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민/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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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두산 베어스 소속 3루수 허경민의 선수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


2. 아마추어 경력[편집]



파일:광주일고 허경민.jpg


광주일고 시절 준수한 수비를 바탕으로 팀의 주축 내야수로 활약하면서 광주일고의 고교 무대 정상 등극에 이바지했던 선수다.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1년 선배들인 서건창을 2루수로, 한희준을 중견수로 밀어내며 1학년 시절부터 팀의 유격수 포지션을 차지하였다.[1]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와의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2007년 결승전에서 좌익수 방향 깊은 타구를 백핸드로 잡아내 노바운드로 1루주자를 잡은 건 백미. 대혈투로 알려진 이 경기에서 이형종, 박건우, 안치홍, 유민상, 안성무, 전인환서울고등학교 야구부에 승리를 거둔다.

2009년 드래프트 동기들은 수준급의 내야수들이 많았는데, 오지환, 안치홍, 이학주, 김상수 등과 함께 고교 무대 수준급 유격수로 평가받았고, 그리고 허경민은 이들과 함께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 발탁되어 2008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2] 기라성같은 내야 요원들 중에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한 선수는 바로 허경민이었고, 동기들 중에서 수비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던 선수였다. 고2 시절 수비짤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에서 야수픽을 등한시하고 곧죽어도 투수픽을 뽑는것을 고집했던 기아 프런트 때문에 연고지 구단인 KIA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다.[3]


3. 두산 베어스[편집]


파일:허보검.png}}}
두산 베어스 No.13
허경민
許敬民 / Hur Kyoung-Min


▲ 허경민 두산 등장곡 & 응원가


3.1. 2009 시즌[편집]


1,2군을 통틀어 실전에는 1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다.


3.2. 경찰 야구단[편집]


두산은 2009년 당시 허경민을 장기적인 자원으로 내다보고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고, 허경민은 두산 구단의 권유에 따라 경찰 야구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3.3. 2012 시즌[편집]


경찰청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인 후, 2012년 돌아와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신임 김진욱 감독이 대타로라도 기회를 주고 2루수 포지션으로 출장시키는 등,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끔 외야 수비로도 나오기도 한다. 2012년 종료 후에 이원석, 오재원의 군입대가 유력하기 때문에 기회는 잡을 것으로 보였다.

4월 26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고 SBS ESPN에서 인터뷰까지 마쳤으나 시간관계상 방송되지 못했는데, 결국 그 인터뷰는 몇 분 후 베이스볼S에서 리포터의 질문이 생략된 채로 방송되었다.[4]

2012 시즌, 허구연 해설이 자신이 시범 경기부터 주목하고 있는 선수로 소개했다. 해설할 때마다 허경민이 나오면 '듀산팬들이 반드시 주목할만한 허갱민 슨수'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었는데 1차전에는 대수비, 3, 4차전에는 대주자로 출장하며 타석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고 도루 없이 2득점만을 기록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3.4. 2013 시즌[편집]


2루수와 유격수로 번갈아 출장하며 꾸준히 주전 기회를 얻고 있다. 종종 불안해 보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준수한 수비 실력과 주루[5] 를 보여주며, 무엇보다 타격 능력이 향상되어 팬들을 설레게 하는 중. 삼진을 당한 뒤에도 아쉬워하는 등[6] 작년에 비해 의욕적인 면이 증가한 모습. 동기들에 비해 늦게 1군에 안착한 만큼 독기를 품은 것으로 보인다.

5월 24일 기준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24일 기준으로 타율 0.331(8위), 출루율 0.432(5위), OPS 0.829, 볼넷 18개에 삼진 8개로 BB/K가 2.25를 기록하며 리그 전체 1위. 올 시즌 가장 자주 출장한 포지션인 2루수, 부진한 손시헌 대신으로 들어간 유격수 자리에서 모두 괜찮은 수비를 보여주며 내야 주전 자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우투수에게 0.358, 언더핸드 투수에게 0.320으로 비교적 좋은 반면 좌투수에게는 0.200의 타율로 약세를 보인다.

6월 0.215의 타율로 부진하며 시즌타율도 7월 4일 기준 0.288로 많이 하락했지만 2루수 중 타율 1위이다.[7]

7월 5일 삼성전에서 9회에 교체출장하였는데, 이때 이지영의 타구를 병살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을 입었고 그 여파로 7월 6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검진 결과는 왼쪽 발목 인대 염좌로 복귀까지는 한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첫 풀타임 출전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다시 타격감이 올라오는 모습도 보여줬고 이번 시즌 가장 쏠쏠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이니만큼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수빈은 허경민과 함께 뛰고 있다는 의미에서 모자에 6번을 써놓고 경기에 임하고 있기도 하다.

9월 22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프로 첫 홈런을 쏘아올렸고, 팀은 스코어 3:11로 대승했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2루수, 2, 3, 5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만 출장했는데 대주자로 출장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은 대주자, 3차전은 대수비, 4, 5, 6차전은 선발 3루수, 7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0타수 4안타 1볼넷 1사구(死球) 1도루, 타율&장타율 .4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포스트시즌에서 12타수 4안타 1볼넷 1사구(死球) 1도루 1득점, 타율&장타율 .333, 출루율 .429를 기록했다.


3.5. 2014 시즌[편집]



파일:허경민13.jpg


시즌 전 등번호를 6번에서 기존 주전 유격수였던 손시헌의 이적으로 비어있던 13번으로 바꿨다.

부상을 입은 이원석을 대신해 3루수로 출장하거나 김재호 대신 유격수로 출장하고 있다.

타율도 .333으로 나쁜 편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호수비.

4월 16일, 17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모두 호수비를 작렬하면서 팀을 구해냈다.

4월 30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간만에 유격수로 출장하였다.

그리고 간간이 대수비로 출장하다가 5월 25일 한화전에서 오재원을 대신해 선발출장해 5타수 4안타 1타점 1득점으로 3루타, 2루타, 단타 모두 쳤다. 6회 홈런성 타구를 날리기는 했으나 좌익수 플라이에 그쳤다. 팀은 9:6으로 승리.

8월 1일 선발 유격수로 8번 타순에서 출장해 안타없이 볼넷 3개와 삼진 1개를 기록했고, 2회 위기상황에 아슬아슬한 타구를 다이빙으로 건져내 오재원이 맨손으로 잡아 곧장 송구해 병살을 이끌어내 이닝을 종료, 한국 첫 등판의 유네스키 마야를 도왔다. 팀은 결승홈런을 맞은 정재훈의 불질로 패배.


3.6. 2015 시즌[편집]



파일:15허경민.jpg


시즌 초 내야 백업으로 출발했다가 잭 루츠의 퇴출, 최주환의 부진을 틈타 3루 주전 자리를 잡았고 뛰어난 타격감을 보여주며 7월 말까지 3할 3푼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 새 용병 데이빈슨 로메로의 3루 수비 불안도 한몫한 상황. 이대로만 하면 주전 자리는 확실히 지킬 수 있을 듯 하다. 간간히 유격수로도 출장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1번 타자로도 종종 출장하고 있다. 빠른 발에 비해 도루는 적지만 공수주에서 제 몫은 해주고 있다. 원래 9번타자 2루수로 나오던 예전 모습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8월 6일 잠실 넥센전에서 본인의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내는 등 공수 양면에서 대활약하며 수훈선수 인터뷰도 했다. # 이 날 팀은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하며 15:5로 대승을 거두었다.

8월 19일 삼성전 4회초 박해민이 자신의 키를 넘기는 번트를 시도했지만, 호수비로 번트 시도를 좌절시켰다.영상 박해민도 이 수비가 기억에 남았는지 스톡킹에서도 언급했다.

9월 18일 대구 삼성전에서 어지간해선 정말 보기 힘들다는 삼중살을 잡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데뷔 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달성하고 3할 타율을 찍었다. 15시즌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117경기 453타석 404타수 128안타 1홈런 8도루 41타점 64득점 타율 .317 출루율 .373 장타율 .384를 기록, 원래 의심의 여지도 없었던 수비실력[8]과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주전 3루수를 찾아 헤맨 15시즌의 두산에서 주전을 꿰찼다.

다만 .317이라는 타율은 그럴듯해보여도 장타력이 낮아서 3/3/3 라인에 OPS 7할대로 생산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후술하듯 가장 중요한 가을무대에서 역대급 활약을 보여줘 찬사를 받았지만 냉정히 3루수에 어울리는 스텟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유격수 자리로 옮기던지, 타격 특히 장타력을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포스트시즌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매 경기 안타를 치며 테이블세터 역할을 제대로 하였다. 1차전 4타수 2안타 1볼넷, 2차전 3타수 1안타 1볼넷, 3차전 3타수 1안타 1볼넷, 4차전 5타수 4안타로 무려 .533의 타율을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준플레이오프 MVP 투표에서는 2위를 기록했고, MVP는 1승 2세이브를 기록한 이현승이 받았다.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시리즈 내내 좋은 타격감으로 타율 .300(20타수 6안타)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4차전의 2루타 3개가 압권. 허경민, 오늘 2루타만 3개입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홈런적시타호수비까지 시전하고 4타수 4안타(1홈런) 3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보였다. 다만 팀은 오재일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여전히 불타는 타격감을 자랑했다. 이 날까지 21안타로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타이 기록을 세웠다.

10월 30일, 한국시리즈 4차전 첫번째 타석에서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기록경신의 순간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세우며 공수양면으로 대활약했지만 아쉽게도 경기마다 더 미친 이현승, 더스틴 니퍼트, 정수빈, 노경은이 등장해 데일리 MVP, 시리즈 MVP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쯤되면 팔자다 ???: 괜찮아 니가 제일 잘했어 내가 상 줄게

시즌 종료 후 열리는 프리미어 12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3루수 박석민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박석민의 대타로 선발되어 국가대표 A팀에 합류하면서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3.7.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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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며 3루 주전 자리를 지켰다.


3.8. 2017 시즌[편집]



파일:17허경민.jpg

개막 후부터 지금까지의 성적은 2할대로 좋지 못하다. 같이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갔다온 오재원, 박건우와 함께 리드오프를 맡고 있음에도 전혀 제 몫을 못해주고 있는 상황.

박건우, 김재호가 부활하고 오재1 듀오가 백업으로 밀려난 5월엔 부진이 부각되고 있다. 오재일은 일단 뜬금포는 쳐주고 박건우, 김재호는 작년보다 안좋다지만 센터라인인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스탯인데, 허경민은 파워포지션인 3루임에도 형편없는 타격스탯을 내고 있으며 뇌수비/뇌주루까지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24일 LG전에선 좌익수가 다이빙캐치를 실패했음에도 1루로 귀루하다가 2루에서 포스아웃당하며 1사 2, 3루로 최주환-에반스에게 넘길 수 있는 기회를 2사 1루로 만들어버렸고 이는 이현승의 분식회계와 더불어 함덕주의 선발승을 날린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말았다.[9]

6월 2일 단타 하나만 쳤으면 선발 전원 안타 경기였다. 즉 혼자서만 못쳤다. 이 날의 스코어는 15대 4.

이후엔 부상으로 빠져서 최주환이 3루를 보게 됐다. 그러니까 2루수는 오재원류지혁이 봐야한다.

6월 29일 인터뷰에 따르면 아직도 최정과 비교되는 국가대표 논란 때문에 많이 힘든 듯 하다.# 사실 억울할 만도 한 게 선수 본인은 국가대표팀이 뽑아서 출전했을 뿐이고 허경민의 실력에 대한 과도한 포장 댓글을 다는건 그 댓글 작성자가 문제지 허경민이 이렇게 심한 비난을 들을 이유가 없다. 성적 부진이나 플레이 중 실수로 인한 비판이면 납득할지 몰라도 기사에 나온것 처럼 "네가 왜 뽑혔냐" 등의 비난을 받으면 자신은 억울할 수 밖에 없을 듯.[10]

후반기부턴 다시 3루 주전으로 출전 중이지만 타격은 여전히 시망... 그래도 상당히 좋은 수비력을 지닌데다가 다른 타자들이 워낙 잘 쳐서 그다지 타격에서 큰 디메리트를 느끼는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최주환류지혁이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면서 공수 전반적으로 체력 난조를 겪는 점 역시 허경민이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11] 그리고 가면 갈수록 하루에 한두개씩 호수비를 뽑아내는 수준으로 수비 감각이 절정에 올라와 있으며 3루 라인선상에 붙는 타구를 결정적인 수비로 낚아채며 사실상 세이브를 기록하는 경기도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이용찬이 엄청나게 도움을 받았다.

9월 19일, 롯데 자이언츠 원정경기에서 배장호를 상대로 생애 첫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 상황은 2사 2,3루에서 배장호가 앞타자 양의지거르고 허경민과의 만루 승부를 택한 것이었는데, 보기 좋게 만루홈런을 때려버렸다.

최종적으로 주전을 꿰찬 이후 최악의 타격성적을 기록하고 수비에서도 고전을 겪은 커리어 로우 시즌. 그래도 후반기에는 어느정도 컨디션이 올라오기도 했고 시즌 초반에 잃어버렸던 수비력도 다시 되찾는데 성공하며 어느정도 만회하긴 했으나 타 팀의 3루수들의 생산성에는 한참 못미친다. 역시 쌍으로 삽을 푼 오재원, 시즌초반 1할의 빈타에 허덕인 박건우[12] 등과 겹쳐 타선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으며 초중반에 승수를 제대로 쌓지 못했고, 결국 후반기 폭풍질주에도 끝끝내 승차를 좁히지 못하며 리그 우승을 내줬으니 여러모로 아쉬운 시즌이 되고 말았다.


3.9. 2018 시즌[편집]




파일:2018121001000727200052411_20181210182021919.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경민/선수 경력/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야구장에서처럼 열심히 해서 가정에서도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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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 소감 中

커리어 하이 시즌. 데뷔 이후 가장 좋은 타율, 출루율, 장타율, 홈런을 기록하며 리드오프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며 팀은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3.10. 2019 시즌[편집]



파일:19허경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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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에서는 여전한 안정감을 보여주었고, 공인구 교체로 인해 김재환, 오재원, 최주환 등이 지난 시즌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도 타선에서 무난하게 활약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공수 양면에서 승리에 공헌하며[13]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3.11. 2020 시즌[편집]



파일:20허경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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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한 시즌 최고 타율(0.332)을 기록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타격에 붙었던 의문 부호를 완전히 떼어냈다.


3.11.1. FA[편집]


시즌 종료 후 계속해서 FA 최대어로 주목받고 있었다. 3루수로서 리그 최정상급 수비에 준수한 타격, 거기에 유격수 멀티도 가능하다는 점까지 여러모로 매력적인 옵션. 특히나 내야진에 약점이 두드러지고 허경민의 고향을 연고로 하는 KIA 타이거즈가 노리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많았다. 그러나 KIA 구단의 FA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탓인지 조계현 단장 스스로 "허경민 영입 계획은 없다"고 말하면서 두산 잔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다.[14][15]


파일:허경민FA.jpg

그리고 12월 10일 목요일, 4+3년 최대 85억이라는 대형 계약으로 두산 베어스에 잔류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계약금 25억, 연봉 10억으로 4년 65억이 보장되고 4년 후 선수 옵션으로 3년 20억 실행이 가능해 최대 7년 85억을 수령할수 있다.[16] 이번 FA 최대어이자 두산의 프랜차이즈 3루수로서 팀의 상위권 도약에 이바지한 대가를 후하게 쳐준 것으로 보이며, 만약 꾸준한 성적으로 옵션까지 발동해서 7년 계약을 전부 채울 경우 사실상 두산의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은퇴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이해에 허경민 계약과 비슷한 선수가 있었으니 옆나라에 야마다 테츠토랑 비슷했다. 야마다 테츠토도 허경민이랑 같이 FA 시작전에 사실상 요미우리 자이언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의 이적이 확실시됐었으나 일본시리즈 시작도 전에 7년 40억엔[17]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잔류를 해서 싱겁게 끝났고 허경민 역시 7년 85억원으로 잔류해서 사실상 싱겁게 끝났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선수랑 계약이 비슷한 선수가 있는데 바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쿠리야마 타쿠미이다. 세이부가 두산이랑 똑같이 FA로 선수 유출이 가장 심한 구단인데 쿠리야마는 “세이부 말고 갈데 없다. 난 이팀에서 평생 함께하고싶다.”라는 말을 남기며 허경민이랑 비슷한 말을 하고 잔류를 했다.

후에 허경민의 에이전트 대표인 이예랑 대표가 한 방송에서 밝히기를 본인이 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가장 실제적 오퍼가 많이 들어온 선수가 김현수김재환박건우양의지도 아닌 허경민이었다고 한다.[18]그만큼 허경민의 인기가 상당했고 자연스레 계약 규모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두산 입장에서도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팀 수비의 중심이 되는 허경민을 대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큰 돈을 주고 잡을 수 밖에 없었다.


3.12. 2021 시즌[편집]



파일:21허경민.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경민/선수 경력/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형 FA 계약 후 첫 시즌. 전반기에는 3할을 넘는 타율과 탄탄한 수비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올림픽 이후 체력과 컨디션 저하로 급격하게 부진하면서 작년보다 못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3.13. 2022 시즌[편집]



파일:허경민만루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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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의 부진을 청산해야 하는 시즌. 페르난데스가 벌크업은커녕 살크업으로 망한 사이, 허경민과 김인태가 테이블세터를 담당하게 되면서 백업이었던 안권수, 양찬열의 포텐도 폭발하는 시너지 효과를 이루었지만, 85억이라는 가격은 여전히 너무 비쌌다.[19] 게다가 시즌 중반 염좌 부상을 당해 한 달 결석까지 했으니...


3.14. 202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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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새로운 캡틴으로 임명되며 맞이하는 첫 번째 시즌. 하지만 공수에서 먹튀에 걸맞는 성적을 찍었고 시즌 막판에는 보상선수로 합류한 박준영에게까지 밀리며 완벽히 시즌을 공쳤다.

시즌 후 주장직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두산 팬들의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인터뷰를 하며 주장직을 양석환에게 넘기게 되었다.


4. 국가대표 경력[편집]



4.1. 2015 WBSC 프리미어 12[편집]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4
2
0
0
0
0
0
0
.000
.000
.000
.000
0
0
0



4.2.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파일:허경민17 wbc.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2
3
0
0
0
0
0
1
.000
.250
.000
.250
0
0
1



4.3. 2019 WBSC 프리미어 12[편집]



파일:허경민19 프리미어12.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8
19
5
0
0
0
1
2
.263
.300
.263
.563
0
0
1


조별 예선 1차전 9번 3루수로 선발 출장해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자신의 성인 국가대표 첫 안타와 함께 좋은 활약을 펼쳤다.

조별 예선 2차전 경기 후반 3루수 대수비로 출장하여 9회 첫 타석 안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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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0 도쿄 올림픽[편집]



파일:허경민 도쿄.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7
7
25
8
3
0
0
1
2
.320
.393
.440
.833
0
4
0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김경문호에 선발됐다. 통산 4번째 국가대표 A팀 합류이자 1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다. 당초 대표팀의 3루수 자리는 허경민, 최정, 황재균이 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치는 형국이었다. 물론 허경민은 선발이 사실상 유력했고, 남은 한 자리를 최정과 황재균이 다퉜다. 결국 최종 엔트리에 허경민과 황재균이 합류하고 최정이 탈락했다.

일찌감치 주전 3루수로 낙점을 받았다. 사실 허경민은 최근의 국제대회에서 계속 중용을 받고 있다. 단기전 특성상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강조된다는 점과 대표팀 타선 특성상 3루수에게 화끈한 장타력보다 세밀한 작전 수행능력을 요구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강정호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대표팀에서 사실상 퇴출을 당한 것도 주효했다.

역시 오프닝 라운드 1차전 이스라엘전에 8번 겸 3루수로 선발출전했다. 이 날 허경민은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대회 첫승에 크게 기여했다. 무려 4타수 2안타, 1사사구을 기록하며 하위 타선에서 공격 첨병 역할을 해냈을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3루 수비까지 뽐냈다. 특히 10회초 승부치기에서 이어진 2사 2, 3루 상황에서 몸에 맞는 볼을 얻어내며 끝내기 승리의 초석을 놨다.

오프닝 라운드 2차전 미국전 역시 3루수 겸 8번 타자로 선발출전했다. 지난 이스라엘전과 달리 3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팀 역시 미국에 2:4로 패하며 조 2위로 남았다.

녹아웃 스테이지 1차전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 역시 3루수 겸 8번 타자로 선발출전했다. 2회말 첫 타석부터 좌익수쪽 대형 2루타를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과시했다.

준결승 일본과의 경기도 3루수 겸 8번 타자로 선발출전했다. 첫 타석부터 병살타를 치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5회 두 번째 타석에는 좌익수쪽 안타를 쳤다.

선발될때만 해도 수비력이 서서히 감소하는 모습과 최정의 자리를 뺏었다는 여론, 정작 국대에서의 활약이 지지부진하다는 점 때문에 비관적인 반응이 많았으나 우려와 다르게 안정감있는 수비와 적절한 타격으로 오지환, 김혜성과 함께 하위타선에서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허나 중심타선과 투수진의 부진으로 대표팀은 결국 메달획득에 실패하여 쓸쓸히 빈손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5. 수상[편집]


  • 한국시리즈 우승 3회 (2015, 2016, 2019)
  •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8)


6. 연도별 성적[편집]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OPS
wRC+
2009
두산
1군 기록 없음
2010
군 복무(경찰 야구단)
2011
2012
92
154
.266
41
8
0
0
14
28
9
12
.318
.317
.636
79.9
2013
75
228
.298
68
9
1
1
25
35
14
36
.360
.387
.746
106.3
2014
105
198
.247
49
8
1
0
10
33
6
27
.298
.335
.633
62.6
2015
117
404
.317
128
20
2
1
41
64
8
38
.384
.373
.757
98.9
2016
144
(1위)
538
.286
154
24
4
7
81
96
6
63
.385
.360
.745
90.5
2017
130
369
.257
95
22
1
3
40
50
8
37
.347
.327
.674
71.8
2018
133
516
.324
167
30
5
10
79
85
20
48
.459
.376
.835
113.4
2019
133
475
.288
137
25
1
4
60
71
11
51
.371
.350
.721
102.4
2020
117
437
.332
145
25
1
7
58
70
14
40
.442
.382
.824
122.7
2021
136
468
.278
130
24
1
5
59
61
5
44
.365
.338
.703
96.8
2022
121
432
.289
125
23
0
8
60
59
10
52
.398
.360
.759
119.8
2023
130
429
.268
115
23
1
7
48
44
9
41
.375
.328
.697
98.9
KBO 통산
(12시즌)
1433
4648
.291
1354
241
18
53
575
696
120
491
.385
.355
.740
100.0

[1] 1학년이 주전 유격수를 본다는 건 웬만한 수비력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웬만하면 주전 센터라인 자리는 당장 지명이나 진학이 급한 3학년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으로, 특히 주전 포수나 유격수 자리는 2학년들도 차지하기 힘든 자리인데 이 조건을 1학년 신분으로 다 제꼈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허경민은 타격성적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수비 하나로 선배들을 다 밀어냈다는 것이다.[2] 다만 이학주는 그 전에 컵스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청소년대표에서 제외되었다.[3] 다만 기아는 이 당시 2차 전체 1번으로 안치홍을 지명하였다.[4] 방송시간을 지연시킨 426 대첩의 여파로 추정된다.[5] 다만 빠른 발에 비해 아직 주루사가 많다는 건 아쉬운 점.[6] 2013 시즌에는 내내 삼진을 당하지 않다가 4월 19일 한화전에서 처음으로 삼진을 당했다.[7] 2위가 정근우인데 0.283의 타율. 6월에만 0.358의 타율을 기록하며 성적이 반등하고 있기에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8] 네이버스포츠 영상파트에서 허경민을 검색해보면 호수비 영상만 엄청난 개수가 나온다. 올해는 물론 그 전 백업으로 계속 나왔던 시즌에도.[9] 사실 이현승은 빗맞은 땅볼이 행운의 안타가 되며 무사 만루가 되어버린 걸 감안하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1실점으로 막은 게 기적.[10] 엔트리 구성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뽑힌 선수가 아닌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를 뽑지 않은 감독이나 코치 등에게 돌아가는 게 차라리 더 합리적이다. 허경민이 뽑아달라고 빈 것도 아니고.[11] 그러나 최주환은 우여곡절끝에 시즌 막바지 다시 타격감을 되찾고 타율 3할에 복귀하면서 주전자리를 꿰찼다. 김태형 감독이 최주환의 원래 포지션인 2루수가 아니라 익숙치 않은 3루수로 나서게 하는 것도 있고... 가을야구에도 허경민을 밀어내고 주전 3루수로 나섰고 좋은 타격감을 이어갔다.[12] 그러나 박건우는 5월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두산 타자 최초 20-20을 달성하고 리그 타율 2위에 오르는 등 결국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13] 4차전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서 실책으로 동점을 허용한 것이 옥의 티. 다행히 팀 타선이 연장 10회초 공격에서 2점을 내며 우승하였다.[14] 거기에 KIA의 경우 외부 영입보다는 내부 FA인 양현종최형우를 잔류시켜야 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그만큼 외부 FA인 허경민에 신경쓸 겨를이 없기도 한 상황이다. 최형우의 경우 30대 후반으로 나이가 많지만 아직은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해주는 선수고, 양현종은 국내 잔류보단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는 해외 진출 도전에 우선을 두고 있다는 변수가 존재하고 있다.[15] 사실 KIA를 제외한다면 허경민 영입을 추진할 구단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의 영입 가능성이 있는 편이긴 한데, 롯데는 아직 한동희가 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고, 삼성은 내야 보강이 필요하지만 3루수에는 이원석이 있기 때문에 허경민보다는 오재일이나 최주환이 영입 고려 대상이었다. 이외에 SK 와이번스NC 다이노스최정박석민이라는 대형 3루수가 이미 있기 때문에 허경민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허경민 잔류발표 다음날, SK는 최주환을 영입하며 이를 증명했다.[16] 7년 보장에 4년 후 옵트아웃 조항이 포함된 계약과 다를 바 없다.[17] 한화로 약 400억원 수준이다.[18] 실제로 2021 시즌 도중에 NC 다이노스가 허경민에게 7년계약을 선제안한 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원래는 NC 이적에 가까웠으나, 두산 측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 계약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19] 물론, 7년 총액 85억 계약은 두산 출신 선수 잘 사가기로 유명한 NC가 허경민한테 7년 계약을 먼저 제시해서 두산도 뺏기지 않기 위해 제시한 금액으로 이를 감안하면 돈값 대비 나름 할 만큼은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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