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화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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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 흥화진 전투(1014년)
4. 흥화진 전투(1015년)
5. 흥화진 전투(1017년)



1. 개요[편집]


興化鎭戰鬪

여요전쟁 시기, 고려거란 요나라강동 6주의 하나이자 요충지인 흥화진(興化鎭)[1]에서 여러차례 싸운 전투. 총 5차례 벌어졌으며 1010년, 특히 1018년의 흥화진 전투가 가장 유명하다.




흥화진 성은 현재 평안북도 의주군 위원면에 위치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의 경우 삼수채가 휘감고 있어 규모는 작으나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성이다.


2. 흥화진 전투(1010년)(제2차 여요전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흥화진 전투(101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고려군거란군이 흥화진에서 처음 치러진 전투이면서 제2차 여요전쟁 중 첫번째로 일어난 전투이다.


3. 흥화진 전투(1014년)[편집]


1014년 10월, 요 성종 야율융서의 장인 상온 소적렬이 이끄는 거란군이 흥화진을 공격했다. 이에 장군 정신용과 별장 주연이 반격을 가해 700여 급의 머리를 베었고, 수많은 거란군 병사를 익사시켰다. 현종은 공을 세운 정신용을 상서우복야 상주국으로 제수했다.

이 부분의 기록이 고려사에는 통주로 언급되지만 고려사절요에는 통주의 흥화진으로 언급된다.


4. 흥화진 전투(1015년)[편집]


1015년 음력 1월 22일(양력 2월 13일) 거란군이 다시 흥화진을 포위하자, 장군 고적여와 조익 등이 반격하여 물리쳤다.


5. 흥화진 전투(1017년)[편집]


1017년 5월, 거란의 소합탁이 흥화진을 포위하고 9일 동안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장군 견일, 홍광, 고의가 출격하여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서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수가 매우 많았다.


6. 흥화진 전투(1018년)(제3차 여요전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교천 전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고려군과 거란군이 제3차 여요전쟁 중 흥화진에서 첫번째로 치른 전투. 고려의 강감찬수공으로 거란의 소배압을 물리친 전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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