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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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기타


1. 개요[편집]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서북지역에 있었던 . 영주시 풍기읍, 봉현면, 안정면예천군 은풍면, 효자면이 풍기군에 속했다.

은풍현의 풍, 기주현의 기를 합쳐 풍기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선 죽령을 넘어야했는데 죽령을 넘기위한 준비기지로 부흥했다.

2. 역사[편집]


신라 이전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신라 이후 기목진(基木鎭)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 조정의 통일사업에 협력한 대가인지 일개 진(鎭)에서 일거에 기주(基州)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018년 으로 강등당하고 길주(吉州)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 감무가 설치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은풍현을 합병했다.

1413년(태종 13)에 이전의 州였던 관계로 자가 들어간 고을의 이름을 이나 으로 개명하라는 칙령에 의해 기천현(基川縣)이 되었다가 문종의 태가 매장된 곳이어서 으로 승격되어 합병된 은풍현과 기천현의 이름을 각각 따서 풍기군이 되었다.

1458년 단종복위운동으로 인해 그 진원지인 순흥도호부가 폐지되어 그 고지가 인근 고을로 분할합병될 때 일부지역을 병합했다.

1683년(숙종 9) 순흥부가 부활하자 풍기군에 속했던 구 순흥부 지역이 환원된다.

일제강점기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부군면 통폐합으로 영주군에 합병되었다. 산하면들도 통폐합되었다.

3. 기타[편집]


조선 중종 ~ 명종 때 유명한 위인 둘이 이 곳의 군수로 부임하면서 많이 언급하는데, 그 주인공은 중종 때의 주세붕과 명종 때의 이황이다.

주세붕은 군수로 재임하면서 지역에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풍기인삼'의 시작이라고 전해지며, 이 고장 출신인 안향의 제사를 위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웠다.

이후 명종 때 부임한 이황은 비록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1], 바로 위의 백운동 서원을 고치면서 조정에 건의해 명종의 친필을 받고 '소수서원(紹修書院)'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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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이황은 옆동네 군수로 있다가 형 이해가 충청도(당시 청홍도) 관찰사로 오자 물러나자 새로 부임한 곳이 풍기였다고 한다.