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발터 슈타흘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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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아인자츠그루펜 사령관.
2. 초기 행적[편집]
슈테르넨펠스에서 태어난 슈탈레커는 튀빙겐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 나치당 입당[편집]
1933년 5월에 나치당에 입당한 슈탈레커는 1934년에 뷔르템베르크 주의 게슈타포 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추천되어 친위대 본부에 배속되었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 합병 후 아인자츠그루펜 빈 지구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슈탈레커는 빈의 친위대 사령관이기도 했다. 동시에 친위대 대령으로 승진한 그는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경찰지도자였던 카를 헤르만 프랑크의 휘하에서 프라하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 사령관으로도 일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0년 5월에 노르웨이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 사령관으로 친위대 상급대령으로 부임한 슈탈레커는 이후 하이드리히와 의견충돌로 인해 친위대에서 외무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1941년 6월에 친위대 소장 및 경찰소장으로 승진한 슈탈레커는 아인자츠그루펜 A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북방군 집단에 소속된 후 발트 3국에서 레닌그라드로 진격했다. 도중에 유대인, 공산주의자, 집시 및 반나치 운동가 등 수많은 사람들을 대량학살한 슈탈레커는 베를린에 아인자츠그루펜 A가 총 24만 9,420명의 유대인을 처형했다고 보고했다. 1941년 9월에 레닌그라드 지구에서 소련의 빨치산들을 추격하면서 북부전선으로 이동하던 슈타흘레커는 11월 8일에 오스트란트 보안경찰 및 친위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5. 최후[편집]
작전 중이던 1942년 3월 23일에 빨치산으로부터 저격당해 중상을 입은 슈탈레커는 리가의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그날 바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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