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역사 왜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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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7~20회 내용 비판[1]
2.1. 1월 13일, 17회
2.2. 1월 14일, 18회
2.3. 1월 20일, 19회
2.4. 1월 21일, 20회
3. 제작진들에 대한 비판
3.1. 10-11월, 제작진의 방영 전 인터뷰
3.2. 12-1월, 원작자의 방영 초 비판
3.3. 1월 13-14일, 17-18회 방영 이후
3.4. 1월 23일, 제작진과 원작자의 공방
3.5. 1월 24일, 원작자의 추가반박
3.6. 1월 25일, 제작진의 제1시청자청원 답변
3.7. 1월 26일, 시청자들의 트럭 시위
3.8. 1월 27일, 제작진의 제2시청자청원 답변
4. 유사 사례
4.1. 사극에서의 유사 사례
4.2. 원작자-극화 제작진 간 갈등 사례
5. 여담
5.1. 언론의 여성 서사 조명
5.2. 전개 지연 및 생략 우려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역사 왜곡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17~20회 내용 비판[2][편집]



2.1. 1월 13일, 17회[편집]


  • 현종 비하
    • 개혁을 꾸려나가려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지 못했다. 호족 제압의 당위성은 있으나, 대신들과 최소한의 화합 없이 무조건 빨리 일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만 하다가 결국 대부분의 신료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이는 역사에 없는 기록이므로, 지나치게 격하시킨 왜곡으로 볼 수 있다.
    • 탁사정을 용서한 일도 현종을 너무 성인군자처럼 그리려다가 불공을 드린답시고 대도수의 부인과 양규의 부인을 포함한 전쟁 영웅의 유족들을 탁사정과 같은 자리에 있게 하는 무리수를 벌이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 강감찬이 뜻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에 없이 파직시킨다. 1012년 강감찬은 동북면행영병마사로 파견되므로, 최사위/채충순처럼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2.2. 1월 14일, 18회[편집]


  • 현종 비하
    • 아무리 경험 없는 어린 군주라고 해도 너무 암군처럼 그려진다는 비판 여론이 폭발하였다. 목종이 훨씬 더 성군같다거나 극중의 현종을 현쪽이라고 비하하는 별명도 생겼다. 오늘 회차 무리수 전개 모음 #
    • 현종이 강감찬과 뜻이 부딪치자 목을 조르려 한 장면도 현종 비하 논란이 일었다. 과거 이정우 작가의 작품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과 신덕왕후가 서로 목을 조르려 했던 장면이 있었음이 발굴되었다.
    • 현종이 징징거리며 말을 몰고 나갔다가 수레에 치여 낙마하는 장면은 지나친 비하라는 반응이 크게 터졌다. #[3]
    • 황당한 전개로 유명한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판에 비유하여 '개경집 땡중아들'이라는 조롱도 나왔다.#[4]
    • 암군이었던 고려 우왕이 실제로 궁 밖에서 낙마해 수레에 실려 돌아왔던 전적이 있기에(『고려사』 우왕열전 7년 6월), 현종을 암군으로 비하하려는 제작진의 역사왜곡 의도가 있다는 평도 나왔다. #
    • 이 낙마 씬을 계기로 KBS 홈페이지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대량 게시되기 시작했다. #

  • 지나친 호족 위세 과장
    • 고려가 호족의 힘이 강해 왕권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고, 17~21화에 걸쳐 등장하는 호족들이 반발해 생겨난 사모임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을 수 있지만, 기존 퓨전사극들의 비밀조직인 밀본을 연기했던 안석환, 송옥숙 배우가 등장하며 우려를 더 했다. 이에 '또 대하드라마에 퓨전 사극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냐 제대로 역사를 반영해달라'는 비판 여론도 생겼다. #
    • 다만 중앙에서 지방 유력호족들이 누군지 모를리도 없어 비밀결사라 칭하긴 무리가 있다. 또한 <천추태후>처럼 망국의 부활 등 비역사적 요소가 아닌 이권단체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김훈-최질의 난으로 이어질 포석으로 예측되기도 했으며, 실제 21화에서 그렇게 전개되었다.


2.3. 1월 20일, 19회[편집]


  • 원정왕후 비하
    • 실제 역사에선 몽진과정 유산의 아픔을 현종과 공유하는 사이이며, 현종이 소중하게 여긴 사람들을 모신 현화사에 초상화 걸린 유일한 왕비이기도 하다. 원정왕후는 현종의 첫 왕후로 생전부터 사후까지 왕후의 지위를 유지했다. 실제 아들을 낳아 현종의 후대를 잇게 한 원성왕후의 경우엔 현종 생전에는 후궁이었으며 현종 사후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태후가 되었고, 사후에야 원성왕후로 추대되었다. 즉 현종 생전 황가의 여인들 중에선 원정왕후만이 유일하게 왕후로의 지위를 가졌던 것이고, 실제 황가 여인들 중 오직 원정왕후만이 현화사에 초상화가 걸렸다. 현화사는 현종이 직접 부모를 위해 창건한 왕실 사찰로 실제 역사상 현종에게는 원정왕후가 그만큼 각별했던 것이다. 괜히 억지로 두 사람간의 갈등을 조장하니 시청자 입장에선 둘 다 실제 기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역사왜곡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현종 다음 왕의 어머니가 원성왕후일 뿐인데, 원정왕후는 기록이 적다고 하여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겼는지 개혁에 반대하는 왕후로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원성왕후를 올려치기 위해서 원정왕후가 나쁘게 가는 괴상한 구도를 잡은 것이 아니냔 해석이 나왔다. #
    • 언론들이 OSEN 최이정 기자의 기사를 인용해 퍼뜨린 '여성 서사 증가'라는 표현이 화제가 되자, 피난길 함께 겪고 유산도 해서 생전 애틋했던 아내를 질투로 멀어진 악녀로 폄하하는 것이 여성 서사냐는 비판도 나왔다. 원정왕후는 악역으로 묘사되는 19회에서도 밤을 새워가며 의식불명의 현종을 간호하는데 돌아온 건 그녀를 꺼리는 현종의 매정한 말뿐이어서 현종을 싸패처럼 묘사한다 너무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이래서야 누가 악역인지 주객전도가 된 꼴이다.
    • 원정왕후가 직접 나서 국문을 진행하여 원성왕후를 꿇리는 점은 역사에 당연히 없다. 다음화 예고편에서 "내쫓으려다 그 여식까지 들였소"라며 원성왕후를 질투하는 징징거림은, 유산 직후에도 황실의 안위를 걱정하며 현종에게 여인을 더 들여 자손을 보라고 했던 귀족스럽던 모습과 배치되는 옹졸함이라 캐릭터성 붕괴와 전환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청자 반응도 많다.
      •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궁궐내에서 여인들의 다툼이 발생한건 아이러니 하게 고려를 침공하였던 거란이었고 야율융서의 사후에 발생한다. 야율융서의 후궁이었던 소누근이 자신의 아들이 야율융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자 야율융서의 정비이자 황후였던 소보살가를 모함하여 죽였다. 실제로 현종 대에선 어떠한 여인들의 권력 암투도 없었으며 이는 그들의 아들 대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 권위적으로 해석된 개혁 과정
    • 김은부가 비리를 저지른 간신으로 폄하되었다. 그래 놓고 '황제의 장인이 되면 죄가 없어진다'며 논리보다 권위로 짓누르는 식의 전개를 펴며 강감찬과 김은부와 현종을 함께 폄하했다.
    • 원작자는 "고려의 지방제도는 소손녕의 침공을 계기로, 성종과 서희가 서북면과 동북면을 설치하고 중앙군을 정비하여 기본 뼈대를 완성시킵니다. 현종 때의 개혁은 거기에 살을 붙이는 정도"였으며, 드라마의 묘사가 '전혀 아니다' 비판했다.
    • 차라리 궁중암투(내부)보다 해적등장(외부)에 의한 전개가 개연성이 있다. 1011년 8월 동여진 해적의 대대적 침략에 고려 3대 수도인 동경(경주)마저 침략당했다. 이에 현종은 '김은부 개혁안 반대파'인 강감찬을 동북면행영병마사로, '김은부 개혁안에 따라' 강민첨을 안찰사로 동시에 파견한다. 강감찬은 문제를 일으키며 현실을 배우고, 강민첨이 경주 호족들을 달래가며 여러 곳에 성을 쌓는 것을 보며 김은부도 현실을 배운다. 이 과정에 개혁안이 보다 다듬어지고, 1012년 1월 현종이 5도 양계로 발표하게 되는 것이 개연성이 있다.


2.4. 1월 21일, 20회[편집]


  • 현종 비하
    • 황제가 고작 십수명의 호위만을 대동했으며, 호족들의 무장들보다 훨씬 적은 수임에도 그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 몽진 과정 때와 같이, '나를 베시오'라는 무리하게 들이미는 스토리 전개를 사용했으며, 호족은 겁도 없이 황제의 목에 칼까지 들이밀었다. 당연하지만, 한반도의 역사에서는 아무리 신권이 강했던 시기였어도 감히 왕의 목에 칼을 들이밀게 된다면 그 즉시 삼대가 멸족될 역모죄였다.

  • 원성왕후 캐릭터 붕괴
    • 황제도 오가기 어려운 지역들을 여인의 몸으로 홀로 오가며 탐문하고, 호장 박진과도 당당히 마주하는 등 당당했던 캐릭터를 주었던 이전 화들과 달리, 궁녀들에게 김씨 부인으로 '놀림받는' 처지로 몰락하고 수동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당당한 캐릭터로 갈 것이라면 궁녀들을 휘어잡는 모습을 보이거나, 겸손한 캐릭터로 갈 것이라면 궁녀들과 교감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어야 개연성이 있다.

  • 강감찬 캐릭터 붕괴
    • 거란에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는다는 무리수적인 전개가 들어갔을지언정 인물 묘사만큼은 확고했던 강감찬의 캐릭터성마저 무너진다.
    • 작품 내에서 그 전까지의 강감찬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외골수적이며 그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면모를 보일 때도 많은 인물이기는 했으나, 국익이나 대의를 위해서는 이러한 면을 숨기고 연기를 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등 소신과 반대되는 행동도 능청스럽게 잘 해 왔던 인물로 그려졌다. 그런데 20회에서는 강감찬이 호족 비밀 회합에서 황제를 모욕하는 호족들의 언사를 견디지 못하고 분노해서 정론을 말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전개는 강감찬에 대한 그동안의 묘사와 상반된다.
    • 기존의 캐릭터성대로라면, 강감찬이 호족 회합에서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개연성이 충족된다. 대신에 중요한 정보를 파악해서 현종에게 도움을 주거나, 심지어 호족들에게 기막힌 술책이라도 주는 것처럼 유도한 후 현종에게 그 계책을 알려서 호족들을 제압하는 데 공헌을 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갔어야 강감찬에게 어울렸을 것이다. 그러나 호족 회합을 다룬 20화 후반부 전개에서는 강감찬이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면모만 튀어 나왔다.[5][6]
    • 한편 위 같은 내용으로 인해 추가로 발생한 문제도 있다. 당시 강감찬의 나이는 60대인데, 11세기라면 아무리 잘난 집안 사람이라도 진갑을 넘겨서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강감찬은 삼한벽상공신 강궁진의 아들이다. 강궁진이 진주 강씨의 분파인 금천 강씨의 파시조이고 강감찬이 강궁진의 아들임을 본다면 한마디로 강감찬이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 되어야 마땅하다. 설령 그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 있다 해도 아버지의 배경과 한림학사승지라는 기관장급 관직까지 지낸 경력을 생각하면 강감찬의 발언권도 부족할 수가 없고, 따라서 당시 금천강씨 가문의 수장은 강감찬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20화에서는 강감찬이 집안에 반기를 든다며 정체불명의 호족이 목을 베려고 드는 비역사적인 묘사가 나왔다. 이것은 금천 강씨에 대한 몰이해의 소산이며, 작가 이정우가 강감찬이 집안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21회에서 해당 인물이 강감찬을 조카라고 부름으로써 숙부임이 확인되었으나, 상술한 대로 강감찬의 입지도 상당하였을 테니 작중 묘사 같이 말단마냥 쭈그려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 뜬금없는 CG
    • 뜬금없이 강감찬 낙성대 설화를 재현하여 리얼리즘을 강조하던 본작의 분위기 역시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이다. 그간 고려사에 기재된 유성이나 돌풍 등의 기이한 일화들을 이전까지는 최대한 배제한 주제에 갑자기 판타지로 극을 전개하여 매우 비판이 많다.
    • 차라리 본작의 부실한 병력을 보충하는 CG가 나왔으면 모를까 구가의 서처럼 퓨전사극 같은데서나 나올 판타지스러운 CG가 나와서 정통사극이 아니라 판타지 사극이냐는 반응과 태왕사신기, 외계+인 3부, 별에서 온 그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되어버렸다는 반응들이 나와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7] 차라리 곽주 전투의 유성 기록을 재현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시되는 마당이다. # 한마디로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에 역사적 사실이나 고증을 생각하지 않고 작가가 오로지 자신의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제작진들에 대한 비판[편집]



3.1. 10-11월, 제작진의 방영 전 인터뷰[편집]


2023년 10월 31일, 전우성 감독은 "역사 기록에 충실한 이야기 전개가 펼쳐질 것이다. 중요한 역사적 기록은 충실히 담아내되, 극적인 이야기로 각색해 시청자가 즐길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여타의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KBS 대하 사극만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고려 거란 전쟁'에는 고려사에 기록된 당시 사건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잇는 강력하고 매력적인 서사가 구축되어 있다. 재미있는 역사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이정우 작가에 대한 무한신뢰를 드러냈다. #

2023년 11월 7일, 이정우 작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여러 전문가를 만나 자문을 받고, 그 시대를 공부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했다",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최대한 배제했다, 기록이 적을 때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몇 줄 안 되는 그 인물들의 업적이 곧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종이란 위대한 군주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등을 말했다. #, 발굴


3.2. 12-1월, 원작자의 방영 초 비판[편집]


12월 9일, 길승수 원작자는 (8회 통주 전투에서 강조의 최후가 허망하게 묘사된 것에 대해) "대본 작가가 대본을 잘 못 쓰고 있죠. 앞으로는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비판했다. 길승수 원작자는 윤지혜 작가, 김한솔 PD를 칭찬하고 이정우 작가를 몹시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1월 10일, 길승수 원작자는 (16회 양규-김숙흥의 비중 축소에) "흥화진 전투, 삼수채 초반부, 양규 전사씬은 김PD가 썼으며, 이정우 작가는 '태종 이방원의 조사의의 난'이나 쓸 그릇"이라고 비판했다. #, #


3.3. 1월 13-14일, 17-18회 방영 이후[편집]


제2차 여요전쟁 이후 전후복구에 대한 내용을 다룬 17회부터 극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는데 소위 '고려궐안전쟁', '이정우 강점기' 등으로 요약되는 암흑기로 해당 평가는 다음주 20화 방영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출판된 원작 소설의 분량이 끝난데다, 김의철 사장 시기[8]의 영향을 받았던 16화 까지는 윤지혜 작가, 김한솔 PD의 전쟁씬 등이 연출되었으나 이후 현직 박민 사장 체제의 영향을 받은 17화부터는 역사적 사료와 원작자의 지침을 무시하고 이정우 작가, 전우성 PD 측의 전횡으로 그려진 대본으로 인해 이전의 방향성과 미장센을 상실해 드라마의 질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1월 15일, 길승수 원작자는 "원작계약은 2편(고려의 영웅들) 뿐만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3편(구주대첩)까지 했다", "당연히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에는 없다", "대본 작가가 자기 작품을 쓰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정말 한심하다" "작가가 정신들 차리기를 기원한다", "대하사극이 아니라 정말 웹소설 같았다" #

1월 17일, 길승수 원작자는 "이정우 작가가 양규를 자기가 쓴 캐릭터가 아니라고 해서 비중을 확 줄였더군요. 그래서 양규 가족들에게 현종이 감사하는 장면도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

1월 18일, KBS 시청자 청원에 원작 소설의 전개대로 진행하라 청원이 올라와 5일만에 KBS가 답변해야 하는 기준선 1천명을 돌파했다.

1월 20일, 길승수 원작자는 "작가가 늦게 합류한만큼 겸손한 마음으로 대본을 써야 하는데, 자기 작품을 쓰려는 욕구가 강하더군요. 그래서 대본이 역사도 무시하고 원작도 무시하며 점점 산으로 갑니다" #, "대하사극이 아니라면 참 좋았을 것을", "본방 사수는 포기했습니다", "장인으로 삼으면 비리가 덮혀진다는 발상도 놀랍더군요", "대본 작가가 kbs를 말아먹는군요.ㅎㅎ", "고려의 지방제도는 소손녕의 침공을 계기로, 성종과 서희가 서북면과 동북면을 설치하고 중앙군을 정비하여 기본 뼈대를 완성시킵니다. 현종 때의 개혁은 거기에 살을 붙이는 정도였죠. 어느 정도 갈등이 있었을 수 있으나 드라마에서 처럼은 전혀 아니고, 대본 작가가 그런 점들을 전혀 숙지하지 않고 대본을 쓰고 있죠." 등의 비판을 하였다. #

1월 21일, KBS 시청자청원에 현 대본 작가인 이정우를 강판해 기존의 윤지혜 작가를 다시 데려오거나 원작자가 직접 집필하고 더 나아가서 연기대상 시상식 때 수여한 작가상도 수상 취소 혹은 박탈하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번에 더 빨리 3일만에 1천명을 돌파했다.


3.4. 1월 23일, 제작진과 원작자의 공방[편집]


1월 23일 오전 9시경,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전우성 감독(PD)의 '텐아시아'와의 인터뷰가 보도되었다. "2022년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9], "(대신해서) 드라마 자문 경험이 풍부한 조경란 박사를 중심으로 자문팀을 새로이 꾸렸고,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이 작가는 1회부터 스토리 라인 및 씬별 디테일까지 자문팀의 의견을 수렴하여 대본을 집필" 등을 말했다. #

1월 23일 오전 10시경, 길승수 원작자의 한국경제와의 인터뷰가 보도되었다. # 이에 의하면 본래 예정되어 있던 다른 작가[10]가 어째서인지 교체되었고, 이정우 작가에게 기획 단계에서 제3차 여요전쟁을 다룬 새로운 소설의 원고까지 전달한 동시에 강의까지 해 줬지만, 30분만 듣고서 필요 없다고 일축하였다고 한다. 본인도 등장인물이나 사건 등과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자문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을 소개하였으나 정작 이정우 작가가 자문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김한솔 PD에게는 계속해서 전쟁 장면과 관련해서 자문을 하였으나 그 외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고 한다.[11] 그나마 촬영 전에 몇 회분의 대본을 길승수 작가에게 보냈다고는 하지만, 그가 수정해야할 내용 등을 전달했는데도 답을 주지 않았고, 수정 없이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1월 23일 오후 2시경, 길승수 원작자가 오전 전우성 감독의 해명보도를 보고 "웃기지도 않는군요. 전PD가 먼저 내부적인 진행상황을 공개했으니, 저도 이제는 부담 없이 공개해도 되겠군요"라며 내막을 공개했다. 길승수 작가에 의하면, 원래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에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을 불러들이는 전개가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의 방향성이었다고 한다.[12] 작가는 당시 조선구마사의 예를 들어 반대를 했고, 이 시나리오는 무산되었으나 원정왕후에게 이때의 문제가 일부 돌아간 듯하다고 밝혔다. #

1월 23일 오후 3시경, 전우성 연출감독과 이정우 작가가 전우성의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이 다수의 언론들을 통해 보도되었다. 헤럴드경제(오후3시경), 머니투데이(오후4시경), 데일리안(오후4시경), 서울신문(오후5시경)

전우성 입장문 [ 펼치기 · 접기 ]
안녕하세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연출을 맡고 있는 전우성입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관련 논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우선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방영중인 와중에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메인 연출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번 드라마의 기획부터 제작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몇가지 사실관계를 밝힙니다.
드라마 원작 계약은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원작의 설정,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리메이크 형태부터 원작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계약까지 다양합니다. <고려거란전쟁> 원작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당시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입니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길승수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하였고 수 차례 자문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고사하였습니다. 이후 저는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길승수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의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아울러 길승수 작가가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입니다.
참고로 작년 여름,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고려거란전쟁>으로 제목이 바뀌어 재출간되었습니다.
영하2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속에서, 오늘도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최선을 다해 방송제작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며, 앞으로도 시청자들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정우 입장문 [ 펼치기 · 접기 ]
최근 원작 소설가가 블로그를 통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이 기사화되고 이것이 와전되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부분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 입장을 전달합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KBS의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으며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거란전쟁'이었습니다.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태동시키지도 않았고 근간을 이루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의 작가가 된 후, 원작 소설을 검토하였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입니다.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건 원작 소설가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의 작품이었습니다.
원작 소설가가 이렇게 자신의 원작과 드라마의 내용을 비교하며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혹시라도 드라마의 오점이 자신의 원작 소설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면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드라마는 일부 전투 장면 이외에는 원작 소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1회부터 그랬고 마지막 회까지 그럴 것입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합니다.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입니다. 그런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입니다. 저는 제 드라마로 평가받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입니다.
제가 굳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영광도 오욕도 모두 제가 책임질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들이 진실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KBS와는 무관한 저의 견해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 전우성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소설의 줄거리를 따르는 형태로 계약하지 않았으며,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만 소설을 활용했다.
    •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길승수 작가가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했다. 길승수 작가만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 평생 역사를 연구한 새로운 자문자(조경란 석사)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 이정우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KBS 자체 기획이며 소설을 영상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 소설과 드라마의 방향성이 다르며 어느 장면 하나도 소설과 일치하는 것이 없다.
    • 본 드라마는 소설과 별개의 작품이며 일부 전투 장면 이외에는 소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이며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도를 넘는 일이다.
  • 이에 제작진이 길승수 원작자, 임용한 박사도 거절하고 자문위원으로 내세운 조경란 석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14]
    • 1998년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신라 중고기 가르침과 왕권"을 주제로 "석사" 졸업했다. 석사논문
    • 2006년, <주몽>을 자문했다.
    • 2008년 12월, 2010년 4월 신라 선덕왕냉수리비문 관련 기고문을 낸 것이 평생 학술활동의 전부다. #
    • 2011년, <계백>을 자문했다.
    • 2012년, <대왕의 꿈>을 자문했다. KBS의 흑역사 드라마다.
    • 2013년, <불온>을 자문했다. 조선 성종 시대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 2013년, <제왕의 딸 수백향>을 자문했다. 역사왜곡 논란이 일자 갈아엎어 가상 역사 드라마나 다름없게 됐다.
    • 2014년, <정도전>을 자문했다.
    • 2015년, <징비록>을 자문했다.
    • 2021년, <옷소매 붉은 끝동>을 자문했다.
    • 2021년, <태종 이방원>을 자문했다. 고려거란전쟁의 이정우 작가가 맡았으며, 상술한 논란이 있다.
    • 2022년, <붉은 단심>을 자문했다.[13]
    • 2024년 시점,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수부장으로 재직중이다.
  • 이 입장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여론은 원작자에게 기운다.
    • 전우성 PD의 주장대로 '꼼꼼한 고증'을 거쳤다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무리수와 인물 비하, 역사 왜곡이 만천하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 이정우의 입장문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입장문에 사과나 반성, 개선의 다짐 등이 전혀 없을뿐더러, 본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원작과의 선 긋기에만 집중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자신의 입장문 안에서도 소설과 일치하는 장면이 없다는 말과 전투 장면은 소설에 기반했다는 말이 모순되며, 그나마 소설을 참고했다는 그 전투 장면도 삼수채 전투의 경우에는 원작과 완전히 다른 무리수 전개로 이미 혹평을 받은 바가 있다. 이처럼 이정우 본인의 자질 미달과 역량 부족으로 인해 원작만 따라가도 충분히 수작이 될 수 있던 드라마가 망해가는 상황인데도 끝까지 자신만의 전개를 고집하는 모습은 여론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1월 23일 오후 5시경, 길승수 원작자는 블로그를 통해 해명 기사 내용을 반박했다. # 길승수에 따르면, 중간에 교체되어 들어온 작가 이정우가 자문 담당인 길승수에게 보조 작가가 담당할 업무인 페이퍼 작성을 시켰다.[15] 이에 길승수가 자신이 맡을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페이퍼 작성을 거절하자 감독 전우성이 자택 근처까지 찾아와 이정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올 필요가 없다며 먼저 길승수를 자문 담당에서 빼버렸다. 결국 길승수는 임용한 박사를 후임 자문으로 추천했으나, 전우성은 "알아서 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정우의 주장을 반박한 다음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며 작가와 감독의 추태를 지적했다.

1월 23일 저녁 이후, 제작진과 원작자의 주장을 요약하려는 기사들이 계속 쏟아진다. 서울경제(오후6시경), 이데일리(오후7시경) 스타뉴스(오후7시경), 중앙일보(오후8시경), 스포티비뉴스(오후8시경)


3.5. 1월 24일, 원작자의 추가반박[편집]


1월 24일, 길승수 원작자가 '스포티비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더 상세하게 제작과정을 밝혔다. #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 쯤에 처음 제작진과 만났고,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1년 후인 2022년 6월에 다시 연락이 와서 KBS를 제대로 방문했는데, 원래 전우성 PD는 자신을 부르고 싶지 않았으나 다들 여요전쟁에 대한 공부가 덜 된 상황이라서 드라마 제작 자체가 진행이 잘 안 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불렀다고 한다. 본래 있던 다른 작가도 본인의 강의를 받아 도움을 얻었고 갑옷과 관련한 미술 자문도 같이 하였는데, 갑자기 작가가 이정우로 교체되었고 '고려거란전쟁' 역사책의 원고를 보내줬는데도 이와 관하여 거짓말을 하였다고 밝혔다.[16]

덧붙여 원래는 이렇게까지 이슈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드라마가 이상해지자 시청자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몰려오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중하려고 했으나 KBS 측에서 먼저 댓글을 달지 말라면서 자신의 의사 표명을 막기 위해 전화한 것을 언급하며 답답하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저를 욕할 게 아니라 그냥 시청자들 앞에 사과하고 남은 드라마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면 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역사대로만 만들면 간단한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대하사극을 역사로 인식하면서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배우려는 시청자들의 입장을 준수하여 "제작진이 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아니라 대하사극의 좋은 대본을 쓴다는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작가진이 최소 2022년 말에 긴급하게 교체가 된 관계로 완전한 사전제작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참고할 자료가 존재하는 2차 전쟁 시기까지는 그러한 부족함이 적게 드러날 수 있었지만, 극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인 2차 전쟁 직후부터는 확연하게 이러한 부분이 드러나게 되었다. 애초에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서 드라마 방영분과 촬영 시기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고, 22회 방송분에서 기존에 문제로 여겨졌던 여러 부분이 일부 수정된 모양새를 보이는 점에서 보면 지금 드라마는 드라마 프롤로그에서 제시했던 귀주대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경우 사실상 촬영을 하면 거의 그대로 방영하는 체제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제작진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설날 기간인 2024년 2월 10~11일에 결방을 결정했다. 현실적으로 약 1주의 시간을 번 셈이긴 하나 그동안 얼마나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드라마의 방향성과 핍진성이 결여된 것이 시청자의 불만과 이어졌다는 점을 제작진이 생각해 봐야 하는데, 소통의 기회는 만무하고 오히려 위에 나온 해명들을 일관하면서 화를 더 키우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김한솔 PD를 비롯한 다른 제작진들과 최수종, 김동준, 김혁, 이시아 등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이 짊어지게 된 상황이 되었다. 야율융서 역의 김혁이 한 언론사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면서 "지금도 뼈를 스치는 추위 속에서도 저희 '고려 거란 전쟁'은 촬영을 감행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 저희 배우들도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연기하기도 맘이 무겁다."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관련 기사[17]

3.6. 1월 25일, 제작진의 제1시청자청원 답변[편집]


1월 25일, KBS 시청자센터 제작진 청원 답변 [ 펼치기 · 접기 ]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우선 최근 불거진 여러 혼란에 대해 제작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방송 내용에 관해 시청자분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따끔한 질타의 목소리 역시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원하신 내용과 관련한 제작진의 답변입니다.

KBS는 2021년경부터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를 준비하였고 그의 일환으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기획하였습니다.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고려시대의 경우 역사의 행간을 메우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드라마만의 재미와 감동을 전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장'과 '왜곡'을 피하기 위해 제작진은 역사서에 기초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면밀하게 대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의 판권을 구매하게 되었고 전투 장면 등의 고증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판권 구매한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참고 자료 중 하나였고 '고려거란전쟁'의 드라마 내용은 1회부터 사료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새롭게 창조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최근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점 역시 제작진은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남은 회차를 통해 고난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개혁하여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아에 평화의 시대를 구현한 성군 현종의 모습을 더욱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시위 전날인 1월 25일, KBS는 제1시청자청원에 답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KBS측의 답변은 이전에 이정우 작가가 낸 답변과 큰 차이가 없었고, 성의 없는 사과는 물론이고 사실상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이기에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다. #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원작자 길승수 작가에 대한 사과 역시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


3.7. 1월 26일, 시청자들의 트럭 시위[편집]


결국 1월 26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벌어졌다. #1 #2 해당 시위는 오후 5시 쯤에 종료되었다. #


3.8. 1월 27일, 제작진의 제2시청자청원 답변[편집]


1월 27일, KBS 시청자센터 제작진 청원 답변 [ 펼치기 · 접기 ]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최근 불거진 여러 혼란에 대해 제작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완성도를 위한 시청자분들의 고견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원해주신 내용과 관련한 제작진의 답변입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모든 대본은 이정우 작가가 직접 집필한 것입니다. 1회부터 방송을 마친 20회까지 이정우 작가 단독으로 역사적 자료를 통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완성하였습니다. 이 점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향후에도 대본 집필은 이와 같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설연휴를 맞아 일요일 스페셜 방송을 준비중이며, 본방송은 1주간 결방할 예정입니다. 그 기간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제작진은 최근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와 걱정을 잘 알고 있으며,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점 역시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남은 회차를 통해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아에 평화의 시대를 구현한 현종과 강감찬 장군의 호국정신을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시위 다음날인 1월 27일, 제작진은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설 연휴를 맞아 1주 휴방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 그럼에도 여론의 악화만 계속되었는데, 제작진의 경우 〈고려 거란 전쟁〉의 악평의 원인을 '이정우 작가의 독단적 행위'라며 꼬리 자르기 식으로 발뺌을 하는 태도를 보인데다 문제가 '역사 왜곡 및 원작의 도용과 훼손'이란 점[18]임에도 이를 '작품의 퀄리티와 완성도 및 예술성'이라는 관계가 없는 논지로 논점을 흐리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1주일 동안의 결방으로 퀄리티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운다 해도 만에 하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거나 악화될 시 더더욱 대하드라마를 넘어 KBS의 드라마 제작진, 더 나아가 KBS 전체에 대한 불신만 키울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거나, 그냥 조치하는 시늉만 하는 시간 때우기에 가까운 조치를 했다 봐도 무방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19]

미디어오늘 기사를 통하여 두 차례의 시청자청원에 대한 답변에 대해 'KBS의 해명 가운데 사극이 모두 역사적 내용만 다룰 순 없다는 대목은 억울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라고 하면서 하지만 '정통사극' '대하사극' 마케팅으로 역사성을 강조한 착시를 일으킨 것은 KBS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마디로 KBS의 자업자득이란 뜻이다.


4. 유사 사례[편집]



4.1. 사극에서의 유사 사례[편집]


사극에서 역사의 공백을 묘사하는 것은 제작진의 재량이지만, 개연성, 핍진성, 실력의 부재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고려시대 초기의 국내 기록이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제외하면 기록이 매우 부족한 편이라서 고증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사 등이 부족한 것이지 정치사는 편년체로 압축되어 읽기도 쉬워 충분히 다룰 수 있음에도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다루거나, 아예 왜곡 폄하하여 다룬다는 논란이 발생했다. 사극 중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 킹덤 오브 헤븐 (2005) - 의상 고증은 뛰어나지만 역사적 서사와 당대 사고방식 고증으론 300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스토리 텔링 자체에 설득력이 있었기에 역사와는 다르더라도 큰 비판은 받지 않고 오히려 명작이라고 불린다.
  • 천추태후 (2009) - 근초고왕 (2010 ~ 2011) - 광개토태왕 (2011 ~ 2012) - 대왕의 꿈 (2012 ~ 2013) - 소위 KBS 대하드라마 흑역사 계보라고 불린다.
  • 징비록 (2015) (정형수, 정지연) - 드라마 초반부의 전투 연출(흥화진 전투/부산진 전투)로 처음에는 호평을 받았으나 16회~20회의 극중 퀄리티 급락 및 고려거란전쟁만큼은 아니지만 인물 묘사의 입체성 부족으로 인해 비판을 받은 것이 비슷하다.
  • 조선구마사 (2021) (박계옥) - 역사왜곡, 위인 폄하, 핍진성 부족 등의 비판으로 2회만에 조기 종영되었다.
  • 태종 이방원 (2021~2022) (이정우) - 말 학대 논란이 있었기에, 이를 의식한듯 '동물 보호에 신경 쓴다'는 문구를 고려거란전쟁 매 화 앞에 삽입해왔는데, 이를 18화 현종 낙마 씬으로 재개했다. 또한 논란 이후 시청률이 쉽게 회복되지 못 하고 막을 내린 바 있다.


4.2. 원작자-극화 제작진 간 갈등 사례[편집]


  • 불멸의 이순신 (2004 ~ 2005) - 원작 소설 계약 중 김훈의 《칼의 노래》가 있지만, 해당 소설의 전개를 제대로 차용한 것이 거의 없는데다가 원균 맹장설을 채택하였고, 김훈 본인도 드라마와 선을 그었다.
  • 근초고왕 (2010 ~ 2011) - 원작 소설은 이문열의 《대륙의 한》이지만, 드라마가 원작과는 딴판의 전개에 사실상 허접한 환빠물이 되면서 이문열 본인도 소설을 재출간할 때 드라마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 치즈인더트랩 (2016) - 제작진이 일방적으로 원작자와의 논의 사항을 무시하여 원작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14회 방영 후 이런 제작진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는데, 본작도 원작자가 방영 도중에 내부 사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재벌집 막내아들 (2022) - 재벌집 막내아들(드라마)/비판 문서 참고.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있다.
  • 섹시 타나카 씨 (2024) - 일본에서 발생한 매우 유사한 사례이다. 원작자에 대한 방송국 및 각본가의 조롱, 원작 충실 계약이행 위반 등으로 원작자인 아시하라 히나코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현지에서는 이로 인해 조선구마사처럼 드라마의 흔적과 기록들이 모조리 말소되었고, 방송국과 각본가에 대해 살인자라는 거센 비난이 나왔다. 사건 이후로 원작 기반 드라마들의 제작사 및 방송국이 원작 및 원작자를 무시하는 행태들에 대해 폭로가 이어지며 대원작 업계와 방송 업계의 갈등으로도 번지는 등, 사태가 커졌다. 본 논란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데다 피해를 입은 원작자가 공방 중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며 일이 커져 한국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5. 여담[편집]



5.1. 언론의 여성 서사 조명[편집]


1월 14일, OSEN 최이정 기자가 "여성 서사 재미있네요"라는 반응이 있다며 드라마를 소개했다. #

1월 16일, OSEN 최이정 기자가 "고려거란전쟁 2막 본격 시작, 여성 서사" 제목의 기사를 냈다. OSEN(오전 8:59) 이를 다수 언론이 인용 보도하며 해당 표현이 퍼졌다. 조선비즈(오전9시경), 조선일보(오전9시경), 싱글리스트(오전9시경), 엑스포츠(오전9시경), 전자신문(오전12시경), 스포츠경향(오후5시경), CBC뉴스(오후9시경)

1월 19일, 조이뉴스 박정민 기자는 '제작진이 여성 서사를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여성 서사 운운은 따라서 원작자/제작진과는 무관한 특정 기자들의 주장이다. 정작 기자들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는 17~20화의 내용 중 여성 서사라고 나온 내용들은 하나같이 여성 서사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인데, 우선 원정왕후는 유산 직후에도 황제는 여인을 더 두어 자손을 늘려야 한다던 귀족 마인드에서 질투심 많은 소인배가 되었다.[20] 원성왕후는 나홀로 탐정놀이를 하다 호족에게 걸리고 궁녀들에게 김씨부인이라 놀림받는 처지로 몰락했다. 호족들의 수장은 이름조차 없고 개연성도 없는 가상인물을 송옥숙 배우가 맡아 황제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무지함을 보였다. 비록 비중은 적어도 일단 멀쩡하고 소신있던 여성 인물들을 하나같이 판에 박힌 구시대적인 여성상에 바보천치들로 만들어놓은 셈으로, 사실상 캐릭터성을 퇴보시킨 셈이다. 게다가 이 내용들이 남성 작가(이정우)가 후배 여성 작가(윤지혜)의 자리를 꿰차고 쓴 내용이다.


5.2. 전개 지연 및 생략 우려[편집]


  • 전개 지연 우려
    • 21회부터 고려-거란의 하공진-김은부도 얽힌 외교전, 김훈·최질의 난의 빌드업 등이 차차 등장하긴 했으나, 22회 시점까지도 시대적 상황은 여전히 제2차 여요전쟁이 끝난 직후인 1011년에 머물러 있다. 다행히 23회에서 시점이 1012년으로 넘어갔지만, 1018년제3차 여요전쟁 자체를 묘사할 4개의 회차를 제외한 6년간의 내용을 6회(23~28회)만에 담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24회 중반부를 기점으로 1014년으로 스킵하고, 26회까지 김훈·최질의 난으로 진행하는 듯하다.
    • 이에 제2차 여요전쟁(6~16회) 및 속도감 있었던 빌드업(1~5회)에 반해, 무리한 궁중 암투 및 호족 탄압 전개에 무려 5회(17~21회)씩이나 낭비할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비판이 생긴다.
    • 단순하게 전개를 지연시킨 것이 아니라, 기존 캐릭터들과 개연성, 핍진성을 붕괴시키는 묘사들이 나와 논란이 더했다.
    • 이럴 바엔 2차 여요전쟁 당시 무리하게 각색해 삽입한 강감찬의 활약과 17~21회의 강감찬과 김은부 묘사에 쓴 시간 등을 대폭 줄이고 현종의 몽진, 양규와 김숙흥의 활약을 더 넣었어야 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그렇게 넣어도 위에 언급했듯이 2차 여요전쟁 자체에 절반 가까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전간기 시기를 제대로 다루면서 제3차 여요전쟁으로 가야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 한편 이전 에피소드의 문제를 어느 정도 수습했다는 평을 받은 22회에서도 여전히 원정왕후의 캐릭터 붕괴 문제가 남아있다. 현종과 원정왕후가 그토록 대립하였고, 심지어 원정왕후가 김은부를 거란에 사신으로 보내자고 주장했는데, 막상 김은부의 큰 딸인 김씨 부인 앞에서는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인다. 더욱이 현종이 이 분위기를 틈타 갑작스럽게 원정왕후에게 용서를 구하며 화해하는 모습으로 두 황후 간의 다툼과 현종 vs 원정왕후의 대결 구도를 끝내는 듯 했지만, 22회 이후로도 비중이 축소되었어도 현종과 김씨 부인을 바라보는 원정왕후의 보이지 않는 질투가 남아있다. 이 당시 기록들이 대부분 남아있지 않아서 무리하게 각색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원정왕후와 현종, 원성왕후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그리고, 원정왕후의 질투심이나 분노를 줄였더라면 핍진성도 확보하고 역사 왜곡 논란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전개 생략/축소 우려
    • 여진족 관련 내용이 대거 생략될 것이 우려된다. 동해안 여진족 해적의 대규모 침략, 이를 사전에 대비했던 강조의 혜안, 거란을 막는 서북면만큼 동북면이 중요시되었던 이유, 강감찬과 강민첨이 군사적으로 합을 맞추는 경험, 거북선보다 앞서 있었던 고려의 철갑선인 과선을 이용한 해상 전투, 일련의 사태로 강감찬을 탄핵했으나 현종에 의해 오히려 면직되는 이인택, 해적 노략질이 힘들어지자 생계를 위해 거란의 앞잡이가 되어 전쟁을 재개하는 동여진, 거란이 서쪽을 칠 때 여진도 동쪽으로 동시에 치는 전략, 고려에 관직도 해서 지리와 물자 위치들을 잘 파악해 거란에 귀하한 여진인, 이를 바탕으로 소배압이 남하하게 된 오판... 등의 내용이 대거 축약될 것이 예상되었다.
    • 거란의 해안길 침입에 앞서 현종의 용주성 축성, 거란의 내륙길 우회에 앞서 현종의 안의진-운림진 축성 등, 치열한 고려-거란의 수싸움은 담기지 않을 것이 예상되었다.
    • 현종이 윤징고와 곽원을 보내 송나라와 비밀리에 외교하는 내용이 축소될 것이 예상되었다. 다만 22회에 송나라/당항 사신이 출연하였기에 국제 외교적 내용이 담길 수 있을 것이 기대되었다.
    • 1014년 11월 김훈·최질의 난과 그 와중에 벌어진 장연우와 황보유의의 폭행 및 유배, 1015년 1월 압록강 전투/흥화진 전투/통주 전투, 3월 현종의 서경 이동/김훈·최질의 난 진압/용주 전투를 묶어서 축소하여 2회차 내에 묘사할 것이 우려된다. 또한 김훈·최질의 난에 가상 인물이자 일개 충주라는 지방의 호장이면서 이 당시에는 종7품의 장작주부인 박진이 개입할 것으로 보여 캐릭터 붕괴 및 전개 지연의 논란이 재발할 여지가 있다.
    • 1015년 9월 흥화진 전투/영주 전투, 1015년 12월 거란의 압록강 도하, 1016년 1월 곽주 전투도 묶어서 2회차 내에 묘사할 것이 우려된다.
    • 장연우(1015년 11월 사망), 김은부(1017년 6월 사망), 원정왕후(1018년 4월 사망)의 퇴장을 다루기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 2024년 2월 4일에 방영되었던 24회에서 이전에 비판거리가 되었던 황후들의 궐 안 기싸움 장면은 풀 테이크로 나왔지만, 정작 중요도로는 비교 할 수가 없는 흥화진의 정신용 장군이 국지도발을 감행하는 거란군을 격퇴했던 1014년 '2차 흥화진 전투'는 나레이션을 곁들인 지나가는 장면으로 끝내버리면서 이에 대해 또 다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 제작진/원작자의 언급
    • 1월 29일, 22회 방영 직후 기준 한 제작진에 의하면 대본 자체는 27회까지 다 나왔고 25~27회는 촬영 중이라고 하는데, 그 회차들을 어떻게 채울지가 논란을 잠재우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 2월 1일, 원작자는 '16회에서 바로 21회로 건너뛰어도 드라마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의견에 동조하며, 21~22회는 어느 정도 실제 역사를 따라가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

[1] 관련 문서인 평가 문서의 해당 문단에서 나와 있듯이 17~20회 중심의 논란이다.[2] 관련 문서인 평가 문서의 해당 문단에서 나와 있듯이 17~20회 중심의 논란이다.[3] 작가의 전작인 태종 이방원이 말 학대 사건으로 폐지 논란까지 벌어졌던 상황인데 또 정신을 못 차리고 원 역사에도 없는 말 학대+배우 학대를 다시 진행한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여론들이 많다.[4] 고려 최고의 성군이자 한반도에서도 손꼽히는 명군 현종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온 충신을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비난한다. 실제로 작중 김은부의 행동은 참작할 여지가 있다지만 어쨌든 탄핵당해도 할 말 없는 것도 사실인데 앞뒤 분간도 안 하고 달려가서 일국의 중신을 지낸 노신의 목을 조르려고 한다. 뒤에 일어나는 황당한 교통사고는 둘째치고 한국 사극에서 묘사된 웬만한 폭군들도 멱살을 잡거나 칼을 겨누거나 했어도 저렇게 목을 조르려는 시늉은 자주 보기 힘든 장면인데, 이런 말도 안되는 억지 픽션을 집어넣는 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라는 비판 여론이 매우 강하다. 이건 그냥 픽션으로 봐줄 게 아니라 역사왜곡 수준이라 재밌게 보던 사극이라 더 열 받는다는 여론이 많다.[5] 물론 20회 내용을 보고 예측해 보면 강감찬이 이미 강씨 가문에게 언질을 듣고나서 현종에게 출두해 달라고 미리 요청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 현종이 들이닥칠지, 언제 자신이 죽음을 당할지까지는 예언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데 굳이 목숨을 걸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에 20회가 의도한 것이 현종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강감찬은 미리 호족들에게 죽을 생각이었고, 그 때 들이닥친 현종에게 그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호족 타파에 명분을 실어준다는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그 때 분노한 현종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다가는 안그래도 적대적인 호족들을 상대로 더더욱 거센 반박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강감찬이 주장하는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에도 맞지 않는 방향성이었다.[6] 사실 현종을 모욕하고 있을 때 호족 대모(배우 송옥숙)가 태조 왕건을 언급하였는데, 이 때 대놓고 전생에 태조 대왕이었던 강감찬을 클로즈업 하였다. 덩달아 강감찬도 태조 대왕 이야기를 듣자마자 놀란 기색의 표정이었던 것을 봐서 자기 과거 이야기에 급발진 해버린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기도 했다.[7] 유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어머니의 태몽이 그랬다는 식으로만 처리했어도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은 줄었을 것이다.[8] 초기 회차는 김의철 시기 제작된 것이며 16회까지는 김의철 시기의 작가진으로 구성되어 있다.[9] 고칠 거면 역사에 기반해서 고쳐야 하는데 그것도 신경 안 쓰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참고로 고거전은 대하사극이라 역사 고증이 필수나 다름없다.[10] 본작에 관한 최초 보도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윤지혜' 작가를 말하는 것이다.[11] 대신 "원작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다르게 가고 있다"고 밝혔는데, 17회부터의 전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12] 당연하지만, 강조의 정변이 명분이 되어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게 된 것이 실제 정사이고, 소설도 그렇게 흘러간다.[13] 이 이력대로라만 근대 이전 한국사 모든 시대, 모든 분야에 걸쳐 자문했다는 말인데, 박사 학위를 받은 사학자도 전공인 시대가 있거나 전쟁사나 경제사, 생활사 등으로 전문적으로 연구한 영익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고 한국사 전시대, 전영역에 걸쳐 통달했다고 할 사람은 나오기 쉽지 않은데 석사가 그걸 달성하기란 더욱 여려운 일이다.[14] 자문경력 출처들 #1 #2 #3[15] 이 것은 원작자의 경력을 무시하는 행위로 사실 이전부터 질이 나쁜 드라마 각본가들은 대작가의 명작품을 제외하고 원작가의 원작품을 무시하는 경향이 암암리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16] 정확히 말하자면 길승수 작가는 "자문 계약을 했을 당시에는 '고려거란전쟁' 역사책을 출간하기 전이었다. 한참 작업 중이었는데도 텍스트로 원본을 제공하고 강의까지 했다. 이정우 작가에게도 당연히 제공을 했다. 이후 이정우 작가가 그 책을 보고 1~2달 만에 시놉시스를 썼고, 카카오톡으로도 '작가님 덕분에 시놉시스 완성 잘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후에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고려거란전쟁'의 스토리텔링 북이라고 띠지가 나갔는데 KBS에서 그걸 떼라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황당해서 몬스터유니온에 얘기를 했는데, "이정우 작가한테 물어봤더니 원고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하더라. 증거가 엄청 많은데도 이건 남의 연구물을 빼앗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답답해했다.[17] 다만 해당 이슈 이후 22회까지의 감상으로 미뤄볼 때 김혁은 본인 파트에 대본이나 촬영 당시 아무 문제가 없기에 저런 입장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웃픈 반응도 있다. #[18] 사실 드라마 회차 시작 전 연령고지 다음에 '본 드라마는 역사적 인물 및 사건들에 상상력을 더해 재창조된 이야기이며, 실제 역사 기록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미리 알려주지만, 그래도 언론 플레이로 이정우 작가 본인이 "인물을 재해석하기보다는 인물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면서 역사를 철저히 재현하겠다고 한 일과 더불어 '정통 대하사극'이나 '공영방송 KBS'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이번 논란으로 실망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19] 드라마 제작 환경 특성상 이미 대여된 세트장과 소품 대여 일정을 변경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전개에 따라 배우들의 연기와 역할, 앞서 전개된 내용과 성격이 변경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드라마의 몰입성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원작 및 역사와 동떨어진 전개가 진행된 이상 고작 1주일 안에 그것을 모두 덮어버릴 연출이 나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봉책에 불과한 셈.[20] 이는 결국 원정황후가 원성황후를 질투하는 여적여 스토리이므로, 여초 커뮤니티나 페미니스트들이 오히려 더 싫어할 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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