 83kg[2]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9~2010)
LG 트윈스 (2010~2011)

병역
35사단 상근예비역 (2013.10~2015.6)

1. 개요
2. 선수 경력
3. 근황
3.1.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 입단
4. 플레이 스타일
5. 과대평가 논란
5.1. 반론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3] KBO 리그에서 영구제명당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SK 와이번스[편집]


2009년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문하였다. 경희대학교 3학년인 2007년 9월 추계리그(vs 원광대)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적도 있다. 2009년 야구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참가하였다.

사이드암이면서도 150km/h에 육박하는 속구[4]와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공을 가지고 있어 제2의 임창용이 될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제구력이 문제였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가 큰 데다가, 원할 때 존에 집어넣지 못한다면 구속과 무브먼트는 둘 째 문제일 뿐. 그리고 그와 연결되어 나타난 것은 위기상황때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서 볼넷을 남발하는 것.[5] 그리고 하체 이용을 잘 못하는 투구폼을 가져서 내구성에 의심이 간다는 지적도 있었다.

SK에 2차 1번(계약금 1억 2천만 원)으로 지명받았을 때 그에 관련한 기쁨보다는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을 미니홈피를 통해 토로하여 주목받았다. 또한 '용의 심장이 되고 싶다,' '제2의 임창용이 되고 싶다' 등의 표현으로 많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캠프 중에는 2년 뒤에 (열심히 한다면) 국가대표급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김성근 감독의 멘트도 있었다.


2.1.1. 2009 시즌[편집]


2009시즌 시범경기에서 언터처블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시범경기 막바지에 오른쪽 다리의 이상을 느꼈다.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되었으나 개막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첫 타자 김태균에게 안타, 다음 타자 이범호에게 홈런을 맞는 등, ⅓이닝만을 소화하며 2실점하였다.

이후 꾸준히 부진하여 2군에 있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5월 29일 삼성전에서 3이닝을 깔끔하게 틀어막아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으나, 바로 다음날 쳐맞고 ⅓이닝 2실점으로 블론세이브를 시전했다.

투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2009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등록되었으나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상에서 완벽히 복귀하지도 못한 송은범이 엔트리에 탑승해 밀렸다. 애초에 2009년 시즌 중에 등판한 대부분의 경기가 패전 상황인 선수가 이런 큰 경기에 활약할 여지는 없었다. 2군에서는 2군 페드로 놀이를 하지만 1군에서는 부진한, 전형적인 AAAA급 선수의 모습을 보였다.

2.1.2. 2010 시즌[편집]


2010시즌 00대비 캠프에서 다시 또 희망적으로 신인인 박종훈과 묶여, 김성근 감독의 2년 뒤에 SK의 1, 2선발 재목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역시나 여기에는 '열심히 한다면'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2009시즌 마무리캠프에서도 가장 실력이 향상된 선수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시즌 첫 등판인 4월 2일 두산전에서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로 나와 홈런 1개와 볼넷 2개, 몸에 맞는 볼 1개를 깔끔하게 내주면서 SK 팬들에게 실망감을 한다발 선사했다. 그리고 이어진 아름다운 2군행.

1군에 다시 복귀한 후 4월 16일 삼성전에 7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나와서 산뜻하게 볼질을 하면서 다시 또 아름다운 2군행. 호성적을 보였던 LG의 신인 신정락과 비교되어 더더욱 돋보였다.

캠프에서 나오는 뉴스를 통해 높아졌던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감과, 야구보다는 싸이질을 더 좋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싸이지엥이라는 말을 들었다. 초반에 보여준 미니홈피에서의 글들은 싸이용 허세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또한 악플러에 대한 대처에서 '동네 개도 들어오는 박현준 홈피'로 메인을 바꾸는 일이 생기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과거의 일화[6]와 애견성향을 묶어서 '개장수'라는 맛깔나는 별명으로 불렀다.

5월 12일 시즌 첫 연장이며, 12회 막바지까지 전혀 승부를 알 수 없는 롯데와의 대접전에서 승리를 거둔 SK팬들에게 난데없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당연히 게리 글로버로 예상했던 13일 선발에 뜬금없이 선발로 예고된 것으로 이는 커리어 사상 첫 1군 선발 등판이었다.
이는 두산전에 대비하여 글로버를 아끼는 포석으로 이뤄진 것으로, 박현준이 2군에서 지난 등판에 두산 2군과의 경에서 9회초 첫 타자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이 연계되어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SK 팬들은 대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이어진 5월 13일 경기. SK 팬들은 끝나지 않을 1회말이라고 잔뜩 불안해했지만, 의외로 제구가 되면서 리그 최강인 롯데의 클린업을 셧아웃 시켰다. 그리고 60구를 넘어가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5회에 2실점 1자책점을 하긴 했지만, 4이닝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 1자책점으로 기대도 하지 않던 호투를 보여줬다. 따라서 다음 등판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드 직전인 2010년 중반까지 그에 대한 SK팬들이 보인 기대감과 실망감은, 당시 김광현이 경력 4년차면서도 그때까지 1군 엔트리의 막내였던 상황과 결부된다. 다시 말해 기대치가 조금이라도 되는 신인이란 게 거의 없었다. 창단 초기부터 스카우터의 알 수 없는 지명 삽질,[7] 1차 지명 혹은 2차 1라운드로 뽑은 선수들은 아마 시절 기대치를 프로에서 보이지 못하거나,[8]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9] 2군 전용구장의 부재[10]로 2군 유망주들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사실 2군에서 쓸만한 선수들은 이미 다 뽑아서 1군에서 쓰고 있는 상황[11]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팀 내 최고 투수 유망주로 꼽히던 그에게 쏠리던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SK에 신인지명으로 들어온 선수 중에 그나마 기대할 만한 선수는 둘 밖에 없었다. 포텐셜이 높다고 여겨지며, 대학야구의 최고 선수들이었던 두 선수가 당시 보여줬던 모습에 SK팬들의 실망은 클 수밖에 없었다.


2.2. LG 트윈스[편집]


결국 2010년 7월 28일 4:3 트레이드로 LG 트윈스에 이적했다. LG에서 내야수 최동수권용관, 외야수 안치용, 투수 이재영이 SK로, SK에선 포수 윤상균, 투수 김선규, 그리고 박현준이 같이 LG로 옮겼다.

상위픽 유망주를 겨우 2년만에 트레이드 시켰으니 사실상 실패를 자인한 셈. LG팬들은 야신도 포기한 놈을 유망주의 무덤인 LG에서 어떻게 키우느냐며 불안해 했다. 당장 LG에 옆구리 투수가 많기도 했고.

그래도 우려와는 달리 LG로 이적한 이후에는 비교적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8월 13일 넥센전에서 드디어 데뷔 첫 선발승을 거뒀고, 8월 25일 KIA전에서는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5이닝동안 무려 10삼진을 잡는 활약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LG팬들은 급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성근 감독은 박현준이 꿈에서도 튀어나왔다고 할 정도로 아쉬워했다.

2010 시즌은 (트레이드 이후 성적) 2승 3패 평균자책점 5.76을 기록했으며, 특히 두달 사이 45⅓이닝을 던져 삼진을 35개나 잡아냈으며, 팀내에서 봉중근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탈삼진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가 어느 팀보다 절실한 LG 입장에서는 2011 시즌 기대해볼만한 선수라 할 수 있었다.

2010년 대륙간컵 일본전에서 스코어 8:1 완투승을 거뒀다.


2.2.1. 2011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현준/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2.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 연루[편집]


파일:attachment/개장수공항장애ㅋㅋ.jpg

2016년,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이때 웃는 표정은 멘탈붕괴한 상황에서 믿고 의지하던 형[12]을 공항 입국장에서 보고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승부조작 행위가 발각되고 난 뒤 허탈한 상태로 나온 표정이기도 하다. 본인도 나중에 웃는 얼굴의 사진을 보고 "그 자리에서 나와선 안 될 표정이었다" 라면서 후회했다고...

시즌 전 우규민, 유원상, 김태군 등과 함께 팀 내 체력 테스트에서 탈락,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하며 우려를 샀다. 김기태 감독이 탈락자들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고는 했으나, 팀의 에이스 투수가 체력측정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LG2012년 시즌에 먹구름이 아닐 수 없었는데, 엉뚱하게도 다른 이유 때문에 LG의 2012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말았다.

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시즌 중의 사진과 비교에 봤을 때 한 눈에도 몸이 엄청 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비시즌 기간 동안 실컷 놀고 먹은 모양. 덕분에 감독의 질책에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잔류군에 합류해서 몸을 만들었고, 결국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체중을 7kg 감량하며 1월 29일 실시한 체력 테스트에서 거뜬히 상위권으로 합격점을 얻어 2월 3일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탈락 동기생(?)이던 우규민, 유원상, 김태군 등도 사이좋게 합격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2012년 2월 중순, 야구계를 발칵 뒤집은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 본인은 승부조작과는 절대 무관하며 아예 이야기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력 부인하였지만,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브로커 A 씨는 박모 선수와 구체적인 합의를 봤다며 주장했다.

파일:external/cdn.mydaily.co.kr/201202161541412221_1.jpg
2월 16일의 모습.

파일:attachment/Two_Face_Park.jpg
원본 뉴스[13][14]

계속 의혹이 제기되자 백순길 단장과의 면담에서도 강하게 부인을 했고 언론을 통해서도 부인했다. 이때 KBS NEWS에서 방송된 백순길 단장의 "그래. 열심히 하자."라는 발언이 명대사(?)로 취급받으며 씁쓸한 추억이 되고 있다.

한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박현준과 백순길의 대화가 순간적인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자 발뺌하다가 들킨 상황을 비꼬는 표현으로 밈이 되었고 현재에도 절찬리에 사용되고 있다. 이 발언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박현준은 결백하다고 확신했지만 배신을 당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해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최성국의 캡쳐와 비교되고 있다.

결국 2012년 2월 28일, 검찰김성현을 긴급체포하면서 승부조작이 사실로 드러났고, 다음날 대구지방검찰청의 소환에 따라 귀국했다. 3월 2일, 대구지검에서 9시간 동안 수사를 받은 후 승부조작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언론을 통해 알려진 8월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이라고 밝혀졌고,[15] 그 이전인 5월 24일 두산전과 6월 9일 한화전에서 행했다고 한다. 기사

참으로 뻔뻔하게도 철저하게 범죄를 은폐했어도 모자랄 판에 승부조작을 했다는 증거로 검찰이 제시한 것이 바로 통장출입금내역이었다. 그야말로 돌대가리 인증.

3월 12일 인터뷰에서 본인이 밝히길, 조폭에게 협박받던 김성현을 돕기 위해 승부조작을 했다고 했지만 이것은 훼이크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7백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으며, 한국야구위원회 상벌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박현준과 김성현을 영구제명시켰다.

중앙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영구제명 이후에는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김정수 감독 밑에서 학생을 가르쳤다고.

그런데 2019년 7월 31일 LG 트윈스 갤러리에 난데없이 출몰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위에 열심히 하자는 저 장면은 구단이 시켜서 한 거라고 한다. 본인 글.


3. 근황[편집]


이후 1~2년 허송세월하다[16] 2013년 10월, 35사단상근예비역으로서 군입대하고 병역을 마친 뒤, 2015년 10월부터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링크 KBO와 협정을 맺은 MLB, NPB, CPBL 에서 영구제명된 선수는 뛸 수 없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을 비롯한 그 밖의 다른 나라 야구 리그는 KBO와 협정 미체결 관계이기 때문에 박현준이 도미니카 리그에서 뛰는 데 제약은 없다고 한다.[17]

도미니카 리그의 에스트랄레스 오리엔탈레스에 진출해 시범경기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합격점을 받은 걸로 알려졌다. 현지 에이전트인 라울이라는 사람은 "우리도 그가 도박혐의로 한국에서 징계를 받은 것을 알고 있으나, 그게 우리나라에서 뛰는 데 문제될 것 없다."라는 발언으로 실력만 된다면 받겠다는 말을 전했다. 에스트렐라스 오리엔탈레스라는 팀은 2015년 윈터리그 당시 최지만이 소속된 팀이기도 하다.

허나 실제로 에스트렐라스 오리엔탈레스의 팀 로스터에 포함되지는 않았고 영입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 원래 한 번만 더 던지고 싶어서 도미니카에 갔다고 말하며, 한국에서 다시 말이 나오자 부담감에 귀국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9c904fc1132d8a8ba6984043cbdf878f58a48b755d10b4e97974583ed6b4c3f2.jpg
LG U+ 핸드폰 판매원으로 지내고 있는 근황. (야시장 인터뷰 중)

2016년 9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근황을 알렸다. 고향인 전주에서 LG U+ 대리점 점장이 됐으며, 부모님이 운영하는 호프집을 도와주며 산다고. 엄청난 허탈감과 죄책감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위에 설명과 같이 협상을 위해 도미니카로 갔으나 이내 마운드에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 귀국 후 상술한 대로 살고 있다. 휴대폰 관련 상담을 봐주기 위해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그리고 LG U+ 유니폼을 입고 휴대폰 매장에서 일하는 그가 과거를 참회하는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팬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이 없어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대화] 박현준의 참회 "그 때,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박현준은 "나같은 선수가 다시는 그라운드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참회했다.

다소 평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부분은 프로선수로서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새로운 제2의 삶을 잘 살길 바란다는 평이다. 비슷한 시기 같은 범죄를 저지른 최성국이 여전히 축구계 주변에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박현준이 그나마 낫긴 낫다.

2016년 10월 18일PD수첩》에 승부조작 관련 기획에서 인터뷰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매장에 있는 TV에 야구중계를 틀어놓은 게 포인트였다. 인터뷰

위의 근황 인터뷰나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기를, 자기가 저질렀던 사건 후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며 그 이후 내가 어떻게 됐는지 다 봐놓고도 후배들[18]이 또 승부조작을 했다는 사실에 답답했다고 하는데, 맨 처음 승부조작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자기 사건 때 못 잡혔던 다른 건이나 그 이전에 저질렀던 게 이제야 밝혀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 7월 31일, LG 트윈스 갤러리에 출몰해서 누가 이태양문우람의 승부조작을 봤을 때 느낌을 물어보자 "장난하냐 개병신들이지 저것들은ㅡㅡ나를보고도 저짓하냐"라고 답했다.

2017 신인 오리엔테이션 때 부정방지 교육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와서 약 10분간 말을 했다고 한다. 성의 없이 대충 준비한 게 아니라 스스로가 가장 훌륭한 교육 자료니까,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제발 나처럼 되지 말라, 나 보고 좀 느끼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강연에서는 "승부조작은 정말 가까이 있다. 선배가 "내가 직구 던질 테니 니가 쳐라" 해도 절대 하지 마라." "뒷바라지해준 부모님을 생각하면 승부조작은 해서는 안된다. 제발 나같이 후회할 일 만들지 말아달라."라고 말했다.

2018년 12월, 멕시코 리그로 선수생활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떴다.(윈터리그인 멕시코 태평양 리그가 아니라 AAA에 해당하는 멕시코 야구 리그(일명 멕시칸리그)다.) 미국, 일본, 대만리그만 불가능할 뿐, 다른 리그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019년 7월 31일, LG 트윈스 갤러리에 출몰하여 선수 시절의 여러 가지 썰을 푸는 등 이제 본인도 한 명의 갤러로서 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이후 글이 대부분 지워졌는데 비밀번호를 1111로 해놔서(...) 분탕에게 걸려들었다는 썰이 있다. 폰으로 디시인사이드를 제대로 못 다루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자 쥐갤러들이 공앱을 다운 받아서 고닉을 파라고 계속 말하고 설명까지 해줬지만 여전히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날 푼 썰을 정리하자면, 오재원은 일부러 맞추려고 한 적이 있고[19], 김성근 감독 빡치라고 로진백 일부러 분 적도 있으나, 선수로서 거쳐가면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남자라고 추켜세웠는데, 반대로 이만수 감독은 싸이코라고 밝혔다.[20] 자신을 선발 투수로 기용한 박종훈 감독을 은사로 표현하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인이 총대를 메준 덕에 그냥 넘어간 선수들도 몇 명 있다고 한다. 야구관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김재환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약을 해도 못하는 선수가 있다'며 김재환의 재능 자체는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포수 리드가 얼마나 중요하냐는 물음에는 '그런 거 없다'는 말을 남겼다.[21] 이어 본인의 공을 가장 잘치던 선수가 누구냐는 물음에는 장성호라고 대답했다.

또한, 팀 선배였던 조인성은 경기 끝나고 고기 사주던 선배, 박용택은 나이스한 선배였다고 말했으며[22], 당시 재활 중이었던 류제국에 대해선 자신의 등번호 11번을 뺏겠다고 징징대던 공익근무요원이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함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던 김성현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 듯하며, 주키치와는 아직도 종종 연락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랑 똑같은 짓을 하다 자기랑 똑같이 영구제명을 당한 이태양이랑 문우람이 승부조작을 했을 때는 '자신을 보고도 저런 짓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X신이라고 깠다.

3.1.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 입단[편집]


2018년 12월 멕시코 프로 구단인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 구단에서의 제안이 온 이후 2019년 1월 10일 현지 공식사이트 등에서 박현준이 계약에 합의하였음이 알려졌다. 2019년 1월 12일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1월 31일 계약 무산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는데, 몬테레이 구단 측에서 부담을 느끼고 박현준에게 KBO에 선수활동을 승인한다는 승인서를 받아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23] 이에 대해 KBO멕시코 프로야구 리그는 KBO와 협약이 되지 않아 승인서를 써 줄 필요는 없으며 계약 문제는 자유롭게 판단해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2월 26일 공식 첫 훈련에 나간 게 확인되었는데, 김진우가 술탄네스 데 몬테레이에 입단했는데, 에이전트인 송산에 의하면 아직 KBO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입단계약은 맺지 않은 채 멕시코에서 팀 훈련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7월 31일 현재도 몬테레이에 체류 중이라고 하며, MILB.COM의 술탄네스 팀 로스터 소개에서도 로스터에 김진우는 있으나 박현준은 없다. 결론은 정식 선수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사이드암 투수로 150km/h를 넘나드는 뱀직구를 구사했었다. 기타 구종으로 커브와 포크볼을 던졌다.

박현준의 시그니처인 포크볼
사이드암으로는 상당히 희귀하게 포크볼을 구사했었다. 그래서 별명중 하나가 싸포.[24] 특징으로 손가락, 팔을 좀 꺾어서 던졌다고 한다. 사실 포크볼은 의도적으로 공의 회전수를 줄여서 낙차를 발생시키는 오프스피드볼 계열의 구종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사이드암 투수가 포크볼 그립을 잡고 던지더라도 공의 상하 회전수의 변화는 크지 않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박현준이 사이드암이면서도 포크볼 구사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팔 각도가 정통 사이드암보다는 스리쿼터에 가까운 각도에서 릴리스 되기 때문이다. 즉, 오른팔이 왼쪽으로 돌아가며 생기는 원심력보다 손목과 손가락을 이용해 공을 놓는 순간에 공을 찍어눌러주는 형태의 투구폼이다.


5. 과대평가 논란[편집]


만화같은 퍼포먼스[25]와 임팩트 있던 모습들[26]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 야구 팬들은 박현준을 "승부 조작만 안 했으면 FA로 대박을 쳤을 선수"(조작 때문에 수십억을 날린 선수)라고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여러모로 근거가 부족하다.

  • 같은 2010년대의 사이드암, 언더핸드 선발들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비교를 해 보면 분명히 박현준이 더 낮은 지표를 기록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이태양과 임기영은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박현준보다 WAR이 비슷하거나 더 높다.
연도
이름
출장
이닝


탈삼진
사사구
ERA
ERA+
FIP
FIP+
WHIP
WAR[27]
2011
박현준
29
163⅔
13
10
137
79
4.18
98.1
3.98
103.0
1.35
2.74
2013
이재학
27
156
10
5
144
73
2.88
148.9
3.91
110.0
1.17
4.44
2015
우규민
25
152⅔
11
9
119
29
3.42
137.3
3.73
125.5
1.18
4.95
이태양
29
137⅓
10
5
113
59
3.67
130.5
5.04
96.9
1.32
3.11
2016
신재영
30
168⅔
15
7
99
32
3.90
134.8
4.65
111.3
1.26
5.08
2017
임기영
23
111⅓
8
6
73
24
3.65
136.1
4.07
112.6
1.32
2.73
2018
박종훈
30
159⅓
14
8
133
74
4.18
125.8
4.86
108.3
1.33
3.88
한현희
30
169
11
7
105
69
4.79
107.5
5.51
92.8
1.52
2.83

그 이유는 2011년이 투고타저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평균자책점(ERA) 4.18을 조정 평균자책점(ERA+)으로 환산하면 98.1[28]에 불과했으며, 이를 타고투저인 2018년 선발 투수에 대입하면 KT 금민철의 97.9(ERA 5.41)와 비슷하다.

  • 사이드/언더 선발은 오랫동안 활약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투구폼 특유의 부상 유발, 단조로운 구종, 좌타자 상대 약점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실제로 위 선수들 역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줄로 요약하면 단 한명도 저 커리어하이 시즌을 갱신하지 못했다. 이재학은 그저그런 투수로 전락해 FA 계약도 망쳐버렸고, 신재영은 은퇴했고, 임기영도 두번 다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이태양은 박현준의 전철을 그대로 탔다.) 우규민은 FA 대박을 터트렸지만 삼성 이적 후 불펜으로 밀리는 등 전혀 돈값을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이후 FA인 박현준의 몸값에 악영향을 줬을 판이고, 그나마 성공 케이스라 할수 있는 박종훈과 한현희도 통산 ERA+가 100에 머무른다.

이강철, 임창용 등 특이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사이드암이 아니라 모든 투수, KBO 역사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에 드는 레전드 레벨이다. 이런 극소수의 케이스를 갖고 평균적인 예상을 논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논리이다.

  • 박현준은 대졸에다 다소 늦은 데뷔 때문에 2011년 당시 이미 만 25세였고, FA 자격취득을 하려면 빨라야 2019 시즌, 만 33세 FA 예정이었다. 이것도 부상/부진의 공백없이 매년 FA 자격을 채우고 국가대표 병역 혜택도 받는다는 가장 빠른 가정(위 다른 투수들 모두가 하지 못했던 최상의 가정) 하의 예상이다.

이는 투수 FA로선 많은 나이라 거액 계약에 큰 장애물이 된다. KBO 역대 33세 이상 FA/다년계약의 총액 순위는 김광현(151억), 양현종(103억), 윤성환(80억), 손승락(60억), 문승원(55억), 송승준(40억)으로, 그만큼 구단들은 나이 많은 투수 FA를 꺼린다. 또한 오해가 있는 것이 2010년대 후반에 FA 시장이 폭등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야수에 한정된 것이고 투수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위축되었다. 박현준의 예상 시점인 2019년 이후 총액 순위는 양현종(103억), 박종훈(65억), 문승원(55억), 한현희(40억), 정우람(39억), 백정현(38억)으로, 시장이 폭등했단 선입견에 비해 투수 대박은 많지 않다. 여기엔 2017년 계약한 차우찬(95억), 우규민(65억) 등의 실패도 분명 영향을 끼쳤다. 사이드암 선배 우규민의 FA 거액은 박현준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사례일 수 있다.
위 옆구리 투수들의 이후 FA 계약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름
계약 연도
계약 나이
계약 내용
커리어하이
ERA+ / WAR
박현준
최소 2019[29]
최소 33
?
98 / 2.7
박종훈
2022
31
5년 65억
125 / 3.8
이재학
2023
33
2+1년 9억
148 / 4.4
한현희
2023
30
3+1년 40억
107 / 2.8
임기영
미정


136 / 2.7
신재영
은퇴



이태양
제명



사실상 '사이드/언더의 FA 대박' 비교 대상은 박종훈 1명인데, 박종훈은 5년 연속 규정이닝에 국가대표팀 승선 등 커리어가 만만치 않은데다, 정용진 구단주의 파격적인 투자가 맞물린 결과였다. 박현준을 견주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후반기 혹사로 시즌 스탯이 망가졌다'고 반론하는 의견이 있지만, 당시 박현준은 박종훈 감독이 선발과 불펜에 땡겨쓰기를 시전하기 이전인 전반기에도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었다.

종합하자면, 박현준은 뛰어난 퍼포먼스와 임팩트가 있었지만 그게 띄엄띄엄 나왔을 뿐 지속적으로 나오진 않았던 미완의 투수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팬들의 눈에 띄고 뇌리에 남는 장면이 강렬했던 투수가 LG 트윈스라는 인기팀 토종 에이스라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고, 무엇보다 오름세에서 갑자기 커리어가 뚝 끊어지게 된 결과 팬들의 주관적인 상상이 많이 개입하게 되면서 실제보다 후한 평가로 뻥튀기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박현준이 주작만 아니었으면 FA 대박(대략 5~60억 이상)을 쳤을거라는 주장은 실제 사례는 무시한 채 극도로 희망적인 상상[30]에만 의존하는 허황된 주장이다.

5.1. 반론[편집]


허나 팬들의 그런 희망적인 예측이나 안타까움이 완전한 허상은 아닌 것이, 위 문단에서 완성되지 못한 투수에 불과했다는 그 2011년도는 그의 풀타임 1년차 시즌이었으므로 당시 20대 중반 젊은 투수였던 그의 기량이 더 크게 발전하고 또 경험이 쌓여서 투구에 관록이 쌓일 여지가 충분히 있었으며, 사이드암 선발이라는 특수한 포지션과 미필이라는 특성상 자업자득으로 커리어가 절단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최소 한 번 이상 나갔을 것이고,[31] 이러면 FA까지 커리어를 무난하게 쌓으면 FA 시장에서 80억, 100억은 몰라도 50억은 충분히 받았을거란 예상이 완전한 무리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언더/사이드 선발이 특별히 단명한다는 얘기는 완전한 허구인게, 일단 역사적으로 보면 연속 시즌 두자릿수 승리를 가장 오랫동안 기록한게 바로 언더핸드 투수인 이강철이다. 이강철이 일반적인 투수가 아니라 역대급 레전드인걸 감안해봐도 박현준이 사라진 뒤 나타난 언더/사이드 선발투수들 중 이름을 좀 날린 선수는 (이태양 제외) 이재학, 박종훈, 한현희, 신재영, 우규민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한현희는 불펜 시절의 혹사로 이미 팔이 한 번 망가진 상태에서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도 나름 잘 버텨내고 있으며, 박종훈은 제구 불안으로 롤코 소리를 듣지만 시즌 전체 성적으로 보면 꾸준히 3-4선발급 성적 정도는 내주고 있다. 우규민은 FA 직전 해에 허리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그 이전에 보여준 너무나도 좋은 모습에 아예 FA 대박까지 터뜨렸다. 결국 5명 중에서 2명이 나가리 되고 3명이 그럭저럭 잘나간다(혹은 FA 자격 행사 때까지는 잘 나갔다)고 본다면 사이드암이라고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현희 50억 안되면서 5명 중에 2명이 됐다. 임기영도 안되면 6명 중에 2

박종훈 감독의 돌려막기식 기용 이전에도 이미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니 원래 가진 기량 자체가 그 정도였다는 언급도 있는데, 애초에 그 4점대 평균자책으로 기록한 2점대 WAR이 스탯티즈 기준으로 선발 WAR 11위/투수 14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만 유지해도 언급된 50억 정도는 충분히 따낼 수 있었고, 시즌 초중반만 해도 3점대를 무난히 마크하던 그의 평균자책점이 중반 이후 몇 번씩 털리면서 올라갔음을 감안하면 이것은 풀타임 1년차 선수 특유의 체력 방전 현상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기도 하다.


6. 기타[편집]


  • 위에서 언급했듯이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개장수이나 본인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별명 공모전을 실시했는데 당첨된 별명은 인크레더블. 그런데 공식 석상을 제외하고선 인크레더블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구력 난조로 마구 볼질을 할 땐 인크레더볼이라고 불리며 까이긴 하였다. 그리고 승부조작에 연루됨에 따라 정말로 인크레더블이 되었다. 그리고 개장수라는 별명이 싫다던 그의 소원대로 별명이 바뀌어 승부조작이 드러난 후부터 그의 별명은 조작甲이 되었다.

  • 샤프한 얼굴 때문에 말라보이지만 체구도 알고 보면 상당히 좋은 선수였다. 상당히 살갑고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기아의 안치홍과 비슷하게 많은 선후배들과 친했다. 송신영에게도 접근했는데 송신영이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겨우 악수했다. 마운드에선 싸움닭 기질도 있고 배짱도 두둑해서 미완의 시기 때부터 야빠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특히 천하의 김성근 감독을 당황시킨 일화가 유명. 그리고 후술할 '김성근 감독 로진 항의 사건' 에서도 김성근 감독을 도발하는 등 김성근 감독과의 일화가 많다.[32]

  • 2011 시즌에 기량이 만개하였으나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였다. 특히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슬로우 스타터 기질. 1~3이닝까지 심각한 제구력 난조로 고전하는 경기가 잦았는데, 1회의 제구력 난조는 제구력 난조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 가지는 상당히 많은 피홈런. 매 경기마다 뜬금포를 맞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치도 못한 미미한 타자한테만 맞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은 대부분이 솔로홈런이었다는 것이었다.

  • TV 중계 시 관중들이 찍켠이라는 별명의 포스터를 들고 응원하기도 했다. 이외에 싸포(사이드 포크)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물론 승부조작이 드러난 후에는 조작, 박레기, 개X끼로 불렸다.



  • 2012년 6월 13일 마구마구에서는 장수겸으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슬러거에서는 기존에 뽑아둔 사람이 아니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마구마구 2013에는 최재한으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컴투스 프로야구 2011에서는 아직도 이 선수가 실명으로 존재해 있다. 그런데 업데이트 이후에서도 선수명이 가명처리되지 않았다.

  • 넥슨 프로야구 마스터와 프로야구 for 카카오에서는 마현수로 선수명이 변경되었다.[33]

  • 프로야구 2K에는 '기영철'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 2014년 3월 14일 SBS에서 "승부조작 사건, 그 후…지금은?" 기사에서 지인에게 근황을 물어봤는데, 현역으로 군 복무 중이라고 했다. 2013년 가을 즈음에 그가 훈련소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입대한 것으로 보인다. 야구판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인물이지만, 열심히 자숙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승부조작이 스포츠에서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의 프로의식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었는지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 이사만루 시리즈에서는 가명이 '박흥진'인데, 이 가명은 마구마구 2014에서는 '송진우'의 가명이다. 이사만루 2015에서는 사진이 붙어있어 가명을 몰라도 알아볼 수 있다.

  • 성시경의 시구 지도를 맡은 적이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1] 2005학번[2] 야구선수로 뛰던 시절 몸무게이고, 귀국 후 운동을 안 해서인지, 현재는 10kg이 불어나 90kg이 되었다.[3] 김성현에 이어 두번째.[4] 강속구를 던질 때는 임창용과 마찬가지로 팔 각도가 쓰리쿼터 식으로 살짝 올라갔다.[5] 혹시 모른다. 주작 때문에 사구를 남발한 것인지 그냥 멘탈의 문제인지는....[6] 2008년 방영된 OBS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본인이 직접 증언한 바에 따르면 "강아지 한 마리 가져오면 배트를 준대서 할머니 몰래 강아지를 가져 갔더니 (계형철) 코치님이 강아지는 가져가고 경기 중에 부러진 배트 조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방송에서 본인이 계형철 코치에게 그 일화를 말해주자 계형철은 기억도 못했다. 본인이 "혹시 기억나세요?"라고 묻자 "당연히 잘 생겼으니 기억나지."라며 얼버무렸다.[7] 그 시초는 2001년 신인지명 당시 신생팀 혜택으로 3명을 우선지명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대호를 거르고 김희걸, 김동건을 지명한 것. 다만 당시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8] 2009년 1차지명 김태훈은 팔꿈치 수술 후 2011년 시즌을 앞두고서야 1군 진입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김광현을 대신해 투수조 막내가 되었으며, 2010년 드래프트 1번 문광은의 경우 즉전감이라면서 2군에서도 못나오다가 대형 트레이드 후 1군 투수진이 붕괴될 상황에 이르고 나서야 1군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2011년 드래프트 1번인 서진용은 피로골절 부상 후 신고선수로 전환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보여줬다. 다만 다행히도 2019년 현재 김태훈과 서진용은 SK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9] 2004년 1차지명 박권수, 2006년 2차 1라운드 김성훈, 2008년 1차지명 황건주 등등 별과 같이 많다.[10] 창단 초기에는 용현동 일대에 2군 구장, 클럽하우스가 조성된 SK 드림파크가 존재했으나 2006년 인근 지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었다. 드림파크 철거 후에는 과거 1군 홈 구장이었던 도원야구장에서 2군 경기를 치뤘으나 이마저도 얼마 못 가서 철거당했고, 이후 송도국제도시 인근에 있던 송도 LNG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는데 이마저도 사회인 야구장이라 인근 사회인 야구 경기가 있으면 비켜줘야 했다. 즉 2015년 강화도에 2군 전용구장을 건립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2군 시설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오죽하면 문학구장에 어린이용으로 조성해놓은 새싹야구장이나 인근 고등학교 등에서 재활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게 자주 목격될 정도였다.[11] 박재상, 김강민, 조동화, 박정권, 고효준[12] 당시 LG 구단 홍보팀 직원.[13] 육성과 뉴스 자막이 살짝 다르다.[14] 충주시 홍보맨에서 패러디됐다.##[15] 부모가 보는 앞에서도 승부 조작을 한 형편없는 인간 취급을 한 기사가 나왔으며, LG 포스트 시즌 탈락 후에 승부조작을 했다는 추측성 기사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16] 본인 말로는 매일마다 술에 절어 지냈고, 근처 지인의 얘기에 의하면, 전주 시내에서 호프집이나 당구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17] 실제로 대만에서는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을 당한 궈지엔청 선수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도 했었다.[18] 이태양문우람, 유창식 같은 경우.[19] 그런데 못 맞추고 대신 다음 투수가 맞춰줬다고 한다. 해당 경기는 2011년 10월 2일이다.[20] 실제로 SK 2군 선수 중에서는 당시 이만수를 싫어하는 선수들이 많았다는 게 정설이다. 박현준 역시 SK 2군 시절, 1군 시절 모두 이만수를 접했고. 현재는 갓동님이라고 추앙받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수석코치와 2군 감독 시절부터 1군 감독 시절까지 종교 전도를 비롯한 기행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했다. 1군 감독 부임 후에는 미디어 취재를 의식해서 덜 했다는 설이 있지만, 은퇴 전 1군에서 잠시 머무를 때 안치용의 농담 인터뷰 기사 "저는 불교인데 왜 1군 올리셨는지 모르겠다" 등으로 유추해보면, 아예 안 하지는 않은 듯. 이후 야인으로 돌아가서 그런 이미지가 희석되었을 뿐. 정리하면 나쁜 감정이 있어서라기보다 이런 면 때문에 싸이코라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21] 만약 박경완이 포수를 보면 모든 투수가 0점대겠냐고 반박했다. 그런데 똑같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안지만은 자신의 개인방송에서 리드가 중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를 볼 때, 포수 리드 문제는 투수마다 생각에 차이가 있는 듯 하다.[22] 2010년, 회식 끝나고 아스팔트에서 슬라이딩 했다고..[23] 멕시칸리그가 메이저리그 트리플A와 연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판단된다.[24] 또 다른 별명으로는 찍켠도 있었다.[25] 사이드암으로 150km/h에 육박하는 뱀직구와 포크볼을 위닝샷으로 해서 삼진을 잡던 모습.[26] 특히 잠실 라이벌 두산 베어스에 강했는데, 두목곰을 연속 삼진으로 썰어버리던 장면이 백미였다. 이 경기에서 '9이닝 무실점 노 디시전'이라는 성적을 올리며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또한 로진 사용을 항의한 김성근 감독에게 보란듯이 로진을 더 쎄게 부는 깡다구 성격도 팬들을 매료시켰었다.[27] 스탯티즈 기준[28] 조정 평균자책점은 100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11박현준은 리그 투수 평균에 조금 모자란 평균자책점이었다는 뜻.[29] 2011시즌까지 FA 2시즌을 소화한 상태였다. [30] 동시대의 다른 사이드/언더들은 못했지만 박현준은 매년 부상도 부진도 없이 활약해(국대 군 면제 포함) 33세 FA가 되고, 늦은 나이 FA임에도 손승락 문승원만큼 박현준이 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할거라서(...) 그들만큼 받을 수 있다는 상상.[31] 완전히 망해버리지 않는 이상 아무리 못해도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LG의 미필 쿼터로 선발되었을 것이다.[32] SK시절 카드라에 의하면 선발 투수 안 시켜준다고 태업까지 했다는 말이 있었다. 김성근과는 이래저래 신경전을 벌이던 사이였지만, 그래도 영구제명된 후 첫 인터뷰에서 김성근을 '스승의 날에 떠오르던 두 감독님 중 한 분'이라고 밝혔다.[33] 초기 버전에서는 선수의 사진이 있었으나 지금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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