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이씨(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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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중종의 후궁. 아버지는 사섬시 첨정을 지낸 이형신(李亨臣)이며, 어머니는 알려지지 않았다.
슬하에 외아들로 덕양군 이기를 두었다.
2. 생애[편집]
본래 숙원(淑媛)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종실록》에 실린 중종의 지문에서도 숙원 이씨라고 쓰고 있다.[1] 그런데 언제 종2품 숙의(淑儀)로 봉작되었는지 기록이 없는데, 숙의 이씨로 알려져 있다.[2]
특히 1719년(숙종 45) 5대손 이무(李楙)가 다시 세웠다는 묘표에는 숙원경주이씨지묘(淑媛慶州李氏之墓)로 되어있고[3] , 《선원계보기략》에서 덕양군의 생모를 ' 숙원 이씨 '로 썼고, 《국조인물고》에 실린 덕양군의 묘지문에서도 '숙원 이씨'로 썼다.[4] 그런데 《선원록》에서는 덕양군의 생모를 '숙의 이씨'로 써서 혼동이 오는 것.[5][6]
한편, 아들 덕양군을 낳고 산고를 이기지 못하여 일찍 죽는 바람에 덕양군은 같은 후궁인 숙의 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3. 여담[편집]
-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보물 제1326호 《함창 상원사 사불회탱(咸昌 上院寺 四佛會幀)》은 명종 재위 연간에 손자 풍산정 이종린(李宗麟)이 할머니 숙원 이씨를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발원·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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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종실록 1권, 인종 1년 1월 24일 무오 3번째기사. # [2] 공식적인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없고, 《승정원일기》는 전란으로 인하여 인조 대부터 남아있어서 찾을 수 없다. [3]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4] 덕양군의 묘지문은 동시대에 활동한 중종의 딸 정순옹주의 남편 여성위 송인(宋寅)이 썼다. [5] 일례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성종이나 연산군의 후궁들이 앞에서는 정2품 소의였다가 뒤에서는 종2품 숙의가 되는 등 시기에 맞지 않게 써있는 경우가 있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6] 덕양군파 종중에서는 숙종 대에 숙원 이씨가 숙의로 추증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추증에 대해서는 《승정원일기》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