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리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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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강리호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1. 2009 시즌
3.2. 2010 시즌
3.3. 2011 시즌
3.4. 2012 시즌
3.7. 2015 시즌
3.8. 2016 시즌
5.1. 2021 시즌
5.2. 2022 시즌
5.2.1. FA
6. FA 신분, 독립야구단 활동
6.1. 2023 시즌
7. 은퇴
8.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편집]


강리호의 선수 경력을 기록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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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고 시절 강리호

2000년대에 접어들어 고교야구 저변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2008년 당시 고교야구판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었다. 당시 히어로즈의 연고인 서울권 1차 지명자 후보중에 톱3로 꼽혔던건 충암고 이학주, 덕수고 성영훈, 경기고 오지환이었다. 이중 이학주는 미국으로 떠났고 성영훈은 두산, 오지환은 LG에 각각 1차 지명됨에 따라 히어로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당해년도 양대 좌완투수로 꼽히던 장충고 강리호와 휘문고 허준혁에게 쏠리게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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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는 체격과 유연성이 좋고[2] 비교적 즉시 전력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강리호를 지명했고, 허준혁은 2차지명 4라운드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된다.


3.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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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09 시즌[편집]


강진에서 정명원 코치의 혹독한 조련으로 투구폼을 바로잡고 엄청난 허벅지와 함께 구속상승으로 와일드씽으로 거듭났다. 2009년 데뷔 시즌에 선발계투를 오가며 45경기에 출장해 80이닝 3승 2패 2홀드 1세이브 방어율 5.51을 기록했다.

이 기대감은 2009년 말 히어로즈가 폭풍 세일로 이택근, 장원삼, 이현승 등 주축 선수들을 모두 내보낼 때도 황재균, 강정호와 함께 트레이드 절대 불가능한 3명으로 묶어두었던 것으로 잘 드러났다.


3.2. 2010 시즌[편집]


하지만 2010년에는 4월 25일까지 4경기 등판해 1승 1패 방어율 6.00 11삼진 WHIP 1.73을 기록하고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8월 2군에서 재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팔꿈치 통증이 길어지면서 재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참고 자료 결국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3.3. 2011 시즌[편집]


2011년 9월 7일 1군에 복귀했고, 6경기에 출전하여 21이닝동안 3승 1패 11탈삼진 평균자책 2.14를 기록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3.4. 2012 시즌[편집]


2012년 팀의 3번째 경기인 4월 11일 SK전에 시즌 첫 등판하였다. 선발 투수로 나와서 6⅔이닝 투구수 102개, 4피안타 1피홈런 2볼넷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하고 팀이 5:1로 지는 바람에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무려 13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포텐셜은 류현진 이상"이라는 김시진 감독의 평이 립서비스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특히 4회초에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3번째 9구 3삼진을 기록했다.

또한 이날 4회초에 안치용, 박정권, 조인성을 상대로 한 이닝 9구 3삼진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하였다.[3] 덤으로 이날 내준 4실점이 모두 박진만의 타점[4]이었다. 자신도 자각하고 있는지 2013시즌 전 인터뷰에서도 박진만이 제일 어려운 타자라고 언급했다.

4월 17일 KIA전에 2번째 선발등판했다. 윤석민과 맞붙어 6이닝 5피안타 3볼넷 4삼진 2실점 2자책점[5]을 기록, QS에 성공하며 호투했으나 타선이 윤석민의 구위에 완전히 밀려버린 탓에 패전투수가 되고말았다.

그러나 제법 호투하다가 고질병인 볼질이 다시 재발하면서 5월 8일 목동 LG전에서는 볼질 때문에 4이닝 던지고 물러나야 했다. 5월 13일 문학 SK전에 선발로 나와 6회 1아웃까지 잡으면서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5월 19일 목동 삼성전에 선발로 나왔다. 팀 타선이 모처럼 8점을 지원해줬지만, 정작 볼질을 시전하면서 5이닝 4피안타 5볼넷 1홈런 6탈삼진 3실점을 했다. 투구수는 무려 111개. 비록 시즌 첫 승을 기록했지만 썩 좋은 투구 내용은 아니었다.

6월과 7월에도 각각 3경기 동안 12⅔이닝 평균자책점 4.97, 4경기 동안 6⅔이닝 평균자책점 8.10을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8월 4일, 밴 헤켄이 부상으로 등판할 수 없게 되자 그를 대신해 목동 LG전에 리즈 상대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이 날 강윤구는 그 동안의 부진을 전부 잊으라는 듯 호투를 하며 QS+를 기록하며 승리, 팀의 연패를 끊었다. 결과뿐만 아니라 투구 내용도 그 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았던 볼넷을 거의 내주지 않는 등 훌륭했다. 이 날의 성적은 7이닝 3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 승리투수.

8월 10일, 목동 한화전에 류현진 상대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초반 볼넷을 조금 내주며 흔들렸으나, 6⅔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호투했다. 묵직한 직구를 던지다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타이밍을 뺏으며 한화 타선을 침묵시켰고, 7회 2아웃까지 잡고 오재필에게 안타를 맞으며 물러났다. 아쉬워하며 물러났지만 관중을 향해 모자를 벗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볼넷이 도로 늘어났으나 탈삼진 능력을 뽐내며 향상되는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8회 넥센의 명불허전 이 방화를 저지르며 팀이 패배, 결국 호투가 의미 없게 되었다. 이 날의 성적은 ND, 6⅔이닝 1피안타 4볼넷 10탈삼진 무실점.류현진vs강리호

시즌 막판 상당히 호투하고, 이닝 소화력이 좋아지면서 2013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이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 8이닝 4실점 완투패가 특히 인상적.


3.5. 201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리호/선수 경력/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6. 2014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리호/선수 경력/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했다.


3.7. 2015 시즌[편집]


상무에서는 불펜으로 투입되고 있는데, 5월 11일까지 2패 13K 방어율 6.10의 영 좋지 못한 활약을 보이며 걱정을 자아내고 있다. WHIP도 1.55로 높은 편이다. 잠시 부상으로 쉬다가, 이후로는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즌 최종 기록은 뭐 대충 이렇게 마무리했다. 21경기 56.1이닝 4승 2패 ERA 4.63.


3.8. 2016 시즌[편집]


상무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그럭저럭 평타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5월 4일 경기후 기준 퓨처스리그에서 5게임 2승 2패 ERA 2.92를 기록했으며, 초중반에 무너진 경기들이 있어 소화 이닝이 24.2 이닝으로 게임 수에 비해 적은 편. 그리고 이 와중에 볼넷을 19개나 허용했다. 2015년 스윙맨으로 뛰면서 56.1이닝동안 기록한 사사구가 29개였는데, 이것보다 더 안 좋아진 것이다. 아직 시즌 초이므로 반등의 기회는 있지만.

2016년 5월 28일 현재 36 1/3이닝 평균자책점 1위(1.98), 탈삼진 1위(42)를 기록하면서 또다시 많은 팬들을 기대시키는 중이다. 다만 사사구도 29개로 만만치 않다. 이미 지난시즌의 볼넷 갯수를 돌파하고 말았다.

2016년 6월 22일 정확히 작년기록과 똑같은 56 1/3이닝을 던졌고 ERA 2.88과 탈삼진70개로 각각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있다. 또 6승으로 퓨처스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그 사이 사사구는 41개로 증폭, 볼넷수만 조절한다면 정상급 좌완투수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세부성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로버트 코엘로가 생각나게 하는 이닝 소화력으로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2016년 7월1 9일 수준급 투수가 복귀한다는 기사가 떴다.

이대환 코치의 말에 따르면 8월 5일 등판 이후 등판 계획은 없으며, 전역 때까지 개인훈련만 한다고 한다.기사

2016년 9월 전역 예정이다. 혀갤은 시즌 시작부터 공포에 떨며 이 남자의 전역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중이다. 그러나 일단 1군급 투수, 특히 좌완 투수의 수 자체가 충분치 못한 소속팀의 사정상, 전역 직후 확장 엔트리에 힘입어 곧바로 1군에 합류할 확률이 높다. 이 때 적절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박주현, 신재영 등의 신인 발굴, 그리고 김세현을 교정시켜 든든한 마무리로 만들어낸 손혁 투수코치의 능력에 다음 시즌 기대를 걸어볼 만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예상은 본인이 기량을 갈고 닦아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에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그가 고척 스카이돔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병장 강리호 `곧 제대합니다`, # [사진]강리호,'군복차림으로 넥센 승리 함께 축하!' 휴가를 받아서 유니폼 치수를 재러 왔다고 하는데...해당 경기는 밴 헤켄이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면서 승리한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혀갤은 강리호의 등장으로 폭발했다.

그리고 9월 24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로 확정되었다!! 혀갤러들은 벌써부터 공포에 떠는 중...

그리고 2016년 9월 21일 00시 00분, 혀갤의 글리젠은 융구의 복귀를 환영(?)하는 글로 늦은 시간답지 않게 폭발했다...넥센이 20, 21일 연패를 한 터라 졸지에 연패 스토퍼 역할을 하게 되었다.

9월 24일 삼성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1회부터 최형우에게 투런을 허용했다. 이승엽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고 1이닝을 마친 뒤 황덕균과 교체되었다. 팔꿈치에 통증을 호소하여 교체되었다고 하는데 병원갈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혀갤 등지에서는 7주를 쉰 결과가 1이닝만에 팔꿈치 통증이냐며 기가 막혀 하는 중. 황덕균이 다시 호투했으나 불펜진의 방화로 팀은 삼성에 4점차로 패했다. 결국 열받은 한 직관팬이 대놓고 강리호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는 목격담이 나돌고 있다.


그리고 재활이 확정되며 공식적으로 시즌아웃됐다. 염경엽 감독은 2017년 시즌에 강리호가 로테이션의 축이 되어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넥팬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윤구를 믿냐면서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감독이 장정석으로 바뀌면서 강윤구의 앞날은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가급적 선수를 혹사시키지 않으려는 넥센 프런트 성향상 팔꿈치에 통증이 있는 강리호는 2017년에 뛸 수 있을지부터 알 수 없다.

아무것도 한게 없음에도 시즌 종료 후 연봉협상에선 동결(8천만원)로 결정되어 팬들은 이장석 횡령장부를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다며 까고 있다.

4. NC 다이노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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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김한별과의 깜짝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4.1. 2017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리호/선수 경력/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기대 이상의 준수한 투구를 보여주었다. 다만 선발로서는 최악에 가까웠는데, 구원 등판 기록이 31경기 40.2이닝 ERA 3.32으로 준수한 것에 비해 선발 등판 기록은 5경기 14이닝 ERA 7.71이다. 그야말로 끔찍한 수준. 시즌 최종 기록은 36경기 54.2이닝 2승 1패 24볼넷 51K ERA 4.45.


4.2. 2018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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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리호/선수 경력/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포인트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잦은 등판 상황에서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2군에 다녀온 뒤에는 필승조의 구위를 보여주었고, 김진성, 원종현 등이 제 모습을 잃어버린 가운데 팀의 핵심 투수 역할을 맡으며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7개의 홀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즌이 뒤로 갈수록 무리에 가까운 등판을 하면서 표면상으로는 마이너스의 기여도를 기록했다. 69경기 54.2이닝 7승 5패 17홀드 1세이브 26볼넷 65K ERA 6.09.


4.3. 201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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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리호/선수 경력/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성적은 67경기 56⅓이닝 3승 3패 15홀드 55피안타 4피홈런 24볼넷 49탈삼진, ERA 4.47. 전반기에는 5점대의 ERA를 기록하면서 이 성적 찍으려고 연봉 협상을 그렇게 질질 끌었나며 욕을 얻어먹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각성에 성공하면서 박진우, 김건태와 함께 불펜진의 믿을맨이 되었다.


4.4. 2020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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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리호/선수 경력/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성적 30경기 21이닝 ERA 6.86을 기록하며 지난해보다도 더 부진한 완전히 망한 시즌을 보냈다. 당연히 한국시리즈 엔트리서도 탈락해 팀의 우승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역시나 우승반지도 없다.


4.5. 2021 시즌[편집]


개막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퓨처스에서 중간 계투로 등판하다 6월 5일 토요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2군경기에서 뜬금없이 선발등판해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다 6월 26일 SSG전에 웨스 파슨스의 대체 선발로 등판했다. 약 1,400여일 만의 선발등판. 80구를 투구할 계획 이였는데 1회에 40구를 던지더니 2이닝동안 65개를 투구하며 4실점 1피홈런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상대 팀도 대체선발인 김정빈이었고, 3회에 빅이닝이 터지며 노디시전이 되었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대부분 130km/h대 중후반을 기록할만큼 떨어졌고 제구도 안되는 모습이 보여 당분간 1군에서 보기 힘들 전망이다.


5.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7월 22일 롯데의 2022년 2차 4라운드 지명권과 트레이드되면서 롯데로 향하게 됐다. 롯데가 일단 kt와의 트레이드로 3라운드 지명권 2장을 가지고 있고 최근 좌완 불펜 기근으로 고민에 빠져 있기에 과감히 4라운드를 주고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6]


5.1. 2021 시즌[편집]


등번호는 넥센 시절 사용한 번호이기도 한 65번을 배정받았다. 인터뷰를 통해 불펜 피칭을 하면서 자신감과 구속을 되찾는 중이라고 한다. NC 재적 시절 롯데 타선에 매우 약했었는데, 이제 롯데에 몸담으면서 심적 부담감이 덜해졌다는 소감도 전했다.

8월 11일 마침 또 NC전에 등판해 윤형준, 김주원을 연속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홀드를 기록 화끈한 신고식을 치렀다. 자기 주장으로는 연투도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데, 전 감독이라면 진작에 시키고도 남았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다음 날에는 정진기에게 역전 적시타를 허용했고, 이 경기의 결승타가 되었다.[7]

8월 14일 LG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챙겼다.
1~3점차 이내에 등판하여 1이닝씩이나 좌완 원포인트로 활약중이다.

8월 26일 KIA전 접전에 등판해 동점을 내주고 공 2개만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9월 4일 한화와의 DH 2차전에 출전에 0.1이닝동안 1볼넷 1삼진을 기록하고, 구승민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이닝을 잘 마무리 해서 홀드를 기록했다. 이적후 10경기에 출전 총 6과 3분의 1이닝동안 무실점으로 방어율 0에다가 3홀드를 거두고 있다.[8]

9월 9일 결국 ssg전 7회에 나와서 연속안타로 1실점후 최정을 자동 고의사구로 내보내고, 최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만루가 된 상황에서 한유섬에게 홈런을 맞으며 0.1이닝 3피안타 2사사구 5실점으로 팀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나올 때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기어코 방화를 저지르고 말았다.

9월 18일 한화전에선 혼자서 2.1이닝 4K 3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9월 22일 삼성전에서 공 3개 던지고 주자 1루 승계후 종아리 부상으로 강판되었다. 이후 말소되었는데, 무릎 연골 손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고 한다.

즉전감을 원해서 데려온 걸로 평가해본다면 강윤구 트레이드는 실패했다고 봐 야한다. 4라운드 지명권이야 어차피 kt의 3라운드 지명권을 얻어놓은 상태였고, 성공적으로 끝내서 부메랑 날아올 건 없지만 즉전 좌완불펜을 기대한 강리호는 쓸모가 없었다.

특히 NC가 시즌 이후 임창민, 김진성 등 베테랑들을 대거 쳐내면서 선수단 개편에 들어갔는데 강리호도 저 방출 명단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차라리 기다리는 게 나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5.2. 2022 시즌[편집]


시즌을 앞두고 17번을 달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50~60번대 등번호가 아닌 등번호를 달았다.

1군과 2군을 오가며 좌완불펜 롤을 맡고있다.

6월 기준 5점대 방어율과 1.5의 WHIP를 기록하면서 그냥 아주 평범하게 추격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전 시즌에 비해 등판시 실점율이 많이 줄었다.

7월 6일 SSG전 원정경기에서 12:5로 크게 앞서던 9회 말 2사에 등판해 오준혁 한 타자를 2루수 방면 땅볼로 처리하며 경기를 끝냈다. 바로 다음 날 SSG전 경기에서도 1이닝 무실점 투구를 보였고 전반기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후반기에는 전반기보다 좀 더 등판횟수가 많아졌으나 잘 던질 때랑 못 던질 때랑 편차가 너무 커 8월 월간 ERA는 결국 7.36을 보였다.

9월 들어 그나마 조금 나은 모습을 보이며 월간 ERA 2.25를 기록했다.

정규시즌 총 29경기에 등판하여 21⅓이닝 동안 27탈삼진을 잡으면서 25피안타 7사사구를 허용했고 ERA는 5.48을 기록했다. 승/패/홀드/세이브가 하나도 없다. 의외로 제구가 안 좋은 선수치고는 BB/9이 2를 기록했고 ERA에 비해 FIP는 1.79를 기록한 것이 특이점이다. 그리고 롯데 좌완의 특징인 위장 좌완의 성향을 드러냈다.

방출 명단에서 제외되며 올해도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시즌 후 강리호로 개명했다.


5.2.1. FA[편집]


그리고 FA를 신청했다. 전략적으로 FA를 신청했다는 추측이 많았지만 한 기사에서 본인이 자원해서 신청했음을 밝혔다. 그런데 롯데가 외국인 선수 3명과 이미 계약을 완료했고, 외부 FA에서 유강남노진혁 그리고 한현희를 영입하며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FA 시장 철수 선언을 하는 동안 강리호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FA 미아가 될 우려도 커진 상황.[9]

다만 유강남의 보상선수로 팀 내 유일하다시피 했던 1군 좌완불펜인 김유영이 지명되면서 1군에 쓸 수 있는 좌완 불펜이 없어진 롯데와 재계약을 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는데, 야구부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롯데와의 협상 진척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만 돌이켜보면 FA 선언했을 때만 해도 롯데도 좌완 기근인 상황에서 재계약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본인이 롯데와 가는 방향이 다르다며 돌아가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을 그은 상황인데 구단에서 손내밀 명분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사실 애초에 2011년(21이닝 2점대) 빼고는 3점대 방어율을 찍어본 적도 단 한 번도 없는 롤 낮은 투수라 롯데 입장에서 굳이 협상을 해줄 이유가 없기도 하다.[10]

해를 넘겨 2023년에도 특별한 소식은 고사하고 FA 미아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기사만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며, 원 소속 구단에 백기투항을 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데려갈 팀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11] 상기 언급된대로 김유영이 보상선수로 LG 트윈스에 갔기 때문에 본인이 자존심을 한 수 접을 용단을 내리면서 롯데에 잔류한다면 1군 붙박이 좌완계투로는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기에 일부 팬들은 고집 그만 부리라는 의견도 올라오는 상황.[12] 일단 설 연휴 직전 원 소속 구단에서 1년 계약을 제시했으며 타 구단에서는 관심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가까운 시일내에 계약 소식이 들려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3년 1월 25일 발표한 2023년도 배번에 20번과 29번을 제외한 번호들이 꽉 차면서[13][14] 당장 계약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15] 1월 31일 배성근이 은퇴를 선언했고 김민석이 배성근의 번호였던 2번으로 바꾸면서 사용 가능한 번호 하나(54번)가 비게 되었으나[16] 정찬헌의 영입 가능성이 그 전부터 언급되는 등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23년 2월 2일에는 강리호 측이 롯데에게 계약기간 후 보류권 포기를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 현행 보류권 조건이 일견 불합리해보일 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현 조건에선 롯데가 이걸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계약 성사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

그리고 이날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원 포인트 릴리프로, 특정 상대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가는 것이 소모품처럼 느껴져 창피했다"라고 말한 것이 알려졌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당장 올해 롯데에 입단한 차우찬 역시 원 포인트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노장 투수도 선수 말년 마운드에 서기 위해 어떤 역할이든 고사하고, 아예 진해수처럼 전문 원 포인트 릴리프로 커리어 쌓는 선수도 있다. 최근 시즌 성적이 아주 좋지도 않았던 강리호의 위와 같은 발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강리호 본인은 해당 기사에 대한 입장을 다시 표명하고 싶다며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예고했다.

2월 3일, 예고대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프로에서는 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KBO리그 은퇴를 암시했다. 국제신문 인터뷰에서 원포인트로 등판하는 것이 소모품처럼 느껴져 창피하다고 언급된 부분은, 7~8일이나 쉬고 겨우 원포인트로 올라갔는데도 그마저도 못한 것이 창피하다는 뜻이었고, 오히려 소모품이 되고 싶다고 해명했다. 또한 실제로 독립리그, 멕시칸리그, 대만 등 국내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고도 하였다. FA선언에 대해서 미아 염려가 있어 롯데 구단이 만류했음에도 굳이 신청한 것은 그동안 FA를 위해서 야구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여러 이야기들을 해명하고 본인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덕에, 팬들의 반응이 좀 누그러졌다.

그러나 본인이 계약기간과 관계없이 4년간 보류권이 묶이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음을 확실히 했고, KBO리그 구단들 역시 핵심자원도 아닌 강리호를 1년뒤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주는 특약까지 해가며 굳이 영입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본인이 언급한 것과 같이 KBO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23년 3월에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레슨 홍보글

3월 27일 정찬헌이 키움과 계약하면서 유일한 미계약자가 되었다.

이후 서준원이 미성년자 불법촬영으로 방출되고, 이민석도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유력해지며 졸지에 FA를 신청해 한현희를 영입할 수 있게 해준 강리호에 대한 여론이 좋아졌다.

6. FA 신분, 독립야구단 활동[편집]



6.1. 2023 시즌[편집]


3월 29일 독립야구단 경기도리그 소속 팀인 가평 웨일스로 들어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식으로 합류한 시점은 3월 22일.

4월 3일 예고에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단, 트라이아웃이 실시된 시점은 3월 1일이며 3월 19일에 이미 명단이 유출되어 최종 합격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4월 10일, 17일에 나갔다.

4월 4일 파주 챌린저스와의 경기에 첫 등판을 했다. 선발로 나와 2이닝 37구 1실점 1피안타 3사사구 1탈삼진을 기록했다.

4월 21일 성남 맥파이스와의 경기에서 3회 2번째 투수로 나와 4이닝 58구 1실점 4피안타 1볼넷 5탈삼진을 기록했다.

5월 3일 수원 파인 이그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7이닝 92구 4실점 7피안타 6탈삼진을 기록했다.

5월 17일 파주 챌린저스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95구 1실점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을 기록했다.

5월 24일 파주 챌린저스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89구 4실점(2자책) 6피안타 2볼넷 3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2일 연천 미라클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92구 4실점 8피안타(1피홈런) 7탈삼진을 기록했다.

6월 8일 KBO DREAM CUP 조별리그 A조 수원 파인 이그스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80구 무실점 3피안타 1사구 7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11일 KBO DREAM CUP 준결승 연천 미라클전에 3회 2번째 투수로 등판해 3 1/3이닝 2실점 2피안타 2볼넷 1사구 2탈삼진 1폭투를 기록했다.

6월 23일 고양 위너스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3실점 7피안타(1피홈런) 2볼넷 8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28일 성남 맥파이스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95구 4실점 5피안타 6볼넷 5탈삼진을 기록했다.


7. 은퇴[편집]


2023년 7월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선언하였다.[17]

일반적인 야구 선수들의 은퇴 후 루트가 다 그렇듯 야구 레슨을 하며 지내는 듯 한데, 뜬금없이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단편 영화를 촬영 중이라는 소식도 알리며 야구팬들을 적잖게 당황시키기도 했다.

은퇴후 현재는 모 야구 레슨장에서 투구코치로 지내고있다

8.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09
서울
-
넥센
45
80
3
2
1
2
5.51
87.6
5.79
64
12
70
79
1.68
0.73
2010
5
15
1
1
0
0
7.20
63.2
6.35
15
2
14
11
1.87
-0.10
2011
6
21
3
1
0
0
2.14
191.7
3.72
15
0
11
11
1.24
0.72
2012
27
125⅔
4
7
0
0
4.08
93.9
4.44
89
14
81
127
1.30
1.56
2013
41
130
6
6
0
7
4.36
99.9
3.85
112
6
83
131
1.44
2.53
2014
24
42
1
1
0
1
7.71
68.3
9.76
60
17
33
36
2.19
-0.65
2015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6
1
1
0
0
0
0
18.00
29.2
19.79
1
1
1
0
2.00
-0.09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17
NC
36
54⅔
2
1
0
0
4.45
111.7
6.63
57
14
26
51
1.48
0.72
2018
69
(3위)
54⅔
7
5
1
17
(4위)
6.09
85.2
5.32
54
10
27
65
1.46
-0.10
2019
67
56⅓
3
3
0
15
4.47
94.7
3.97
55
4
28
49
1.40
0.44
2020
29
19⅔
1
1
0
2
7.32
66.8
5.63
30
3
11
14
2.03
-0.15
2021
1
2
0
0
0
0
18.00
25.2
9.83
5
1
2
3
3.50
-0.21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sWAR
2021
롯데
21
14
0
1
0
3
7.07
64.3
6.05
16
2
13
12
2.00
-0.12
2021 합계
22
16
0
1
0
3
8.44
53.9
6.52
21
3
15
15
2.19
-0.33
2022
롯데
29
21⅓
0
0
0
0
5.48
75.9
1.79
25
0
7
27
1.45
-0.07
KBO 통산
(13시즌)
402
638⅔
31
29
2
48
5.07
91.4
5.10
599
86
407
617
1.53
5.28
[1] 09년 당시 강리호는 1차지명이 끝난 2차 드래프트로는 3~4라운더에서 뽑힐만한 정도라고 평가받았다.[2] 허준혁은 강리호와 같은 키에 75kg으로 상당히 마른 체격이고 좀 딱딱한 편이었다.[3] 역대 3번째 기록. 2007년 리오스와 2009년 금민철이 달성했는데, 공교롭게도 금민철은 2012년에 넥센 소속이었다.[4] 2회초 2사 1, 2루에서 3점홈런, 7회 2사 3루에서 1타점 3루타.[5] 1회에 KIA 안치홍의 타구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견제 사인을 무시하고 강윤구가 공을 던진 것을 안치홍이 치는 바람에 전진 수비로 들어온 이택근이 낙하지점을 포착하는데 실패했으나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았다!![6] NC팬들 입장에선 최근 부진하기는 해도 지옥에서라도 데리고 와야한다는 좌완 파이어볼러를 너무 쉽게 내준 게 아니냐는 의견이 크지만 이미 구속이 하락할 대로 하락한 마당이라 강윤구 개인을 위해서라도 구단이 길을 터 준 것으로 보였고, 롯데 팬들 측에서도 4라운드 지명권으로 강리호를 데려온 것은 아깝다는 의견과 현재 롯데의 좌완 불펜이 김진욱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기에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공존했다.[7] 정진기는 이날 수훈선수가 되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양상문 해설이 NC 출신이었던 강리호를 상대한 기분이 어땠었냐고 물었다. 정진기는 5월에 SSG에서 NC로 넘어왔고, 강윤구는 이번 시즌 6월말 SSG전에만 등판했기 때문에 당연히 알 길이 없을 터.[8] 표면상 기록은 굉장히 준수해 보이나 이 기간동안 안타 4개, 볼넷 5개, 데드볼 1개를 허용 총 10번의 출루를 허용하고 있어 냉정하게 좌완 원포인트로서 확실한 믿음을 주고있진 못하고 있다.[9] 물론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A등급인 박세혁도 FA 미아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NC로 이적했고, 한현희도 A등급임에도 아예 FA 미아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가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은 조금 이른 시기이긴 하다.[10] 2023년 1월 둘째주까지 FA 계약을 못하고 있다가 16일 자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한현희는 근 2년간 극도로 부진했긴 하지만 애초에 강리호와 커리어 자체가 남다른 선수라 비교하기가 힘들 뿐더러, 결국 FA로 롯데에 오게되었다.[11] 애초에 FA 신청 당시 상황으로도 똑같이 좌완불펜 가뭄인 두산, 삼성 정도를 제외하면 강리호를 영입할 팀으로 예측된 구단의 수도 적었다. 그나마도 삼성은 외부 FA 영입 의사가 없고 트레이드도 최소한 준필승조 이상의 불펜 투수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다는 기조다. 그리고 양의지 영입을 위해 차후 셀캡을 깨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두산 역시 그 셀캡을 굳이 강리호를 영입하려고 깰 명분이 없다. 결국 그나마 예측범주에 있던 삼성과 두산 모두 일찌감치 FA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12] 가뜩이나 FA에서 큰 금액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위와 같은 행보로 인해 FA 미아 감수는 물론이고 아무리 계약단계에 접어들었다 해도 각각 FA와 퓨처스FA를 신청했다가 기존 연봉보다 더 삭감된 금액에 계약하는 손해만 본 나주환이나 강동연의 선례와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13] 22시즌 사용한 17번은 렉스에게 넘어갔다.[14] 20번은 임수혁을 추모하는 의미로 2016년을 마지막으로 결번(비공식 영구결번) 상태이고, 윤학길의 번호였던 29번은 2021시즌을 끝으로 비어있는 상황. 사용 가능한 번호는 육성선수들이 받는 세 자릿수 번호 말고는 없다.[15] 5월 8일 조세진과 한태양이 상무에 입대할 예정이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16] 이후에 54번도 현도훈이 101번에서 바꾸면서 주인이 차게 됐다.[17] 앞서 인스타그램에 '독립야구단 마지막 경기'라는 제목과 함께 선수들에게 케이크를 받은 사진이 올라와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그가 KBO 리그에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었으나 이는 7월 5일 수원 파인 이그스전이 끝난 뒤 한 고별식이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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