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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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화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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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9번
문동환
(1998~2003)

김수화
(2004)


김휘곤
(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6번
문규현
(2002)

김수화
(2005~2007)


문규현
(2008~201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9번
이정동
(2009)

김수화
(2010~2010.7.19.)


이왕기
(2011~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2번
오윤
(2008~2009)

김수화
(2010.7.20.~2010)


알드리지
(2011)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6번
오윤
(2010)

김수화
(2011)


임창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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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화
金秀和

출생
1986년 1월 12일 (38세)
전라남도 순천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순천북초 - 순천이수중 - 순천효천고 - (영남사이버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4~2010)
넥센 히어로즈 (2010~2011)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7년 11월 26일 ~ 2009년 10월 22일)

1. 개요
2. 선수 경력
3. 연도별 주요 성적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순천효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최고의 투수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혹사를 심하게 당해 이미 고1 때 회전근개 수술을 받아 팔을 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고3 때 대학 진학 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진통제를 맞아가며 던졌다.[1]

이때 전력이 일천한 팀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까지 혼자서 올려놓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혹사를 겪으며[2] 안 그래도 망가진 어깨가 아작이 나버렸다. 청룡기 4강과 결승에서 연투한 덕에 6회까지 9-2로 앞서고도 그 후 얻어맞기 시작해 결국 10회말에 역전패를 당했다. 순천효천고로써는 김수화 뒤를 막아줄 선수가 없는게 뼈아팠다. 당시 순천효천고에는 훗날 프로에 입단하는 양지훈, 김선규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엄청난 혹사로 혹사 개념이 그나마 덜했던 당시에도 순천효천고 감독인 서창기 감독을 비난하는 의견이 많을 정도였다. 이와 비슷하게 같은 순천효천고 출신인 진명호, 차명진, 유승철 또한 상당한 혹사를 당했었다.[3]

이때 몸 상태를 KIA 타이거즈는 알고 있어서 김수화 대신 김주형을 픽했다는 말도 돌았었다.


2.2.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어찌하던 드래프트 당시 고교 최고 투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고향 팀 KIA 타이거즈는 1차 지명에서 내야수 김주형을 선택했다. 이때 KIA 타이거즈에서는 청룡기 결승에서 광주동성고가 승리하면 김주형을, 순천효천고가 우승하면 김수화를 지명하기로 내정했다고 한다. 결국 2004년 2차 전체 1번 지명자로 롯데 자이언츠에 기대를 받으며 입단했다.[4] 계약금은 역대 롯데 자이언츠 신인 최고 금액인 5억 3천만 원 + 롯데 캐슬.[5] 김수화는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자 "외가가 부산에 있다"라며 좋아했다고 한다.[6]

그러나 결과적으로 돈만 먹고 드러누웠다.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 이후 일본 고교 야구 대표팀에게 완투승을 거두며 그의 진가를 확인 시켰다.

하지만 고교 시절 혹사에 따른 부상으로 재활에 2년을 보낸 뒤 2005년 말이나 돼서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신비수화"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5년 커브는 꽤 좋았으나 전체적으로 고교 때 보다 후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총 4경기 8⅓이닝 1패 평균자책점 6.48로, 드래프트 이전에 연고 구단인 KIA 타이거즈가 김수화를 패스한 이유가 이미 그 상황에서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2006년 초에 LG 트윈스전에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두어 스포츠 신문 1면엔 신인왕 경쟁 나도 있다![7]며 당시 주목받던 류현진, 한기주와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된 기사가 나왔고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설레발을 쳤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2006년 최종 성적은 19경기 56이닝 1승 9패 평균자책점 7.55.


2.2.1. 상무 피닉스 야구단 시절[편집]


2008년부터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무하여 2009년 말에 제대했다. 손민한, 조정훈, 강영식, 이용훈의 부상, 이상화의 입대, 김휘곤, 허준혁의 제자리걸음으로 투수진에 큰 구멍이 난 롯데 자이언츠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 선수를 어떻게든 쓸모 있게 만들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인데, 1월 15일에 기사화된 롯데 자이언츠의 2군 선수 폭행 시비에 관련된 기사들 중 일부에서 밝혀진 정보(2004년에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 고교 시절 초고교급 투수로 활약)에 가장 근접한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내에서는 이미 거의 확정을 내린 상태다. 정말이라면 제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고를 친 셈이다. 기사


2.3.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그리고 결국 2010년 7월 20일 전격적으로 롯데에서 김수화와 김민성을 주고, 넥센에서 황재균을 받아오는 2:1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다. 먹구름은 강진으로 트레이드 이후 언론과 롯데와 히어로즈 측에서 김수화를 초특급 유망주로 띄워주고 있지만 야구를 아는 사람들은 현금 트레이드설을 가리기 위한 변명임을 알고 있다.

트레이드로 받은 선수인지라 2군에서 꾸준히 로테이션에 따라 전경기 선발로 기용하고 있지만, 매우 처참한 성적을 찍었다.(8경기 41.2이닝 37실점 7.95)

일자
상대팀
이닝
실점
피안타
볼넷
삼진
8월 3일
삼성
5이닝
3실점
5피안타
5볼넷
3삼진
8월 17일
한화
6이닝
4실점
6피안타
1볼넷
7삼진
8월 22일
KIA
4이닝
4실점
7피안타
5볼넷
4삼진
8월 29일
LG
4이닝
3실점
5피안타
6볼넷
3삼진
9월 5일
삼성
2이닝
5실점
4피안타
3볼넷
3삼진
9월 16일
롯데
5⅓이닝
7실점
10피안타(1피홈런)
4볼넷
2삼진
9월 24일
상무
8이닝
5실점
10피안타
7볼넷
4삼진
9월 29일
SK
6⅓이닝
6실점
11피안타(1피홈런)
2볼넷
3삼진

9월달에는 확대엔트리로 1.5군급 선수들이 1군에 뽑혀가 있는 상황이란 걸 생각하면 상당히 아쉽다. 방어율 7점대의 3승 11패를 찍는 2군 선수는 프로야구에 차고 넘친다. 이 성적으로 프로 생활은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

그리고 마침내 은퇴했다. 웨이버 공시되었는데, 결국 고교시절의 어깨부상을 떨쳐내지 못한 듯. 은퇴식은 커녕 제대로 된 언론기사도 없이(...) 은퇴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KBO에서 은퇴선수 페이지로 자리를 옮긴 걸 보면 확실하다. 본인이 강진 생활을 못견디고 뛰쳐나가서 임의탈퇴 처리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하여튼 야구는 확실히 그만둔 듯. 은퇴 이후에는 일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04
롯데
1군 기록 없음
2005
4
8⅓
0
1
0
0
6.48
63.5
5.54
9
1
6
5
1.80
-0.04
2006
19
56
1
9
0
0
7.55
46.4
5.47
71
8
32
21
1.82
-0.96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9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10
롯데/넥센
1군 기록 없음
2011
넥센
KBO 통산
(2시즌)
23
64⅓
1
10
0
0
7.41
51.4
5.48
80
9
38
26
1.82
-0.99

완투·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5
0완투
0완봉
2006
1완투
0완봉
KBO 통산
(2시즌)
1완투
0완봉


4. 여담[편집]



  • 싸이질에 매진한다고 해서 '싸이수화' 혹은 빨리 발음하여 '김솨' 라는 별명도 있다. 또는 2군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하여 일명 '상동의 먹구름', 롯데캐슬을 받고 드러누워서 "김캐슬", "캐슬수화" 라고도 불린다.

  • 그의 롯데 자이언츠 시절 전지훈련 당시 사진. 의외로 개그 캐릭터인 듯.
파일:ksh.jpg

  • 동생 김수열도 야구선수로 뛰었다. 형이 다녔던 순천효천고를 나와 동강대로 진학했고 졸업 후 그대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5. 관련 문서[편집]


[1]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가 안 된다면 전성기 시절 오버핸드 투수였던 전병두가 긴 재활 끝에 결국 은퇴하게 만든 부상이 회전근 수술이었다. 그래도 전병두는 프로에 진출한 뒤 SK 와이번스 시절 당한 혹사 때문이었지만 김수화는 중학교 시절 혹사가 어깨를 망쳐놓았다.[2] 1회전 정우람경남상고 전에서 완투승, 준결승 청룡기 바로 이전 대통령배 우승 팀 대구고와 9이닝 7탈삼진 145투구 3실점 완투승, 결승전 광주동성고와 9 1/3이닝 162투구.[3] 결국 차명진유승철은 입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대에 올랐다. 이민우순천효천고 시절에는 포수여서 혹사를 피해 갔으나 경성대학교 야구부 시절 팀의 에이스로 많은 이닝을 책임진 탓에 입단 후 수술대에 올랐다.[4] 여담으로 이때 부산 연고지의 대졸 투수가 1라운드 마지막 순번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되는데, 그게 윤성환이다.[5] 아파트는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6] 김수화와 반대로 경남상고정우람의 외가는 전라도에 있다.[7] 김수화의 프로 첫승이자 마지막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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