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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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헨리 3세의 왕비이자 에드워드 1세의 모후. 프랑스 왕국 귀족 출신으로, 프랑스의 왕비 마르가레트의 동생이다.
잉글랜드의 외국인 왕비 혐오의 도화선 격이 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223년에 엑상프로방스에서 아라곤 왕국 국왕의 후손인 프로방스 백작 레몽 베렝제 4세와 사보이아의 베아트리스의 차녀로 태어났다. 언니 마르그리트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와 결혼하면서 집안의 격이 높아져 본인도 잉글랜드 국왕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1236년 1월, 12살의 나이에 16살 연상 헨리 3세와 결혼했다. 엘레오노르는 검은 눈의 미인이었고 남편에게 충실했다. 헨리 3세는 왕비와 그 친정 식구들을 잘 대해주었다.
엘레오노르는 국민들의 미움을 받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외척 세력 문제였다. 엘레오노르는 시집을 오면서 수많은 친정 식구[1] 들을 데려왔다. 그들은 헨리 3세에게서 특권을 부여받아 권세가 높아졌고 잉글랜드에 발붙여 잉글랜드 귀족처럼 행세하고 다녔다. 또한 엘레오노르는 우유부단한 남편의 정치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헨리 3세가 런던에 없을 때는 섭정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외국인 왕비의 정치 개입은 잉글랜드 귀족들의 불만을 샀다. 엘레오노르가 마차를 타고 궁 밖에 나오면 사람들은 쫓아가서 돌이나 썩은 야채를 던지며 대놓고 왕비를 욕했다.
내전이 일어났을 때 엘레오노르는 모국인 프로방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엘레오노르는 강력한 친정 세력과 정치적 수완을 이용해 남편을 도와 내전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기여했다.
1272년에 남편이 사망한 후에는 손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유시인들의 시와 문학작품들을 즐기면서 지냈다.
말년에는 솔즈베리의 에임즈베리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사망한 후 그곳에 묻혔다.
3. 가족[편집]
3.1. 자녀[편집]
처음 결혼했을 때는 너무 어렸기에 아이를 낳지 못해 불임 의혹을 받기도 했다. 16살에 장남 에드워드 1세를 시작으로 여러 아이를 낳아 헨리 3세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 에드워드를 가장 사랑했으며 수도원에 들어간 뒤에도 에드워드와는 계속 연락을 취했다. 둘째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의 국왕 알락산더 3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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